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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네팔 랑탕 트레킹 4일(라마호텔~랑탕) : 묻혀버린 랑탕 마을의 황량함을 대하고 느낀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敬畏感)

by 재희다 2019. 4. 29.

산 행 지 : 네팔 랑탕히말 트레킹(Langtang Himal Trekking) 4일차 (라마호텔~랑탕)

산 행 일 : 2019. 04. 29.(월)

산행코스 : 라마호텔(2,340m) ~ 고다타벨라(Ghoda Tabela, 3,000m, 점심) ~ 랑탕(Langtang, 3,420m)

(12.5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17백두.

 

<산행지도>

 

 

랑탕히말 트레킹 두번째 구간은 라마호텔(Lama Hotel)에서 출발하여, 고다타벨라(Ghoda Tabela)에서 점심을 먹고 네팔 대지진의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랑탕(Langtang) 마을까지의 12km 남짓으로, 고도를 1,000m 이상 높여야 하는 구간이다. 라마호텔에서 출발하여 잠시만 오르면 설산이 아주 잘 보이기 시작하며, 아울러 웅장한 협곡이 나타나서 걷는 기분이 아주 쏠쏠하다. 걷는 길 바로 옆에 낭떠러지인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지만 특별히 위험한 곳은 아니다. 라마호텔에서 2시간쯤 걸으면, 리버사이드 롯지가 있는 Gumnachok을 지나게 되고 이내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대지진 때 산사태로 폐쇄된 계곡 좌측길을 두고, 우측으로 계곡을 건너면 우거진 숲을 통과하는 숲길이 이어진다. 이후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 고다타벨라가 가까워지면, 꾀나 넓은 초지도 나오며 주변을 둘러싼 설산을 배경으로 멋진 추억을 남겨도 좋겠다.

랑탕마을이 가까워지면서 무너져 내린 산의 잔해를 목도하게 되면 누구나 가슴이 아려오게 된다. 랑탕계곡에서 가장 컸던 마을 전체가 2015년 대지진 때 산사태와 빙하 퇴적물로 흔적도 없이 묻혀버린 지역을 지날 때는 너무나 가슴이 미어져서 가져온 스틱을 땅에 짚을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직 땅 속에는 많은 분들이 묻혀 있을 테니까! 거대한 잔해더미를 한참만에 통과하면 위령탑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이내 롯지들이 새로이 지어지고 있는 랑탕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어제 라마호텔의 롯지에 도착하여서부터는 찬물에 씻는 대신에 간단히 물티슈로 얼굴과 발을 닦기만 했다. 고소증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몸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하여, 체온 유지에 신경을 쓰며 세수나 찬물에 손을 넣는 것조차 하산 시까지 금하기로 했다. 사실은 게으름이 몸에 밴 체질이라 얼굴이나 발을 닦지 않는 것은 다반사지만, 머리는 빼놓지 않고 매일 감아왔었다. 하지만 고산증 예방이 우선이니 찝찝함 정도야 문제 될게 아닌지라, 오늘부터 며칠 동안이나 씻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생체실험에 돌입하기로 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새벽 4시도 안되어서 눈이 떠졌지만, 오늘도 종일 걸어야 한다는 핑계로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가, 밖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벌레 잡으려 일찍 일어난 새들이 타르쵸와 룽다가 나부끼는 마당에서 차(네팔 차 '찌아'는 찻잎을 우려낸 물에 몇 가지를 더해 끓이는데, 주로 우유, 설탕, 계피를 넣고 푹 끓인다)를 마시고 있다.

 

<타르쵸(Tharchog)와 룽다(Lungda)>
타르쵸는 경전(불경)을 깨알같이 적어 넣은 다섯 색깔의 천조각을 끈으로 이어 매달은 것으로, 경전을 적은 오색 깃발이다. 티벳의 성스러운 장소, 높은 언덕이나 중요한 길목에는 이 타르쵸가 휘날리는데, 온 세상에 부처님의 말씀이 퍼지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타르쵸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를 일러 티베트 사람들은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타르쵸가 날리는 곳에서는 누구나 바람이 읽어주는 경전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또한 룽다(Lungda)는 깃대를 꽂아 매단 깃발을 뜻하는 것으로, '룽다'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룽(Lung)'은 '바람', 다(Da)는 '말(馬)'을 뜻함) 혹은 '달리는 말'을 뜻한다. 즉 깃대에 걸린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이 '달리는 말'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타르쵸와 룽다의 색깔은 우주의 5원소, 즉 파랑(하늘), 노랑(땅), 빨강(불), 흰색(구름), 초록(바다)을 말한다. 그것은 우주의 모든 것을 상징하며 모든 생명의 근원과 신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것은 가장 높고 신성한 곳에서 어김없이 휘날린다.

 

 

라마호텔의 아침 풍경.

 

 

룽다가 세워져 있는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아침인사를 나누는 백두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하산길에 나서는 트레커들이 보이는데,

저들도 강진곰파에서 체르고리를 다녀왔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롯지의 벽에는 2010년 라마호텔에서 랑탕을 향하다가 실종된 미국인을 찾는다는 전단지가 붙어 있고,

전단지에는 트레킹은 혼자 하지 말고 가이드를 고용할 것을 권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야외 세면대에서 설거지를 하는 롯지 쥔장의 손녀딸.

엄마와 동생들은 카트만두에서 살고, 소녀는 할아버지와 함께 롯지를 운영하고 있단다.

 

한 대장의 지도로 아침체조를 마친 백두들.

 

롯지 부엌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오늘도 6시 반에 차를 마시고, 7시에 아침식사를 한다.

 

 

트레킹 백을 등에 짊어진 당나귀가 씩씩해 보인다.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가 편히 트레킹을 하네~!'

 

당나귀를 보면 밤고구마 생각이 난다. 뭔 상관?

어느 날 마눌이 고구마를 쪄서 먹어 보더니 맛이 신통치 않았던지,

"요즘은 아무 고구마나 다 밤고구마라 한다"라고 투덜거렸다.

그래서 내가 "나귀가 왜 당나귀가 된 줄 알아?"라고 반문했다.

사실 우리가 부르는 '당나귀'의 이름은 '나귀'였는데,

옛날 당나라에서 들여온 나귀가 힘도 세고 튼튼하고 좋다고 하여

당나라에서 들여온 나귀를 '당나귀'라 부르게 되었고,

마침내 당나귀가 나귀란 말을 밀어내고 고유명사화되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밤고구마'란 말이 머지않아 '고구마'란 말을 밀어내고

고유명사화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롯지 공용화장실 내부 모습.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데에도 적응할만하다.

 

 

길 떠날 준비를 마치고,

 

 

라마호텔을 뒤로하고 랑탕마을을 향해 트레킹에 나선다.

 

 

돌아본 라마호텔 마을.

 

 

마을을 벗어나자 이내 등로는 숲으로 이어진다.

 

 

좌측 계곡 건너편 코사인쿤다 수르야봉(Surya Peak) 방향의 무명봉이 아침 햇살 조명을 받고 있다.

 

 

깊은 계곡이라 아직 햇살이 들지 않는 숲길을 따르는 백두들.

 

 

 

우측 산등성이에는 태양이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 확연하고,

 

가야 할 랑탕 계곡길은 신비감을 드러내며 트레커들의 걸음을 재촉한다.

 

 

당나귀나 말(馬)과 교행 할 때에는 산 쪽으로 비켜서야 한다는 말(言)을 몸으로 보여주는 백두들.

 

 

눈부신 태양에 이끌려 랑탕 계곡 깊은 곳으로 발길을 옮기노라면,

 

 

대지진의 흔적을 지나게 되고,

 

얼마나 큰 진동이었기에 바위산이 무너져 내렸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계곡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바위가 이채롭다.

'너는 어디에서 굴러온 녀석이니?'

 

 

나뭇가지 사이로 랑탕히말의 설산이 인사를 건넨다.

 

'이제야 오는가, 오랫동안 작정하여 왔으니 맘껏 즐기시게나!'

 

 

수많은 트레커들의 발길에 다듬어진 계단 돌이 반갑고,

 

 

온갖 새들의 지저귐과 빙하수의 굉음이 웅장한 오케스트라처럼 어울리는 길을 천천히 음미하다가,

 

 

랑탕의 설산이 어른거리는 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설산과의 조우하는 기쁨을 사진으로 남긴다.

 

 

조금 당겨본 이름 모를 설산의 미소!

 

 

저기 보이는 설산까지 한두 시간이면 곰방 도착할 수 있겠지!

 

 

셀파 다와 왈(曰), '설산 아래까지 한두 시간이 아니라 이틀은 더 가야 합니다'

 

'뭣이라고, 바로 지척에 있는데..ㅉㅉ'

 

셀파 텐디, 다와와 함께.

 

 

랑탕리웅 쯤으로 추정되는 설산이 주변의 여름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살짝 당겨본 랑탕리웅 모습.

 

나무와 설산!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리는 빙하수가 청량한 느낌을 더하고,

 

울창한 나무 그늘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랑탕 트레일.

 

 

 

등로는 점점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고,

 

이 땅의 주인 야크가 만들고 원주민들의 애환이 다져놓은 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트레커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울창한 밀림에서 맞닥뜨리는 설산의 모습에 취해,

 

예쁜 포즈를 잡아보는 부총무님.

 

리버사이드 롯지(2,790m)를 앞두고 설산을 배경으로.

 

 

멋진 풍경 사진이 연상되는 리버사이드 롯지에 도착하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설산처럼 강건하신 최회장님!

'고희 축하드려요~~'

 

 

리버사이드 롯지에서 네팔의 전통차 찌아를 마시며,

 

쉼없이 달려온 일상의 기억들을 랑탕의 거센 계곡물에 흘려보낸다.

 

 

 

멋진 랑탕리웅(7,225m)의 자태.

 

 

 

 

랑탕 강가에서의 느긋한 쉼을 뒤로하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면,

 

예쁜 야생화도 눈에 들어온다.

 

 

기~인 세월 빙하에 갇혔다가 이제서야 겐지스강을 거쳐 제 고향 인도양으로 향하는 물줄기 옆으로 이어진 트레일을 따라,

 

고독한 산악인은 설산의 빙하로 향한다.

 

 

 

 

캘린더 그림 속의 외딴집도 지나고,

 

천년을 살아갈 나무들의 환영을 받으며,

 

옛 추억을 함께 더듬을 수 있는 벗과 함께,

 

저 멀리 보이는 설산으로 간다.

 

 

널찍한 공터를 지나 잠시 더 계곡을 따르면,

 

 

계곡을 건너는 철다리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예전에는 계곡 좌측 길로 다녔는데, 대지진 때 일부 구간이 유실되어 지금은 계곡 건너편 길로 다닌다고 한다.

 

철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랑탕리웅 방향.

 

 

철다리를 건너 랑탕계곡 우측으로 들어서면,

 

이끼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한 울창한 숲으로 인도되어,

 

원시림이 뿜어내는 산소를 호흡하자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녹색의 이끼로 뒤덮힌 대지에서 솟아오른 아름드리나무들과 호흡을 나누며,

 

랑탕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숲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랄리구라스.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 >
우리나라 진달래와 같은 과의 꽃으로 멀리서 보면 커다란 꽃이 한송이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진달래처럼 생긴 작은 꽃들이 모여서 만든 부케 같은 여러개의 꽃송이가 모여서 커다란 송이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랄리구라스는 풀 한 포기에 피는 꽃이 아니라 랄리구라스 나무에 마치 열매처럼 엄청난 송이를 이루면서 피는 꽃인데, 정확히 4월 초 고도 1,500~3,500m 지역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꽃 색깔은 주로 빨강이지만 드물게 흰색이나 분홍색, 또는 노란색이나 보라색 꽃송이가 달리는 나무도 있다. 하지만 입술연지처럼 새빨간 꽃이 네팔의 국화(國花)로 제정되어 있다. 랄리구라스의 '랄리'는 '붉다'는 뜻인데, '천국 가는 길에 피어 있을 것 같은 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진달래처럼 배가 고픈 아이들이 랄리구라스 꽃잎을 따 먹기도 하고, 땔나무를 하다 손가락을 다치면 랄리구라스 꽃잎을 따서 상처에 붙이기도 한다. 또한 천식을 앓는 노인들을 위해 랄리구라스 꽃을 따다 술을 담그기도 한단다.

 

 

맑은 물이 조잘거리며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건너,

 

 

 

짧은 오르막을 오르면,

 

 

 

길는 다시 완만해지며 싱그러운 숲으로 이어지다가,

 

 

아이들의 놀이터만큼 널찍한 초지가 나타나며 멋진 설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랑탕리웅쯤으로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이녀석들은 '나귀' 일까, '당나귀' 일까!

 

 

설산과 멋진 조우를 뒤로하고 점심 식사가 예정된 고다타벨라로 향한다.

 

 

랄리구라스가 탐스럽게 장식된 랑탕 계곡의 편평한 녹지를 따르다가,

 

랑탕리웅을 배경으로 추억도 남긴다.

 

 

 

연분홍의 달리구라스와 설산이 랑탕계곡을 더욱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랄리구라스와 설산을 배경으로 추억 남기기에 여념이 없는 백두들.

 

 

지척으로 보이는 저 랑탕리웅은 오늘도 내일도 아닌 모레쯤에야 그 아래까지 가게 된다.

 

 

제법 너른 초지가 나오며 병풍처럼 둘러진 설산이 더욱 멋지게 다가온다.

 

 

 

나도 저렇게 멋진 70을 맞이할 수 있을까!

 

 

 

설산의 유혹에 이끌려 다시금 야크의 길을 따른다.

 

 

 

좌측 설산 아래로 고다타벨라쯤이 보이고,

 

다가갈수록 설산의 모습을 닮은 롯지 지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랑탕계곡을 좌측으로 건너 원래의 트레킹 루트로 복귀하는 철다리가 나온다.

 

 

철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랑탕계곡 상류 방향에서 야크의 모유가 넘실대며 흘러내린다.

 

하류 방향 조망.

 

 

계곡 우측 산등성이 위로 뭉게구름이 멋지게 피어오른다.

 

 

계곡 우측의 산과 구름.

 

 

몸 크기 열 배쯤의 건초더미를 짊어진 촌노의 모습이 안쓰럽고,

 

연분홍 랄리구라스가 어여쁘다.

 

 

마중 나온 검둥이의 안내를 받으며,

 

점심 식사를 예정하고 있는 고다타벨라에 도착한다.

 

돌아본 하류 방향으로 지나온 철다리도 보인다.

 

 

'말들의 집'이란 뜻을 가진 고타타벨라(Ghoda Tabela) 도착.

고타타벨라(Ghoda Tabela)의 '고다(Ghoda)는 말(馬), 타벨라(Tabela)는 집(宇)'이라는 뜻이란다.

 

 

고다타벨라의 해발 높이는 3,008m!

 

이틀에 걸쳐 계곡을 따라 올라 3,000m를 넘어 섰다. 그간 걸어온 좁은 통로와 같은 계곡길은 끝이 나고, 이곳 고다타벨라에서는 넓은 U자형 계곡지대가 형성되어 전체적인 지형 조망이 가능하다. 이처럼 같은 랑탕 계곡임에도 고도를 높이니 저지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급변한 풍경만큼이나 사람들의 생김새와 문화, 심지어 기르는 가축까지 많이 달라져 있다. 우선 기르는 가축이 소(牛)나 염소에서 야크로 바뀌었고,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도 티벳인들이다. 네팔 색채는 이곳에서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이곳에서 산줄기 하나만 넘으면 바로 네팔-중국(티벳)국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척박한 환경이 저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기에 그만큼 티벳문화가 잘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불심 가득한 티벳인들이 사는 지역이기 때문에 불교경전이 쓰인 비석과 깃발이 지나가는 길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주위환경과 겹쳐 일상에서 벗어나 하늘 위 세상에 온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고다타벨라 롯지에서 뜨거운 햇살과 노닐다가,

 

 

 

고도가 3,000m를 넘은 탓일까!

모두들 어제와 달리 고소증이 버무려진 오늘의 입맛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늘의 목적지인 랑탕을 향한다.

 

 

 

숲길이 이어지던 오전과 달리,

고다타벨라를 지나자 울창하던 숲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등로는 관목지대로 이어지며 뜨거운 햇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앞쪽에서 소를 닮은 동물이 자유로운 영혼 인양 불쑥 나타난다.

 

소(牛)일까, 야크일까?

정답은 좁교.(뿔 모양이 앞으로 휘어져 있네..ㅉㅉ)

 

<야크(Yak)와 좁교>
야크는 네팔・티베트 등의 고원 지역에 사는 '소(牛)'과의 짐승으로 소와 비슷하나 다리가 짧고 온 몸이 긴 털로 덮여 있다. 수컷의 몸길이가 약 3.25m 정도, 어깨 높이 약 2m 정도, 몸무게 500~1000kg 정도로 소와 비슷한데, 해발 4,000m 이상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두터운 털이나 심폐기능이 이미 고지대에 적응이 되어있어서 4,000m 아래 저지대로 내려서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즉 야크는 고지의 생활에 적응한 고산 동물로 풀이나 작은 관목의 잎을 먹고 산다. 사람들은 야크의 고기와 젖은 먹으며, 털은 직물을 짜는 데에 쓰고, 심지어 똥 조차도 땔감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야크는 성질이 사나운 편이라 사람들이 좀 더 다루기 쉽도록 물소와 야크를 이종 교배시켜 좁교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야크는 해발 4,000m 고지대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낮은 지역에서도 부려먹을 수 있는 좁교를 만들어 냈는데, 발정기의 물소 암컷을 4,000m가 넘는 고산으로 몰고 가서 야크 수컷과 교배를 시켜서 태어난 동물이 좁교다. 이렇게 야크와 물소 두 동물의 장점을 동시에 지닌 좁교는 당나귀와 말의 교배종인 노새와 마찬가지로 새끼를 낳지는 못하지만, 두 동물의 장점을 모두 지니게 되어 성질이 온순하며 야크처럼 소량의 먹이를 먹으면서도 근지구력은 물소에 비해 훨씬 강하여 야크에 버금가 힘이 세고 물건을 운반하기에 좋으며 고산 지역의 추워에도 강하다고 한다.

 

이런 좁교와 야크는 눈으로도 쉽게 구분이 되는데, 우선 야크는 털이 많이 나 있다. 다리 아래와 엉덩이 부분에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야크이고, 몸에 긴 털이 별로 없는 것이 좁교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불의 모양이 다른데, 야크 뿔은 끝이 뒤로 휘어져 있는데 반야여, 좁교의 뿔은 앞으로 뻗어 있다고 한다.

 

 

야크의 길을 따르던 백두들이 걸음을 멈추고 탄성을 지른다.

 

야크, 그것도 불렉야크다.

 

옛날 농부가 잃어버린 소(아마도 야크인 듯)를 찾으려고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랑탕계곡을 발견하여 '랑탕(LangTang)'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는 그 랑탕계곡에 들어서서, 우리도 그 야크의 전설을 따라 이틀을 더듬어 올라서 드디어 전설의 야크와 조우한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크들.

 

 

그 야크들이 노니는 풀밭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는 백두들.

 

 

저~어 멀리 계곡 끝쯤에 야크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랑시사카르카'가 있을 터!

 

 

끝없이 이어지는 랑탕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는 백두들.

 

 

우측 산 사면에는 끝부분이 부러진 고사목들이 즐비하다.

수목 한계선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곁에 있던 셀파가 대지진 때 거센 바람에 부러진 것이라고 한다.

헐, 지진과 바람, 쉬이 납득이 어렵다!

 

거대한 나무들을 부러뜨린 힘의 원천이 궁금한 나!

 

 

백두들과 궁금증을 파헤치려 끝없이 이어지는 랑탕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저~어 계곡 끝에는 뭐가 있을까!

 

 

온갖 야생화들 중에서 돋보이는 랄리구라스.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천 길 폭포가 신비감을 더하고,

 

살짝 당겨본 이름없는 폭포.

 

 

활짝 핀 네팔의 꽃, 랄리구라스가 하늘의 구름과 닿았다.

 

 

타르쵸와 룽다가 나부끼는 탕샵(Tangsyap) 마을을 지난다.

 

바람에 나부끼는 타르쵸와 룽다가 뒤로 보이는 산과 잘 어울린다.

 

 

 

계곡 아래에서 걷고 또 걸어,

 

랑탕을 향하는 김교수님.

 

 

선두를 이끌던 셀파가 걸음을 멈추고,

저~어~기 보이는 봉우리가 최종 목적지인 체르고리임을 알려준다.

 

살짝 당겨본 체르고리.

"어! 설산이네, 저길 어떻게 올라가!"라며 자조석인 탄성을 토한다.

 

체르고리를 배경으로 찍었는데..ㅉㅉ

 

 

야크들이 노니는 초지를 내려다보며,

 

 

랑탕 마을을 향해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기는데,

 

길가의 어미 야크와 아기 야크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라는 핀잔을 준다.

 

돌아본 탕샵 마을 방향.

 

 

야크들의 핀잔을 들으며 랑탕을 향하는데,

 

우측 산등성이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멋지다.

 

살짝 당겨본 이름없는 폭포.

 

랑탕을 향해 고도를 높여가는 백두들.

 

 

앞쪽으로 산사태의 흔적이 살짝 보이고,

 

 

모퉁이를 돌아 올라서니,

대지진 때 랑탕 마을을 묻어버린 산사태의 흔적이 뚜렷하다.

 

<네팔 대지진(2015)>
2015년 4월 25일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km, 네팔 제2도시인 포카라에서 동쪽으로 68km인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대지진으로, 진원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아 피해가 더욱 컸는데, 이 지진은 규모 8.0의 강진으로 1만 700여 명이 사망한 1934년 대지진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이 지진으로 인해 네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8천4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망인의 수는 아직도 파악이 안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지진으로 인해 카트만두 계곡의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과 같은 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파괴되었다. 에베레스트 산에도 눈사태가 발생해 2014년 에베레스트 눈사태 이후 최대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5년 네팔 대지진은 진원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아 흔들림이 심해 더욱 피해가 컸다. 네팔 지진은 4월 25일 정오 직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km, 대표적 휴양 · 관광도시인 포카라에서는 동쪽으로 68km 떨어진 람중 지역에서 발생했는데, 진원의 깊이는 약 11km로 얕은 편이었다. 여기에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카트만두 계곡 지역 일대에는 인구 250만 명이 허술하게 지어진 주택에 밀집해 살고 있어 지진이 발생하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이 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네팔의 지형적인 입지라 할 수 있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나라인데,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호주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즉 두 지각판이 만나는 지진대에 있는 만큼 히말라야 지역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펌)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랑탕 마을을 고스란히 묻어버린 산사태 현장을 배경으로.

 

저~어기가 네팔 대지진 때 발생한 산사태가 500여 명의 주민이 살던 랑탕마을이 있던 곳!.

 

 

랑탕마을을 무덤으로 만든 산사태의 현장에 마음이 무거워진 백두들이 걸음을 멈추고,

 

대자연의 무심함에 안타까이 먼~언 산을 바라볼 뿐이다,

 

사라진 랑탕 마을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백두들.

 

 

계곡 건너편 산사면을 타고 떨어지는 무심한 폭포 주변으로 쓰러진 아름드리나무들이 나무젓가락처럼 뉘여져 있는데,

대지진 때 발생한 산사태의 충격으로 시속 170km의 강풍이 발생하여 주변의 나무들을 모두 쓰러뜨렸다고 한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한 숲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킨 강풍을 만들어 낸 산사태의 규모와 충격은 상상조차 어렵다.

 

계곡 안쪽 멀리서 체르고리 봉우리가 물끄러미 산사태의 잔해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사태의 현장을 상념에 잠긴 채 바라보던 백두들이 다시금 일어나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랑탕마을을 향한다.

 

 

길은 작은 골짜기를 지나 무너진 산 아래로 이어진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산사태의 현장으로 향하는 백두들.

 

 

산사태 잔해가 덮어버린 랑탕 마을로 접근하자,

 

좌측으로 일부가 떨어져 나간 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구르다가 멈춘 바위들 사이로 돋아난 풀을 뜯는 야크들이 무심해 보인다.

 

 

어여 오라 손짓하는 체르고리를 바라보며 걷노라니,

 

대지진 때 발생한 산사태로 희생된 희생자를 추모하는 듯한 작은 돌탑을 지나게 되고,

 

 

길은 랑탕 마을을 뒤덮어버린 산사태 현장으로 이어진다.

 

 

전방으로 펼쳐지는 V자 계곡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체르고리를 향하는 백두들.

 

살짝 당겨본 체르고리의 모습에 덜컥 겁이 날 지경이다.

사실 조금 가파른 오름길이 있는 평범한 봉우리쯤으로 짐작했었는데,

아직도 눈으로 덮인 설산일 줄이야!

 

 

돌아본 랑탕계곡 모습.

 

 

잠시 전에 우리를 앞질러 갔던 목재를 운반하는 현지인들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쉼을 하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꾀나 무거워 보여서 무게를 물어보았더니, 보통 100kg이 넘는다고 한다.

헉! 저 무거운 것을 지고서 우리를 앞질러 갔다니!

 

 

잠시 더 진행하자 조금은 작아 보이는 목재를 운반하던 노인이 다리를 쉬고 있다.

 

 

이틀 후에 올라야 할 체르고리를 향하는 김교수님의 발걸음은 아직도 가볍다.

 

살짝 당겨본 체르고리(4,985m) 모습.

 

 

랑탕 계곡을 흐르는 빙하수는 목적지인 바다로 향하고,

 

김교수님은 랑탕계곡을 거슬러 빙하수의 고향인 설산으로 향한다.

 

 

백두들이 향하는 체르코리는 아픔을 품고 있는 랑탕 너머에 자리하고 있다.

 

산사태의 현장과 체르고리가 나란히 시야에 들어온다.

 

 

거대한 통나무들이 나무젓가락처럼 한 방향으로 뉘어진 건너편 산에도 할퀴어진 상흔이 남아 있고,

 

좌측의 랑탕리웅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모습에서,

4년이란 세월에도 산의 붕괴란 짐작키 어려운 참화의 상흔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무심한 야크들은 오래지 않은 랑탕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본 랑탕계곡은 연무에 오래된 상흔을 감췄지만,

 

야크의 길을 따르던 노부부는 막막하기만 했을 옛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서도 미소를 지어준다.

 

 

랑탕 직전의 굼바(Gumba)라는 마을쯤인데, 랑탕으로 표시되어 있고,

 

 

굼바(Gumba) 직전에서 무거워지는 걸음을 멈추고 상념을 떨쳐보려 일상의 대화를 건넨다.

 

 

 

 

 

자그마한 체구에 거대한 목재를 지고가는 노인의 모습에 탄성이 터져 나오고,

 

백두들도 다시금 기운을 내어 랑탕을 향한다.

 

 

한가로운 롯지 앞마당을 지나면,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45채의 집과 게스트하우스가 묻혔다는 랑탕 지역을 목도하게 된다.

 

붐볐던 랑탕마을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마치 황량한 사막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황무지로 변한 랑탕을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담아둔다.

 

랑탕 마을을 묻어버린 산사태 현장(동영상)

 

 

랑탕에 다가서자 길가에 작은 돌탑이 자주 눈에 띈다.

아마도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든 것이리라...

 

 

계곡 끝 멀리에서 한참 동안이나 우리를 지켜보던 체르코리가,

"살아오며 쌓아온 희.노.애.락 모두를 랑탕의 잔해더미에 내려놓고서야 내 품에 안겨라"라는 전언을 보내온다.

 

그래 지금부터는 체르코리 자네만 바라보겠네!

 

 

 

 

 

체르고리의 속삭임에 힘을 내어 다시금 랑탕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물길도 건너고,

 

비탈길도 지나서,

 

야크의 전설과 아픔이 교차하는 랑탕과 마주한다.

 

 

참화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작은 돌탑이 방문자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2명의 트레커와 3명의 동반자(가이드 등)을 추모하는 돌탑이다.

 

추모 돌탑에서 바라본 랑탕 마을을 덮어버린 황무지 풍경이 백두들을 경악케 하지만,

 

숙연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랑탕마을을 덮어버린 잔해 위로 들어선다.

 

보이는 것은 그저 황량한 너덜겅이라 모르고 걸었으면 그저 자연의 경이 정도로만 치부하며,

 

올려다본 무너진 산의 모습 또한 설화를 예기 정도로 치부했을 터!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너덜겅 속에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들고 있는 스틱을 바닥에 집기조차 민망하다.

 

 

 

그렇게 숨소리조차 삼키며 조용히 산사태가 마을 전체를 뒤덮은 황량한 사막의 풍경으로 이어진 야크의 길을 따르는데,

 

산사태의 잔해에 산자들의 표식들이 보이면서 문득 현실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황량한 너덜겅에 들어선지 20여분만에야 새로이 건설 중인 랑탕마을 앞에 서고,

 

묵묵히 걸어온 참상의 현장을 되돌아볼 여유도 찾는다.

 

 

 

생존자들의 몸부림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광고판에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지고,

 

새로이 들어선 랑탕마을 입구의 위령탑 앞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이 위로하는 서여사님의 배려에 화들짝 정신을 가다듬는다.

 

 

 

 

옛날 야크의 집터에는 살아남은 사람의 집과 희생자들의 위령탑이 새로이 들어서 있다.

 

새로이 만들어진 랑탕마을 앞의 위령탑에는,

대지진 때 랑탕에서 희생된 네팔인 175명과 외국인 40여명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위령탑 앞에서 희생자께 잠시의 묵념을 올리고,

주변의 야크들에게도 백두들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위령탑을 뒤로하고 새로이 건설된 랑탕마을 숙소로 향한다.

 

새로이 건설된 랑탕마을 인가들은 우리네 제주도의 옛집을 연상케 하는 돌담이 둘러져 있고,

 

작은 밭에도 눈에 익은 돌담이 둘러져 있다.

 

 

오늘의 목적지인 랑탕(LangTang, 3,420m) 마을 롯지에 도착한다.

우리가 묵을 숙소도 최근에 지어진 듯 3층의 시멘트 건물로 패인트 색이 선명하다.

 

내일 걷게 될 강진곰파 방향의 계곡은 몰려온 구름에 휩싸여 있고,

 

힘든 여정을 이겨온 백두들이 작은 기쁨을 함께한다.

 

 

롯지의 꼭대기층인 3층의 식당 겸 응접실에 둘러앉아,

 

오늘 마주친 숲, 초원, 꽃, 설산의 풍경과

지진, 산사태, 강풍, 희생자 등에 대한 예기를 나누는데,

 

 

우리가 느끼는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인지, 창밖의 하늘도 눈물방울을 떨군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고,

 

맛깔스런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도,

 

고산증 때문인지 밟고 지나온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대부분의 백두들은 어제와 같지 않은 식욕을 보인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맥주캔 조각으로 난로를 고치는 솜씨를 발휘하여 랑탕의 맥가이버란 별명을 얻은 이스라엘인 사진작가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트레킹 마지막 날까지 우리와 일정이 같아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내일 걷게 될 강진곰파까지의 여정과 고소 적응에 대한 예기를 나눈다.

 

이곳 랑탕 트레킹은 일반적으로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가 최성수기이고, 다음은 4월~5월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수기가 아닌 겨울이나 여름철 비수기에는 롯지들이 문을 닫게 되는데,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12월 하순부터 1월까지 많이 찾게 되면서 또다른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겨울철에 많이 오는 이유는 학교가 방학하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으로,

유럽인들은 여행을 할 때 안전하고 좋은 시기에 여행을 하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자기의 개인적인 여건이 허락할 때 여행이나 트레킹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서양인들은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남길 때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위험한 것과 권하고 싶은 것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반면에,

한국사람들은 좋은 점을 위주로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생각을 많이 기술해 놓는다고 한다.

한대장의 이런저런 예기는 집떠나는게 마냥 즐거운 우리들의 여행계획 수립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렇게 우려반 기대반으로 나누던 예기도,

내일부터 겪게 될 본격적인 고소증에 대한 걱정으로 마침표를 찍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어제는 그저 랑탕 트레킹에 대한 가득한 기대를 안은채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이어진 V자의 좁은 협곡을 따라 이어진 숲길을 걸었는데, 오늘은 울창한 밀림 숲을 벗어나며 제법 널찍한 U자형의 계곡으로 바뀌는 랑탕계곡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지는 설산들을 보면서 걸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젓가락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뭇 의아했던 궁금증들이 랑탕 마을을 무덤으로 만들어 버린 대지진의 여파로 무너진 산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엄습한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생각하지만,

그 누가 알리요. 바로 내일이 그날 인것을!

 

 

(랑탕트레킹 5일차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