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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지리산 태극유람 7차(백무동~장터목~한신계곡) : 기화요초 만발한 연하선경(煙霞仙景)길의 신선(神仙) 놀이

by 재희다 2019. 8. 11.

산 행 지 : 지리산 태극유람 7차(백무동~장터목~한신계곡) 경남 함안군.

산 행 일 : 2019. 08. 10.(토)

산행코스 : 백무동탐방안내센터 ~ 하동바위 ~ 창암능선 ~ 장터목대피소 ~ 연하봉 ~ 촛대봉 ~ 세석대피소

              ~ 한신계곡 ~ 백무동탐방안내센터 (14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15백두.

 

<산행지도>

산 행 지 : 지리산 태극유람 7차(백무동~장터목~한신계곡) 경남 함안군.

산 행 일 : 2019. 08. 10.(토)

산행코스 : 백무동탐방안내센터 ~ 하동바위 ~ 창암능선 ~ 장터목대피소 ~ 연하봉 ~ 촛대봉 ~ 세석대피소

~ 한신계곡 ~ 백무동탐방안내센터 (14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15백두.

 

<산행지도>

 

혹서기 피서용 계곡 트레킹 계획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태풍이 몰고 온 많은 강수로 두번씩이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대안으로 검토하던 영산기맥 산행도 혹서기 산행으로는 적당치 않다는 의견에 따라, 창병씨가 제안한 지리산으로 피서 산행을 가기로 했다. 여름철에 산행을 해야 한다면 해발 고도가 1,000m를 넘는 곳이 좋다는 것은 인지의 사실이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아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으나,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면 뜨거운 햇살을 피하여 주능선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지리산 백무동과 한신계곡을 둘러보기로 계획했다. 처음에는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으로 올라서 연하선경길이라 불리는 주능선을 걸은 뒤,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올 예정이었으나, 하동바위길과 한신계곡길 중에 어느 코스가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기에 쉬운지를 검토하던 차에, 천왕봉을 다녀오고 푼 창병씨가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바로 오르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한신계곡길은 초반에는 완만하지만 세석대피소가 가까워지면서 급경사로 바뀌는 반면에, 장터목으로 오르는 창암능선 코스는 초반부터 비슷한 경사도가 꾸준히 이어져 오르기에 조금 더 무난해 보인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로 변해서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는데, 안성 부근을 지나자 비가 그쳐서 안심을 하였다. 모처럼 의자가 편안한 옛날 28인승 리무진 버스가 배차되어 편안한 잠을 이루다가,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뜨니 산행 출발지인 지리산 백무동에 도착해 있다. 엔진이 꺼져 적막함으로 가득 찬 버스에서 잠시 더 쪽잠을 청하다가, 3시 반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엊그제 입추(入秋)를 지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리산 깊은 산골짜기라서 그런 것인지,

백무동탐방안내센터 주차장에서 버스를 나서니 밤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백무동(百武洞)>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산 천왕봉 등산의 첫 계곡으로 맑고 푸른 물과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중백무에서 하동바위, 제석봉, 장터목,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시발 지점이며, 여름철 가족단위 피서지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곳으로 수십개의 폭포와 기암괴석 등으로 지리산의 장엄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신비의 계곡이다.
백무동은 옛날부터 '지리산의 지혜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백명의 무당이 머물던 곳'이라고 하여 백무동(百巫洞)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지리산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는 산신인 여신 성모(聖母)가 남자를 끌어들여 100명의 딸을 낳아 세상에 내려 보냈는데, 그들이 팔도로 퍼져 나간 출구가 백무동이었다고 한다. 또한, '안개가 늘 자욱하게 끼어있는 곳'이라 하여 백무동(白霧洞)이라 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무사(화랑)를 많이 배출한 곳' 이라고 하여 백무동(白武洞)이라고 한다.

이곳 백무동에는 세석평전 꼭대기에서 시작된 약 10km의 '한신계곡(백무동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명승 제72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뽐낸다. 한신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의 3대 계곡으로도 꼽힌다.

 

위와 같이 백무동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해석이 여러 가지다. 늘 안개가 많이 끼므로 백무동(白霧洞)이 옳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예전부터 많은 무당이 모여드는 골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으므로 백무동(百巫洞)이 맞는 한자 표기일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지금도 여름이면 백무동 골이며 한신골 곳곳에서 굿판을 벌이거나 아니면 벌건 대낮에 집단으로 목욕재계를 하는 여성 기도객들을 그 증거로 들기도 한다. 한편 백무동 주민들은 백무동 동쪽의 중봉, 하봉 능선은 삼한시대 때 국경선이었는데, 전쟁이나 무기와 관련이 깊은 '괴점' 같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기를 뜻하는 무(武) 자를 쓴 백무동(百武洞)이 맞는 지명일 것이란 주장을 편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버스를 남겨두고 가로등이 훤히 밝혀진 도로를 따라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가로등만 훤히 밝혀진 채 텅 비어있는 백무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장터목대피소는 좌틀하여 하동바위길로 진행하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하동바위길(상백무~하동바위~참샘~장터목)>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 마을을 기점으로 한 등산로는 크게 보아 세 갈래가 있다. 백무동 계곡의 주류를 이루는 한신계곡길이 나중에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길이 나뉘고, 백무동에서 곧장 장터목으로 뻗은 하동바위길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중 한신계곡에서 장터목으로 이어진 한신지곡길은 비지정 등산로로 폐쇄된 상태이므로 현재로는 두 가닥뿐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상 겨울에 한신골은 방판을 이루는 곳이 많고 경관도 좀 나빠지므로, 겨울 코스로는 한신골보다는 하동바위길이 더 권할만 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름이라고해서 계곡인 한신골이 더 낫다고 단연키도 어렵다. 이는 여름 한신골 풍광이 신통치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동바위길이 가진 멋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동바위길은 특히 지리산 북쪽지역 사람들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장터목으로 오를 때 애용한다. 서울에서 갈 때도 이 백무동 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시간, 거리상 한결 유리하다.

하동바위길은 짙고 상쾌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는 한편, 중간중간 전망바위가 있고 샘터도 있는 등, 지리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일급으로 꼽을 수 있는 길이다. 중백무 마을의 대형 주차장이 있는 버스 종점에서 골목길을 따라 3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영장 매점이 나오는데, 이 매점에서 왼쪽 언덕길이 하동바위길이다. 상백무 마을에서 하동바위, 참샘을 지나 장터목까지는 5.8km로 3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장터목 대피소에 숙소 예약을 해 두었다면 서둘 일이 없다. 특히 해가 긴 여름이면 점심식사 후 느긋하게 출발하여도 환할 때 산장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좀 일찍 장터목에 다다랐을 경우에는 10분 거리인 제석봉 고사목 지대에 올라가 멋진 노을 구경이 압권이다. 천왕봉 일출 못지않은 감동을 맛볼 수도 있다.

 

'장터목 5.8km'라 표시되어 있는데 7시쯤이면 산행의 어려운 부분은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곳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직진하면 한신주곡길인데, 오늘 산행의 하산 경로로 예정하고 있다.

 

<한신주곡길(백무동~가내소폭포~세석평전)>
한신계곡은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오밀조밀 흘러내리며 일대 승경을 이룬 골짜기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1991년 초부터 1993년 말까지 3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두기도 했었다. 지리산에서는 이 한신골만큼 짧은 간격을 두고 폭포가 연이어지는 골짜기도 드물다. 동쪽 하동바위길이 이어지는 창암능선 너머 칠선골에도 폭포가 적지 않지만 워낙 길고 깊은 골이어서 체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코스는 출입이 제한되어 사전 예약한 일정 인원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한신골은 길이가 칠선골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이고,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 주능선 상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세석으로 바로 이어져 있어서 여름철 지리산 등산로로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신계곡을 엄밀히 구분 지으면 백무동계곡의 상백무 마을 위쪽 골짜기를 말한다. 한신골이란 지명은 중국의 한신 장군과 얽힌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골은 중간에서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크게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세석고원으로 직접 이어진 계곡이 한신주곡, 장터목으로 이어진 계곡이 한신지곡이다. 이중 장터목 쪽의 한신지곡은 비법정등산로로서 입구를 철조망으로 막마 두었으므로 이용하지 못한다. 이 계곡에서는 낙석 사고도 여러번 발생하였고 안전시설도 전혀 해두지 않았다. 상백무 마을의 하동바위길 갈림지점에서 1시간쯤이면 첫나들이폭포에 다다른다. 폭포 바로 위에 철다리도 걸쳐져 있다. 이후 세석고원에 이르기까지 총 8개의 다리가 요소마다 가설되어 있다. 널찍한 등로를 따라 30분쯤 더 걸어 오르면, 한신 주곡과 지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른다. 한신주곡으로 들어서면 이내 가내소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라기에는 실망스러울 만큼 규모가 작지만 그 아래의 소(沼)는 볼만하다. 주곡으로 들어선지 15분쯤 뒤 5층폭포에 다다른다. 등산로 안내판에서 원쪽으로 10m를 내려 가면 5층폭포 중간의 암반 위 전망대에 설 수 있다. 여자가 주저 않았다가 일어난 듯한 모양의 선녀탕과 옥녀탕이 있는 멋진 5단 폭포다. 오른쪽 20m 아래에 한신폭포가 있음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면, 길은 급경사로 변한다. 세석고원으로 올라가기 작전에 특히 경사가 심하다. 그러다가 문득 경사가 약해지면서 광대한 세석고원 풍경이 펼쳐진다. 백무동 버스 종점에서 세석산장까지는 8km에 걷는 시간만 4시간은 잡아야 한다.

 

 

백무동에서 장터목 방향으로 들어서자 이내 가파른 돌계단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일행 중 반 정도는 천왕봉을 다녀오겠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고,

나머지 분들도 많이 다녀본 길이라서 그런지 다들 제각각 취향대로 산행을 이어간다.

 

산행 시작 30여분 만에 1.3km를 왔으니 장터목에 6시 반이면 도착하겠지 라는 기대를 하며,

그러면 멋진 연하선경길을 즐기고 세석에서의 하산길인 한신계곡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올여름의 더위를 모두 식혀 보리라는 기대도 해 본다.

 

 

이제 일행들은 모두 앞서가고 홀로 뒤처져서 모처럼 호젓한 산행을 이어간다.

옛날 처음 산행을 시작하여 백두대간을 걸을 때는 체력의 열세로 늘 캄캄한 밤을 홀로 걸었는데,

어둠이 지배하는 적막한 등로를 홀로서 걸으니 그때의 긴장감(두려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좌측으로 창암능선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국공파들이 법으로 정하지 않은 길을 이런 방식으로 표시해 두고 자기들만 다닌다.

 

 

하동바위쯤에서 앞서간 후미들을 따라잡았는데,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름이 붙을 정도의 별다른 바위는 보이지 않고,

이정목 뒤쪽으로 어둠 속에서 바위 절벽만이 어슴프레 보인다.

장터목까지의 오름길이 금방 끝나지 않으므로 초반부터 속도를 내어서는 쉽지 않을 터인데,

앞서가는 후미의 백두들이 사뭇 걱정스럽다.

 

<하동바위(900m)>

커다란 절벽으로 보이는 바위 한쪽에는 '하동암'이라고 음각되어 있다고 하며, 함양 땅에 있는 바위가 하동바위라 불리게 된 이유는 하동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또는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하동바위라고 불린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 원님과 하동 원님이 장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가던 길에, 풍류를 즐기던 두 원님은 뜻밖의 만남에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찬탄하며 장기를 두게 됐는데 하동 원님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것이 없던 터라, 하동 원님을 놀려줄 요량으로 눈 앞에 우뚝 선 바위를 가져가라고 했다.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나중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져 가기로 하고 우선 이름을 하동 사람들의 바위란 뜻에서 "하동바위"라 명명한 것이 그만 함양에 있으면서도 "하동바위"라 불리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하동바위는 어두워서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그 앞에 있는 볼품없는 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크기만 다를 뿐, 둘 다 대충 보통의 바위니까!

 

하동바위를 찾던 손 총무님도 하는 수 없는 듯,

하동바위 이정목만 카메라에 담는다.

 

 

하동바위를 지나자 돌계단 대신 데크목 계단길이 잠시 이어지고,

 

렌턴 불빛에 미소 짓는 야생화가 어여쁘다.

 

 

칠흙 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렌턴 불빛 없이도 돌계단 등로를 따를 수 있게 되었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걷는 등로가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키더니,

 

 

낯선 산객들만 보이는 참샘에 도착하고,

 

맑고 차가운 샘물만이 심난한 산객을 맞이해 준다.

 

이곳 참샘의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참샘이란 명칭이 여러 옹달샘에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참으로 좋은 최고의 샘'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름 중에서 맛나고 고소하기로 최고인 '참기름', 나무 중에서 단단하기로 으뜸인 '참나무', 좋은 것 중에서 좀 더 좋은 것인 '참 좋은' 등에서 사용되는 '참'을 샘에 붙여서 최상급 샘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차가운 샘물이라서 찬샘으로 불리다가 참샘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저 홀로 걷게 되니 별 생뚱맞은 생각도 다 든다.

 

참샘 이정표.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잠시 기다리니 후미들이 도착하고,

 

시원한 참샘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다시금 원기를 되찾는다.

 

 

참샘을 뒤로하고 다시 우거진 숲속으로 이어진 돌계단 등로로 들어서서,

 

 

가파른 돌계단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제석봉에서 분기하여 마천의 창암산으로 이어지는 창암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 능선에서 좌측은 창암산으로 이어지고, 우측 오름길이 소지봉을 지나 장터목으로 이어진다.

 

 

창암능선으로 들어서면 오름길은 다소 완만해지며 돌계단길이 흙길로 바뀌고,

이내 그냥 능선상의 널찍한 공터인 아랫소지봉을 지나게 된다.

 

<아랫소지봉(燒紙峰)/우장봉(牛場峰)>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를 지나 장터목으로 오르는 길에서, 창암능선으로 올라서서 잠시 진행하면 봉우리 같지 않은 널찍한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아랫소지봉이다. 옛날 이곳에 소시장이 열렸다고 해서 우장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인데, 지리산 높은 곳에 소시장이 열렸을 리는 없을 터이고, 아마도 소시장처럼 널찍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짐작된다. 또 다른 설은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燒紙)'는 봉우리라 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오래전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아랫소지봉의 이정목.

 

 

아랫소지봉을 지나자 능선 오름길은 더욱 완만해지며 키높이의 산죽밭 사이로 그린 듯이 이어진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능선 오름길에 짧은 데크목 계단도 나오고,

 

 

싱그러운 아침 기운을 만끽하며 호젓한 산죽 숲길을 즐기노라면,

 

 

네이버 지도상 웃소지봉(1,312m)쯤으로 표기된 지점을 지난다.

 

 

흙길보다 힘드는 돌길도 지나고,

 

 

등로를 밝혀주는 예쁜 야생화가 홀로 가는 산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산객들이 지치기 전에 자주 나타나는 쉼터들을 지나며,

급경사와 완경사가 어우러져 있는 하동바위길을 지리주능선 오름길로 선택한 것에 만족감도 느낀다.

 

 

짧은 오름길을 살포시 오르면,

 

울창한 나무들이 가려주는 그늘에서 잘 가꿔놓은 듯이 보이는 산죽밭이 멋지다.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서 비춰오는 아침햇살이 싱그러운 숲의 향취를 더욱 진하게 하는 능선길을 따르다가,

 

능선을 우에서 좌로 넘어가는 지점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달궈진 산객의 몸을 식혀준다.

 

 

'망바위'라고도 불리는 소지봉(燒紙峰, 1499.1m) 도착.

소지봉은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올려다본 암봉인 소지봉 정상부 모습.

 

 

소지봉에서 본 제석봉과 가야 할 장터목대피소 방향.

 

살짝 당겨본 장터목 대피소 모습.

 

구름모자를 벗은 연하봉 방향.

 

 

연하봉(좌)에서 반야봉(우)으로 이어진 지리산 주능선 조망.

 

 

 

소지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망바위 전경.

 

 

좌측부터 지리산 하봉, 중봉, 천왕봉 방향 조망.

 

하봉 방향.

 

중봉 방향.

 

천왕봉 방향.

 

제석봉 방향.

 

 

소지봉 정상에서 중봉 위로 솟는 태양을 배경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소지봉을 지나치는 백두들을 따라 소지봉을 뒤로하고 장터목을 향한다.

 

 

간간이 트이는 북쪽 함양 방향의 멋진 하늘을 조망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한 계단 한 계단의 돌계단을 올라 장터목을 향해 고도를 높여가면,

 

 

주변 조망이 멋지게 보이는 커다랗고 편평한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에서 본 연하봉과 촛대봉 방향.

 

지리주능선과 반야봉 방향.

 

반야봉과 고리봉 방향.

 

북서쪽 지리산 북부능선의 삼정산 방향.

 

지리주능선과 반야봉을 배경으로.

 

 

 

아침식사를 장터목에서 하기로 예정하였으나,

이곳에서 장터목 까지는 아직도 20여분을 더 가야 하고,

장터목의 나무 테이블 식탁도 좋지만 이곳의 돌 테이블도 괜찮아 보여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당 앞쪽으로는 반야봉을 경계로 좌측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우측으로는 삼정능선이라고도 불리는 북부능선과 뒤쪽으로 서북능선이 조망되고,

 

서쪽 만복대 방향으로는,

앞쪽부터 오공능선, 삼정능선, 서북능선이 차례로 조망된다.

 

북쪽 함양 방향으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운해가 펼쳐저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만복대를 배경으로.

멋진 배경을 담으려니 누군지 구분이 어렵다.

 

 

숲으로 덮인 바위 너덜을 잠시 오르면,

 

 

제석봉을 우회하여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사면 데크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간간이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며 편안한 데크길을 따르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우리는 우틀하여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천왕봉 방향 들머리에서 서성이던 손 총무님께서 선두팀을 따라 천왕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백두 최고의 준족께서 늘 후미를 책임지느라 몸을 제대로 풀어볼 기회가 없었던 듯,

후비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천왕봉 방향으로 들어선다.

 

장터목 갈림길 이정표.

 

 

장터목 대피소 취사장 건물.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취사장 내에는 아침식사를 하는 산객들로 북적인다.

 

가야 할 세석대피소 방향 능선길은 취사동과 대피소 본건물 사이로 이어진다.

 

 

동남쪽 중산리계곡 방향.

 

살짝 당겨본 중산리계곡.

 

내년쯤에는 갈 수 있으려나?

천왕봉 방향 들머리에 선 영식 형.

 

 

가야 할 세석대피소 방향의 지리주능선 모습.

 

장터목 대피소 앞에서 본 반야봉 방향.

 

 

동남쪽 중산리계곡 방향.

 

남서쪽 가야 할 연하선경길 방향.

 

서쪽 만복대 방향으로 한눈에 보이는 백두대간 지리산구간 능선.

 

장터목대피소 앞에서.

 

<장터목 대피소(1,653m)>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위치한 장터목 대피소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 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장(場)이 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1971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1997년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2005년 10월 18일 '한국의 명산 시리즈(두번째)'우표가 발행된 날부터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제공하고 산행의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현지에서 관광우편 날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현지 날인 서비스를 시행하였으며, 이곳에서 발송하는 우편물은 장터목대피소 관광우편날짜 도장이 찍혀 산청 시천 우체국을 통해 전국으로 배달된다. 대피소에서 중산리 방향으로 20여 미터 내려가면 산희샘(장터목샘)이란 식수가 있다.

 

 

 

 

다시 한번 백두대간 지리주능선을 담고.

 

지리주능선 북쪽 지역을 한눈에 조망한다.

 

만복대 방향.

 

삼정산 방향.

 

 

 

장터목을 뒤로하고 세석대피소를 향한 연하선경길에 들어선다.

 

<연하선경길(煙霞仙景)>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 주변으로는 청암절벽이 솟고 철 따라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하는 꿈같은 절경이 펼쳐지는 지리 10경 중의 제5경인 연하선경(煙霞仙景) 길이다. 탁 트인 전망,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참고로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연하봉을 항하며 바라본 좌측 중산리계곡 방향.

 

장터목대피소를 뒤로하는 백두들.

 

서북쪽 백무동 방향.

 

 

완만하고 싱그러운 연화봉 오름길을 즐기는 석여사님.

 

기화요초(琪花瑤草) :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

 

 

 

 

 

그렇게 만발한 야생화를 담으며 싱그러운 오솔길을 올라서니,

일출봉(日出峰)이라 불리는 널찍한 공터 봉우리에 도착한다.

 

일출봉 정상의 이정표.

 

일출봉 정상에 도착하는 석여사님.

 

 

남동쪽 중산리 방향.

 

지리산 천왕봉 방향.

 

서북쪽 백무동 방향.

 

서쪽 반야봉 방향.

 

일출봉에 도착하는 백두들.

 

 

서북쪽 삼봉산(1,186.7m) 방향.

 

 

 

가야 할 촛대봉 방향.

 

 

 

연하선경길 데이트에 나선 커플이 너무 어여쁘다며..ㅉㅉ

 

일출봉에서 연하봉과 반야봉을 배경으로.

근데 천왕봉으로 운동을 갔던 선두팀 멤버 중에서 서여사님이 벌써 우리를 따라잡았다.

 

 

일출봉을 뒤로하고 연하봉을 향한다.

 

 

앞쪽으로 보이는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이곳 연하선경길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특정야생식물 보호구역이란다.

 

 

 

괘청한 날씨에 기화요초가 만발한 연하선경길의 선남선녀가 어여쁘고 기특하기 그지없다.

멀리 뒤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삼신산인데~~^^

 

 

 

 

 

 

연하봉 오름길에 천왕봉을 배경으로.

 

용현 형은 갖가지 야생화를 담기에 여념이 없다.

 

돌아본 천왕봉 방향.

 

 

구상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돌두꺼비가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지리산 주능선에서 이런 멋진 풍광을 앉아서 즐기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자네도 우리와 함께 촛대봉으로 유유히 걸음하며 신선이 되어 보지 않겠나?

 

 

돌두꺼비 앞에 서자, 좌측 아래로 연하봉 이정표가 보이고 멀리로 반야봉도 뚜렷하다.

 

 

연하봉 인증!

 

<연하봉(煙霞峰, 1,730m)>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연하봉(煙霞峰)이란 이름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명칭이라 한다. 연하선경(煙霞仙景)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새벽 여명의 실루엣이 환상적이며,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원시림이 가득하여 연하봉 일대의 비경을 지리 10경 중에서 제5경인 연하선경(煙霞仙景)이라 부른다. 삼신봉과 장터목산장 사이에 위치한 연하봉 주변은 온통 야생화, 기암괴석, 고사목 등이 어우러진 곳이다. 물론 겨울철에는 그렇지 않지만 촛대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장터목 쪽으로 조금 가면 이름 없는 바위가 있는데 조망권이 넓어 흔히 전망대바위라 일컫기도 한다. 잠시 여장을 풀고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부터 연하봉까지의 등산로에는 온갖 야생화가 뒤덮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철쭉이 만발한다. 전망대바위에서 보는 일몰 역시 장관이다.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로 지는 해를 보기 위하여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연하봉에서 제석봉 방향으로는 일출봉이 기다리고 있다. 일출봉 능선에서 보는 해 뜨는 광경은 천왕봉 못지않다. 정작 연하봉은 여러 봉우리로 이어지는데, 봉우리마다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주변에는 고사목이 즐비하다.
연하선경(烟霞仙境)은 지리 10경 중의 하나이지만 어느 것 하나 서열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절경(絶景)이다. 연하봉을 지나는 구름이 그러하고, 새싹과 꽃이 그러하고, 살아있는 나무는 물론 죽어있는 나무도 그러하고,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그러하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초월한 신선의 경지에 비유하여 연하선경(煙霞仙境)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연하봉에서 서쪽의 세석평전 방향으로는 삼신봉과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촛대봉에서 남쪽으로는 도장골로 이어지는데, 도장골에는 와룡폭포, 윗용소, 아랫용소, 밀금폭포가 소재하며 세석평전에서 내려오는 거림골과 합쳐진다.

 

 

연하봉을 뒤로하고 촛대봉을 향한다.

 

남쪽 도장골 방향.

 

촛대봉 좌측 멀리로 지리남부능선의 삼신봉이 아련하다.

 

 

눈길이 미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산객의 걸음을 더디게 하고,

 

 

 

돌아본 연하봉 방향으로는 그린듯한 풍경이 자꾸만 시선을 뒤로 향하게 한다.

 

 

멋진 구상나무숲이 드리운 그늘을 잠시 지나면,

 

 

또 다른 캘린더 그림이 펼쳐진다.

 

멀리로 반야봉을 물론, 노고단과 만복대가 선명하다.

 

 

 

 

참으로 지리산에 이런 연하선경이 있다는 것을 진정 오늘에야 개달은 느낌이다.

 

 

촛대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을 넘는 실구름 조차 아쉬워서,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멈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북서쪽 백무동 방향.

 

남쪽 도장골 방향.

 

 

앞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네이버 지도에 화장봉이라 표시된 봉우리다.

어떤 산행기에서는 저 봉우리를 삼신봉이라 칭하기도 한다.

 

 

 

화장봉 오름길에 돌아본 연하선경!

 

 

화장봉/꽁초봉 정상에서 돌아본 연하선경.

천왕봉 아래에서는 지나온 연하봉이고 제석봉이고 모두 다 그저 밋밋한 언덕일 뿐이다.

 

네이버 지도에는 이곳을 화장봉이라 표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지리산 지도에도 없었던 이름이다. 또 혹자는 이곳을 꽁초봉이라고 한다는데, 이곳은 본디 무명봉이었으나 산객들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바위틈에 끼워 넣고 갔다고 해서 꽁초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장봉에서 본 반야봉 방향.

 

 

화장봉을 지나자 나무, 풀, 꽃, 돌, 흙이 어우러진 나들이길이 이어진다.

 

이것이 연하선경길인가 싶다!

 

 

장터목에서 1.3km의 연하선경길을 오는데 1시간쯤 걸렸다.

딱 내 체질에 맞는 속도다!

 

 

 

 

 

편함에 안주하지 말라고 약간의 오름길도 배려해 두었고,

 

 

전망바위에 올라서 돌아본 천왕봉 방향의 풍경이 또 다른 캘린더의 그림이다.

 

 

 

 

 

촛대봉으로 가는 연하선경길은 기암괴석과 고사목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도 갖추고 있다.

 

 

 

암릉길을 지나는데 앞쪽 반야봉 방향으로 지리주능선이 이어져 보이고,

 

백무동 골짜기가 너른 지리(智異)의 품을 느끼게 하며.

 

하늘 아래 천왕봉 조차도 동네 앞산쯤으로 느껴진다.

 

살짝 당겨본 천왕봉 모습.

 

 

앞쪽으로 촛대봉이 이제 가야 할 연하선경길의 봉우리가 자기 차례임을 떳떳이 드러내 보이고,

 

촛대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지리능선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영신봉 너머의 반야봉이 어개춤을 추고 있다.

 

 

이제 세석대피소가 1.4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정목을 지나니,

 

촛대봉 방향으로 작은 암봉들이 이어져 있고,

 

연하선경길은 암봉과 기암괴석을 두루두루 유람하며 이어져 있다.

 

 

자연을 즐기고픈 여인은 그렇게 연하선경길을 살포시 밟으며 머문 듯이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나그네는,

미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살피며 간다.

 

 

촛대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되고,

 

언뜻언뜻 보이는 풍광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지나치며,

 

녹색 숲으로 이어진 길을 잠시 오르면,

 

 

촛대봉 정상부에 도착한다.

 

<촛대봉(1,703m)>
지리산의 최대 고원지대인 세석평전 동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모양이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여 촛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 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 촛불을 켜 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소라 하여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훗날 연진 낭자가 바위로 변했는데 그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 촛대봉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군상을 이루고 있고, 철쭉이 피는 계절에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세석평전의 모습이 장관이며, 천왕봉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촛대봉의 전설>
호야(乎也)와 연진(蓮眞) 두 사람은 대성골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펴며 정착, 지리산의 대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했던 사랑은 너무도 짧게 끝나 버리고, 결국에는 촛대봉의 전설로 남게 된다는 애틋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다.
호야와 연진은 산나물과 과일을 따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호야가 집에 없을 때, 연진에게 곰이 찾아와 아이를 낳게 해 준다는 신비한 음양샘의 비밀을 일러 주었다. 연진은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음양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마신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가 그 사실을 산신령에게 고해바친다. 산신령은 음양수의 비밀이 인간에게 누설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곰은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연진에게는 무거운 형벌로 세석평전에서 혼자서 철쭉밭을 가꾸고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라는 벌이 내려졌다. 연진은 세석 철쭉꽃이 그녀의 손끝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일하고, 밤에는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었다. 산신령에게 잘못을 빌다 빌다 연진은 촛대봉 정상에 한 여인이 기도하듯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의 바위가 되었다.

 

 

저 위쪽 촛대봉 정상의 기암이 연진 낭자의 굳어진 모습일까!

아니면 촛농이 굳어진 것인지를 확인하러 촛대봉 정상으로 향한다.

 

 

촛대봉 정상에서 본 세석평전과 영신봉 방향.

 

촛대봉 정상부 전경.

 

천왕봉 방향.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다녀온 손 총무님이 벌써 우리를 따라잡고,

다녀온 천왕봉을 배경으로.

 

 

촛대봉 정상 인증!

 

 

촛대봉 정상을 뒤로하고 세석대피소를 향한다.

 

세석평전을 지나는데 훼손을 막으려고 등로를 데크목으로 깔아 놓았다.

 

<세석평전(細石坪田)>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 내대리 일대에 있는 고산평원으로,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外細石)·내세석(內細石)·세석평(細石坪)·세석평전(細石坪田) 등의 관련 지명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져 있는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일컬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녘의 개마고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장 특이하고 인상적인 세석고원(細石高原)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원으로서 30만평 넓이의 해발 1500~1700m 고원지대이다. 주변의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지는 세석고원은 상, 중, 하로 식물 군락이 나뉘어진다. 상층은 황량한 초원지대로서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중간층은 철쭉이 집단 서식하는 관목 지대이며, 하층은 구상나무와 굴참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루고 있어 등고선 별 식물 생태분포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신라 시대에는 화랑들의 수련장이기도 했고, 갑오농민전쟁 때는 영.호남 동학의 마지막 잔존 세력들이 이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장기 항전을 꿈꾸기도 했던 곳이란다.

 

세석평전 안내판.

 

멋진 하늘을 가진 세석평전 모습.

 

 

완만한 세석평전 등로를 따라 세석대피소로 향하면,

 

 

주능선 남쪽 사면에 있는 세석대피소 건물이 웅장하고,

 

 

세석대피소 갈림길에서,

앞서간 분들이 세석대피소가 아닌 한신계곡 시원한 계곡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하며,

백무봉 방향으로 우틀하여 한신계곡 방향으로 들어선다.

 

세석대피소 갈림길 이정표.

 

 

가파르지 않은 나무계단을 잠시 올라서면,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서게 되고,

 

 

이내 한신계곡 가파른 돌계단 내림길이 시작되는데,

등로는 폭포까지 2km 가까이를 가파른 기울기로 내리꽂는다.

 

<한신계곡>
한신계곡은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끼는 계곡’이라는 의미에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 계곡의 물이 차고 험난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서 한심계곡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고도 하며, 옛날에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는 듯한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북쪽 계곡이다. 가내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하여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첫나들이폭포에서 상류 방향으로 1㎞ 거리에 있는 가내소폭포까지의 계곡은 한신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명승 제72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한신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의 3대 계곡이다.
한신계곡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마천 향토지에 따르면 한신지계곡의 등산로를 1974년 마천 산악회에서 80만원을 들여 개척하였고, 이곳의 무명폭포 및 내림폭포, 장군대 등의 지명도 마천 산악회에서 명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1970년대 이전에는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으로 오르는 등산로만 있었고, 한신계곡 등산로는 1974년에서야 개척되었다는 예기다.

 

 

 

급경사 내림길에 쭉쭉 뻗은 구상나무가 멋지고,

 

가파른 데크목 계단길도 내려서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땅을 부여잡은 나무뿌리가 이채롭다.

나무가 가파른 경사면의 산사태를 막으려고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부여잡고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ㅉㅉ

 

 

워낙 급경사여서 돌계단을 내려서는 게 무릎에 충격을 주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려서야 한다.

 

 

 

 

한참을 내려선 듯한데 700m를 내려왔다!

 

 

해빌레 웃는 표정이 '이런 험한데 왜 왔어!'라고 하는 듯하다.

 

 

한신계곡으로 들어서서 처음으로 물길이 보인다.

 

좌측 울타리 너머에 있는 작은 폭포수로 목을 축이고 수통도 다시 채우고,

 

서늘한 한신계곡의 골바람을 느끼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산행 막바지에 급경사 내림길은 오름길만큼이나 부담스러운 것인데,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 등로에서 쉬고 있는 총무님 내외분과 다시금 한신계곡 내림길에 나선다.

 

 

급경사의 돌계단 내림길에 무릎이 시큰거려온다는 용현 형도 조심스레 바위계단을 내려선다.

 

 

등로 주변을 덮고 있는 녹색의 이끼가 스며드는 햇살에 그 빛깔이 더욱 곱다.

 

 

급경사 철계단도 지나고,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길을 따른다.

 

 

이제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놓여 있다.

 

 

계곡 물줄기가 작은 소(沼)를 만들 정도로 풍부해진 지점쯤에서,

 

 

션한 계곡물에 화끈거리는 발을 식혀 가기로 한다.

 

 

차가운 한신계곡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땀을 식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다소 완만해진 한신계곡을 따라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등로 옆 녹색 외투를 입고 몸을 뉘인 통나무가 이채롭다.

 

 

계곡 사면을 따라 이어진 데크목길을 지나면,

 

 

 

세석에서 1/3을 왔고, 가내소까지 1/3이 남았다는 이정목을 지난다,

 

 

계곡을 연달아 건너는 나무다리를 지나는데,

 

이제 계곡의 물줄기가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완만하게 내려서던 등로가 우측 사면으로 살짝 오르는데, 이곳 좌측 아래에 한신폭포가 있다.

한신폭포는 세석 2.8km, 백무동 3.7km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좌측 70m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그다지 규모자 크지 않다고 하여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한신폭포를 지나니 세석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서울에서 백무동으로 오는 버스로 도착한 산객들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철다리를 건너고,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벽도 지나면,

 

 

우측 아래로 넓은 소(沼)도 내려다 보이고,

 

 

우측 아래로 오층폭포 전망대가 나온다.

5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고 오층폭포라 한다는데,

전망대에서도 5개의 폭포가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

 

위쪽으로 보이는 오층폭포 모습.

 

아래쪽으로 보이는 오층폭포 모습.

 

 

이제 한신계곡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보인다.

 

 

 

가내소 폭포 도착.

 

<가내소폭포>
15m 높이의 폭포이며, 50여 평의 검푸른 소(沼)를 만들고 있어 나름 웅장해 보인다. 이 폭포는 예로부터 기우제 장소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기우제 방법은 부녀자들이 홑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는 형식으로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하여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 가지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이 더럽혀지면 이를 씻어내기 위해 산신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가네소폭포의 유래는,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 폭포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폭포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줄 위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하여 '가네소폭포'라고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가내소와 가내소폭포 모습.

 

 

반석 위로 옥류가 흐르는 한신계곡을 내년 피서지로 정해 놓는다.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계곡이 지리산의 품성을 빼어 박았다.

 

 

 

올려다본 한신계곡 모습.

 

 

멋진 한신계곡의 풍광에 빠져서 내려서는데,

앞서가던 백두들이 둘러앉아 쉼을 하고 있다.

 

 

 

첫나들이폭포 전망대 갈림길 도착.

 

백무동 하산길은 우측 다리로 이어지지만,

 

인파들이 만원을 이루는 전망대로 들어서면,

 

첫나들이폭포가 내려다 보인다.

첫나들이폭포는 한신지곡 등로를 개척한 마천산악회에서 1974년에 명명한 이름으로,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들어서서 첫번째로 만나는 폭포여서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첫나들이폭포 상부 전경.

 

 

가내소폭포를 지나자 등로는 평탄한 녹색 동굴로 이어진다.

 

 

영식형이 바라보는 것은,

 

녹음이 우거진 비탈에서 흘러내린 한신계곡!

 

 

호젓한 산책길을 편안히 따르면,

 

 

'세석길'이란 현판이 걸린 한신계곡길 날머리에 도착한다.

 

 

 

캄캄한 새벽에 지났던 장터목 갈림길을 지나,

 

 

백무동 탐방안내센터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인월에서 목감을 하고,

지난 시산제 때 갔던 운봉읍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맛난 흑돼지 삼겹살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데,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멋지다.

 

 

지리산 연하선경 길은 한낮에도 시원했는데,

아파트 앞 분수에는 한밤중에도 더위를 식히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지리산을 여러 번 갔지만 오늘 본 지리산이 최고였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능선길을 연하선경 길이라며 멋지다고는 했는데,

과연 오늘에야 가히 그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멋진 연하선경을 느긋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배려 해 준,

천왕봉 답사팀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혹서기 피서용 계곡 트레킹 계획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태풍이 몰고 온 많은 강수로 두번씩이나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대안으로 검토하던 영산기맥 산행도 혹서기 산행으로는 적당치 않다는 의견에 따라, 창병씨가 제안한 지리산으로 피서 산행을 가기로 했다. 여름철에 산행을 해야 한다면 해발 고도가 1,000m를 넘는 곳이 좋다는 것은 인지의 사실이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아서 잠시 망설이기도 했으나, 새벽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면 뜨거운 햇살을 피하여 주능선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지리산 백무동과 한신계곡을 둘러보기로 계획했다. 처음에는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으로 올라서 연하선경길이라 불리는 주능선을 걸은 뒤,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내려올 예정이었으나, 하동바위길과 한신계곡길 중에 어느 코스가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기에 쉬운지를 검토하던 차에, 천왕봉을 다녀오고 푼 창병씨가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바로 오르자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한신계곡길은 초반에는 완만하지만 세석대피소가 가까워지면서 급경사로 바뀌는 반면에, 장터목으로 오르는 창암능선 코스는 초반부터 비슷한 경사도가 꾸준히 이어져 오르기에 조금 더 무난해 보인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로 변해서 여간 걱정스럽지 않았는데, 안성 부근을 지나자 비가 그쳐서 안심을 하였다. 모처럼 의자가 편안한 옛날 28인승 리무진 버스가 배차되어 편안한 잠을 이루다가, 버스가 멈추는 느낌에 눈을 뜨니 산행 출발지인 지리산 백무동에 도착해 있다. 엔진이 꺼져 적막함으로 가득 찬 버스에서 잠시 더 쪽잠을 청하다가, 3시 반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엊그제 입추(入秋)를 지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지리산 깊은 산골짜기라서 그런 것인지,

백무동탐방안내센터 주차장에서 버스를 나서니 밤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백무동(百武洞)>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리산 천왕봉 등산의 첫 계곡으로 맑고 푸른 물과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다. 중백무에서 하동바위, 제석봉, 장터목,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시발 지점이며, 여름철 가족단위 피서지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곳으로 수십개의 폭포와 기암괴석 등으로 지리산의 장엄함과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신비의 계곡이다.
백무동은 옛날부터 '지리산의 지혜로운 기운을 받기 위해 백명의 무당이 머물던 곳'이라고 하여 백무동(百巫洞)이라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지리산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는 산신인 여신 성모(聖母)가 남자를 끌어들여 100명의 딸을 낳아 세상에 내려 보냈는데, 그들이 팔도로 퍼져 나간 출구가 백무동이었다고 한다. 또한, '안개가 늘 자욱하게 끼어있는 곳'이라 하여 백무동(白霧洞)이라 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무사(화랑)를 많이 배출한 곳' 이라고 하여 백무동(白武洞)이라고 한다.

이곳 백무동에는 세석평전 꼭대기에서 시작된 약 10km의 '한신계곡(백무동계곡)'이 흐르고 있는데, 명승 제72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뽐낸다. 한신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의 3대 계곡으로도 꼽힌다.

 

위와 같이 백무동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해석이 여러 가지다. 늘 안개가 많이 끼므로 백무동(白霧洞)이 옳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예전부터 많은 무당이 모여드는 골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으므로 백무동(百巫洞)이 맞는 한자 표기일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지금도 여름이면 백무동 골이며 한신골 곳곳에서 굿판을 벌이거나 아니면 벌건 대낮에 집단으로 목욕재계를 하는 여성 기도객들을 그 증거로 들기도 한다. 한편 백무동 주민들은 백무동 동쪽의 중봉, 하봉 능선은 삼한시대 때 국경선이었는데, 전쟁이나 무기와 관련이 깊은 '괴점' 같은 지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기를 뜻하는 무(武) 자를 쓴 백무동(百武洞)이 맞는 지명일 것이란 주장을 편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버스를 남겨두고 가로등이 훤히 밝혀진 도로를 따라 장터목대피소를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가로등만 훤히 밝혀진 채 텅 비어있는 백무동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장터목대피소는 좌틀하여 하동바위길로 진행하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하동바위길(상백무~하동바위~참샘~장터목)>
경남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 마을을 기점으로 한 등산로는 크게 보아 세 갈래가 있다. 백무동 계곡의 주류를 이루는 한신계곡길이 나중에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길이 나뉘고, 백무동에서 곧장 장터목으로 뻗은 하동바위길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중 한신계곡에서 장터목으로 이어진 한신지곡길은 비지정 등산로로 폐쇄된 상태이므로 현재로는 두 가닥뿐이라고 할 수 있다. 계절상 겨울에 한신골은 방판을 이루는 곳이 많고 경관도 좀 나빠지므로, 겨울 코스로는 한신골보다는 하동바위길이 더 권할만 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름이라고해서 계곡인 한신골이 더 낫다고 단연키도 어렵다. 이는 여름 한신골 풍광이 신통치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동바위길이 가진 멋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동바위길은 특히 지리산 북쪽지역 사람들이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장터목으로 오를 때 애용한다. 서울에서 갈 때도 이 백무동 방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시간, 거리상 한결 유리하다.

하동바위길은 짙고 상쾌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는 한편, 중간중간 전망바위가 있고 샘터도 있는 등, 지리산의 여러 등산로 중 일급으로 꼽을 수 있는 길이다. 중백무 마을의 대형 주차장이 있는 버스 종점에서 골목길을 따라 3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야영장 매점이 나오는데, 이 매점에서 왼쪽 언덕길이 하동바위길이다. 상백무 마을에서 하동바위, 참샘을 지나 장터목까지는 5.8km로 3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장터목 대피소에 숙소 예약을 해 두었다면 서둘 일이 없다. 특히 해가 긴 여름이면 점심식사 후 느긋하게 출발하여도 환할 때 산장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좀 일찍 장터목에 다다랐을 경우에는 10분 거리인 제석봉 고사목 지대에 올라가 멋진 노을 구경이 압권이다. 천왕봉 일출 못지않은 감동을 맛볼 수도 있다.

 

'장터목 5.8km'라 표시되어 있는데 7시쯤이면 산행의 어려운 부분은 마무리하고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곳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직진하면 한신주곡길인데, 오늘 산행의 하산 경로로 예정하고 있다.

 

<한신주곡길(백무동~가내소폭포~세석평전)>
한신계곡은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오밀조밀 흘러내리며 일대 승경을 이룬 골짜기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1991년 초부터 1993년 말까지 3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두기도 했었다. 지리산에서는 이 한신골만큼 짧은 간격을 두고 폭포가 연이어지는 골짜기도 드물다. 동쪽 하동바위길이 이어지는 창암능선 너머 칠선골에도 폭포가 적지 않지만 워낙 길고 깊은 골이어서 체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코스는 출입이 제한되어 사전 예약한 일정 인원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한신골은 길이가 칠선골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이고,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 주능선 상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세석으로 바로 이어져 있어서 여름철 지리산 등산로로서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한신계곡을 엄밀히 구분 지으면 백무동계곡의 상백무 마을 위쪽 골짜기를 말한다. 한신골이란 지명은 중국의 한신 장군과 얽힌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골은 중간에서 한신주곡과 한신지곡으로 크게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세석고원으로 직접 이어진 계곡이 한신주곡, 장터목으로 이어진 계곡이 한신지곡이다. 이중 장터목 쪽의 한신지곡은 비법정등산로로서 입구를 철조망으로 막마 두었으므로 이용하지 못한다. 이 계곡에서는 낙석 사고도 여러번 발생하였고 안전시설도 전혀 해두지 않았다. 상백무 마을의 하동바위길 갈림지점에서 1시간쯤이면 첫나들이폭포에 다다른다. 폭포 바로 위에 철다리도 걸쳐져 있다. 이후 세석고원에 이르기까지 총 8개의 다리가 요소마다 가설되어 있다. 널찍한 등로를 따라 30분쯤 더 걸어 오르면, 한신 주곡과 지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른다. 한신주곡으로 들어서면 이내 가내소 폭포가 나타난다. 폭포라기에는 실망스러울 만큼 규모가 작지만 그 아래의 소(沼)는 볼만하다. 주곡으로 들어선지 15분쯤 뒤 5층폭포에 다다른다. 등산로 안내판에서 원쪽으로 10m를 내려 가면 5층폭포 중간의 암반 위 전망대에 설 수 있다. 여자가 주저 않았다가 일어난 듯한 모양의 선녀탕과 옥녀탕이 있는 멋진 5단 폭포다. 오른쪽 20m 아래에 한신폭포가 있음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면, 길은 급경사로 변한다. 세석고원으로 올라가기 작전에 특히 경사가 심하다. 그러다가 문득 경사가 약해지면서 광대한 세석고원 풍경이 펼쳐진다. 백무동 버스 종점에서 세석산장까지는 8km에 걷는 시간만 4시간은 잡아야 한다.

 

 

백무동에서 장터목 방향으로 들어서자 이내 가파른 돌계단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일행 중 반 정도는 천왕봉을 다녀오겠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고,

나머지 분들도 많이 다녀본 길이라서 그런지 다들 제각각 취향대로 산행을 이어간다.

 

산행 시작 30여분 만에 1.3km를 왔으니 장터목에 6시 반이면 도착하겠지 라는 기대를 하며,

그러면 멋진 연하선경길을 즐기고 세석에서의 하산길인 한신계곡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올여름의 더위를 모두 식혀 보리라는 기대도 해 본다.

 

 

이제 일행들은 모두 앞서가고 홀로 뒤처져서 모처럼 호젓한 산행을 이어간다.

옛날 처음 산행을 시작하여 백두대간을 걸을 때는 체력의 열세로 늘 캄캄한 밤을 홀로 걸었는데,

어둠이 지배하는 적막한 등로를 홀로서 걸으니 그때의 긴장감(두려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좌측으로 창암능선 방향 갈림길을 지난다.

국공파들이 법으로 정하지 않은 길을 이런 방식으로 표시해 두고 자기들만 다닌다.

 

 

하동바위쯤에서 앞서간 후미들을 따라잡았는데,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름이 붙을 정도의 별다른 바위는 보이지 않고,

이정목 뒤쪽으로 어둠 속에서 바위 절벽만이 어슴프레 보인다.

장터목까지의 오름길이 금방 끝나지 않으므로 초반부터 속도를 내어서는 쉽지 않을 터인데,

앞서가는 후미의 백두들이 사뭇 걱정스럽다.

 

<하동바위(900m)>

커다란 절벽으로 보이는 바위 한쪽에는 '하동암'이라고 음각되어 있다고 하며, 함양 땅에 있는 바위가 하동바위라 불리게 된 이유는 하동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또는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하동바위라고 불린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 원님과 하동 원님이 장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가던 길에, 풍류를 즐기던 두 원님은 뜻밖의 만남에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찬탄하며 장기를 두게 됐는데 하동 원님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것이 없던 터라, 하동 원님을 놀려줄 요량으로 눈 앞에 우뚝 선 바위를 가져가라고 했다.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나중에 사람들을 동원하여 가져 가기로 하고 우선 이름을 하동 사람들의 바위란 뜻에서 "하동바위"라 명명한 것이 그만 함양에 있으면서도 "하동바위"라 불리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하동바위는 어두워서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그 앞에 있는 볼품없는 바위를 카메라에 담는다.

크기만 다를 뿐, 둘 다 대충 보통의 바위니까!

 

하동바위를 찾던 손 총무님도 하는 수 없는 듯,

하동바위 이정목만 카메라에 담는다.

 

 

하동바위를 지나자 돌계단 대신 데크목 계단길이 잠시 이어지고,

 

렌턴 불빛에 미소 짓는 야생화가 어여쁘다.

 

 

칠흙 같은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렌턴 불빛 없이도 돌계단 등로를 따를 수 있게 되었지만,

 

 

단체 산행에서 홀로 걷는 등로가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키더니,

 

 

낯선 산객들만 보이는 참샘에 도착하고,

 

맑고 차가운 샘물만이 심난한 산객을 맞이해 준다.

 

이곳 참샘의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참샘이란 명칭이 여러 옹달샘에 붙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참으로 좋은 최고의 샘'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기름 중에서 맛나고 고소하기로 최고인 '참기름', 나무 중에서 단단하기로 으뜸인 '참나무', 좋은 것 중에서 좀 더 좋은 것인 '참 좋은' 등에서 사용되는 '참'을 샘에 붙여서 최상급 샘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차가운 샘물이라서 찬샘으로 불리다가 참샘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저 홀로 걷게 되니 별 생뚱맞은 생각도 다 든다.

 

참샘 이정표.

 

 

시원한 샘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잠시 기다리니 후미들이 도착하고,

 

시원한 참샘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며 다시금 원기를 되찾는다.

 

 

참샘을 뒤로하고 다시 우거진 숲속으로 이어진 돌계단 등로로 들어서서,

 

 

가파른 돌계단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제석봉에서 분기하여 마천의 창암산으로 이어지는 창암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 능선에서 좌측은 창암산으로 이어지고, 우측 오름길이 소지봉을 지나 장터목으로 이어진다.

 

 

창암능선으로 들어서면 오름길은 다소 완만해지며 돌계단길이 흙길로 바뀌고,

이내 그냥 능선상의 널찍한 공터인 아랫소지봉을 지나게 된다.

 

<아랫소지봉(燒紙峰)/우장봉(牛場峰)>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를 지나 장터목으로 오르는 길에서, 창암능선으로 올라서서 잠시 진행하면 봉우리 같지 않은 널찍한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아랫소지봉이다. 옛날 이곳에 소시장이 열렸다고 해서 우장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곳인데, 지리산 높은 곳에 소시장이 열렸을 리는 없을 터이고, 아마도 소시장처럼 널찍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짐작된다. 또 다른 설은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燒紙)'는 봉우리라 하여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오래전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아랫소지봉의 이정목.

 

 

아랫소지봉을 지나자 능선 오름길은 더욱 완만해지며 키높이의 산죽밭 사이로 그린 듯이 이어진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능선 오름길에 짧은 데크목 계단도 나오고,

 

 

싱그러운 아침 기운을 만끽하며 호젓한 산죽 숲길을 즐기노라면,

 

 

네이버 지도상 웃소지봉(1,312m)쯤으로 표기된 지점을 지난다.

 

 

흙길보다 힘드는 돌길도 지나고,

 

 

등로를 밝혀주는 예쁜 야생화가 홀로 가는 산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산객들이 지치기 전에 자주 나타나는 쉼터들을 지나며,

급경사와 완경사가 어우러져 있는 하동바위길을 지리주능선 오름길로 선택한 것에 만족감도 느낀다.

 

 

짧은 오름길을 살포시 오르면,

 

울창한 나무들이 가려주는 그늘에서 잘 가꿔놓은 듯이 보이는 산죽밭이 멋지다.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서 비춰오는 아침햇살이 싱그러운 숲의 향취를 더욱 진하게 하는 능선길을 따르다가,

 

능선을 우에서 좌로 넘어가는 지점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달궈진 산객의 몸을 식혀준다.

 

 

'망바위'라고도 불리는 소지봉(燒紙峰, 1499.1m) 도착.

소지봉은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올려다본 암봉인 소지봉 정상부 모습.

 

 

소지봉에서 본 제석봉과 가야 할 장터목대피소 방향.

 

살짝 당겨본 장터목 대피소 모습.

 

구름모자를 벗은 연하봉 방향.

 

 

연하봉(좌)에서 반야봉(우)으로 이어진 지리산 주능선 조망.

 

 

 

소지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망바위 전경.

 

 

좌측부터 지리산 하봉, 중봉, 천왕봉 방향 조망.

 

하봉 방향.

 

중봉 방향.

 

천왕봉 방향.

 

제석봉 방향.

 

 

소지봉 정상에서 중봉 위로 솟는 태양을 배경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배경으로.

 

 

 

 

소지봉을 지나치는 백두들을 따라 소지봉을 뒤로하고 장터목을 향한다.

 

 

간간이 트이는 북쪽 함양 방향의 멋진 하늘을 조망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한 계단 한 계단의 돌계단을 올라 장터목을 향해 고도를 높여가면,

 

 

주변 조망이 멋지게 보이는 커다랗고 편평한 조망바위가 나온다.

 

조망바위에서 본 연하봉과 촛대봉 방향.

 

지리주능선과 반야봉 방향.

 

반야봉과 고리봉 방향.

 

북서쪽 지리산 북부능선의 삼정산 방향.

 

지리주능선과 반야봉을 배경으로.

 

 

 

아침식사를 장터목에서 하기로 예정하였으나,

이곳에서 장터목 까지는 아직도 20여분을 더 가야 하고,

장터목의 나무 테이블 식탁도 좋지만 이곳의 돌 테이블도 괜찮아 보여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식당 앞쪽으로는 반야봉을 경계로 좌측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우측으로는 삼정능선이라고도 불리는 북부능선과 뒤쪽으로 서북능선이 조망되고,

 

서쪽 만복대 방향으로는,

앞쪽부터 오공능선, 삼정능선, 서북능선이 차례로 조망된다.

 

북쪽 함양 방향으로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운해가 펼쳐저 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만복대를 배경으로.

멋진 배경을 담으려니 누군지 구분이 어렵다.

 

 

숲으로 덮인 바위 너덜을 잠시 오르면,

 

 

제석봉을 우회하여 장터목으로 이어지는 사면 데크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간간이 보이는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며 편안한 데크길을 따르면,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우리는 우틀하여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천왕봉 방향 들머리에서 서성이던 손 총무님께서 선두팀을 따라 천왕봉을 다녀오겠다고 한다.

백두 최고의 준족께서 늘 후미를 책임지느라 몸을 제대로 풀어볼 기회가 없었던 듯,

후비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천왕봉 방향으로 들어선다.

 

장터목 갈림길 이정표.

 

 

장터목 대피소 취사장 건물.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취사장 내에는 아침식사를 하는 산객들로 북적인다.

 

가야 할 세석대피소 방향 능선길은 취사동과 대피소 본건물 사이로 이어진다.

 

 

동남쪽 중산리계곡 방향.

 

살짝 당겨본 중산리계곡.

 

내년쯤에는 갈 수 있으려나?

천왕봉 방향 들머리에 선 영식 형.

 

 

가야 할 세석대피소 방향의 지리주능선 모습.

 

장터목 대피소 앞에서 본 반야봉 방향.

 

 

동남쪽 중산리계곡 방향.

 

남서쪽 가야 할 연하선경길 방향.

 

서쪽 만복대 방향으로 한눈에 보이는 백두대간 지리산구간 능선.

 

장터목대피소 앞에서.

 

<장터목 대피소(1,653m)>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위치한 장터목 대피소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 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장(場)이 섰다는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1971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1997년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2005년 10월 18일 '한국의 명산 시리즈(두번째)'우표가 발행된 날부터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제공하고 산행의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현지에서 관광우편 날짜 도장을 찍을 수 있는 현지 날인 서비스를 시행하였으며, 이곳에서 발송하는 우편물은 장터목대피소 관광우편날짜 도장이 찍혀 산청 시천 우체국을 통해 전국으로 배달된다. 대피소에서 중산리 방향으로 20여 미터 내려가면 산희샘(장터목샘)이란 식수가 있다.

 

 

 

 

다시 한번 백두대간 지리주능선을 담고.

 

지리주능선 북쪽 지역을 한눈에 조망한다.

 

만복대 방향.

 

삼정산 방향.

 

 

 

장터목을 뒤로하고 세석대피소를 향한 연하선경길에 들어선다.

 

<연하선경길(煙霞仙景)>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 주변으로는 청암절벽이 솟고 철 따라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하는 꿈같은 절경이 펼쳐지는 지리 10경 중의 제5경인 연하선경(煙霞仙景) 길이다. 탁 트인 전망,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참고로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연하봉을 항하며 바라본 좌측 중산리계곡 방향.

 

장터목대피소를 뒤로하는 백두들.

 

서북쪽 백무동 방향.

 

 

완만하고 싱그러운 연화봉 오름길을 즐기는 석여사님.

 

기화요초(琪花瑤草) :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

 

 

 

 

 

그렇게 만발한 야생화를 담으며 싱그러운 오솔길을 올라서니,

일출봉(日出峰)이라 불리는 널찍한 공터 봉우리에 도착한다.

 

일출봉 정상의 이정표.

 

일출봉 정상에 도착하는 석여사님.

 

 

남동쪽 중산리 방향.

 

지리산 천왕봉 방향.

 

서북쪽 백무동 방향.

 

서쪽 반야봉 방향.

 

일출봉에 도착하는 백두들.

 

 

서북쪽 삼봉산(1,186.7m) 방향.

 

 

 

가야 할 촛대봉 방향.

 

 

 

연하선경길 데이트에 나선 커플이 너무 어여쁘다며..ㅉㅉ

 

일출봉에서 연하봉과 반야봉을 배경으로.

근데 천왕봉으로 운동을 갔던 선두팀 멤버 중에서 서여사님이 벌써 우리를 따라잡았다.

 

 

일출봉을 뒤로하고 연하봉을 향한다.

 

 

앞쪽으로 보이는 연하봉을 지나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이곳 연하선경길은

환경부에서 지정한 특정야생식물 보호구역이란다.

 

 

 

괘청한 날씨에 기화요초가 만발한 연하선경길의 선남선녀가 어여쁘고 기특하기 그지없다.

멀리 뒤쪽으로 보이는 능선이 삼신산인데~~^^

 

 

 

 

 

 

연하봉 오름길에 천왕봉을 배경으로.

 

용현 형은 갖가지 야생화를 담기에 여념이 없다.

 

돌아본 천왕봉 방향.

 

 

구상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돌두꺼비가 살짝 부럽기도 하지만,

지리산 주능선에서 이런 멋진 풍광을 앉아서 즐기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자네도 우리와 함께 촛대봉으로 유유히 걸음하며 신선이 되어 보지 않겠나?

 

 

돌두꺼비 앞에 서자, 좌측 아래로 연하봉 이정표가 보이고 멀리로 반야봉도 뚜렷하다.

 

 

연하봉 인증!

 

<연하봉(煙霞峰, 1,730m)>

연하(煙霞)란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연하봉(煙霞峰)이란 이름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명칭이라 한다. 연하선경(煙霞仙景)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새벽 여명의 실루엣이 환상적이며,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원시림이 가득하여 연하봉 일대의 비경을 지리 10경 중에서 제5경인 연하선경(煙霞仙景)이라 부른다. 삼신봉과 장터목산장 사이에 위치한 연하봉 주변은 온통 야생화, 기암괴석, 고사목 등이 어우러진 곳이다. 물론 겨울철에는 그렇지 않지만 촛대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장터목 쪽으로 조금 가면 이름 없는 바위가 있는데 조망권이 넓어 흔히 전망대바위라 일컫기도 한다. 잠시 여장을 풀고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부터 연하봉까지의 등산로에는 온갖 야생화가 뒤덮고 있다. 특히 봄철에는 철쭉이 만발한다. 전망대바위에서 보는 일몰 역시 장관이다.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로 지는 해를 보기 위하여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연하봉에서 제석봉 방향으로는 일출봉이 기다리고 있다. 일출봉 능선에서 보는 해 뜨는 광경은 천왕봉 못지않다. 정작 연하봉은 여러 봉우리로 이어지는데, 봉우리마다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주변에는 고사목이 즐비하다.
연하선경(烟霞仙境)은 지리 10경 중의 하나이지만 어느 것 하나 서열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절경(絶景)이다. 연하봉을 지나는 구름이 그러하고, 새싹과 꽃이 그러하고, 살아있는 나무는 물론 죽어있는 나무도 그러하고,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이 그러하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초월한 신선의 경지에 비유하여 연하선경(煙霞仙境)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연하봉에서 서쪽의 세석평전 방향으로는 삼신봉과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촛대봉에서 남쪽으로는 도장골로 이어지는데, 도장골에는 와룡폭포, 윗용소, 아랫용소, 밀금폭포가 소재하며 세석평전에서 내려오는 거림골과 합쳐진다.

 

 

연하봉을 뒤로하고 촛대봉을 향한다.

 

남쪽 도장골 방향.

 

촛대봉 좌측 멀리로 지리남부능선의 삼신봉이 아련하다.

 

 

눈길이 미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산객의 걸음을 더디게 하고,

 

 

 

돌아본 연하봉 방향으로는 그린듯한 풍경이 자꾸만 시선을 뒤로 향하게 한다.

 

 

멋진 구상나무숲이 드리운 그늘을 잠시 지나면,

 

 

또 다른 캘린더 그림이 펼쳐진다.

 

멀리로 반야봉을 물론, 노고단과 만복대가 선명하다.

 

 

 

 

참으로 지리산에 이런 연하선경이 있다는 것을 진정 오늘에야 개달은 느낌이다.

 

 

촛대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을 넘는 실구름 조차 아쉬워서,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멈추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북서쪽 백무동 방향.

 

남쪽 도장골 방향.

 

 

앞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네이버 지도에 화장봉이라 표시된 봉우리다.

어떤 산행기에서는 저 봉우리를 삼신봉이라 칭하기도 한다.

 

 

 

화장봉 오름길에 돌아본 연하선경!

 

 

화장봉/꽁초봉 정상에서 돌아본 연하선경.

천왕봉 아래에서는 지나온 연하봉이고 제석봉이고 모두 다 그저 밋밋한 언덕일 뿐이다.

 

네이버 지도에는 이곳을 화장봉이라 표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지리산 지도에도 없었던 이름이다. 또 혹자는 이곳을 꽁초봉이라고 한다는데, 이곳은 본디 무명봉이었으나 산객들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바위틈에 끼워 넣고 갔다고 해서 꽁초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장봉에서 본 반야봉 방향.

 

 

화장봉을 지나자 나무, 풀, 꽃, 돌, 흙이 어우러진 나들이길이 이어진다.

 

이것이 연하선경길인가 싶다!

 

 

장터목에서 1.3km의 연하선경길을 오는데 1시간쯤 걸렸다.

딱 내 체질에 맞는 속도다!

 

 

 

 

 

편함에 안주하지 말라고 약간의 오름길도 배려해 두었고,

 

 

전망바위에 올라서 돌아본 천왕봉 방향의 풍경이 또 다른 캘린더의 그림이다.

 

 

 

 

 

촛대봉으로 가는 연하선경길은 기암괴석과 고사목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풍경도 갖추고 있다.

 

 

 

암릉길을 지나는데 앞쪽 반야봉 방향으로 지리주능선이 이어져 보이고,

 

백무동 골짜기가 너른 지리(智異)의 품을 느끼게 하며.

 

하늘 아래 천왕봉 조차도 동네 앞산쯤으로 느껴진다.

 

살짝 당겨본 천왕봉 모습.

 

 

앞쪽으로 촛대봉이 이제 가야 할 연하선경길의 봉우리가 자기 차례임을 떳떳이 드러내 보이고,

 

촛대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지리능선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영신봉 너머의 반야봉이 어개춤을 추고 있다.

 

 

이제 세석대피소가 1.4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정목을 지나니,

 

촛대봉 방향으로 작은 암봉들이 이어져 있고,

 

연하선경길은 암봉과 기암괴석을 두루두루 유람하며 이어져 있다.

 

 

자연을 즐기고픈 여인은 그렇게 연하선경길을 살포시 밟으며 머문 듯이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나그네는,

미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살피며 간다.

 

 

촛대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되고,

 

언뜻언뜻 보이는 풍광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지나치며,

 

녹색 숲으로 이어진 길을 잠시 오르면,

 

 

촛대봉 정상부에 도착한다.

 

<촛대봉(1,703m)>
지리산의 최대 고원지대인 세석평전 동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 모양이 마치 촛농이 흘러내린 듯하여 촛대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 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 촛불을 켜 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소라 하여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훗날 연진 낭자가 바위로 변했는데 그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 촛대봉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군상을 이루고 있고, 철쭉이 피는 계절에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는 세석평전의 모습이 장관이며, 천왕봉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촛대봉의 전설>
호야(乎也)와 연진(蓮眞) 두 사람은 대성골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펴며 정착, 지리산의 대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했던 사랑은 너무도 짧게 끝나 버리고, 결국에는 촛대봉의 전설로 남게 된다는 애틋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다.
호야와 연진은 산나물과 과일을 따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호야가 집에 없을 때, 연진에게 곰이 찾아와 아이를 낳게 해 준다는 신비한 음양샘의 비밀을 일러 주었다. 연진은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음양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마신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가 그 사실을 산신령에게 고해바친다. 산신령은 음양수의 비밀이 인간에게 누설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곰은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연진에게는 무거운 형벌로 세석평전에서 혼자서 철쭉밭을 가꾸고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라는 벌이 내려졌다. 연진은 세석 철쭉꽃이 그녀의 손끝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일하고, 밤에는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었다. 산신령에게 잘못을 빌다 빌다 연진은 촛대봉 정상에 한 여인이 기도하듯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의 바위가 되었다.

 

 

저 위쪽 촛대봉 정상의 기암이 연진 낭자의 굳어진 모습일까!

아니면 촛농이 굳어진 것인지를 확인하러 촛대봉 정상으로 향한다.

 

 

촛대봉 정상에서 본 세석평전과 영신봉 방향.

 

촛대봉 정상부 전경.

 

천왕봉 방향.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다녀온 손 총무님이 벌써 우리를 따라잡고,

다녀온 천왕봉을 배경으로.

 

 

촛대봉 정상 인증!

 

 

촛대봉 정상을 뒤로하고 세석대피소를 향한다.

 

세석평전을 지나는데 훼손을 막으려고 등로를 데크목으로 깔아 놓았다.

 

<세석평전(細石坪田)>
경상남도 산청군의 시천면 내대리 일대에 있는 고산평원으로,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고 하여 세석평전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지리산 유산록에는 외세석(外細石)·내세석(內細石)·세석평(細石坪)·세석평전(細石坪田) 등의 관련 지명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져 있는 세석평전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일컬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녘의 개마고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장 특이하고 인상적인 세석고원(細石高原)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고원으로서 30만평 넓이의 해발 1500~1700m 고원지대이다. 주변의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지는 세석고원은 상, 중, 하로 식물 군락이 나뉘어진다. 상층은 황량한 초원지대로서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중간층은 철쭉이 집단 서식하는 관목 지대이며, 하층은 구상나무와 굴참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루고 있어 등고선 별 식물 생태분포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신라 시대에는 화랑들의 수련장이기도 했고, 갑오농민전쟁 때는 영.호남 동학의 마지막 잔존 세력들이 이곳을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장기 항전을 꿈꾸기도 했던 곳이란다.

 

세석평전 안내판.

 

멋진 하늘을 가진 세석평전 모습.

 

 

완만한 세석평전 등로를 따라 세석대피소로 향하면,

 

 

주능선 남쪽 사면에 있는 세석대피소 건물이 웅장하고,

 

 

세석대피소 갈림길에서,

앞서간 분들이 세석대피소가 아닌 한신계곡 시원한 계곡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예상하며,

백무봉 방향으로 우틀하여 한신계곡 방향으로 들어선다.

 

세석대피소 갈림길 이정표.

 

 

가파르지 않은 나무계단을 잠시 올라서면,

 

지리산 주능선을 넘어서게 되고,

 

 

이내 한신계곡 가파른 돌계단 내림길이 시작되는데,

등로는 폭포까지 2km 가까이를 가파른 기울기로 내리꽂는다.

 

<한신계곡>
한신계곡은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끼는 계곡’이라는 의미에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 계곡의 물이 차고 험난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하다고 해서 한심계곡이라 부르던 것이 발음이 변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고도 하며, 옛날에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는 듯한 맑고 고운 물줄기가 사철 변함없이 이어지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북쪽 계곡이다. 가내소폭포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하여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첫나들이폭포에서 상류 방향으로 1㎞ 거리에 있는 가내소폭포까지의 계곡은 한신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명승 제72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뽐내는 한신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의 3대 계곡이다.
한신계곡이라는 이름은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붙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마천 향토지에 따르면 한신지계곡의 등산로를 1974년 마천 산악회에서 80만원을 들여 개척하였고, 이곳의 무명폭포 및 내림폭포, 장군대 등의 지명도 마천 산악회에서 명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1970년대 이전에는 백무동에서 하동바위를 거쳐 장터목으로 오르는 등산로만 있었고, 한신계곡 등산로는 1974년에서야 개척되었다는 예기다.

 

 

 

급경사 내림길에 쭉쭉 뻗은 구상나무가 멋지고,

 

가파른 데크목 계단길도 내려서게 된다.

 

 

온 힘을 다해 땅을 부여잡은 나무뿌리가 이채롭다.

나무가 가파른 경사면의 산사태를 막으려고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부여잡고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ㅉㅉ

 

 

워낙 급경사여서 돌계단을 내려서는 게 무릎에 충격을 주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내려서야 한다.

 

 

 

 

한참을 내려선 듯한데 700m를 내려왔다!

 

 

해빌레 웃는 표정이 '이런 험한데 왜 왔어!'라고 하는 듯하다.

 

 

한신계곡으로 들어서서 처음으로 물길이 보인다.

 

좌측 울타리 너머에 있는 작은 폭포수로 목을 축이고 수통도 다시 채우고,

 

서늘한 한신계곡의 골바람을 느끼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산행 막바지에 급경사 내림길은 오름길만큼이나 부담스러운 것인데,

그래도 가야 할 길이라 등로에서 쉬고 있는 총무님 내외분과 다시금 한신계곡 내림길에 나선다.

 

 

급경사의 돌계단 내림길에 무릎이 시큰거려온다는 용현 형도 조심스레 바위계단을 내려선다.

 

 

등로 주변을 덮고 있는 녹색의 이끼가 스며드는 햇살에 그 빛깔이 더욱 곱다.

 

 

급경사 철계단도 지나고,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길을 따른다.

 

 

이제 계곡을 건너는 다리도 놓여 있다.

 

 

계곡 물줄기가 작은 소(沼)를 만들 정도로 풍부해진 지점쯤에서,

 

 

션한 계곡물에 화끈거리는 발을 식혀 가기로 한다.

 

 

차가운 한신계곡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땀을 식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제는 다소 완만해진 한신계곡을 따라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등로 옆 녹색 외투를 입고 몸을 뉘인 통나무가 이채롭다.

 

 

계곡 사면을 따라 이어진 데크목길을 지나면,

 

 

 

세석에서 1/3을 왔고, 가내소까지 1/3이 남았다는 이정목을 지난다,

 

 

계곡을 연달아 건너는 나무다리를 지나는데,

 

이제 계곡의 물줄기가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완만하게 내려서던 등로가 우측 사면으로 살짝 오르는데, 이곳 좌측 아래에 한신폭포가 있다.

한신폭포는 세석 2.8km, 백무동 3.7km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좌측 70m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그다지 규모자 크지 않다고 하여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한신폭포를 지나니 세석으로 오르는 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서울에서 백무동으로 오는 버스로 도착한 산객들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철다리를 건너고,

 

 

좌측으로 커다란 바위벽도 지나면,

 

 

우측 아래로 넓은 소(沼)도 내려다 보이고,

 

 

우측 아래로 오층폭포 전망대가 나온다.

5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고 오층폭포라 한다는데,

전망대에서도 5개의 폭포가 모두 보이지는 않는다.

 

위쪽으로 보이는 오층폭포 모습.

 

아래쪽으로 보이는 오층폭포 모습.

 

 

이제 한신계곡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보인다.

 

 

 

가내소 폭포 도착.

 

<가내소폭포>
15m 높이의 폭포이며, 50여 평의 검푸른 소(沼)를 만들고 있어 나름 웅장해 보인다. 이 폭포는 예로부터 기우제 장소로 많이 이용되어 왔다. 기우제 방법은 부녀자들이 홑치마 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는 형식으로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하여 그 눈물이 비가 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 가지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이 더럽혀지면 이를 씻어내기 위해 산신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가네소폭포의 유래는,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 폭포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폭포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줄 위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하여 '가네소폭포'라고 이름 붙여졌다고도 한다.

 

가내소와 가내소폭포 모습.

 

 

반석 위로 옥류가 흐르는 한신계곡을 내년 피서지로 정해 놓는다.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계곡이 지리산의 품성을 빼어 박았다.

 

 

 

올려다본 한신계곡 모습.

 

 

멋진 한신계곡의 풍광에 빠져서 내려서는데,

앞서가던 백두들이 둘러앉아 쉼을 하고 있다.

 

 

 

첫나들이폭포 전망대 갈림길 도착.

 

백무동 하산길은 우측 다리로 이어지지만,

 

인파들이 만원을 이루는 전망대로 들어서면,

 

첫나들이폭포가 내려다 보인다.

첫나들이폭포는 한신지곡 등로를 개척한 마천산악회에서 1974년에 명명한 이름으로,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으로 들어서서 첫번째로 만나는 폭포여서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첫나들이폭포 상부 전경.

 

 

가내소폭포를 지나자 등로는 평탄한 녹색 동굴로 이어진다.

 

 

영식형이 바라보는 것은,

 

녹음이 우거진 비탈에서 흘러내린 한신계곡!

 

 

호젓한 산책길을 편안히 따르면,

 

 

'세석길'이란 현판이 걸린 한신계곡길 날머리에 도착한다.

 

 

 

캄캄한 새벽에 지났던 장터목 갈림길을 지나,

 

 

백무동 탐방안내센터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인월에서 목감을 하고,

지난 시산제 때 갔던 운봉읍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맛난 흑돼지 삼겹살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갖는다.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데,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멋지다.

 

 

지리산 연하선경 길은 한낮에도 시원했는데,

아파트 앞 분수에는 한밤중에도 더위를 식히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지리산을 여러 번 갔지만 오늘 본 지리산이 최고였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능선길을 연하선경 길이라며 멋지다고는 했는데,

과연 오늘에야 가히 그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멋진 연하선경을 느긋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배려 해 준,

천왕봉 답사팀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