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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간남진 27차(버리미기재~늘재) : 한여름날 대간 최대의 직벽암릉구간 완주 y

by 재희다 2014. 7. 13.

산 행  지 : 백두대간 27차(버리미기재~늘재)

산 행  일 : 2014. 07. 12.(토)

산행코스 : 버리미기재 ~ 곰넘이봉 ~ 불란치재 ~ 촛대봉 ~ 대야산 ~ 밀재 ~ 고모치 ~ 조항산

              ~ 갓바위재 ~ 청화산 ~ 늘재 (거리 15km)

산행참가 : 17명 (익주에 홀로 산행)

 

<산행코스>

 

 

 

03:50 버리미기재 속리산국립공원 감시초소 앞에다 버스를 주차하다니, 백두들의 배짱이 제법 두둑해졌나 보다.

새벽 3시 반, 기사님의 점등으로 잠에서 께어나 산행 준비를 마치고 시원해진 밤공기에 몸을 맡기며 스트레칭을 한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국공파는 금전적 보상을 얻으려 단속을 하는 노력하는 자이고,

대간꾼은 즐기는 자에 해당되는데...

어찌 국공파가 대간꾼에 미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열 포졸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막지 못할 일이라면 양성화하여 공원의 동식물도 보호하고,

범칙자 양산도 막는 방향으로 고려하심이 좋아 보이는데...ㅉㅉ

 

 

03:53 산행금지구역이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해 놓은 철망을 넘어 산행을 시작한다.

 

 

04:21 벌써 헬기장을 지나야 할 시간인데, 숲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알바에 열중하고 있는 듯!

 

 

04:29 짧은 알바(약20분 정도)를 마치고, 헬기장봉에 도착하여 잠시 여유를 찾는다.

 

 

04:47 드디어 본격적인 백두대간 최고의 암릉구간이 시작되는가 보다.

 

사실 대간길에서 가장 심한 암릉구간을 꼽으라면,

1. 속리산 구간의 밤티재 ~ 문장대 사이.

2. 대야산 구간의 곰넘이봉 ~ 조항산 사이.

3. 조령산 구간의 깃대봉 ~ 조령산 사이.

를 꼽을 수 있는데, 세 구간 모두 문경과 상주, 괴산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설악산이나 황장산 그리고 신선봉, 희양산 구간 등의 암릉은,

그저 바위산일 뿐이고 위험한 암릉구간이라 할 수는 없을 듯하다.

 

 

04:50 암릉을 우회하여 전망바위에 오르니, 좌측 뇌정산(991m) 너머 동녘 하늘이 밝은 여명을 선보이고 있다.

 

위의 사진 우측으로 용추계곡 우측의 둔덕산(970m)도 조망된다.

 

뇌정산(좌)과 용추계곡 둔덕산(우) 방향 파노라마.

 

지나온 봉우리도 카메라에 담아두고,

 

전망바위를 뒤로한다.

 

 

04:56 돌아본 장성봉 방향.

좌측의 작은 봉우리가 막장봉이고, 우중앙의 큰 봉우리가 장성봉이다.

 

장성봉은 멀리서 보면 장성(長城)을 닮아서 그리 불리워진다고 하는데, 여기서 보니 장성을 닮은 듯도 하다.

 

 

05:01 조그만 암봉을 오르는 백두들.

 

 

05:04 돌아본 암봉.

 

위험한 암릉을 조심조심 지난다.

다음날인 7/13일자 사진에는 이곳에 가느다란 초록 밧줄이 걸려 있는데, 혹 백두들이 설치한 것이 아닌지?

 

 

05:06 집채 같은 바위 아래로 숨을 죽이며 지나간다.

떠드는 소리가 공명을 일으켜 바위를 무너뜨릴 수도 있으니까! ㅋ~~

 

 

05:09 산행금지구역이라 표지기도 잘 보이지 않고, 당연히 밧줄이 있어야 할 곳에도 아무런 안전시설이 없다.

이곳은 조금 부지런한 국공파들이 근무하는 곳인가 보다!

 

 

05:10 멋진 소나무 품에 안겨서 예쁜 포즈를 취한 ~~님.

 

돌아본 북동쪽 장성봉 방향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태양을 잉태한 세상은 이런 모습일 게다.

 

 

05:14 곰넘이봉에 정상을 오르는 백두들.

곰넘이봉 정상은 커다란 바위 위에 있고, 옆으로 우회로가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곰넘이봉 정상에 올라선다.

 

<곰넘이봉(733m)>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암릉 봉우리로, 커다란 암릉 위에 오석(烏石)으로 만든 앙증맞은 정상석이 서 있다. 이 지역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가 백두대간 서쪽으로 넘어가 있어서, 이곳 곰넘이봉을 포함하여 촛대봉 그리고 지나온 장성봉과 막장봉이 모두 온전히 경상북도 문경시에 속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 곰이 넘어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고, 정상 오기 직전의 암릉이 곰의 등처럼 생겼다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북동 방향 장성봉~희양산~백화산~백화산~뇌정산 위쪽으로,

이제 막 어둠을 헤치고 깨어난 태양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하늘 가득 퍼져 나가고 있다.

 

동남쪽으로는 용추계곡이 길게 누워 신새벽의 단잠에 취해 있다.

 

아침을 예고하는 기운들의 합창소리를 담은 파노라마.

 

 

05:18 곰넘이봉 정상석에 맞추어 낮은 자세로 인증을 남긴다.

 

동남쪽 둔덕산 방향을 다시 한번 기억 속으로 갈무리하고,

 

 

05:19 곰넘이봉을 뒤로하고 다음 봉우리인 촛대봉을 향한다.

 

 

05:24 곰넘이봉 내림길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닿을 듯, 말 듯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05:31 우측 괴산 방향으로는 숯가마골이 내려다 보인다.

 

 

05:34 앞쪽으로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에서 가야 할 대야산으로 이어진 대간길을 가늠해 보고,

 

위 사진의 우측, 대야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능선.

 

위 사진의 우측. 괴산군 청천면 방향.

 

보통 대간 능선이 '도'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몇 곳 있는데, 문경 대미산~황장산 구간이 그러하고, 이곳 또한 도의 경계가 대간 능선을 따르지 않고 괴산 쪽으로 일부 들어간 곳이 몇 군데 있다. 위 사진의 숯가마골 계곡이 '도(道)'의 경계가 되어, 숯가마골 북쪽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속하고, 골짜기의 남쪽은 경묵 문경시 가은읍에 속한다. 즉 경북 문경이 대간을 넘어 괴산 쪽으로 깊숙이 넘어 가 있는 모양새다. 그래서 잠시 전에 지나온 곰넘이봉과 가야 할 촛대봉, 그리고 지난 구간 지나왔던 장성봉 등은 온전히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속해 있다.

 

또 위 사진의 우측, 남군자산 방향.

 

위 사진의 우측, 막장봉과 장성봉 방향.

 

위쪽 사진들을 이어서 본 파노라마.

 

 

05:35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범고래가 지키고 있는 전망바위에서,

 

가야 할 대야산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대야산과 그 서쪽의 지능선 조망.

 

터~억 버티고 기다리는 대야산 전체 조망.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곰방 갈터이니!

 

 

05:39 이거 물개바위라 불러야 하는지, 고인돌이라 불러야 하는지...ㅋ

 

 

05:42 미륵바위.

 

<미륵바위(688m)>

일명 촛대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집채 만한 암봉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각선미가 뚜렷한 여인의 몸 한 부분을 닮아서 대간길을 걷는 뭇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바위다. 미륵바위라 부르게 된 연유는 '정면에서 바라보면 미륵부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미륵바위에서 우측으로 돌아 급경사의 암릉 사이로 내려가야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 있었던 로프를 국공파들이 제거하는 바람에 한참을 우회한 후에야 암릉 아래로 내려서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자잘한 암봉들을 오르내리느라 힘드는데, 원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국공파들이아~~~,

'범칙'을 하는 대간꾼들도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백성임을 알라!

 

 

05:53 한참을 돌아 폐헬기장을 지나서 블란치재도 지나게 된다.

 

<불란치재(500m)>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서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 문헌에는 불한령(佛寒嶺), 불원치(佛院峙), 불한현(佛寒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춥지 않은 고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곳의 지형을 보면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의 깊은 안부로, 두 봉우리 양쪽으로는 다시 장성봉과 대야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한겨울에도 바람이 따스하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또한 ‘불이 났던 고개’라고 하여 불란치재라 불린다는 설도 있는데, '불이 났던 고개'라는 유래보다는 '불한령(不寒嶺)'에서 유래됐음이 그럴싸해 보인다.

 

 

06:11 급한 오름길을 올라 촛대봉에 도착한다.

 

<촛대봉(661m)>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봉우리로, 불란치재에서 대야산 오름 능선길에 있는 평범한 봉우리다. 등로의 한켠에 앙증맞은 정상석만 있을 뿐, 별 특징이 없는 봉우리다.

 

 

토끼들이 떠난 자리에서 거북이들만이 촛대봉 인증을 남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대야산의 우람한 모습에 기가 살짝 죽기도 하지만,

 

 

06:13 저 대야산 정상에서는 또 뭣이 있을까 한번 올라가 보기로 한다.

 

 

06:15 촛대봉 내림길도 역시나 가파른 암릉 내림길이 이어진다.

 

암릉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대야산.

 

우람한 대야산 전체 파노라마.

 

 

06:17 촛대재를 향해 암릉을 내려서는 백두 후미들.

 

 

06:26 촛대재 우측 용추골 방향.

 

<촛대재>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용추골에서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 상관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촛대봉 아래에 있는 고개라서 촛대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일반 등산객들이 용추골에서 월령대를 지나 대야산을 오를 때 주로 이곳으로 많이 올라오는지 좌측 용추골 방향으로는 안내산악회의 표지기가 많이 보이지만, 우측 상관평으로 가는 길은 거의 길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대재에는 몇몇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힘든 산행에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자연쉼터가 있다.

 

 

06:27 촛대재를 뒤로하고 대야산 오름길을 시작하는 백두들.

 

촛대재를 지나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야산 오름길 등로는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 국공파들이 한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문경시에서 정비를 한 듯하다.

 

 

06:42 대간길 최고 난이도의 직벽 암릉을 앞에 두고,

악명? 높은 대야산 오름 구간을 시작하려는 백두들의 다짐이 엿보인다.

 

 

06:55 드디어 대간길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대야산 직벽 구간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발 디딜 곳이 있는 초반은 좀 나은 편이다.

아래로는 아득한 낭떠러지니, 뒤돌아 보지 말고 평소의 직진본능에 순응하여 오른다.

 

직벽 암릉을 시작하며 돌아본 괴산군 청천면 방향.

 

 

06:59 직벽을 한 계단 올라, 대야산에서 상관평으로 이어지는 지능선에 솟아난 암봉을 당겨본다.

 

대야산 직벽 구간은 총 100m가 넘는 높이를 가지고 있는데 3단으로 되어 있다. 직진본능을 가진 백두들이 조심스레 앞만 보고 오르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지만, 마음 약한 내가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하다.

 

내려다본 불란티골 방향.

 

직벽을 오르며 내려다보면 안 되는디~~~!

아찔한 직벽을 내려다보니 한여름의 더위가 싹 가신다.

이거 이리도 애러운 백두대간 그거이 누가 만든 겨?

 

 

07:08 높고 높은 직벽 암릉을 로프 한가닥에 의지하여 오르면,

 

 

07:11 새벽에 출발하여 지금까지 걸어온 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새벽안개에 묻혀 있는 장성봉과 희양산은 물론이고, 백화산까지의 대간 능선이 아련이 가늠된다.

 

돌아본 장상봉 방향 파노라마.

 

당겨본 장성봉과 막장봉 능선 뒤로, 악휘봉과 시루봉, 칠보산 능선도 가늠된다.

 

희양산과 백화산 방향 조망.

 

대야산 직벽 암릉을 올라서 돌아본 북쪽 방향 파노라마.

 

 

07:12 직벽을 통과한 쾌감이 전해 온다.

 

사진을 보니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떠 오른다.

고락불이(苦盡不二)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인데, '커다란 고통을 이겨내면 큰 즐거움이 따른다'는데, 오늘 백두들이 대야산을 오르며 이겨낸 어려움만큼 커다란 즐거움도 함께 했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서 선하다.

 

 

07:15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직벽의 암릉을 통과한 보상으로,

이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한다.

 

문경시 가은읍의 산들 1.

 

문경시 가은읍의 산들 2.

 

가야 할 청화산으로 이어진 능선도 조망된다.

 

장성봉에서 백화산, 둔덕산을 거처 청화산까지의 파노라마.

 

 

07:16 대야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장성봉 방향.

 

둔덕산(좌)과 청화산(우측 끝) 자락 방향.

 

대야산 정상 남쪽 귀퉁이에는 개미할기의 발을 닮은 바위가 이채롭다.

 

다시 한번 희양산 방향의 지나온 대간길을 점검하고,

 

파노라마 사진으로 담아 둔다.

 

누군가가 산행을 '인생'에 비유한 것이 생각난다.

산행을 하면서 배낭을 지고 가듯,

누구나 업보를 등에 지고 생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숨이 턱까지 차 오르고,

높은 암벽을 오르며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산행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고 뒤돌아 온 길을 조망해 보면,

나의 발자취가 이리도 아름다운 강산에 아로새겨져 있음에 감격해 한다.

부디 우리 백두회원들 모두 다 함께 산행의 끈을 부여잡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

 

 

07:17 대야산 정상 남쪽 전망바위에는 먼저 도착한 백두들이 환희에 차 있다.

 

조항산과 정화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백두는 누구?

 

 

07:19 이제 모든 백두들이 대야산 정상에 모였다.

 

<대야산(大耶山, 930.7m)>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와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동서(東西)에 신선이 내려와 노닌다는 내외(內外) 선유동(구곡)과 용추계곡을 거느린 잘 알려지지 않은 명산이다. 원래의 이름은 선유산(仙遊山)이었다고 한다.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문경조 등에는 대야산(大耶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동여지도 문경조에는 대치산(大治山)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예전에 홍수가 났는데 온 천지가 다 잠겨버리고, 정상 봉우리만 세숫대야만큼 남아 있다고 해서 대야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정상이 세숫대야를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문경 쪽으로는 선유계곡과 용추계곡, 괴산 쪽은 화양골이 자리 잡고 있는 산이다. 대야산 동쪽은 선유골로, 옛 시인과 묵객들이 앞을 다투어 보고지고를 논하며 詩想을 읊조린 곳으로 유명한 곳이며,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에 올라 있다.

 

 

오늘 산행의 1/3 지점인 대야산 정상에 올라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대야산 정상에서 식사를 하는 백두들.

그런데 권법사님 오른쪽 빰이 평소와 다른데... 뭔 일이?

 

한여름날 해발 일천 미터의 고지에서, 서늘한 아침 공기에 말아먹는 아침밥이란...

거기에다 사방이 시원스레 트인 조망은 무엇을 먹어도 맛날 듯하다.

 

이런 조망을 가진 식당에서 조찬 모임을 갖는 백두들은 행복한 사람들!

 

 

07:36 느긋한 아침식사를 하면서도 눈길은 먼데 어느 봉우리, 어느 골짜기를 살핀다.

 

백두들의 7월 둘째 주 토욜 조찬 모임 모습.

 

대야산 정상에서 용추계곡을 감싸며 둔덕산으로 이어진 능선 조망.

 

오늘 가야 할 조항산과 청화산이 차례로 조망된다.

 

조항산, 청화산 방향 파노라마.

 

대야산 내림길 능선에 있는 암릉도 미리 당겨 본다.

 

 

07:38 대야산 정상에서의 조찬을 마무리하고, 남은 여정을 점검하는 백두들.

 

중대봉 갈림길이 있는 암봉 조망.

 

대간 능선에서 우측으로 분기된 중대봉 방향.

 

대간에서 우측 중대봉으로 이어진 능선 파노라마.

 

중대봉에서 북쪽 관평리 방향으로 이어진 지능선 조망.

 

괴산군 군자산 방향.

 

북서쪽 숯가마골 방향 조망.

 

장성봉 방향 조망.

 

희양산 방향 조망.

 

위의 사진들을 이어서 찍은 파노라마 영상.

 

 

07:42 대야산 정상에서 식사를 마친 백두들이 팔방의 조망을 즐긴다.

야~ 한국에는 산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런데 똑 같이 생긴 산은 하나도 없네..

그래서 우리가 매번 산을 다니게 되지 않은가! 라고...

 

장성봉과 희양산 방향.

 

선유구곡을 품은 용추계곡이 아련히 가라앉아 있다.

 

<용추계곡>

용추계곡은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하트 모양의 비늘 자국이 소(沼)의 양 옆으로 선명히 남아있는 용추폭포가 있으며,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이 달빛에 비친다는 월영대, 무당소 등 온갖 형상의 암반 위로 얼음처럼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흘러, 눈길이 가는 곳마다 탄성이 절로 나는 곳이라는데, 오늘은 짙푸른 녹음 속에 가린 모습을 짐작만 해 본다.

 

둔덕산 방향.

 

장성봉, 희양산, 백화산, 용추계곡, 둔덕산을 한 장에 모으면...

 

 

07:45 백두들이 가야 할 조항산, 청화산을 배경으로 전망바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07:47 조금 더 머물고 싶지만, 대야산 인증을 남기고,

 

대야산 정상석만 홀로 두고 조항산을 향한다.

 

 

07:49 조항산을 향해 대야산을 내려서는 백두들.

 

 

07:51 대야산의 주인인 바위와 소나무에 의지해,

조그마한 암봉들을 오르내리며 대간길을 이어간다.

 

바위를 비집고 들어선 소나무를 벗 삼아,

한가닥 밧줄에 의지해 중대봉 갈림길 봉우리로 향한다.

 

 

07:53 중대봉 갈림길 봉우리로 올라서는 백두들.

 

 

07:54 대야산 내림길은 작은 암봉을 연속적으로 오르내리며 이어진다.

 

암봉을 지나면 또 더 큰 암봉이 앞을 막고 선다.

그래도 앞에 보이는 저 중대봉 갈림길 암봉을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니 기대하며...

 

 

07:56 중대봉 갈림길 암봉에서 바라본, 괴산군 청천명 삼송리 화양골 방향.

 

화양골과 우측 중대봉 방향 파노라마.

 

돌아본 대야산 정상에는 아쉬움이 더 많은 백두들이 아직도 머물러 있다.

 

동남쪽 둔덕산 방향.

 

중대봉 갈림길 봉우리에서 좌측의 대간길 방향으로 길을 잡자,

가야 할 조항산과 청화산이 올 테면 와 봐! 하고 있다.

이를 어이할꼬!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가야 할 능선에 있는 대문바위와 송이바위가 지척이다.

 

중대봉 갈림길 봉우리를 내려서며 돌아본 대야산.

기다려라 아주 맑은 가을에 한번 더 만나러 갈터이니!

 

대야산에는 거북바위, 대문바위, 코끼리바위, 호랑이 바위, 할매통시바위, 구멍바위 등등 기묘한 바위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온 산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07:58 이 바위는 코끼리바위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바다사자바위'처럼 보이는데...

옛날 문경 사람들이 바다사자를 본 적이 없어서 그리 지었나 보다..ㅋㅋ

 

중대봉아 너도 잠시 기다려라.

가을쯤에 다시 만나러 갈 터이니!

 

밀재를 향해 가파른 암릉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08:04 밀재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한 송이버섯 바위가,

능선과 어울려 날개를 펼쳐 막 비상하려는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

 

가야 할 대간 능선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대문바위와 송이버섯 바위가 경이롭다.

 

 

08:11 다시 한번 지나온 대야산 방향의 암릉을 돌아보고,

 

고래바위를 지난다.

 

고래바위 옆으로 이어진 바위 슬로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회장님.

 

두 분이서 양쪽의 바위를 버티고 힘겨운? 포즈를 취한다.

 

 

08:16 고래바위라는데.., 이쪽이 머리일까?

굴러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ㅋㅋ

 

 

08:18 이 바위의 이름은 대머리 바위?

 

독수리 머리를 닮은 송이버섯 바위.

 

밀재로 내려서기 전, 경이로운 송이버섯 바위를 한번 더 담는다.

 

 

08:22 좌측 용추골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나무로 바쳐놓지 않으면 문이 닫혀 버린다는 대문바위를 지난다.

 

돌아본 화양골 끝자락에서 이어진 조왕골로 드리워진 암릉.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명칭을 떠올려 보며 급경사 암릉을 내려가니,

 

 

08:33 이내 밀재에 도착한다.

 

<밀재(蜜峙 662m)>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용추계곡에서 월영대를 지나 괴산군 청천면 농바위골을 잇는 고개다. 나무가 우거져 밀림을 이루고 있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밀림을 헤치고 가야 한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원래는 밀목령(密木嶺)이라 불렀다고 한다.

버리미기재에서 이곳 밀재까지는 비탐구간이라 그런지, 북진 때 있던 이정표와 표지기들을 모조리 다 없애 버렸다. 비탐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대야산 정상은 항상 등산객들로 북적거리는 곳인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생태계 보호라는 명제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광객 유치 명분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밀재 용추골 방향.

이곳에서 용추골을 지나 아래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가은읍 갈전리는 후백제를 개국한 견훤의 고향이다.

 

밀재 화양골 농바위골 방향.

 

 

08:35 밀재를 뒤로하고 849봉을 향한 오름길을 시작하는데, 밀재를 뒤로하자 이내 암릉이 다시 시작된다.

 

 

09:00 집채만한 바위 옆을 조심조심 지난다.

 

커다란 바위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데,

 

이 바위의 이름이 바로 집채바위다.

 

 

09:09 이 꽃의 이름을 아시면 댓글로 부탁한다고 했는데,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각시원추리'라 한단다.

(정답 : 원추리. 선자령 야생화 사진에서 찾음)

 

아직도 가야 할 조항산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09:26 마귀할멈통시바위 갈림길.

 

<통시바위 갈림길>

마귀할멈 통시바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려서면 고모치 가는 길이고, 좌측 통시바위 쪽으로 계속 가면 가은읍에 있는 둔덕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다. '통시'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변소' 즉 화장실을 뜻하는 단어로, 마귀할멈이 응가를 할 때 아무데서나 하지 않고 통시바위에서 하는가 보다. 그리고 마귀할미 통시바위를 조금 더 지나면, '손녀 마귀할멈 통시바위'가 있는데, 마귀할멈의 가족이 여럿 있나 보다. 나중에 시간이 많아지면 마귀할아범과 손녀마귀할아범의 통시도 찾아봐야겠다..ㅋㅋ

 

 

09:48 고모치 도착.

 

<고모치(古毛峙)>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에서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바로 아래에는 고모치 샘이 있고, 고개 가운데에 커다란 돌무더기가 있다. 고모치의 어원은 고치, 고치령, 고모령, 곰치, 고모치, 고미재 등이 있는데, 이 중에 고치나 고치령은 높고 험하다는 뜻으로 고치(高峙)의 개념으로 쓰이고, 고모령, 곰치, 고무치, 고미재 등은 곰고개 또는 곰의 고개라는 개념으로 분류되어 웅치(熊峙)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고모치의 유래와 관련된 옛 전설에 의하면,

옛날 궁기리에 살던 고모가 삼송리에 사는 조카에게 갔다가 저녁 늦게서야 집으로 되돌아 갔다. 때는 겨울철이라 마침 폭설이 엄청나게 내리고 추운 날씨였다. 고모가 떠나고 폭설이 내리자 조카는 아무리 생각해도 늦은 밤길과 추운 날씨 속에 재를 넘어간 고모가 걱정이 되어 고갯길로 뒤따라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고모는 고갯마루 성황당 근처에서 탈진한 상태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조카는 고모를 부축하여 함께 고개를 내려가려고 시도했으나, 심한 폭설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둘 다 얼어 죽었다는 안타까운 예기가 전해져 오면서 고모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모샘이 1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되어 있어서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있는 고모샘으로 간다.

 

아직 햇볕이 뜨겁지는 않지만 수많은 수직의 암봉들을 오르내리느라 가져온 물을 거의 소비한 동료들은 모래와 낙엽 조각이 뒤석인 고모샘의 물도 마다하지 않고 달게 마신다.

 

 

10:00 고모치를 지나자 등로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고모치에서 조항산까지 1.4km의 짧은 거리를 오르며 고도를 200m 이상 극복하여야 하는지라, 진한 땀냄새를 풍기며 오르는데 등로 한켠에 핀 야생화가 고생하는 백두들을 응원해 주고 있다.

 

하늘나리(선자령 산행기록에서 찾음)

 

 

10:19 의상저수지 갈림길.

밀재 이후로 보이기 시작한 안내판이 무척이나 반갑다.

 

이곳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가면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의상저수지(삼송리)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가야 조항산 가는 길인데, 우측으로도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달려있어 조그만 방심하면 알바하기 십상이다. 이정표의 화살표를 정확히 보지 않고 표지기만 보면 그냥 알바를 하게 된단다.

 

자~ 힘들어하는 백두들 응원 시~작!

짝~짝~짝짝짝. 세 장씩의 꽃잎을 가진 봉우리 일곱 송이가 호위하고 이 꽃은?

(정답 : 산수국)

 

 

10:31 조항산 직전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우측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방향의 지능선 조망.

 

조항산 오름길에 돌아본 598봉 방향의 지능선.

 

지나온 고모치와 마귀할미통시바위가 있는 사애봉.

그리고 대야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대야산 방향 파노라마.

 

 

10:33 조항산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대야산 방향으로,

걸어온 대간 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대야산과 우측 멀리로 장성봉이 조망된다.

 

고모치 건너편으로 오늘 들르지 못한 마귀할멈통시바위가 있는 사애봉과 그 아래 위치한 고모치 광산이 보인다.

 

마귀할멈통시바위가 있는 사애봉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둔덕산 방향의 능선 아래로,

고모치광산(채석장)의 상흔이 눈에 거슬린다.

 

둔덕산(970m) 모습.

 

조항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야산, 장성봉 방향 파노라마.

(글씨가 작아서 보이지 않으면 클릭하여 확대하면 됨)

 

 

10:35 조항산 정상에 도착하여 쉼을 하는 백두들.

 

 

10:40 조항산 정상 인증은 두 분이 대표로.

손 총무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이 훨씬 좋아 보이니, 앞으로도 쭈~욱.

 

<조항산(鳥項山, 951m)>

문경시 농암면과 괴산군 청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마귀할멈통시바위에서 바라보면 갓바위봉이 새의 부리로, 조항산이 새의 목덜미로 보이는 지세라서 조항산(鳥項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 천재지변으로 일어난 홍수 때, 이곳 정상이 '물에 떠 있는 새의 목덜미를 닮았다'하여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또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주민들은 옛부터 이곳 조항산을 갓바위봉이라고 부르는데, 옛날 천지개벽으로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정상 꼭대기만 ‘갓(冠帽)’만큼 물 위에 나와 있었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란다. 그리고 궁기리에서 이 산을 바라볼 때, 정상이 M자 형으로 봉우리가 두 개로 보인다고 한다. 실제 봉우리 중 좌측 봉우리가 갓바위봉보다 낮게 보인다고 한다. 우측으로 보다 높게 보이는 암봉을 갓바위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10:46 조항산에서 청화산으로 이어진 가야 할 대간 능선을 가늠해 본다.

 

당겨본 조항산 바로 앞의 암릉.

 

청화산 방향으로 이어진 대간능선 파노라마.

 

 

10:48 조항산을 뒤로하고, 거친 암릉을 내려선다.

 

 

10:50 앞쪽 커다란 암봉으로 백두들이 오르고 있다.

 

 

10:52 거칠은 암봉을 올라서니, 조항산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 너머로 사애봉과 대야산이 살짝 보인다.

 

돌아본 조항산 모습.

 

돌아본 조항산 방향 파노라마.

 

가야 할 청화산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이 뚜렷이 가늠된다.

이제 저 앞에 있는 청화산만 넘으면 오늘의 목적지인 늘재가 있는데...ㅉ

 

좌측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 방향 조망.

 

<궁기리>

후삼국시대에 후백제를 개국한 견훤이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하고 야망을 키웠던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궁기리의 옛 지명은 고모리(古毛里)였고, 마을에서 넘나들던 고개가 조금 전에 지나온 고모치이다. 근방에는 ‘고모’라는 지명이 많은데, 이는 새가 높은 곳에서 춤을 춘다는 의미인 고무(高舞)의 발음이 변음되어 고모라 불렀다고도 한다. 고모(古毛), 고무(高舞), 조항(鳥項)등은 괴산 방향의 삼송(三松)이라는 지명과 함께 모두 새와 관련된 지명이다.

궁기(宮基)는 우리말로 궁터라는 뜻으로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서 궁을 짓고 군사들을 훈련시킨 데서 유래된 지명이며, 이터골, 옛터골, 궁터 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당초 문경현의 자료에는 궁기리라는 지명은 없고 고모리가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모리와 마암리(馬巖里) 일부를 병합해 농암면으로 편입시켰다고 한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 중에는 문경에 소재한 주흘산(1,106m), 황장산(1,077m), 희양산(999m), 대야산(930m) 등 4곳이 포함되어 있다. 문경의 산들은 호랑이의 등뼈같이 튼실한 바탕 위에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런 골짜기와 계곡에서 모여진 물이 영강(潁江)으로 흘러들고, 상주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까지 합하여 낙동강으로 이어간다. 지난봄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달릴 때, 이화령을 넘으며 함께했던 영강의 맑고 깨끗한 물줄기와 강의 모습이 문득 생각난다.

 

 

10:56 다시 한번 청화산 방향의 대간길을 가늠해 보고,

 

절벽 좌측 아랫쪽 계곡, 궁터마을이 있는 궁기리 계곡 건너편으로 연엽산(775m)이 오라고 유혹한다.

 

청화산으로 이어진 대간능선.

 

백악산(858m) 방향.

 

삼송리 방향.

 

연엽산, 청화산, 백악산, 삼송리 방향 파노라마.

 

좌측 아래로 궁기리 궁터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10:57 돌아본 조항산 남동쪽 절벽 암릉이 웅크린 자자를 닮았다.

 

 

11:00 돌아본 조항산.

 

 

11:10 갓바위재로 향하는 내림길에서 잠시 쉼을 하는 백두들의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뭔 일 이래유~~

 

 

11:21 헬기장을 지나면,

 

 

11:23 이내 갓바위재에 도착한다.

 

<갓바위재(766m)>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에서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갓바위란 지명은 조항산의 한 봉우리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지나온 조항산과 가야 할 청화산 사이에 있으며, 고모치가 삼송리로 편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삼송리에서 이 고개를 넘어 농암면 소재지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갓바위재보다는 고모치를 주로 많이 이용했는데, 고모치는 지금 대간 산꾼이나 이용하는 고개이고, 이곳 갓바위재는 의상저수지에서 오르는 일반 등산객들의 발걸음으로 등로가 뚜렷하다.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갓바위재 표지기.

 

 

11:28 801봉 직전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조항산 조망.

 

조항산 우측 멀리로 둔덕산도 조망된다.

 

돌아본 조항산과 둔덕산 방향 파노라마.

 

 

11:35 801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 할 858봉과 청화산 방향 조망.

 

우측 아래로 의상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801봉 정상에서 잡은 파노라마.

좌측이 정화산이고 우측이 조항산이다.

 

 

11:38 궁기리와 궁터마을 조망.

 

궁기리가 속해 있는 문경시 가은읍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태어난 고향으로, 견훤과 얽힌 전설이 많은 곳이다. 궁기리는 견훤이 군사를 모아 놓고 훈련하던 곳이라 했고, 궁기리 아랫마을 말바위는 견훤이 야생마를 천하 명마로 길들여 타던 중 말과 화살 중에 누가 빠른지를 겨루었는데, 아차산으로 활을 쏘고 말을 몰아 도착했으나 화살이 없자, 말이 졌다는 성급한 마음에 말의 목을 치자 그때서야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바위 틈에서 피어난 야생화는?

(답 : 돌나물?)

 

 

11:40 801봉 정상에서 청화산을 배경으로.

 

조항상을 배경으로.

근데 표정이 영 심각한데, 뭔 일 있어요?

 

858봉(우측)을 지나 청화산으로 이어진 대간 능선을 가늠해 보고,

 

 

11:54 858봉으로 향하는 등로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연엽산(중앙 멀리)과 시루봉(우측 뾰족봉) 방향 조망.

 

 

11:55 858봉 암릉을 오르는 백두들.

 

 

11:56 긴~ 산행으로 무척 힘이 드네....ㅉ

 

 

11:59 좁은 암괴 사이로 올라서면 다시 숲길이 이어지고,

 

 

12:28 나무로 둘러 싸여 조망이 없는 858봉을 지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청화산 방향.

 

 

13:11 시루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백두대간과 십승지 우복동천 환종주 구간이 겹쳐지게 된다. 속리산을 기준으로 서쪽 산군의 종주코스는 충북알프스 코스이고, 동쪽 산군의 중주 코스는 우복동천 코스다.

 

<우복동(牛腹洞)>

우복동은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서쪽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병풍바위에 막혀있고, 북쪽은 백두대간 고개인 늘재를 넘어야 괴산으로 연결되며, 남쪽 역시 백두대간 상에 있는 고개인 갈령을 넘어야 상주로 갈 수 있다. 고개를 넘지 않는 유일한 통로는 동쪽 방향 문경으로 가는 길인데 가파란 벼랑이 있는 쌍룡계곡이 있다. 예전부터 접근조차 하기 힘든 아주 깊은 골짜기의 마을이다. 이 우복동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다 하여, 이 땅의 민초들에게 이상향으로 여겨온 십승지(十勝地)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우복동의 명칭은 호리병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지형을 닮아 붙여진 지명으로, 조선 숙종(19대) 때 청담 이중환 선생이 저술한 택리지(擇里志)에 '우복길지(牛腹吉地)가 청화산에 있다’하여 ‘우복동’이라 불리며, 이중환 선생의 호가 청담(淸潭) 또는 청화산인(淸華山人)이라 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우복동천(牛腹洞天)’이란 명칭은 조선의 명필로 이름을 날렸던 봉래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 우복동의 중심 용유동 길가에 비스듬히 누운 바위에 ‘洞天(동천)’이라 새긴 것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동천이라는 뜻은 하늘의 동네라는 의미일텐데, 민초들의 이상향인 우복동을 함부로 밝힐 수 없어 양사언이 지명을 밝히지 않고 ‘洞天’이라고만 썼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들도 우복동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그의 저서 다산 산문집에 수록된 '우복동가(牛腹洞家)’라는 싯귀에 은유적으로 꼬집어 놓았다고 한다.

 

올 가을에 충북알프스를 걷고, 다음에 언제가 꼭 우복동천길도 걸어 봐야겠다.

 

시루봉 갈림길 이정표.

 

 

13:22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청화산에 도착한다.

 

<청화산(靑華山, 984m)>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죽 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게 보인다고 해서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擇里志”에서 ‘앞, 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라고 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고 극찬을 한 곳이다. 청화산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마을 이름들도 청산리 또는 청화봉으로 불리고 있으며, 정자 이름까지도 청화정, 청화연이라 부른다. 청화산은 본디 북쪽 골짜기 산아래 청운동 마을과, 남쪽 방향의 신화동 마을 동쪽으로 화실이란 마을이 있어 자연스럽게 화산이라 불렀는데,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이 스스로의 호를 ‘靑華山人(청화산인)’으로 하면서 청화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고로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은 약 1,000년 전 고려의 건국이념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지리적 개념으로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이가 이중환이라고 한다.

 

 

청화산 인증은 김 작가님 홀로!

 

 

13:23 청화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안도의 쉼을 한다.

 

 

13:29 잠시 내려서서 오늘 점심을 예약해 놓은 청화산 농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13:30 헬기장에서 바라본 시루봉 방향.

우측 아래로 용유리(우복동) 마을도 살짝 보인다.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은 청화산 일대를 복지(福地)라고 했는데, 청화산 아래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마을은 오래전부터 풍수적 측면에서 실재 '소의 뱃속(牛腹洞)'처럼 안온하다는 십승지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시루봉~청화산~늘재~문장대~천왕봉~형재봉~갈령~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뿐이니, 이 일대가 바로 우복동(牛腹洞)이라는 것이다.

 

그리 유명한 분들이 칭송하는 청화산도, 조선의 십승지 중 한 곳이라는 우복동도, 버리미기재에서 10시간 이상 걸어온 백두들에게는 그리 심금을 울릴 장소로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미련 없이 청화산 정상부를 뒤로하고 늘재를 향한다.

 

 

13:51 연무가 끼지 않았으면 속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듯한 조망처에,

신선의 좌대로 쓰였음직한 사각형 돌의자가 있다.

 

돌아본 청화산에서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13:54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속리산 주능선 방향 조망.

 

늘재와 백악산(855m) 방향 조망.

 

속리산 천왕봉, 백악산 방향 파노라마.

 

오늘 만난 수많은 밧줄 중에서 마지막일 듯한 밧줄을 타고 내려서면,

 

 

14:08 '정국기원단'이라는 오석 비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정국기원단(精國祈願壇)>

비문(碑文)에는 '白頭大幹 中元地(백두대간 중원지)' 등의 글귀가 새겨져 있고, 돌로 만든 커다란 향로 2개가 양쪽으로 서 있다. 정국(精國)이란 용어는 조용하고 편안한 나라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백두대간 중원지라 한 것은 남한에서 동서남북의 정중앙의 뜻이 아닐까 한다. 또한 '백의민족 성지 부실기조 삼파수(白衣民族 聖地 不失基祖 三巴水)'라 적혀있다. 부실기조란 백의민족인 우리 조상들의 얼을 잃지 않겠다는 뜻이며, 삼파수란 세 갈래 물줄기의 근원지란 뜻으로 민족 뿌리의 성지란 뜻이다. '정국기원단'은 나라를 평안하게 해 달라는 기원단과, 의병장 이강년 장군의 공덕비를 겸하고 있다.

 

의병장 이강년은 조선말기 의병장으로,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용양위부사과로서 선전관이 되었으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을 하고 낙향하였다. 그 후 1885년 명성왕후 민비가 시해되자, 1896년 고향인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 등 부정부패한 관리들을 효수(梟首)하고, 제천의 의병장 유인석(柳麟錫)과 합류하여 유격장이 되어 문경새재, 조령 등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한.일 신협약으로 조선군대가 해산을 당하자, 단양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충주 등을 공격하였고, 이어서 싸릿재 유치(柚峙), 죽령 등에서 전과를 올리며 북진을 하여 1908년 가평전투에서 승리한 뒤, 적의 기습으로 체포되어 순국하였다고 한다.

 

 

14:26 용유리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고,

 

임도 옆 등로 한켠에는 눌재까지 4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14:29 잠시 뒤에 만난 이정표에는 청화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오히려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14:31 이내 늘재에 도착한다.

 

늘재 고갯마루에는 백두대간 비석과 성황당 유래비가 있다.

 

성황당 유래비 뒷면.

 

성황당 유래비 앞면.

 

<성황당 유래비>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은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 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 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 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 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를 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깃점이며, 고대의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高僧)과 명장(名將)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 후에 의사(義士)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 대장 이강년(李康年) 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 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여 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充渙)이 유지를 받들고, 이상배(李相培) 국회의원과 김근수(金瑾洙) 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堂)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이 되게 하여, 백두대간의 영기(靈氣)를 실감 나게 하였다. 이에 그간의 유래의 유래와 성황당 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는 바이다.

 

성황당 전경.

 

 

14:34 도로 건너편 분수령 표지판 우측으로 다음구간 들머리가 보인다.

 

<늘재(371m)>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와 용유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9번 국도가 지난다. 고개 위에 느릅나무가 있어서 붙어진 지명인데, 또 다른 표현은 양쪽에서 올라오는 고개가 완만하여 늘어진 고개라 하여 늘티 또는 늘고개, 늘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돌아본 늘재 날머리와 백두대간 비석.

 

서쪽 괴산 방향.

 

늘재 이정표.

 

 

14:37 버스가 주차된 청화산쉼터 식당으로 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어머니 사랑 동산'이 조성되어 있다.

 

 

14:43 점심 예약이 되어 있는 청화산농원 식당에 도착하니,

 

앞마당 한켠에 애마가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

식당 세면장에서 긴~ 산행으로 지친 몸을 말끔히 씻고,

 

 

15:21 션한 소맥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어 본다.

 

더운 날씨에 긴~ 암릉 산행하느라 고생 많으셨슴다!

 

 

16:36 많은 야그 거리들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한다.

 

산행기 작성의 밑거름을 많이 만들어 주신

김 작가님께 감사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한여름 암릉 산행에 고생하신

백두회원 여러분께도 무한한 갈채를 보내며,

 

아울러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산행에 참가하지 않은 제가 산행기록을 남기다 보니

실제 산행의 생생한 분위기와 여러 에피소드,

그리고 산행 중 발생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음에 대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제가 산행을 하고서 후기를 남기더라도

모든 일들을 알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따라서 산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나 감회 등에 대한 이야기를 댓글로 달아 주시면,

먼 훗날 다시 읽게 될 경우에 훨씬 생동감 있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더운 날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