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년

진양기맥 03차(수망령~바래기재) : 단풍 화염에 휩싸인 기백산 누룩덤의 추억.

by 재희다 2020. 10. 22.

산 행 지 : 진양기맥 03차(수망령~바래기재) 경남 거창군, 함양군.

산 행 일 : 2020. 10. 17.(토)

산행코스 : 수망령 ~ 금원산 ~ 동봉 ~ 누룩덤 ~ 기백산 ~ 늘밭고개 ~ 안봉 ~ 상비재 ~ 바래기재

(13.7km, 6시간 반 소요)

산행참가 : 산이 궁금한 두 명.

 

<산행지도>

 

진양기맥의 수망령~바재기재 구간의 백미는 금원산과 기백산인데 이곳은 이미 백두들이 2011년에 다녀온 곳이라 구태여 또 갈 필요가 없을 듯하여 홀로 가기로 했지만, 마침 창병씨가 시간이 된다고 하여 함께 단풍산행 겸 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이번 구간의 행정계를 보면, 수망령을 출발할 때는 좌측이 거창군 북상면, 우측이 함양군 안의면으로 갈려 북동향으로 진행하다가, 금원산에서 우측은 그대로 안의면이나 좌측이 거창군 위천면으로 바뀌어 남동향하고, 기백산을 지나 삼면봉인 안봉(1,065.9m)에서 좌측이 위천면에서 마리면으로 바뀌어 계속 남동향하면서 바래기재 이후까지 진행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거창군과 함양군을 경계하여 남동향하는 셈이다.

 

오늘 구간의 출발점인 수망령에 접속하는 방법은, 북쪽 북상면 월성리에서 월성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남쪽 안의면 용추계곡을 따라 용추자연휴양림을 지나 오르는 방법이 있다. 양쪽 모두 소형차로 오를 수 있는데, 서상IC에서 가자면 남령을 통과하여 북쪽인 월성계곡을 따라 오르는 게 조금 더 빨리 접근하는 것 같아 그 길을 택한다.

 

 

새벽 5시에 창병씨와 만나 과천을 출발하여 덕유산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월성계곡을 거슬러 올라 수망령에 도착하니, 날씨는 쾌청한데 주변에 산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기맥을 타는 산꾼들이나 이른 시간에 수망령에 오를 뿐인가 보다.

 

<수망령(水望嶺, 940m)>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거창군 북상면을 잇는 고개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 있고 멋진 팔각정자가 서 있다. 월성마을과 옛 안의면의 심진동을 넘나들던 고갯길로, 옛날부터 가뭄이 들 때 이곳에서 먼저 비가 오기 시작하면 많은 비가 온다고 해서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수망령 또는 물바라기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용추자연휴양림>
용추자연휴양림은 해발 1,325m의 금원산 수망령 기슭,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불렸던 용추계곡 입구에 조성되었다. 이 일대가 6·25전쟁 직후 빨치산의 은거지였을 만큼 용추계곡은 깊은 골짜기에 풍부한 수량과 다양한 수종의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자연경관이 수려하다. 심원정(尋源亭)을 비롯하여 매바위, 상사바위, 용추폭포 등의 비경이 있다.
용추폭포는 그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시대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알려진 안의삼동(安義三洞)의 한 곳으로 불렀는데,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안의현에 속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명승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휴양림에는 무학(자초)대사가 말년에 기거했다는 은신암,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는 황석산성(사적 322)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산삼이 많이 나 이름 지어진 삼박골에는 스님과 삼자승간의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얽힌 상사바위가 있다. 금원산과 수망령 일원에서 발원한 수량이 풍부한 지우천이 용추계곡으로 흘러내리면서 삼층폭포를 이루고, 용이 살고 있어 화가 나면 홍수가 진다는 구전버리소 등의 명소가 있다.

 

<월성계곡>
수망령 북쪽 5.5km에 이르는 월성계곡은 거창의 소금강이라 불리는데, 계곡 상류에 월성마을이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월성계곡의 첫머리에는 강선대(降仙臺)와 모암정(帽岩亭)이 있는데, 강선대는 조선 인조 때 척화신 동계 정온(鄭蘊) 선생이 남한산성에서 척화를 주장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살았던 명소로, 경치가 좋아서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다. 계곡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서 창선리에 이르면,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 흐름이 마치 눈이 흩날리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분설담(濆雪潭)이라 부르는 명소가 나온다. 바위 벼랑을 끼고돌아 흐르는 물길 아래 누운 반석이 물결에 패이고 패여 물고기 비늘 형상을 이룬다. 분설담 위쪽에는 마치 양 날개로 병사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듯한 당당한 위풍의 장군바위가 서 있다. 17세기 화가 진재 김윤겸(金允謙)의 진경산수 화첩에 그려진 경치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외 월성에서 황점으로 오르는 길 중간 지점에 사선대(四仙臺)가 있다. 1909년 고종의 5남 의친왕 강(堈)이 전 승지 정태균을 찾아와 머물면서 북상·위천 지방의 우국청년들과 이곳 일대를 뒷날 의병의 근거지로 삼으려고 준비하던 중 일제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구국의 한이 서린 곳이다. 왕실의 선원(璿源 : 왕실 족보)을 뜻한 이름으로 사선대(思璿臺)라 부른 것을, 바위 포갬이 4층이고 돌 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에 의해 사선대(四仙臺)라고 부른다.

 

 

서울에서 예까지 쉼 없이 달려 노곤해 보이는 애마를 홀로 수망령에서 쉬게 하고는,

금원산 정상이 2.3km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들머리로 들어서면,

 

 

제법 가파른 오름길에 통나무 계단길이 길게 이어지고,

 

이곳의 해발 고도가 1천 미터를 넘는 곳이라서 그런지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수망령에서의 서늘한 기운에 외투를 입고 출발했던 창병씨가,

 

오름길에 체온이 올라가며 외투를 배낭에 갈무리하고는 가벼운 차림으로 금원산을 향한다.

 

 

수망령에서 1km 왔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단풍 숲으로 이어진 통나무 계단길을 한번 더 오르면,

 

 

금원산 정상이 5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금원산 전위봉(1,277)에 도착하는데,

이정표 뒷편에 전망바위가 있어서 지난 구간 걸은 진양기맥과 황석산 방향 능선이 멋지게 조망된다.

 

금원산 전위봉 전망바위에서는 가야 할 금원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남쪽으로 쭈~욱 뻗은 기백산, 황석산 능선 너머로,

백두대간의 백운산과 영취산에서 분기된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도 가늠되고,

 

서쪽으로는 월봉산 어깨 너머로 할미봉도 가늠되며,

 

지난구간 남덕유산에서 이어온 진양기맥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남덕유산에 북으로 뻗은 덕유산 능선의 삿갓봉과 무룡산은 물론,

 

덕유산 향적봉도 아스라이 멀리로 가늠된다.

 

월봉산 방향을 배경으로.

 

살짝 당겨본 남덕유산 방향으로 지난 산행에서 힘겹게 올랐던 수리덤(칼날봉)이 뾰족하게 보인다.

 

서쪽 월봉산 방향 파노라마.

 

 

금원산 전위봉을 뒤로하고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금원산 직전에 다시 전망바위가 나오며,

잠시 전에 보았던 산줄기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황석산(黃石山, 1,192.5m)>
황석산은 산봉우리 주변에 누르스름한 바위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함양의 마터호른이라 한다. 안의면(安義面)의 주산인 황석산은 범상치 않은 바위산으로 풍수에서 말하는 화산(火山)이다. 이는 산봉우리가 뾰족하고 멀리서 보면 마치 활활 타는 불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안의 고을 사람들의 불같은 열정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부녀자들은 천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이 핏빛이라는 전설이 있는 황석산성이 있다. 황석산에서 능선 따라 북으로 거망산을 지나 수망령 너머 덕유산이 조망되고 금원산, 기백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가깝게는 거창의 보해산, 의상봉, 오도산, 합천의 황매산, 의령의 자굴산, 한우산 등등이 층층겹겹을 이룬다. 남쪽에는 지리산의 웅석봉을 비롯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주능선의 영봉(靈峰)들이 하늘금을 긋는다. 백두대간의 마루금 따라 오른쪽으로 백운산, 깃대봉이 아스라하고 대봉산, 도숭산은 손을 내밀면 잡아 줄 것 같다. 온 사방에 널린 높고 낮은 첩첩산중 고봉준령들을 모두 헤아리기도 벅차다.

 

<거망산(擧網山, 1,184m)>
경남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에 있는 거망산은 여름산이다. 이 산에 가려면 태장골과 지장골을 오르내려야 하고, 그사이 진입로엔 천혜의 용추계곡이 있어 산행 중 땀을 씻어 더위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기백산·금원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 황석산의 스카이라인이 유장하게 흐른다. 장거리나 거친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은 30㎞가 넘는 황석산 거망산 수망령 금원산 기백산을 한번에 종주하는 '기금거망' 산행을 한다. 네 개의 산에서 흐르는 청류는 지우천, 용추계곡, 용추폭포를 형성한다. 거망(擧網)은 글자 그대로 ‘그물을 던진다’는 뜻이다. 일설에 따르면 중생들에게 불법의 그물을 던져 제도하겠다는 무학대사의 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물을 던져놓은 것 같은 산세라 해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산 곳곳에 무학대사가 머물렀다는 은신암(隱身庵)을 비롯해 지리산 빨치산의 마지막 생존자 ‘남도부’ 하준수, 여자 빨치산 정순덕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준수는 거망산 은신골에서 일제의 징병을 피한 바 있으며, 정순덕은 1963년 체포될 때까지 남장 빨치산으로 불리며 거망산을 거점으로 군경을 괴롭혔다. 거망산의 산세가 워낙 깊다 보니 몸을 숨기는 장소로 애용된 것 같다. 6·25전쟁 때 빨치산이 된 남편의 겨울옷을 전하려 산에 들었다가 같은 길을 가게 된 정순덕의 활동무대가 거망산이기도 하다. 폭풍과도 같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산 비운의 여성 정순덕(1933년 6월~2004년 4월). 이홍이와 함께 1963년까지 지리산에서 최후까지 버텼으나, 11월 12일 새벽 생가 근처인 지리산 삼장면 상내원리에서 국군과 교전 끝에 부상을 입고 체포됐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2004년, 그는 72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는 이곳 거망산에서 국군 1개 소대를 잡아 억류한 뒤 무장해제시켜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망령과 월봉산 방향.

 

월봉산과 남덕유산 방향.

 

남쪽으로는 용추계곡을 사이에 두고 가야 할 기백산과 거망산, 황석산 능선이 나란히 보이고,

 

서쪽으로는 큰목재를 사이에 두고 거망산 줄기와 월봉산 줄기가 길게 이어지며,

 

서북쪽으로는 남덕유산에서 이어온 진양기맥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덕유산 산줄기가 연무에도 아스라이 가늠된다.

 

월봉산을 배경으로.

 

 

금원산 정상 도착.

 

<금원산(金猿山, 1,352.5m)>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과 북상면, 함양군 안의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의 서쪽으로 월봉산과 수망령이, 남동쪽으로 기백산이 이어진다. 「여지도서」(안의)에 "금원산(金猿山)은 월봉(月峰)에서 동쪽으로 달려나와 이 산을 이룬다. 곧 감음(感陰, 感隱: 현 거창 위천면)∙ 고현(古縣)의 주산이다. 현의 북쪽 4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대동지지」(안의)에는 "금원산은 북쪽 20리에 있다. 아래에 학담(鶴潭)이 있다."라고도 하였다.
옛날 이 산속에 금빛나는 원숭이가 날뛰므로 한 도사가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 따라 금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산중턱에 있는 그 바위를 납바위, 금원암(金猿岩) 또는 원암(猿巖)이라고 한다. 산에는 이 외에도 금달암(金達岩), 마슬암(磨膝岩), 선녀담(仙女潭) 등에 관한 전설이 전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비가 내릴 때를 미리 안다는 지우암(知雨岩: 지재미재 초입의 문바위의 별칭), 달암 이원달 선생과 그의 부인 김씨와 얽혀 이름한 금달암(金達岩), 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는 마슬암(磨膝岩), 하늘에서 세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하는 선녀담(仙女潭) 등이 이 산 주위에 널려 있다. 선녀담은 아기를 못낳는 여자가 이 소에서 목욕을 하고 소원을 빌면 아기를 낳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금원산에서는 북쪽으로 창선천이 발원해 북동류하여 위천천에 합류하고, 동쪽 유안청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산상천(山上川)이 되어 위천면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渭川)에 합류하여 거창읍에서 황강(黃江)으로 흘러든다. 또한 남쪽 용추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지우천(智雨川)을 이루어 흐르다 안의에서 남강(南江)에 합류한다.

금원산 동쪽으로 두개의 유명한 계곡이 있는데, 금원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좌측으로 난 유안청 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儒案廳)이 자리한 골짜기로, 성인이 많이 나와 성인골(聖人谷)이라고도 불린다. ‘유안(儒案)’은 유생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길이 3㎞ 남짓한 유안청계곡은 숱한 폭포수를 거느리고 있다. 유안청1폭포와 유안청2폭포를 비롯해 자운폭포, 용폭, 선녀폭포, 미폭(米瀑) 등 이름 붙은 폭포만 여섯이고, 작은 폭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유안청 폭포골 또는 금원산 폭포골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특히 유안청 폭포는 이태가 쓴 <남부군>에 "기백산 북쪽 어느 무명 골짜기에 이르러 5백여명의 남부군들이 남녀가 모두 부끄러움을 잊고 옥 같은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알몸으로 목욕하였다"는 곳이다.

유안청계곡 북쪽, 금원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지재미골은 지장암이 있던 골짜기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지재미골 초입에는 거대한 문바위와 가섭암지마애삼존불상(迦葉庵址磨崖三尊佛像)이 있다. 문바위(門岩)는 옛 가섭사 일주문에 해당하는 가람 수호신으로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가장 큰 바위로 알려져 있는데, 또 다른 별명인 지우암(知雨岩)은 비가 내릴 것을 미리 알고 눈물을 흘렸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어서 흥미를 끈다. 바위 앞면에는 고려 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켜 순절한 이원달 선생을 기려 ‘달암 이선생 순절동(達岩 李先生 殉節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금달암(金達岩)이라고도 불린다. 문바위에서 약간 더 들어가면 자연석굴 안에 고려 예종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새겼다는 마애삼존불상(보물 530호)이 암벽에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아미타여래, 왼쪽은 지장보살, 우측은 관음보살로 보인다. 이외 현성산 북쪽에 중국의 5대 복성중 하나로서, 옛날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 서문기(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와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 서문씨(西門氏)의 전설이 얽힌 서문가(西門家) 바위(연화봉) 등이 전한다.

 

금원산 정상에서 창병씨가 가져온 군고구마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카메라 셔터를 부탁할 산객이 없어서 따로이 금원산 인증을 남긴다.

 

 

남쪽 가야할 기백산 방향.

 

남서쪽 거망산 방향.

 

서쪽 월봉산 방향.

 

 

한참을 기다려도 다른 산꾼의 기척이 없는 금원산을 뒤로하고,

3.6km 떨어져 있다는 기백산을 향한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커다란 둥근 모양의 선바위를 지나고,

 

 

이내 헬기장(1,329m)이 나오며 앞쪽으로 가야할 동봉이 지척이다.

 

 

금원산 동봉(東峰, 1,349m)에 도착하여 셀카로 인증을 한다.

 

금원산 동봉에서 본 360도 파노라마.

 

남동쪽 오두산과 기백산 방향.

 

남쪽 기백산과 황석산 방향.

 

남서쪽 거망산 방향.

 

 

서쪽 월봉산 방향.

 

북서쪽 남덕유산 방향.

 

북쪽 향적봉 방향.

 

북동쪽 유안청계곡 건너편으로 수도산과 가야산이 아스라이 가늠된다.

 

 

동봉 이정표가 있는 바위에서는 사방으로 막힌 곳이 없이 시원한 조망을 선사받고,

 

가야할 기백산 방향의 진양기맥 능선을 한번 더 뇌리게 새겨둔다.

 

 

급하지 않은 나무계단길을 따라 동봉을 내려서는데,

앞쪽 기백산 방향으로 이어진 진양기맥 능선이 거대한 용의 등줄기를 닮았고,

 

좌측으로 유안청폭포 방향 갈림길이 있는 안부의 육각정자 쉼터도 보인다.

 

 

육각정자 쉼터에 내려서니,

 

좌측으로 유안청폭포(3코스)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정표의 "유한청폭포"는 "유안청목포"의 오기(誤記)다.

 

돌아본 육각정자와 금원산 동봉.

 

 

이미 잎사귀를 떨구어 앙상해진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우측으로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가 나오며 남덕유산에서 월봉산으로 이어진 기맥 능선이 뚜렷하다.

 

 

언덕 수준의 봉우리에서 돌아본 금원산(좌)과 동봉(우)이 잎사귀를 떨군 나뭇가지 사이로 가늠되고,

 

모진 삶의 흔적인 듯 보이는 나무가 그동안 겪었던 시련을 말없이 전해온다.

 

 

앞쪽 푸른 잎사귀를 떨구어 성겨진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기백산이 가늠되고,

 

 

평탄한 능선길이 길기 이어지더니,

 

 

임도가 연결되어 있고 팔각정이 있는 안부로 내려선다.

 

 

정자쉼터 도착하여 창병씨가 풀어놓은 군고구마와 빵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본인이 신새벽에 직접 구운 고구마라서 맛나고 배낭 무개도 줄여야 한다며..ㅉㅉ

 

현위치가 정자쉼터라 표시되어 있다.

 

돌아본 날머리 좌측의 임도는 수망령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곳이 임도의 끝지점이다.

 

 

임도 안부를 뒤로하고 완만한 단풍물이 든 능선길에 들어서서 한참을 진행하는데,

 

 

등로 주변에 바위들이 듬성듬성 보이더니 작은 암봉을 좌회하여 지나면,

 

 

우측 아래 용추계곡의 사평마을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된다.

 

 

계속해서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금원산에서 기백산까지 4km 정도의 능선은, 업다운이 크지 않고 급경사도 없어서 단풍을 즐기며 걷기에 좋은 등산로라 생각하며 잠시 주변의 단풍 든 나무들의 생(生)을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가야할 기백산 방향 능선 아래 사면이 금침을 덮은 듯이 장관을 이루고,

 

우측으로는 단풍이 스며들고 있는 용추계곡과 건너편으로 거망산 산줄기가 조망된다.

 

 

 

송곳봉/숫누룩덤(1279봉) 직전의 봉우리를 우회하는데,

서쪽 거망산 방향 조망이 멋진 전망데크가 나온다.

 

전망데크에 올라서면 가야할 진양기맥 능선의 '숫누룩덤'이라고도 불리는 송곳봉(1279봉)과 암루룩덤이라고도 불리는 누룩덤(책바위) 그리고 그 뒤편으로 기백산도 살짝 가늠된다.

 

용추계곡과 거망산 방향.

 

지나온 금원산 방향.

 

기백산을 배경으로,

 

금원산을 배경으로.

 

 

전망데크에서 창병씨가 또 꺼내 주는 군고구마를 먹으며 멋진 산그림을 즐긴다.

 

살짝 당겨본 거망산 방향.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둥그런 바위들이 나뒹구는 암릉을 오르면,

 

지나온 진양기맥 능선이 가늠되며,

 

비단 이불을 덮고 있는 산줄기가 장관이고,

 

붉은 단풍 기운이 푸른 용추계곡으로 스며드는 모습에 넋을 놓는다.

 

 

북동쪽 현성산 방향.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암릉에서 다시 한번 금원산 방향을 카메라에 담고는,

 

 

데크목 계단길을 올라서면,

 

 

또다시 지나온 금원산 방향의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황석산과 거망산 방향.

 

남덕유산 방향.

 

덕유산 방향.

 

현성상 방향.

 

 

숫누룩덤/송곳봉(1,279m) 앞에서 직진의 암봉으로 오르는 길을 두고 우측 우회길로 들어서니,

 

 

이내 송곳봉(숫누룩덤)을 올랐던 창병씨를 다시 만나고,

 

 

잠시 능선길을 따르면,

 

 

누룩덤 직전 전망바위에 오르게 되고 다시 한번 주변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살짝 당겨본 숫누룩덤/송곳봉(1,279m) 모습.

 

 

서쪽 거망산 방향.

 

서북쪽 월봉산 방향.

 

북쪽 덕유산 방향.

 

북동쪽 위천면 방향.

 

동쪽 오두봉 방향.

 

남쪽 방향으로 가야할 누룩덤이 살짝 보인다.

 

 

살짝 당겨본 덕유산 능선이 멋진 하늘금을 긋고 있고,

 

북동쪽 현성산 너머로 백두대간의 삼봉산과 대덕산도 희미하게 가늠되며,

 

위천면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해있다.

 

당겨본 오두산 너머로는 우두봉과 비계산도 희미하다.

 

 

멋진 금침을 두른 산줄기 조망을 즐기며 기백산 직전의 누룩덤(책바위) 앞에 선다.

 

<누룩덤(책바위)>
기백산 가기 직전에 멋진 바위가 포개져 있는 곳을 이름하여 누룩덤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책은 쌓아놓은 듯이 보여 책바위라고도 불렀다 한다. ‘덤’은 ‘둠, 돔’과 같이 ‘둥근, 둘러싸인’의 뜻도 있지만, ‘덩이(體), 뭉침(團)’의 뜻도 있으므로, 여기서의 ‘덤’은 ‘바위더미’의 뜻이다. 즉, 이 봉우리의 바위들은 술을 빚는 누룩더미 같이 생긴 바위들이 여러 층 탑을 쌓듯 쌓여진 봉우리여서 누룩덤이라고 부른다. 잠시 전에 지나온 송곳봉(1,279m)을 숫누룩덤, 기백산 가까이에 있는 이 누룩덤(책바위)을 암누룩덤이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누룩덤 앞에서 우회로를 따를까 망설이는데,

앞서가던 창병씨가 어렵지 않다며 누룩덤으로 오라고 외치기에,

 

 

누룩덤 우측 사면의 안전한 우회 등로를 두고,

암릉의 누룩덤 정상으로 길을 잡는데,

 

단풍 불길이 휘몰아치며 누룩덤을 삼킬 듯이 붉게 타오르고 있고,

 

지나온 숫누룩덤/송곳봉 부근의 능선은 화염에 휩싸인 듯 보인다.

 

 

창병씨의 손짓에 이끌려 누룩덤 바위 위로 오르면,

 

어렵잖게 바위 암릉을 진행할 수 있다.

 

지나온 암릉이 마치 불럭을 쌓아놓은 듯이 보이고,

 

주변의 단풍 불길은 더욱 짙어 보인다.

 

 

누룩덤이라기보다는 책을 쌓아놓은 듯이 보이는 바위 옆에 선 창병씨.

 

 

누룩덤/책바위에서.

 

 

 

책바위에서 본 동북쪽 가야산 방향.

 

서쪽 거망산 방향.

 

 

누룩덤 위에서의 멋진 조망과 스릴을 뒤로하고 바위 암릉을 지나면,

 

가야할 기백산이 지척으로 다가서고,

 

돌아본 숫누룩덤이 책바위라고도 불린다는데,

마치 많은 책을 쌓아놓은 고서점에 온 느낌이다.

 

용추계곡에서 누룩덤을 향해 붉은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누가 쌓았을까!

 

 

 

 

 

누룩덤 우회 등산로와 합쳐지는 능선에 내려서서 잠시 진행하면,

 

금원산에서 이어온 진양기맥이 한눈에 돌아보이고,

 

 

2011년 '기금거황' 종주길의 첫번째 봉우리였던 기백산 정상에 도착하여,

마침 도착한 산객에게 인증을 부탁한다.

 

<기백산(箕白山, 1,331m)>
기백산(箕白山: 1,330.8m)은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와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북서쪽의 남덕유산, 금원산에서 산줄기가 이어지며 거창군과 함양군의 경계를 따라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북쪽에서 산상천이 발원한다. 「세종실록지리지」(안음)에 "지우산(知雨山)은 현 북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보유)」(안의)에 "지우산(智雨山)은 월봉에서 남쪽으로 달려나와 이 산을 이룬다. 관아의 서북쪽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등 조선시대 지리지에는 지우산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21층 11면)에 금원산 남쪽에 기박산(旗泊山)이 묘사된 것을 비롯해 「조선지도」(안의) 의 고지도에 안의현 혹은 안음현에 속한 산으로 기박산이 기재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지우산과 기박산으로 혼용하였으나, 「조선지지자료」(안의)에 기백령(箕伯嶺), 「조선지형도」(거창)에 기백산(箕白山)으로 기록되어 있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기백산으로 지명이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백산 지명은 28수 별자리의 하나이며, 청룡이 다스리는 동쪽의 일곱 번째 별자리인 기(箕)와 관련이 있다. 음양 가운데 양(陽)인 남성적인 산으로 보아 흰 것을 의미하는 '백(白)' 자를 써서 기백이라고 한다. 또한 산의 옛 지명인 지우산은 거창, 함양 지역에서는 이 산의 날씨 변화에 따라 비가 오는지를 미리 알 수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며, 봉우리의 여러 층의 탑처럼 쌓인 바위들이 마치 술을 빚는 누룩더미처럼 생겼다고 하여 '누룩덤'이라고도 한다.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산의 서쪽 장수사의 부속 암자인 용추사에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보물 제530호)이 있다.

 

『음양 가운데 양(陽)인 남성적인 산으로 보아 흰 것을 상징한 학(鶴)을 불러 산 아래 마을 이름을 고학리(皐鶴里)로 짓고 산은 백(白)자를 써 기백(箕白)이라 하였다. 반면에 같은 줄기 위에 솟은 금원산(金猿山)은 음(陰)인 여성적인 산으로 보아「검다」는 것을 비유한 동물 「원숭이」를 산 이름으로 써 금원(金猿)이다. 따라서 옛 안의 삼동 중의 하나인 원학동(猿鶴洞)은 금원산의 원(猿)자와 기백산의 백(白)자를 상징한 학(鶴)자를 써서 이름한 마을명이다.』

 

거창군 등산안내도.

 

금원산, 기백산은 동서남북으로 고봉준령이 에워싸고 있는 거창의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북쪽으로는 남덕유산, 무룡산, 덕유산, 삼봉산 등이 지붕을 이루고, 남으로는 감악산, 월여산, 숙성산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동으로는 수도지맥을 따라 대덕산,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두리봉, 우두산 등이 동쪽 성곽을 이루며, 서로는 진양기맥을 따라 월봉산, 금원산, 기백산 등의 산군이 서쪽 성벽을 이루고 있다. 이 금원산은 단독으로 한 곳만 오르기보다는 금원산과 기백산을 묶어서 산행하거나, 아니면 현성산과 금원산, 기백산까지 종주하는 산꾼들도 많으며, 그 외 '기금거황'이라 하여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 황석산을 한번에 종주하는 산행도 유행하고 있다.

 

 

좌측 뾰족한 봉우리가 황석산이고 그 뒤로 대봉산과 백운산 줄기가 희미한데,

맑은 날이면 황석산 뒤쪽으로 지리 주능선이 물결치는 모습도 선명히 보인다는데...ㅉ

 

 

도대체 얼마나 많이 가져왔기에 잠시 주변을 살피는 동안에 또 군고구마를 먹어야 했다.

 

남쪽 안의 방향 조망.

 

 

군고구마를 먹어주느라 내 배낭의 무개는 조금도 줄이지 못한 채,

기백산을 뒤로하고 매바위마을 방향으로 들어서서 바래기재로의 하산길에 오른다.

 

 

오래된 참호의 흔적이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서면,

 

 

좌측으로 금원산자연휴양림 갈림길이 있는 옛 헬기장 쯤을 지나게 되고,

 

금원산자연휴양림 갈림길 이정표.

 

돌아본 기백산 방향.

 

 

금원산자연휴양림 갈림길에서 잠시 올라서면 1320봉 이정표가 나오며,

기맥길은 좌측 정상으로 올라야 하는데 무심코 진행하다가 보면 직진의 용추폭포 방향 하산길로 이어가기가 쉽겠다.

 

진양기맥은 고학마을 방향이다.

 

 

1320봉 정상에서 바래기재 방향 진양기맥은 좌측 잡목 숲길로 진행해야 한다.

 

돌아본 기백산 방향.

 

당겨본 누룩덤이 레고 불럭처럼 보인다.

 

서쪽 거망산 방향.

 

 

동쪽 오두산 방향.

 

 

1320봉을 뒤로하면 가야할 진양기맥 능선이 가늠되고,

 

북동쪽 가야산 방향.

 

살짝 당겨본 위천면 상천리 벌판이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다.

 

 

기백산에서 바래기재로 내려서는 등로가 험하다고 했는데,

우려와 달리 등로가 뚜렷하고 그리 험하지도 않은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단풍 불길에 휩싸인 멋진 선바위가 나오면 좌측으로 돌아서 내려서고,

 

 

짙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잎은 능선길을 여유롭게 내려선다.

 

 

옛길의 흔적이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가끔씩 진양기맥을 먼저 걸은 선배 산꾼의 표지기가 걸려있는데,

 

 

 

지난해부터 기맥 길에서 자주 보이는 표지기가 반갑다.

 

 

앞쪽으로 좌측 오두봉 방향 능선이 분기되는 안봉이 뾰족한 모습을 드러내더니,

 

 

좌측으로 위천면 남산리의 금곡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금곡 방향은 안봉을 좌회하여 마당재를 지나 오두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이고,

진양기맥은 직진의 등로를 따라 안봉을 우회하여 우측 능선을 따라 바래기재로 이어진다.

 

오도산 방향 갈림길 이정표.

 

 

능선 갈림봉인 안봉 우회길을 지나는데,

 

등로 주변의 단풍이 무척이나 곱다.

 

 

 

안봉을 우회하여 다시 기맥 능선에 접속하자, 수레길 수준의 능선 등로가 잠시 이어지더니,

 

 

좌측으로 마리면 고학리 상촌마을 방향 갈림길을 지나고,

 

 

암릉 우회길을 두고 직진의 암릉길로 들어서면,

 

 

조망이 트이는 암릉이 나타나며,

 

우측으로 어디서 보아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황석산이 가늠되고,

 

 

제법 널찍한 1023 암봉에 올라서게 된다.

 

1023 암봉에서 본 황석산과 거망산 방향.

 

지나온 진양기맥과 기백산 방향.

 

안봉에서 오두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조망.

 

동쪽 마리면 고학리 상촌마을 방향.

 

살짝 당겨본 거창군 방향.

 

기백산을 한번 더 담고는 1023봉을 내려선다.

 

 

빼곡한 소나무숲 능선을 지나면,

 

 

바래기재가 5.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헬기장을 지난다.

 

싸리나무와 억새가 자라난 헬기장 모습.

 

 

늘 산행의 방해꾼으로만 여겨지던 싸리나무도 노랗게 물들어 어여쁘고,

 

 

 

예쁘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잠시 초코랫을 나누며 여유를 부린다.

 

 

멧돼지의 놀이터로 용도가 변경된 듯 보이는 헬기장을 지나고,

 

 

빼곡한 소나무숲 능선을 잠시 내려서면,

 

 

억새가 무성한 헬기장에 상촌마을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상촌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 위에 그려진 듯 보이는 여치 모습.

 

 

상촌 갈림길 헬기장을 지나며 거칠어진 등로를 따라 잠시 오르면,

 

 

819봉 삼각점이 수풀에 가려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점점 거칠어지는 완만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어린 소나무가 빼곡한 헬기장을 지나게 되는데,

이 능선에는 유난히 헬기장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와 잡목이 뒤섞인 능선길이 점점 더 거칠어지며,

 

모처럼 만나는 구절초가 어여쁘고,

 

 

우측으로 벌목된 지역으로 들어서니,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그림이 소싯적에 그리던 그림이다.

 

 

벌목지대로 들어서자 지금까지의 등로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등로가 거칠어 진행이 어렵고,

 

 

바위와 잡목과 벌채된 나무가 뒤섞인 능선을 헤치며 진행하는데,

 

뒤쪽에서 황석산이 '고생하네~'라며 위로를 건넨다.

 

 

거친 등로를 겨우 빠져나와 조망이 트인 바위에서,

창병씨의 마지막 남은 군고구마 봉지를 드디어 비우고야 만다.

 

돌아본 황석산 방향.

 

동쪽 고학리 방향.

 

 

 

군고구마를 해치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직우틀하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파묘된 듯 보이는 묵묘를 지나게 되고,

 

 

잡목과 암릉이 뒤섞여 등로의 분간이 어려운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커다란 바위들이 나뒹구는 가파른 능선을 내려서고,

 

 

마침내 진양기맥 능선에 완만하고 선명한 등로가 이어진다.

 

남쪽 안의 방향 산그림.

 

 

커다란 외톨이 바위에 올라서자,

 

좌측 고학리 방향 조망이 트인다.

 

당겨본 고학리의 가을빛이 깃든 다락논 모습.

 

 

우측으로 알 수 없는 나무가 식재된 능선을 지나면,

 

 

임도인 듯, 농로인 듯 관리된 수레길이 이어지다가,

 

 

등로는 완연한 임도 수준으로 바뀌며 커다란 입석바위를 지나,

 

 

널찍한 수레길을 잠시 따르다가 산길로 접어들어 내려서면,

 

 

좌측 거창군 마리면 고학리 고신마을과 우측 함양군 안의면 하원리 상비마을을 잇는 상비재에 도착한다.

 

상비재 이정표.

 

 

기백산에서 상비재까지는 무려 6.3km를 별다른 오름길 없이 줄곳 내림길이었는데,

마침내 데크목 계단이 나타나며 580봉 오름길이 나타나고,

 

 

 

제법 가파른 데크목 계단길을 올라서면,

 

 

이내 또 데크목 계단길을 올라가게 되고,

 

 

상비재에서 10여분의 오름길을 올라 580봉 삼각점을 지난다.

 

 

소나무가 빼곡한 완만한 능선을 잠시 따르면,

 

 

임도 수준의 수레길을 가로질러 지나게 되고,

 

 

잠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바래기재가 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능선 마루에 올라 직우틀하여 진행한다.

 

 

쌍둥이 고래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를 지나고,

 

 

가드목이 설치된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면,

 

 

코끼리의 엉덩이를 닮은 바위도 지나고,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서 직진 방향이 기맥 능선처럼 보이지만,

이정표 지시대로 좌측으로 내려선다.

 

 

 

희미한 등로를 더듬으며 잠시 내려서면,

 

 

커다란 바위를 우회하여 지나고,

 

 

등로 우측으로 방주석이 세워져 있는 묘지 앞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면,

 

 

앞쪽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바라기재 날머리에 도착한다.

 

바래기재 날머리 옆에는 빛바랜 '기백산.망실봉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바래기재 날머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바래기암소한마리 식당 앞마당을 지나,

거창군 마리면과 함양군 안의면을 가르는 바래기재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진양기맥 금원산 구간 산행을 마감한다.

 

<바래기재>
거창군 마리면과 함양군 안의면을 가르는 고개로, 진주와 김천을 잇는 3번 국도 옛길과 4차선의 새로 난 도로가 나란히 나 있다. 바래기재의 유래는 ‘옛날 한양에서 온 고위 관료들이 진주 관아를 왔다가 갈 때에, 진주목사(晋州牧使)가 이곳까지 바래다주었다고 하여 ‘바래기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수망령에 두고 온 차랑 회수를 위해 안의면 택시(요금 23,000원)를 부르니,

체 10분이 되지 않아서 택시가 도착한다.

 

 

안의 택시를 타고 단풍이 처연한 용추계곡을 거슬러 수망령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애마를 회수하여 과천 김치찌개 식당에 도착하니,

관악산 산행을 마친 교화형 내외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홀로하는 산행도 나쁘지는 않지만,

옆에 말벗이 함께하여 서로 의지가 되는 산행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