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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천태산 대성산 종주 : 느긋한 산행을 원했건만 오늘도 공염불로 그친 영국사 탐방.

by 재희다 2017. 12. 13.

산 행 지 : 천태산, 대성산 (충북 옥천군, 영동군)

산 행 일 : 2017. 12. 09.(토)

산행코스 : 의평교 ~ 의평저수지 ~ 대성산 ~ 꼬부랑재 ~ 투구봉 ~ 감투봉 ~ 신음산 ~ 천태산 ~ D코스

              ~ 영국사 ~ 영국사 주차장 (16km, 8시간)

산행참가 : 19백두.

 

<산행지도>

 

산행 후 서울 강남역에 18시까지는 도착해야 한다는 예기를 듣고, 교통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탈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찾다가 보니 대전 근교에서 산행지를 찾아야 했다. 아직도 가지 않은 100대 명산 중에는 서대산과 천태산이 남아 있어서 처음에는 천태산에서 서대산으로의 종주를 계획했으나, 최근 들어 부쩍 약해진 주력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듯했다. 그래서 대전의 산꾼들이 많이 가는 '보만식계'를 나눠서 해볼까도 고민하다가,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천성장마'라 해서 천태산.대성산.장령산.마성산까지의 도상거리 26km을 종주하는 코스를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천성장마'코스도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듯하여, 반을 잘라 천태산에서 대성산 구간을 먼저 진행하고,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머지 구간을 가기로 했다. 아울로 천태산이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주된 이유가 산자락에 있는 영국사 때문이라는 예기를 듣고, 영국사를 산행 막바지에 배치하여 여유를 가지고 살펴볼 수 있도록 대성산에서 천태산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따뜻한 날씨가 며칠간 이어지다가 산행일이 다가오며 강추위가 찾아왔다. 산행일인 토요일의 영동지방 기온이 영하 7도로 예보되며 쉽지 않은 산행이 예상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토욜 아침부터 추위가 조금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늘 떠나야 하는 산행이니, 사는 게 다 그러려니 하는 편한 마음으로 양재에서 버스에 오른다.

 

 

대성산 등산로는 정상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의 동쪽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동북쪽에서는 이원면 소재지나 윤정리에서 문안골을 거쳐서 주능선으로 오르고, 동쪽에서는 의평리에서 의평저수지를 지나 문밖골을 거쳐서 주능선으로 오르게 되며, 동남쪽에서는 개심리 개심저수지에서 장화골을 거쳐서 꼬부랑재로 오르는 코스가 있다. 이 중에서 의평리에서 오르는 등산로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대표적인 코스인지라, 우리도 의평리에서 출발하여 문밖골을 따라 문안재로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다.

 

<대성산 등산 개략도(조선 산에서 펌)>

 

 

차가운 겨울밤을 가르며 달려서 의평리 의평교 직전 정자 앞에 도착하고,

한 시간쯤의 쪽잠을 즐긴 후, 산행 준비를 하고는 차가운 밤공기에 온몸을 내 맡긴다.

 

 

의평리 표적 좌측 도로를 따라 대성산을 향한 산행을 시작한다.

 

 

낚시터가 있는 의평저수지를 지나 200여 미터쯤 더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좌측 폭포골과 우측 문밖골이 갈리지는 지점에서 우측 문밖골 방향의 숲길로 들어서고,

잠시 후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에 정상으로 향하는 등로가 있다.

 

 

문안재로 향하는 산길로 들어서니, 그나마 희미한 등로를 낙엽이 수북이 덮고 있어서 등로 찾기가 만만치 않다.

 

 

'현위치 큰폭포'라 표시된 이정표를 만나고서야,

우리가 정상적인 등로를 따르고 있다는 안도감이 찾아든다.

 

 

선바위가 있는 문안재에 도착한다.

문안재는 동북쪽 윤정리와 남쪽 의평리의 경계로, 윤정리에서 문안골을 거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제부터는 좀 더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리라 기대하며 따뜻한 커피를 꺼내 마시며 편안한 마음으로 쉼을 한다.

 

 

문안재에서 서남쪽 사면 방향의 오솔길을 10여분 걸으면 '절터'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 절터는 옛날 속리산 말사였다고 전해진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절터를 지나자 주능선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작은폭포 갈림길이 있는 꼭지점사거리를 지난다.

이곳은 의평리에서 폭포골을 거처 올라오는 등로와 이원면 소재지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만나는 지점인데, 우리는 직진의 정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우측으로 옥천읍과 이원면 소재지의 불빛이 조망되고,

 

 

대성산 직전 안부쯤으로 짐작되는 방안폭포 갈림길을 지난다.

 

갈림길 한쪽에는 '천성장마'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장령산은 이곳 안부 조금 위에 있는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봉우리 동쪽 사면으로 우회길이 있어서 많이들 헛갈려 하는 곳이다.

 

 

'천성장마' 능선 분기점 봉우리를 좌회 하니 본격적인 대성산 정상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그동안 보이지 않던 눈이 등로를 덥고 있다.

급경사의 바위길이라 모두들 아이젠을 착용하고 대성산 정상을 향한다.

 

 

대성상 정상 도착.

 

<대성산(大聖山, 705m)>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의평리에 있는 산으로, 옥천에서 서대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예로부터 큰 성인(聖人)이 나타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산 아래 마을에서 학자와 효자가 많이 나와 문필봉(文筆峰)이라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대성산 정기를 죽이려고 정상 부근에 철침봉(鐵針棒)을 박아 놓았다는 설도 있다.

주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을 자랑한다. 특히 이 산은 폭포가 아름다운데, 총 4개의 이름 있는 폭포 중 세번째 폭포에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한 어느 선비의 폭포 예찬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높이 50cm로 오언 절구의 한시가 새겨져 있는데, 폭포를 예찬하기 위해 비를 세운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의 영향으로 산 이름이 데구름, 데구리 또는 덕운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 북쪽 기슭에는 옥천군에서 최초로 세워졌던 삼계서원터가 자리 잡고 있다. 석축의 흔적으로 보아 매우 큰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효종 8년(1657) 조헌의 위판 문제가 당쟁에 휘말려 헐리고 지금은 기념비석만 외롭게 서 있지만, 약수터와 길고 잘 쌓은 석축이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오른쪽으로 호롱꼭지처럼 생긴 국사봉과 마니산·월이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서대산·식장산·고리산 등이 보인다. 첩첩이 쌓인 산줄기가 안갯속처럼 검푸른 빛을 띠고 있으며 S자로 구부러져 흐르는 강과 직선으로 뻗은 도로와 철도,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기차, 울긋불긋한 집과 넓은 평야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대성산 정상에는 대성산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낡았다.

 

 

차가운 밤공기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어둠으로 서둘러 대성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천태산을 향한다.

 

 

천태산 방향으로 등선을 따라 조금 내려서니, 지능선을 따라 의평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잠시 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꼬부랑재에 도착하는데, 꼬부랑재에는 대성산기도원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꼬부랑재를 지나니 이내 철탑봉이라 부르는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는데,

 

이제 주위가 어슴프레 밝아오며 좌측 개심리 방향 조망이 보인다.

 

 

대성산에서 천태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렇게 또 봉우리를 넘고 있는 서 여사님.

 

 

새벽 일찍 시작한 산행으로, 아침 먹자는 아우성이 빗발치기 시작할 즈음에 묵묘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하여,

 

상고대가 열리기 시작하는 차가운 봉우리 꼭대기에서 준비해온 아침식사를 한다.

 

 

아직도 온기를 지닌 따뜻한 차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마감하고,

 

 

천태산을 향한 능선 산행을 이어간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여 오르면,

 

 

'투구봉(687m)'이라는 매직펜 글씨의 아크릴판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지도마다 투구봉의 위치가 조금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데, 표지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투구봉이 맞는 듯하나, 주변은 안개로 분간이 어려우니 간단한 정상 인증만 남기고 지나친다.

 

 

투구봉을 내려서니 펑퍼짐 한 안부를 지나게 되고,

 

 

이내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나무로 된 이정목이 있는 무명봉을 지난다.

 

무명봉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어서 백두들은 우회길을 따른다.

 

 

잠시 구름이 걷히며 동쪽 방향으로 마니산이 조망되고,

 

가야 할 비음산과 감투봉이 앞을 막아선다.

 

 

바위가 듬성듬성 박혀있는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서대산 방향 능선 분기봉인 '감투봉'에 도착한다.

 

감투봉을 향해 오르고 있는 백두들.

 

감투봉 정상 나뭇가지에 '장령지맥 701m'라는 표지판이 걸려있고,

5분 거리의 신음산 정상에서 쉬자는 제안에도 지금 당장 쉬어가자며 가파른 오름길로 빨라진 숨을 가라앉힌다.

 

 

감투봉 정상에서 200여 미터를 진행하자 신음산 정상석이 나타난다.

 

<신음산(神陰山, 쉰음산, 678m)>
충청남도 금산군의 제원면 길곡리와 군북면 두두리, 산안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신음산은 군의 동쪽 27리에 있다.'라고 하여 관련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최고봉인 국사봉(國師峯)은 옛날 나라에 일이 있을 때 제사를 지내던 산이라 하여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신음산의 서남쪽 자락에는 신라 진평왕 때 무염선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신안사(身安寺)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금산)에 '신안사는 신음산에 있다.'라고 하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안사라는 이름은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천태산 영국사(寧國寺)에서 수학할 때 이 절에 가끔 들러 유숙하였는데, 주위 환경이 맑고 아름다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여 신안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해동지도(금산)'에는 자안사(自安寺)로도 기록되어 있다.

 

신음산 정상을 지나는 회장님.

 

신음산 정상의 가녀린 상고대.

 

 

신음산을 지나자 금산군에서 설치한 제법 그럴듯한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정표의 '주차장'은 신안사 주차장을 가리키는 듯하다.

 

 

천태산이 가까워지는지 등로 주변에는 기암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쌀가루를 뒤집어쓴 바위도 담아본다.

 

돌아본 개심리 방향 조망.

 

동북쪽 누교리 방향 조망.

 

내려다본 누교리 방향 조망.

 

 

쌀가루를 뒤집어 쓴 너럭바위에 파란 아기 소나무가 이채롭고,

 

가야 할 천태산 방향으로 '공기바위'가 보인다.

 

 

우측으로 절터 갈림길을 지나자,

 

가아할 천태산 우측 아래로 계단길이 보이는데, 저 계단길은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다.

 

 

우측으로 공기바위를 지난다.

 

공기바위는 옛날 힘이 대단한 한 장수가 이곳 바위에 앉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바위로 공기놀이를 하다가 두고 간 바위라 하여 공기바위라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공기바위 옆 암릉을 내려서는 백두들.

 

암릉 아래에는 공기바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돌아본 공기바위 방향.

 

 

본격적인 천태산 오름길은 가파른 직벽 암릉부터 시작되는데,

밧줄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미끄러운 절벽을 오르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좁은 바위틈새를 따라 올라야 하는데, 발을 딛는 바위도 미끄럽고 손으로 잡아야 하는 밧줄도 미끄럽다.

 

 

눈가루를 뒤집어쓴 바위가 마치 독수리나 비둘기 머리처럼 보이고,

 

이번에는 높은 바위 절벽을 좁은 바위틈 사이로 오른다.

 

바위 사이의 틈이 좁아 오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절벽 밧줄 구간을 올라서서 돌아본 능선.

 

눈으로 덮여 미끄러울 듯 보이는 바위전망대에서, 태연스러운 포즈를 취하는 정 여사님.

 

우측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방향 조망.

 

 

밧줄 구간을 올라서도 천태산 정상을 향한 가파른 암릉길이 이어진다.

 

눈 덮인 바위와 동쪽 봉화산 방향.

 

 

우측 신안리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모처럼 산행에 오신 영식형이 '내가 오면 산행길이 어렵다'라고 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인다.

 

 

100대 명산 천태산 정상에 도착한다.

 

날씨가 추워서 꺼내 보지도 못했던 과일을 너도나도 꺼내어 과일 파티를 연다.

 

<천태산(天台山, 714.7m)>

충북 영동군 양산면과 충남 금산군 제원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돈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다. 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들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은 고려시대 천태종의 본산이었기 때문에 산 이름도 "천태"가 된 영동의 명산으로,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며,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리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이름난 명소가 산재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여름철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기암과 각종 수목의 푸름과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천년고찰인 영국사가 자리잡고 있어서 천년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 있다. 기암절벽과 태고의 천연숲이 심산유곡의 맑은 물과 장엄한 산세를 이루고 주위에는 서기 668년 문무왕 때 세운 영국사와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은행나무가 있으며, 원각국사비, 3층석탑 등 많은 보물과 함께 자연경관과 동.식물 서식환경이 우수하여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구름으로 주변 조망이 없어진 아쉬움을 제각기 가져온 온갖 과일들로 과일 파티로 채운 후,

모두 함께 천태산 증명을 남긴다.

 

물론 나도 인증을 남긴다.

 

 

천태산 인증을 마치자 누군가 앞장서서 천태산 정상석 뒤쪽으로 이어지는 금산군 제원면 방향의 등산로로 들어서니, 거의 대부분의 백두들이 따라나선다. 그쪽이 아니라고 소리쳐 부르는데, 옆에 있던 손 점장이 내 입을 막고는 직접 가서 데려 오겠다고 한다. 시간도 넉넉하니 잠시 장난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여, 잠시 더 정상에서 느긋한 기다림을 한다.

 

체 3분도 지나지 않아서 마실 갔던 분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한 모습의 손 점장이 돌아온다.

다들 한바탕 헛웃음으로 시름을 날리며 천태산을 뒤로한다.

 

 

천태산 정상에서 영국사로 내려가는 등산로 중에서 가장 길지만 상대적으로 완만한 D코스로 따르기로 하고 천태산 정상을 뒤로하니, 이내 천태산 등산로의 하이라이트인 75m 암릉구간이 있는 A코스 갈림길을 지난다.

A코스의 암릉구간도 우회로가 있어서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급할 게 없는 산행인지라 능선을 따라 멀찍이 돌아서 내려가기로 했다.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운 엄동설한에 야영을 하는 텐트도 보인다.

이제 한낮인데도 아직 텐트 안에서 뭘 하는지 조금은 궁금증도 인다.

 

 

능선을 따라 가파른 암릉길을 내려서면,

 

널찍한 헬기장도 지나고,

 

잠시 후 폐쇄된 B코스 등산로 갈림길도 지나는데,

 

B코스 등산로 바로 옆에는 C코스 등산로 갈림길도 연이어서 나타난다.

 

 

C코스 등산로 들머리 봉우리에 오르니, 좌측 영국사 방향으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내려다본 영국사 전경.

 

살짝 당겨본 영국사.

 

남동쪽 남고개 너머로 이어진 지능선 조망.

 

돌아본 천태산 정상.

 

남서쪽 금산군 제원면 방향.

 

전망봉에서 신고 있던 아이젠을 배낭에 갈무리하고는 능선을 따라 영국사 방향 D코스 하산길을 이어간다.

 

 

우측으로 금산군 제원면 방향의 조망이 펼쳐지는 조망바위를 지나고,

 

또 잠시 내려서니 남쪽 영동군 학산면 방향으로 갈기산과 월영봉이 조망된다.

 

남동쪽 남고개 건너편 능선과 비봉산 방향.

 

 

다행히 남쪽 능선이라서 눈이 녹아 있다.

 

암릉에서 바라본 갈기산 방향.

 

남고개 방향.

 

 

커다란 고래가 나뭇가지에 막혀서 넘어오지를 못하고 있다.

 

 

돌아본 천태산 지능선의 암릉 모습.

 

 

여러 곳의 전망바위들 중에서 이곳에는 아예 '전망석'이라는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하며 쉬었다 갔으면 좋겠지만, 갈기산 방향 조망만 카메라에 담는다.

 

동쪽 마니산 방향.

 

남동쪽 비봉산 방향.

 

남쪽 갈기산 방향.

 

전망바위에서 본 파노라마.

 

 

전망석 쉼터를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니, 멧돼지 모양의 바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암릉 능선이 끝나고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 사면을 따라 잠시 이어지더니,

 

남고개로 오르는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이내 남고개 정상을 지난다.

 

 

남고개를 옆 철울타리에 수많은 표지기들이 걸려 있는데, 전국의 산악회 표지기가 모두 이곳에 걸린 듯하다.

 

 

자그마한 봉우리에서 돌아본 칼바위능선 봉우리.

 

북쪽 영국사 방향의 지능선 모습.

 

 

영국사 뒤편쯤의 소나무숲에 자그마한 탑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하는 듯하여,

 

따르던 영국사 방향 등로를 두고 좌측 소나무 숲으로 가 보니,

 

자그마한 영국사 승탑이 있는 언덕에 소나무숲이 멋지다.

 

 

원각국사비 뒷편의 사리탑.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전각.

 

원각국사비 안내판.

 

<영국사 원각국사비(寧國寺 圓覺國師碑)>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원각국사의 탑비로, 보물 제5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체 높이 371㎝, 비신 높이 165㎝, 너비 78㎝, 두께 13㎝로 현재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전하나, 점판암의 비신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으로 둔중하다. 이수에는 형식적인 운룡문이 새겨져 있고, 앞면 가운데에는 ‘圓覺國師碑銘(원각국사비명)’이라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어 있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1174년(명종 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문에는 찬자(撰者)·서자(書者)와 건립 연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동국여지승람』과 『대동금석서』에 의하면 찬자는 한문준(韓文俊)이며 건립 연대는 1180년이다.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원각국사비를 뒤로하고 영국사 경내로 들어간다.

 

영국사 전경.

 

 

잠시 전 지나온 승탑들을 가리키는 이정표.

 

영국사 대웅전 앞 전경.

 

<영국사(寧國寺)>

충남 금산군과 충북 영동군의 경계에 자리 잡은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일명 지륵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법주사의 말사이며, 양산면 일대의 산지와 금강 줄기가 뒤섞여 엮어내는 양산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풍광 좋은 절이다.

 

절 입구 주차장에서 15분가량의 절까지 가는 길은 바위 좋고, 물 좋고, 바람 좋은 산길이다.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바위들 사이로 너그러운 물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노라면, 도중에 엄청나게 큰 미끄럼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삼단폭포를 만나 눈과 귀를 씻는다. 거기서 한 구비 더 돌아 올라가면 왼쪽으로 망탑봉 가는 오솔길이 갈라지고, 산속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까 할 만큼 너른 터가 갑자기 펼쳐진다. 절은 그 안에 폭 들어앉아 있다. 절터 위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는 앞쪽의 좁다란 다랑논들을 적시고 삼단폭포 쪽으로 내려가는데, 그 위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23호이며, 수령이 500년쯤 된 이 은행나무의 높이는 자그마치 20m에 이른다. 은행나무 너머로 자그마한 대웅전이 보이고, 뒤편으로는 천태산 자락이 병풍처럼 주욱 둘러쳐져 있다. 편안하고 볕바른, 한살림 족히 꾸려낼 만한 희한한 산 속 터전이다.

 

영국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신라 문무왕 때 혹은 진평왕 때라는 설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 후 고려 문종(1046~1083)의 넷째 아들로서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천태교학을 익힌 후 돌아와 고려 천태종을 연, 대각국사 의천이 이 절을 크게 중창하고 동·서·북암을 지었다. 이때 대각국사는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륵산이던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고려 고종 20년(1233)에 감역 안종필이 왕명을 받아 탑과 부도, 금당을 중건하였다.

 

영국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공민왕 때부터라고 전해진다. 공민왕 10년(1361)에 고려 땅으로 쳐들어온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시킬 지경에 이르자, 공민왕은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원면 마니산성에 머물던 공민왕은 가까운 국청사에 들러 나라가 평안하기를 비는 기도를 했고, 그 후 왕이 나라의 평안을 빈 절이라 하여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불렀다는 것이다. 이때 절 아래 마을 사람들은 왕이 다니기 편하도록 산 위의 절까지 칡넝쿨로 엮은 다리를 매달아주었는데, 누교리(樓橋里)라는 마을 이름은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본래 절터는 지금 대웅전이 있는 곳에서 천태산 주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 터는 지금 밭으로 변했는데 부근에서 기와조각이나 청자, 백자 조각들이 자주 발견되며 오래된 석축들을 볼 수 있다. 지금 영국사에는 동쪽을 바라보고 앉은 대웅전을 자그마한 대숲이 둘러싸여 있고, 그 앞에 아담한 통일신라 말의 삼층석탑이 있다. 영국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건물이다. 안에는 삼존불이 모셔졌고, 신장탱과 삼장보살도 등이 걸려 있으며, 1980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요사채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 간 곳에는 고려 원각국사비가 있고, 또 조금 더 가면 절터를 감싸 안듯 나지즈막이 뻗어 내린 소나무 둔덕에서 작고 단정한 팔각원당형 부도를 볼 수 있다. 절 앞쪽으로 뚝 떨어져 우뚝한 바위 봉우리(망탑봉)에는, 자연암반을 기단 삼아 올려진 삼층석탑이 있어 영국사의 명물로 꼽힌다.(펌)

 

영국사 요사체 전경.

 

영국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대웅전을 뒤로하고 만세루 아래로 내려서면,

 

앞쪽으로 영국사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천태산 등산로 이정표.

 

천태산 등산코스는 영국사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부터 A·B·C·D 4개가 있는데,

​- 미륵길이라 불리는 A코스는 최북단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최단 코스이고,
- 관음길이라 불리는 B코스는 영국사로 직접 이어지는 가파른 코스로 최근 폐쇄되었다.
- 원각국사길이라 불리는 C코스는 영국사 남쪽 원각국사비에서 구멍바위를 지나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 남고갯길로 불리는 D코스는 남고개로 이어지는 길로 하산할 때 많이 이용한다.

 

영국사 앞 전경.

 

영국사 은행나무.

 

<천년기념물 제223호인 은행나무>
영국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31m, 가슴높이의 둘레는 11m이며 나이는 대략 천 살 정도로 추정된다. 가지는 2m 높이에서 갈라졌으며, 동서 방향으로 25m, 남북 방향으로 22m 정도 퍼져있다. 서쪽 가지중 하나는 밑으로 자라서 끝이 땅에 닿았는데, 여기서 자라난 새로운 나뭇가지는 높이가 5m 이상이나 되고, 가슴 높이의 지름이 0.2m가 넘는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의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하며, 가을에는 이 은행나무와 주변의 경관이 하나로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돌아본 천태산과 영국사 전경.

 

 

영국사 일주문 옆에는 매표소도 설치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 내려서면 삼단폭포를 지나 주차장으로 이어지지만, 나는 망탑봉을 둘러보러 매표소 앞에서 우틀하여 진행한다.

 

 

매표소 앞에서 우틀하여 내려서면 계곡을 건너는 다리나 나타난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옆에 있는 이정표.

 

다리에서 내려다본 삼단폭포.

 

 

삼단폭포 위쪽 다리를 건너 잠시 오르면 망탑봉에 서게 되고 상어흔들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입을 벌리고 있다.

 

<상어흔들바위>
망탑봉 삼층석탑에서 서북쪽으로 20m쯤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크기가 6m, 높이 8m, 무게는 10여 톤인데, 마치 상어가 헤엄을 치며 바다 위로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혼자서 흔들어도 움직여서 흔들바위라고도 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상어 머리로 올라서니 조금 흔들리는 느낌도 든다.

 

상어흔들바위 앞에는 상어가 물어뜯은 듯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망탑봉 삼층석탑.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 있는 보물 제535호인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쯤 되는 곳, 일명 망탑봉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강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데, 자연암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탑 몸돌은 괴임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세웠고, 지붕돌은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탑의 전체 높이는 2.43m이다.

 

망탑봉 안내판.

 

망탑봉에서 바라본 주차장 방향.

 

천태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삼층석탑.

 

 

이쯤에서 백두들이 보여야 하는데 아무도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그냥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간 듯하여 서둘러 망탑봉을 뒤로한다.

 

건너편으로 남고개에서 이어지는 능선의 봉우리가 조망된다.

 

 

남고개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내려서서 좌측 아래 방향으로 진향하면,

 

등로는 계곡의 반석 위로 이어져 있다.

 

계곡 옆 바위가 시루떡처럼 갈라져 있고,

 

계곡 우측으로는 거대한 바위 절벽이 막고 있다.

 

 

한겨울에도 파란 이끼가 이채롭고,

 

진주폭포를 지난다.

 

 

겨울과 여름이 교차하는 등로 옆 바위에는,

 

'천태동천'이라는 글귀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계곡 건너편의 바위 절벽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이 보인다.

 

 

등산로 날머리에 도착하니. '충북의 설악 천태산 계곡'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고,

 

등로 옆을 지키는 노점 아줌마들의 배웅을 받으며 천태산 영국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애마가 기다리는 영국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대성산에서 천태산으로 이어온 종주 산행을 마감한다.

 

 

옥천에 있는 목감탕에서 뜨듯한 사우나로 몸을 덥히고,

 

 

옥천의 명물 도리뱅뱅이와 매운탕으로 유명한 '대박집'에서,

 

2017년 마지막 정규산행 뒤풀이를 시작한다.

 

닥쳐온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무탈하게 정규시즌을 마감하는 백두들!

 

고생 많으셨고, 끊임없는 도전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모처럼 쌓인 술병의 숫자가 조금 늘어난 듯 보이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저번처럼 이번에도,

강남역 인근의 단골 맥주집에서 2차를 즐기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영식형 핸드폰으로 기사분께 연락하여 탄천주차장까지 가서 회수하고,

핸드폰 찾은 기념으로 3차까지 내리 달렸다.

 

무탈하게 2017년의 도전을 마무리하며,

또 내년에는 어떠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새로운 호기심이 돋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