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네팔 랑탕히말 트레킹(Langtang Himal Trekking) 7일차 (강진곰파~라마호텔)
산 행 일 : 2019. 05. 02.(목)
산행코스 : 강진곰파(3,730m) ~ 문두 ~ 랑탕 ~ 탕샵 ~ 고다타벨라 ~ 라마호텔(2,470m)
(21.8km, 8시간 소요)
산행참가 : 17백두.
<산행지도>
오늘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구간이다. 강진곰파에서 라마호텔까지는 거의 대부분 내림길이라, 이틀에 걸쳐 올라온 거리를 하루 만에 충분히 이동할 수 있다. 강진곰파에서 랑탕마을까지는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갈 수 있고, 랑탕마을에 있는 대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네팔 정부에서 세운 추모비 앞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가도 좋을 듯하다.
지난밤, 가슴에는 체르코리 등정의 환희를 품고 머리에는 손오공의 금고아를 두른 채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모두 사라지고 몸은 습기를 머금은 솜뭉치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오늘 걷게 될 코스는 하산길이라 부담이 덜하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침낭에서 빠져나와 흩트려 놓았던 장비와 옷가지들을 꾸려서 패킹을 해 놓고, 차를 마시려 응접실로 간다.
아침식사가 마련된 식당에 빈자리가 보인다.
아마도 어제의 격심한 피로와 고산증으로 입맛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아무리 하산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 8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빈속으로 출발할 수는 없는 일.
밥알이 모래알 같은 느낌이라 무우국에 말아서 조금 떠 넣다가 수저를 놓는다.
우리가 식사를 할 동안에 모든 짐은 말잔등에 올려지고,
몸통보다 큰 짐을 짊어진 말들도 하산길이라 부담이 없다는 듯 씩씩한 걸음으로 출발한다.
고산증으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체르코리 등정으로 무거운 짐을 벗은 상태라서 그런지,
하산길 출발에 앞서 강진곰파 롯지 마당에 모인 백두들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인다.
강진곰파 마을 뒤편에서 체르코리가 작별인사를 하며 아쉬운 듯 지켜보고 있다.
"잘 있거라 체르코리야.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을..."
"나야칸가, 폰겐독쿠, 칸첸포... 고마웠고, 듬직한 모습 많은 트레커들에게 사랑받길 빌께!"
"킴슝, 우브라. 너희는 너무 무섭게 날을 세우지 말고 조금 유순하게 찾는 이들을 맞아주렴."
그렇게 주변의 설산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숨결을 나누었던 강진리와 체르코리의 모습도 한번 더 담고, 강진곰파를 뒤로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을 시작하자 이내 "옴마니반메홈"이 적힌 마니스톤월이 나타난다.
옛날 진각종에서 설립한 학교에 다닐 때 외던 주문이었기에 그때의 얼굴들도 함께 떠오른다.
<옴마니반메홈(唵麽抳鉢銘吽,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주문으로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라고도 한다. 불교 라마교 신자가 외는 주문으로 '옴마니반메홈(唵麽抳鉢銘吽, 산스크리트어 oṃ maṇi padme hūṃ)'의 여섯 자(字)를 주문을 말한다. 이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되고, 온갖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길은 앞쪽으로 보이는 산골짜기로 이어져 있을 터.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 수는 없지만, 늘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설산으로 둘러싸인 강진곰파를 뒤로하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셀파 다와도 이곳은 처음이라고 한다.
고향에서 늘 보던 풍경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지 한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북쪽 우브라 방향.
체르코리와 랑시샤리 방향.
올 때와는 달리 랑탕계곡의 물줄기에 떠가는 가랑잎 인양 묵묵히 야크의 길로 떠 내려간다.
랑탕계곡에서 본 하나뿐인 시멘트 교량을 따라 작은 물길을 건너고,
묵언수행자인 듯 말없이 걷다가 조잘대는 물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리고,
뒤돌아서서 형제인양 나란히 서서 배웅하는 강진리와 체르코리에게 다시한번 작별인사를 건넨다.
발길은 계곡을 내려가고 있는데, 시선은 자꾸만 뒤쪽을 돌아보게 된다.
죽순 같은 저 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랑탕계곡을 찾게 된다면 저 체르코리 뒤편에 있는 랑시샤카르카를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길 옆으로 전봇대가 이어져 있으니 우리네 산골마을인 듯도 느껴진다.
내가 체르코리에 뭐를 두고 왔지!
고개를 돌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뭔가 더 챙겨갈 게 없는지를 살핀다.
노랫말처럼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라" 더니,
발길을 돌리는 백두들의 입도 굳게 닫히고, 그저 묵묵히 하나뿐인 길을 따를 뿐이다.
올 때 쉬었던 외딴 롯지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어 뒤쳐지는 분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그저 묵묵히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랑탕계곡을 내려간다.
길게 이어진 마니스톤월의 틈새에는
또 얼마나 많은 트레커들의 상념들이 숨겨져 있을지를 생각하니 살짝 서글퍼지기도 하고,
좌.우로 늘어선 바위 산 너머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궁금해지는 사이에,
문두 마을을 지난다.
흙더미로 보이는 눈사태 지역을 지나고,
끝나지 않을 듯이 보이는 마니스톤월의 담장을 따르면,
오름길에 묵었던 랑탕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히말라야의 빵과 커피는 어떨지 궁금해서 들렀는데,
너무 피곤한 탓에 입맛이 사라져서 그런지, 그다지 트레커들의 욕구를 자극하지는 못한다.
네팔 대지진 때 산사태로 묻혀버린 랑탕마을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탑이 나오고,
빼곡히 적힌 희생자들의 이름 앞에서 잠시 고개 숙여 묵념을 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승과 저승이 무애 차이가 있을까 마는,
설령 그것이 신의 뜻이었어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은 마땅히 위로받아야 한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무덤 위를 밟는 게 왠지 죄스럽게 느껴져,
내딛는 발걸음을 살포시 지르밟으며 아려오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써 볼 뿐이다.
복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참화의 현장 위로 산자의 길을 내는 랑탕의 현실을 보면서,
2014년에 있었던 세월호 침몰의 사후 수습 과정이 떠올라, 트레커의 마음을 더욱 심란케 한다.
랑탕 마을을 고스란히 묻어버린 상상키 어려운 산사태의 현장을 돌아보며,
인간의 삶에 대한 상념들을 다시 한번 헤집어 본다.
살아 있는 것들은 다 그래!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마는, 동안 잘 있거라 랑탕아!
계곡으로 휩쓸려 내려가는 길의 꼬리를 잡고 랑탕계곡 내림길을 이어간다.
돌아본 랑탕 방향.
강진곰파에서 멋진 설산을 조망해서 그런지,
주변의 풍광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따른다.
마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우측 지계곡도 말없이 지나니,
탕샵 마을이 나온다.
룽다와 타르초가 나부끼는 탕샵마을 롯지에서 느긋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금 오늘의 목적지인 라마호텔로 향한다.
우리 같은 트레커들이야 좋아서 한번쯤 걸어보는 길이지만,
등에 짐을 잔뜩 지고 날이면 날마다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저 나귀들도 랑탕계곡이 멋지다고 생각할까?
지금까지 관목지대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느라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이 그리웠는데,
드디어 앞쪽으로 숲이 나타난다.
길은 잠시 나무 그늘이 있는 숲으로 이어지더니,
이틀 전 멋진 설산에 경탄했던 고다타벨라 롯지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 한다.
산사태로 길이 끊어진 곳을 우회하기 위해 좌측으로 랑탕계곡을 건너니,
협곡에서 보기 드문 넓은 평지 사이로 길은 이어지고,
길은 다시 울창한 숲으로 들어간다.
제법 가파른 사면을 내려서서,
맑은 물이 조잘거리는 작은 개울을 건너면,
길은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울창한 밀림으로 이어진다.
주변의 설산에 닿고 싶어서 하늘로 치솟는 나무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계곡에 놓인 철다리를 건너는 백두들.
계곡 하류 방향.
랑탕 계곡 우측의 길로 복귀하여 내림길을 이어가는 백두들.
점심 식사를 한 탓인지, 오전의 힘없어 보이던 걸음걸이가 훨씬 가벼워졌다.
앞쪽 코사인쿤드 방향으로 수르야피크(Surya Peak)가 멋지다.
오름길에 차를 마시며 멋진 설산을 조망했던 리버사이드 롯지를 지난다.
길은 우거진 밀림으로 이어지고,
높게 자란 나무가 파란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급할 게 없는 숲길을 따르는 백두들.
산사태 지역을 지나,
잠시 더 내려서면,
오늘의 목적지인 라마호텔에 도착한다.
오늘 묵을 롯지는 오름길에 묵었던 숙소 건너편의 롯지다.
롯지에 방이 부족하여 일부는 텐트에서 멋진 밤을 보내기로 한다.
샤브루베시에서 트레킹을 시작한 이후 며칠 만에 처음으로 물로 세수를 해서 그런지,
다소 깔끔해진 모습으로 한담을 나누다가,
저녁 식사를 하며 어제 체르코리 등정의 뒷 예기로 화기애매한 시간을 가진다.
오늘 걸은 거리가 20km 남짓으로 체르코리 등정 이후라 많이 피곤하여 쉽지 않은 노정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내림길이고 오후 들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서 우려와 달리 어렵잖게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체르코리 정상 등정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에 맞추어 모든 사항을 진행하였는데,
이제 그런 뚜렷한 목표가 없어지고 단지 무사히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모든 게 심드렁하고 별다른 흥이 나지를 않는다.
우리의 삶도 또한 이러할 것이다.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거나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으면 우리의 삶은 긴장되고 흥미롭게 된다.
어제 체르코리 정상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는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고 준비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오늘 우리는 그러지 않았기에 다소 무료한 하루를 보내지 않았나 싶다.
(랑탕트레킹 8일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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