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팔공기맥 1차(가사령~꼭두방재) 경북 포항시.
산 행 일 : 2019. 07. 27.(토)
산행코스 : 가사령 + 734봉 팔공기맥 분기점 ~ 743봉 ~ 달의령 ~ 785봉 구암지맥분기봉 ~ 옷재
~ 604봉 ~ 꼭두방재 휴계소 (17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17백두.
<산행지도>
본디 이번 산행은 피서용 계곡 트레킹을 예정하였으나, 태풍이 몰고 오는 많은 강우 예보로 예정하였던 연가리골과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순연하고 비 예보가 없는 곳을 찾던 중, 내년쯤에 시작하려던 팔공기맥을 앞당겨 시작하기로 했다. 팔공기맥(八公岐脈)은 낙동정맥 통점령과 가사령 사이에 위치한 733.9봉(가사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보현산(1,126m)과 팔공산(1,192.8m)을 지나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새띠마을에서 낙동강에 그 맥을 담그는 총 도상거리 160.1km 되는 산줄기다. 경상북도 북부내륙지방과 중남부지역을 구분하는 산줄기인 팔공기맥은 북쪽의 안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낙동강 상류지역의 문화권과 동남부의 경주, 대구 등의 지역과는 약간의 다른 문화권적 특색을 구분짓고 있다. 또한 1950년 발발한 6.25 동란 때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준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한 산줄기이기에, 그리 오래지 않은 광란의 역사를 돌이켜 보며 걸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10여 년 전 낙동정맥 걸을 때 갔던 죽장식당은 문을 닫았고, 마땅한 식당과 목욕탕을 물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겨우 청송으로 나와서 목욕을 하고 청송 IC 인근의 한정식집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예약했다.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농촌 인구의 감소로 지방에서의 맛집이나 목욕탕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또다시 10여 년이 흐른 다음에는 과연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과연 인구의 도시 집중현상이 불러올 여러 가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청송 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산행 출발지인 가사령에 도착하니, 거의 전국적인 비 예보에도 가사령의 하늘에는 별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달은 가끔씩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곤 한다. 혹서기 산행인지라 일찍 출발하자는 의견에 따라, 잠시의 쪽잠을 뒤로하고 버스의 불을 밝히고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에어컨이 켜진 버스에서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밤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가사령(佳士嶺)>
경북 포항시 죽장면 가사리에 위치한 고개다. 예전에는 영일군에 속했던 곳이었으나 포항시에 병합된 곳으로, 말이 포항시이지 우리 나리 오지 중에 오지인 곳이 이곳 가사령이다. 가사리와 상옥리를 연결하는 69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병암산 입암(立岩)에서 상옥으로 넘어가는 가사령(佳士嶺) 골짜기에 큰마을, 중마을, 윗각단, 갈밭, 독골과 같은 자연 부락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 때부터 가사리라 하였다. 죽장초등학교 가시분교(1965.3.1.~1992.3.1.)는 폐교되었으며, 현재 표고버섯 재배지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때는 백탄을 공급하던 숯의 명산지였으며, '어사룡'이라는 나무꾼 노래를 비롯한 풀베기.김매기의 농요와 초동(樵童)들의 놀이였던 지게상여놀이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이 부근에는 250여 년 전 능성구씨(綾成具氏)가 입향하여 당대에 유명한 '가시내 솥'을 만들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가시내'란 지명은 이곳에서 생산되던 솥의 질이 워낙 뛰어나서 장안의 기방(妓房)에서까지 소문이 자자한지라 이에 빈정댄 뜻으로 '가시내 골'이라 부른 것에 연유한다고 한다.
이곳 죽장면 지역은 대표적인 산간오지로 가사령에서 발원한 물과 두마리의 보현산에서 발원된 청정 지역의 1급수는 입암리에서 서로 만나 협곡 사이로 큰 계류를 이루며 일광리, 지동리를 지나 영천댐으로 흘러 들어간다. 가사령 주변의 산은 높고 골아 깊은 빼어난 자연경관을 간직한 탓에 옛부터 문사와 필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가사령에서 팔공기맥 분기점인 가사봉(733.9)까지는 낙동정맥을 따라가게 되는데,
낙동정맥은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측 작은 봉우리로 올라야 하지만,
이내 다시 임도로 내려오게 되고, 낙동정맥은 옛날에 걸은 길이라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5분 정도 임도를 따르니 봉우리를 거쳐온 낙동정맥과 다시 만나고,
우측으로 휘어가는 임도를 두고 직진 방향 낙동정맥 능선으로 진행하면,
낙동정맥 능선 위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라 가사봉을 향하게 된다.
벌목지대를 지나 소나무숲으로 이어진 오름길 등로를 따르면,
좌측으로 오늘 걷게 될 팔공기맥 능선이 보이고,
출발 지점인 가사령 방향으로 성법령으로 이어져 가는 낙동정맥 능선이 뚜렷하다.
우측 성볍령에서 좌측으로 뻗은 능선이 내연산을 지나 강구항으로 이어지는 내연지맥이다.
걸어온 능선을 카메라에 담는데, 촘촘히 역어진 거미줄이 이채롭다.
낙동정맥에서 팔공기맥/보현지맥이 분기하는 분기점 도착.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판에도 팔공기맥/보현지맥 분기점이라 표시되어 있는데,
어느 게 기맥이고, 어느 게 지맥인지는 정하기 나름인 듯 보이고,
우리는 팔공기맥이라 여기며 인증사진을 남기고 낫선 팔공기맥 종주에 나선다.
이곳 팔공기맥 분기점에서 장도에 오르는 백두들의 면면들 중에는,
10여 년 전 눈에 덮인 이곳을 지날 때의 백두들 몇몇 분이 보이지를 않는다.
이제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낙동정맥 팔공기맥 분기점에서 실질적인 팔공기맥의 분기봉인 고라산을 향하는데,
좌측으로 내연지맥의 능선의 내연산(향로봉) 쯤도 가늠된다.
실질적인 팔공기맥 분기봉인 가사봉/고라산 정상을 지나며,
옛날 낙동정맥을 걸을 때 팔공기맥 방향으로 알바를 다녀오셨던 오여사님이 옛 기억을 떠올리며..
<가사봉/고라산(古羅山, 744.6m)>
분기점(가사봉)에서 좌측으로 10분 남짓을 올라오니, 요즘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고라산이 나타난다. 그러나 고지도인 조선지도, 대동여지도. 조선팔도지도 등 이곳 죽장면 일대가 경주에 속할 당시의 옛 지도에는 고라산(古羅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의 북쪽과 청송군 부남면의 남쪽을 경계하는 능선은 동.서 양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팔공기맥을 이루고 있다.
고라산을 뒤로하자 좌측으로 성법령 방향의 낙동정맥 능선이 새벽 안갯속에서 희미하게 가늠되고,
좌측으로 벌목이 된 팔공기맥 능선을 따르는데,
오늘부터 걷게 되는 팔공기맥은 1950년에 발발한 6.25동란 때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준 확실한 보루 역할을 한 곳이다. 전쟁 발발 50일만에 손바닥만한 땅 밖에 남지 않은 풍전등화의 위기 때에, 그걸 지켜주고 대반격의 발판이 되어 준 곳이 오늘부터 우리가 걷는 이곳 팔공기맥 능선이다.
북한은 평양에 공산정부를 수럽도 하기 전인 1948년 1월에 강동정치학원이란 것을 설치하고 유격대원을 양성하여 남파를 시작하였고, 이곳 팔공산이 있는 이 능선에도 공비들이 특실 거렸다고 한다. 6.25가 터지고 개전 50여일 만인 8월 초에 아군은 중부지방은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 서쪽지방까지 포기하고 낙동강을 오르내리며 마산~왜관 방어선을 지켰다. 남북간 방어선은 낙동강을 따라 설정되었지만, 동서간 최종 방어선은 이곳 팔공기맥을 따라 형성되었다. 남북간, 동서간 전선은 왜관을 꼭지점으로하여 '「'형(역ㄱ자형)으로 연결되었다. 마산~창녕~현풍~왜관 사이의 남북간 낙동강 전선은 미군이 맡았고, 왜관~유학산~가산~팔공산~화산~보현산~죽장(포함)의 동서간 팔공기맥 전선은 한국군이 담당하였다. 동서간의 전선이 팔공기액을 따라 형성된 것은 이 기맥 능선이 높은 산줄기로 이어져 적을 방어하는데 상당히 유리한 지형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가사령에서 낙동정맥을 빠져나와 꼭두방재(포함~청송 간 31번 국도 상의 고개), 보현산 노귀재(안동~영천간 35번 국도), 화산, 갑령재(의성~영천간 28번 국도), 팔공산 한티재, 가산 소야재(상주~대구간 25번 국도 및 군위~대구간 5번 국도)를 거친 뒤에 왕학지맥으로 흩어진 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이곳이 대한민국을 지킨 최후의 보루가 된 곳이다.
등로가 우려와 달리 너무 뚜렷하고 좋다.
묵묘가 있는 697봉을 지나고,
이내 687봉을 또 지난다.
다시 안부를 지나 746봉을 향하는데,
나뭇가지에 '1'이라 적힌 표식이 붙어 있다. 뭐지?
'뭐지?'라는 궁금증을 안은채 오름길을 오르면,
통신탑으로 추정되는 철탑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철탑봉을 지나니 수레길 수준의 등로가 이어지고,
지도상 746봉 정상쯤에 도착하는데,
이번에는 숫자 '3'이란 표식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뭐지!
그러면 숫자 2는 그냥 지나친 건가?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수레길을 따르다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또 숫자 '4'가 적힌 표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742.9봉이라는 표지판이 걸린 달봉에 도착한다.
<달봉(742.9m)>
포항시 죽장면 월평리와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오래된 삼각점이 있다. 옛 지도에는 달봉이라 표시한 곳도 있다. 아마도 달봉 아래에 있는 달의령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닌가 한다.
숲이 우거져 별다른 조망이 없는 달봉을 뒤로하면,
이내 달의령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달의령 쯤에서 후미를 기다리는 백두들.
<달의령(達義嶺)>
포항시 죽장면 월평리와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의 경계로, 다리방재라고도 부른다. 이곳부터는 임도와 팔공기맥 능선이 나란히 간다. 기맥능선을 따라 올라도 금방 다시 내려와 임도로 내려서고 또다시 능선으로 오르기를 반복한다.
기맥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 백두들.
사실 우측 기맥능선으로 진행하고 싶었으나 등로가 없는것과 마찬가지 상태다.
돌아본 달봉 방향.
임도 좌측의 소나무가 멋지다.
임도가 기맥능선 우측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757봉을 향해 좌측 숲으로 든다.
그냥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아직은 그리 덥지도 않고 숲길도 괜찮은 듯하여 숲길로 들었는데,
757봉 오름길에 큰 개미 정도로 보이는 벌에게 옆구리 부분을 쏘였는데 통증이 무척 심하다.
그냥 임도를 따를 것을 괜히 정통 능선을 고집하다가..ㅉㅉ
암튼 널찍한 공터가 있는 757봉에서 좌틀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무심코 앞사람을 쫓아 직진을 하는 바람에 알바 아닌 샛길로 들어서게 된다.
757봉에서 거친 등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니 다시 임도가 나오고,
임도 한켠에서는 앞서간 백두들이 아침식사를 하려고 배낭을 풀고 있다.
오늘은 길도 좋은데 일찌감치 먹고 가자며 식사를 시작하고,
잠시 후 임도를 따라온 후미도 도착하여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오늘 산행은 혹서기라서 옷재까지 진행하는 팀과 꼭두방재까지 진행하는 팀으로 나누어 진행함에 따라,
식사 중인 옷재까지만 진행하는 팀을 두고 꼭두방재까지 가는 분들이 먼저 출발한다.
757봉에서 좌틀하여 팔공기맥 능선을 따르면 다시 임도로 내려서는 지점을 지나고,
기맥능선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두고,
홀로 능선으로 올라서 바라본 남쪽 침곡산 방향.
이곳에서도 계속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이번에 오르는 봉우리가 구암지맥 분기봉이여서 홀로서라도 밟아 보기로 한다.
능선 오름길이 길게 이어지더니,
구암지맥 분기봉인 785.4봉에 도착한다.
<구암지맥 분기점(785.4m)>
임도를 두고 표지기를 따라 우측 능선으로 올라 긴 오름길을 20여분 올라서면, 구암지맥이 분기하는 785봉에 오르게 된다. 구암지맥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우로 용전천과 좌로 길안천을 가르며 북서진 하다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추월마을) 임하댐 아래에서 반변천으로 잦아드는 57km 쯤의 산줄기다. 아울러 포항시계가 구암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탓에 구암지맥 방향으로 꾀나 많은 표지기들이 걸려 있다.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다시 임도가 나오고,
임도 건너편 나뭇가지의 표지기를 따라 다시 숲으로 든다.
좌전방 죽장면 방향 산그림.
우측 구암산 방향.
좌측 죽장면 석계리 달리방 방향.
남쪽에서 기맥능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능선 모습.
다시 임도에 내려서서 좌측으로 임도를 따르면,
이내 다시 숲으로 들라는 표지기들이 좌측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걸려있다.
앞서간 분들이 계속 임도를 따라 송이골로 내려섰다가 다시 임도를 따라 기맥능선의 백고개로 갔지만,
'정통 백두가 맥길을 걸으며 골짜기로 내려가서야!'라며 능선으로 들었지만, 이내 후회를 하게 되는데..ㅉㅉ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698봉쯤을 지나고,
또 647봉도 지나며, 연이어지는 봉우리에 괜히 기맥능선으로 들었다며 후회를 한다.
그래도 멋진 소나무숲의 위로를 받으며,
646봉을 지나고,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는,
곰방 또다른 언덕을 지난다. 휘유~~
제법 뚜렷한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더니,
우후방으로 송이골과 구암산쯤이 조망되고,
우전방으로 송이골이 내려다 보인다.
또 520봉쯤을 지나니,
송이골과 구암산이 뚜렷이 조망된다.
다소 완만해진 내림길을 따르니 우측 아래로 송이골에서 백고개로 오르는 임도가 내려다 보이더니,
팔공기맥 능선과 백고개로 향하는 임도가 잠시 나란히 이어지다가,
널찍한 공터가 있는 백고개에 도착하여,
나무 그늘 아래에서 웃통을 벗어젖치고 10여분 이상 땀을 식힌다.
<백고개>
포항시 죽장면 석계리의 우측 송이골에서 좌측 갈근마을로 넘나드는 고개다. 송이골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야 관할 면인 죽장면으로 갈 수 있고, 북쪽으로 난 마을 앞 도로를 따라가면 청송군 부남면으로 이어진다. 백번이나 굽어진 고개라고 하여 백고개라 부르는데, 그만큼 오지라는 이야기다.
백고개에서 수레길 수준의 능선 등로를 따르다가,
수레길이 좌측 사면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우측 오름길로 들어서면,
가파른 소나무숲길이 이어지다가,
583봉쯤을 지나고,
590봉에서 기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지다가,
다음 봉우리에서 기맥길은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671봉 직전에서 기맥길은 좌틀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671봉을 지나 직진의 능선 방향으로 알바를 갔다가, 빽!
다시 671봉 직전의 기맥길이 좌측으로 꺾어지는 지점으로 돌아 나온다.
그러잖아도 덮고 힘들어 죽겠는데..ㅉㅉ
표지기가 여러 개 걸려있는 곳에서는 지도를 한번쯤 확인하고 갔어야 했는데,
알바 15분!
희미한 등로를 더듬으며 작은 봉우리를 연달아 넘는다.
무더운 날씨에 553봉쯤을 지나며 이 구간이 여름에는 쉽지 않은 빨래판 구간임을 절감하는데,
북서쪽으로 자초산 쯤이 능선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남쪽 비학산 방향의 산그림.
살짝 당겨본 비학산 방향.
서북쪽 자초산 방향.
좌측의 능선이 가야 할 팔공기맥 능선이다.
벌목지대에 들어서자 관목들이 빼곡하게 우거져 등로 구분은 고사하고 헤쳐나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정도면 옷재까지 산행이 예정된 후미들이 길을 찾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우려가 된다.
삼각점이 있는 521봉을 지난다.
후덥지근하던 날씨에 비라도 와 주었으면 했는데,
나의 바램을 듣기나 한 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배낭 커버를 씌운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는데 주변에 표지기도 거의 보이지 않아,
배낭에 넣어 놓은 지도를 꺼내어 제대로 팔공기맥 능선을 가고 있는 게 맞는지를 확인하며,
앞서간 분들이 옷재를 지나기 전에 오늘 산행을 옷재에서 종료하자는 연락을 하려는데 전화가 안 된다.
553봉쯤을 지난다.
뒤따라 오는 후미들이 걱정이 되어 통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계속 통신이 되지 않는다.
내림길 능선에 무명봉 하나를 지나는데 내리던 비가 그친다.
선두팀과 후미팀 모두 통화가 되지 않는데, 옷재에서는 통화가 되겠지 기대하며 옷재로 향한다.
옷재 도착.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와 합덕리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인데,
옛날 산행기에는 비포장 임도였다는데 비교적 최근에 포장이 된 듯하다.
옷재에서 꼭두방재 방향 들머리는 좌측으로 10여 미터 이동하여 절개지 끝 지점에 있다.
후미들도 머지않아 도착할 듯하여, 아래에서 기다리는 버스 기사분께 전화를 하려는데 이곳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어찌할까를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선두들은 꼭두방재로 향했을 것이고,
이곳은 전화가 불통이니 꼭두방재를 향해 잠시 더 진행하면 나오는 604봉 산불감시초소쯤에서는
통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꼭두방재를 향해 들머리로 접어드는데 커다란 뱀이 간담을 서늘케 한다.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고,
우측 죽장면 상사리 방향으로 구암지맥 능선쯤이 우람해 보인다.
604봉 직전의 돌탑이 있는 우회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후미에게 연락을 했더니 다행히 통화가 된다.
30분쯤 후에 옷재에 도착한다기에 버스기사에게 옷재로 와 달라고 전화를 넣고는,
좌측 우회길로 접어들어 604봉을 우회하기로 한다.
호젓한 사면 오솔길을 따르니 604봉을 지나온 팔공기맥 능선에 복귀하고,
다시 돌탑이 있는 능선 우회 갈림길에서 좌측의 우회길로 들어선다.
다시 기맥능선에 복귀하며 이렇게 우회길을 따르면 선두들과의 시간차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 보지만,
만약 선두들도 우회길로 갔으면 오히려 간격이 더 벌어질 텐데 라는 걱정도 든다.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 등로로 진행하면,
등로 좌측에 '입산금지'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미 입산했는데 여기다가 걸어 놓으면 어쩌란 겨?
지금까지 몇 개의 돌탑은 모두 우회길이 있는 지점에 있었는데,
이곳은 그냥 능선길이 이어진다.
우거진 참나무숲 능선으로 기맥길이 이어지며,
가끔씩 보이는 표지기는 쉬어간 장소에 걸어 놓아서,
정작 기맥길을 찾는 데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785봉을 지나는데 등로 옆에는 포항시경계 등산로 표식이 놓여있다.
아마도 아침에 지났던 785봉(구암지맥분기봉)에서 구암지맥 방향으로 이어졌던 포항시 경계가,
이곳에서 다시 팔공기맥과 만나 보현산 직전까지 함께 이어지는 듯하다.
완만한 능선길에 묘지들이 자주 보이며 등로가 한결 뚜렷해진다.
아마도 포항시 경계를 걷는 분들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둥그런 안부를 지나는데 좌.우로 옛길 흔적이 희미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유현쯤인 듯하다.
<유현(柳峴)>
포항시 죽장면 점말에서 청송군 현동면 계전 마을로 넘나드는 옛고개로, 꼭두방재 도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왕래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세월에 묻혀 사람의 흔적을 찾을 길 없다.
545봉쯤을 지나는데 앞서간 두규형으로부터 꼭두방재에 도착해서 물을 가지고 마중을 나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기는 한데, 힘든 산행을 겨우 마쳤는데 그냥 쉬시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다.
528봉을 지나고,
538봉을 지나며, 심해지는 갈증에도 겨우 목만 축이며 아껴두었던 물을,
마중 나온다는 전화에 기대를 하며 반 병 정도 남아있던 물을 모두 들이킨다.
묵묘를 지나며 이제 조금만 가면 션한 물을 들이키겠지 라는 기대를 하며 기운을 내어 본다.
저 봉우리에 오르면 마중 나온 분을 만나겠지라며 531봉을 올랐는데 아무도 없다.
아껴 두었던 물을 조금씩 마실걸 하는 후회를 하며 다시 꼭두방재를 향한다.
그렇게 물병을 들고 마중 나오는 분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봉우리를 오르는데,
519봉 정상에서 마중 나온 서 여사님을 만난다.
쉬시쟎고 괜한 일 한다며 핀잔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그 반갑고 고마움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는가!
일단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519.6봉 삼각점을 카메라에 담고,
서 여사님이 건네준 초고바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킨다.
519.6봉 인증도 남기고,
북쪽 자초산 방향을 카메라에 담고는 꼭두방재를 향한 내림길에 들어선다.
519.6봉에서 꼭두방재로 내려서는 등로는 급경사 비탈이 길게 이어진다.
에고, 이런 까플막을 어찌 마중 나오려 생각을 했을꼬!
마중 나온 오여사님과 서여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꼭두방재에 내려선다.
<꼭두방재(415m)>
포항시 죽장면 월평리와 청송군 현동면을 잇는 꼭두방재 정상에는 꾀나 큰 휴게소가 있는데, 사람들의 왕래는 그리 많지 않다. 고개 아래의 마을이 꼭두방.복두방(福頭房).고평(高平)이라고도 부르며, 포항시와 청송군과의 경계인 꼭두방재가 이 마을에 위치한다. 200여 년 전에 해주오씨가 개척하여 복두(福頭) 마을이라 하였으며, 고지대 마을이라 하여 고평(高平)이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이 마을 서쪽 장자메기라는 골에 아산장씨 몇 집이 개척하여 살다가 떠난 후, 절강편씨들이 살았으며 그들이 떠난 후에 현 지역에 해주오씨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꼭두방재를 지나는 31번 국도를 따라 꼭두방재 정상의 휴게소로 향한다.
꼭두방재휴게소 전경.
다음 구간 들머리는 이 휴게소 맞은편에 있다는데 수풀이 우거져 잘 보이지를 않는다.
옷재에서 산행을 종료한 분들도 모두 도착하여 막걸리로 반겨주는데.
괜히 기맥 능선길을 고집하다가 늦어져서 많은 분들을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미안스럽기 그지없다.
꼭두방재 휴게소 모습.
청송읍에 있는 목감탕에서 땀을 닦고,
청송 IC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경상도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맛난 한정식으로 화기애애한 뒤풀이 시간을 즐긴다.
오늘 일기예보에서 비가 예보되지 않는 지역은 경북 일부지역뿐이였기에 부득이 한여름 임에도 불구하고 팔공기맥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소나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또한 완만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능선에 수많은 봉우리들이 연이어 있고, 포항시계 산행코스를 벗어난 팔공기맥 등로는 무척 거친 편이어서 여름철 산행지로는 적합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산행을 무사히 마친 백두들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며, 특히 힘든 산행을 종료한 후에도 가파른 등로를 되돌아 감로수를 배달해 준 두분 여전사님과, 타는 듯한 갈증을 해소하여 준 막걸리 세레를 안겨준 손 점장께 다시한번 진한 동료애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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