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30차(신의터재~큰재)
산 행 일 : 2015. 09. 13.(토)
산행코스 : 신의터재 ~ 지기재 ~ 개머리재 ~ 백학산 ~ 개터재 ~ 회룡재 ~ 큰재
(거리 22.5km)
산행참가 : 16명.
<산행코스>
04:03 신의터재 정자 앞에 주차한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하고는, 시원한 밤공기에 몸을 맡긴다.
<신의터재(新恩峴, 280m)>
경북 상주시 화동면 이소리에서 평지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원래의 이름은 신은현(新恩峴)이었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어산재로 바뀌었고, 1995년도에 신의터재란 이름을 되찾았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에 내륙에서 왜군과의 첫 교전 장소였고, 최초의 의병인 김준신 장군이 의병을 모았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 때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어산재'로 개명하였고, 문민정부 수립 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이름을 되찾고 이곳에 표석과 의사비를 세웠다.
화동면 주민들은 화동재라고 부른다. 이곳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곳이며, 낙동강과 금강물로 나뉘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해발 280m의 높은 고지대로 고랭지 포도인 '팔음산 포도'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04:09 산행 준비를 마친 백두들이 정자 뒤쪽에 있는 '백두대간 표지석'으로 오른다.
04:11 신의터재 백두대간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표지석 뒤로 이어진 대간길을 따라 큰재로 향한다.
04:34 첫번째 이정표를 지난다.
이번 구간 역시 상주시 구간으로, 상주시에서 대간길을 잘 정비해 놓았다.
04:44 안쑥밭골 포도밭 가장자리로 이어진 임도가 나타나고,
임도를 따라 5분쯤 진행하다가, 좌측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05:00 능선 정상부로 올라서자 대간길은 직좌틀하여 이어진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알바를 한 팀들이 많았던 듯, 직진 방향으로도 길이 잘 나 있다.
05:17 매어진 밧줄을 잡고 암릉을 내려서서 잠시 진행하니, 차량 통행이 가능한 농로에 내려서게 되고,
05:21 우측으로 농로를 따르다가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직좌틀하여 잠시 진행하면,
농로 좌측으로 들머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농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산길보다 5분쯤 빨리 지기재에 도착하게 된다.
05:23 숲길로 들어서서 구릉지를 이리저리 헤매는 등로를 잠시 따르니, 이정표가 보인다,
05:23 대간길은 다시 숲길을 벗어나 임도로 내려서고,
05:29 10여분 전에 만났던 농로를 다시 만나 좌틀하여 진행하면,
앞쪽으로 가로등이 훤히 밝혀진 지기재가 보인다.
05:31 표지기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지기재에 도착한다.
<지기재(260m)>
경북 상주시 모서면 석산리에서 대포를 잇는 고개로,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지기재의 유래는, 옛날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았다고 하여 마을을 적기(賊起)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적기재라 부르던 것이 변음되어 지기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포도 재배지가 많은지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며 달콤한 포도향이 새벽 공기에 실려온다.
지기재의 백두대간 안내판.
<금강과 낙동강 수계 분수령>
상주의 지형은 제법 복잡하다. 백두대간이 서부로 지나지만 이 산줄기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끼고 있거나 그 서쪽에 공성.모동.모서.외남.화동.화서.화남.화북면 이렇게 적지 않은 8개 면이 모두 상주고을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백두대간 분수령을 경계로 도계(道界)나 군계(郡界)를 나누던 관습은 적어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분수령이 이 지역에서 면계(面界)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는 까닭은 분수령의 산세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중화지구대'라 불리는 이 구간은, 아마도 백두대간 전 구간 중에서 분수령의 고도가 가장 낮은 곳이다. 마루금은 겨우 해발 200~400m 내외를 넘나들며 이어지는 야산지대를 이룬다. 그러나 백두대간 분수령으로선 낮아도 농사터로는 고원지대다. 이곳은 평지와 평균기온이 3~5℃ 차이가 나는 까닭에 당도 높은 과일을 생산하는 과수농업이 아주 발달해 있다.
<삼백(三白)의 고을 상주(尙州)>
상주(尙州)를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칭하는데, 세 가지 흰 특산물인 쌀, 누에고치, 곶감이 그것이다. 낙동강이 흐르는 기름진 들녘에는 상주쌀이 유명하며, 중화지구대의 낮은 기온과 큰 일교차 때문에 사과, 배, 포도 등 과일의 당도가 높고, 특히 남쪽에서 재배되는 감은 떫은 맛이 나는 반면에, 이곳에서는 떪은 맛이 없어지고 당도도 최상으로 만들어져 전국 곶감 수확량의 60%를 차지하며, 해마다 누에축제를 열 정도로 상주 누에는 유명하다고 한다.
백두대간 능선이 남북으로 67km나 지나가는 상주땅은, 경상도와 강원도, 충청도를 가로막은 1,000m 급 이상의 산들이 이곳 상주땅에서 중화지구대를 만들면서 고도가 낮아져 예로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았고,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와 경부선 철길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서 경상도(慶尙道)라 한 것은, 상주가 군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이다. 영남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은 삼한시대에 풍부한 물과 기름진 들녘에 사벌국(沙伐國)의 도읍이었던 낙양(洛陽)에서 유래되었는데, 낙양의 동쪽에 흐르는 물이라 하여 낙동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기재에서 잠시 쉼을 하는 백두들.
지기재 들머리 방향.
지기재 들머리 우측에 세워진 이정표.
05:39 향긋한 포도 내음을 가르며, 지기재를 뒤로하고 개머리재로 향하는 백두들.
05:41 농로 끝 지점에서 대간길은 우틀하였다가 좌측으로 오르게 되어 있으나,
인삼밭 좌측 가장자리로 직행하여 오르면 바로 대간길로 이어진다.
05:46 대간길 이정표가 다시금 반겨준다.
05:50 안신산(430봉)이라 불리는 봉우리로 이어진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 백두들.
예전에 없던 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상주 시장 만세!"
05:57 안신산이라 표시된 430봉 정상부에 오르니 널찍한 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대간길은 우틀하여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06:02 이내 임도와 다시 만나고,
임도로 내려서서,
06:12 능선을 따라 이어진 임도를 따른다.
06:18 전망이 조금 트인 묘지가 나타나고,
대간길은 묘지 좌측을 따라 이어진다.
06:22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는가 싶더니,
06:23 개머리재로 이어지는 농로에 내려서면,
좌측 소정리 방향의 서쪽 하늘에는 아직도 둥그런 반달(月)이 걸려 있다.
좌측 소정리 방향 조망.
짙은 포도 향기를 맡으며 대간길을 걷고 있는 백두들.
포도향이 새벽부터 2시간 넘게 걸어온 백두들의 시장기를 한껏 자극한다.
06:24 개머리재 도착.
<개머리재(290m)>
상주시 모서면 소정동과 대포리(일명 함박골)를 잇는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개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포도밭 사이로 농로인 포장도로가 나 있으며, 이곳 사람들은 소정재((召井峙)라고도 부른다. 소정동은 산 중턱에 위치하여 식수를 길어 올려야 했기 때문에 우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의 소정(召井)이라 불리고, 대포리(大杓里)는 이곳 지세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자루인 두병(斗柄)이 능히 될 수 있다는 뜻에서 부른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토속신앙을 보면 세 가지의 줄기가 있다. 칠성(七星)·산신(山神)·용왕(龍王)이 그것이다. 하늘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고, 이 북두칠성을 숭배하며 여기에 새벽마다 정화수(井華水) 떠놓고 기도하는 것이 한민족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토속신앙의 한 줄기인 칠성(七星)은 시간의 신으로 생명을 관장한다 믿었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은 별 7개가 국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이 국자에다 생명수(生命水)를 담아 하늘에서 인간세계에 뿌려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여섯번째 별과 일곱번째의 별을 중시했다. 국자의 손잡이 부분으로 ‘두병(斗柄)’이라고도 부른다. 여섯번째 별 이름이 무곡성(武曲星)이고, 일곱번째의 별 이름이 파군성(破軍星)이다. 무곡성과 파군성을 이으면 손잡이가 되기 때문에 두병이라 한다. 또 이것을 시침(時針·시를 가리키는 짧은바늘)이라고도 부른다.
개머리재에 도착하는 백두들.
서쪽 소정리 방향.
개머리재 들머리.
동쪽 대포리 방향.
달콤한 포도향을 맡으며 느긋한 쉼을 하고는,
06:33 개머리재를 뒤로하고 백학산을 향한다.
주변 포도밭 대부분이 이미 수확을 마친 상태였으나, 유독 좌전방에 보이는 포도밭에는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짙은 포도향이 뿜어져 오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배가 고프던 차여서, 농부들의 땀의 결실을 지켜주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06:34 대간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06:37 이내 우측으로 인삼밭이 펼쳐지고,
이내 다시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06:46 막힌 임도에 차량이 세워진 고갯길을 지나는데,
고개 우측으로 상주시 모서면 소정리의 농지가 조망된다.
고갯길을 통과하는 백두들.
06:55 300봉쯤을 지난다.
07:01 좌측 상주시 모서면 대포리 내가이골 방향으로 운해가 펼쳐진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편안한 등로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모든 백두들이 함께 산행을 하게 된다.
07:06 완만한 구릉처럼 보이는 능선길임에도 대간 능선은 뚜렷한 흐름을 유지한다.
07:50 백학산까지 가지 못할 바에는 도중에 아침식사를 하야야 하는지라,
적당한 식사 장소를 찾지 못해 능선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서둘러 백학산을 향한다.
07:52 희미한 옛 고개 하나를 지나니,
08:00 이내 백학산 직전 대포리 임도에 도착한다.
좌측(동북쪽) 대포리 방향.
08:01 고갯마루에서 우측으로 잠시 임도를 따르면, 임도 좌측으로 백학산 오름길 들머리가 나타난다.
08:21 가파른 사면길을 치고 올라 능선 위로 올라서니,
08:23 이내 백학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학산(白鶴山, 615m)>
경북 상주시 모동면과 내서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장자봉(莊子峰)이라고도 부르고, 백학산 서쪽 능선은 성봉산(571.4m)으로 이어진다. 백학산은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 번째 봉에 앙증맞게 생긴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산을 하얗게 덮을 정도로 백학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에서 윗왕실 마을을 바라보며 백학산이 마을을 마치 학이 알을 품은 듯 감싸안은 형세라고 한다. 이런 터를 포란지세(包卵之勢)라고 하는데,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명당이란다.
백학산 북동(北東)으로 계류가 발원, 내서면을 경유 북천(北川)이 되어 낙동강에 유입된다. 또 하나의 계류는 南西로 판곡지에 유입해 반계천이 되고 금강으로 흘러든다. 표고가 낮은 중화지구에 백학산은 중후함을 갖춘 으뜸 산으로, 이 지역의 횃불처럼 신성한 숭상의 대상이었다 한다. 오늘 산행구간 25km 중에 유일하게 산이름(山名)이 붙은 곳이다.
북동쪽 모서면과 내서면 방향의 상주 조망.
<상주(尙州) 삼백(三白)>
경상도(慶尙道)라는 이름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를 함께 부르면서 유래되었다.
"백두대간과 낙동강이 빚어낸 삼백(三白)의 고을 상주는 흰쌀과 누에고치, 곶감의 고장이다. 쌀, 누에, 곶감의 공통점은 모두가 하얗다는 것이다. 영남지방의 큰 고을이었던 상주(尙州)는 예로부터 이 세 가지로 유명해 상주를 흔히 ‘삼백(三白)의 고을’이라고 불렀다.
우선 ‘삼백미’로 불리는 상주쌀은 경기미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질이 좋았고, 임금의 수라상에도 오르던 진상품이었다. 게다가 생산량도 많아 한때 상주에서 생산되는 쌀의 양은 강원도 전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것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됐다고 한다.
그다음은 누에.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누에치기를 시작한 지는 4,000년쯤 되었는데, 상주 함창읍은 신라시대부터 명주 산지로 이름난 곳이었다. 하지만 한때 산기슭을 온통 차지했을 뽕밭은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고, 양잠농가도 더불어 사라져 예전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도 함창 장날에는 명주장이 설 정도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은척면 두곡리에 은척뽕나무로 불리는 350년쯤 된 늙은 토종 뽕나무가 있는 것도 이 고장의 누에치기가 아주 오래됐음을 알려준다.
상주는 시내 가로수는 물론이요,, 마을 길가에도 온통 감나무다. 그래서 가을엔 주민들이 감을 따는 광경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는 어딜 가나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이 익어가는 건조장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곶감은 분명히 빨간빛이 도는 주황색인데, 왜 ‘삼백’에 속할까? 사정은 이렇다. 타래에 그대로 건 곶감에서는 하얀 분가루가 생기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만지작거려야만 분이 생겨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곶감을 걸어놓고 손으로 만지며 모양을 만들었기에 하얀 분이 나와 곶감을 감쌌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곶감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하얀 분이 나오지 않아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한 정상석이 있는 백학산 정상에서 인증을 남긴다.
북동쪽 내서면 노류리 방향.
몇 년 사이에 정상석 밑동이 훤히 드러나 있다.
혹자는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도 하나, 대간꾼들의 등산화에 파이고 빗물에 씻겨 주변이 많이 깎여진 듯하다.
08:26 다시 한번 모서면과 내서면 방향을 조망하고 백학산을 뒤로한다.
08:40 인근 논밭이 보이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숲은 꾀나 깊은 산골을 연상케 한다.
08:42 주변을 아는 사람들 만을 위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아마도 내서면 노류배골 마을에 산촌체험관이 있나 보다.
돌아본 백학산 정상.
08:50 이름없는 봉우리에 표지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마도 북진하는 대간꾼들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백학산 정상을 고대하며 걸어놓은 표지기인 듯하다.
좌측으로 내서면 노류배골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북동쪽 노악산 방향.
08:54 좌전방 멀리로 다음 구간에 가게될 웅이산(794m)쯤이 보인다.
살짝 당겨본 웅이산(국수봉).
09:00 대간길은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 형의 능선 마루금을 따라 이어진다.
모처럼 묘지 옆을 지난다.
09:05 조금 애매한 곳에는 어김없이 상주시에서 세워놓은 이정표가 대간길을 안내해 준다.
09:12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니,
09:19 윗왕실재에 도착하여, 대간길은 직진하여 동물이동통로 위를 지나게 된다.
우측 아래로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구간을 끊는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듯하다.
<윗왕실재(400m)>
상주시 모동면 효곡리 윗왕실 마을과 외남면 소상리를 연결하는 임도가 지나는 고개로,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윗왕실마을 고개라 해서 윗왕실재란다. 왕실(旺室)이란 사위(四圍)가 산으로 둘러 싸여 마치 구중궁궐처럼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으로, 산세가 왕이 기거하는 왕궁과 같다 하여 ‘왕재’라 하였으나, 민초들이 함부로 왕을 입에 올리지 못하던 시절이라 뒤에 ‘실’ 자를 붙여 왕실재가 되었다고 한다.
윗왕실재 동물이동통로를 지난다.
우측 상주시 공성면 효곡왕실 방향.
윗왕실재 에코브리지 위에서!
09:36 463봉쯤을 지나고,
산행코스가 유순하니 백두의 대열은 출발 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0:09 그냥 그렇게 끝낼 수는 없으니, 좀 더 속력을 붙여 볼까!
10:30 커다란 참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오늘 구간에는 도토리가 지천으로 널려져 있다. 올해는 어느 고장이나 도토리가 풍년이란다.
대간길이 온통 도토리로 포장되어 있다.
그냥 스쳐 지나다가 밤나무 아래에서는 알밤을 주워서 배낭에 넣어 보기도 하고,
도토리를 줍다가 횡재를 한다.
거대한? 영지버섯..ㅋㅋ
10:36 지도상 개터재를 지난다.
이정목에 매직으로 써 놓는 '옛고개'라는 명칭은 대간꾼들이 붙인 이름인 듯하다.
사실 지도상에는 이곳이 개터재로 표시되어 있다.
<개터재(380m)>
경북 상주시 모동면 효곡리와 공성면 봉산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길은 뚜렷하나 인적이 드물었던지, 아니면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대간길 이외에는 잡초만 무성한 곳이다. 원래 개터재는 이곳에서 공성면 효곡리 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편의상 개터재로 불렀는데, 누군가 이곳 이정목에 옛고개라고 매직으로 써 놓았다.
개터재의 유래는 유용하게 식량을 제공한 날짐승들이 많아 개터재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산세가 마치 개들이 모여 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부근의 봉산마을, 효곡마을,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라 해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효곡리는 효자와 열녀가 많이 배출되어 마을 이름이 효곡리로 지어졌고, 인심 좋고 범죄 없는 마을로도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개터재(옛고개)의 우측 효곡리 방향.
10:44 460봉 우회길이 편안히 이어진다.
대간북진 때는 능선을 고집했었는데..ㅉㅉ
짧은 너덜지대가 오히려 단조로운 산행길을 다채롭게 해 주는 듯하다.
10:54 우회길 끝 지점에서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우측으로 상주시 공성면 봉산리의 밭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측 봉산리 방향 조망.
<중화지구대>
백두대간 구간 중에서 화령재에서부터 추풍령에 이르는 구간을 대간꾼들은 흔히들 非山非野(비산비야) 구간이라며 보너스 구간이라고도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중화지구대'라고 한다. 실개천 하나 없는 백두대간 화령재에서 추풍령 구간 54.69km의 '중화지구대'는, 1,000m급 이상되는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고도를 200~400m로 낮추면서 화령재에서 추풍령까지 중화지구대를 만든다.
지구대(地溝帶, Rift valley)란 지층이나 암석이 변형되어 연속성이 파괴되면서 긴 폭으로 요지(凹地)가 생긴 지형으로, 하천의 침식으로 인한 계곡과는 달리, 두 개의 단층이 지진이나 화산 폭발로 인한 단층활동으로 인해서 약한 부분이 함몰된 것을 말하며, 우리나라에는 추가령지구대, 형상강지구대, 길주명천지구대가 있다.
10:58 옛 고개인데 실제로는 이곳이 회룡재(回龍峙)라 한다.
우측 봉산리 방향.
회룡재 이정표.
"급경사 주의"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지도에 보아도 대간의 동쪽은 등고선이 촘촘하고, 서쪽은 거의 평지 수준이다.
<회룡재(回龍峙, 340m)>
상주시 공성면 봉산리 골가실 마을에서 모동면 회룡리를 거쳐서 상판저수지로 연결하는 고개로, 이곳 고개 우측으로는 규모가 큰 회룡목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회룡재의 유래를 보면 풍수에서 재의 형상이 용이 뒤돌아 보는 형세라고 해서 회룡재라 부른다고 한다.
11:49 조그마한 언덕처럼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고,
11:57 능선 안부로 내려오니, 회룡목장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나온다.
대간길은 회룡목장 반대방향의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도로를 따르는 백두들.
능선 너머의 회룡목장 방향.
도로를 따르는 백두들.
12:01 잠시 후 대간길은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숲으로 이어진다.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숲으로 드는 백두들.
백두산우회를 위해 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총무님 내외분.
12:11 잠시의 오름길 끝에 묘지가 자리한 무명봉을 지난다.
산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씩씩한 백두들!
아마도 이번 코스가 평이하고 날씨가 좋아서 그런 듯하다.
12:22 쌍분 묘지를 지나니,
12:23 오늘의 종착지인 큰재에 자리한 "백두대간 생태교육센터"가 나온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센터 안으로 들어서는 백두들.
숙소로 보이는 건물들도 있고,
연수시설과 전시시설도 갖춰져 있다.
<백두대간 숲 생태원>
폐교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있던 자리에 백두대간숲생태원이 건립되어 있다.
12:26 아무도 지키는 이 없는 전시관에 들러서,
백두대간에 관한 이런저런 전시물들을 둘러본다.
전시물을 관람하는 회장님.
한반도의 등줄기를 형성하는 백두대간 개념도.
백두대간 상의 산을 높이별로 정리해 놓았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12:35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버스가 기다리는 큰재로 향한다.
생태교육센터 잔디광장.
돌아본 백두대간생태교육센터.
12:36 큰재에 도착하니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큰재(320m)>
상주시 모동면에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아스팔트 고갯길로, 이름이 큰재라고 하지만 고도를 잔뜩 낮춘 탓인지 큰재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공성면의 3번 국도와 모동면의 977번 지방도로를 연결하는 920번 지방도로가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곳이다. 고갯마루에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폐교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있었던 자리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숲생태원"이 세워져 있다.
돌아본 백두대간생태교육장 모습.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버스에 오르며, 오늘의 대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13:01 상주 시내의 오아시스사우나에서 목감을 하고,
다시금 쌩쌩한 모습으로 단장한 백두들.
13:50 지지난 산행에서 들렀던 '연원애꽃'이라는 예쁜 이름의 식당에서,
조촐한? 산행 뒤풀이를 한다.
정갈한 한식 반찬들.
산행이 쉬워서 그런지,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 듯한 표정의 백두 여전사들!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의 백두들이 여유로운 한담을 즐기다가,
15:45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편안한 하루를 마무리 한다.
오늘 대간길이 쉬웠던 듯,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음에도
표정은 막 산행을 떠나는 분위기다.
살다 보면 어려운 날도, 쉬운 날도 있기 마련,
조금 힘들게 이겨내는 삶이 기억에 좀 더 오래 머문다.
앞으로는 좀더 도전 의식을 갖게 하는
산행 코스를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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