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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팔공기맥 2차(꼭두방재~노귀재) : 산넘고 재넘어 또 산에 오르니 마음이 급하네!

by 재희다 2020. 11. 28.

산 행 지 : 팔공기맥 2차(꼭두방재~노귀재) 경북 포항시, 영천시, 청송군.

산 행 일 : 2020. 11. 28.(토)

산행코스 : 꼭두방재 ~ 깔딱봉 ~ 베틀봉 ~ 곰내재 ~ 면봉산 ~ 밤티재 ~ 보현산 ~ 갈천재 ~ 노귀재

              (21km, 9시간 50분 소요)

산행참가 : 15백두.

 

<산행지도>

 

 

코로나19 환자가 전국적으로 500여 명 가까이 발생하면서 방역 단계가 2단계로 격상되는 등 온 나라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방역 단계도 3단계에서 5단계로 세분화된 데다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따로이 방역 지침을 발표하면서 백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물론 미천한 일개 필부가 높으신 분들의 뜻을 헤아리지 못함은 일견 당연해 보이고, 그래서 그저 들려주는 데로 듣고 발표하는 데로 따르는 수 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그러지 않고 만약 다른 목소리라도 낼라치면 우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로 인식되어 눈총 맞아 죽기 딱 쉬운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전 국민이 중국발 미세먼지로 잘 훈련되어 마스크 하나는 잘 쓰고 다니는 덕분인지, 아직은 방역단계가 2단계로 10여 명 남짓의 산행이 금지되지는 않은 덕분에 이번 팔공기맥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다행히도 산행 참가인원 15인을 가까스로 채워서 버스는 정상적으로 양재를 출발하게 되었다.

 

그래도 하나 궁금한 것은 언제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15명 이하가 되면 우리 산우회 산행은 중단되어 해체의 수순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한 의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버스가 목적지에 다다른듯한 느낌에 눈을 떠 보니, 차량 불빛에 비춰진 풍경이 눈에 많이 익은 곳이다. 기사님께서 어떻게 알고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도하지 않은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목적지인 꼭두방재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나 혼자에게만 익숙한 장소를 헤매고 있는 버스를 인도하여 다시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낮도 아닌 밤에 무려 6시간 동안이나 운전대를 잡고 버텨며 산행 출발지인 꼭두방재 휴게소에 무사히 도착케 해 준 기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행 준비를 하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대비하여 겨울옷으로 몸을 감싸고서 밖으로 나서니,

 

 

꼭두방재 휴게소와 주유소는 불이 꺼져 있고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어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지만,

까만 하늘에 총총이 박혀 있는 별들이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를 커지게 한다.

 

<꼭두방재(415m)>
포항시 죽장면 월평리에서 청송군 현동면 눌인리로 넘어가는 31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이 재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 이름이 고지대 마을이라 하여 '꼭두방'으로 불렸는데, 한자 표기로 '고평(高坪)'이다. 이 마을은 200여 년 전 해주오씨(海州吳氏)가 처음 개척하여 '복두(福頭)마을' 혹은 '복두방(福頭房)'이라 하였는데, 1918년 일제 강점기 시대 만들어진 옛 지형도에도 '伏頭房峴(복두방치)'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이 복두방에서 꼭두방으로 변이되었다고도 한다.

 

오늘 산행은 도중에 베틀봉과 면산, 보현산이라는 큼지막한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하고, 베틀봉까지 가는 6km의 능선에는 급경사의 깔딱봉들이 연이어져 있어서 쉽지 않은 산행이 예상됨에 따라, 일부는 꼭두방재에서 기맥 종주길 출발을 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날이 밝은 후 보현산 아래 정각리 별빛마을에서 출발하여 절골을 경유 보현산을 올라서 종착지점인 노귀재로의 팔공기맥 산행을 하기로 했다.

 

 

휴게소 맞은편 낙석방지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가파르게 이어지는 수레길이 산행 들머리다.

실제 팔공기맥 능선은 들머리 우측의 능선이지만, 송전탑 공사를 위해 만들어진 수레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져 이내 팔공기맥 능선에 합쳐지게 되므로 오르기 쉬운 들머리를 따르게 된 듯하다.

 

 

널찍한 수레길은 능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데,

굳이 깜깜한 야밤에 거친 정맥 능선을 고수하며 고생할 필요는 없어 보여 그대로 수레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원 팔공기맥 능선과 합류되는 지점에 자리한 송전탑이 나타나며,

따르던 수레길은 등로로 바뀌어 팔공기맥 능선으로 이어진다.

 

 

급하지 않은 능선 오름길을 잠시 따르면 잡풀이 나 있는 헬기장(489m)을 지나게 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한참동안 올라서면 개념도상 571봉 쯤을 지나게 된다.

 

 

오른 것보다 더 많이 내려선다고 느껴질 즈음에,

좌측 죽장면 월평리와 우측 현동면 눌인리를 연결하여 주던 월평고개 쯤을 지나고,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쳐 올려 어둠 속에서 표지기들이 나부끼는 543봉 쯤도 지난다.

 

 

잠시 고도를 낮추었다가는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좌측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고,

 

 

잠시 후 603봉 쯤에 올라 처음으로 오늘 함께하는 산신들의 면면을 확인한다.

 

 

좌측 죽장면 방향 능선 위로 붉은 하늘에 떠 있는 한줄기 검은 구름이 신비롭고,

 

 

603봉 쯤에 올라서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인다.

 

 

다소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623봉 쯤을 지나는데,

 

좌측 죽장면 방향 동쪽 하늘의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진다.

 

 

완만한 안부로 내려섰다가는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름길로 들어서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동쪽 하늘은 더욱 붉어져 일출이 임박했음을 예고하고,

 

 

앞사람의 뒤꿈치를 보면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좌전방으로 곰바위봉이 가늠되고,

 

붉게 변하던 동쪽 하늘에서 마침내 아침해를 순산했다.

 

 

786봉 직전 능선에서 아침 일출을 감상하는 산신들.

 

 

 

좌전방 나뭇가지 사이로 곰바위봉(좌)과 베틀봉(우) 쯤을 나란히 가늠하며,

 

 

거친 능선 등로를 잠시 오르면,

 

 

봉우리 동쪽 아래에 있는 봉계리에서 이름을 따 봉계봉이라고도 불리는 785봉 정상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에서 베틀봉 방향 팔공기맥은 직좌틀하여 내려서야 한다.

 

785봉에서는 낙엽을 떨군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 할 베틀봉과 면봉산도 가늠된다.

 

 

다소 완만한 능선을 따르는데,

북서쪽 현동면 월매리 방향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곳이 얼마나 오지인지를 실감케 하고,

 

 

잡목이 우거진 능선길을 더듬어 폐헬기장 봉우리에 올라서니,

 

가야할 베틀봉(우)이 가늠된다.

 

 

잡목이 우거지고 낙엽에 덮인 팔공기맥 능선에는 등로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우전방 나뭇가지 사이로는 베틀봉(좌)을 지나서 가야 할 면봉산쯤이 뚜렷한 형체를 드러내고,

 

 

좌전방 곰바위봉 어깨너머로 아침해가 눈부시게 떠올라 있다.

 

 

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좌회하여 지나면 통정대부 함안조공 묘가 자리하고 있는데,

통정대부는 조선시대 문신 정 3품 상계의 품계명으로,

정3품 상계부터 당상관이라 하였고, 하계 이하를 당하관이라고 하였다.

 

돌아본 꼭두방재 방향.

 

 

'포항시산악구조대'의 '시경계구간 862.1m' 표지판과,

'준·희'님의 '보현지맥 863.0m' 표지판이 위아래로 나란히 걸려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참나무가 빼곡한 능선을 더듬어 따르면,

 

 

영양천공(潁陽千公) 묘지도 지나게 되고,

 

 

우리가 팔공기맥 능선에 우뚝 솟은 베틀바위 직전에 도착할 즈음에,

 

천신들은 별빛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절골로 들어서고 있다.

 

 

베틀바위 직전 찬바람이 불어닥치지 않는 능선 남사면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베틀바위를 어떻게 오를지 무척 궁금해했는데,

식사를 마치고 베틀바위 앞으로 다가서니 암릉 가운데로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베틀바위에 올라서니 가야 할 베틀봉이 지척이고,

 

가야할 보현산과 면봉산 방향으로 우람한 산줄기가 한눈에 조망된다.

 

서북쪽 월매리 계곡 건너편의 면봉산 능선 조망.

 

북쪽 현동면 방향.

 

북동쪽 꼭두방재에서 이어온 팔공기맥 능선 방향.

 

동남쪽 포항 방향.

 

 

서쪽 면봉산 방향.

 

동북쪽 꼭두방재 방향.

 

베틀바위 인증.

 

 

베틀바위를 뒤로하고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베틀봉 정상에 도착한다.

 

<베틀봉(934m)>
포항시 죽장면 봉계리와 두마리,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의 경계에 위치한 암봉이다. 남쪽으로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두마마을과 북동쪽으로 봉계마을이 있다. 봉계마을 쪽에서 바라봤을 때 산의 생김새가 베틀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8년판 옛 지형도에는 기봉(機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베틀봉 정상에서 바라본 면봉산과 보현산 방향.

 

 

베틀봉에서 조금 내려서니 좌측으로 벌목이 되어있어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곰바우봉(과) 수석봉 방향.

 

 

돌아본 베틀봉 방향.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조심하여 내려서서 능선 안부에 조성된 고랭지 밭 옆을 지나고,

 

안부의 밭을 지나 작은 봉우리에서 돌아본 베틀봉 방향.

 

 

작은 봉우리 내림길에서 직진의 능선을 두고,

우틀하여 사면 방향으로 표지기가 많이 걸려있어서 우측 길로 들어서야 한다.

 

 

사면을 따라 이어진 완만한 내림길 등로를 따르면,

 

 

이내 사거리 이정표가 있는 곰내재에 도착한다.

 

<곰내재>
포항시 죽장면 두마리와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를 잇는 고개로, 불과 십수년 전까지도 두마리 주민들이 현동면 도평까지 오일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다. 옛 지형도에는 곰내재의 한자 표기인 웅천현(熊川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곰내재 이정표에는 좌측 방향으로 한마리가 아닌 두마리라 표시되어 있다.

 

<포항시 죽장면 두마리>

두마리(斗麻里)는 포항의 최북단, 죽장면에서 세번째로 큰 마을로, 면봉산과 베틀봉, 작은 보현산, 수석봉 등에 둘러싸인 고원분지에 형성된 산촌이다. 동편 마을 어귀 협곡(峽谷)에는 두마(斗麻)폭포와 무학대(舞鶴臺)가 있어 경관(景觀)이 수려하다. 높은 지대의 때묻지 않은 오지(奧地)인지라 마고선녀(麻姑仙女)가 살며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하여 '두마(斗麻)'라 이름하였다 한다. 또한 현내리(顯內里) 쪽에서 볼 때 뒷산 고개 너머에 위치한다고 하여 부르던 뒤미재(뒷매지)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하고, 한때 삼(麻)의 재배가 많던 곳에서 온 '두들마을'의 발음이 변천하여 두둘마, 두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외 홍만종은 순오지(旬五志)에 이 마을에서 콩과 마가 많이 나온다고 하여 두마(斗麻)가 되었다고 적고 있지만, 지금은 고랭지 밭에다 심은 채소와 고추, 사과가 주 수입원이다.
조선 광해군 때 풍수지리학자인 성지는 두마리를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피란지처(避亂之處)로 꼽았는데, 구한말에는 의병 활동지로, 해방 이후에는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하였는데, 1970년대 이 지역에 무장공비가 출몰하자 산기슭의 가옥들을 모두 이주시키기도 하였던 곳이라 한다.

 

"이 사람 포항 두마리에서 왔나?"

경북 사람들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란다.

여기서 '두마(斗麻)'란 죽장면 두마리를 두고 하는 말로서, 두마란 '두메'를 의미한다고 한다.

얼마나 깊은 산골이었으면 마을 이름이 '두메'라고 붙었겠는가!

1천 미터급 고산으로 둘러싸인 두마리는 평균 해발고도가 500m에 이르고,

면소재지인 죽장면 소재지에서도 6km나 떨어진 오지 중에 오지라고 한다.

 

곰내재 중앙에는 산림에 무단입산을 하지 말라는 경북대 농생대학장 명의의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곰내재에서 면봉산 방향 오름길로 들어서면 방화선을 조성해 놓은 듯 능선이 널찍하게 정비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조림지인 듯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한치의 숨 돌릴 여유도 주지 않는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멋진 소나무를 지나게 되고,

 

 

면봉산을 향한 오름길은 능선 벌목지대로 이어지며,

 

 

면봉산을 향해 꾸준히 고도를 높이다가,

 

돌아보면 베틀봉이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다.

 

 

꼭두방재에서 베틀봉까지의 구간이 앞사람의 뒤꿈치를 보고 오르내리는 구간이었다면,

이곳 면봉산 오름길은 앞사람의 엉덩이를 보면서 지겹도록 오르는 구간이다.

 

 

햇살이 비추는 남동향 사면을 따라 오르면서 새벽 찬바람에 얼어붙었던 몸에 땀이 배어나기 시작하고,

 

 

돌아본 베틀봉과 곰바위봉 방향이 멀리 낙동정맥 쯤의 능선을 배경으로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곰내재에서 오름길을 시작한 지 50여분 만에야 면봉산 직전의 안봉산(1,074m)에 도착한다.

 

<안봉산(眼峰山, 1,074m)>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와 현동면 월매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두마리에 걸쳐 있는 삼면봉으로, 안봉산 정상의 바로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개소한 면봉산 기상관측소가 자리한 면봉산 정상이 있다.

 

안봉산 이정표에는 면봉산이 300m 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안봉산을 뒤로하고 잡목과 억새가 빼곡한 능선을 따라 기상레이더가 있는 면봉산으로 향하면,

 

 

2004년에 개소한 면봉산 기상레이더와 기상관측소가 정상부의 우측을 차지한,

 

 

면봉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천신팀의 손총무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 보현산인데, 지금 어디세요?"

"여기 면봉산인데 1시간 반은 더 걸릴 테니 먼저 출발하세요."

 

<면봉산(眠峰山, 1,120.6m>
면봉산(眠峰山)은 경북 청송군 현동면(縣東面)·현서면(縣西面)과 포항시 죽장면(竹長面)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서쪽으로 보현산(普賢山)이, 북동쪽으로 베틀봉이 주 능선으로 이어진다. 낙동강 수계의 반변천(半邊川) 상류의 길안천(吉安川)이 면봉산의 북사면과 서사면에서, 금호강의 지류 자호천(紫湖川)이 면봉산의 동사면에서 발원한다. 면봉산과 보현산 등을 주봉으로 하는 산괴(山塊)는 경상북도의 중앙을 차지하는데, 이들 산지의 사면에는 보현사(普賢寺)를 비롯, 묘각사(妙覺寺)·법룡사(法龍寺)·서운암(瑞雲庵) 등의 절이 있다. 또한, 면봉산의 남서 산록 가까이에는 선돌(立石)이 있고, 용소동에는 용소(龍沼)가 있다. 용소에는 말발자국 두개가 있어서 이 못에서 용마가 나와서 디딘 것이라 전하며, 이 용소나 면봉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소백산을 연상케 한다는 면봉산은 포항의 최고봉(1,121m)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의 보현산(1,124m)에 가리어 그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일대가 민둥산을 이루고 있어서 지역 주민들은 '민봉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면봉산 정상에 서면 두메산골 두마리를 가운데 두고 사방을 준봉들이 에워싸고 있고, 남서쪽 곰티재 건너편으로는 보현산 천문대와 정상의 천문대로 오르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오며, 맑은 날이면 영일만과 포항시가지도 보여 정상에서의 조망은 가히 일품이라 한다.

 

가야할 서쪽 보현산 방향.

 

돌아본 동쪽 베틀봉 방향.

 

 

북서쪽 의성군 방향.

 

남서쪽 보현산 조망.

 

남동쪽 작은보현산 방향.

 

지나온 베틀봉 방향 조망.

 

면봉산 등산 안내판.

 

 

경북에서 일월산, 팔공산, 보현산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산인 면봉상 정상에서 인증을 남기고,

 

 

보현산을 향해 청송군에서 설치한 면봉산 정상석 뒤에서 직좌틀하여 내려서면,

 

 

밤티재 건너편으로는 보현산 능선이 이어져 있는데,

두 개의 보현산 꼭대기가 앞 뒤로 서 있고, 그 좌측으로는 기룡산 산줄기가 둘러져 있다.

 

 

정상에서 100여 미터 내려서면 포항시에서 세운 면봉산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포항시에서 세운 정상석 뒷면에는,

산이 높아 조수(鳥獸)가 쉬어 가는 곳이라 하여 면봉산(眠峯山)이라 부르며, 또한 능선이 완만하여 민봉산이라 불리어지기도 하고, 옛날에는 문봉산(文峰山)이라고 불렀다는 이 산은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 포항시 죽장면과 청송군 현동, 현서면과 경계를 이루며 남서쪽의 보현산 북동쪽의 베틀봉으로 주능선이 이어지고 금호강 지류 자호천과 낙동강 수계 길안천이 발원한다.

- 포항시의원 -

 

따스한 바람이 없는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어서 쉬어가기에 적당해 보인다.

 

면봉산 정상 인증.

 

 

면봉산에서 곰티재로 이어지는 등로는 정상석 앞 입석바위 옆으로 이어져,

 

 

우측 아래로 휘어지며 내려서다가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사면길로 들어서야 한다.

좌측 내림길은 두마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서는 등산로인데, 기맥꾼들이 알바를 많이 하는 곳이다.

 

 

희미한 급경사 사면 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앞쪽으로 보이는 보현산의 덩치는 점점 커져만 가고,

 

우측으로 보이는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가 심심산골임을 짐작케 한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가파른 내림길을 조심하여 내려서면,

 

 

좌측 두마리와 연결된 널찍한 임도가 지나는 밤티재에 내려선다.

 

<밤티재>

포항시 죽장면 두마리에서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로 넘나드는 고개로, 두마리에서 이어온 널찍한 임도가 고개를 지나 우측 면봉산 정상의 기상관측소로 이어지는 임도에 연결된다. 또한 임도를 따라 좌측 두마리 방향으로 200여 미터 내려서면 우측으로 보현산 정상으로 오르는 도로와 이어진 임도 갈림길이 있다. 통상 밤티재는 밤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옮기면 율치(栗峙)라고 하는 곳인데 이곳 '밤티재'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밤티재 이정표.

 

 

밤티재에서 보현산으로 오르는 급경사 오르막은 진짜 코가 닿을 정도로 카팔라,

 

뒷사람은 앞사람의 뒤꿈치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돌아본 면봉이 작은 탁구공을 이고 있는 듯이 보이고,

 

 

돌아본 면봉산 우측으로는 새벽에 지나온 베틀봉이 살짝 보인다.

 

 

포항시 죽장면과 영천시 화북면, 청송군 현서면 등 3개 시군의 경계가 되는 기룡지맥 분기점봉(993m)에 올라서는데, '준.희'님의 '기룡지맥 분기점' 표지판은 바닥에 떨어져 있다.

 

<기룡지맥(騎龍枝脈)>

기룡지맥은 팔공기맥이 면봉산에서 밤티재로 떨군 다음 보현산을 향해 쳐 올리다 중간 지점의 3군 경계봉인 993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하여, 갈미봉(787m)과 시루봉(654m)을 지나고, 동쪽으로 금호강, 서쪽으로는 신령천을 가르며 영천 시내로 떨어지는 약34km의 산줄기다. 유봉지맥과 함께 신령천을 감싸는 분수령이 되어 영천시 성내동 중앙선 철도 영천대교 아래에서 유봉지맥의 끝점과 마주보며 맥을 다하는데, 기룡산(965.5m)은 지맥 마루금에서 600m 정도 벗어나 있지만 지맥 부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분기봉(924.9m)과 함께 이어진 산으로 보고 지맥 이름으로 정하였다.

 

밤티재에서 600m 오는데 25분이나 걸렸다!

 

기룡지맥 분기점에서 지나온 베틀봉도 당겨보며,

10여분 쉼을 하며 다리 근육을 풀어주고서야 보현산 정상을 향한다.

 

 

좌측으로 기룡산과 백두 천신들이 아침에 보현산을 향해 출발했을 보현산 별빛마을을 내려다보며,

 

 

완만한 능선길을 잠시 따르다가,

 

 

좌측 아래의 정각리 별빛마을에서 천문대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 도로를 따라 보현산 정상부에 자리한 천문대로 향한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오르면,

 

 

보현산 천문대 정문이 나오는데,

 

 

정문 좌측의 '천수누림길'이라는 데크목 길을 따르면 보현산 정상과 시루봉 사이에 있는 천문대로 이어지게 되어서 다시 보현산 정상으로 되돌아 올라야 하므로,

 

앞서가던 분을 불러세워 정문 우측 주차장에서 바로 보현산 정상으로 어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기로 한다.

 

주차장을 들어서며 돌아본 면봉산 모습.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주차장 북서쪽 모서리로 가면 보현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들머리가 나오고,

 

 

비교적 선명한 능선 등로를 따라 보현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간밤에 싸락눈이라도 내렸는지 바닥에 싸락눈이 조금 보인다.

 

 

뚜렷한 능선 오름길을 잠시 따르면 통신탑을 지나게 되고,

 

 

이내 뒤돌아 서 있는 보현산 정상석이 나타난다.

 

 

<보현산(普賢山, 1,124m)>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과 청송군 현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자비의 보살인 보현보살에서 유래하였는데, 산의 남사면이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세라 하여 일명 ‘모자산(母子山)’이라고도 한다. 산이 너그럽고 장중한 산세를 가져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아도 그 모습이 같고,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닮았다 해서 '보현산'이라 한다고 하는데, 불교의 보현보살에서 명칭을 따서 보현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에는 '모자산이 고을의 진산'이라고 쓰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모자산과 보현산으로 기록된 반면, 「대동여지도」에는 보현산만 기록되어 있다. 「화산지(花山誌)」에는 “산중턱에는 중복에 생겨서 말복에 없어진다는 빙혈(氷穴)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보현산에는 690종 이상의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특히 연간 40∼50석에 가까운 잣(柏)을 땄던 잣나무 숲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전부 베어버렸다고 하며, 산의 남쪽 800m 산중턱에는 산삼 한 뿌리를 캐어 남편의 불치병을 고친 아내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산삼을 캤던 자리에 지었다는 전설을 가진 법룡사(法龍寺)가 있으며, 서쪽 기슭에는 보현산의 큰 절이었던 법화사(法華寺) 터와 높이 약 7m에 이르는 탑만 남고 병자년 대흉작 때 전부 타 버린 정각사(鼎脚寺) 터가 있다. 산 정상에는 1996년에 완공된 보현산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다.

 

보현산 정상에서 본 시루봉 방향.

 

보현산 정상 인증.

 

 

 

보현산 정상에서 가야 할 보현산 천문대와 그 앞 시루봉(시리봉) 방향.

 

천문대 건물과 기룡산 방향.

 

남쪽 정각리와 기룡산 방향.

 

북서쪽 현서면 수락리 방향.

 

 

보현산 정상을 뒤로하고,

 

빤히 보이는 지근거리의 시루봉을 향하면,

 

우측 의성군 방향 산그림이 답이 없어 보인다.

 

 

돌아본 보현산천문대 전경.

 

<보현산 천문대>
경북 영천시와 청송군에 걸쳐 있는 보현산 동봉 정상 일대에 세워진 천문대로, 한국천문연구원 산하의 천문학 연구 기관이다. 1985년 천문대 건설이 추진되어 1992년 도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1996년 4월 3일 준공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1.8m 반사망원경과 태양 플레어 망원경 등 다수의 천체 관측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발견한 소행성 13개 중 12개가 이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곳은 천문학자들이 천문관측 및 연구를 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일부 시간대 외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보현산 천문대에서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은 보현산 정상의 방문객센터(전시관)이다. 전시관 아래쪽으로 '천수누림길'이라는 데크목 길이 연결되어 있다.

 

 

보현산 천문대 구내를 지나 남서 시루봉 방향의 능선길로 들어서서,

 

 

헬기장을 지나서 진행하면,

 

 

이내 보현산 시루봉에 도착한다.

 

<보현산 시루봉(1.124.4m)>
경북 청송군 현서면 갈천리와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입석리에 접해있으며 보현산의 봉우리다. '시루'를 경상도 사람들은 '시리'라고 하는데, 그래서 시루봉이라는 정상석 옆에 '시리봉'이라 쓰인 정상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듯하다. 정상에는 1등 삼각점과 팔각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활공장도 조성되어 있으며,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영천시내는 물론 대구시가지도 조망된다고 한다.

 

보현산 시루봉 등산 안내도.

 

영천의 최고봉이라는 보현산 시루봉에는 정상석이 두개 세워져 있는데,

작은 정상석에는 '보현산 시리봉'이라 새겨져 있다.

 

 

천신들의 보현산 시루봉 인증.

 

산신들의 시루봉 인증.

 

 

※ 용어 해설 (순회씨 작명)

- 천신 : 백두들 중에서 바람과 해를 벗삼아 유유자적 산행을 즐기는 분들.

- 산신 : 백두들 중에서 호기심에 이끌려 기어코 산행을 하는 분들.

 

 

돌아본 지나온 팔공기맥의 봉우리들!

 

동쪽 두마리 방향.

 

 

남동쪽 기룡산 방향.

 

남쪽 영천시 방향.

 

남서쪽 보현산댐 방항.

 

서쪽 화산 방향.

 

서북쪽 의성 방향.

 

 

시루봉 활공장에서 순회 형이 가져온 위스키 한 병을 비웠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보현산 내림길에 고생 꾀나 하게된다.

 

 

마침 시리봉 정상에 오른 젊은 산객에게 부탁하여 산신팀 시루봉 인증을 한번 더 남기고,

 

천신들도 면봉산 방향을 배경으로.

 

 

시루봉을 뒤로하고 소재를 향해 끝없는 내림길에 접어드니,

 

우측이 장뇌삼 재배단지인지 철망 펜스가 이이지는데,

출입금지 표시도 곳곳에 부착되어 있고,

 

 

산삼 한 뿌리를 캐어 남편의 불치병을 고친 아내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산삼을 캤던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전설을 가진 법룡사(法龍寺)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좌측 아래 법룡사로 내려가는 등로는 뚜렷하지만 철망 울타리를 따라 직진하는 기맥길은 희미하고 거칠다.

 

 

소재를 향해 거칠고 가파른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며, 우측의 철망울타리가 원형 철조망으로 바뀌고,

 

 

거칠고 가파른 등로는 낙엽에 덮여 돌들이 숨어있기도 하고,

멧돼지가 온통 파헤쳤는지 울퉁불퉁하기까지 하여 순회형이 발목을 겹질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서 진행에 무척 방해가 된다.

 

 

철망 울타리에는 산짐승들이 드나들었음직한 작은 출입구들이 수없이 뚫려있어서 야생동물에게도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닌가 본데, 이런 시설을 설치할 때는 그 유용성이나 사후관리 등을 꼼꼼히 따져서 설치했으면 좋겠는데, 일반적으로 정부예산 지원에 따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서..ㅉㅉ

 

 

그렇게 철망 울타리에 대한 불평이 욕지기가 되어 나오려는 즈음에서야,

내림길이 끝나고 간이 초소건물이 있는 소재쯤을 지난다.

 

<소재>
영천시 화북면 법화리와 청송군 현서면 갈천리를 잇는 고개였다는데, 지금은 고개의 흔적조차 희미하고, 우측 갈천리 쪽은 장뇌삼 단지 철망 울타리까지 가로막고 있어서 산짐승들도 넘지 못하는 고개가 되어있다.

 

 

소재를 지나서도 철조망 울타리는 이어지지만,

이제부터는 큰 업다운이 없는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 능선을 따라 노귀재까지 팔공기맥이 이어지게 된다.

 

돌아본 보현산 시루봉이 듬직하게 보이는 곳에서,

 

 

급경사 내림길에 긴장되어 있는 다리 근육을 풀어줄 겸,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인다.

 

 

시루봉에서 40여분이나 같이했던 철조망과 이별하고,

 

 

등로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능선을 따라 팔공기맥을 더듬어 간다.

 

돌아본 보현산 시루봉 모습.

 

 

잡목들이 빼곡한 능선을 헤치고 775봉 쯤의 인증을 남기고,

 

 

등로가 있는지 구분이 안되지만 그래도 완만하여 걷기에 불편함이 없는 능선을 잠시 따르는데,

 

 

지형도의 727봉쯤을 지나면서,

 

 

아침을 먹은 지가 오래되었고,

서서히 밀려오는 허기를 막으려 마지막 배낭털이를 한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현천이 흐르는 갈천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살짝 당겨본 갈천리 하밖산 마을 모습.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와 청송군 현서면 갈천리를 잇는 희미한 길 흔적이 있는 '갈천재' 쯤을 지나면,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개념도 상의 670봉 쯤에 오르게 되는데,

팔공기맥은 직좌틀하여 급경사 사면으로 이어지지만 길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직진을 하기 쉬운 곳이다.

나중에 앞서 갔던 천신들의 트랙을 확인해 보았더니,

역시나 이곳에서 직진의 능선을 따라 밖산재 직전까지 40여분 알바를 다녀왔다.

 

 

670봉 내림길은 뚜렷한 등로가 보이지 않아서 대충의 방향만 잡고 내려서는데,

 

 

670봉을 내려서서 돌아보니 우측으로 뚜렷한 좌회길이 보인다.

아미도 기맥꾼들이 저 좌회길로 다녀서 670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로의 흔적이 없었던 듯하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니,

 

 

또 다른 670봉이 나타나는데,

이 봉우리에서도 직좌틀하여 등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완만한 사면으로 내려서야 한다.

 

 

670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평퍼짐한 능선이 이어지며 능선이 어디인지조차 구분이 안 되다가,

 

 

이내 낙엽이 수북이 덮인 완만한 능선에 비교적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다.

 

 

앞쪽으로 가야 할 675봉이 우뚝해 보이고,

 

 

봉분이 밋밋해진 묵묘를 지나서 오르면,

 

 

675봉에 올라서서 다시 좌틀하여 내려서게 된다.

 

 

675봉 내림길 우측의 전망바위에 서니, 지나온 면봉산과 보현산이 다시금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보현산과 시루봉 모습.

 

여기서 보면 면봉산에서 밤티재로 내려섰다가 보현산오르는 능선이 완만해 보인다.

 

보현산을 배경으로.

 

당겨본 면봉산 모습.

 

 

능선 좌측으로 이어진 거친 수레길로 내려서는데,

 

좌측으로 묘지가 자리하고 있고,

 

 

능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구분이 어려운 평퍼짐한 구릉지대가 이어지더니,

 

 

능선 우측으로 자작나무 조림지가 나타난다.

 

자작나무 조림지 모습.

 

다른 나무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새하얀 옷을 입은 자작나무.

 

 

 

 

거친 능선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더듬어 진행하면,

 

 

방각산 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직진의 방각산 쪽으로는 등로가 보이지를 않아,

600m 거리의 방각산 왕복은 포기하고. 좌측 노귀재 방향 기맥길로 들어서면,

 

 

앞쪽으로 노귀재 건너편의 석심산 능선이 병풍인듯 보이고,

 

 

노귀재터널 위의 옛 참호로 보이는 곳을 지나면,

 

 

노귀재를 향한 능선 내림길이 이어지고,

 

 

우측으로 노귀재휴게소가 내려다 보이더니,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노귀재 날머리에 도착한다.

 

<노귀재(奴歸재, 502m)>
청북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에서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로 이어지는 2차선의 35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에는 노귀재 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다. 대구에서 영천, 청송을 잇는 35번 국도의 중심축인 노귀재에는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지난 2002년부터 고개 중턱에 터널을 뚫는 공사가 진행되어 2011년 12월 27일 준공되었다. 노귀재 터널이 준공으로 대구~청송 간 운행 시간이 20여분 단축되어 청송군이 추진하는 관광사업이나 농산물 유통 등에 유리하며 주민생활의 향상과 지역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노귀재'란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왔던 왜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쳐들어오면서 영천군 화북면 상송리에 이르러 보니 소나무 숲이 울창한 높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 고개를 넘어 청송 쪽으로 향하던 중, 사람을 만나 "이곳을 넘으면 어디냐?"라고 물어보니 "청송이라고 한다"라고 대답하자 왜구들이 돌아갔다고 한다. 이유는 청송의 송(松) 자가 당시 우리나라에 원군(援軍)으로 온 중국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의 송(松) 자와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어 피해 돌아간 것이라고 전한다. 그 후로 왜구가 돌아갔다 하여 노귀재(奴歸)라 부른다.
다른 이야기로는 노귀(老歸)재라 하여 청송 출신들이 타지로 나갈 때 이 고개를 넘어가지만 언젠가 늙으면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노귀재 휴게소에는 애마가 기다리고 있고,

 

노귀재 다음 구간 들머리는 '영천시 화북면 표지판' 뒤편 국기 게양대 우측 무너진 쉼터 뒤편에 있다.

 

 

노귀재휴게소 전경.

 

 

휴게소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노귀재 유래 표시판.

 

<노귀(奴歸)재의 유래>
이 재는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천군 경계로서, 임진왜란 때 침노한 왜구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진을 피하여 내륙으로 진입하면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병사를 거느린 우두머리가 이 재를 넘으려니까 재가 높고 험준하여 무서워하면서 넘어가다가 길손을 만나 “이 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니, 그 길손은 “여기는 청송 땅이오”라고 대답하자, 왜구의 무리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그 왜구들은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했을 때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장군에게 크게 패한 일 때문에 이 장군을 매우 무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름 중에 ‘송(松)’ 자가 청송의 ‘송(松)’ 자와 같으므로 이여송 장군을 만날까 두려워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멸시하는 뜻에서의 ‘종 노(奴)’ 자와 ‘돌아갈 귀(歸)’ 자를 써서 노귀재라 불리워졌으며, 그로부터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재가 재앙을 면하는 재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또 다른 전해지는 전설을 보면,
노귀재는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멸시하는 뜻에서의 ‘종 노(奴)’자와 ‘돌아갈 귀(歸)’자를 썼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적장은 출정 직전 무속인이었던 모친에게서 “조선에 가면 소나무 아래에는 절대 가지 마라”는 당부의 말을 듣는다. 파죽지세로 진군을 거듭한 왜군은 영천을 정복하고, 청송으로 향하다 현재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下松里)를 지나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 아래라는 마을 이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진군을 계속해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上松里)에 도착한 왜구들은 마을 이름이 상송(上松)이라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당부한 말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아차마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진군을 계속한 왜군은 노귀재를 넘어 청송으로 들어가 보니 청송은 그야말로 소나무 천지였다. 어머니의 당부가 현실로 나타나자 적장은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더 이상 진군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왜군이 돌아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왜귀(倭歸)들'인데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지금도 있고, 노귀재 역시 왜군이 노비처럼 도망갔다 해서 노귀재로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지난밤 알바로 무려 6시간이나 장거리 운전을 하고도 거뜬한 기사님이 먼지를 털어주고,

 

 

화북면 소재지에 위치한 화북식당으로 이동하여,

 

 

목감은 생략한체 조촐한 뒤풀이 시간을 가지고,

 

 

 

친절한 쥔장의 배웅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한다.

혹여 영천으로 다시 산행을 가게 된다면 다시한번 들리고 싶기는 한데..ㅉㅉ

 

 

이번 산행이 올해의 마지막 산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갑자가 가까워지니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많은 일들이 귀찮아졌고,

문득문득 남은 인생을 역산해 보는 경우도 잦아지게 되는데,

동안 뜬구름으로만 여겨지던 인생이 형체를 갖추며 전체 윤곽을 드러낸다.

인생이 윤곽을 드러내니 앞날이 그려지며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끝도 생각하게 되고,

미래의 끝이 보이는 나는 한순간 한순간의 소중함을 절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