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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백두대간 06차(단목령~항이리갈림길) : 안개낀 대간길 무작정 걷기

by 재희다 2012. 6. 10.

산 행 지 : 백두대간 05차(단목령~항이리갈림길)

산 행 일 : 2012. 06. 09.(토)

산행코스 : 설피마을 + 단목령 ~ 북암령 ~ 조침령 ~ 항이리갈림길 + 항이리 (거리 10km + 3.5km) 

산행참가 : 22명. 

 

<산행지도>

 

 

지난 점봉산 구간 산행 때, 단목령 직전에서 너른이골로 내려서며 시원한 계곡에서 발을 담그지 못하고 그냥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그래서 이번 산행에서는 대간길은 단목령에서 시작하여 연가리골 갈림길까지만 잇고, 연가리골로 내려오면서 시원한 계곡산행을 즐길 요량으로 대간 산행에서 좀처럼 가지 않는 긴 탈출로를 산행 루트에 포함시켰다.

 

쉰이 넘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내 연수라는 것이 본디 예비군 훈련받는 기분으로 대하는 게 일반적인 것이라서, 산행 일과 겹쳐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당근 산행에 참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묘한 것이어서, 산행일인 토욜날 연수를 제낄 수 있는 묘안이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고, 하는 수 없이 이번 산행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산행 출발일인 금욜 저녁, 산행에는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들머리와 날머리에 대한 힌트를 전달하고자 출발지인 양재로 가서, 산행에 참여하지 못함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는,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왔다. 이번 구간은 그다지 어렵거나 애매한 곳이 없어서 발품만 부지런히 팔면 되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욜 아침 총무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설피마을에서 단목령 가는데 20분이 아니고 두 시간 만에 도착하는 바람에, 부득이 항이리 갈림길에서 서면 방향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사실 별로 상관은 없다. 산행 자체가 즐거워서 대간을 걷는 백두들이고, 어차피 구룡령까지는 두 번에 걸쳐서 가게 될 예정이므로, 중간 어디에서 탈출했어도 별로 지장이 없는 구간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런 사고 없이 다들 무사히 내려와서 맛난 점심을 했느냐가 중요한데, 여느 산행보다 훨씬 재밌고 맛난 점심을 드신 듯하여 조금은 죄스런 마음이 적어지는 듯했다.

 

산행에는 참가를 하지 못했지만, 김용현님께서 올려놓은 사진을 가지고 간략하게나마 기록은 남겨 놓는 게 좋을 듯하여, 이제 소설을 쓰려한다. 

 

 

아마도 2시 40분쯤 조침령터널 근처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를 하고는, 설피마을 삼거리 주차장에서  대충 3시 10분을 조금 넘었을 때쯤에 서둘러 단목령을 향해 출발하지 않았나 짐작한다. 그리고는 어디로 어떻게 올랐는지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백두산우회의 특성상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오지는 않았을듯하고, 아마도 마지막 펜션을 지나면서 마주친 목책을 넘어 산행을 시작하여 갈림길에서 북암령 방향의 길로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두 시간 가까이 준비운동을 하게 된 듯하다.

 

 

단목령 도착했어야 할 시간인데 컴컴한 숲에서 산행 준비운동에 여념이 없다.

 

 

 

등로 주변에 산죽이 많은 것으로 보아 어느 지능선 위로 거의 올라온 듯한데, 대간길은 아닌 듯하고...

 

 

 

 

 

그냥 나침반으로 북쪽이나 동쪽 방향으로 치고 오르면, 어디에서나 20분 남짓이면 대간능선에 오르는 곳인데..ㅉㅉ

 

 

 

등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다시 설피마을 산나물밭으로 돌아나와 있다.

 

 

 

 

 

 

 

지난 산행 하산길에 보았던 펜션이 눈에 익은 모습이다.

그럼 지금까지 뭐 한 겨!

 

 

 

 

 

검은색 펜션 건물을 지나 시멘트 다리를 건너며, 우측으로 흰색 펜션이 마지막 펜션 건물이고...

 

 

팬션 건물 끝자락쯤에 들머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지도상 들머리에서 1km 거리를 15분 정도에 주파하여 단목령에 도착했다.

이렇게 쉽게 오는 것을 거의 두 시간여 만에 단목령에 올랐다.

 

 

<단목령(檀木嶺, 809m)>

점봉산과 북암령 사이의 안부로, 인제군 진동리와 양양군 오색을 넘나들던 고개다. 단목령의 옛 지명은 '박달령'이었으며, 박달령의 유래는 박달골(오색리 방향의 계곡)에 박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박달령이란 이름의 고개가 많은데, 백두대간 남한 구간에는 선달산과 사이에 있는 박달령두타산청옥산 사이에 있는 박달령이 유명하며, 박달나무가 많은 고개라서 붙여진 지명과, 밝고 큰 고개라 하여 '박달령'이란 지명이 붙여진 곳이 있다.

 

단목령 지킴터에는 아직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그렇게 헤매었음에도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았나 보다. 

 

 

1020봉 오름길 어디쯤에서 잠시 쉼을 한다.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상쾌한 느낌의 숲이 훤해 보인다.

 

 

 

 

 

06:30 쯤에 북암령을 지나지 않았을까..

 

 

<북암령(北岩嶺, 925m)>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삼거리에서 양양군 서면 북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북암령 일대는 굉장히 넓은 평전 지대가 있다. 조침령은 도로 공사 이후 옛길을 잃어버렸지만, 북암령과 박달령(단목령)은 옛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북암령은 세계적인 희귀 식물인 한계령풀의 집단 분포지이다. 매자나무과에 속하는 한계령풀은 설악산 일부 지역과 점봉산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식물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식물학자들에 의해 북암령 일대에 대규모 군락지가 발견되었다.

 

한계령풀.

 

한계령풀은 해마다 4월이면 백두대간 산마루에서 꽃을 피운다. 한계령에서 처음 발견되어 한계령풀이라고 한다. 만약 이 꽃이 한계령이 아닌 이곳 북암령에서 먼저 발견이 되었으면 어울리는 꽃 이름이 되었을까?  寒溪嶺(한계령), 그 이름에서 고산준령의 추위뿐만 아니라 그것을 견디는 용기와 강인함까지 느껴진다. 4월의 대간에서 추위와 눈에 겁먹지 않고 4월의 따사로운 봄볕을 한 껏 누리는 꽃이란 생각이 든다.

 

1136봉 삼각점을 지나고,

 

 

 

커다란 너럭바위도 넘는다.

이왕 늦어버린 거 웬만하면 쉬엄쉬엄 가지..ㅋㅋ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갈림길을 지난다.

 

 

양양 양수발전소 갈림길 이정표.

 

 

 

962봉 삼각점을 지나고,

 

 

 

양양군 방향의 조망이 트인 포토 포인트도 그냥 지나쳤을 터이고,

 

 

 

드뎌 조침령에 도착한다.

 

 

조침령에 있는 백두대간 안내판.

 

 

<조침령(鳥寢嶺, 750m)>
강원도 양양군의 서부에 위치한 고개로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의 경계를 이룬다. 최근에 고개 밑으로 터널이 개통되었으며, 고개 정상에 조침령(鳥寢嶺)이라 적힌 대형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조침은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라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여지도서』 양양도호부에 "조침령(阻沈嶺)은 부 서쪽 45리에 있다. 소동라(所冬羅)의 남쪽 지맥으로 기린(麒麟)과 경계를 접한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또 조선 후기 고지도에는 대체로 부의 서쪽 경계 지역에 표현되어 있는데 『해동지도』, 『광여도』에는 조침령(阻枕嶺), 『1872년지방지도』에는 조침령(阻沈嶺), 『청구도』에는 조침령(曺枕嶺)으로 지도마다 한자가 다르게 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서면 서림리에 영치현 명으로 조침령(鳥沉嶺, 죠침영)이 수록되어 있다. 과거의 지명을 그대로 해석한다면 대체로 고개가 "험하고 막혀 있다"는 의미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한자 지명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로, 한계령(산경표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음)과 함께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 형제현(兄弟峴)이라 하였다. 오색령을 넘어왔던 사람들과 흘리령을 넘어온 사람들이 만나 내린천을 따라 한양으로 넘나들이 하던 길이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루트였던 것이다.(펌)

 

옛 조침령에는 우마차가 지날정도로 넓었던 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1. 산경표나 중보문헌비고에는 조침령(曺寢嶺)이 '무리 조(曺)', '잘 침(寢)', '재 령(嶺)'이다.
   이는 무리지어 자고 넘는다는 뜻이고,
2. 고지도에 나타나는 조침령(阻沈嶺)은 '막힐 조(阻)', '베개 침(沈)', '재 령(嶺)'이다.
   이는 험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으니, 하룻밤 유숙하여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3. 이정석에 쓰여 있는 조침령(鳥寢嶺)은 '새 조(鳥)', '잘 침(寢)', '재 령(嶺)'이다.
   이는 고개가 험하여 새(鳥)들도 자고 넘는다는 뜻이다.

모두 다 조침령인데 한자로 쓰면 이렇듯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그리고 1과 2는 같은 곳에 위치하고, 3의 위치는 다른 곳에 위치한다. 1과 2는 쇠나드리에서 윗서림으로 넘어가던 길이었고(이 길은 현재의 조침령에서 구룡령 방향 1.5km 지점에 위치한다), 3은(김재규의 사단장 재직 시 3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개설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증언한다) 현재의 조침령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 지명은 "반편고개" 또는 "반부득고개(서림에서 조침령으로 넘어가는 중턱에 대략 5만여 평 되는 소반처럼 넓은 평지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라 하였다.

 

현재의 조침령은 역사가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군인들의 힘들었던 고난에서 병사들을 새(鳥)로 비유한 것 같고, 옛 조침령은 구절양장(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해질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에 살고 있는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싫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곳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옛 조침령 이정표 앞에서.

 

 

 

볼 때마다 그다지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정목.

 

 

 

조침령 길 위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시장끼'란 찬을 더하였으니 얼마나 꿀맛이었을까?

 

 

 

 

 

 

 

 

 

식사를 마치고 구룡령 방향으로 대간길을 재촉한다.

 

 

 

대간 능선을 따라 이어진 조침령 도로.

 

 

 

도로에서 숲으로 들어서는 들머리에서 잠시 쉼을 한다.

 

 

 

 

 

 

안개 낀 대간길에서 현재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조침령을 뒤로하고 구룡령 방향으로 들어선다.

 

 

 

 

 

쇠나드리를 지나 820봉 근처에서 잠시 쉼을 한다.

 

 

대간길에 드리워진 안개는 언제쯤에나 걷힐런지...

 

 

 

항이리 갈림길 도착.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안개가 없는 사진이다.

 

 

아침 단목령 부근에서 너무 긴 준비운동을 한 탓에,

목적지인 연가리골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항이리로 탈출을 결정한다.

 

 

탈출을 결정하자 모두들 표정이 밝아진 듯...ㅋㅋ

 

 

 

양양군 서면 항이리로 내려가는 길은 급하게 고도를 떨어뜨리며 내려간다.

2km에 고도를 거의 700m 정도 낮추어야 했으니, 아무리 내림길이라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그래도 잘 자란 소나무들이 다소나마 위안이 되어 준다.

 

 

12:08  56번 국도 옆에 있는 그루터기 쉼터가 내려다 보인다.

 

 

항이리 날머리 앞에 애마가 벌써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

 

 

항이리 날머리를 알리는 이정표.

 

 

 

 

늘 함께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