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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금오산 신년산행 : 현월봉에서의 멋진 조망에 대한 기대를 심설산행으로 채운 금오산 종주

by 재희다 2018. 1. 15.

산 행 지 : 금오산 (경북 김천시, 구미시)

산 행 일 : 2018. 01. 13.(토)

산행코스 : 금오동천~전망대~서봉~남봉~돌탑봉~현월봉(976m)~약사암~마애석불입상~오형돌탑

              ~ 대혜폭포 ~ 도선굴 ~ 금오산 공영주차장 (13km)

산행참가 : 18백두.

 

<산행지도>

 

금오산은 개인적으로는 몇 차레 오른 적이 있었지만, 100대 명산임에도 우리 산우회는 아직 오르지 않은 산이다. 신년 첫 산행으로 금오산에 올라 멋진 일출과 시원하게 펼쳐지는 정상에서의 조망을 보며 새해를 여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에 좋을 듯하여, 추운 겨울임에도 금오산을 오르기로 했다.

 

금오산은 우리나라 최초 제1호로 지정된 도립공원이다.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 산이기에 도립공원 1호가 된 게 아닌가 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잡은 금오동천은 금오산의 남쪽 자락인 칠곡군 북삼면 승오동에 위치해 있다. 영남의 명산이자 경상북도 8경 중 첫째로 손꼽히는 계곡으로, 기암괴석 사이로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별천지를 느끼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야 하므로 별반 의미가 없어 보여 좌측 능선을 따라 오르며 멋진 일출을 볼 예정이었다.

 

금오산이라는 명칭은, 옛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 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금오(金烏)는 옛날부터 해(日) 속에 사는 세(三) 발 달린 상상의 새로, 태양 또는 해의 정기를 뜻하는 동물인 삼족오(三足烏)를 말한다. 금오산은 옛날 대본산에서 남승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현재 금오산으로 다시 바뀌었으며,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산을 보고 국토종합개발 초기에 환경보전과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70년 우리나라 최초 도립공원으로 지정(1970,6,1. 면적 37.9k㎡)한 유서 깊은 곳이다.

 


금오동천 주차장에 일찌감치 도착한 버스에서 한참 동안의 쪽잠을 즐긴 후에야 일어나,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일기예보에는 없었던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금오동천 서쪽 능선을 따라 오르다가 1전망대쯤에서 멋진 일출을 기대했는데, 일출은커녕 주변 조망에 대한 기대도 접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금오동천(金烏洞天)>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금오산 도립공원에 속해 있는 계곡이다. 금오산 정상의 서남쪽 해발 800m 주변에 평탄한 지형을 성안분지라고 하는데, 금오동천은 성안분지에서 산 아래로 이어지는 계곡을 일컫는다. 금오동천이란 이름은 계곡의 네 번째 폭포인 벅시소 주변 암벽에 금오동천(金烏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동천이란 산속의 골짜기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금오동천은 산성 내지 중성 마그마의 분출암인 유문암 내지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깊고 험준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계곡의 곳곳에는 웅장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폭포 및 담(潭)이 연이어 발달하여 있다. 폭포는 계곡 위로부터 제1폭포인 선녀탕, 제2폭포인 구유소(소구유의 형태를 닮음), 제3폭포인 용시소(용이 살고 있다고 알려짐), 제4폭포인 벅시소(금오동천이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음) 등이 있다.

 

 

주차장 좌측 개울을 건너 인적사 입구에서 좌측 비탈로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등산로는 따로이 없고 희미한 족적만을 쫓아 미끄러운 급경사 비탈을 기어오른다.

 

 

인적사에서 산으로 들어선 지 20여분만에 지경마을 입구에서 올라오는 지능선 마루에 접속하니, 능선 위로 뚜렷한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우측 방향 능선 오름길을 따라 쉬엄쉬엄 숨을 고르며 오른다.

 

 

돌아본 동남쪽 칠곡 약목면 방향으로 4번 국도 가로등 불빛이 뚜렷하다.

 

 

능선을 따라 1전망대로 향하는 백두들.

 

 

능선 등로 옆 묘지에서 잠시 쉼을 하며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고 산행 복장을 가다듬는다.

 

 

좌측 아래 김천시 남면 부상리 방향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남김천 IC 불빛이 내려다 보인다.

 

 

이제 여명이 밝아 올 시간인데, 눈발이 흩날리는 흐린 날씨로 지나온 능선만 겨우 구분이 된다.

 

 

좌측 부상리 방향.

 

 

좌측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갈림길을 지난다.

 

 

앞쪽으로 제1전망대가 자리한 마이산 봉우리를 닮은 암봉이 나타난다.

몇 해 전 케나나 로키 트레킹 갔을 때 보았던 Big Beehive와 흡사하게 생겨,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제1전망대 암봉을 우회하여 능선으로 올라서면,

 

전망대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제1전망대를 먼저 다녀온 분들은 갈림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제1전망대로 향한다.

 

 

맑은 날이었으면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듯한 제1전망대에 도착하여,

 

눈발이 흩날리는 흐린 날씨로 조망은 마음으로만 떠올리며 인증을 남긴다.

 

새벽에 걸어온 능선이 어슴프레 가늠된다.

 

부상리 방향.

 

 

매서운 날씨로 서둘러 제1전망대를 뒤로 하고,

 

제1전망대 갈림길로 돌아 나온다.

 

 

갈림길로 돌아 나오니, 먼저 식사를 마친 백두들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도 계단에 앉아서 가져온 빵조각으로 서둘러 아침식사를 때운다.

 

 

식사를 하느라 시려진 손을 감싸 안고 잠시 오르니, 손바닥 모양의 기암이 무너질 듯 서 있다.

 

 

제2전망대 갈림길에 도착하여 계단을 따라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한다.

 

 

거북바위라고도 하고 수리바위라고도 부르는 바위에 만들어진 제2전망대에서 인증을 남기고는,

 

조망 없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갈림길로 돌아 나온다.

 

 

887봉 우장마을 갈림길에 도착하니 금오산성 흔적이 보이고,

우장마을은 금오산의 서쪽 김천시 남면 오봉리를 일컫는 듯하다.

 

<금오산성(金娛山城)>

경상북도 구미시와 김천시 남면, 칠곡군 북삼면에 걸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으로, 둘레 약 3.5㎞로 현재 남·서·중문 및 암문(暗門: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만든 성문)과 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최초 축조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입보피란(入保避亂:들어와 보호받으며 난을 피함)의 요충지로 이용되었던 대규모 산성이다.

이 성은 산의 정상부를 테뫼형으로 두른 내성과, 정상부에서 북쪽을 향해 흐르는 큰 계곡을 끼고 포곡식으로 쌓은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성벽은 높고 험한 천연의 암벽을 이용하여 공력(工力)을 줄였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둘레 2.7㎞ 정도의 테뫼식 내성이 있었을 뿐이었으며, 여기에 고려시대 말에 선산·인동·개령·성주 등 주변 여러 고을의 주민들이 왜구를 피하면서 병정을 뽑아 지켰던 자취가 배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에 군창(軍倉)을 마련해 놓고, 선산·개령·약목 등의 주민이 입보할 수 있도록 양식을 저장하였고, 1410년(태종 10)부터 1413년까지에 걸쳐서 성을 수축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어 1495년(연산군 1)에 성벽을 수축하고, 1597년(선조 30)에는 도체찰사의 영(營)을 베풀기도 하고 정기룡(鄭起龍)·이수일(李守一) 등이 지켰다. 1639년(인조 17)에는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외성의 북쪽에 있는 계곡을 둘러싸는 포곡식 외성을 쌓아 이중의 산성이 되었는데, 외성의 둘레는 약 3.5㎞이다. 1735년(영조 11)에는 선산도호부사가 산성별장(山城別將)을 겸하여 지키게 하고 3,500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내성에는 남문·서문과 북쪽의 외성으로 통하는 중문이 있으며, 남서쪽의 산 능선으로 따로 철성(凸城)을 452m나 축조하여 방어력을 높였다. 남문은 개구(開口)된 너비가 1.8m, 서문은 1.7m, 중문은 2m로 비교적 규모가 작으나, 바깥으로 문의 좌우에 성돈(城墩)처럼 보강된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외성에는 북문에 해당되는 계곡 쪽의 출입문과, 그 반대편의 암문이 있다. 본래 외성의 출입문에는 6칸의 문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문구부(門口部)만이 확인될 뿐이다. 암문은 너비가 1.2m, 높이가 1.1m로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벽 위의 여장(女墻 : 성위에 낮게 쌓은 담)은 너비 1.3m 규모였고 여장에는 사혈(射穴 : 총이나 활을 쏘게 만든 구멍)이 25×35㎝ 크기로 바깥쪽을 향해 경사지게 뚫려 있다. 성안에는 1868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이때 마지막으로 중수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장마을 갈림길 봉우리를 뒤로하자 이내 서봉에 도착한다.

서봉 정상에는 나뭇가지에 자그마한 표지판이 걸려있을 뿐 별다른 표식은 없다.

 

 

눈이 덮여서 등로 구분이 명확치 않지만, 좌측 청색 화살표는 성안 금오정 샘터로 이어지고,

우리는 우측 녹색 화살표 방향의 산성 흔적을 따라 남봉을 향한다.

 

눈 내리는 금오산 서봉 정상에 오른 손점장.

 

앙상하던 겨울 나뭇가지도 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금오동천 갈림길에 도착한다.

 

나를 제외한 다른 분들은 현월봉에서 도수령 방향 능선을 타려는 창병씨와 몇몇의 선두들이 좌측 성안을 거쳐 현월봉으로 가면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우측 금오산 정상 방향으로 가고, 나만 홀로 직진의 남봉을 향한다. 그래도 한두 분은 같이 남봉으로 갈 줄 알았는데, 얄짤없이 쉽고 편해 보이는 길로 가버린다. 예까지 와서 남봉을 보지 않으면 다시 아쉬움을 남길 듯하여 홀로 남봉을 향한다.

 

 

남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눈으로 덮여있어서 구분이 어렵고,

능선이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지 등로가 이리저리로 많이 얽혀있다.

 

 

나에게도 영원한 친구가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나만 홀로 예정되었던 등로를 따르는 건지?

그래 나의 영원한 친구는 바로 너, 자연이다!

 

 

금오동천 갈림길 안부에서 10여분 만에 남봉 정상에 도착하니,

 

남봉도 서봉과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표지판만 나뭇가지에 외로이 걸려 있다.

 

 

남봉 부근에는 눈이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많이 쌓여 있다.

 

눈과 상고대가 만들어내는 멋진 장면을 홀로 즐기며, 현월봉에서 도수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향한다.

 

바람과 나무가 눈으로 만들어 놓은 모습을 신기한 듯 담아본다.

 

 

능선 우회길을 만나 좌틀하여 바로 현월봉을 향할까 하다가, 정상 등로를 따르고자 직진하여 능선 마루로 항한다.

 

 

현월봉에서 도수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도착하여, 좌틀하여 현월봉을 향한다.

창병씨 일행이 현월봉에서 이 능선을 따라 도수령으로 간다고 했는데,

아직 지나가지 않은 듯, 눈 덮인 등로에는 아무런 자국이 없다.

 

 

이내 작은 돌탑이 있는 암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약사암 방향 조망이 일품인데 오늘은 마음으로만 그려보는 수 밖에는!

 

저 앞쪽에 현월봉과 약사암이 있을 텐데..ㅉㅉ

 

나도 흰머리가 늘어나는데, 저 녀석들도 반백이 다 되었네..ㅉㅉ

 

 

현월봉 오름길에 우측으로 기암이 희미하게 보인다.

 

 

군부대를 우회하여 바로 현월봉으로 오를까 하다가, 좌측 돌탑봉을 들러 보기로 한다.

돌탑봉 가는 길은 절벽 사면길로 이어지는데, 혼자 가다가 미끄러지면 큰일이라 조심해서 지난다.

 

 

작은 암봉 위에 돌탑들이 늘어서 있는 돌탑봉에 도착한다.

위쪽 현월봉 방향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백두~'라고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벌써 떠난 건지..ㅉㅉ

 

이곳에서의 조망이 무척이나 좋았는데, 오늘은 조망이 없으니 홀로 인증을 남긴다.

혼자라서 그런지 미끄러질까 봐 굳은 표정이 역력하다.

 

 

군부대 철망을 따라 현월봉으로 오를 수도 있지만,

길도 없는 위험한 곳이라 오늘은 우회하기로 하고 돌아서 나온다.

 

 

헬기장 옆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왔는데도 지나간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창병씨와 일행들은 아직도 현월봉에 있는지 궁금해진다.

 

바람이 헬기장의 눈을 깨끗이 치워 놓았다.

 

 

발자국만 보이고 아무도 없는 금오산 정상 현월봉에 도착한다.

 

<금오산(金烏山, 976.6m)>

금오산은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거인 같은 산으로 구미 일대에 홀로 우뚝 솟아 주변을 호령하는 장군 같은 산이다. 물론 족보를 따지면 홑산이 아닌, 수도지맥에서 분기한 금오지맥의 산이다. 지맥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1km 산줄기의 맹주인 셈이다. 금오산(金烏山)이란 명칭의 유래는 당나라 국사(國師)가 빛을 내며 나는 새를 따라왔더니, 이 금오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까마귀가 빛을 내며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이 산은 예로부터 경북 8경의 하나로 꼽혔으며, 기암절벽과 울창한 숲이 조화로워 경치가 수려하다. 인동 방면에서 금오산을 보면 능선이 흡사 사람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에 금오산 와불(臥佛)이라고도 한다. 정상 인근에 고원 분지가 있는데 옛날에는 ‘성안마을’이라는 촌락이 있었으며, 해방 전후까지 10여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가장 높은 현월봉에 오르면 북동쪽으로 구미시내와 낙동강이 보이며, 동쪽으로 구미공단이 내려다보인다. 정상 일대는 미군기지가 있어 접근이 어려웠으나, 2014년 시설물을 철거하고 등산로와 표지석이 세워졌다. 더불어 정상 부근에는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고, 암벽 밑으로 벼랑 끝에 지지대를 세워 만든 약사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북쪽 계곡의 중턱에는 도선굴이 있으며, 북서쪽의 거대한 암벽에는 보물 제490호인 금오산 마애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 해발 400m 지점에는 높이 27m의 대혜폭포(일명 명금폭포)가 있어 시원하게 물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이 고장의 유일한 농업용 수자원이었다고 한다. 금오산은 구미시내에서 가까우며, 산 중턱 해운사 인근까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197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 입구에는 1993년 개장한 테마파크 금오랜드가 있는데 규모도 작고 시설도 낡아서 이용객은 많지 않다.

 

금오산은 구미시의 진산으로, 금오랜드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운사 방면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등산로이며, 이 밖에 법성사, 칠곡 북삼고등학교, 칠곡 지경마을 기점 등의 등산로가 있다. 금오랜드와 법성사가 있는 구미 쪽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금오산 등산객의 8할에 이를 정도로 인기 있지만, 노을 보기 야영 산행에는 김천 부상마을 들머리를 많이 이용한다. 김천시 남면 부상리 들머리는 덜 알려진 코스라 등산객이 많지 않지만, 정상으로 이어진 길에 오뚝한 카리스마의 두 개 암봉이 인상적인 코스다. 암봉 위에 각각 전망데크가 있어 압권의 조망을 내어 준다. 1전망대와 2전망대라고 부르는데, 남.서쪽으로 열려 있어 그림 같은 노을을 볼 수 있고, 데크 야영이라 운치 있고 쾌적하다. 현월봉 정상부에도 헬기장이 있어 주말에는 여러 동의 텐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달이 걸린다는 뜻의 금오산 정상 현월봉(懸月峯)은 이름처럼 멋진 조망을 보여 준다. 탁 트인 정상에 서면, 북동쪽으로 구미 시가지가 막힘없이 펼쳐지고, 멀리 낙동강 너머로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동으로 팔공산과 단석산, 남으로는 가야산에서 수도산까지 뻗는 장쾌한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오늘은 흐린 날씨로 상상의 나래만 펴 본다.

가장 대표적인 등산코스는 금오산저수지가 있는 케이블카 정류소 방면이다. 케이블카 정류소와 해운사를 거쳐 대혜폭포를 지나 할딱고개로 올라, 오형돌탑을 거쳐 마애석불과 금오산의 명소인 약사암을 거쳐 현월봉에 서는 것이 가장 인기 있는 코스다. 하산은 도수령을 거쳐 법성사에서 도로로 내려와 야영장을 지나 금오산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총 11km 거리이며 5시간 정도 걸린다.

금오산 정상부는 마치 백록담 같은 분지가 있는 특이한 지형이라 산길이 복잡하므로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김천시 남면 부상리는 산 입구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들머리 인근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는데, 포털 지도와 내비게이션 등에 검색되지 않는다. 입구의 투앤원모텔(김천 남면 농남로 997-42) 앞에서 왼쪽 길로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주차장이고 오른쪽은 등산로 입구다. 등산객은 드물지만 이정표가 있어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백두들은 모두 떠나고 없어서 홀로 금오산 정상 인증을 한다.

 

 

현월봉에서 약사암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니, 옛날 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했을 때 설치해 놓은 현월봉 정상석이 나타난다. 2014년까지는 이 정상석이 유일한 정상석이었다고 한다.

 

 

약사암은 폭포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등로 좌측으로 기암과 절벽이 나오더니,

 

 

이내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약사암 일주문이 나타난다.

약사암은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영험한 기도처로 소문이 자자하다.

 

약사암 내려가는 길은 좌,우 절벽 사이 협곡으로 이어져 있는데,

마치 무릉도원으로 내려 가는 기분이다. 무릉도원에도 겨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약사암 삼성각.

 

<약사암(藥師庵)>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금오산(金烏山) 정상 현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당시의 유물은 발견된 바 없으며, 1618년(광해군 10) 간행된 <일선지 一善誌>, 1799년(정조 23) 간행된 <범우고 梵宇攷>에 고찰(古刹)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때 편찬된 <영남진지 嶺南鎭誌>에는 ‘법당은 8칸으로 성내(城內) 삼리(三里)에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약사암은 약사전·삼성각·일주문·종각·요사로 구성되어 있다. 1985년 기암절벽 아래에 남향으로 건립한 약사전은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집으로 약사암의 중심 법당이다. 내부에 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935년 우상학이 지은 ‘약사암중수기’에 본래 지리산에 있던 석불 3기 중, 1기를 이곳 약사암으로, 나머지 2기를 수도산 수도암과 황악산 삼성암으로 옮겨 봉안했다고 쓰여 있다. 이 세 석불은 형제인데, 한 석불이 하품을 하면 다른 두 석불이 재채기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석조여래좌상 좌우로 일광·월광보살이 협시되어 있으며, 후불탱·신중탱·독성탱 등의 불화가 걸려 있다. 요사채 왼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높이 5.5m의 금오산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이 조각되어 있다.

 

약사전 전경.

약사암의 주 불전으로 내부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되어 있다.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범종각.

범종각에서 보는 약사암 조망이 멋지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못 볼 것 같다.

 

그래도 범종각에 가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아찔하게 출렁거리는 다리를 홀로 건넌다.

 

범종에는 익숙한 이름들도 보인다.

 

범종각에서 보는 약사암 전경이 압권이라는데, 그래도 인증은 하나 남긴다.

 

 

범종각에서 다시 출렁다리를 건나 와, 아래쪽 요사체로 내려서서 마애보살입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화살표 방향이 지름길인데, 급경사에 아무도 가지를 않았고 위험해 보여 되돌아나와 정규 등로로 진행한다.

 

 

법성사 갈림길을 지난다.

청색 화살표 방향의 우측 급경사 내림길로 가면 법상사가 나온다.

 

 

사면 내림길을 따라 마애보살입상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아직 입사귀를 다 떨구지도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한 나무가 이채롭다.

 

 

돌탑이 있는 기도처 인듯한 곳을 지나면,

 

 

금오산 마애보살입상 앞에 서게 된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金烏山 磨崖菩薩立像)>

이 불상은 거대한 암벽의 모서리에 조각된 마애석불로, 불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비교적 좋다. 머리에는 3면보관(三面寶冠)이 있으나, 마멸로 조각한 장식은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코·입 등도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인 것이다. 어깨의 선은 매우 원만하고 자세도 좋지만, 가슴·팔·하체 등은 둔탁하게 처리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팔굽을 약간 굽히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자세로 옷자락을 잡고 있다. 발은 곧게 서 있으며, 발가락은 매우 크고 듬직하다.

입상(立像) 앞면의 평평한 대지에는 현재 기둥의 초석이 있고 기와 조각들도 흩어져 있으며, 암벽 자체에도 목조 가구(架構)의 흔적이 보이므로 사찰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일선지(一善誌)》 기록으로 미루어 보봉사(普峰寺)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얼굴·신체·옷무늬·광배 등에서 9세기 보살상보다 더 발전한 형식화가 나타나 있으므로, 보다 후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0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체 높이 5.55m이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가진 보살입상 모습.

 

마애보살입상 안내판.

 

 

돌탑들이 있는 능선 모퉁이를 지나는데, 오형돌탑은 바로 아래쪽에 있다.

 

 

옆쪽에 백두들의 후미들이 보여서 따라가는데, 이 길은 오형돌탑을 지나지 않는 등로다.

가던 길을 돌려서 다시 오형돌탑으로 향한다.

 

 

오형돌탑이 있는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금오산 정상 아래에 있는 약사암에서 마애석불입상을 지나 잠시 내려서면, 금오산의 새로운 명물로 알려진 오형돌탑이 있다. 금오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오형돌탑'이 있는 곳이다. 이 돌탑을 쌓은 주인공은 구미시 도량동에 거주하는 김용수(지금은 80대로 추정)씨로 수십 개의 돌탑을 쌓은 데는 깊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과거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뇌변병장애로 인해 김씨의 손주 형석이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지도, 걷지도 못했고, 이런 아이를 자식을 대신해 돌봐오다가, 손주가 10살이 되던 해에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세상을 떠난 손주를 기리기 위해 금오산 이 자리에 하나둘 돌탑을 쌓기 시작했고, 어느새 금오산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태어나서 학교를 단 하루밖에 못 간 손주를 위해 '오형학당'이라는 돌탑을 쌓게 되었고, 지금은 구미 금오산의 명물(오형돌탑)이 되었다 한다.

 

 

오형돌탑 입구를 장식한 고사목에 대해!

 

구미시 방향으로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에 여러 개의 돌탑이 만들어져 있는데,

각각의 돌탑 하나하나에는 손자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주제들이 깃들어 있다.

 

건너편 전망바위에도 돌탑이 보인다.

 

손주에게 아르켜 주고 싶은 시구가 적힌 돌탑도 있고,

 

공룡이나 새, 우주선, 첨성대 등등 다양한 주제로 돌탑을 쌓아 놓았다.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이런 돌탑을 만들었을까?

쉬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먼저 보낸 손주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대충 둘러만 보고 오형돌탑을 뒤로하면,

 

오형돌탑 건너편 조망바위에도 몇 개의 돌탑과 함께,

 

손주가 좋아할 만한 거북이와 하트 모양이 만들어져 있다.

 

 

오형돌탑을 뒤로하고 잠시 사면길을 따르니 약사여래입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흰 눈을 뒤집어쓴 너덜지대를 지나게 된다.

 

 

할딱고개에서 성안과 정상으로 오르는 정규 등산로에 합류한다.

 

갈림길 이정표.

 

 

갈림길에서 우측 할딱고개 방향 내림길로 들어서자 앞쪽으로 금오지(金烏池)가 내려다 보인다.

 

금오지 안쪽에 있는 주차장까지 금방 내려갈 수 있을 듯이 보이는데,

급경사 비탈길을 이리저리 둘러서 한참을 내려서야 한다.

 

 

우측 지능선의 바위 절벽이 금방 쏟아져 내릴 듯이 보인다.

 

 

할딱고개를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군데군데 모여 쉼을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급경사 비탈길을 따라 이어진 등로가 이리저리 경사도를 낮추며 이어지고,

 

탐스럽게 눈송이를 한주먹씩 쥐고 있는 소나무가 탐스러워 보인다.

 

 

우측 할딱고개 암릉 위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산객들이 올라있고,

 

차츰 구름이 걷히며 좌측 칼다봉 능선도 조망된다.

 

 

할딱고개로 이어진 나무계단 모습.

 

할딱고개로 오르는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산객들이 애처로워 보인다.

아직 반도 못 왔지만 거의 다 왔다고 답해 준다.

 

 

계곡 건너편으로 가야 할 도선굴이 살짝 보이고,

 

 

나무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앞쪽으로 대혜폭포가 위용을 드러낸다.

 

겨울철이라 수량이 없을 것으로 짐작되어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거대한 물줄기 대신 얼음기둥이 폭포를 대신하고 있다.

 

대혜폭포(명금폭포) 안내판.

 

대혜폭포 모습.

 

대혜폭포 옆에 있는 금오산 도립공원 안내도.

 

 

계곡을 건너 도선굴 방향으로 들어서니,

 

이내 도선굴 안내판이 나타난다.

 

 

계곡 건너편으로는 잠시 전에 할딱고개 방향에서 내려온 나무계단길이 길게 이어져 있고,

 

도선굴로 향하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다.

 

도선굴로 이어진 벼랑길 옆으로 칼다봉쯤도 조망된다.

 

도선굴 입구에 도착하여 본 옆쪽 절벽 모습.

 

도선굴 내부 전경.

 

<도선굴(道詵窟)>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굴 아래 대혈사지 터를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일선지』에 따르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도선굴 내부에서 본 입구 모습.

 

도선굴에서 내려다본 금오랜드 방향 조망.

 

 

도선굴을 뒤로하고 왔던 벼랑길을 돌아 나간다.

 

 

아찔한 벼랑길을 따라 도선굴로 오르는 학생들이 대견해 보여,

조심하라 인사를 건네고는 도선굴을 뒤로한다.

 

좁은 통로가 미끄러워 아이젠을 신고도 걷기가 쉽지 않다.

 

 

도선굴 갈림길로 돌아 나와, 올려다본 바위 절벽 모습.

 

도선굴을 다녀왔는데도 대혜폭포의 모습은 그대로다.

 

대혜폭포 앞 전경.

 

 

대혜폭포를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니 나옹선사의 시가 적혀있는 해운사 앞에 서게 된다.

 

<해운사(海雲寺)>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대혈사(大穴寺)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에도 있었으나, 폐사되었다가 1925년 승려 철화에 의해 복구되면서 사명을 해운사라 하였다. 현 해운사보다 아래쪽에 대혈사가 있었는데, 고려 후기 길재(吉再)가 이곳에 은거하여 손수 대나무를 심었고, 임진왜란 후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선지(一善誌)』 「불우조」에 있다. 현재의 해운사 건물은 1978년부터 1984년에 걸쳐 승려 성화에 의해 중수되었고, 사찰 내에는 대웅전, 삼성각, 요사, 제하당(霽霞堂) 등이 있다.

 

 

금오산을 몇 차례 오면서도 한번도 들르지 못했던 해운사로 들어선다.

 

해운사 경내로 들어서니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황금빛의 대웅전 모습.

 

해운사 경내 전경.

 

 

해운사를 뒤로하고 조금 내려서니 커다란 돌탑이 나란히 서 있고,

 

 

잠시 후 금오산성 성문쯤으로 짐작되는 대혜문을 지나게 된다.

 

대혜문 앞에는 금오산성 안내판이 있다.

 

 

이어서 편안한 데크목 계단길이 이어지며,

 

아침에는 진눈개비를 뿌리던 날씨가 산행을 마칠 즈음에는 햇살이 화창하게 비춘다.

 

 

편안한 계단길이 끝나고 차량이 보이는 넓은 도로에 내려선다.

 

돌아본 금오산 정상 방향.

 

 

길 옆 어묵 노점상에서 뜨듯한 국물을 먹고 싶지만, 먼저 내려간 분들이 기다릴까봐 서둘러 주차장을 향한다.

 

 

금오산 케이블카 탑승장을 지나고,

 

'자연보호운동 발상지'라는 커다란 표석을 지난다.

 

 

옛날 금오산 도립공원 매표소가 있던 등산로 입구를 지난다.

 

 

금오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옆에는 멋진 한옥 건물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잘 단장된 공원 인도를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

 

금오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전경.

 

 

돌아본 금오산 정상 방향.

 

 

도로 좌측에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 선생의 체취가 어려있는 채미정도 들러볼까 했는데, 산행 종료 예정시간이 임박하여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버스로 향한다.

 

 

사우나에 들러서 얼은 몸을 녹이고, 지인을 통해 알아본 '소도리'라는 식당에서 맛난 육고기를 포식한다.

이곳은 가성비 좋은 소불고기가 유명한 곳인데, 회장님의 지엄한 선택으로 소와 돼지 육고기로 기력을 보충한다.

 

 

멋진 조망 대신에 신년 첫 눈산행을 멋지게 마친데 대해 감사하며,

 

새해에도 건강하고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잔을 든다.

 

 

술과 고기로 마음껏 양을 채우고 늦지 않은 시간에 서울로 향한다.

 

2018년 첫 산행지로 금오산을 선택했던 것은,

금오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멋진 조망을 보며

올 한 해의 산행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자 함이었는데,

흐린 날씨로 조망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발목을 넘는 심설산행이,

놓친 조망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언제가 시간이 되면

25km가 넘는 금오산 능선 산행을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