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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낙남정맥 08차(발산재~한치) : 솔숲 오솔길 따라 함안 여항산의 진면목을 본 낙남길

by 재희다 2011. 3. 27.

산 행 지 : 낙남정맥 08차(발산재~한치/큰고개)

산 행 일 : 2011. 03. 26.(토)

산행코스 : 발산재~큰정고개~527봉~오곡재~557봉~미산령~여항산(770m)~소무덤봉~서북산(738m)~감재고개

~대부산(649m)~한치/큰고개 (도상거리 22.7km, 10시간 20분 소요)

산행참가 : 16백두.

 

<산행코스>

 

 

발산재를 지나는 2번 국도가 새로이 4차선으로 뚫리기 전 옛길에는 발산재휴게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시원스레 4차선으로 확장 포장되면서 옛길에 있던 휴계소에는 버스로 접근이 불가능해 졌다. 발산재 들머리는 옛 국도변에 있는 발산재휴계소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마산 진전면의 봉암교차로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마친 다음, 발산재 에코브리지로 이동하여 추돌의 위험을 줄이고자 서둘러 하차하여 발산재 휴계소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발산재 에코브리지를 지나서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하는 백두들.

 

<발산재(鉢山峙, 260m)>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발산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전리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2번 국도가 지난다. 이 고갯길은 조선시대 진주목 소촌도(召村道)의 역로에 위치한 고갯길이었다. 진주 주내에서 소촌역(召村驛)·반성현(班城縣)을 거쳐 발산재를 넘으면, 진해현 상령역(常令驛)으로 이어졌다. 발산재는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인데, 이 곳은 임진왜란 당시 고종후 장군 등 선열들이 왜적에 맞서 싸웠던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발산재 싸움은 진주성 전투에 앞서 치열하게 벌어진 격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이곳에 살고 있으며, 발산재에서 깃대봉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는 고종후 장군의 치적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발산재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에 밀려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의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성은 부대'라 불리던 해병대가, 1950년 8월 1일~3일, 진주에서 발산재를 넘어오던 북한군 6사단 정찰부대를 궤멸시킨 곳으로, 서북산 전투와 더불어 인근의 진동리 전투에서도 북한군을 섬멸하고 이후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 상륙하여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에서 북한군 7사단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승을 거두기도 했던 해병대의 기상이 서린 장소이다. 이때 미국의 종군기자였던 '마거릿 히긴스'가 이때의 김성은 부대를 일컬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기사를 쓰게 된 단초가 된 곳이 바로 발산재이다.

 

 

지금은 폐쇄된 옛 발산재휴게소 건물 앞을 지나면,

 

휴계소 우측 해우소 옆에 낙남정맥 들머리가 있다. 

 

흔한 '천하 대장군' 대신에 '현위치 발산재'를 표시하고 있는 서글픈 장승을 뒤로하고, 낙남정맥 산행길에 오른다.

 

 

한참의 된비탈을 치고 오르면 최근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통나무벤치가 있는 290봉쯤을 지난다.

누가 쉬어갈지는 모르지만 깔게는 필히 지참하는 게 좋을 듯..ㅋㅋ

 

 

잠시 후 326봉 갈림길 봉우리에서 정맥길은 직좌틀하여 이어지고,

 

 

우측 아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섰다가 다시 복귀하는 짧은 알바의 여유도 부리며,

 

 

편안한 낙남정맥 능선길을 이어가다가 널찍한 공터에서 잠시 쉼을 한다.

 

 

'정맥길은 업다운이 심한길'이라는 선입견을 무색케 하는 평탄한 능선길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356봉쯤을 지난 지점 좌측으로 이반성면 장안리 방향이 조망된다.

 

<진주시 이반성면 장안리>

조선 인조대왕이 능양군으로 있을 당시,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을 배알 차 미복으로 장안산을 지날 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 암자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드렸는데, 그 후 인조 임금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전암에는 조선 인조가 능양군으로 있을 때 기도처라 하여 인조 임금의 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고개인지도 모르게 큰정고개를 지나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오봉산 갈림길이 있는 능선갈림길 527봉에 도착한다.

 

이곳 오봉산 갈림길이 있는 527봉에서, 그동안 낙남길의 좌측을 함께 했던 진주시 이반성면과 이별하고 함안군 군북면으로 들어서게 되고, 우측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이 서북산까지 함께한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오봉산쯤으로 짐작되는 봉우리가 보이고,

 

좌측 건너편 미산봉 줄리 아래로 함안군 군북면 오록리 마을에서 오곡재(비실재)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가야 할 오곡재와 638봉 방향.

 

동쪽 여항산 방향.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여유를 찾고, 

 

 

527봉을 뒤로하자 여항산 방향이 한층 밝게 빛나고 있다.

 

 

삼각점과 나무벤치가 있는 524.4봉에 도착한다.

 

오봉산 갈림길봉을 뒤로하고 524.4봉에 도착하는 백두들.

 

가야 할 오곡재 너머 638봉, 미산령, 746봉 방향 조망.

 

746봉 우측 여항산 능선.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조망.

 

 

524.4봉을 뒤로하고 편안한 내림길을 잠시 이어가면,

 

 

우측으로 망루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축을 지나게 되고,

 

 

이내 오곡재(비실재)에 도착한다.

 

<오곡재(380m)>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산서를 잇는 비포장 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옛날에는 보부상들이 지나다니는 중요한 도로 중의 하나였다. 우측 군북면 오곡리의 '오곡'은 '오실'이라고도 불렸는데,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어린 시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을 지나던 중, 피로하고 배가 고파 뒷산에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마귀가 날아와 하늘 위를 맴돌다가, 최치원선생 앞에 닭고기를 물어다 주고 갔다 하여 '오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다른 설(說)로는 오곡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까마귀 두 마리가 깃을 펴고 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한강 정구 선생이 '오곡'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다.

오곡리의 자연부락 중, '골말'은 먼저 형성된 마을로서 원래 '고마을(고촌)'이었다 하고, 새말은 나중에 형성된 마을이라 '새말(새터)'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함안군 군북면 쪽에서는 '오곡재'라 부르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서는 '비실재'라고 부르고 있다.

 

오곡재 이정표. 

 

우측 진전면 산서 방향으로 오곡재에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오곡재 좌측으로는 오봉산이 조망된다.

 

 

오곡재부터 여항산까지는 미산령에서 잠시 고도를 낮추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도를 400여 미터쯤 꾸준히 올려야 한다. 낙남정맥 중에서 지리산 구간을 제외하고는, 가장 고도가 높은 구간으로 향한다.

 

 

우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여항산 능선 위로 솟아오른 태양빛이 내려 쪼이고,

 

아침햇살을 받으며 싱그러운 소나무숲 오름길을 오르면,

 

 

이내 414봉쯤에 오르고,

 

앞쪽으로 가야 할 557봉쯤이 다가선다.

 

 

소나무의 생김새를 관찰하며 고도를 높여 나가면,

 

 

557봉쯤을 지나고,

 

 

557봉 내림길 좌전방으로 미산령에서 군북 사촌 방향 능선에 가리봉산의 투구봉을 닮은 암봉이 조망된다.

 

당겨본 암봉 모습.

 

 

다시 막자란 소나무숲 오름길을 치고 오르면,

 

 

군북 사촌 방향 능선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한다.

 

남쪽 진전면 방향.

 

동쪽 광려산 방향.

 

내려다본 진전면 여양리 둔덕마을 조망.

 

지나온 오곡재 방향.

 

가야 할 미산령 너머 746봉 방향.

 

가야할 여항산 방향.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진 가야할 낙남능선.

 

봉우리 아래 전망바위에서 아침식사 장소를 물색 중인 손총무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743봉과 여항산.

 

당겨본 우측 아래 여양리 둔덕마을 전경.

 

북쪽 군북면 사촌 방향의 660봉.

 

후미들도 군북 사촌 방향 갈림길 능선봉에 도착하고,

 

 

능선 위 널찍한 등로 한켠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우측 진전면 방향 계곡 조망이 마치 강원도 심산유곡을 연상케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낙남길 잇기에 나서는 백두들.

 

 

미산령 에코브리지 위에서 내려다본 좌측 군북면 쪽 도로.

 

<미산령(550m)>

함안군 파수리에서 창원시 진전면 여양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아담한 쉼터 정자와 동물 이동통로가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도 아닌데 뜬금없는 동물 이동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6.25 전쟁 중, 낙동강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 경찰, 학도병의 유해 발굴 현장이기도 하다. 물론 전쟁 중에는 치열한 공방이 있었던 전쟁 터였다고 한다.


우측 아래에 정자가 있고 743봉으로 향하는 나무계단길도 내려다 보인다. 

 

미산령 에코브리지 위를 지나는 백두들.

 

좌측 함안면 방향.

 

우측 마산합포구 진전면 방향.

 

 

돌아본 군북 사촌 갈림길 봉우리 방향.

 

743봉 오름길은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 가고, 

 

 

통나무계단과 돌계단으로 등로를 정비해 놓아서 걷기에 불편함은 덜하다.

 

돌아본 미산령과 오곡재 방향.

 

우측 진전면 방향으로 새벽에 출발한 발산재가 중앙 능선 너머쯤이다.

 

 

우전방으로 여항산 지나서 가야 할 서북산 방향 능선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함안군 함안면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다시 한번 돌아본 미산령과 660봉 방향.

 

북서쪽 군북면 방향.

 

당겨본 함안면 소재지 모습.

 

당겨본 군북면 소재지.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오봉산 방향.

 

지나온 오곡재와 527봉 방향.

 

우측 진전면 방향.

 

 

옛 성터의 흔적쯤으로 보이는 석축의 흔적을 밟고 오르며, 

 

새벽부터 걸어온 낙남능선을 가늠해 보고,

 

진전면 어양리 여양저수지 방향도 조망해 본다.

 

 

743봉에 도착한다.

 

이게 743봉 정상석일까?

 

이제 여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완만해 보이고,

 

우측 아래로 여양리 여양저수지가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걸어온 낙남능선.

 

새벽에 출발했던 발산재 방향.

 

서북산으로 이어진 낙남능선에서 우측 여양리 방향의 지능선들.

 

 

가야 할 여항산 방향 능선.

 

다음 구간 가야 할 광려산과 무학산 방향.

 

동쪽 무학산 방향.

 

 

돌아본 743봉.

 

좌측 아래로 여항면 주서리가 내려다 보인다.

 

지나온 미산령 방향.

 

오곡재 미산령을 지나 743봉으로 이어져온 낙남능선.

 

광려산과 무학산 방향.

 

우측 여양저수지 방향.

 

 

돌탑봉 도착.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에 돌들이 조금 많이 쌓여 있는 봉우리에 몇 개의 돌탑을 쌓아 놓았다.

 

 

 

여항산 동쪽 사면을 따라 북쪽 함안면 파수리 미산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배능재를 지난다.

 

 

좌측 좌촌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하여,

 

돌아본 743봉과 미산령 방향.

 

 

좌촌 갈림길을 지나자 바로 널찍한 헬기장이 있는 759봉에 올라서게 되고,

 

다시 좌촌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여항산 직전 암봉에 올라서면 여항산 정상에 도착해 있는 백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항산 정상 도착.

 

<여항산(餘抗山 770m)>

여항산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1583년(선조 16년) 정구(鄭逑)가 함주도호부사로 이곳에 부임하여 이 산에 '여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항산은 함안의 특이한 지형 때문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은데, 1586년 군수로 부임한 정구는 '남고북저의 지형을 가진 함안에 역모의 기운이 있다'하여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바로잡고자 했다고 한다. 산이 높은 남쪽은 배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여항(餘航), 지형이 낮은 북쪽은 대산(代山)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안 사람들은 '대산과 여항은 그전부터 사용해 오던 지명으로 이 설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펄쩍 뛴다.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에 여항산의 꼭대기가 배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여항'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경상도지리지'(1425년)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문헌기록에 '남을 여(餘)'자에 '배 항(航)'자로 기록되어 있다.

 

낙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남쪽 해안 경계를 가르는 구간은 배와 물에 관한 지명이 많다. 예전에 물이 넘쳐 배가 걸렸다는 이야기가 조계산 선암사, 배치고개, 여항산 등에서 확인이 된다. 이 구간은 해양문화권과 내륙문화권을 가르는 경계로, 서로 오고가는 게 불편했던 예전에 내륙문화권의 민초들이 들리는 풍문으로 산 넘어 바다를 동경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짐작하는 이도 있고, 아니면 오래전에 남해바다에 큰 해일로 물이 넘쳤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여항산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좋다. 북동쪽으로 무룡산, 청룡산(작대), 천주산, 투구봉, 무학산, 광려산, 봉화산이 여항면 뒤로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동방향으로는 가야 할 마당바위와 서북산이 지척이다. 남쪽 바로 아래 창원시 진전면 소재지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진주시 반상면도 뚜렷하고 백화산 오봉산 뒤로는 지리산도 아득하다.

 

여항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서북산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방어전선지역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며, 이번 종주길에서 움푹 파인 곳을 여러 군데 지나게 되었는데, 포탄이 떨어진 흔적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동쪽 무학산 방향 파노라마. 

 

돌아본 미산령 방향.

 

오봉산과 660봉 방향.

 

오봉산 갈림길이 있었던 527봉 방향.

 

걸어온 낙남정맥 능선.

 

진전면 방향.

 

가야 할 서북산 방향.

 

대부산과 서북산 방향.

 

다음 구간 가야 할 광려산 방향.

 

동쪽 무학산과 천주산 방향.

 

 

여항산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좌측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여항저수지 조망.

 

함안면 방향.

 

 

여항산 정상 증명.

 

 

여항산 정상석.

 

함안 땅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아 풍수지리설에 반하는 지형이라 한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고자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북쪽의 낮은 들에는 산을 대신하는 ‘대산면’을, 높은 산들이 솟은 남쪽에는 배도 다닐 수 있다는 뜻의 ‘여항면을’ 두었다는 설을 되새기며,


 

여항산을 뒤로하고 서북산을 향한다.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낙남능선을 가늠해 본다. 

 

 

여항산 내림길은 가파른 절벽 암릉 코스로 이어진다.

 

찬바람 피하는 남쪽 절벽에 쉬어가기 좋을 만한 전망바위가 있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서북산 방향.

 

남쪽 진전면 적석산 방향.

 

서북산 좌측으로 진동만쯤으로 보이는 바다도 조망된다.

 

당겨본 진동만 바다.

 

다음 구간 가야 할 광려산과 무학산 방향.

 

 

절벽을 따라 길게 매어 놓은 밧줄을 잡고 여항산을 내려서는 백두들.

 

 

 

절벽과 어우러진 멋진 소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여항산 정상 암릉을 내려서면,

 

 

좌측 좌촌 방향과 여항산 정상을 우회하는 갈림길을 지난다.

 

돌아본 갈림길.

 

 

능선 곳곳에는 전망바위와 쉼터가 산재해 있다.

 

 

다시 앞쪽으로 절벽이 있는 바위 전망대에 도착하여 본 우측 오봉산 길림길봉 방향.

 

가야 할 소무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조망.

 

소무덤봉 너머로 서북산이 아득해 보인다.

 

 

바위 암릉을 내려서고 있는 백두들.

 

돌아본 여항산 모습.

 

돌아본 여항산과 미산령 방향.

 

살짝 당겨본 여항산 정상 모습.

 

 

추락사고 위험 안내판을 넘어서 전망바위에 오르면,

 

서북산 방향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여항산을 배경으로.

 

오곡재를 깔고 앉아~~

 

 

산에서 영면에 든 이의 추모비가 너럭바위에 붙여져 있다.

 

 

 

다시 한번 외줄에 의지하며 절벽을 내려서고,

 

 

 

절벽을 내려서니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돌아본 절벽길.

 

 

돌아본 오곡재 방향.

 

 

잠시 등로는 호젓한 사면길을 따라 소무덤봉을 우회하여 지나고,

 

 

헬기장쯤으로 보이는 공터를 지난다.

 

 

군데군데 조망이 좋은 너럭바위도 나타난다.

 

우측 여양리 방향.

 

 

어느새 여항산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작은 나뭇가지 사이로 이어진 등로를 따라 오르면,

 

 

706봉 직전 봉우리 위로 오르게 되고,

 

봉우리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서북산 방향 조망.

 

진전면 평암리 523봉 방향.

 

우측으로 소무덤봉에서 남서쪽 평암리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이 우람하게 이어져 있다.

 

 

등로는 낭떠러지 위로 이어지더니,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서기도 한다.

 

 

돌아본 벼랑길 능선.

 

돌아본 여항산 방향.

 

우측 평암리 방향.

 

 

쉬어가고 싶은 너럭바위를 지나면,

 

 

좌측 주동리 별천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706봉을 지나게 된다.

 

별천마을 능선갈림길 이정표.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봉화산 방향.

 

봉화산과 대부산 뒤쪽으로 다음 구간 가야 할 무학산과 광려산이 보인다.

 

가야할 서북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조망하고 있는데, 손경익 지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서북산을 오르고 있는데.. 어디쯤이냐고?

우리도 서북산 오름길에 있다고 답하며, 정상에서 만나자고 해 놓고는 서북산 오름길을 시작한다.

 

 

다시 별천마을 갈림길을 지나고,

 

 

서북산 오름 능선길을 따르는데, 손지점장의 두번째 전화가 왔다.

열심히 가고 있으니 정상에서 만나자~~!

 

서북산 위에 올라 있는 백두들의 모습이 보인다.

 

좌전방으로 대부산과 광려산이 다가온다.

 

좌측 대부산 방향 조망.

 

좌측 여항면 주동리 조망.

 

여항면 방향.

 

돌아본 여항산 방향.

 

 

서북산 정상 도착.

 

서북산 전적비.

 

<서북산에 세워진 “서북산전적비”에는 한글과 영문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하였던 곳으로, 50년 8월에 미 제25사단 이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유엔군이 총반격작전을 가능케 하였던 격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 외 1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주한 미 8군 사령관 리챠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사단장병 및 지역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웁니다. -1995.11월-

 

서북산 정상석.

 

<서북산(西山, 738.5m)>

서북산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서북단에 위치한다고 해서 ‘서북산’으로 불린다. 한국 전쟁 당시 2개월 동안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 데서, ‘갓뎀(got damn, 제기랄,젠장)’이라 한데서 갓데미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의 격전에서 희생된 적군과 아군의 백골이 산적하였다 하여 ‘백마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서북산 정상에는 서북산전적비가 있고 헬리포터도 있으며, 마산 앞바다가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서북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따사로운 봄볕에 새벽부터 나선 산행길의 피곤한 몸을 맡기고..

 

주변의 시원스런 조망을 즐기며 여유로운 쉼을 한다.

 

 

마산 앞바다 조망.

 

당겨본 진동면 앞바다.

 

 

서북산 증명.

 

 

 

서북쪽 이반성면 방향.

 

남서 진전면 수리봉 방향.

 

서북산에서의 여유로운 쉼을 마감하는 백두들.

 

마산 앞바다 조망.

 

가야 할 대부산으로 이어지는 낙남능선.

 

백두들이 떠난 서북산 정상 전경.

 

 

서북산을 뒤로하고 감재고개로 향한다.

 

우측 진동면 방향.

 

서북산에서 남쪽 진전면 수리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모습.

 

 

감재고개로 내려가는 서북산 내림길은 무척 가파르게 이어진다.

 

 

새벽부터 이어진 낙남길에서 일반 등산객은 한분도 만나지 못했는데,

앞쪽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등산객이 울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손경익 지점장이다!

 

백두들 마중을 나온 손지점장!
멀리 울산에서 이곳까지 마중을 나왔다니 역시 백두회원 자격을 확실히 갖춘 듯.

그래서 많은 무단결석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전화로 통화하면서 서북산 정상에서의 조우를 예정했지만,

이곳 서북산 내림길에서 손경익 서북산 조우 기념 인증을 남긴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 함께 서북산 내림길을 이어간다.

 

벌써 노오란 생강나무 꽃들이 피기 시작한 서북산 내림길에서 바라본 진전면 방향의 능선.

 

 

급경사의 서북산 내림길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앞쪽으로 감재고개를 지나 올라야 할 대부산 능선이 다가온다.

 

대부산으로 이어진 낙남능선.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감재고개를 지난다.

 

<감재고개>

함안군 여항면 주동리와 마산합포구 진북면 영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감재고개 이정표.

 

 

감재고개 좌측 대부산과 봉화산 조망.

 

 

감재고개에서 봉화산 방향으로 오르면 임도길을 만나게 되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자동차 바퀴 자국이 있는 널찍한 임도와 만난다.

 

우측의 임도가 감재고개에서 사면을 따라 이어온 임도다.

 

좌측 여항면 주동리 방향.

 

돌아본 서북산 조망.

 

좌측이 가야 할 낙남길의 대부산 능선 봉우리이고, 우측 봉우리가 평지산(491)과 배틀산(436)이다.

 

 

잠시 임도길을 따르다가,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지점에서 직진의 능선길로 들어선다.

 

 

산행의 막바지에 오르는 봉우리는 늘 우리를 힘들게 한다.

 

좌측으로 서북산에서 진북면 지산리 방향으로 뻗은 지능선이 꿈틀거리는 듯 보인다.

 

 

돌아본 감재고개 방향.

 

서북산 방향.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진 낙남능선.

 

 

힘겹게 대부산 능선 위로 올라 603봉에서 잠시 배낭털이에 나선다.

 

 

대부산으로 이어진 수레길 수준의 편안한 능선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다음 구간 가게 될 광려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부산 정상 도착.

 

<대부산(649.2m)>

대부산 정상에는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판자로 만든 표지판 하나만이 나무 그루터기에 덜렁 걸려 있다. 초라하긴 하지만 이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알 길이 없이 지나쳤을 듯 별다른 특징이 없다.

 

그래도 대부산 정상 증명을 남긴다.

 

대부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목.

 

 

봉화산 갈림길에서 낙남길은 우틀하여 한티재를 향해 내림길로 접어든다.

 

갈림길에서 직진 방향의 봉화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직진의 봉화산 방향으로도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져 있다.

 

 

한티재를 향한 급경사의 내리막길은 낙엽이 쌓여 흔적이 희미하고 잡목숲 속으로 이어진다.

 

 

잠시 후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너럭바위를 지난다.

 

앞쪽으로 넘어야 할 봉우리 하나가 불쑥 나타나며,

 

우측 안들과 좌측 봉곡을 잇는 음양골고개를 지난다.

 

음양골고개에서 잠시 쉼을 하는 백두들. 

 

음양골고개 이정표에는 좌측 봉곡 방향만 표시되어 있다.

 

 

한티재 직전 봉우리(334m)를 넘는다.

 

 

이제 한티재까지는 더 이상의 봉우리는 없지만, 내림길이 다시금 급하게 이어진다.

 

다음 구간 첫번째 봉우리인 광려산이 성큼 다가와 있다.

 

 

소나무 사이로 한티재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한티재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한티재>

'한치(티)’라는 지명은 광려산과 봉화산 사이에 있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한티고개’ 또는 ‘진고개’로도 알려져 있다. ‘큰 고개’, ‘목 너머’, ‘대현’이라고도 불렀으며, 예로부터 진북면에서 함안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에서 가장 큰 고개였다.


한티재 전경.

 

한티재에 있는 '충렬공 이방실 장군 태역비'가 있다.

 

이방실 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장수로, 이곳 함안 지방에서 태어난 함안 이씨의 시조다. 홍건적의 난에 큰 공을 세웠으나, 고려말 혼란기에 정적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장수였다.


한티재 광려산 들머리 이정표.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해 두고,

 

 

마산 진북면 목감탕에서 먼지를 닦고,

 

 

다시 한티재로 돌아와,

 

한티재 보리한우 식당에서,

 

울산에서 마중 나온 손경익 지점장이 쏜 한우를 푸짐하게 먹어 버린다.

 

불판에 고기가 익어 갈수록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져 간다.

 

 

덕분에 나도 귀한 한우로 넉넉히 먹었네.

 

 

좀처럼 보기 힘든 버스 안 음주도 감행하며 서울로 향한다.

 

산행의 즐거움이란 정상에서 맛보는 시원한 전망과 함께

호젓한 오솔길과 위험한 암릉길이 적당히 어우러진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금번 낙남길에서 춥고 어두운 밤길을 더듬으며 시작했지만

이런 즐거움을 모두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한 기분으로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