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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간남진 25차(이화령~지름티재) : 위험은 찰나의 순간을 파고 든다 ! y

by 재희다 2014. 6. 15.

산 행 지 : 백두대간 25차(이화령~지름티재)

산 행 일 : 2014. 06. 14.(토)

산행코스 : 이화령~조봉~황학산~백화산~평전치~이만봉~희양산 성터~희양산~지름티재

              (거리 16.6km + 3 km)

산행참가 : 19명

 

<산행코스>

 

 

새벽 2시반 경, 버스 중간쯤에서 울린 알람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 잠시 뒤척이다 보니 버스에 불이 켜지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어느 분의 알람이었는지, 그리고 왜 2시 반에 알람이 설정되어 있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졌다.

 

 

03:40 산행 준비를 마치고 이화령 휴게소 마당에 내리니, 밝은 달이 휘영청 휴게소 지붕 위에 걸려있다.

밝은 달을 보고 오늘 날씨가 괜찮을 것으로 짐작했으나, 산행의 반은 안개속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은 옅은 가스 속에서 헤매게 된다.

 

두시반에 알람을 울린 분이 누군지 또 알람이 울린 이유가 뭔지는 미궁속에 빠진 채,

선잠에서 겨우 깨어나 어둠에 몸을 맡긴다.

 

 

03:51 최근에 설치된 이화령 에코브리지 아래를 통과하여 들머리가 있는 문경 쪽으로 이동하여,

 

 

03:52 이화령 들머리로 들어서서 능선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른다.

 

나무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는데 좌측으로 갈림길이 나타나고 표지기도 몇 개 걸려 있다. 선두들은 모두 계단을 따라 올라갔으나, 능선 위에서 좌측으로 이어진 우회길과 만날 듯하여 홀로 우회길로 접어든다. 5분쯤 후에 우측에서 오는 길과 다시 만나, 남쪽으로 이어진 사면 길을 잠시 더 따르면...

 

 

04:01 군부대 경고판이 나오며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철조망을 넘어 다닌 흔적이 있고 안쪽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여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니,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고 681봉 방향으로 계단길이 보인다. 계단길을 따라 오르려는데, 창병씨가 군부대 시설 보호를 위해 우회길을 만들어 놓은 듯 하니, 철망 밖으로 나가 우회길을 따르자고 하여 다시 철망 밖으로 나간다.

 

 

04:11 먼저간 분들의 위치 파악을 위해 전화기를 꺼내 들으니, 때마침 손총무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계단을 따라 올랐더니 철망이 앞을 막고 있어서 다시 들머리로 내려가고 있다고...

계단 중간 쯤 남쪽 사면으로 갈림길이 있으니 그쪽으로 오라 이르고, 잠시 기다리니 랜턴 불빛이 하나둘 다가온다.

 

 

04:25 산행시작 20여분 만에 주능선에 오른다. 아마도 681봉을 우회하여 온 듯하다.

이어지는 주능선 위의 등로는 신작로처럼 널찍하여 미끄러운 사면길을 벗어난 안도감이 든다.

 

 

04:58 지나는 산꾼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하나둘 얹어 놓은 돌탑들이 즐비하게 보이는 봉우리에서 처음으로 쉼을 하며 목을 축인다.

 

 

05:09 조봉 도착.(안개가 심하여 사진이 엉망이다)

 

<조봉(鳥峰, 673m)>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문경에서 세운 조그맣고 앙증맞은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있다. 산의 기암괴석 바위들이 마치 새의 부리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여 조봉산이라 불렀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조선 말엽 '이 봉우리에 새들이 많이 있다'하여 불려진 이름 이라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 산길을 걷는데 "홀딱벗고"를 외치는 새의 울음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새벽길을 걷는 산꾼에게 청량제 역할을 한다.

 

<홀딱벗고새(검은등뻐꾸기) 이야기>

새의 울음소리가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름에서 눈치챘듯이 그 울음소리가 조금은 요상하게 들린다. 바로 '홀·딱·벗·고~. 홀·딱·벗·고~'라고 들린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소리가 '카·카·카·코~' 혹은 '호·호·호·히~'라고도 들린다고 한다. 음계상으로 봤을 때 '미·미·미·도'로 표현되는 4음절의 독특한 리듬 때문에 그렇게 들린다고 한다.

하지만 홀딱벗고새라 불리게 된 데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사찰의 한 스님에게 일어난 애틋한 사연이다. 수행 정진하는 어느 날 그 스님에게 운명처럼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은 불귀의 객이 된 남편의 백일기도를 위해 탑돌이를 하러 절을 찾았다. 그 자태가 너무 아름다워 스님은 그만 그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세상과 등진 스님에겐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번뇌를 떨쳐버리기 위해 쉼 없이 주문을 외웠다. '사랑도 홀딱벗고, 번뇌도 홀딱벗고, 미련도 홀딱벗고…' 이렇게 열심히 주문을 외웠지만, 한번 일어난 마음의 갈등은 차마 떨칠 수가 없었고, 결국 스님은 미련만 남긴 채 화풍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홀·딱·벗·고~'는 그 모습을 지켜본 검은등뻐꾸기가 그 주문을 따라 부르다 보니 입에 익어 그렇게 나왔다고도 하고, 또 스님의 넋이 홀딱벗고새로 변해 그런 울음을 울게 되었다고도 한다.

 

 

05:20 조봉을 뒤로하고, 지저귀는 갖가지 새소리를 들으며 황학산을 향한다.

 

 

05:23 옅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는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 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늘 걸어야 할 대간길이 얼마쯤 인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다.

 

 

05:25 대간길에서 유일하게 가로지르게 된다는 개울의 흔적이 우장풀 사이로 이어져 있다.

보기에는 등로처럼 보이지만 비가 오면 물이 흐르는 개울로 변한다는 곳이다.

 

대간길에서 유일하다는 개울을 건너는 백두들.

 

 

05:45 분지리 갈림길을 지난다.

 

<분지리(盆地里) 갈림길>

이정표에 우측으로 "분지안말 50분"이라는 갈림길 표지판이 걸려있다. 이곳에서 좌측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문경읍 각서리와 풍덕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 서쪽 방향 길은 분지리 안말로 이어지는 곳이다. 분지리(盆地里)는 괴산군 연풍면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연풍군 현내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군 연풍면으로 바뀌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분지리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분지안말 갈림길 이정표.

 

 

05:54 새벽안개 자욱한 황학산 정상에 도착한다. 또 한 시간쯤을 왔으니 느긋하게 쉬며 목을 축인다.

 

<황학산(黃鶴山, 912.8m)>

전설 속의 누런 학(鶴)에서 유래되었으며,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상에 위치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규모가 큰 백화산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호젓한 산길과 억새밭, 참나무 숲길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정상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문경읍이 뚜렷이 보이고 그 너머로 운달산도 조망된다는 곳이나, 오늘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산 가까운 곳에는 연풍향교와 연풍성지가 있으며, 연풍향교는 조선 중종 때 창건되어 여러 차례 중수되었고,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 때의 신해교난 이후 연풍 지역에 은거하며 신앙을 지키다가, 순조 때 신유교난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자리를 성역화한 곳이다.

 

 

06:03 황학산 인증을 남기고 백화산을 향한다.

 

 

06:19 흰드메 삼거리.

 

<흰드메 삼거리>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흰드메와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이제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지 길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잊혀진 길이 되었다. 흰드메는 안말에서 30여분 거리에 위치하며, 분지리 맨 꼭대기에 올라앉은 마을로, '겨울철 흰 눈 덮인 모습이 흡사 하얗게 핀 꽃 같다'는 백화산(白華山) 턱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어 흰두뫼, 흰드뫼 등으로 불리다가 흰드미로 바뀌었다.

흰드미는 산 높고 골 깊은 산비탈이지만, 땅이 넓고 기름져 옥수수나 감자, 콩, 팥 등등 심는 대로 풍작이었으며, 그래서 삶에 지친 민초들이 희망을 심는 땅이었다. 그들은 아침 해가 산등성 위로 고개를 내밀 때부터 저녁 어스름이 연풍 들녘에 깔릴 때까지 땀으로 범벅된 채 이랑을 팠다. 그러다가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살림이 피면 산을 내려갔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공간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서 본격화된 화전민 정리 사업으로 하나둘 이곳을 등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외롭게 땅을 일구던 홍태식 할아버지 내외가 1990년대 중반 산에서 내려오자, 흰드미는 지도에만 이름을 남긴 빈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반대편에 있는 문경 마원리는, 고려시대부터 영남과 중부지방을 잇는 교통요지로 말(馬)을 많이 길러서 마원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06:27 백화산이 훤히 보이는 조망처인데,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그냥 지나칠 밖에!

 

 

06:29 암릉을 내려섰다가는,

 

 

06:31 바로 또 올라서야 한다.

 

 

06:32 미끄러운 암릉길은 조심조심 올라선다.

 

 

06:43 백화산 동쪽 마원리와 남호리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 끝에 있는 옥녀봉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06:54 백화산 정상 직전 헬기장에서 조금은 이른 아침식사를 한다.

 

무거운 배낭을 가볍게 하는 두번째 좋은 방법은 빨리 몸속으로 넣어 버리는 것이다!

 

 

07:11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백화산 정상에서 인증을 남긴다.

 

<백화산(白華山, 1,063.5m)>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마성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겨울철에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듯이 보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백화산은 성인(聖人)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라고 하며, 그 발치에 봉생(鳳生), 좌측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이, 우측으로는 신라시대의 고찰인 봉암사를 두고, 뒤로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봉황새의 형상이라고 한다. 백화산은 멀리서 보면 봉황이 노는 형국이라고 한다. 특히 문경 쪽에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있어 봉황의 부리이고, 정상은 봉황이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보듯이 천지간의 산과 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한다.

 

백화산은 백두대간이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이화령에서 잠시 숨을 죽인 뒤, 속리산을 향하면서 치솟은 산으로, 백두대간 문경지역으로 들어와 한참을 치고 들어가다가 빠지는 말발굽의 형세를 하고 있는데, 그 정점이 이곳 백화산이다. 조선말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은신처로 이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07:22 만덕사 갈림길을 지난다.

만덕사는 백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조그만 사찰이다.

 

 

07:40 불쑥 나타난 암봉을 드리워져 있는 밧줄을 타고 올라 잠시 암릉을 따르면,

 

 

07:48 이내 평전치에 도착한다.

 

나뭇가지에 평전치 인근 개략도가 걸려 있다.

 

<평전치(平田峙)>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인말을 잇는 고개다. 일명 평밭등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예전에는 분지리에서 상내리를 넘나드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인적이 없는 잊힌 길이 되었다.

 

평전치 안내판.

 

 

07:58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안갯속을 걷노라니,

 

 

08:10 뇌정산 갈림길을 지난다.

 

<뇌정산(雷霆山, 981m)>

경북 문경에 위치한 뇌정산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일구기 전에 백화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친 능선 위로 투박하게 빚어놓은 산이다. 산 이름 탓인지 이 산에는 벼락이 잘 치고, 물난리도 많이 나서 인근 마을에서는 '뇌정산'이라고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으며, 현재는 '안에서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을 지닌 내정산이라 부르고 있으나 여전히 인적이 드물어 산행지도에는 초입만 겨우 표시되어 있는 정도다.

 

 

08:39 또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이어지는데,

봉우리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쉴 정도의 공간이 있고, 어느 산객의 궁둥이를 받쳤을 돌이 놓여 있다.

 

 

08:41 조그만 봉우리를 잠시 내려서니,

 

 

08:44 사다리재에 도착한다.

 

<사다리재>

문경시 가은읍 한밤미 마을에서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를 잇는 고개다. 원래 지명은 미전치(薇田峙)라 했는데, 사다리재는 그 출처나 연원이 불분명한 이름이며, 본래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한밤미 마을과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분적골) 마을을 오가던 '고사리밭등'이 고개의 옳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사리밭등은 분적골 사람들이 고사리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부르던 이름으로, '고비 미(薇)' 자를 써서 '미전치(薇田峙)'라 하였다. 원래는 사거리였으나 문경 쪽은 통행이 전혀 없어서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삼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분지리 쪽은 백두대간을 당일 산행으로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 구간을 끊기도 하는 곳이다.

 

 

08:53 사다리재를 지나 잠시 진행하는 사이에 좌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며, 이만봉 남쪽 지능선 너머로 희양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09:12 조금 가파르다 싶은 오름길을 치고 오르니 곰틀봉 정상에 도착한다.

 

<곰틀봉(972m)>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다. 옛날에 곰이 살았다는 이야기와, 이 부근에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어서 곰을 잡는 틀을 놓았던 곳이라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 우측 전망대에는 고사된 소나무가 있고, 누군가가 ‘곰’이란 글자를 음각해 놓았는데, 아래쪽에 또 다른 누군가가 매직으로 '틀봉'이라 적어 놓아 합치면 '곰틀봉'이 된다.

 

몇 해 전에는 살아 있던 소나무가 이제는 뼈만 남은 채 이곳이 곰틀봉임을 알려 주고 있다.

안개가 가리지 않았으면 시원한 조망을 주었을 좋은 곳인데.. 아쉬움이 크다!

 

 

09:15 곰틀봉 정상에서 인증을 남기고,

 

 

09:18 이만봉을 향하니,

 

그동안 안개에 가려있던 이만봉이 반쯤 모습을 드러내며 어서 오라 하고,

 

남쪽으로는 뇌정산이 어슴프레 조망된다.

 

이만봉(좌)에서 시루봉(우) 방향으로 이어진 대간능선이 구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09:23 잠시 어렵잖은 암릉이 이어진다.

 

 

09:28 이만봉 오름길에 돌아본 곰틀봉(좌)과 981봉(우) 방향의 지나온 봉우리들.

 

 

09:32 이만봉 정상에 도착하여,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나눠 먹으며 한참동안 여유를 부려 본다.

 

<이만봉(二萬峰, 990m)>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오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다. 이만봉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아래 골짜기(현 분지리의 중간 부분) 2만여 가구가 난을 피해와서 살았다는 설과, 만호라는 벼슬을 한 이(李)씨가 그곳 동리에 살았다는 설 등이 있다.

만호(萬戶)라는 벼슬은 고려·조선 시대 외침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만호부의 관직(4품, 무관)으로서, 본래 그가 통솔하여 다스리는 민호(民戶)의 수에 따라 만호·천호·백호 등으로 불리다가, 차차 민호의 수와 관계없이 진장(鎭將)의 품계와 직책 등으로 변하였다. 초기에는 수군을 중심으로, 나중에는 지방에도 외침에 대비할 목적으로 직책과 임무가 부여되었다고 한다.

이만호골이 시작되는 연풍군 분지리 도막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였던 권율 장군이 군막을 쳤다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경계선에 있으며 괴산군에서 최고봉인 백화산과 희양산의 중간에 위치한다. 독립된 산이기보다는 황학산, 백화산. 시루봉,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능선으로 표시된다.

 

 

09:43 이만봉에서의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09:50 사선봉을 향하는데,

 

편안한 능선길 앞을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떡하니 막아선다.

 

 

09:52 바위 암릉을 오르니 전망 좋은 마당바위가 쉬어가라 유혹하고,

 

우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새벽에 지나온 대간능선과의 사이 골짜기에 분지리 마을 아래에 있는 외딴집이 푸른 산줄기에 둘러져 있고, 대간능선 뒤쪽으로는 조령산(좌)과 주흘산(중앙 멀리)이 희미하게 가늠된다.

 

당겨본 분지리 마을 아래쪽의 외딴집.

 

 

09:54 용머리바위를 지나는데 아무리 보아도 용머리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용머리를 보았다는 것은 아니지만..ㅋㅋ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지나온 대간능선과 봉우리들. 우측이 이만봉이고, 중앙의 뽀족봉이 곰틀봉이다.

 

당겨본 조령산과 주흘산 방향.

 

 

09:58 완만하던 대간능선에서 깊은 암릉을 잠시 내렸다가 다시 오르니,

 

 

10:01 좌측으로 가야 할 희양산이 살짝 보인다.

 

 

10:03 용바위를 지나는데, 이곳은 용의 등줄기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잠시 전에 용머리바위를 지났으니..ㅋㅋ

 

 

10:06 우측으로 조령산(좌)에서 이어온 대간능선과 그 너머의 희미한 주흘산이 시야가 흐림을 더욱 아쉽게 하고,

 

 

10:08 희양산이 시원하게 보이는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 사이의 시간차가 7분 정도다!

그 7분 동안 백두 회원 모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일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거나 미래의 일을 예측해 볼 때면, 실로 짧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 여정을 결정짓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리는 늘 신중하고 사려 깊은 언행을 하는데,

한치의 소홀함도 용서치 않음을 뼛속으로 느껴 보았다.

 

 

10:15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의 일상이 계속 이어짐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사건을 기억코자 증거를 남긴다.

 

희양산의 보살핌 있는지!

부봉(시산제 지낸 곳)의 보살핌이었는지!

 

중앙에 가녀린 싸리나무 여린 가지 하나에 우리 모두 경외심을 가진다.

 

 

10:17 이만이골(도막) 갈림길을 지나니,

 

 

10:21 대간길을 나무터널 속으로 이어지고,

 

 

10:22 이내 시루봉 갈림길을 지난다.

우측으로 시루봉 20분이라 표시되어 있는데, 배너미평전을 지나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길로 10여 년쯤 전 대간 북진 때는 시루봉을 거쳐 왔었기에, 오늘은 직진의 사선봉을 밟아보기로 한다.

 

<시루봉(914.5m)>

시루봉은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의 모양새가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10:27 우장풀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니,

 

 

10:30 '희양산 사선봉'이라는 이정표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선봉 정상을 지난다.

 

<사선봉(四仙峰, 964m)>

네 분의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란 뜻인 듯한데, 특별한 지명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백두의 신선님께서 사선봉 정상에서!

 

 

10:45 사선봉을 내려서자 작은 박석(薄石)이 깔려있는 편평한 지형이 나타나며, 등로는 직우틀하여 북쪽 시루봉 방향의 오름길로 이어진다.

편평한 지형의 숲속에서 족적이 이리저리 얽혀있어서 어느 것이 정상적인 대간길인지 분간이 어렵다.

 

 

10:48 이리저리 얽힌 등로에서 가장 뚜렷한 길을 따르니, 이내 시루봉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배너미평전>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연풍군 경계에 있는 백두대간 능선 안부로, 우측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고개를 배너미고개라고도 한다. 배너미라는 뜻은 고개의 오목한 부분이 배가 넘어가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은티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마침 우측으로 배너미평전에서 내려오는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있어서, 부부 산꾼이 점심식사 준비를 하고 있고,

 

은티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그나마 우리의 위치와 가야 할 방향을 가늠케 한다.

 

오늘 처음 산행에 함께하신 분과 권 선생님께서는 부상으로 인해 은티마을로 중도 하산하기로 한다.

 

 

10:55 컨디션이 좋지 않은 두 분의 뒷일은 백사장님께 맡기고,

 

 

11:04 희양산을 향한다.

 

 

11:15 910봉 능선 위로 올라서고,

 

 

11:18 봉우리를 한두 개 더 오르내리다가,

 

 

11:23 또 다른 910봉 오름길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910봉 모습.

 

지나온 사선봉(중앙) 우측 뒤쪽으로 이만봉도 보인다.

 

좌측부터 910봉, 사선봉, 이만봉, 뇌정산이 차례로 보인다.

 

 

11:26 910봉 정상쯤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희양산의 특이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돌아본 사선봉 방향.

 

 

11:29 871봉 정상부는 암릉으로 이어진다.

 

 

11:31 871봉 오름길에 돌아본 사선봉 방향.

 

우전방으로 다음 구간 이어갈 구왕봉(좌)과 마분봉(우)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왕봉과 마분봉에 둘러싸인 은티마을 방향 파노라마.

 

지나온 두 개의 910쯤 봉.

 

910쯤 봉과 사선봉.

 

 

11:33 성곽으로 둘러진 871봉 정상을 오르면,

 

마분봉과 칠보산 방향 조망이 시원스레 트이고,

 

봉우리 주위는 성곽 흔적이 확연히 남아 있다.

 

 

11:34 871봉 내림길에는 널따란 반석들이 이어져 있고,

 

가야 할 희양산 정상부가 건너다 보인다.

 

 

11:35 널따란 반석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을 이리저리 내려서면,

 

 

11:37 희양산 성터에 도착한다.

 

<희양산 성터>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 뒷산인 희양산 정상부에 있는 석성(石城)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가은현 북쪽 15리에 옛 성이 있으니 삼면이 모두 석벽(石壁)이며, 옛 군창(軍倉)이었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는 '희양고성은 가운현 북쪽 15리에 삼면이 모두 석벽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말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이 성에서 후백제의 견훤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왕건이 희양산 산성에서 가은땅을 공격했다가 실패했다고 했는데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은 없다. 신라말에 경순왕이 봉암사로 피난 왔다가 이곳 희양산성 중턱 성골(城谷)이라는 곳에 피신했는데, 성터가 지금도 성 아래에 있으며 수백 명이 들어갈만한 굴이 있다고 한다. 이 성터가 후삼국시대 후백제와 신라(혹은 고려)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바로 후백제 견훤의 고향이자 그 아비 아자개(阿慈介, 고향은 상주)의 세력 기반이었던 곳이 바로 남쪽의 가은읍 일대였기 때문이다.

허물어진 성터에 119 표지판(제4지점)이 있는 사거리 갈림길이 있는데, 이곳이 예전에 은티마을에서 가은의 성골과 홍문정으로 넘어가던 고갯마루이다.

 

희양산 성터 은티마을 갈림길.

 

<희양산성터 갈림길>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과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를 잇는 고갯마루 사거리로, 이곳은 은티 마을에서 좌측 가은읍 봉암사 옆 성골로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가은 방향으로는 봉암사에서 길을 막아 놓아서 통행이 금지되었다. 이곳은 후삼국시대 후백제와 신라(혹은 고려)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11:38 산객들이 쉬고 있는 성터 갈림길을 뒤로하고 희양산을 향한다.

 

 

11:47 커다란 반석이 유혹하는 쉼터 전망대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구왕봉이 가까이 보인다.

 

 

11:49 지름티재 갈림길 도착.

대간길은 이곳에서 우측 아래로 이어지지고, 희양산 정상은 직진 방향의 오름길로 가야 한다.

여러 가지 일로 조금 지체되기는 했지만 희양산 정상을 다녀오기로 한다.

 

지름티재(구왕봉 방향) 갈림길 이정표.

 

희양산 오름길에 백두 후미들을 만난다.

아마도 선두팀을 벌써 지름티재로 향한지 오랜듯하다.

시계를 보니 예정보다 30분 정도 지연될 듯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예정된 정상 수준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금 더 느긋하게 진행해도 되겠지만,

먼저 내려가 기다리는 분들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이 되는 후미는,

느린 걸음을 빠르게 놀려 보지만,

그래도 속도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 후미인 것이다!

 

 

11:53 희양산 정상부에 올라서니 서쪽으로 쟁쟁한 산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좌측부터 둔덕산, 조항산, 대야산, 장성봉, 구왕봉, 칠보산, 악휘봉, 마분봉, 등등등!

 

남쪽 원통봉을 배경으로.

 

구왕봉과 장성봉을 배경으로.

 

 

11:57 암릉을 따라 희양산 정상을 향하면,

 

우측 아래로 봉암사가 내려다 보인다.

 

당겨본 봉암사 전경.

 

<희양산 봉암사>

오늘 오른 대간길의 희양산을 가리켜 불교에서는 우리 국토의 사리라고도 하며, 혹자는 희양산은 우리 국토의 단전(丹田)이라고도 한다. 버리머기재에서 희양산을 거쳐 하늘재에 이르는 마루금은 여타 마루금과는 달리 인체의 내장(內臟)처럼 동서로 반복적으로 휘어지며 희양산이 한운데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그리 불린다. 그래서 그런지 희양산 아래에는 한국 선불교의 대표 사찰인 봉암사가 자리 잡고 있다.

희양산은 이런 산세나 지형보다 불교사적인 면에서 더 가치를 발한다. 해방 이후 한국 불교는 600여 년 동안 이어온 조선왕조의 억불(抑佛)정책의 족쇄와, 일제의 '사찰령'으로 대표되는 종교말살 정책의 폐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47년 '봉암사 결사'는 한국 불교의 혁신운동이었다. 스님들은 제일 먼저 왜풍을 일소하고 수도 도량으로 거듭날 것을 결의했다. 불법에 어긋나는 불공과 천도재를 없애고 화려했던 가사(袈裟)도 괴색으로 바꾸었다. 신라 헌강왕 때 창건된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이지만, 근대에 와서는 한국 현대불교의 탯자리로도 유명하다.

해방 직후 성철, 청담, 자운 등의 스님들이 “부처의 법대로 살아보자”며 용맹 정진한 곳이 이곳 봉암사다. 이때부터 그 유명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동안 먹지도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것이 봉암사의 기본 수칙이 되었다 한다. "오직 부처님 뜻대로 삽시다!"


대야산 방향 파노라마.

 

장성봉을 배경으로.

 

등로는 바위 암릉 등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12:00 희양산을 향해 서둘러 진행해 보지만,

 

그래도 틈을 내여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돌아본 희양산 주능선.

 

내려다본 봉암사와 상괴리 방향.

 

바위틈에 홀로 버티고 있는 노송 앞에서.

 

누가 만들었을까?

 

 

12:08 드뎌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희양산 정상에 도착한다.

 

<희양산(曦陽山, 998m)>

문경시 가은읍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은 백운대라 부르며 동.서.남 삼면이 거대한 암벽으로 구성된 암산(岩山)이다. 암봉(岩峰)들이 열두 판의 꽃잎처럼 펼쳐져 있어 멀리서 보아도 우람하고 단단한 기운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세로 주위의 산군(山群)을 호령하고 있는 듯하며, 산의 남쪽 아래에는 천년고찰 봉암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희양산은 문경 지방에서 보아야만 희양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지만, 문경 쪽에는 산문(山門)을 1년에 한번밖에(사월 초파일) 개방하지 않는 봉암사가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부득이 은티마을로 오를 수밖에 없다.

희양산을 둘러보고 봉암사를 창건한 지증대사는 '산이 병풍처럼 사방으로 둘러 쳐져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고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의 물은 백 겹의 띠처럼 되었으니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며 감탄을 하고, '이 땅을 얻은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의 거처가 되지 못하면 도둑의 소굴이 될 것이다'하며 대중을 이끌고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백화산을 일으켰던 백두대간 줄기가 서쪽으로 휘어지면서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그 산들 중 하나가 희양산으로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다. 산 중턱에서 정상 쪽으로 암벽을 두르고 솟은 모습이 특이하며, 옛날 사람들은 장엄한 암벽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 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빚어놓은 바위들이 기기묘묘하고, 바위 끝에서 내려다보는 봉암사의 까만 기와지붕이 감회를 불러 일으키며, 20리 봉암사 계곡이 소나무 숲에 쌓여 진풍경을 연출한다. 백두대간을 달려오는 백화산과 이만봉이 가까이에 서 있고, 원북리 계곡이 깊게 느껴진다.

 

 

12:10 희양산 동쪽 사면의 암릉.

 

지나온 사선봉과 이만봉 뒤쪽으로 백화산이 조망되며, 좌측 멀리 주흘산도 보인다.

 

이만봉, 백화산, 뇌정산 방향 파노라마.

 

희양산 남쪽 암릉의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지?

 

 

12:13 모두 떠난 희양산 정상에서 셀카로 인증을 남기고,

 

원통산, 애기암봉, 상성봉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에서의 조망도 담는다.

 

 

12:20 다시 한번 구왕봉을 뇌리에 담아두고, 희양산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오른다.

 

 

12:25 지름티재 갈림길로 돌아 나오니, 가야 할 지름티재로 향하는 절벽 구간이 아득하기만 하다.

 

<희양산 갈림길>

희양산 갈림길에서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길은 90도에 가까울 정도로 직벽 암릉이다. 거기다가 일반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아래에서 꾸역꾸역 올라와, 갈길 바쁜 우리는 맘이 급해진다. 거기다가 일부 등산객들은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다들 기다리는데 어쩔 것이여... 체념은 참 좋은 것이다!

 

 

12:50 직벽 암릉구간을 내려서서는, 이제 막 오름길을 시작하는 산객들에게 조심하라 이르는 여유도 부려보고,

 

접어 두었던 스틱도 펼쳐 든다.

 

 

12:55 봉암사에서 설치한 목책이 나타난다.

 

 

13:01 집체만한 바위틈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오자,

 

앞쪽으로 구왕봉이 성큼 다가와 있다.

 

 

13:09 지름티재 도착. 오늘의 대간 구간 종착지다!

 

<지름티재(640m)>

괴산군 연풍면과 문경시 가은읍을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고개로, 희양산과 구왕봉을 오르는 길이 지름(기름:油)을 칠해 놓은 것처럼 미끄럽다 하여 지름티재라고 불리고 있다 한다. 아니면 연풍면과 가은읍을 최단거리로 연결한다고 해서 지름티라 불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름티재 너머에는 이곳을 지키던 스님들이 머물던 움막이 자리하고 있다.

 

지름티재 이정표.

 

2주 후에 만나기를 기약하고는 지름티재를 뒤로 한다.

 

 

13:18 은티마을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져 있다.

 

 

13:26 시원한 계곡물이 유혹하는지라 아무리 급해도 손 씻을 여유는 가져본다.

 

잠시 후 등로는 임도로 변하고 가끔씩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13:29 성터 갈림길 쉼터.

 

갈림길 이정표.

 

 

13:38 호리골재 갈림길.

 

호리골재 갈림길 이정표.

다음 구간 지름티재 접근이 좀 횟갈릴듯하다.

 

괴산 군수님!

하기 쉬운 통제만 하지 말고 백두대간 희양산을 좀 더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관리 좀 해 주쇼!

 

괴산 명산 안내도.

 

 

13:41 좌측으로 마분봉이 보이고 은티마을 경작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아본 시루봉(좌)과 희양산(우).

 

악희봉(좌)과 마분봉(우) 조망.

 

은티마을 펜션 단지.

 

 

13:50 농기계들이 많이 사용되면서 산지의 개발이 좀 더 쉬워진 증거.

 

은티산장에서 그려 놓은 인근 등산로 안내도.

 

기다리는 백두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내려가다가 구왕봉을 배경으로.

 

 

13:55 길가에 설치해 놓은 등산 안내도.

 

 

13:56 은티마을 도착. 예전보다 많이 개발된듯한 전경이다.

 

은티마을 주막집.

산꾼들에게 여시(여우의 경상도 방언) 아줌마로 소문난 주모(酒母, 이름이 ??숙)는 아직도 잘 있는 듯!

근데 아주머니 키가 많이 줄어든 듯하네..ㅉㅉ

 

은티마을 유래비.

 

<은티마을 >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이 생겨 여근곡(女根谷)이라고도 한다.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기가 센 음기를 막기 위한 풍수의 하나로 마을에 남근석을 세워놓고 전나무를 심어 놓았다고 유래비에 적혀 있다.

 

 

14:00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05:06 수안보에서 3천냥 주고 목감 후,

 

모처럼 산채정식 밥상을 받아 본다.

산채를 담은 접시에 나물 이름을 적어 놓아서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는데, 이 나물과 저 나물의 맛을 구분 하기에는 나의 혀가 별무 소용이 없다.

 

보기 드물게 여성회원들이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되면서..

 

불고기와 더덕을 제외한 모든 찬이 무한리필된다고 해서 소주와 맥주 매상을 마음껏 올려 준다.

 

 

16:38 대간 한 자락을 무사히 마친 백두들의 한가한 한 때!

 

앞으로도 이런 한가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오래도록 뵙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좀 더 노력하고

스스로 여유롭고 안전한 산행을 즐기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듯!

 

저도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산행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