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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백두대간 우듬지 02차(구영고개~남해대교) : 멋진 산하와 남해에 점점이 뜬 잊지못할 귀염둥이들

by 재희다 2019. 2. 10.

지 : 백두대간 우듬지 02차(구영고개~남해대교) 경상남도 하동군.

산 행 일 : 2019. 02. 08. ~ 09.(토)

산행코스 : 구영고개 ~ 안심마을 ~ 금오산(875.1) ~ 점곡재 ~ 깃대봉 ~ 아침재 ~ 연대봉 ~ 남해대교.

              (도상거리 17km, 8시간 30분)

산행참가 : 21백두.

 

<산행지도>

 

신년 해돋이 창선도 종주산행으로 미루어 두었던 백두대간 우듬지 종주 마지막 금오산 구간 산행을 공지하자, 금오산 구간 오름길이 힘들 것을 예상한 분들의 탈출로 마련 요구가 빗발쳤다. 금오산 이후 깃대봉과 연대봉에서의 조망이 일품이고, 특히나 연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쟁터인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앞바다를 조망하는 것은 나름 의미도 있는 곳이라 가급적 종착점인 남해대교까지 탈출을 않고 걸었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하는 수 없이 금오산과 깃대봉 사이의 안부 고개인 점곡재(대치재)에서 중간 탈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산행일이 다가오면서 서울이 영하 10도 수준의 추위가 예보되자 사뭇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산행지는 한반도의 남쪽 끝이라 추위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며, 다만 하동 금오산에서의 멋진 조망을 즐기며 백두대간 꼬리 산행을 마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파라는 복병이 있었지만 바람이 잔잔한 편이었고, 청명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금오산 정상부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가늠할 수 있었고, 남해섬과 한려해상공원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 그지없었다. 다만 금오산 오름길 초입의 험한 등로와 가파른 오름길이 힘들게 느껴졌고, 점곡재에서 깃대봉을 거쳐 연대봉 정상까지는 백두대간 우듬지를 걷는 꾼들만이 다녀서 그런지 잡목들의 태클이 만만치 않았다.

 

카레이서 수준의 기사님이 모는 버스에서 잠을 자기란 어지간히 둔하지 않고는 힘드는 일이다. 요즘 들어 나도 한번 잠이 들면 중간에 거의 께지 않고 잘 자는 편에 속하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전복될 것 같은 불안감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가끔씩 야간 운전을 할 때면 졸음을 피하려고 난폭운전을 하는 편이라 이해는 되지만, 신새벽부터 산행에 나서야 하고 또한 과속에 따른 위험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버스는 구영고개 직전의 구영마을에 예상보다 이른 새벽 3시 남짓에 도착했고, 한 시간여의 쪽잠을 즐긴 후 산행 준비를 한다.

 

 

구영마을에 주차된 버스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버스로 구영고개로 이동하여 차가운 겨울밤 공기에 몸을 맡긴다.

한반도의 남단이라 그런지 그리 춥다는 느낌이 없어서, 두툼한 내피는 배낭에 갈무리해 둔다.

 

<구영고개(105m)>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와 진교읍 월운리 구영마을을 잇는 고개로, 구영 마을에서 지명을 따온 듯하다.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朴達里)>
구영고개 하동 방면에 자리한 박달리는 옛날 수문장을 지낸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이 거주하면서 밤이면 달빛이 유난히 밝아 달동(月洞)이라 불렀는데,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밝은 달'을 박달(朴達)이라 음차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조선말 서양곡면으로 박달촌,봉곡촌,성치촌,세곡촌,반계촌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보면 박달리가 되었다. 개편 당시 봉곡촌이 봉곡으로, 박달촌이 박달, 집홀로, 성치촌, 세곡촌이 세곡(일명 가느실)으로, 반계촌이 반계로 되어 모두 다섯개 마을로 개편되었다. 동서가 좁고 남북으로 길게 이루어진 마을로, 동쪽으로는 화봉산, 서쪽으로는 성치산, 북쪽으로는 학방산(일명 학봉산)이 마을을 감싸고, 남쪽으로 멀리 금오산을 바라본다. 마을 중앙에는 박달천이 북에서 남으로 지나가고 있다.

 

 

구영고개에서 수레길을 따라 오르며, 이내 밤나무 밭으로 통하는 수레길을 두고 좌측 능선으로 들어서는데,

희미한 등로에 나뭇잎이 수북히 쌓여 등로 구분이 쉽지 않다.

 

구영고개에서 들머리로 들어서는 백두들.

 

 

아직 우듬지 산행을 하는 꾼들이 많지 않아서 등로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야간에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뚜렷한 산길이 이어지고,

 

 

간간이 걸려있는 표지기들이 우듬지 능선길을 잘 따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완만한 오름길에 자그마한 첫번째 봉우리를 지난다.

 

 

완만한 안부쯤을 지나는데, 전원주택 건축 불허에 항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좌측으로 벌목이 된 능선을 지나는데 진교면 방향 불빛이 조망된다.

 

 

매실밭이 있는 임도와 만나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는데,

 

임도 옆 매실밭에는 벌써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따르던 임도는 좌측 아래로 내려가고, 우측 능선 숲길로 들어선다.

 

 

수레길 수준의 등로는 임도로 바뀌고,

널찍한 임도를 한참 동안 따르다가 넓은 공터에서 첫번째 쉼을 한다.

 

 

짧은 쉼을 뒤로하고 잠시 더 임도를 따르니, 지례리로 연결되는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 도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좌전방으로 횃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금오산이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낸다.

 

<지례리(知禮里)>
하동군 양보면 지례리 장성촌에 김씨 성을 가진 부호가 정착하면서 지내골(지금의 예성(禮城))을 한자로 지례곡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전해 온다. 조선말 서양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모고리촌.장성촌.예동땀이 예성으로, 가락골.사기점이 가락으로, 구무고개.화촌촌이 화촌으로, 꽁매.만지동이 만지로 통합되어 양보면 지례리가 되었다.

 

 

남해고속도로 북쪽 능선을 따라 나란히 이이지는 포장도로를 따르는데,

좌측 태양광발전단지 너머로 금오산이 조금 더 뚜렷이 모습을 드러낸다.

 

 

포장도로를 한참 동안 따르니 안심마을 입구에 있는 남해고속도로를 아래로 통과할 수 있는 굴다리가 나온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하동군 진교면 안심리 신안 마을과 안심 마을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진교에서 양보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1033번 지방도로가 지나가고, 그 위쪽으로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우측에는 안심마을 표지석과 안심마을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좌측 고속도로 굴다리로 들어선다.

 

<안심마을>

하동군 진교면에 있는 마을로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안심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이며, 자연 마을인 신안은 안심마을 안쪽의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다. 조선말 곤양군 금양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금양면 안심리가 되었고, 1933년 하동군 진교면 안심리가 되었다.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진교면 백련리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진교농공단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조선말 하동군 동면 백련동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벽련동과 고현면 안심동이 통합되어 동면 백련리가 되었고, 1918년 진교면 백련리가 되었다. 백련.사기(일명 사기실).신기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으며, 백련은 금오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나지막한 산줄기 골짜기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로, 매년 '찻사발과 연꽃 만남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사기는 고령토 산지로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토기 문화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된 백련리 도요지가 있다. 도요지에서 영화 r 취화선」이 촬영되었다. 신기는 구한말 이후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백련리에는 백련리 도요지 외에도 하동요, 춘강요, 현암요, 새미골요 등 여러 도요지가 있으며, 일본의 국보 이도다완(井戶茶碗)의 원류로 추정되는 하동 막사발이 생산되고 있으며, 새미골 금정미술관이 있어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가야시대 고분군인 백련리 고분군과 진교농공단지가 있다.

 

 

백련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진교농공단지로 들어선다.

 

<진교농공산업단지와 우듬지 능선>
남해고속도로와 진교농공단지로 인해 맥길이 애매한 곳이다.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신산경표상의 우듬지 구간은 이곳에서 좌측의 성광테크라는 공장 뒤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을 맥길로 표기하고 있지만, 최근에 부산·경남 지역의 산꾼들을 중심으로 우측의 에스앤피(주) 공장 뒷쪽 능선을 우듬지 구간이라고 주장하며 그쪽으로 산행하는 산꾼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산꾼들은 산업단지 중앙의 도로를 따라 신안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택한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이든 우측 능선이든 모두 다 능선 위로 뚜렷한 등로가 없어서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맥을 걷는 꾼들이, 갈 수 없는 암릉을 만나면 우회하듯, 이곳도 좌측 능선이 우듬지 능선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우회한들 그 또한 하나의 선택지라 생각한다. 물론 예전에는 길을 잘못 들어 작은 봉우리를 우회한 경우에도 땜빵을 해야 한다며 우기기도 했지만..ㅉㅉ

 

 

마무튼 이런저런 논란은 접어두고, 농공단지를 관통하여 신안마을로 접어든다.

 

 

신안마을 마을회관을 지나고,

 

 

농로를 따라 옛 남해고속도로에 접속하여 우측 하동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를 따르다가 '아임허부'라는 빨간색 입간판이 세워진 곳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 농로로 진입하여,

 

 

잠시 진행하면 좌측으로 외딴 농가가 나오는데,

농가 아래 과수원으로 들어서서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다가,

 

 

공장 축대 옆 시멘트 포장 소로로 올라서서 잠시 진행하면,

 

공장으로 이어져 있고,

공장 우측 옹벽으로 올라서 축대 위 수로를 따라 진행한다.

 

 

아래 공장과 위쪽 공장 사이의 축대를 우회하여 통과하고,

다시 윗쪽 공장 우측 옹벽 위 수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대나무밭 사이로 이어진 금오산 오름길 등로가 나온다.

 

 

대나무밭으로 들어서면 등로가 삼지사방으로 얽혀있고, 능선도 뚜렷하지 않다.

이리저리로 등로를 찾아서 잠시 헤매다가, 좌전방 능선으로 오르니 뚜렷한 등로가 다시 이어진다.

뒤쪽에서 기다리던 분들을 불러서 본격적인 급경사의 금오산 오름길을 시작한다.

 

 

표지기도 걸려있는 뚜렷한 능선길은 잠시 진행하니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다.

 

 

가야 할 능선이 우측인 듯하여 다시 우측 능선으로 트레바스 하여 오르니,

다시금 뚜렷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J3클럽' 표지기가 걸려있다.

어느 산행기에서 이곳에서는 수많은 산꾼들이 알바를 하는 곳이라,

'J3클럽' 표지기를 따르는 게 좋다는 충고를 떠올리며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금오산 오름길을 이어간다.

 

 

가파르지만 뚜렷한 능선길을 잠시 따르니, 널찍한 너럭바위가 나오고,

 

이제 알바 구간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잠시 목을 축이며 쉼을 한다.

 

 

날이 어슴프레 밝아오며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암릉을 만나 우회하여 오른다.

 

 

돌아본 이명산 방향.

오늘 신새벽에 출발했던 구영고개도 가늠된다.

 

 

돌아본 이명산 계봉 좌후방으로 낙동정맥의 천왕봉과 우듬지 능선 분기봉인 547봉쯤도 가늠되고,

 

안심마을 입구에서 걸어온 길이 가늠된다.

하늘색 선이 우듬지 능선이고, 녹색 선이 실재 걸어온 길이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오래된 진양하공의 묘지를 지난다.

 

 

거친 등로를 걷느라 신발에 들어간 가시를 빼내는 손 점장.

 

거 뭐하슈, 빨랑 오잖구!

 

 

언제쯤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닿을지를 기다리며 거친 등로를 따르니,

 

 

금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올라서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뭣이 그리도 좋은지.. 험지를 벗어나니 그리도 좋은가!

 

오를 산행에서 최고 난이도 구간을 통과하여 군용 도로에 올라서서,

우측 도로를 따라 금오산 정상을 향한다.

 

군용 도로를 따라 금오산 정상으로 향하는 백두들.

 

 

능선 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들은 우회하여 지나며,

 

이제 급경사 구간을 올라왔다는 안도감에 혼자 놀기도 하는 여유를 부린다.

 

 

산불감시탑이 있는 666봉 갈림길에서, 봉우리로 오를지 아니면 그냥 도로를 따를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 조망이 멋질 것이라며 능선길로 들자는 권유도 뿌리치고 대부분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몇몇 분만 산불감시탑이 있는 666봉 오름길 능선으로 들어선다.

 

 

좌전방으로 가야 할 금오산 정상부가 시야에 들어오고,

 

광양의 백운산과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며,

 

이명산과 지난 우듬지 1차 산행에서 걸었던 백두대간 우듬지 능선이 가늠된다.

 

지리산 천왕봉 방향.

 

 

산불감시탑이 있는 666봉에 도착한다.

 

북쪽 지리산 방향 파노라마.

 

남쪽 금오산 방향.

 

동쪽 사천시 와룡산 방향.

 

삼천포 위로 떠오른 아침해.

 

동북쪽 진교면 방향.

 

<하동군 진교면(辰橋面)>
하동군 진교의 원래 명칭은 민다리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민'이 '진(辰)'이 되었고, 하평 앞 고룡천에 돌다리(橋)가 있었으므로 진교라 하였다는 설이 전해 온다. 조선말 하동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월운리.관곡리.고이리.송원리.백련리.진교리를 관할하였고, 1918년 하동군 진교면으로 개칭되었다. 1933년 금양면(지금의 금남면)의 안심리.고룡리.양포리가 편입되었고, 1963년 9개 리, 30개 마을로 개편되었다 1989년 금남면 술상리가 편입되었고, 1995년 안심리 산산 마을이 분동 되었다. 북쪽으로 봉명산과 이명산이, 서남쪽으로 금오산이 우뚝 솟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남해와 접한다. 관곡천이 북서쪽에서 진교면을 가로지르다 남쪽에서 고이천과 만나 남해로 흘러든다. 관곡천 유역에 남북으로 긴 띠 모양의 농지가 펼쳐져 있고, 구릉지 기슭에 마을이 터를 잡았다.

 

북쪽 진교면 이명산 방향.

 

북쪽 지리산 방향.

 

살짝 당겨본 지리산 주능선.

 

북서쪽 백운산과 지리산 방향.

 

서쪽 백운산 방향.

 

서쪽 하동 방향 조망.

 

<경상남도 하동(河東)>
하동군은 신라 통일 이전에는 모래가 많은 지역이라 하여 한다사군(韓多沙郡)으로 불리어 오다가, 신라 경덕왕대에 이르러 섬진강의 동측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하동'이라 불려 오고 있다.

 

서쪽 진월면 방향.

 

서남쪽 광양시 방향.

 

살짝 당겨본 광양시 방향.

 

 

백운산과 지리산을 배경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666봉을 뒤로하고,

 

군부대가 자리한 금오산을 향한다.

 

 

잠시 내려서니, 도로를 따라 진행한 백두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서울은 영하 10도의 한파가 찾아왔다는데, 이곳은 장갑을 벗어도 손이 시렵지 않은 정도다.

 

금오산 오름길에 채취한 각종 전리품도 챙겨 넣고,

 

다시금 배낭을 꾸려 금오산 정상을 향한다.

 

 

좌측 사천시 와룡산 방향.

 

살짝 당겨본 와룡산 모습.

 

 

우측 능선으로도 거친 등로가 있다고는 하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백련사 갈림길 도착.

백련사는 우측 능선 너머 250m 지점에 있는데, 조망이 좋다고 하여 둘러보기로 하고,

바둑이들이 마중 나와 있는 우측 들머리로 들어서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참을 오르내려야 한다며 그냥 금오산 정상으로 향한다.

 

 

백련사로 향하는 능선 위에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금방 닿을 듯하던 백련사는 사면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고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백련사에 도착하니 입구까지 마중 나와 있던 바둑이들의 으르렁 거림을 잠재우는 보살님 한분이 맞아준다.

 

백련사 앞쪽으로는 남해도의 망운산과 관음포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광양만도 시원하게 조망된다.

(오기 정정 : 록두산 ->녹두산)

 

백련사 전경.

 

늘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바둑이들!

 

백련사 앞에서.

 

 

 

백련사를 돌아 나오는데 보살님이 뜨거운 커피를 내어 주시며,

이곳 백련사는 기(氣)가 쌘 기도처라서 기가 웬만큼 강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든 곳이란 설명도 곁들인다.

 

관음포 앞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을 하고는 백련사를 뒤로한다.

 

 

다시 도로로 돌아 나와 금오산 정상으로 향한다.

 

돌아본 지리산 주능선 조망.

 

 

금방 닿을듯하던 금오산 정상이 멀게 느껴질 즈음에,

 

KT 통신중계소를 지난다.

 

돌아본 우듬지 능선 조망.

 

 

등로 우측 쇠울타리를 넘어 작은 기지국으로 들어서니,

 

삼천포 방향의 사천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래쪽으로 지난 1차 산행에서 뒤풀이를 했던 방아섬도 내려다 보이고,

 

남해섬도 시야에 들어온다.

 

 

마애불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해맞이공원에 도착한다.

해맞이공원은 금오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로 인하여 남쪽 사면에 데크목으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다.

 

동쪽 사천만 방향.

 

공군 부대에 정상을 빼앗긴 채, 정상 아래에는 커다란 몽돌처럼 생긴 돌에 우측으로는 한글로 '소오산 '이라 적혀 있고, 좌측에는 '金鰲山(금오산)'이라 새겨 놓았는데, 산 하나를 두고 2개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상당히 혼란스럽다. 표시석 뒤쪽에는 금오산의 유래 표시판이 있고, 경남지방 기념물 제122호인 금오산 봉수대 표시석이 있다. 도로 아래쪽으로는 해맞이 공원이라 칭하는 데크목 광장에 화장실까지 겸비 해 놓았고, 금오산 어드벤처라는 커다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조형물이 금오산의 풍경을 망치는 듯 보인다.

 

금오산 정상부 전경.

 

<금오산(金鰲山, 849m)>
경남 하동군 진교면과 금남면, 고전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자그마한 산줄기가 남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자라를 닮아서라고도 하고, 오행으로 볼 때 산의 형상이 금상(金相)이라 하여 금오산으로 명명했다고도 하며, 또 다른 이름은 볏단을 쌓아 올린 노적가리를 닮았다고 해서 소오산이라 불렀으며, 병의 모가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병요산(甁腰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하동 금오산은 지리산의 동남쪽으로 뻗은 줄기로, 하동군 동쪽 남해 연안에 자리 잡은 해발 849m, 둘레 80리의 웅장한 산으로, 북쪽의 진교면 안심리에 있는 금오산 줄기인 태봉은 일두 정여창의 태지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금오산 동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금남면 중평리 장사동에는 충의공 정기룡의 태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금오산에는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는 금오산성과 금오산 봉수대,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마애불이 금오산 아래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의 금오산이 여섯 군데 있는데, 경북 구미 금오산(977m)과 경남 밀양 삼랑진 금오산(730m), 경남 하동 진교 금오산(849m), 전남 여수 금오산(323m), 경주 남산 금오산(468m) 그리고 충남 예산 금오산(234m)이 있다. 구미의 금오산과 밀양 삼랑진의 금오산, 충남 예산의 금오산, 경주 남산의 금오산 등 내륙지역에 있는 산은 금가마귀 산이라 뜻의 金烏山이고, 해안가에 있는 하동의 금오산과 여수의 금오산은 금자라 산이라 뜻의 金鰲山이다.

 

 

남쪽 남해도 방향 파노라마.

 

동쪽 사천만과 와룡산 방향.

 

삼천포 방향 조망.

 

지난 산행에서 걸었던 창선도 방향 조망.

 

우후방으로 사량도가 희미하게 가늠된다.

 

남쪽 남해도 방향 조망.

가야 할 연대봉 너머로 노량대교 교각 끝부분도 살짝 보인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쟁터였던 관음포 앞바다와 광양 방향 조망.

 

여수와 광양 방향.

 

서쪽 광양 방향.

 

 

해맞이공원에서 남해도를 배경으로!

 

 

광양 방향을 배경으로!

 

해맞이공원 전경.

 

 

금오산(소오산) 정상 인증.

 

 

금오산 안내판.

 

금오산 등산 안내도.

 

금오산 어드밴처 레포츠단지 조감도.

 

 

금오산을 뒤로하고 점곡재로 내려서기 위해 도로를 따다 부대 정문 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에서 우측의 군부대 입구 진입로를 두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들어서서,

 

금오산 남서쪽 지능선 508봉에 자리한 기지국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른다.

 

 

좌측으로는 가야 할 연대봉과 남해도가 끊임없이 시선을 잡아끈다.

 

남서쪽 여수 방향.

 

광양 방향.

 

광양 백운산 방향.

 

 

좌측으로 덕천, 마애불 방향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도로를 두고 좌측 내림길 등로로 들어선다.

 

갈림길 이정표.

 

등로로 들어서며 본 여수 방향 조망.

 

 

남해대교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한눈에 조망하며, 바위들이 있는 금오산 능선 내림길을 내려간다.

 

광양 방향 조망.

 

광양 백운산 방향.

 

508봉 통신중계소 방향.

 

금오산 정상을 배경으로.

 

 

마애불 갈림길.

우듬지 능선길은 직진방향으로 이어지고, 좌측 10m에 금오산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 앞에는 돌탑이 만들어져 있고,

 

마애불은 암벽에 음각되어 있다.

 

금오산 마애불 모습.

 

금오산 마애불 안내판.

 

 

다시 갈림길로 돌아 나와 대송 방향으로 우듬지길을 이어간다.

 

점곡재를 향해 내려서는 백두들.

 

 

대송 갈림길, 길주의 지점.

 

우듬지길은 좌측 청소년수련원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우측 대송 방향으로 들어섰다가 짧은 알바를 하고 돌아 나온다.

 

 

우측으로 대송 입구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짚라인이 설치된 629봉 남측 우회길에서 우듬지길은 직진의 청소년수련원 방향 등로를 두고,

우틀하여 점곡재 방향 능선으로 이어진다. 이정표는 없고 표지기만 몇 개 걸려있어서 놓치기 쉽겠다.

 

 

짧은 암릉에서는 가야 할 깃대봉과 관음포 앞바다가 조망된다.

 

좌측 창선도 방향.

 

짧은 너덜지대를 내려서는 백두들.

 

 

고도를 낮출수록 앞쪽 깃대봉이 솟아오른다.

 

점곡재로 이어지는 등로 모습.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면,

 

급경사의 금오산 내림길을 한참 동안 내려서다 보니, 좌측 허벅지에 쥐가 출현한다.

체질상 쥐를 늘 달고 다니는 처지라 숲에서 파스를 꺼내어 붙이니 금방 진정이 된다.

변함없이 파스를 건네주시는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2차선 포장도로 위로 에코브릿지가 있는 점곡재에 도착한다.

 

<점곡재/대치재(大峙, 275m)>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와 대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고개 좌.우에 있는 마을이 이름을 따서 점곡재 또는 대치재라 부르는 고개다.

 

깃대봉 방향 우듬지 능선은 에코브리지 건너편 임도에서 좌측으로 이어진다.

 

점곡재 에코브리지 위 공터에서 과일을 나누며 쉼을 하는 백두들.

 

 

점곡재를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깃대봉으로 향한다.

 

몇몇 분의 중간탈출 요청으로 버스를 점곡재 우측 대봉 방향 150m 지점 공터에 대기시켜 놓았는데,

예정에 없던 많은 분들이 탈출 대열에 동참해 버린다.

등로가 좀 거칠기는 하지만 깃대봉과 연대봉에서의 멋진 조망도 포기한 채..ㅉㅉ

 

돌아본 629봉 모습.

아마도 금오산 내림길에서 본 깃대봉과 연대봉의 뾰족한 모습이 무척이나 위압적으로 보였던지,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점곡재에서의 탈출을 선택했다.

 

단출해진 백두들이 임도를 따라 깃대봉으로 향한다.

 

 

거친 좌측의 능선길을 두고, 살짝 우회하여 오르는 임도를 따른다.

 

 

임도는 송전탑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송전탑 뒤에는 '깃대봉 철쭉제단'도 마련되어 있다.

깃대봉 오름길 등로 주변에는 철쭉나무 군락이 있는 것으로 보아 봄이면 멋진 광경이 펼쳐질 듯하다.

 

 

깃대봉 오름길에 돌아본 금오산 모습.

 

 

거칠고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억새가 무성한 공터가 나오고, 앞쪽으로 깃대봉 정상이 보인다.

 

 

강렬한 태양빛에 이끌려 가파른 오름길을 따라 깃대봉으로 향하는 백두들.

 

 

돌아본 금오산 방향 파노라마.

 

좌측 사천만과 와룡산 방향.

 

돌아본 금오산 모습.

 

우측 광양 백운산 방향.

 

광양 방향.

 

 

깃대봉 정상은 한때 군부대가 있었던 곳이라 녹슨 철조망이 둘러져 있다.

 

 

깃대봉 정상 도착.

 

<깃대봉(503.8m)>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대치리, 송문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로, 예전에 군부대가 있었던 봉우리라 그런지 정상에는 신갈나무 한그루만 외롭게 서 있고, 철조망과 사격장 불발탄을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있는 걸로 보아서 사격장이었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없는 벌거숭이 산이라 그런지, 주위 사방으로는 모든 게 다 보인다. 조금 전에 지나온 금오산과 우측 광양의 백운산과 그 옆으로 억불봉이 아련하다. 앞쪽으로는 사천만과 광양만, 그리고 남해지맥 능선도 보인다. 한강, 영산, 진양, 팔공기맥 등 가야 할 기맥과 지맥길은 너무 많은데 세월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깃대봉 정상에서 360도 파노라마.

 

남서쪽 여수와 광양 방향.

 

서쪽 광양과 백운산 방향.

 

서북쪽 백운산 방향.

 

북쪽 금오산 방향.

 

북동쪽 사천 방향.

 

동쪽 와룡산 방향.

 

동남쪽 삼천포 방향.

 

남동쪽 창선도 방향.

 

남쪽 남해도 방향.

 

남서쪽 여수 방향.

 

 

사천 와룡산을 배경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깃대봉에서의 가야할 연대봉을 한번 더 담아두고,

 

깃대봉을 뒤로하고 연대봉을 향한다.

 

 

아침재로 내려서는 능선길은 꾼들만 다녀서 그런지 잡목들의 태클이 만만치 않다.

 

 

우측으로 광양화력발전소가 조망된다.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내뿜고 있는 화력발전소 모습.

나는 천천히 더러운 먼지 마시며 어렵게 죽는 것보다,

깨끗한 원자력이 만드는 전기 쓰다가 순식간에 가는 게 좋다!

 

가야 할 연대봉 북사면에는 채석장이 커다란 생채기를 드러내고 있다.

 

 

겨울이라서 그나마 등로가 뚜렷하게 보이지, 여름철이었으면 등로의 분간조차 쉽지 않을 듯하다.

 

 

연대봉과 깃대봉 사이의 안부인 아침재에 도착한다.

 

<아침재(240m)>
하동군 금남면 송문리에서 대치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아직도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우측의 송문리 쪽은 농장이 보이고,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마지막 힘든 구간이다. 아침재의 유래는 옛날 어느 스님이 아침 일찍 이 재를 넘다가 스님의 마음보다 해가 일찍 뜬다고 해서 아침재라 불렀다고 한다.

 

 

아침재에서 순회형이 가져온 위스키를 나눠 마시고,

술기운에 탄력을 받아 마지막 봉우리인 연대봉 오름길에 나선다.

 

 

채석장 절개지로 이어질듯한 수레길을 따르다가, 좌측 거친 등로로 들어선다.

 

돌아본 깃대봉 모습.

 

 

가파르고 거친 등로를 따라 오르면,

 

조릿대 밭도 지나고,

 

짧은 너덜지대도 나온다.

 

 

다시 조금 더 긴 너덜지대의 좌측 편을 따라 오르는 백두들.

 

 

너덜지대 꼭대기에서 돌아본 깃대봉 방향.

 

 

너덜지대를 지나 가파르고 거친 등로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와 직진 방향의 가파른 등로가 갈라지는데,

 

가파른 직진의 등로를 따르면 준.희 님이 걸어 놓은 응원 팻말이 걸려있다.

 

 

다시 우회하여 올라오는 등로와 합쳐지고,

 

 

뚜렷한 등로를 따르면 오래된 묘지도 지나고,

 

 

이곳부터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라는 표지 말뚝도 보인다.

 

 

좌측 와룡산 방향으로 사천만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보이고,

 

 

커다란 돌탑이 있는 연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연대봉(蓮坮峰, 477m)>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송문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산의 지세가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연대봉이라 불렀다고 하며,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라 전시에는 관군을 주둔시킬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최근에 조성한듯한 돌탑은 봉수대 역할을 한 곳이다. 연대봉 산성은 옛날 봉화를 올리던 곳으로 작은 성이며, 아래로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왜구를 방어하던 요새로 수비군을 두었다고 한다.

 

연대봉에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리는 백두의 소장파들.

 

연대봉에서 돌아본 금오산 방향.

 

 

남해도 방향 파노라마.

 

북동쪽 사천만 방향.

 

동쪽 삼천포 방향.

 

남동쪽 창선도 방향.

 

남쪽 남해도 방향.

 

백두대간 우듬지의 끝 지점인 남해대교가 내려다 보인다. 백두대간은 지리 천왕봉에서 그 걸음을 멎지만, 지리산 영신봉에서 남진하던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그 방향을 동진하기 위해 바뀌는 옥산 직전에, 한줄기 남진하는 맥이 있어 그 줄기가 이곳 하동 금오산을 크게 일구고 깃대봉을 세우고 다시 마지막 연대봉을 거쳐 남해 바다 노량 앞에서 바다로 잦아든다. 이 산줄기를 '백두대간 우듬지'라 하여 '백두대간 꼬리', '백두지맥' 또는 '금오지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하여 백두대간은 물길을 건너지 않고 저~ 남해대교 아래의 바다로 잦아들게 된다.

 

남서쪽 여수 방향.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쟁터였던 관음포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상념에 젖은 백두들.

 

녹두산에서 뻗은 끝 지점에 관음포가 보인다.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해협은 한산, 명량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노량대첩이 있었던 곳이다. 3대 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던 순간부터 한산도 앞바다로 나아가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학익진 전법으로 일본의 수륙병진 작전을 좌절시키던 한산대첩, 13척의 배로 울돌목의 빠른 물살과 변화가 심한 조류를 이용해 133척의 일본 함대를 상대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 낸 명량대첩, 일본군의 탈출을 막기 위해 노량 앞바다로 나아가 최대의 격전을 벌이며 7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었던 노량대첩이 그것이다. 풍전등화에 놓인 조선을 구하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도망가던 왜군을 추격하다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신 곳이 저곳 관음포 앞바다인 것이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명나라 병력과 함께 순천 왜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공격한다. 이것이 순천 왜교성 전투인데, 6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큰 전과를 세운 조선 수군은 일단 고금도로 귀환한 후,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유키나가의 병력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사천 신진리성에 주둔 중이던 시마즈 요시히로와 고성에 주둔 중이던 다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에 주둔 중이던 소요시토시 등은 고니시 군을 구출하고 본국으로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해 12월 15일(음력 11월 18일) 수군 6만여 명과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노량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마즈 함대가 노량을 통과할 것을 예측한 이순신 장군은 명 수군 도독 진린으로 하여금 남해도 서북쪽 죽도 뒤편에서 일본 수군의 퇴로를 차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자신의 조선 수군은 일단 봉쇄망을 푼 후, 12월 15일(음 11월 18일) 오후 10시경 남해도 서북단인 관음포에 매복시켰다.

이튿날 인 12월 16일(음 11월 19일) 새벽 4시경 요시히로 등이 이끄는 일본 함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진입하자 매복해 있던 조선 함선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순신 함대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죽이니, 적은 이순신을 포위하려 했고, 이후 순천 왜성 포구를 나선 유키나가의 일본 수군과 진린의 명 수군이 합세하여 4시간여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같은 날 오전 8시경,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고 이미 200여 척 이상이 분파되고 150여 척이 파손되어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 수군은 자선 150여 척을 이끌고 퇴각하기 시작했으며, 조.명 연합함대는 오후 12시경까지 잔적을 소탕하며 추격을 계속하였다.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으며, 가리포 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 흥양 현감 고득장 등과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 역시 추격 도중 적탄에 맞아서 전사하였다. 이때 도주하던 150여 척의 일본 함선 중 100여 척을 나포하니, 겨우 50여 척의 패 전선 만이 도주했다고 한다. 결국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 군은 노량 해전의 혼란을 틈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하여 시마즈 군과 함께 일단 부산에 집결, 그 즉시 퇴각하였으며 노량 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이 막을 내리고, 7년간의 긴 전쟁도 끝이 났다.

 

서쪽 광양 방향.

 

서북쪽 백운산 방향.

 

 

남해도를 배경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함께 남해도를 배경으로.

 

 

연대봉 정상 증명.

 

 

백두대간이 남해 바다로 잦아드는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남해도 방향 조망을 한번 더 담고,

 

광양항 방향도 담아둔다.

 

 

연대봉을 뒤로하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연대봉에서 동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우듬지 능선을 따르다가,

 

우측 남해대교 방향의 능선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곳 묘지가 있는 곳에서 우듬지 능선은 직진의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등로가 희미하여 지나기 어렵다.

반면에 좌측 노량대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다.

 

 

우듬지 능선을 두고 우측 노량대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좌측 우듬지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직진의 능선 등로를 이어가면 노량대교가 나온다.

 

갈림길 이정표.

 

 

사면길을 따라 남해대교로 이어지는 우듬지 능선으로 향하는 백두들.

 

 

우측으로 노량대교와 관음포 앞바다가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노량대교 모습.

 

 

동백나무가 녹색 잎사귀를 달고 있는 호젓한 등로가 이어지고,

 

 

널찍한 너럭바위를 지나면,

 

 

우듬지 능선길과 만나, 남해대교를 향해 진행한다.

 

 

등로 주변에는 고사리로 보이는 풀이 벌써 녹색으로 돋아나 있고,

 

주변은 벌써 돋아나는 새싹들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앞쪽으로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지척으로 보이고,

 

우측 밭에는 양파가 푸르게 자라고 있고,

 

경치 좋은 곳에 쌍분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묘지에서 바라본 노량대교 모습이 멋지다.

 

 

남해대교가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마을 골목길을 따라 내려서면,

 

 

남해대교 앞 터널공사장으로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 주차해 있기로 한 버스가 보이지 않아서, 노량대교 아래 바닷가로 향한다.

 

 

백두대간 우듬지가 남해 바다로 잦아드는 남해대교 아래에 도착하여 우듬지 종주를 마감한다.

 

 

 

그렇게 백두대간을 남해 바다로 빠뜨리며 종주길의 대미를 장식한다.

 

 

남해대교 주차장에 주차한 애마에 올라,

 

 

이틀 전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는 금남면 복지목욕탕에서,

 

이천원의 행복을 만끽한다!

 

복지목욕탕에는 이런 체육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다시 버스에 올라,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도의 곰바우 횟집으로 이동하여,

 

 

멸치회 정식으로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돌아본 남해대교와 연대봉 모습.

 

노량해전 격전지 안내판.

 

 

그렇게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금오산 구간 산행 기억을 추억으로 돌리며,

 

 

 

마무리 잔정리까지를 완성한다.

 

 

조제한 맛난 커비는 덤!

 

뭣인가 모자란 게 있남유~~

 

 

뒤풀이도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쉽지 않다는 백두대간 우듬지 종주를 마치며,

금오산과 연대봉에서 본 멋진 우리의 산과 바다는

한동안 잊지 못할 장면으로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듯하다.

 

어느 분이 '백두산'을 '백세까지 두발로 산행하자!'로 풀이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쪼록 '백두산우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강하게 산행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