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한강기맥 14차(비솔고개~농다치고개) 경기도 양평군.
산 행 일 : 2020. 06. 27.(토)
산행코스 : 비솔고개 ~ 단월산 ~ 중원산갈림길 ~ 폭산 ~ 용문산 ~ 장군봉갈림 ~ 배너미고개 ~ 유명산
~ 소구니산 ~ 농다치고개 (21km, 10시간 소요)
산행참가 : 18백두.
<산행지도>
지난번 정기산행에서 지리산 의신에서 벽소령으로 올랐다가 세석을 거쳐 대성골로 하산하는 비교적 긴 거리의 산행을 한 터라, 어느 정도 장거리 산행에 적응이 되었다고 판단하여 미뤄 두었던 한강기맥 용문산 구간을 진행키로 했다.
이번 한강기맥 용문산 구간에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의 한 곳인 용문산이 포함되어 있고, 기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유명산까지 포함하면 오대산, 계방산 구간 이후 가장 멋진 경치를 보여주지만, 군부대로 인해 온전한 기맥길을 이어 가지 못하고 우회한 등로가 많았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비솔고개부터 용문산까지는 제법 가파른 봉우리들을 연속으로 넘으며 고도를 높여야 하고, 용문산 이후 유명산을 지나 농다치고개까지는 완만하게 내려서는 구간이라, 여름철 산행으로는 다소 긴 구간이지만 새벽 일찍 출발하여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의 산행시간을 가급적 줄이면 어렵잖게 산행을 마칠 수 있을듯 하고, 전국적으로 약간의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혹서기에 오히려 더위를 식혀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한강기맥도 이번 구간을 완주하고 나면 마지막 구간만 남게 되는데, 이번 구간의 행정계를 살펴보면, 비솔고개를 출발하여 남서향으로 단월면 관내를 진행하다가 싸리봉 직전 도일봉 갈림 삼거리에서 위쪽(북쪽)은 계속 단월면이지만 아래쪽(남쪽)은 양평군 용문면으로 바뀌어 서향 하다가, 폭산 갈림 헬기장에서 남서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좌측은 계속 용문면이지만 우측은 단월면을 벗어나 양평군 옥천면으로 바뀌어 용문산을 넘어 장군봉 갈림봉(1150.0m)까지 달리고, 이 갈림봉에서 용문면과 헤어져 온전히 옥천면 안으로 들어서서 서향 하게 된다. 이후 배너미고개와 대부산 갈림길을 지나 북서향하다 유명산 갈림길에서 위쪽이 가평군 설악면으로 바뀌어 소구니산 삼거리까지 이어지며, 이 갈림길에서 다시 양평군 옥천면 관내로 들어서서 서향 하면서 농다치고개 이후까지 이어진다.
새벽 한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비솔고개에 도착하여 백두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버스에서 거의 두어 시간을 뒤척이다 일어나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나서니 한여름임에도 바깥공기가 서늘하고 우려와 달리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비솔고개(非率峴, 380m)>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향소리 비솔마을에서 산음리 무푸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328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좌측으로 도일봉 방향 한강기맥 능선 좌우로 MTB 자전거 도로로 쓰이는 임도가 있다. 산행 들머리는 능선 남쪽 임도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1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우측 편으로 오르는 통나무 계단길이 기맥능선에 접속하는 등로다. 들머리에서 싸리봉까지 약 500고지 이상을 계속 쳐 올려야 한다.
임도를 가로막고 있는 차단기를 돌아서 임도로 들어서니,
이내 우측 한강기맥 능선으로 오르는 통나무계단 들머리가 있다.
가파른 통나무계단을 올라 마루금에 접속하여 뚜렷한 능선 오름길을 따라 싸리봉 방향으로 진행하면,
이내 급경사 오름길이 이어지며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오름길에는 밧줄도 메여 있다.
급경사 길이라 백두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올 뿐 사위는 적막하고,
바람 한점 없는 어둠속에서 따르는 백두들의 렌턴 불빛만이 약간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뿐이다.
도일봉이 0.7km 남았다는 첫번째 이정표가 반갑고,
이내 도일봉 갈림길에 도착하는데,
도일봉 갈림길 이정표에는 이곳이 싸리봉(811.8m)이라 적혀 있지만, 싸리봉은 이 곳에서 2분여 더 올라야 한다.
이 갈림봉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도일봉으로 가는 괘일분맥이다.
『괘일분맥(卦日分脈)은 한강기맥 비솔고개를 지나 싸리봉 직전 삼거리 갈림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하여 도일봉(864.0m), 괘일산(469.3m), 두리봉과 인자봉을 지나 흑천에서 맥을 다하는 길이 18.6km의 양평 지역 마루금이다.』
좌측 남동쪽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도일봉으로 이곳에서 90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정상에서의 조망이 좋아서 꼭 들리려고 했으나 오늘은 드리워진 구름으로 조망이 없을 듯하여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도일봉(道一峰, 864m)>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항소리와 용문면 중원리·망원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다. 용문산(1,157m)의 지봉(支峰)으로 주봉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며, 중원산(中元山) ·백운봉(白雲峰) 등과 같은 맥을 이룬다. 서북쪽 방향으로 싸리재가 있고, 중원계곡과 중원폭포가 가깝다. 골짜기의 물은 용문면과 단월면의 남쪽을 감돌아 흑천(黑川)과 산대천(山垈川)으로 흐르며, 유역에 경작지를 만들고 북한강 지류인 수입천(水入川)과 문호천(汶湖川)을 만나 남한강에 합류한다.
도일봉은 풍수지리적으로 용의 어깨 쪽에 자리잡은 봉우리며 풍부한 수량(水量)의 담(潭)과 소(沼)를 이루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곡을 이루고 있는데, 동으로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송이재봉이 있고, 서쪽으로는 경기 제일의 명산이며 한강기맥이 마지막 기(氣)를 세워 솟구쳐 올린 용의 몸통에 해당하는 용문산이 위치하고 있다.
도일봉 분기봉에서 목을 축이며 후미를 기다려,
사나사 계곡이나 설매재자연휴양림 탐방에 나서는 분들과 헤어지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도일봉 갈림봉에서 2분 정도 더 오르니 싸리봉(811.8m)에 올라선다.
옛부터 이 산 주변에 싸리나무가 많아서 싸리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싸리봉 정상에는 위치표시 이정목과 오래된 삼각점만 있을 뿐 특별한 정상석은 없다.
도일봉을 지나니 급경사 내림길이다.
올라야 할 높이가 높은데, 이렇게 내려가면 우찌 할꼬~~
둥그스름한 안부인 싸리재를 지나는데,
싸리재 이정표는 좌측 중원리 방향을 살짝 비켜나 세워져 있다.
싸리재는 중원폭포 북쪽 고개로, 양평 용문면 중원리와 신점리에서 단월면 향소리와 산음리로 넘는 고개로,
오늘 산행 들머리인 비솔고개에서 2.1km 지점이며 한강기맥은 직진의 중원산 방향이다.
싸리재에서 수풀이 싱그러운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면,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별 특징없는 단월산을 정상에 도착하는데,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단월봉 표지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단월산임을 알아차린다.
<단월산(丹月山, 775.1m)>
단월산은 '밝은 달이 비친 정자의 마을'이라는 뜻의 단구월사(丹丘月謝)에서 지명이 유래한 단월면과 용문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싸리재를 지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단월산 정상 아래 소나무 조망처에서는,
우측으로 단월면 산음리의 봉미산이 건너다 보인다.
단월봉 내림길에는 암릉도 살짝 드러나 보이고,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좌측 중원산에서 우측 폭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거대한 성곽처럼 보인다.
완만한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니 중원폭포 갈림길 안부를 지나는데,
이정표의 직진의 중원산(2.07km) 방향이 한강기맥 길이다.
낙엽이 푹신한 싱그러운 오름길을 따르면,
지난겨울 영산기맥 1구간에서 만났던 분의 표지기가 반갑다.
아마도 이분은 지난해 한강기맥을 종주하고 영산기맥 종주에 나섰던 모양이다.
예상보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로 약간의 오름길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싱그러운 아침공기를 들이키며 오르면 표지기가 걸려있는 중원산 갈림길 봉우리인 770봉에 도착한다.
삼거리 갈림봉으로 좌측으로는 중원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고, 한강기맥은 직우틀하여 이어진다.
770봉 중원산 갈림길 이정표.
770봉 지난 지점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B팀.
잠시 목을 축이고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안부를 지나고,
잠시 오르면 암릉으로 솟아있는 707봉을 지나고,
얕은 오르내림 후 703.5봉을 지난다.
다시 암릉봉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다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오래된 삼각점이 있는 735.3봉(개념도 상 738.2m)을 지나게 되는데,
이 봉우리에서 좌측으로는 용조봉을 거쳐 용문관광단지로 내려서는 비탐 등산로가 있다.
735.3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는 다시 100고지 이상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니,
경사가 다소 완만해지며 앞서가던 백두들이 아침식사를 하려고 배낭을 내리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 다시 200고지 이상의 급경사 오르막을 쳐 올려야 폭산에 오를 수 있기에,
폭산에 올라서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였으나 배가 고파서 이곳에서 먹기를 고집한다.
몸집이 가볍고 근력이 충분한 분들이야 식후에 맞이하는 급경사 오름길도 부담 없겠지만,
무겁고 둔한 나로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기에 밥상을 차리는 분들을 뒤로하고 폭산을 향한 오름길을 이어간다.
코가 닿을 정도의 오름길을 오르는데,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봉쯤이 가늠되고,
그렇게 가파른 오르막을 20여분 남짓 더 올라 폭산 정상 직전 헬기장이 있는 폭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 헬기장은 삼면봉으로 양평군 단월면과 용문면, 옥천면의 경계지점으로, 한강기맥 마루금은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폭산 정상이 전방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고 정상석도 설치되어 있다고 하므로, 폭산 정상 확인 후 다시 헬기장 삼거리로 내려와 기맥길을 이어 가기로 하고, 폭산 정상까지는 완만하므로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혹여 아래에서 식사를 한 분들이 올라오면 함께 폭산으로 가기로 한다.
폭산 정상 갈림길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식사를 마칠 즈음에 서 여사님이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낸다.
뒤이어 도착하는 B팀들과 함께 헬기장을 지나 폭산(천사봉, 문례봉)으로 향한다.
폭산 정상에 오르면 커다란 자연석의 '해발 1,004m 정상입니다. 천사봉'이라 새겨진 정상석이 놓여 있다.
<폭산(暴山, 992m)>
폭산은 문례봉(問禮峰)으로도 불리는데, 양평군 단월면과 옥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문례(問禮, 물례)는 새마을 동북쪽 마을로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한다. 그러나 정상석에는 해발 1,004m로 표기하고 천사봉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산림청과 산음자연휴양림에서 원래의 이름과 다르게 좋은 이름을 찾다가 임의로 산 이름을 작명한 듯하다. 온라인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산 이름 없이 그냥 1002.5m로 표기하고 있고, 개념도 상에도 992m으로 기록하고 있다.
폭산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장락단맥(長樂短脈)으로, 이 단맥은 폭산(문례봉) 아래 헬기장에서 분기하여 봉미산(鳳尾山: 856.0m), 보리산(나산, 627.3m), 놀미고개, 장락산(長樂山: 629.5m), 왕터산(411.0m)을 거쳐 홍천강(洪川江)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21km의 맥길이다.
폭산(문례봉) 정상 인증.
다시 아침식사를 했던 헬기장 옆 갈림길 삼거리로 되돌아 내려와 한강기맥길을 이어간다.
완만한 능선길이 싱그러운 수풀 사이로 이어지고,
개념도에는 문례봉삼거리라 표시된 안부를 지나는데,
용문산이 1.9km 남았다는 한강기맥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용문봉 쯤이 가늠되고,
다시금 가팔라진 오름길을 치고 오르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용문봉(963.0m) 갈림길에 올라,
좌측 능선 방향은 용문봉을 지나 용문사로 이어지고, 한강기맥은 우측 용문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작은 암봉을 좌회하여 지나면,
이제 용문봉이 좌후방으로 보인다.
육산 오름길에 바위들이 나타나고,
이어지는 등로가 능선이 아닌 사면 길로 보인다.
등로가 사면 길이라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백두들.
용문봉 갈림길에서 부지런히 오름길을 따르면, 좌측 산허리 방향으로 몇 개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삼거리 갈림길에 이르는데, 원 한강기맥 마루금은 직진 방향의 용문산 북봉으로 이어가야 하지만 용문산 북봉을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시설물로 인해 철조망을 끼고 진행해야 하기에, 여기서 좌측 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서 용문사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에 합류하여 용문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몇 해 전까지는 한강기맥 산꾼들 대부분이 좌측 사면으로 우회를 하였는데, 최근에는 용문산 북봉 방향의 능선길을 많이 따르는 듯 보인다.
최근에는 용문산 북봉 방향의 능선길을 많이 다니는지, 우회길이 많이 희미해지며 거칠어지고 있다.
우회길로 들어선 지 12분 만에 용문사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로에 합류하여,
우측 가파른 능선 오름길을 따라 용문산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신발에 들어간 흙도 털어내고 복장을 정비하는 백두들.
행장을 정비하고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장군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용문산 북봉 직전의 우회갈림길에서 직진의 능선길로 들어서면 이곳 우측으로 이이져오고,
한강기맥 등로는 좌측 장군봉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직진의 계단 오름길을 따라 용문봉 정상석을 찍고 이곳으로 돌아나와 장군봉 방향으로 용문산을 우회하게 된다.
가파른 데크목 계단길이 이어지며,
돌아본 용문봉 뒤편으로 거쳐온 한강기맥 봉우리와 중원산과 도일봉 능선이 겹겹이 차례로 줄 서 있다.
용문산 정상 직전 전망대에서 돌아본 한강기맥 비솔고개 방향.
북동쪽 봉미산 방향.
북동동쪽 용문산 북봉과 폭산 방향.
동쪽 비솔고개와 도일봉 방향.
남동쪽 용문사와 용문관광단지 방향.
가야 할 용문산 정상부에는 벌써 백두들이 올라 있다.
지난 지리산 산행에 이어 참여하신 Miss Kim.
군부대 철망에는 수많은 산꾼들의 흔적이 걸려있고,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점검해 보고는 용문산 정상으로 향한다.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 올라서 돌아본 폭산과 봉미산 방향.
지나온 한강기맥 비솔고개 방향.
서쪽 가야 할 유명산 방향.
용문산 가섭봉 정상에 정성석과 은행나무잎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용문사 은행나무 잎을 형상화 한 상징조형물이다.
보통 때는 밀려드는 산객들로 용문산 정상에서 인증 사진 찍기가 어려을 정도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용문산 정상을 독차지하여 단체 인증을 남긴다.
<용문산(龍門山, 1157.0m)>
양평(楊平) 북동쪽 8km, 서울 동쪽 42km 지점에 위치하는 산으로, 많은 봉우리들과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은 데다 철마다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렸으며,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 중의 한 곳으로,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53m), 국망봉(1,167.2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용문산 산체(山體)는 동서 8km, 남북 5km에 걸쳐져 있고, 용문산을 주봉으로 하여 동북동쪽의 도일봉(道一峰, 864m), 동쪽의 중원산(中元山, 800m), 남서쪽의 백운봉(白雲峰, 940m), 서쪽의 유명산(有明山, 864m) 등 지봉(支峰)이 용립(聳立)하여 연봉을 이루고 있다. 정상은 평정(平頂)을 이루고 능선은 대지(臺地)가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원산과의 중간에는 용계(龍溪)·조계(鳥溪)의 협곡이 있고 그 사이에 낀 대지는 수 100m의 기암절벽 위에 있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 북쪽은 완경사,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첩첩이 쌓인 암괴들이 나타나며 깊은 계곡과 폭포도 볼 수 있고 용문산 북서 일대는 고도 700∼1,100m의 약 4㎢의 고위평탄면이 나타난다. 남쪽 산록 계곡에는 용문사(龍門寺), 상원사(上院寺), 윤필사(潤筆寺), 사나사(舍那寺) 등 고찰이 있고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이 260㎡나 된다. 또 이곳에는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 부도(正智國師浮屠) 및 비(碑) 2기가 있다.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 전해온다. ‘미지’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로, ‘미리’는 경상,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으로,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다.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지명이 바뀐 시기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정상에서 장군봉(1045m), 함왕봉(889m), 백운봉(940m)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산줄기는 마치 한 마리 용이 꿈틀대며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용문산은 사방 100㎞가 막힘 없이 조망되는 천혜의 요새여서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고, 6·25 당시 용문산 전투로도 유명한 곳이다.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6사단 용문산연대 전 장병이 중공군 제2차 춘계공세에 결사항전으로 맞서 제63군 예하 3개 사단(2만여 명)을 격멸한 전투로,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교범에 사주방어의 성공사례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승전사’로 꼽히고 있다. 경기 가평군 설악면에 용문산전투 가평지구 전적비가 세워져 있어 매년 전승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용문산 ‘가섭봉’은 예로부터 용문산내 ‘석가봉’, ‘아난봉’ 등과 함께 ‘용문산 불교 3봉’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섭봉은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연꽃을 대중들에게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를 보였다는 염화시중 미소(拈華示衆 微笑)의 고사에 나오는 ‘가섭존자’를 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일대의 등산로가 폐쇄됨에 따라 지도상에서도 ‘가섭봉(迦葉峰)’이란 이름이 잠시 사라졌다가, 지난 2007년 11월 정상이 일반에게 개방되면서 서울 근교의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가섭봉’과 ‘가섭치’란 명칭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가섭치는 온라인 국지원 지도에는 가협치(加狹峙)로 표기되어 있는데, 가섭치와 혼용되고 있다.
동쪽 용문봉 방향으로, 통신탑 앞쪽(북동쪽) 용문산 북봉에는 군부대 시설물이 보이고, 그 뒤편에는 잠시 전에 지나온 폭산(천사봉)이 보인다. 그 우측(동쪽)으로 용문봉, 중원산, 도일봉이 차례로 도열해 있고 그 우측 아래로 용문사와 용문관광단지로 이어지는 계곡이 펼쳐져 있다.
북쪽 보리산 방향.
동쪽 비슬고개 방향.
용문산 가섭봉 정상은 다른 산객들에게 내어주고 아래에 있는 정자에서,
과일을 나누며 농다치고개까지의 긴 여정을 위래 짧은 휴식을 갖는다.
갈 길이 많이 남은 까닭에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용문산을 내려선다.
용문산 정상이 개방되기 전에 가섭봉 정상을 대신했던 장소.
옛 정상에서 본 구름에 둘러진 용문봉이 멋지다.
정상에서 데크목 계단길을 내려서서 우측 장군봉 방향 우회길로 들어선다.
갈림길 좌측에 용문산 북봉 방향 등로 모습.
아마도 용문산 오름길에 앞서간 분들이 저 길로 오다가,
창병씨의 도톰한 엉덩이를 드러내는 사건을 발생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용문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로 인해 능선 남쪽 우회로를 따라 장군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장군봉이 1.1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짧은 너덜길도 지나면,
장군봉 T자 능선 갈림길인 장군봉갈림길에서 한강기맥은 우측으로 꺾어 오르게 되고,
좌측 등로는 장군봉, 함왕봉,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일반 등산로다.
이 갈림길은 오늘 산행길 중 중간 지점쯤에 해당되는데, 들머리에서 10.2km 지점이다.
갈림길 이정표에서 옥천면 용천리 7.7km 방향이 배넘이고개로 이어지는 한강기맥길이다.
장군봉 갈림길에서 우측 군부대 방향으로 약간 오르면 이정표가 나오는데,
가던 길을 따라 배너미고개 방향으로 진행한다.
군부대를 우회하는 사면 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좌후방으로 장군봉과 함왕봉을 거쳐 뾰족한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되고,
좌측 사나사 계곡 방향.
좌전방으로는 기맥길 능선으로 이어지는 군사 도로와 멀리로 유명산과 중미산이 조망되며,
전방으로는 용문산 정상을 차지한 군부대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올려다본 용문산 정상부 방향.
옛 군부대 정문이 있던 능선 중앙부의 임도까지 우회길이 가늠된다.
잠시 더 등로를 따르자 군사 도로로 나서게 된고, 좌측 우회길을 따라도 되지만, 우측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군사도로를 따라 예전 군부대 정문이 있었던 곳까지 2분 정도 내려서면,
좌측 능선(한강기맥)과 우측 군사도로 사이의 등산로가 한강기맥 등산로다.
돌아본 용문산 정상 방향.
좌측 백운봉 방향 능선과 사나사계곡 방향 조망.
정문이 있었던 공터에서 직진의 능선 방향 오르막 임도가 한강기맥 능선이나,
약간 우측 수레길 앞에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이 등산로 들머리다.
배너미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진 넓은 수레길을 편안히 따라 가면,
이내 좌측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합쳐지고,
헬기장 수준의 널찍한 공터도 지나서,
용문산 오름길의 어려웠던 산행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완만한 내림의 널찍한 수레길을 따라 편안한 산행을 즐기는데..
설매재휴양림과 사나사(舍那寺) 갈림길 이정표가 불쑥 나타나는데, 사나사는 설매재 휴양림 방향이다.
오늘 싸리봉에서 헤어진 백두 A팀이 이곳에서 저 설매재휴양림 방향으로 진행하여 휴양림을 탐방키로 하였는데,
잠시 더 멋진 수레길을 따르다가, 농다치고개까지 함께 가기로 했던 Miss 킴이 용문산 우회 사면길 바위너덜에서 무릎을 다쳐서 걷기가 힘들다며, 다시 발길을 돌려 설매재휴양림으로 간다며 이별을 전한다.
B팀 선수들은 용문산에서 먼저 앞서가 버리고 뒤쳐져 함께하던 세분은 탈출키로 하면서,
이제부터는 홀로이 걸으며 앞서간 분들을 따라잡아야 하는지라 괜히 마음이 허전해진다.
커다란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는 능선을 우회하여 지나고,
등로 좌측편으로 또다른 '설매재휴양림(이벤트홀)' 방향 갈림길도 지나고,
잠시 더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서니 배너미고개에 도착한다.
<배너미고개>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서 가평군 설악면 가일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배너머고개, 배너미고개, 주유현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네이버 지도에는 설매재로 표기되어 있기도 한데 현지 주민들은 670고지라고 부른다. 아마도 근처에 668봉이 있어서 6.25 전쟁 때부터 그리 불려진 듯하다.
일반적으로『배너미골[舟月里, 舟越里]이나 배너미고개(재)는 전국에 널리 분포된 지명으로, 전설 대부분은 산이나 언덕으로 배가 넘어 다녔다는 내용이다. 해안가나 하천 변의 내륙 쪽에 위치한 마을에서 지대가 낮은 곳은 만조시나 홍수가 날 때 물에 잠겨 배너미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볼 때 물이 찬다고 하여 배가 드나들었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곳도 있는데, 이는 배너미라는 지명이 반드시 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지형이 배의 모양을 하고 있거나, 풍수적으로 배형을 하고 있다[行舟形]는 속설에서 기인하기도 하며, 배가 가지는 상징성, 즉 불교적 열반의 심성이 깃든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이를 통해 마을이 안정되고 마치 피안의 경지처럼 평안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배너미골은 배나무골과 음차가 크지 않아 배[梨]가 많이 나는 지역을 지칭하다가 음운변이로 명칭이 변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배골, 배나뭇골, 배남골, 배낭골, 배내, 배내미로 표기되는 배나뭇골의 명칭은 변이의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예에서 보는 배내미와 배내는 각각 배가 다니던 곳과 배가 나던 곳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로 정착되어 사용되고 있다. 』
고개 정상부에는 레저용 ATV 탑승장이 있는지 소리가 요란하다.
배너미고개 날머리 모습.
고개 마루에는 용천4리(갈현마을) 표지석이 있고, 길 건너편에는 막걸리와 감자전, 도토리묵을 파는 콘테이너박스 주막이 있으며, 도로 좌측편에 유명산 ATV 출발지가 위치하고 있다.
분주한 ATV 탑승장 모습.
원래 한강기맥 능선은 중앙의 능선길로 이어지만, 그냥 편하게 ATV 도로를 따라도 된다.
하지만 좌측 임도는 ATV들이 많이 다닐 듯하여 정통 기맥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길을 정비하여 다니기에 불편함은 없으나,
예상과 달리 한참의 오름길을 오르게 되면서 편안한 임도를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한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밧줄이 메어진 급경사의 내림길로 내려서면,
좌측 임도로 내려서는 통로가 있고,
이내 능선길이 임도로 내려서는 지점이 나온다.
임도에는 유명산 ATV에서 세운 주의 안내판이 있는데, 휴일을 맞아 임도를 따라 수시로 패러글라이딩을 실은 트럭이 주행하면서 먼지를 흩뿌리고, 일단의 ATV 행렬들도 굉음과 매연을 뿜으며 지나다니고 있어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용문산 오름길 사건의 흔적을 간진한체 걸음을 옮기는 창병대장 모습(권샘 촬영)
촬영 시간이 11:41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잘 관리되고 있는 유명산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다가,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 갈림길을 만나는데,
직진의 도로를 따라 잠시 더 오르다가 또다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765봉 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우측 거친 임도길도 건너편 765봉 능선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지름길로 보이고 표지기도 한두 개 걸려 있어서
우측 거친 임도길로 들어선다.
우측 임도로 들어서려는데 ATV 차량들이 떼지어 몰려오고 있다.
시원한 숲길을 걷다가 나무가 없는 초지로 이어진 임도로 들어서니 햇볕이 지친 산객의 발길을 더욱 무겁게 하고,
거친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는 돌아본 용문산 방향이 멋져 보인다.
거친 임도에는 들꽃이 피어나 뜨거운 여름 태양볕을 받으며 걷는 산객을 위로해 주고,
뒤에서는 장쾌한 용문산 능선이 잘 가라고 희미한 미소를 보내온다.
이곳에서 산악용 ATV 도로와 다시 접속하고, 우측 765봉 능선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뜨거운 태양볕에 지쳐가는 몸뚱이가 자꾸만 뒤돌아 보게 하고,
좌측 아래로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또 좌측 사면에서 오르는 ATV용 임도와 만나고,
땡볕의 능선길을 피해 우측 숲으로 이어진 임도로 들어서 보지만,
이내 다시 태양볕을 피할 수 없는 초지로 이어진 능선으로 나서게 되고,
앞쪽으로 가야 할 765봉이 오뚝해 보인다.
뒤돌아 본 용문산 능선이 좌측 폭산(문례봉)에서 통신 시설물들이 자리한 용문산 정상 가십봉을 지나 우측 백운봉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이 장괘하다.
이제 가아 할 765봉 정상이 지척으로 보이고,
ATV가 Turn을 하는 지점을 지나 진행하면,
765봉이 금방 닿을 듯이 보인다.
돌아본 용문산 능선의 백운봉 모습.
저 백운봉 아래에 오늘 뒤풀이 장소인 '정미소'라는 식당이 있는데..ㅉㅉ
제법 가파르게 올라서서 765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지도의 고도표에는 765봉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헨폰에 표시된 고도는 780m를 가리키고 있다.
765봉에서 돌아본 용문산 방향 조망.
어비산 방향.
<어비산(魚飛山, 828m)>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예로부터 홍수 때 물고기가 산을 뛰어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산에 얽힌 전설 두 가지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산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어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일대가 잠기게 되었는데, 그때 계곡 속에 갇혀 있던 물고기들이 본능적으로 유명산보다 조금 낮은 어비산을 넘어 본류인 한강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어비산이라 불렀다.
또 하나는 옛날 신선이 한강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아 설악면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망태 속에 담겨 있던 고기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유명산 뒤쪽 산에 날아가 떨어졌다고 하여, 어비산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용문산 정상 방향으로 지나온 한강기맥 능선이 아련히 이어져 있고,
용문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에는 장군봉과 백운봉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드라마 세트장도 내려다 보이는데, 저곳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무사 박동수”, “불의 여신 정희”와 배우 송강호가 주연한 “관상”이란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고 한다.
남쪽 방향으로는 희뿌연 연무에도 불구하고 양평을 흐르는 남한강의 모습도 가늠된다.
765봉에서 지친 몸뚱이를 잠시 쉬게 하며 목을 축이는데, 용문산 능선 위로 헬기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날고 있다.
설마 백두들에게 뭔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
765봉 뒤편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로 접어드니,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고,
수레길에 내려서서 잠시 진행하니 대부산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대부산은 좌측이고, 유명산 방향 한강기맥은 직진의 수레길을 따라야 한다.
좌측으로 유명산 활공장으로 이어진 도로가 내려다 보이더니,
잣나무 조림지를 통과하여 나서면,
유명산 활공장으로 이어진 도로에 나서게 되는데,
좌측은 대부산과 배너미고개로 이어지고, 유명산 방향 기맥은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게 된다.
잠시 유명산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우측 수레길로 들어서서 진행하면,
이내 다시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접속하게 되고,
길 옆에 세워놓은 이정목에는 농다치고개가 3.8km 남았다고 적혀있는데,
전방 활공장에서 날아오르는 패러글라이더가 부럽기 짝이 없다.
좌측 앞쪽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고,
우측편에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유명산을 바라보며 도로를 따르는데,
한무리의 ATV 애호가들이 굉음을 내려 지나가고,
돌아본 백운봉 방향으로는 잠시 전에 지나온 765봉과 대부산(743.8m)이 함께 조망되며,
좌전방으로는 다음 구간에 가야 할 청계산과 그 좌측으로 남한강도 가늠된다.
활공장 오름길에 지쳐서 자꾸만 뒤돌아 용문산을 바라보고,
힘겨운 오름길을 겨우 올라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도착하여, 이륙을 준비하는 전경을 잠시 지켜본다.
활공장에서 돌아본 용문산 방향.
대부산 방향.
남서쪽 아신역 방향.
서쪽 청계산 방향.
살짝 당겨본 양평군 강하면의 남한강 모습.
두번째 활공장을 지나는데, 우전방으로 유명산 정상이 지척으로 보이고,
돌아본 용문산이 아련하다.
지나온 첫번째 활공장 모습.
다시 도로를 따라 세번째 활공장으로 향한다.
세번째 활공장에 도착하는데, 앞서간 서여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유명산 정상인데요 어디세요?"
"저도 유명산인데요, 정상은 이직 좀 남았으니 먼저 출발하세요~~"
세번째 활공장에서는 가야 할 농다치 방향 능선의 소구니산과 선어치 건너편으로 중미산이 조망되고,
다음 구간 가게 될 청계산이 훨씬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살짝 당겨본 청계산 방향.
선어치와 중미산 방향.
농다치고개와 유명산이 갈리는 갈림길에서 기맥길은 좌측이지만, 우측 250m 거리의 유명산을 다녀오기로 한다.
임도를 따라 유명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먼저 와 있던 백두들이 막 내려서다가는,
유명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자는 제안에 다시금 유명산 정상으로 함께 올라선다.
<유명산(有明山, 862m)>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馬遊山)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여지도서」에는 "마유산은 군의 북쪽 20리에 있다. 북쪽의 용문산(龍門山)에서 이어져 마현산(馬峴山)의 주맥을 이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중앙자오선 종주(대전~가평) 등산 중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에다 산악회 대원 중 진유명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 유명산(有明山)이란 이름으로 산악 잡지에 게재한 이후 유명산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산 정상 부근에 나란히 자리한 세 개의 바위는 삼형제바위라 불린다. 유명산에서 이어지는 계곡은 기암절벽과 작은 폭포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 절경을 이루어 가평 8경 중 제8경 유명농계(有名弄溪)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 북쪽에 1989년 개장한 유명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한여름 정오 무렵이라 산객들이 뜸한 유명산 정상 모습.
유명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문산 조망.
좌측 끝 봉미산에서 폭산 ~ 용문산 가섭봉 ~ 장군봉 ~ 백운봉 능선이 장관이다.
마침 정상에 도착한 산객에게 부탁하여 유명산 정상 인증을 남긴다.
유명산을 내려서는데 MTB를 타고 오르는 분도 보이는데, 언젠가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갈림길로 향한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 되돌아 나와 농다치고개 방향 한각기맥길에 들어선다.
농다치고개까지 2.8km 남았다.
유명산에서 농다치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도 신작로 수준이고,
육산에 자리한 암봉을 우회하여,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소구니산에 도착하는데,
앞서간 백두들은 모두 스쳐지나가 버려서 정상석만 담는다.
<소구니산(800m)>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옥천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유명산(864m)과 중미산(834m)을 잇는 능선 한가운데에 솟아 있다. 산의 모습이 소쿠리 같다고 하여 소쿠리산이었다가 소구니산으로 변음이 되었다. 실제로 이 산에는 소쿠리를 만드는 싸리나무가 많다고 한다.
하늘이 서너 치 정도 보인다는 뜻의 선어치(서너치) 고개와 유명산 사이에서 두 곳을 연결하고 있다. 선어치 고개에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신선이 남한강에서 고기를 낚아 설악면 장락으로 가던 길에 고개를 넘던 중 갑자기 고기가 살아나서, 즉 선어(鮮魚)가 되어서 소구니산을 넘고 유명산 뒤의 산으로 날아가 내려앉았다고 하며, 그 후 고기가 내려앉은 산을 어비산(魚飛山)이라 했다고 한단다.
소구니산 정상에서 농다치고개까지는 1.8km, 선어치까지는 1.5km 남았다고 알려준다.
소구니산에서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니,
좌측 농다치고개와 우측 선어치 방향 갈림길이 있는 795봉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 방향 능선길은 선어치를 지나 중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고,
한강기맥은 좌측 농다치고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앞서가던 분들 중에서 영규 형이 이곳에서 직진하여 선어치로 내려서는 알바를 하였는데, 선어치는 옛날 신선이 앉아 휴식을 취할 때 고기가 갑자기 살아났다고 하여, 싱싱할 선(鮮), 고기 어(魚), 고개 치(峙) 자를 써서 선어치라 부른다고 한다.
제법 급하게 고도를 내리며 능선길을 따르는데,
개념도에 660.8봉으로 표기된 봉우리를 지나고,
소나무에 걸쳐놓은 나무작대기는 뭘 의미할까 !
표식이 선명한 헬기장을 지나고,
가드로프가 메여진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데크목 계단을 따라 절개지를 내려서서,
오늘의 목적지인 농다치고개에 도착하여 한강기맥 14번째 산행을 마친다.
<농다치고개(籠多峙)>
경기도 양평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고개로, 옥천면 신복리 새말에서 양편으로 넘는 고개이다. 옛날 양근으로 시집가는 신부가 험한 고갯길이라서 '농다치리'라고 한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전한다. 「동국여지지」 양평군에 "노다령(勞多嶺)이 군 북부 이십리에 있고 노다치(勞多峙)라고도 칭한다."는 내용이 있다. 「구한말지형도」에 농다치현(農多峙峴)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고읍면 복동리에 위치한 농현(籠峴)으로 수록되어 있다. 휴양림이 자리한 중미산 중턱의 농다치고개에 오르면 멀리 남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새말에서 양현(농다치 북쪽 마을. 농다치고개를 넘어 선어치고개 아랫마을)으로 넘는 옛 고갯길로서 50〜60년대까지는 지역주민들의 유일한 도로로서 경제활동과 학생들의 배움의 열기가 가득한 통학길로 활용되었던 “농다치고개”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 !
<돌쇠의 짝사랑(농다치고개)>
조선 중기 때 고개 남쪽 아랫마을인 양평군 신복리에 최씨 성을 가진 마을 향리가 고개 너머 가평군 방일리에 사는 박씨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을 시집보내게 되었는데, 혼수로 딸이 태어날 때 심어 두었던 오동나무를 베어 솜씨 좋은 목수에게 부탁하여 농을 제작하고 농 속에 이불과 살림살이 등의 혼수를 챙겨서 머슴인 돌쇠와 돌쇠 아버지의 지게에 지어 보내다고 한다.
아씨를 짝사랑하며 숱한 밤을 가슴앓이 해오던 머슴 돌쇠는 이곳 고갯마루에 도착해서는 짝사랑해 오던 아씨의 신랑에 대한 미움으로 지고 가던 오동나무 농을 길이 비좁다는 핑계로 길옆 바위에 쿵쿵 부딪치며 눈물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지고가는데, 뒤따라오던 돌쇠 아버지가 보다 못해 "얘야 농다친다! 농다친다!" 하고 소리쳐 농다치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어이구, 빙신 돌쇠녀석아. 그렇게 사랑하고 사모하는 아씨였다면 간밤에 그냥 콱 일 저지르고 말지~ㅉㅉ
농다치고개 건너편 매점 뒤쪽으로 다음 구간 들머리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기다릴 줄 알았던 우리의 애마는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설매재자연휴양림에 볼거리가 많아서 출발이 늦어진 모양인지, 가는 중이라는 전언이다.
선어치로 하산했다는 영규 형은 지금 이 땡볕에 도로를 따라 복귀 중일 터이고,
날머리 나무 그늘에서 유명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려다가 잘못하여 이곳으로 내려온 가족 산객들과 물을 나누는 사이에,
우리의 애마가 도착하고 뒤이어 선어치로 갔던 분도 도착한다.
유명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려다가 잘못하여 이곳으로 내려온 가족 산객들을 뒤로하고 농다치고개를 뒤로한다.
인근의 온천사우나에서 땀을 닦고,
용문산 백운봉 아래에 있는 '정미소'라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당에 도착하는 백두들 뒤편으로 백운봉이 뾰족하다.
몸살로 산행에는 참가하지 못한 백사장님이 먼저 도착하여 있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여름철에 어려운 한강기맥 용문산 구간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행복하게~~~!'를 외친다.
푸짐한 뒤풀이도 마감하고 다시 일상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용문산을 지나 설매재휴양림 갈림길에서 일행들을 탈출시키고,
홀로 유명산까지 땡볕에서 힘든 산행을 이어가면서
그동안 늘 의문이었던 "내가 왜 힘든 산행을 하는 걸까?"를 생각해 보았다.
첫번째로 평소 '몸이 힘들면 마음도 쉽게 물드는 법'이라는 예기를 가끔 듣는데, 사실 마음이 힘들 땐 반대로 몸을 힘들게 하여 마음에 낀 잡념을 없애는 것도 궁지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냥 운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낯선 곳'이라는 생경함이 주는 감각은 머리를 가득 채운 걱정들을 잠시 뒤로 놓아두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정주된 일상에서는 얻기 힘든 효과임에 분명하다.
두번째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들에 대한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유명산 임도를 따라 유명산 정상을 향하는데 옆을 스쳐지나가는 ATV를 보면서 생각했다. 논산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행군길에서 옆을 지나가는 트럭들을 보며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하다 못해 자전거조차도 엄청나게 속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명산 정상까지 올라온 MTB를 보면서 무척이나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들에 대한 고마움을 그것들을 만들어 주신 선조들에게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세번째로는 지리적 감각을 더 생생하게 체득할 수 있고 기억하기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냥 지도나 산행기에서 본 모습과 실제로 걸어서 가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르게 기억된다. 10여년 전 우연히 걷기 시작한 백두대간을 걸으며 우리 국토의 모습과 우리네 삶의 모습들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부분과 무척이나 다름을 절감했었다.
그리고 더욱 더 많은 뭔가가 나로 하여금 생경한 등산로를 찾고 접하지 못했던 자연을 직접 체험하려는 욕구들 불러일으키고, 그런 욕구에 따라 2주 후에도 배낭을 메고 나설 것이다.
'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천 백우산 용소계곡 피서 트레킹 (0) | 2020.08.10 |
---|---|
금북기맥 2차(지티고개~부시치고개) : 싱그러운 능선길을 따라 월명산을 넘어 옥녀의 땅으로.. (0) | 2020.07.11 |
지리산 태극유람 9차(대성골) : 사무친 동족상잔의 현장 대성골 (0) | 2020.06.18 |
청계산 옥녀봉 자락에서 거행한 2020년 시산제 (0) | 2020.06.16 |
백령도 트레킹 4일차(4/4) : 천연비행장 사곶사빈을 거닐다 ! (0) | 2020.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