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네팔 랑탕히말 트레킹(Langtang Himal Trekking) 6일차 (체르코리 등정)
산 행 일 : 2019. 05. 01.(수)
산행코스 : 강진곰파(Kyanjin Gompa, 3,730m) ~ 체르코리(Tsero Ri, 4,984m) 왕복.
(9km, 12시간 소요)
산행참가 : 17백두.
<산행지도>
오늘은 계절의 여왕 오월의 첫날이자 이번 랑탕트레킹의 최종 목표인 체르코리(4,984m) 정상 등정을 하는 날이다. 강진곰파에서 체르코리 정상까지의 거리는 4.5km 정도이지만, 고도를 1,250m나 높여야 하는 코스로 가파른 오름길도 문제지만 고산증을 이겨내야만 가능한 코스다. 어렵고 지난한 등반길을 온 힘을 다해 오르면 랑탕히말의 설산들이 도열하고 있는 멋진 풍광을 조망하는 기쁨과 함께 "기필코 해 냈다"는 성취의 희열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어제 강진리를 다녀온 이후 머리에 손오공이 썼다는 금고아가 삼장법사의 주문에 조여드는 느낌을 느꼈지만, 새벽에 눈을 뜨니 증상은 많이 완화된 느낌이다. 하지만 오늘 체르코리 등정을 새벽에 시작해야 하기에 지난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셀파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눈을 겨우 눈을 떴다. 영 게운치가 않고 멍한 느낌에 침낭을 벗어나기가 무척 힘이 든다. 몸과 뇌가 모두 솜뭉치 같은 느낌이지만, 이번 랑탕트레킹의 목표인 체르코리를 등반하는 날이기에 침낭을 벗어나 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서울에서의 일상과는 달리 이곳은 아침에 씻지도, 싸지도, 치장도 하지 않기에 아침시간이 분주하지도 조바심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자연인으로 사는 장점을 온전히 체험하는 기분이다.
아침식사로 나온 흰 죽 조차도 목구멍을 열기에는 역부족이고,
따뜻한 생강차 한잔으로 아침식사를 갈음한다.
일상의 분주함이 사라진 야크의 땅 랑탕이기에 별달리 서두름이 없이도 짧은 시간에 준비를 마치고,
지난밤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서니 롯지 지붕 위에는 그믐달이 체르코리를 향한 도전 의지에 불을 댕긴다.
보석처럼 빛나는 랑탕리웅이 지켜보는 가운데,
등정 준비를 마친 백두들이 속속 마당에 집결하여 체르코리로 향한다.
랑탕리웅아, 체르코리를 향한 우리의 도전을 지켜봐 주렴!
어느새 날이 밝아 좌전방으로 오늘 올라야 할 체르코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에서는 랑탕리웅이 '잘 다녀와, 지켜보고 있을게'라며 배웅을 하고,
좌측에서는 나야칸가도 듬직이 앉아서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랑시샤카르카로 이어지는 야크의 길을 따라 체르코리를 향한다.
체르코리 정상까지 4.5km밖에 되지 않으니 천천히 오르면 문제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폐부에 서늘한 새벽 공기를 한껏 불어넣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떠나온 강진곰파 마을은 산등성이 아래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올라야 할 체르코리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야크들이 살고자 오갔던 길,
오늘은 백두들이 그 길을 따라 랑탕히말의 정수를 느끼려 간다.
체르코리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우리가 가야 할 그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죽순인 듯 보이는 체르코리, 그 정상으로 이르는 능선이 한눈에 가늠되고,
돌아본 랑탕리웅 방향으로는,
랑탕리웅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한 보석으로 변해 있다.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최종 점호를 마치고,
체르코리를 향해 힘겨운 정상 탈환 전투에 나선다.
십여년 전 안나푸르나도 아침에 저런 모습이었기에,
갑자기 안나푸르나도 다시 찾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다리는 천천히, 하지만 산소를 최대한 많이 들이키기 위해 가슴을 펴고 복식호흡을 하며,
이번 트레킹의 목표인 체르코리 정상을 뇌리에 새기며 느리지만 확신에 찬 걸음을 내딛는다.
돌아본 나야칸가도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빙하와 홍수의 길이 거대한 계곡을 형성하여 백두들의 앞을 막아서지만,
물길이 좁은 곳을 찾아 야크의 길을 더듬는다.
나는 상류로 조금 이동하여 건널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이제 주변 설산의 흰 봉우리들은 모두 아침햇살을 받아 영롱한 모습으로 깨어나고 있고,
랑탕리웅이 햇살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랑시샤카르카 방향의 우측 사면 길을 두고,
체르코리를 향해 가파른 오름길로 접어드니...
'천천히'를 의도하고 있기는 했지만,
머리에는 손오공의 금고아를 두른 듯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으로 무게감을 더하며,
의도를 하지 않았어도 자연히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선두를 이끌던 셀파도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는 여유를 부린다.
랑탕리웅 방향.
랑탕계곡 방향.
동남쪽 칸첸포 방향.
남서쪽 나야칸가 방향.
서북쪽 랑탕리웅 방향.
가파른 사면에 야크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사방으로 어지러이 이어져 있지만,
사람들은 이런 수많은 야크의 길 중에서 한 길을 택해 체르코리로 오른다.
참으로 오래도록 기다려온 랑탕트레킹의 정수(精髓) 체르코리를 향한 발걸음,
그 기다림 만큼이나 굳건히 다져진 한걸음 한걸음을 정상을 향하는 야크의 길에 수놓는다.
우측으로는 칸첸포가 히말라야의 여느 설산에도 못지않은 위용을 드러내고,
살짝 당겨본 랑탕리웅도 범접키 어려워 보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돌아본 랑탕계곡 방향.
체르코리를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을 시작한지 20여 분도 안 되어서 주저앉는다.
당겨본 후미들도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의 쉼으로 되찾은 원기를 가지고 다시금 체르코리를 향한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가야 할 체르코리가 제법 가까이 보이고,
우측 멀리로는 뾰족한 '랑시샤리'도 모습을 드러낸다.
참고로 셀파의 설명에 따르면 네팔에서는 5000m가 안 되는 봉우리는 이름도 잘 붙지 않는다고 하며,
5000m대의 봉우리에는 '리(Ri)'가 붙고, 6000m대 봉우리에는 '피크(Peak)'가 붙으며,
7,000m 이상이 되어야 '산(Mountain)'이 붙는다고 한다.
능선 우측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체르코리로 이어진 가야 할 능선이 가늠된다.
산행기에서 읽은 바로는 강진곰파에서 체르코리 왕복은 9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빠른 분들은 7시간 정도에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고, 늦은 경우에는 12시간 정도까지 걸리기도 한단다.
앞쪽으로 빤히 보이는 정상까지 4시간, 돌아오는데 3시간 정도 해서 총 9시간 정도를 희망해 보지만..
본격적인 오름길을 시작한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몸에 기운은 모두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사진으로 보면 완만한 능선길로 보이는데,
실제는 얼마나 가파르게 느껴지고 힘들던지..ㅉㅉ
사면길을 따라 능선 위로 올라서니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능선에 올랐으니 이런 완만한 능선길만 계속되길 기대하며,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살짝 당겨본 랑탕리웅 방향.
앞쪽으로 보이는 능선의 중간 봉우리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보이지만,
저 봉우리 도착까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써버리게 되는데..ㅉㅉ
설산의 봉우리만 비추던 햇살이 랑탕계곡 바닥에도 산 그림자를 만들고,
랑탕리웅 우측으로는 킴슝도 모습을 드러낸다.
앞쪽으로 누가 이런 곳에 돌탑을 쌓았을까 궁금해지려 하는데,
자세히 보니 돌탑이 아니고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돌담이다.
얼마 전 TV에서 본 기억으로,
돌담으로 둘러진 움막터는 야크나 염소 등을 방목하러 온 현지인들이 밤을 보내는 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신작로처럼 느껴지던 능선길을 올라와서 돌아보니 날등처럼 위험해 보이고,
저만치 앞서 가 있는 창병씨가 부러울 뿐이다.
입으로는 천천히를 외치며 주변의 설산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몇 번째 쉼인지 기억조차 없지만,
그래도 풍광이 멋진 곳에서의 쉼은 체르코리를 향한 집념을 공고히 하기에 충분하다.
동남쪽 칸첸포(좌)와 폰겐독쿠(우) 방향.
살짝 당겨본 칸첸포 모습.
랑탕리웅 방향.
잠시의 쉼으로 원기를 회복하던 백두들에게 다시금 도전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 것은?
떠오르는 태양의 후광을 받고 있는 멋진 체르코리 정상 모습이다.
돌아본 랑탕계곡과 랑탕리웅 모습.
체르코리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설수록 랑탕리웅과 킴슝의 모습도 조금씩 커진다.
체르코리 정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 태양이,
설산 주변의 작은 암봉들과 골짜기도 늦잠에서 깨워낸다.
더텨진 발걸음에 저만치 앞서가서는 앉아서 기다리는 셀파와 한 대장이 부러울 뿐이다.
그렇게 3분 걷고, 5분 쉬고를 반복하는 사이에 랑탕리웅의 모습도 완연해지고,
떼어놓는 걸음의 숫자만큼이나 멋지게 변하는 풍경에 위안을 받는 백두들.
돌아본 랑탕계곡은 조금 멀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데,
가야 할 체르코리는 좀처럼 다가서질 않는다.
작렬하는 태양빛이 체르코리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붓고,
주변의 설산들은 느긋한 표정으로 덤덤이 지켜보고 있다.
'걷고 또 걸으면 안 될게 무어 있어!'를 연발하는 사이에,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는 셀파들의 시선이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따갑게 느껴진다.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체력을 가진 분들은 한없이 여유로운 산행이 되는 듯!
멋진 설산에 둘러싸인 저 체르코리 모습을 보며,
태양빛이 내리 쏟아지는 체르코리 정상에 모든 백두들이 오른 모습을 묵묵히 가슴에 품은 회장님!
전위봉 정도로 보였던 능선에 도착하여 본 좌측 랑탕리웅 방향.
이곳이 봉우리라고 생각하고 올랐는데 그냥 능선의 불거진 부분일 뿐이고,
앞쪽으로 또다른 봉우리가 나타난다.
우측 체르코리 방향.
돌아본 나야칸가 방향.
돌아본 랑탕계곡 방향.
고도가 높아지며 관목조차 자라지 않는 풀밭에서 세시간여의 사투로 지친 몸을 누인다.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 완만한 등로를 따라가면 다시 널찍한 풀밭이 나오고,
랑탕리웅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다시 또 쉼을 한다.
돌아본 나야칸가 방향.
그렇게 뚜렷한 의식을 가진 마지막 쉼을 즐기다가.
체르코리를 향한 가파른 오름길에 나선다.
우전방으로 빠히 보이는 체르코리를 향해,
잔설이 남아있는 너덜지대 가파른 오름길을 수없이 많은 쉼터를 만들며 오른다.
고산증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발짝 한 발짝을 떼어 놓다가 앉을 만한 바위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면,
그간의 애쓴 만큼의 보상을 주변 풍광이 고스란히 돌려준다.
고도계를 보니 4,720m를 넘고 있는데,
이 부근부터 주변 풍광이 그동안 보아왔던 풍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마치 최신 3D 렌즈를 끼고서 멋진 장관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뇌리에서는 쉼없이 돌아내려 가야 한다는 외침이 들려오는데,
회장님의 확고한 의지가 모든 백두들의 발길을 체르코리를 향하게 한다.
우전방의 금방이라도 닿을 듯이 보이는 체르코리 정상은 우찌 그렇게도 멀던지!
"아자 아자 출발!"이란 외침을 못해도 20회 이상 반복한 끝에,
다소간 경사가 완만해지며,
체르코리 정상이 앞사람의 어개 너머쯤에 자리한다.
고산증을 심하게 겪는 사람이나 조금 덜한 사람이나 '비몽사몽'이란 말의 의미를 절감하며,
그런 비몽사몽인 경황 중에도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돌보려는 의지는 바로 우리가 백두들임을 느끼게 한다.
흰 가루를 뒤집어쓴 설산이 뾰족한 송곳으로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결단코 파란 하늘물로 샤워를 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어이없는 백두들은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뿐이다.
바위와 눈 그리고 파란 하늘을 무대 배경으로 민들레 홀씨를 닮은 구름이 춤추는 모습은 어디에서 봤을까!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듯이 보이던 체르코리 정상이 코앞이다
사방으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 설산들이 도열해있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정상을 밟는 기쁨을 나누자며 자리를 잡는다.
북쪽 네팔과 티벳을 국경하는 얀사텐지(Yansa Tsenji) 방향.
북동쪽 얄라피크(Yale Peak) 방향.
멋진 장관에 취해 비몽사몽인 정여사님도,
카메라 앞에서는 포즈를 잡아주는 여유도 보이고,
고희에 히말라야 설산을 오른 최회장님은 모진 사투를 이겨내고서,
'해~ 냈다"를 울먹인다.
역경을 이겨낸 벅찬 희열을 따뜻한 차 한잔으로 삭히며,
작은 빵 한조각으로 인내의 한계를 시험받은 서로의 고통을 위로한다.
벅찬 희열을 진정시키고 다소간 차분해진 상태로,
모두가 함께 체르코리 정상으로 향한다.
마침내 룽다와 타르초가 휘날리는 체르코리(Tserko Ri, 4,984m) 정상에 도착하여,
서로의 손을 맞잡고 울먹이며,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영근 열매를 나눈다.
새벽에 출발한 강진곰파가 랑탕계곡 한켠에서 흔적만 희미하고,
서쪽으로 흐르는 랑탕계곡의 좌측에는 나야칸가, 우측에는 랑탕의 터줏대감 랑탕리웅이 듬직하다.
랑탕리웅(Langtag Lirung, 7,234m) 우측에는 뾰족봉으로 보이는 킴슝(Kimshung, 6,745m)이,
그리고 좌측에는 네팔과 티벳의 국경 봉우리인 얀샤첸지(Yansa Tsenji, 6,575m)가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보인다.
북쪽 얀샤첸지(Yansa Tsenji, 6,575m)와 네팔-중국의 국경 능선 방향.
북동쪽 얄라피크(Yala Peak, 5,500m) 방향.
얄라피크를 배경으로.
체르코리 정상에서 거의 모든 백두들이 주변의 풍광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 사람의 기억이란 그다지 믿을게 못 되기에..ㅉㅉ
백두산우회 최병성 회장님 고희 기념 체르코리 등정 인증!!!
좌측이 랑탕리웅, 중앙의 뾰족산이 킴슝이다.
야크의 전설이 깃든 랑시샤리를 배경으로.
백두의 최연장 권용호, 김영임 내외분.
권법사님 체르코리의 정기를 듬뿍 받아서 암투병 속히 끝내시길 응원합니다!
체리코리 정상에서 본 360도 파노라마.
좌측 랑탕계곡 우측으로 랑탕리웅, 킴슝, 얀사첸지, 얄라피크, 랑시샤리, 칸첸포, 폰겐독쿠, 칸자라출리, 나야강가 등의 랑탕히말의 고봉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체르코리 정상에서 본 주변의 설산 풍광(동영상 31")
셀파 리더 텐디, 막내 다와와 함께.
체르코리 정상에서 30여분이란 긴 시간이 광음처럼 지나고,
꿈결 같은 장면들을 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놔둔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
이제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 할 랑탕계곡과 랑탕의 터줏대감 랑탕리웅의 온전한 모습을 또한번 카메라에 담는다.
아쉬워서 한번 더 담아본 주변 설산 모습(동영상 39")
랑탕의 강적들과 함께.
백두들의 피난 처, 손총무님의 처 정여사님과 함께.
정상 직전의 쉼터에 다시 모여 셀파들이 가져온 빵으로 점심 요기를 한다.
그런데 정상 등정을 해 냈다는 벅찬 희열 때문인지,
따뜻한 생강차 외에는 어떤 것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라 그다지 어렵지는 않겠지'라는 섣부른 기대를 가지고 하산길에 나선다.
하산길 출발은 이렇게나 씩씩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스키 슬로프를 연상케 할 정도로 완만한 경사면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며,
여유로운 체르코리 하산길을 시작한다.
어느새 랑탕리웅은 몰려온 구름에 얼굴을 감추고,
그리도 힘겹게 올랐던 너덜길을 천천히 내려선다.
내려서야 할 랑탕계곡은 까마득해 보이는데,
내림길이라 천천히 내려가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을 듯이 예상했지만,
오르는데 모든 힘을 쏟은 탓인지 내림길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힘겨워한다.
그래도 내림길이라 두 다리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조금씩은 어렵잖게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저~어 계곡 바닥 어디에 있을 강진곰파를 향한다.
북동쪽 하늘은 티끌조차 없는 파아란 심연인데,
남서쪽 하늘에는 온통 구름이 일어나 고봉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래 우리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체르코리 정상에서 랑탕히말의 연봉들을 모두 다 뇌리에 담는 행운을 누렸다.
급경사의 너덜길을 내려서서 완만한 사면길로 접어들고,
아침에 체르코리를 향할 때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초원 쉼터에 도착한다.
오를 때와는 달리 사면길은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여유롭고,
이내 랑탕계곡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능선에 들어선다.
하산을 시작한지 두 시간여 만에 랑탕계곡이 빤히 보이는 곳에 도착한 백두의 여전사들.
일어설 수만 있으면 내려는 가는데, 일어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친다.
급경사 내림길이라 다리에 힘이 빠지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다와의 도움을 받아 조심조심 발걸음을 뗀다.
거의 탈진한 분들은 이제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상태라,
핸드폰에 있는 클럽 댄스곡 메들리를 최대의 볼륨으로 틀어서 잠을 쫓으려 애써 보지만,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내림길에서도 쉬어가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오전 체르코리 오름길에서 청명한 날씨로 멋진 설산의 풍경을 보며 내려올 때 사진으로 남겨야지 했었는데,
연무로 시야가 흐려져서 아침에 많은 장면을 담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오름길에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한 탓인지 몇몇 분은 거의 탈진 상태다.
배낭의 간식도 떨어지고 사탕조차 없는 상태라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포도당 소금을 만병통치약이라며 건넨다.
해골바가지를 들고서 산삼물이라며 들이킨 헤초스님 처럼 영험을 경험하는 행운이 올 수도 있겠기에..ㅉㅉ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고도를 낮추다 보니,
어느새 체르코리는 저~만치로 멀어져서 잘 가라 인사한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강진곰파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글거리던 태양이 석양빛으로 변하려 하고 있다.
고도가 낮어져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그런 것인지,
힘들어하시던 분들의 상태가 훨씬 호전되어 보인다.
빙하계곡을 건너는 앞서간 분들이 개미인 듯 자그마하게 보이고,
무사히 체르코리 정상을 다녀왔다는 뿌듯함에 잠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새벽부터 시작된 우리의 체르코리 등정을 꼼짝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나야강가 모습.
돌아본 체르코리 정상도 이제는 구름에 싸여 있다.
빙하 협곡을 건너 다시금 야크의 길에 복귀하고,
야크가 만들어 놓은 널찍한 등로를 따라 숙소가 있는 강진곰파로 향한다.
돌아본 체르코리 방향.
강진곰파의 롯지들이 뚜렷이 시야에 들어오고,
강진곰파를 향하는 지친 백두들을 따라 구름이 쫓아온다.
야크의 전설이 깃든 초원 랑시샤카르카 방향 이정표를 뒤로하고,
의지의 백두들은 강진곰파에 도착한다.
새벽에 출발했던 강진곰파 롯지에 귀환해 보니,
먼저 도착한 분들은 대부분 숙소로 들어가서 치친 몸을 누인 탓인지,
무사귀환을 자축하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도착하는 이들 하나하나는 '해냈다'라는 단어를 뇌리에 새긴 채 침상에 지친 몸을 뉘일 뿐이다.
아마 우리의 삶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세상만사 덧없음을 다시한번 되씹으며 나도 침상을 향한다.
삼장법사님이 강진곰파에 사는지, 어제 강진리를 다녀와서도 손오공의 금고아가 머리를 조는 듯했는데,
오늘 체르코리를 다녀와서도 금고아가 더욱 죄어드는 아픔이 뒤따른다.
잘 차려진 한식을 앞에 두고도 음식이 목구멍에 넘어가지를 않는다.
미지근한 된장국만 몇 술 떠 넣다가 수저를 놓아버리고는, 모두들 말없이 자기의 침대로 돌아설 뿐이다.
우리는 신(神)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신(神)이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존망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해 왔음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意志)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의지(意志)가 어떠한 것을 이루어 놓는지를 보았다.
똑같지 않은 체력을 가진 17명을 지구 상에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산(山)의 높이인
5,000m 봉우리에 올려놓은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우리의 의지(意志)였음을 몸소 체험했다.
그 누구보다 강한 의지(意志)를 가진 최병성님께,
다시한번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랑탕트레킹 7일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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