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소 :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및 보령시 원산도 트레킹.
기 간 : 2020. 11. 14.(토) ~ 15.(일) (1박 2일)
숙 소 : 루나솔펜션.
충남 태안군 남면 곰섬로 471-14
행사참가 : 23백두.
< 1일차(14일(토)) 일정 >
- 07:00 영등포 출발 (아침 출발로 변경)
- 07:30 서초구민회관 출발.
- 08:10 안산 상록수역 경유.
- 11:30 안면도 드르니항 도착.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 트레킹(12km)
- 16:00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하여 트레킹 종료.
버스로 숙소 이동.
- 16:20 숙소 루나솔펜션 도착.
16주년 만찬.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 코스>
드르니항~대하랑꽃개랑다리~백사장항 + 백사장항 노을길 들머리 ~ 백사장해변 ~ 삼봉 ~ 삼봉해변 ~ 기지포해변 ~ 창정교 ~ 안면해수욕장 ~ 두여해변 ~ 두여전망대 ~ 밧개해변 ~ 두에기해변 ~ 방포해변 ~ 방포전망대 ~ 방포항 ~ 꽃지해변 (총 13km, 4시간 소요)
< 트레킹 지도 >
코로나19의 창궐로 정기 산행도 중단하던 차에 금년도 16주년 산행은 아예 가지 못할 것이라며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가, 갑자기 정기산행을 재개하여 매년 11월 둘째주 섬 나드리 여행을 하는 주년 행사를 하기로 했다. 예년 같았으면 연안 여객선을 타고 풍광 좋은 섬 트레킹을 하였겠지만, 올해는 전염병이 번지고 있는 상태라 가급적이면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를 타지 않고 차로 방문할 수 있는 연육교가 있는 안면도와 원산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안면도야 진즉에 섬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정도로 차로 쉬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난해 말에 육지와 연결된 원산도는 회장님께서 '옛 추억이 어린 곳'이라는 귀띔을 했던 섬이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때묻지 않은 청정 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다.
안면(安眠)이란 ‘편히 잔다’는 뜻인데 숲이 무성해 조수(鳥獸)가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는 땅이란 의미도 갖는다. 조수뿐 아니라 사람 또한 안식을 얻은 땅이다. ‘크게 편안한 땅’이란 뜻을 지닌 태안(泰安)과 안면은 상통한다. 수많은 아름다운 백사장과 ‘금강송’처럼 ‘안면송’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적송이 자라는 풍요의 땅이 안면도다.
안면도는 본디 섬이 아닌 태안반도와 이어진 내륙이었는데, 1638년(인조 16)에 충청관찰사 김육(金堉)이 세곡선을 비롯한 조운의 편의를 위해 운하를 파서 섬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섬이 된 안면도가 내륙과 다시 연결된 것은 330년만인 1968년이다. 안면도는 면적 113.46㎢, 해안선 길이 120㎞나 되는, 한국에서 6번째로 큰 섬이다.
옛날 안면도는 3무(三無)의 섬으로 유명했다. 기와집이 없고 도둑과 거지가 없었다. 여느 섬처럼 안면도 사람들의 인심 또한 순후해 도둑과 거지가 없었다 한다. 안면도의 인심이 넉넉하고 후한 것은 도끼 한 자루만 있으면 살 수 있을 만큼 울창한 산림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숲이 에너지의 보고였으니 가능한 이야기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면서 인심도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안면도에 기와집이 없는 것은 부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금기 때문이었다. 안면도는 섬의 모양이 지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안면도 남쪽의 원산도는 닭 모양이다. 두 섬은 오래전부터 경쟁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섬에 대한 자긍이기도 할 터이다. 지네와 닭은 상극이다. 실상 지네는 닭에게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지만 닭이 바닥에서 자면 지내가 닭의 항문으로 들어가 내장을 다 파먹어버린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아무튼 안면도를 지네의 섬으로 생각한 안면도 사람들은 지붕에 기와를 올리면 지네가 모두 깔려 죽고 만다고 생각해, 지네가 살기 좋은 초가로만 지붕을 올렸다고 한다. 지네가 모두 죽으면 원산도에 지고 만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무리 속설이라도 독충인 지네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뱀처럼 지네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거기서 유래된 전설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번에 우리는 안면도와 원산도를 함께 맛보려 한다. 즉 '지네를 넣은 닭백숙'을 먹어 보겠다는 예기다.
영등포에서 3명, 영재에서 7명을 태워 10명을 태운 버스는 서울을 출발하여 중간 경유지 상록수역 앞에서 푸짐하게 준비한 잔치음식과 무려 11명을 더 태운 후에 안면도를 향해 출발하는데, 창궐하는 코로나19로 나들이객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서해안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주변의 국도까지 차량 정체가 극심하다. 나라에서 숙박비까지 보조해 주며 여행을 가라고 장려를 하고 있고, 해외여행이 않되니 국내 여행이라도 가자는 심산들인가 보다.
수도권을 빠져나오는데 심한 정체를 격었음에도, 평택부터는 막힘없이 달려 안면도와 면해 있는 태안의 끝자락 드르니항에 늦지않게 도착하여, 태안해변길 트레킹에 나선다.
배가 하도 많이 들러 드르니항이 됐다는데 왕년의 영화일 따름인지,
항구에는 몇척의 주꾸미 배가 보일 뿐이고,
그 너머로 보이는 다리가 바다 건너 안면도 백사장항을 잇는 '대하랑 꽃게랑' 다리다.
<안면도(安眠島)>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運河)로 섬이 된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안면도의 크기는 면적 113.46km², 해안선 길이 120km이며 최고봉은 북쪽의 국사봉(國師峰, 107m)으로 남북 24km, 동서 5km이다.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이다. 안면읍에는 안면도 외에 59개의 섬이 있으며, 53개는 무인도이고 6개가 유인도이다.
안면도는 리아스식 해안으로 승언리와 창기리 마을 해안에는 해안사구와 해안사빈이 잘 발달해 있다. 해안사빈은 모두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고, 해안사구는 규사의 채취원이 되었다. 1968년 안면교가 생기기 전에는 고립된 섬으로 북쪽은 생활권이 태안읍에 속하고, 남쪽은 홍성군 광천읍에 속했다. 그러나 이 다리가 건설된 뒤로는 태안읍과 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유적은 신야리에 조개무지, 승언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이 있다.
안면(安眠)의 유래를 보면 글자 그대로 「편하게 잘 잔다」는 뜻이다. 숲으로 우거져 있는 자연환경을 나타낸 지명으로 여겨진다. 태안군은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로, 국내 유일한 '해안국립공원'으로 해안선의 곳곳마다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태안군은 이 해변길을 테마로 하여 '태안해변길'이라는 이름의 트레킹 코스를 만들었다.
<태안 해변길>
굽이굽이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경관과 독특한 해안생태계를 자랑하는 태안해안국립공원은 여름철 물놀이 중심 단순한 탐방 페턴으로 공원 내 중요 자원인 갯벌과 해안사구가 무분별하게 이용되어 자연자원 훼손에 대한 방지대택 마련이 시급하여, 2011년부터 단계별로 조성한 걷기 길이 태안해안국립공원의 태안해변길 7개 구간 97㎞다.
@ 제1코스 바리길 : 학암포~신두리 12km
@ 제2코스 소원길 : 신두리~만리포 22km
@ 제3코스 파도길 : 만리포~파리도 9km
@ 제4코스 솔모래길 : 몽산포~드르니 항 13km
@ 제5코스 노을길 : 백사장항~꽃지 12km
@ 제6코스 샛별길 : 꽃지~황포항 13km
@ 제7코스 바람길 : 황포항~영목항 16km
마침 보성씨가 듬직한 장남을 대동하고 자가용으로 도착하여 함께 인증을 남기고는,
'대하랑꽃게랑다리' 입구로 들어서며 트레킹을 시작한다.
<대하랑꽃게랑다리(길이 250m)>
2013년 11월 안면읍 백사장항과 남면 드르니항을 잇는 길이 250m의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다리'(길이 250m)가 완성되었다. 이 다리는 태안군이 해양관광의 랜드마크로 거듭나기 위해 개통한 백사장항 해상인도교다. 안면도의 백사장항과 남면의 드르니항을 연결하는 해상인도교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두 지역을 하나로 만들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이는 주위의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바다 위를 걷는 신비함이 더해져 개통하자마자 낙조 등 자연과 어우러져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대하랑꽃게랑 다리로 오르는 백두들.
다리에 오르며 돌아본 서북쪽 곰섬 방향으로 작은 바위섬도 보이고,
좌측 멀리 곰섬 서쪽 끝자락에 오늘 묵을 숙소인 루나솔펜션이 있는지도 가늠해 본다.
드르니항 전경.
<드르니항>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신온리에 있는 작은 어항으로, 태안에서 안면도 연육교를 건너가기 전 오른쪽으로 차를 타고 2~3분 가면 있다. 독특한 항구 이름은 '들르다'라는 우리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온항'으로 바뀌었다가 2003년에야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규모가 작고 한적한 항구지만 운치 있는 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부근에 새우 양식장이 많아 새우가 주산물이며 조개, 게 등 신선한 해산물과 호박고구마가 많이 난다. 바로 앞 건너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함께 백사장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2013년 11월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잇는 250m 길이의 해상인도교가 건설되었다. 다리의 이름은 게와 새우가 많이 잡힌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하랑꽃게랑'으로 정하였다. 왜 '꽃개랑대하랑'이라 하지 않았을까?
'대하랑꽃게랑' 다리를 건너 안면도로 향한다.
안면도를 섬으로 만들어 버린 안면곶 방향 운하 모습.
<안면도 운하>
고려시대 지방에서 모아진 조세를 풍선을 이용해 운송하면서부터 안면도가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안면도 앞바다인 안홍량은 암초가 많고 잦은 안개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유속이 빠르기로 이름이 났다. 해마다 삼남지역의 조곡을 운반하던 세곡선들이 서해의 풍랑에 난파되어 인명 손실과 곡물 등이 많이 유실되었는데, 안면도 일대를 옛사람들은 '쌀 썩은 여'라고 불렀다. 난파한 세곡선에서 쏟아져 나온 쌀이 썩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수많은 세곡선이 난파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태안반도의 안면곶을 굴착해서 섬으로 만들었다.
옛날 나라의 재정은 세곡(稅穀)이 대부분이었다. 백성 대다수가 농사를 지어 나라에 곡물로 세금을 납부했다. 고려시대에는 한해에 대략 40만 석의 세곡미가 모아져 수도인 개경으로 풍선을 통해 보내졌는데, 30만 석은 충청·전라·경상도 등 삼남에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곡미를 실은 풍선이 서해를 따라 올라올 때마다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목 바다가 험하기에 해마다 암초에 부딪혀 난파를 당한 것이다. 안흥 앞바다 관장목은 황해도의 장산곶과 함께 서해에서 가장 험한 뱃길로 노련한 뱃사공도 두려워하는 뱃길 중 하나였다.
이 길을 피하여 우회하는 뱃길을 찾아 충남 태안과 서산 남쪽에 위치한 천수만과 서산 북쪽에 위치한 가로림만 사이를 가로막은 땅을 파서 운하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관련 자료를 보면 이곳이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에 있는 굴포 운하인데 고려 인종 때 시작하여 조선 현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500년 정도 11차례나 시도된 국가적 대공사였다. 이 굴포 운하는 결국 포기하고 그 대신 차선책으로 안면도에도 운하를 건설하게 되었다.
조선 인조 16년(1638)에 안면도 북쪽인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의 운하 건설사업이 완료되면서 안면곶의 운명이 바뀌게 돼 이때부터 안면도는 섬이 되었다. 오늘의 안면도가 된 것이다. 안면도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과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17세기부터 20세기의 1968년까지 무려 330여 년 동안 육지와는 떨어진 섬으로 살면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쌓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가 1968년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잇는 연륙교가 건설된 것이다.
17세기에 이곳의 원래 이름은 안면곶이었으나 숙종 3년에 안면도로 표기한다. 곶이 섬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운하 공사가 가능했던 것은 암반이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깨기가 쉬운 편마암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운하 위에 안면대교가 이어져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운하 건너편으로 건너다 보이는 백사장항이 있는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백사장포구>
'백사장포구'는 대하잡이배의 집어항으로, 초고추장에 날로 먹는 자연산 대하를 맛볼 수 있는 포구다. 포구에는 횟집들이 바다를 에워싸듯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앞으로 소규모의 어선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특히 봄부터 여름까지는 꽃게잡이, 가을부터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대하잡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10월부터 11월 초에 대하축제가 열린다. 포구에 횟집과 수산물을 파는 상점들이 많아 먹거리가 풍부하고 수산시장에서 경매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백사장항 수산시장 전경.
남서쪽 백사장 해변 방향.
서북쪽 곰섬 방향.
돌아본 드르니항 방향.
돌아본 대하항꽃개랑다리 모습.
태안해변길 6코스 노을길 들머리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태안해변길 제5코스 노을길 : 백사장항~꽃지 12km>
아름다운 석양을 자랑하는 노을길은 각종 수산물 판매장과 어촌문화가 살아 숨 쉬는 백사장항에서 시작된다. 백사장항을 지나 세개의 봉우리가 인상적인 삼봉해변에 닿으면 웅장하면서 호젓한 자태의 해송이 빽빽하게 들어찬 곰솔림을 만나게 되는데, 이 구간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닷소리가 지척으로 들려 넓고 완만한 길을 따라 산책을 즐기기에 적합한 구간이다. 이후 아름답게 복원되어 해안 동식물의 보고가 된 기지포 해안사구에서부터 천연기념물 138호인 방포 모감주나무 군락지, 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슬픈 전설이 살아 숨쉬는 꽃지 할미할아비바위까지 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는 명소들을 지척으로 만나보게 되는 구간이다. 서해의 3대 낙조 장소로 꼽히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을길 구간 안내>
1. 백사장항에서 출발하여 백사장전망대까지 숲, 흙길과 해변, 해안사구길로 1.9km, 약 30분 걸린다. 백사장항에는 화장실과 주차장이 있으며, 백사장전망대가 있다.
2. 백사장전망대에서 기지포(해변길홍보관)까지는 곰솔림길과 해변, 해안사구길로 1.2km, 약 20분 걷는다. 중간정도에 화장실과 주차장이 있으며, 기지포에는 국립공원사무소, 탐방지원센터, 화장실, 주차장, 자연관찰로 시설이 있다.
3. 기지포에서 창정교까지 해변, 해안사구길과 곰솔림길로 1.4km, 약 20분정도 걸으며 출발지 근처에는 화장실, 야영장, 장애인탐방구간이 있고, 중간쯤에는 화장실, 장애인탐방구간, 도착지인 창정교 근처에는 자연관찰로와 전망대가 있다.
4. 창정교에서 두여전망대 가는 길은 도로, 포장길과 해변, 해안사구길, 숲, 흙길이며 2.3km, 약40분 걷는다. 두여전망대 도착 전에 화장실이 있으며 두여전망대에시 멋진 바다 조망을 즐길 수 있다.
5. 두여전망대에서 숲, 흙길로 1.40km, 약 20분 걸으면 밧개(문주)에 도착한다. 중간지점에 화장실이 있다.
6. 밧개에서 방포해변까지 숲, 흙길과 도로, 포장길을 1.7km 약 30분정도 걸리며, 방포해변에는 화장실이 있다.
7. 방포해변에서 숲, 흙길로 방포전망대까지 600m를 약 10분정도면 도착한다. 방포전망대에는 전망대시설이 있다.
8. 방포전망대에서 숲, 흙길로 200m 거리를 약 5분 정도 걸으면 방포항(문주)에 도착한다. 방포항에는 화장실이 있다.
9. 방포항에서 노을길의 최종 도착지인 꽃지까지 800m를 도로, 포장길로 약 15분 걸으면 도착한다. 꽃지에는 화장실과 주차장시설이 있다.
슬리퍼를 끌어도 될 듯 보이는 곰솔 숲길로 들어서며 모래의 유입을 막으려 신발끈을 고쳐맨다.
이곳의 어린 소나무들은 안면도의 명품 소나무인 '안면송'이 아니라 곰솔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솔향은 청량하기 그지없고 그 자태 또한 예쁘기 그지없다.
‘곰솔’은 잎이 곰털처럼 거칠다 해서 곰솔이라 하며,
바닷가에서 잘 자라 해송이라고도 하고 줄기가 검어서 흑송이라고도 한다.
백사장해변 솔숲 오솔길을 따르는 아가씨는 산우회 초창기 대간 북진길을 함께 걸었던 분으로,
실로 오랜만에 뵙게 되었는데도 옛모습 그대로 이기는 한데,
산을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체형이 금강에서 백두급으로 바뀌어 있다.
솔숲길을 두고 백사장 해변으로 나서니,
모래가 줄어든 백사장 해변에 뻘과 잔돌이 보이고,
돌아본 곰섬에서 좌측으로 떨어져 있는 길마섬은 오늘 저녁노을을 보러 가는 장소다.
백사장 해변이 끝나가는 지점에 다다르니,
노을길은 좌측 솔숲으로 들어 전망대 방향으로 가라는 이정표가 있지만,
아직은 물이 많이 들지 않아서 그냥 해변을 따라도 될 듯 보여 해변길을 따르면,
백사장해변 전망대 아래의 해안으로 지나게 되는데,
앞쪽으로 남근석 쯤으로 보이는 선바위도 있다.
지나서 보니 남근석이라기보다는 길마섬을 바라보는 올빼미바위 쯤으로 보인다.
나란히 앉은 쌍둥이 바위섬 중에서 형 바위섬 꼭대기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신기해 보이고,
이내 삼봉 해변 솔숲으로 들어서서,
‘삼봉’은 하나의 작은 바위산인데 마치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삼봉'이란 이름을 얻었다. 작은 산이지만 삼봉이 있어 창기리 앞바다 삼섬, 뒷섬, 갈마섬, 지도, 거아도, 곰섬 등의 무인도와 함께 절경이 완성된다.
솔숲 사진 한장을 남기고는,
이내 다시 삼봉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나선다.
짙푸른 곰솔 숲 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삼봉해수욕장이 한없이 광활해 보이고,
돌아본 삼봉이 왜 '삼봉'이라 이름하였는지를 알게 한다.
작고 가냘픈 달랑게를 밟을까 조심하여 발을 떼는데,
작은 개들이 먹고 뱉어낸 앙증맞은 모래구슬이 해변에 지천으로 널렸다.
염랑게와 달랑게는 모래를 잔뜩 삼키고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만 빼먹은 뒤 모래를 뱉는데,
모래를 둥글게 말아 놓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달랑게가 꽃게 새끼가 아니냐는 의문에 누가 이렇게 설명을 해 준다.
작은 꽃게는 ‘사시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대체로 표준어라는 것들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는데, 지역에서 쓰는 다양한 언어들을 거세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고기 이름들은 그저 서울말일 뿐이다. 예를 들어 삼치라고 다 삼치가 아니다. 도시 사람들이 삼치라고 알고 먹는 것은 삼치 새끼다. 무게가 3kg쯤은 돼야 삼치라 한다. 바닷가에서는 삼치 새끼는 ‘고시’라 부른다. 도미 새끼는 상사리, 농어 새끼는 껄떡, 민어 새끼는 통치, 어류는 크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표준말이란 언어정책이 살아있는 언어를 죽이는 언어 말살정책으로 되어서는 아니된다. 지역을 다니다 보면 아직도 살아있는 우리말들을 접하게 되는 재미가 솔찬타.
‘솔찬타’는 말의 뜻은 무얼까!
삼봉해수욕장 백사장의 모래가 워낙 고와서 다져진 흙길을 걷는 듯하여,
지난 5월 백령도 사곶해변 백사장을 걸었을 때의 느낌이 난다.
백사장에 물길이 그려놓은 태극문양 물줄기 경계를 넘어 기지포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데,
기지포해수욕장에는 우리처럼 단체로 트레킹에 나선 한무리의 그룹이 앞서가고 있다.
기지포는 어떻게 얻은 이름일까요. 기지포는 마을이 베틀 모양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베틀 기(機), 연못 지(地), 포구 포(浦)'자를 쓴다. 이름의 유래를 떠올리고는 기지포 해변이 베틀모양 같은가 하고 다시 돌아보지만 다른 해변과 모양새가 그리 다르지 않다.
영식형과 웅빈형은 아까부터 뭔 얘기를 하고 있을까!
모래톱 위에 수없이 널려있는 개들의 먹이활동 흔적만큼이나 우리들의 예기도 많을 터!
물결이 그려놓은 그림을 지나,
창정교를 건너기 위해 기지포해수욕장 백사장을 나와 해안사구로 올라 솔숲으로 들어서니,
기지포해안 빼곡한 솔숲으로 노을길이 이어져 온다.
백사장과 솔숲을 이어주는 나들목 옆에 있는 데크목 쉼터에서 따스한 커피에 정을 담아 나누며,
단란한 한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기도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솔숲으로 이어진 오솔길.
바로 그 솔숲길을 우리가 걷는다.
바람에 의해 조성된 이곳 기지포 해안사구는
희귀 동식물들의 서식공간이자 자연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어느 이방인과 안면도의 멋진 오솔길 예기로 꽃을 피웠을 쉼터도 지나고,
고속도로 마냥 이어진 솔숲길이 우리를 더욱 신나게 한다.
지도에 보니 강은 아니고 개울 수준의 소하천 기수지역을 해안이 육지로 밀고 들어온 부분에 교량을 만들어 놓은 창정교가 나오고,
창정교를 건너 안면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창정교>
소하천 기수지역으로 모래갯벌이 분포하여 수많은 갯벌생물들의 서식지이며 또한 야상동물 서식공간인 '비오톱'을 설치하여 야생동물생태 관찰이 가능하다.
지도상 강은 아닌데 커다란 강처럼 보이는 내륙 방향.
창정교에서 본 서해 방향.
창정교 이정목.
태안 해변길 안내도.
안면송림 숲길로 들어서면,
늘 산길만 걸었던 우리에게 이런 해안 솔숲길은 천국처럼 느껴지고,
데크목 쉼터를 마다하고 굳이 솔숲 흙바닥에 점심 식당을 개설한다.
곧은것과 굽은것이 이렇듯 잘 어울리는데,
우리들의 현실에서는 똑같이 굽은것들이 왜 그리도 어울리지 못하는 건지!
오직 우리 백두들만이 굽은것 곧은것 따지지 않고 잘 어울린다.
세상편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걷다가,
안면해변으로 들어가서,
안면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천연 대나무 받침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백두 16주년 트레킹에 참여한 23명 전원이 기념촬영을 한다.
안면해수욕장의 해변이 깨끗하고 정겨웁기 그지없다.
늘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인 산길만 걷다가,
바닷가 솔숲길과 너른 백사장을 걷는 백두들은 참으로 세상편한 모습이다.
물론 덩그러니 혼자여도 마냥 편할 수 있다.
당겨본 두여해변 앞바다의 바위섬(두여)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두여해변 끝자락에 멋진 소나무와 두 개의 의자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빈 의자, 혼자 앉아도 좋겠고, 함께하는 정인과 어쩌다 나란히 앉아도 좋을 듯하다.
생판 낯선 사람과 곁에 엉덩이 맞대고 앉아도 좋아 보이는데,
빈 의자가 쉬었다 가라 속삭이는 듯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어서..ㅉㅉ
두여해변 끝자락에서 백사장을 나와 두여전망대로 향한다.
‘두여 해변’은 여(礖)가 두 개여서 붙은 이름이다.
안면읍 신야리의 지명인 ‘쌀썩은여(礖)’는 이름처럼 내력도 재미있다.
<쌀썩은여>
'쌀썩은여'는 충청남도 태안군의 안면읍 신야리 바닷물 속에 있는 암초를 말한다. '돌 이름 여(礖)'는 썰물 때에는 바닷물 위로 드러나고, 밀물 때에는 바다에 잠기는 바위를 말한다. '쌀썩은여'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삼남 지방의 세곡을 바닷길로 운송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해 온다.
"조선조에는 삼남의 세곡을 서울로 운송할 때 태안지방의 바닷길을 이용하였다. 조선조 말엽까지도 조선술과 항해술이 미흡하였기 때문에 경상도와 전라도 연안에서 서울까지는 많은 날이 걸렸으며, 또한, 많은 포구를 경유하면서 정박을 해야만 하였다. 세곡선 감독관은 배가 포구를 경유할 때 의식적으로 수송 날짜를 늦추고 쌀을 빼내어 부당하게 사복을 채웠다. 이리하여 세곡선이 안면도에 이르렀을 때에는 세곡이 몇 섬 남지 않았다. 이렇게 안면도에 도착한 세곡선은 지금의 '쌀썩은여'라고 불리는 암초에 고의적으로 부딪혀 파선시켜 놓고 정부에 사람을 파견하여 사고라고 허위로 보고하였다. 다량의 세곡을 부정으로 착복하고 그대로 수송하였을 때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고의적 사고를 저질렀다. 사고의 보고를 접수한 조정에서는 관계자를 현지에 파견하여 실태조사를 하고 인명피해가 없음이 다행이라 하여 사고에 대한 문책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이곳 주민들이 그 암초를 '쌀썩은여'라고 불렀다고 하며, 뒤에 마을 이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또 세곡선이 암초에 부딪혀 파선되자 싣고 있던 쌀이 물속에 유출되고 쌓여 썩게 되었기 때문에 '쌀썩은여'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도 전한다. 세곡선에 위험을 초래하는 암초에서 유래하였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두여전망대를 향해 나무계단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두여해변을 뒤로하고 전망대로 향하는 백두들.
해변 백사장과 솔숲길로만 걷다가 모처럼 산길로 접어드니 고향을 찾은듯한 느낌으로,
언덕 수준의 오름길을 올라서면,
지도상 포태산이라 표시되어 있는 산 정상에 도착하게 되고,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두여해변과 안면해변, 기지포해변 등이 모두 가늠된다.
포태산 정상에는 여느 높은 봉우리처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높이가 무려 51m로 표시되어 있다.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내려서면,
잠시 후 밧개 해변으로 들어선다는 이정표가 있고,
벤치가 있는 널찍한 공터에서 데크목 계단길로 들어서면,
두여해변에서 밧개해변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있는 두여전망대가 나온다.
썰물 무렵 두여전망대에 서면 너른 해변에 드러나는 물결 모양의 바위 습곡을 볼 수 있다는데, 지금은 밀물 때라 바위습곡은 보이지 않고,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두여'로 짐작되는 두 개의 바위섬만 보일 뿐이다. 이곳 전망대에서 낙조 시간이 되면 붉게 물든 너른 백사장과 습곡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데, 해안 전체를 가득 채운 검은 바위의 습곡은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등지느러미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는 밀물 때에는 바닷물 속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바위를 말한다. ‘두여’는 그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두여전망대에서 물에 잠긴 바위습곡과 바위 암초인 두여를 배경으로.
썰물 때에 보면 이런 모습이라고..
<두여전망대 해안습곡>
두여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두여 해안습곡은 지하 깊은 곳에서 압력으로 변성 및 변형작용을 받아 습곡 및 단층이 이루어진 후, 지각이 풍화 침식되면서 서서히 융기되어 지금과 같은 지형이 형성되었다.
살짝 당겨본 "두여"
두여전망대를 뒤로하면,
앞쪽으로 밧개해변이 펼쳐지고,
이내 백사장에 잔돌들이 섞여있는 밧개해변을 걷게 된다.
밧개해수욕장 전경.
밧개해변 한쪽에는 작은 자갈들이 백사장을 대신하고 있는데,
지난 5월 백령도 콩돌해변의 콩돌보다는 크기가 조금 큰 몽돌들이 해변을 덮고 있다.
밧개해변 이정표.
'밧개'라는 이름은 소금인 자염을 굽던 터가 있어서 그리 불리어졌다고도 하고,
바깥의 밖과 바다를 뜻하는 개가 합쳐져 '밖에 있는 바다'란 의미의 밧개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곳은 가도 가도 솔밭길, 가도 가도 모래사막의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이 우리를 행복하고 평화롭게 해 준다.
밧개해변 솔숲길이 끝나갈 즈음에 밧개 독살을 설명하는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밧개해변의 보물은 독살이다. 돌살, 돌발, 석방렴, 원담 등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독살은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함정어법으로 돌그물인 셈이다. 해안이나 섬들에는 예전부터 많은 독살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아 원형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이 밧개해변의 독살은 현재까지도 사용하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
돌아본 밧개해변 전경.
밧개해변을 뒤로하고 숲길로 접어드는데,
이곳이 '5코스 노을길'임을 알리는 출입구가 난데없이 세워져 있고,
완만한 숲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두에기해변을 알리는 이정목을 지나게 되고,
이내 앞쪽으로 자그마한 두에기 해변이 나타난다.
안면도에서 이름이 붙은 해변 중에서 가장 작은 해변이 두에기 해변인데, '두에기'는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작고 아담하여 정이 가는 해변이다. 하지만 토박이들의 예기에 따르면, 음침한 기운이 돈다 해서 섬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 해변이란다. 이렇게 밝고 산뜻한 해변이 어째서 음침한지 그 이유는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무얼까. 우리네 젊은 선남선녀들이 즐겨 찾는 그런 음침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뿐이다.
음흉하지 않은 사람들이 음침하다는 두에기 해변으로 들어선다.
두에기 해변을 뒤로하고 제법 가파른 숲길을 오르면,
이제 곧 방포해변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이정표가 있는 언덕에서 발길을 멈추고 잠시 한담을 즐긴다.
시멘트 포장도를 따라 방포 해변으로 내려서는데,
주변의 소나무가 안면송(安眠松)인지 해변에서 보던 곰솔과는 겉보기부터 다르다.
물론 우리 여성 회원님들이 안면송보다 어여쁘다.
노을길을 걷다 보면 이런 카페도 만나게 되는데,
지금은 쥔장도 출타 중인지 불이 꺼져있다.
방포해변만 지나면 오늘 걷는 노을길의 종착지인 꽃지해변이라는 이정표를 지난다.
방포해변으로 들어서니,
만조 때인지 서해의 넓은 해안은 자취를 감추고 동해안의 어느 해변을 연상케 하고,
우측 방포 방파제 뒤로 보이는 두 개의 섬은 꽃지 할미할아비바위다.
방포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 앞서가던 분들은 그냥 해안길을 따라가고,
나만 홀로 방포전망대가 있는 숲길로 들어서니 빈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해안을 따라 앞서간 분들이 원인모를 기다림에 노여움이 싹틀까 염려되어 못 본 채 지나치고,
해변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나무도 못 본 척 지나쳐,
오솔길을 홀로 걸어 올라가면,
방포전망대가 지척이라는 이정표가 나오고,
해안절벽 위로 이어진 오솔길을 잠시 따르면,
데크목 전망대가 나오는데,
지나온 방포해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지만 방포전망대는 이곳이 아니다.
잠시 더 진행하면 나오는 이곳이 방포전망대인데,
실제 방포해변은 보이지 않고 꽃지해변이 조망되는 곳으로,
꽃지 할미할아비바위에 전해오는 전설이 적혀있다.
어느 해안이나 섬에도 깃들어 있듯이 저 할미할아비바위 또한 슬픈 전설을 품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150여 년 전, 신라 42대 흥덕왕 4년(838년)에 해상왕 장보고가 지금의 전남 완도인 청해진을 기점으로 하여 북으로는 장산곶, 중앙부로는 견승포(지금의 안면도 방포)를 기지로 삼고 기지사령관으로 승언이라는 사람을 두었는데, 승언에게는 미도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게 지냈다. 어느 해 승언이 해상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니, 그의 아내는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2년을 넘게 기다리다 지쳐 마침내 이 바위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뒤 이 바위는 미도가 남편을 기다리며 멀리 바라보고 서 있던 모습으로 변했다. 수년 후 승언은 구사일생으로 돌아왔으나, 아내 미도가 자신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애통해하다가 그 옆에 죽어 그 또한 바위가 되니, 사람들이 이 바위를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승언리’라는 지명도 승언이의 슬픈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전망대에서 본 꽃지해변과 할미할아비바위.
살짝 당겨본 꽃지해수욕장.
마침 뒤따라온 창병씨에게 부탁하여 할미할아비바위 인증을 남긴다.
방포전망대를 뒤로하고 계단길을 내려서면,
방포항과 건너편의 꽃지해변이 나타나고,
좌중앙으로 천염기념물 138호로 지정된 방포 모감주나무 군락지도 내려다 보인다.
태안해변길 5코스 노을길 날머리인 방포항에 도착하는 창병씨.
썰물때는 할미할아비바위와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은 밀물때라 바다 한가운데로 보인다.
방포항과 꽃지해변을 연결하는 꽃다리가 놓여 있고,
꽃다리를 건너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꽃지해변으로 간다.
내려다본 방포항 전경.
꽃지 할미할아비바위 모습.
꽃다리에서 보는 낙조가 멋지다는데, 기다릴 수도 없고..ㅉㅉ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는 곳'에서 유래되었다는 꽃지해변에서 본 할미할아비바위.
백사장 쪽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바다 가운데에 솟아있는 할미할아비바위는 천년이 넘도록 그대로였을 듯!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하여 트레킹을 마감한다.
오늘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이 대자연의 길을 걸으며 나는 마냥 행복했다.
그저 두 발로 솔숲과 해변을 걸었을 뿐인데 어떤 물질로도 채울 수 없는 기쁨이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에 따른 삶 자체다.
나의 걷기는 모르는 길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바 크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 한자 ‘길道(도)’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다.
그래서 어느 선생님이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다. 나의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길을 걷는 게 최고다. 물론 함께 걷는다면 옆지기의 도움은 더욱더 빛을 발할 것이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태안 쪽 곰섬에 위치한 숙소로 향한다.
숙소인 루나솔펜션에 도착하니,
손점장이 후원한 동동주가 엉뚱한 곳으로 배달되었다며 사장이 직접 들고 오셨다.
골프를 치고 있을 손점장도 고맙고, 이리 애써주신 도가 사장님도 고마운 일이다.
모두가 한마음 되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펜션 아래 해변에서는 썰물 때라 길마섬까지 바닷길이 열려있다.
저녁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분들께 해넘이 보러 가자고 채근하여,
갈마섬으로 해넘이를 보러 간다.
연무와 미세먼지로 해넘이 장관은 없다.
숙소로 돌아와,
백두산우회 16주년 자축연을 시작한다.
전소장표 쭈꾸미와 삼겹살.
이시각 이후 사진은 공개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모처럼 바위와 오르내림이 있는 산길이 아닌
마냥 편안하고 부담이 없는 솔숲길와 해변을 거닐었고,
많은 회원들이 준비한 잔치상을 앞에 두고
많이 웃었던 하루였다.
내일 이른 썰물때에 맞추어 원산도 트레킹을 해야 하니,
조금은 이름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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