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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간남진 28차(늘재~갈령삼거리) : 속리산의 속살을 느끼며 걸은 대간길 y

by 재희다 2014. 8. 24.

산 행 지 : 백두대간 28차(늘재~갈령삼거리)

산 행 일 : 2014. 08. 23.(토)

산행코스 : 늘재~밤티재~문장대~신선대~비로봉~천왕봉~피앗재~형재봉~갈령삼거리 + 갈령

(거리 19km)

산행참가 : 15명.

 

<산행코스>

 

 

이번이 걸으려는 대간남진 속리산 구간은 여러 제약조건이 있는 구간이다. 첫째 늘재~문장대 구간은 산행금지 구간이어서 국공파의 단속을 피해 산행을 해야 하고, 둘째로 특히 밤티재에서 문장대로 오르는 구간은 백두대간 최고의 암릉구간임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를 켜지 않고 산행을 해야 하며, 셋째로 문장대까지는 오전 8시 이전에 도착하여야 그나마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재에서 늘재행 애마에 올라 잠시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는데, 휴게소에 들르나 싶어서 눈을 떠 보니 버스는 벌써 늘재 고갯마루에 도착해 있다. 원래 늘재 아래 청화산농원식당 마당에 주차를 하고, 식당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는데, 하는 수 없이 야외 노천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남자들이야 별무 상관이 없지만, 아가씨들은 왠지 거북할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우려스럽기도 하다.

 

 

03:25 어찌 되었던지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밤안개 자욱한 늘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03:30 늘재 들머리를 알리는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 표지판.

들머리는 분수령 표지판 좌측에 있다.

 

<늘재(380m)>

경북 상주군 화북면 장암리와 입석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비탈이 길게 늘어진 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밤안개까지 자욱한 어둠속이라 주위 분별이 되지 않는데,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을 나타내는 야광 간판이 대간꾼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 준다.

 

분수령 표지판 옆 목책을 넘어 속리산을 향한 산행을 시작한다.

 

 

04:01 이곳은 속리산국립공원 지역의 비법정탐방로라서 그런지 표지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오름길을 한참 동안 치고 오르면 능선 봉우리에 올라서고, 갈림길에서 양쪽 모두 대간길이다.

 

 

04:18 지도상 629봉쯤으로 짐작되는 봉우리를 지나는데,

표지기도 없는 깜깜한 야간산행 길에서 만나는, 희미한 사람의 흔적조차도 반갑다.

 

 

04:30 다들 그러하듯이 696봉으로의 알바는 기본인가 보다.

앞사람을 따라 무심코 걷다 보니, 696봉 직전에 좌틀하여 밤티재로 가는 길을 놓쳤다.

이곳에서 북쪽 입석리 방향으로 조망이 괜찮은 곳인데,

안개 자욱한 한밤중이라 되돌아 선다.

 

 

04:37 다시 능선 갈림길로 돌아나와, 급경사의 사면길로 들어선다.

이곳은 알바 가능성이 높아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알바를 했다.

산행이란 늘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알바도 산행이라지만, 여러 명이 함께하는 산행이라 좀 더 주의해야겠다.

 

 

04:53 급경사의 암릉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옛날 대간 북진길에서도 이곳을 신새벽에 통과하는 바람에,

속리산 방향 조망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 남진길에서도 밤에 통과하게 되어,

속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보지 못하는 게 무척이나 아쉽다.

 

 

04:53 안부로 내려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분위기를 진정시킨다.

짧은 알바와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서느라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무명 묘지가 있는 밤티재 직전 봉우리 바로 전에, 직진의 뚜렷한 길과 봉우리로 가는 우측 길이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직진길로 가면 동물이동통로로 가는 길이라, 좌측으로 가도 대간 길이긴 하나, 급경사의 절개지를 오르내려야 하므로, 우측 오름길로 들어서서 잠시 올랐다가 내려서면 수로가 나오고, 수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서면 밤티재가 나온다.

 

 

05:20 밤티재를 지나는 아스팔트 도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05:23 밤티재 절개지 수로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서면,

쇠철망이 가로막고 있는데, 수로 쪽 철망 아래 공간을 통해 도로로 내려선다.

 

<밤티재(栗峙, 500m)>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서 충북 괴산군과 보은군을 잇는 고개로, 997번 지방도가 지난다. '밤티'라는 지명유래는, 이곳의 높은 산악지대라 농작물이 잘 되지 않아 마을 전체에 밤나무를 심었는데, '밤 율(栗)', '고개 치(峙)'를 써서 밤티재라 부르게 되었으며, 율치(栗峙)라고도 부른다.

 

길 건너편에 초소가 있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근무자는 보이지 않는다.

 

 

05:25 철망 울타리를 따라 고개 좌측 동물이동통로 쪽으로 조금 이동하여,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으로 우회하여도 되지만, 울타리가 높지 않아 넘어서 들어간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요즘은 없던 둘레길도 만드는데, 백두대간을 트레일로 개발하면 더없이 좋은 명품 트레일이 될 텐데, 괜히 범법자만 양산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쉽다.

 

 

05:36 일부는 우회하고, 일부는 철망을 넘어 절개지로 올라, 문장대 오름길을 시작하는데,

앞쪽으로 속리산 지능선의 봉우리 하나가 어둠 속에서 마중을 나와 있다.

 

 

05:45 가파른 비탈길을 잠시 오르니,

 

 

05:48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며,

오래된 묵묘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 한다.

이제 어차피 모두들 범법자의 신세이니, 산행은 즐기자는 심정으로..ㅋㅋ

 

앞쪽으로 속리산 주능선의 윤곽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속리산(俗離山)>

속리산은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암봉을 자랑하는 산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9개의 빼어난 봉우리가 있어서 구봉산(九峰山)으로 불리다가 신라시대부터 속리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속리산의 유래는, 신라 말 진표(眞表)율사가 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을 들어서는데, 밭을 갈던 소들이 진표율사를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이 저럴진대 하물며 우리야’하며 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길로 낫과 괭이를 버리고 속세(俗)를 떠나니(離).., 그 이후로 속리산(俗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속리산은 예로부터 소금강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호서 제일의 가람인 법주사가 있어 유명해진 곳으로, 1970년 3월 20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칡넝쿨, 할미꽃, 모기가 없어서 3無의 산으로도 유명하며,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에 걸쳐 있는 탓에 상주 속리산, 보은 속리산으로 불린다.

 

 

06:04 돌아본 북동 방향으로 괴산군의 백악산(855m) 능선이 뚜렷하다.

 

커다란 암릉을 만나면 당연히 돌아서 가야 한다.

이곳 문장대 방향 대간 능선의 암릉은 그저 그런 만만한 암릉이 아니기에..ㅉㅉ

 

 

05:06 앞쪽으로 가야 할 속리산 주능선의 신선봉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소나무 분재의 배경이 되고 있는 깃털구름이 흩뿌려진 파란 하늘이,

잠시 후 문장대에서의 시원한 조망을 약속하는 듯하다.

 

 

05:09 암릉을 돌아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뒤쪽 밤재 건너편으로 새벽에 지나온 696봉과 백악산 산줄기가 연무에 싸여 있다.

 

 

05:10 우측으로는 가야 할 속리산 주능선의 연봉들이 조망되고,

 

앞쪽으로는 올라야 할 문장대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속리산 주능선에서 동쪽 화북면 방향으로 흘러내린 지능선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동남쪽 도장산 방향.

 

동쪽 화북면 쌍룡계곡 방향.

 

다시한번 도장산과 속리산의 연봉들을 조망한다.

 

 

05:15 오늘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듯하던 아침해가 연무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구간 막바지에 지나온 청화산 능선의 시루봉 줄기 옆으로, 달(月)인 듯 태양(日)이 걸려있고,

 

지난 산행에서 올랐던 청화산이 운해에 떠 있다.

 

돌아본 청화산 방향.

 

 

05:18 누가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만들어 놓은 설치미술 작품일까!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에서 본 천왕봉 방향의 속리산 주능선.

 

북쪽 괴산군 청천면의 백악산 방향 조망.

 

동쪽 청화산 방향 조망.

새벽에 출발한 늘재에는 아직도 구름이 넘나들고 있다.

 

동남쪽 도장산 방향.

 

남쪽 속리산 동쪽 사면 방향.

 

중앙의 뾰족봉이 속리산 신선대(1,029m) 쯤인 듯.

 

돌아본 청화산 방향 파노라마.

좌측 백악산과 중앙의 청화산, 그리고 우측 멀리로 도장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06:22 오늘 8시까지는 문장대에 도착해야 되는데, 곳곳에 산재한 작품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06:36 눈만 돌리면 곳곳에서 시선을 잡고서 놓지를 않는다.

 

엇! 나무 위의 저것은 뭐지?

 

 

06:37 분재 소나무 옆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속리산의 숨은 진주, 칠형제봉과 산수유릿지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살짝 당겨본 칠형제봉과 산수유릿지 능선.

 

산수유릿지 능선은 속리산 주능선의 청법대에서 화북공원관리소 방향으로 이어진 지능선이다. 1995년 청주 청심산악회에서 개척하였는데, 개척 당시 한분이 추락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고 하며, 개척할 당시 산수유꽃이 필 무렵이어서 '산수유릿지'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확 당겨본 칠형제봉.

 

좌측 속리산 주능선의 켜켜이 쌓인 지능선 조망.

 

동쪽 화북면 방향 조망.

 

동남쪽 방향 파노라마.

 

 

06:44 나뭇가지 사이로 십여 년 전 대간길에서 본 이후로 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이끼 담은 바위가 살짝 보인다.

 

 

06:46 이제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할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06:53 힘겹게 암릉을 올라서면, 또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운 암릉길이 이어진다.

 

 

06:56 우전방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문장대도 모습을 드러낸다.

 

당겨본 문장대 모습.

 

 

06:58 문장대 우측으로, 몇 해 전 충북알프스 산행 때 올랐던 관음봉도 보인다.

 

 

06:59 전망바위에 올라서 돌아본 청화산 방향.

 

전망바위 좌측으로는 십여년 전 대간길에서 본 이후로 한시도 잊지 못했던 태고의 이끼를 품은 바위가 있다!

 

바람과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바위에 어떻게 저런 생명이 움틀 수 있었을까!

자연은 늘 우리의 상상 저 발치에 있음을 절감한다.

 

지나온 청화산 방향의 대간능선이 박무에도 불구하고 시원스레 조망된다.

 

동남쪽 방향 파노라마.

 

동쪽 쌍룡계곡 방향.

좌측 청화산 시루봉 골짜기에 한국의 십승지 중의 한 곳인 우복동이 있다.

 

 

07:02 이끼를 품은 바위 조망을 뒤로하고, 문장대를 향한 오름길을 서두른다.

 

 

07:03 우전방으로 관음봉이 조망되고,

 

충북알프스 능선에서 북쪽 운흥리로 드리워진 속리산의 지능선도 시원스레 조망된다.

 

 

07:04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오르면,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바다코끼리 모양의 전방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백악산 방향 능선이 연무 위로 윤곽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고,

 

전망바위 옆에는 콧수염을 기른 고래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좌측으로는 칠형제봉과 산수유릿지 능선이 더욱 뚜렷이 조망되고,

 

가야 할 문장대 방향 등로는 암릉 사이로 이어져 있다.

 

북쪽 괴산군 청천면 방향의 백악산을 다시한번 담아보고,

 

지난 구간의 청화산 방향도 담아본다.

 

 

07:06 가끔씩 나부끼는 표지기들의 인도에 이끌려 높은 암릉으로 올라서니,

 

문장대에서 서쪽 관음봉으로 이어진 충북알프스 능선의 봉우리들이 성큼 다가선다.

 

살짝 당겨본 문장대 위에는 아직 사람의 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07:07 좌측 우회길을 두고 바위 위로 이어진 능선을 고집하면,

 

뚜렷한 족적이 이어지다가,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막다른 곳에도 이르게 되는데,

앞쪽 바위에 난 희미한 사람의 발자욱 흔적에 용기를 내어 힘겹게 오르면...

 

또다시 빛바랜 표지기가 길을 안내해 준다.

 

돌아본 암릉길?

 

전망바위 너머로 백악산이 이어진 듯 보인다.

 

연무 때문인지 아직도 멀어 보이는 문장대를 담고,

 

 

07:10 바위틈 사이로 드리워진 가느다란 밧줄에 의지하여 암릉을 내려서면,

 

 

07:13 등로는 바위 사이의 좁은 틈 사이로 이어지고,

 

 

07:14 좁은 틈을 더욱 비좁게 하려는 듯 나무가 자라고 있다.

아마도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아무도 다닐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위틈 사이를 빠져나오면, 앞쪽에서 문장대가 어서 오라 손짓하지만,

 

쉽지 않은 암릉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슬아슬한 절벽 옆으로도 지나야 하고,

 

쉽지않은 바위들을 온몸으로 넘어야 하는 곳도 지난다.

 

 

07:17 세상만사 그러하듯,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 편안함이 찾아오기 마련!

어려운 암릉을 지나면 그럴듯한 쉼터나 조망처가 어김없이 기다린다.

 

 

07:19 좌측으로 칠형제봉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바위도 지나고,

 

 

07:21 처음으로 문장대 방향의 가야 할 암릉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쉼을 하기로 한다.

 

지나온 암릉.

 

칠형제봉 능선과 문장대 방향 파노라마.

 

전망바위 아래로는 오송폭포가 자리한 계곡 방향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펼쳐진다.

 

암릉 우회길이 이곳 전망바위 아래로 이어지는가 보다.

 

너무도 훌륭한 조망을 주었던 전망바위를 기억하기 위해, 속리산 주능선 방향을 한번 더 카메라에 담아 둔다.

 

 

07:24 잠시의 쉼과 조망을 뒤로하고, 다시금 문장대로 향한 암릉길을 이어간다.

 

우리를 길이 아닐 것같은 암릉으로 이끄는 표지기를 따르는데,

 

 

07:25 십여년 전 대간 북진길에서의 기억과 지금의 대간길이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다.

 

암릉과 조망을 카메라에 담는 사이에 백두들의 자취는 간데없고 홀로 남겨졌다.

8시까지 문장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나도 서둘러서 올라야 하는데...

 

 

07:26 연이어 나타나는 조망바위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또다시 카메라를 꺼낸다.

좌측 칠형제봉 조망.

 

 

07:27 어느새 태양은 안개를 뚫고 나와, 어서 가라 재촉한다.

 

 

07:32 등로는 거대한 바위 사이로 이어지고,

 

거대한 석문을 들어서니, 앞서 간 백두들이 오늘 최고 난이도의 백미 구간 암릉을 오르고 있다.

 

바위 사이로 나타나는 나를 용현 형님이 담아 주었다.

 

십여년 전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이 암릉을 잊을 수가 없었는데,

그때는 내려섰던 암릉을 이번에는 올라가게 된다.

 

가느다란 로프에 생사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도, 앞사람이 오르기를 기다리며 환호하는 백두들!

 

거대한 암릉을 하나하나 오르는 백두들.

 

암릉 뒤쪽에서는 새벽부터 우리의 일탈을 지켜보던 백악산이 위험한 암릉을 오르는 우리를 염려하듯 지켜보고 있다.

 

 

07:39 높은 수직의 바위를 오르는 손총무님의 뒤를 이어,

 

 

07:41 나도 한가닥 로프에 의지하며, 최고 난이도의 암릉 위에 올라서서는,

지켜보던 백악산에 해 내었다고 신호를 보낸다.

 

직벽의 암릉을 올라서면 등로는 거대한 바위 아래로 이어진다.

 

돌아본 암릉길.

십여년 전 저곳으로 등로가 이어져 있다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때는 거북대장이 이끄는 데로 따르기만 했던 터라, 보지 못한 장면들이 많았던 듯하다.

 

 

07:42 돌아본 청화산 방향.

 

주위에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온갖 모양의 기암들이 눈길은 사로잡는다.

 

 

07:43 최고 난이도의 암릉을 지나 지도상 961봉쯤에 올라서면,

 

가야 할 문장대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진 암릉이 한발짝 성큼 다가선다.

 

가야할 문장대 방향 조망.

 

칠형제봉들이 이제는 이웃인 듯 나란히 조망되고,

 

칠형제봉 너머 멀리로 도장산쯤도 시야에 들어온다.

 

속리산 주능선 방향 파노라마.

 

 

07:47 절벽에 피어난 야생화들의 환영을 받으며 거대한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면,

 

 

07:51 문장대 주능선 앞을 막아선 거대한 암릉이 성큼 다가선다.

 

문장대 앞을 막아선 암릉은 올라갈 수 없는 암릉인 듯 중압감을 더하고,

 

문장대와 관음봉 방향의 암릉도 지척으로 다가선다.

 

 

07:55 드디어 문장대로 오르는 마지막 암릉 앞에 서게 되고,

 

 

07:57 등로는 암릉을 우회하여 바위틈 사이로 이어진다.

 

 

08:00 오래되어 불안해 보이는 한가닥 로프에 의지하여 커다란 바위를 하나하나 올라서면,

 

 

08:05 어느새 바위들은 자취를 감추고 문장대로 이어지는 관목 숲길이 나타난다.

 

 

08:06 작은 관목들 너머로 칠형제봉이 다시금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당겨본 칠형제봉.

 

 

08:07 등로 앞쪽으로 감시카메라가 나타나고,

 

 

08:09 이내 비법과 합법의 경계에 다다르면,

 

우측으로 문장대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문장대 헬기장 건너편 능선 너머로 칠형제봉의 머리들이 봉긋봉긋 보인다.

 

 

08:10 예정보다 조금 지체되었지만, 무사히 비법과 합법을 가르는 울타리를 넘어 광명(光明)을 찾는다.

 

울타리를 넘어서면 바로 문장대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합법의 밝은 세상에 도착하여 돌아본 대간 능선과 칠형제봉.

 

 

08:11 다행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문장대 주변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새벽부터 비경을 간직한 대간 암릉길을 오르면서 부담으로 다가서던 국공파에 대한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문장대 정상석이 한없이 정겹게 느껴진다.

 

편안한 마음으로 문장스런 문장대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는다.

 

<문장대(文藏臺, 1,033m)>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충북 보은군 속리면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속리산에서 천왕봉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흰 구름이 항상 정상에 걸려 있다고 해서 운장대(雲藏臺)라고도 부른다. 평생 세번을 오르면 극락을 간다는 문장대는,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가 복전암에서 감로수를 마시며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월광태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현몽하여 운장대에 올랐더니, '삼강오륜(三講五倫)'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하여 문장대(文藏臺)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가히 3천 명이 앉을 만하다고 과장되게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먼저 도착한 백두들은 벌써 문장대 정상을 다녀오는데,

이제 느긋해진 나는 천천히 문장대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08:14 문장대 정상에서 관음봉 방향을 배경으로 손총무님 내외분이 인증을 남기고,

 

문장대에서 이어가야 할 천왕봉 방향의 속리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정여사님이 포즈를 취해 준다.

 

충북알프스 활목고개 방향 능선의 관음봉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너머로 묘봉, 상학봉, 미남봉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능선도 한눈에 들어온다.

관음봉 좌측으로 보이는 묘봉은 산세가 빼어나고 아름다워 묘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북쪽 백악산 방향 조망.

 

지나온 대간능선 조망.

 

문장대 정상에서 본 칠형제봉과 산수유릿지 능선.

속리산국립공원 화북공원관리소에서 청법대로 연결된 지능선으로, 1995년 청주 청심산악회에서 개척하였다. 개척 당시 9피치를 개척하던 김선주씨가 추락하여 사망한 곳으로, 故김선주씨를 기리는 뜻에서 9피치 40m 벽을 '선주벽'이라 명명했다 하며, 그때가 산수유가 필 무렵이어서 '산수유릿지'라고 명명했단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속리주능선과 천왕봉 방향.

 

속리산(俗離山)은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한반도 산줄기의 근원을 이루는 12종산의 하나이다. 그 산세가 웅대하고 기묘한 바위 봉우리들이 구름 위로 솟아 있어, 옥구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여 소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속리산의 아름다움은 8봉, 8대, 8석문으로 대표되는데,
8봉은 천황봉을 비롯해 비로봉, 문수봉, 보현봉, 길상봉, 관음봉, 묘봉, 수정봉이고,
8대는 문장대를 비롯해 입석대, 신선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를 말하며,
8석문은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석문, 추래석문을 일컫는다.

 

 

남서쪽 법주사 방향 조망.

 

서방향 파노라마.

 

북동 방향 파노라마.

 

 

08:18 다시한번 가야 할 속리산 주능선을 카메라에 담고는 문장대를 내려선다.

 

 

08:19 문장대 정상석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08:44 아침식사를 마치고 문장대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긴다.

 

그것조차도 지나갈 것이겠지만,

아름다운 자연과의 호흡으로 속세의 미련들을 잠시 잊게 했던 문장대를 뒤로한다.

 

 

08:47 이제 부지런한 일반 산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더 이상 마음 조리지 않고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속리산 주능선 대간길로 접어든다.

 

 

08:48 법주사와 오송탐방안내소 방향 갈림길에서, 직진의 천왕봉 방향 능선길로 들어서며 신선봉을 향한다.

 

 

08:55 예로부터 속리산은 칡넝쿨과 할미꽃, 모기가 없는 삼무(三無)의 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 칡넝쿨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리라며 눈을 부릅뜨고 주능선을 걷는다.

 

 

08:58 문수봉쯤을 지나며 돌아본 문장대 방향.

 

살짝 당겨본 문장대.

 

 

08:59 마치 가녀린 나무를 두 손으로 보듬은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09:04 청법대(聽法臺)를 지나면서 바라본 천왕봉 방향으로 신선봉과 비로봉이 나란히 조망된다.

 

<청법대(聽法臺)>

청법대(聽法臺)는 5개의 봉우리가 마치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좌대(座臺)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의 빼어난 절경에 빠져 넋을 잃고 헤매다가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에 제정신을 차렸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청법대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에 있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오를 수가 없으며, 샛길로 돌아 우뚝 선 바위까지만 오를 수 있다고 하나, 이미 지난 새벽에 아름다운 암릉을 수없이 지나온 터라 마음으로 청법대를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당겨본 천왕봉 방향.

 

 

09:23 신선대 휴게주막에 도착한다.

왜 이런 매점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처음 속리산을 왔을 때도 있었다.

앞으로도 '흉물'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잘 꾸려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백두들이 신선대 휴게소에서 잠시 모닝커피를 즐기는 사이에,

 

신선대 조망바위에 올라 지나온 청법대 방향을 카메라에 담는다.

 

<신선대(神仙臺, 1,026m)>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옆에 주막이 있다. 옛날 속리산의 빼어난 절경에 혼을 빼앗긴 어느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서 백학이 수없이 날아오르며 춤을 추고 있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이 고승이 평생 꿈꾸던 신선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떠나 달려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그곳을 바라보니, 여전히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 담소하고 있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곳을 달려갈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선들이 놀고 있는 봉우리를 신선대(神仙臺)불렀다고 한다.

 

 

09:28 속리산 등산안내도를 보면서 가야 할 대간길을 가늠하고, 천왕봉 방향의 입석대로 향한다.

 

신선대를 내려서면 바로 경업대 갈림길을 지난다.

 

<경업대(慶業臺)>

신선대에서 산죽길로 잠시 내려서니 우측으로 경업대와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경업대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속리산 8대(臺) 중의 하나인 경업대의 지명 유래는, 임경업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했는 곳이라 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 한다.

 

 

09:34 입석대를 지난다.

 

<입석대(立石臺)>

신선대와 비로봉 사이에 있으며, 조선 중기 임경업 장군이 7년 동안 수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청법대와 마찬가지로 매우 험준하여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조선 인조 시절 임경업 장군이 6년 동안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할 때, 그가 어느정도 단련이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그의 뇌리에 목소리만 들려왔다. 장군은 정신을 차려 그의 말을 들으니, ‘마주 보이는 석벽 위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는 말이 들렸다. 장군은 경업대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세우려 했으나 일으키지 못했다. 이에 장군은 그의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수련하여 수도 7년째 되던 해에 반석(盤石) 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을 했는데,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해서 입석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09:51 험준한 암릉의 비로봉은 우회길로 지난다.

 

<비로봉(毘盧峰, 1,032m)>

보은군 내속리면과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진표율사가 법주사에 온 이튿날 새벽, 방 안에서 좌선을 할 때 밝은 빛이 방안을 가득 비췄고, 이에 율사께서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있었다. 율사께서 황급히 합장배례를 한 후에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께서 암봉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 그리하여 진표율사께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모든 것을 두루 비친다는 뜻)을 직접 배알 할 수 있었던 봉우리라 하여 비로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09:54 비로봉 정상엔 오르지 못하고 암릉 사이를 통과하여 우회한다.

 

 

09:54 우회길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암릉으로 둘러싸인 정상부를 지나게 되는데,

비로봉 아래에 있는 침팬지 바위가 우리를 힐끗 쳐다보고 있다.

 

 

10:03 비로봉을 내려서니 천왕봉이 성큼 가까워졌다.

 

 

10:03 천왕봉으로 가능 속리산 주능선에는 갖가지 모양의 기암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소나무와 이끼로 치장한 기암이 마치 거대한 수석전시장에 온 듯하다.

 

조물주의 멋진 조화로 이곳은 마치 수석 전시장을 옮겨 놓은 듯 환상적이다

 

가야 할 천왕봉 방향의 기암 봉우리들.

 

바라보는 위치가 바뀌니 기암의 모양도 바뀐다.

 

 

10:08 갖가지 모양의 기암들을 담으며 걷는 사이에, 천왕석문(天王石門)에 도착한다.

 

마치 속세의 묵은 때를 벗고 겸손한 마음으로 천왕봉에 오르라는 자연의 뜻인 듯,

천왕석문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잡아본다.

 

 

10:16 상고암/배석대 갈림길.

 

<상고암(上庫庵) 갈림길>
속리산은 주봉이 천왕봉이지만 문장대의 명성에 가려 푸대접을 받는 곳이다. 흔히들 속리산 하면 문장대란 공식이 정답인양 알고들 있지만 천왕봉이 엄연한 주봉이다. 상고암 갈림길은 법주사 방향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법주사에서 속리산 능선을 보면 W자 형태로 펼쳐져 있다. 좌측이 문장대이고 우측이 천왕봉이며, 그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비로봉이다. 따라서 이곳이 속리산 전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상고암 산신각 뒤로 올라가 너럭바위에서 바라보면 문장대도 보이고 천왕봉도 보인다. 마치 기암괴석을 모아 놓은 수석전시장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속리산 전체 계곡 구석구석을 다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이곳 상고암이란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539~575) 14년(553년)에 천축에서 불법을 구하고 귀국한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된 가람으로, 불법을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가람이란 뜻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사방이 험준한 이곳이 속세를 떠니 불법의 진리를 펼칠 수 있는 곳이라 여겼다고 한다. 또한 법주사는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중건됐는데, 지금에 남아있는 문화재는 모두 이때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후 헤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였고, 고려 태조 1년(918년)에 증통국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주춧돌만 남아 있는 것을, 1626년(조선 인조 4년)에 벽암대사가 옛 건물을 모방하여 복원하였다고 한다. 1891년(고종 28년)에 탄응선사가 머물면서 15년간에 걸쳐 중수하여 오늘의 법주사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배석대>

천황봉에서 상고암으로 내려오는 길가에 있는 바위로, 사람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608년에 진평왕의 왕비 마야부인과 공주 덕만(후에 선덕여왕)과 왕자 법승을 데리고 속리산에 와서 국운번창과 왕실의 평온을 기도하였다. 덕만과 법승 남매는 매일 아침마다 현재의 배석대 바위 위에서 국왕이며, 아버지인 진평왕이 계신 경주 쪽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우람한 바위가 하루는 덕만공주가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넙죽 숙인 후 다시 고개를 들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뒤부터 이 바위를 배석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10:22 장각동 갈림길을 지난다.

 

<장각동 갈림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면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이곳에서 내려서면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장각동이 나오는데, 상오리 칠층석탑과 장각폭포가 자리하고 있다. 장각동(長角洞)은 소의 뱃속 모양의 명당터를 일컫는 곳으로, 우복동(牛腹洞)의 쇠뿔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란다.

 

 

10:32 속리산의 주봉 천왕봉에 도착한다.

 

<천왕봉(天王峰, 1,058m)>

충북 보은군 속리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속리산 능선 9개의 봉우리 중에 가장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는 봉우리로 속리산의 主峰이긴 하지만, 문장대의 유명세에 가려 주봉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옛날 대자재천왕이 10월 인일 축시에 이곳 천왕봉으로 내려와 45일 동안 속리산 법주사에 머물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천왕봉 정상에 서면 속리산의 9봉9대(九峰九臺)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정상에서 우측 대목재 방향으로 50m 정도 내려서면, 우리나라 백두대간 십이지종산(十二之宗山)의 하나인 속리산에서 가지를 쳐, 서해로 내달리는 한남금북정맥이 시작되는 곳이다.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 칠장산에 이르러, 북쪽으로 김포 문수산 아래 보구곶리에서 맥을 다하는 한남정맥과, 남쪽으로는 칠장산에서 태안 앞바다인 안흥만에서 맥을 다하는 420km 금북정맥의 시발점이 이곳이다.

 

문장대 방향의 속리산 주능선 조망.

 

입석대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지능선 방향 조망.

 

남서쪽으로 분기되는 한남금북정맥 능선.

 

천왕봉 탐방로 안내판.

 

 

10:37 천왕봉을 뒤로하고 형제봉 방향의 대간길로 들어서는데, 뿌연 하늘에는 잠자리들이 한가득 날고 있다.

 

 

10:38 천왕봉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면,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는 지점을 지난다.

몇해 전 눈 덮인 추운 겨울날에, 이곳에서 한남금북정맥을 시작했었다!

 

<한남금북정맥 분기점>

 

한남금북정맥(총 도상거리 158.1km)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1057.7m)에서 분기하여 북으로는 한강(총길이 494.5km)과 남으로는 금강(총길이 401km)의 분수계를 이루며, 충청북도를 북서방향으로 연결하고,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까지 백두대간에서 남한의 정중앙을 잇는 큰 산줄기이다.

한남금북정맥은 이곳에서 칠장산 3정맥 분기점으로 이어지는데, 충북 보은의 구봉산 등 500m 급의 많은 봉우리를 넘으며 이어진다. 청주의 선두산과 백제시대의 유명한 상당산성을 지나 괴산의 좌구산을 넘고, 음성의 보현산과 소속리산을 넘으면서 꾸준히 500m~600m급의 정맥 길로 줄기차게 이어가다가, 음성의 금왕읍을 통과하면서 표고 150m 이하의 구릉지대(도상거리 20여km)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게 되고, 다시 이천의 마이산을 넘으면서 안성의 칠장산에 올라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분기된다.

 

금북정맥(총 도상거리 282.4km)은 안성의 칠장산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며, 안성땅을 지나 충남의 천안과 예산의 산줄기를 거처 홍성과 당진, 서산을 지나 태안의 지령산에서 서해바다로 그 맥을 가라앉힌다.

 

한남정맥(총 도상거리 178.5km)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경기도 용인과 수원의 산줄기를 거쳐 부천과 인천을 지나 김포의 문수봉에서 한강하구로 그 맥을 가라앉히는데,

 

3정맥의 총 도상거리는 619km에 달하는 큰 산줄기이다.

 

 

10:48 급경사로 십여분 내려서니 안부 능선이 나오는데, 대목재다.

 

<대목재>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장각 마을과 보은군 내속리면 대목리를 잇는 고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56대)은 고려 왕건에게 항복을 하고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영화를 누렸지만,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월악산 덕주사에 누이 덕주공주를 두고, 망국의 한을 품은채 백두대간 하늘재를 넘어 소백산 국망봉에서 나라 잃은 설움의 한을 달래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행적이 묘연했던 경순왕 행적비는 상오리 장각동에 있다고 한다.

 

대목재의 탐방 안내도.

 

 

11:10 대목재에서 조그마한 봉우리를 넘어서면 유순한 내림길이 이어지고,

 

 

11:24 703봉 아래 전망바위에 도착하니 어린 학생들이 쉼을 하고 있다.

우리도 가야 할 형제봉 쪽 시원한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쉼을 한다.

 

남쪽 형제봉 방향.

 

남서쪽 만수계곡 방향.

시야가 좋았으면 만수계곡 너머로 구병산이 시원스레 조망되었을 텐데 아쉬움을 남긴다.

 

 

11:31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내려서면, 등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며 고도를 낮춘다.

 

 

11:34 잘록한 안부를 지나고,

 

 

11:40 667봉쯤을 지나며 대간길은 우측으로 꺾여져 내려간다.

 

 

11:43 편평한 안부처럼 느껴지는 능선길이 이어지더니,

 

 

11:47 헬기장의 잔해가 남아있는 725봉쯤을 지나고,

 

 

11:52 이제는 전형적인 육산의 모습을 띠지만, 새벽부터 걸어온 산객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기만 한다.

 

 

11:57 좌측 지능선의 불룩 솟은 암봉이 눈길을 끈다.

 

당겨본 암봉 모습.

 

 

12:00 등에 멘 배낭은 점점 가벼워지지만,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데, 자그마한 봉우리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12:05 봉우리를 올라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앞을 막아선다.

 

남서쪽 만수계곡 방향.

 

 

12:40 우측으로 다시 시야가 트이며 구병산 능선이 가늠된다.

 

 

12:58 표지기가 열린 봉우리를 지나니,

 

 

13:01 피앗재에 도착한다.

 

<피앗재>

보은군 내속리면 대목리 만수동에서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를 잇는 고개다. 옛날에 첩첩산중이라 피난지로 적합한 곳이어서 ‘피화재(避禍峙)’로 불렀으며, 세월이 지나며 변음되어 피앗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보은의 만수동 사람들이 상주 화북장을 보러 다녔던 중요한 고갯길이었으며, 근년 들어서는 만수동 계곡의 풍광이 뛰어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팔도 사람들이 이곳으로 피난 와서 살아온 탓에, 아직도 이곳에서는 전국 각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피앗재 이정표를 뒤로하고 형제봉을 향한다.

형제봉까지는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魔의 구간이다.

지쳐있는 상태에서 다시 치고 오르려니 참으로 힘이 든다.

 

 

13:15 육산의 능선길에 이따금 암릉도 나타나고,

 

 

13:22 나뭇가지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봉우리가 형제봉일까 기대도 가져보며,

 

 

13:46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14:05 또 그렇게 형제봉 정상에 도착한다.

 

<형제봉(兄弟峰, 832m)>

보은군 내속리면과 상주시 화북면과 화남면 사이에 있는 삼면 경계봉으로, 커다란 암릉 2개가 함께 솟아 있다고 해서 형제봉이라 부른다. 피앗재에서 상당히 고도를 높여서 올라서는 형제봉 정상에서는 지나온 속리산 능선에서 구병산으로 이어지는 충북알프스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되는 곳인데, 오늘은 연무가 끼어서 장쾌한 조망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형제봉은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갈령을 지나 두루봉, 칠봉산, 작약산을 지나 낙동강으로 잦아드는 작약지맥이 분기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언제 다시한번 더 찾을 때는 꼭 시야가 좋은 날 오리라 다짐해 본다.

 

걸어온 천왕봉 방향의 대간능선이 연무에 가려있다.

 

 

14:07 죽을힘을 다해서 오른 형제봉에서, '백두 파이팅!'을 외쳐 본다.

 

갈령 건너편으로 작약지맥의 두루봉(874m)이 뿌옇게 조망된다.

 

 

14:10 늦어진 산행을 마감하려 형제봉 정상을 내려선다.

 

 

14:20 형제봉을 뒤로하고 갈령 삼거리 갈림길 봉우리로 향한다.

 

 

14:28 갈령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는데,

 

Y자 갈림길에서 비재 방향 대간길은 우측이고, 갈령으로 내려서는 길은 좌측길이다.

 

 

14:35 갈령삼거리를 뒤로하고 갈령 내림길로 들어서자 암릉도 나타나며,

 

갈령 너머 두루봉과 대궐터산 능선이 조망된다.

 

돌아본 형제봉 방향.

 

 

14:38 내림길에 나타난 암봉을 돌아 오르면,

 

지나온 형제봉이 뚜렷이 조망되지만,

 

멀리 천왕봉쯤은 연무로 희미한 형체만 가늠된다.

 

내려다본 갈령 북쪽 상오리 조망.

 

갈령 건너편 작약지맥의 두루봉 방향.

 

당겨본 갈령에서 두두봉 뒤쪽으로 이어진 임도.

 

 

14:52 이제 더 이상의 봉우리는 없다.

옛날 대간 북진길에서도 갈령으로 오르며 물이 떨어졌었는데, 이번 대간 남진길에서도 수통이 텅 비었다.

 

두루봉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다.

 

 

14:58 갈령 헬기장을 지나,

 

가파른 나무계단 비탈길을 내려서면,

 

 

15:01 갈령에 도착한다. 참으로 고되고도 벅찬 산행이었다.

 

갈령 우측 골짜기에는 최근에 내린 비로 물이 흐르고 있어서, 먼저 도착한 백두들은 간단히 씻고 오는 분도 있다.

 

갈령 이정석.

 

<갈령(葛嶺)>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와 화북면 상오리를 잇는 고개로, 49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주변에 칡이 많다 하여 ‘칡 갈(葛)’字를 써서 갈령이라 부르고 있는 곳인데, 근처에 십승지 중의 하니인 상주 우복동이 있으며, 6.25 동란 때 한국군 제7연대가 인민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화령장 전투의 격전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갈령은 상주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도로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4차선의 넓은 도로가 지나가는 갈령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지금은 대간 산꾼이나 찾는 한적한 고개가 되어 버렸다.

 

 

16:03 상주로 이동하여 땀을 닦고, 상주 근교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한다.

 

정갈한 음식으로 힘든 산행의 노곤함을 잊어간다.

 

천왕봉에서 형제봉으로 갈 때의 힘든 기억은 소맥 한잔으로 모두 삭이고,

속리산의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짜릿한 암릉산행의 기억만 간직하길 희망한다.

 

 

17:36 즐거운 산행의 기억과, 푸짐한 뒤풀이의 포만감을 안고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새벽부터 이어진 11시간 반에 가까운 산행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볼거리가 있었던 속리산 산행이었다.

천왕봉에서 형제봉 오는 막바지 구간에서는,

사력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을 때어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완주의 기쁨을 함께했다.

 

속리산!

참으로 멋진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