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년

금남기맥 1차(금만봉~말골재) : 연이은 암봉을 넘으며 즐긴 멋진 조망

by 재희다 2021. 4. 22.

산 행 지 : 금남기맥 1차(작은싸리재 + 금만봉~말골재) 전북 완주군.
산 행 일 : 2021. 04. 10.(토)
산행코스 : 작은싸리재~금만봉(760.1m)~왕사봉(718.9m)~641.7암봉~671봉(삼면봉)~칠백이고지(700.8m)~606봉(삼면봉)~선녀남봉(677.2m)~선녀봉 갈림봉~용계재~불명산(477.2m)~시루봉(427.6m)~장선리재~능바위산/미륵산(476.1m)~말골재(210m) (도상거리 약 18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3백두.

<산행지도>

 

 

 


금남기맥(錦南岐脈)은 금남정맥 상 싸리재와 봉수대 사이의 금만봉(760.1m)에서 서진하여 왕사봉을 거쳐 칠백이고지, 시루봉, 장재봉, 작봉산, 천호산, 미륵산, 함라산, 망해산, 고봉산, 장계산을 지나 군산 도선장에서 서해바다로 잠기며 맥을 다하는 약 125km에 달하는 산줄기다.

지난 3월 넷째주에 금남기맥을 시작하려 하였으나, 비로 연기하였다고 드디어 오늘은 금강의 남쪽 울타리인 금남기맥 첫 구간을 시작하기로 했다. 접속 거리를 가장 짧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작은싸리재까지 차량으로 접속한 후 기맥 분기봉인 금만봉으로 오르면 되는데, 오늘 첫번째 구간의 날머리인 말골재에 차를 주차하고 창병 대장 친구분의 차를 빌러타고 들머리인 작은싸리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첫번째 구간은 산행 거리에 비해 오르내림이 심하고 등로 또한 낙엽이 두텁게 덮여 있어서 조심하여 확인하면서 발을 디뎌야 해서 의외로 시간과 힘이 너무 많이 들지만, 비교적 등로가 잘 나 있고 특히 가시나 덩굴식물이 없어서 진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다만 용계재를 지나 불명산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가시나무가 자라나 약간의 어려움도 있다.

 

오늘 구간의 행정계를 살펴보면, 금남기맥 출발점인 금만봉(760.1m)은 삼면봉으로 전북 진안군 주천면과 전북 완주군 동상면, 운주면이 갈리는 봉우리다. 이 삼면봉에서 좌 동상면, 우 운주면을 가르며 북서향 하여 진행하다가 칠백이고지 전 삼면봉(671m봉)에서 좌측이 동상면에서 고산면으로 바뀌어 북서향 하고, 칠백이고지를 지난 또 다른 삼면봉(606m봉)에서 좌측이 경천면으로 바뀌어 좌 경천면, 우 운주면을 가르며 능바위산/미륵산까지 이어지고, 능바위산에서부터는 온전히 운주면의 영역으로 들어서서 말골재로 내려서게 된다.

 

네비 아가씨가 예상한 시간보다 30여분 일찍은 7시 10분쯤에 말골재에 도착하니, 우리를 작은싸리재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창병대장의 지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른 시간에 폐가 이만저만이 이닌 줄은 알지만 일반 택시가 거친 임도를 거슬러 올라 작은싸리재까지 진입하지 않으려고 하여 부득이하게 부탁한 처지라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업지만 인사를 나누고는 지인의 차에 탑승하여 운주계곡을 거슬러 산행 들머리인 작은싸리재로 향한다. 차가 운주면 소재지에서 운주계곡으로 들어서자 계곡에는 산벚나무를 비롯한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있고, 임도는 군데군데 비포장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서 운행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금남정맥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작은싸리재 정상에 도착하여 우리를 고갯마루까지 데려다준 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금남기맥 첫번째 산행 준비를 한다. 보통은 고개 남쪽의 주천면 중리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3.7km를 걸어서 올라와야 하는 곳이지만 고맙게도 주말에 시간을 내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완주에 사시는 지인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작은싸리재(570m)>
싸리재는 진안고원 북쪽 관문인 장군봉과 왕사봉(王師峰) 사이의 고갯마루다. 진안고원에 속한 무주군과 진안군 일대에서 금남정맥을 넘어 전주와 고산 등 만경강 유역으로 진출할 때 대부분 넘던 고갯길이다. 그리고 진안의 태평봉수대와 왕사봉 사이 움푹 들어간 고갯마루가 작은싸리재인데,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봉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의 경계 능선이 있는 고개로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작은싸리재는 충남 부여와 논산 일대에서 금남정맥을 넘어 진안고원으로 진출하려면 꼭 넘어야 했다. 백제 사비기 동안 백제와 신라의 사신들이 왕래하던 사행로(使行路)가 통과하던 큰 고갯길이다. 금남정맥 싸리재를 중심으로 그 양쪽에 산성 및 봉수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당시 전략상으로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싸리나무가 많아 유래되었다.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 지도』 (용담)에 '유령(杻嶺)'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으로 변음 된 것은 싸리 나무라는 의미의 '유(杻)'자를 '축(丑)'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싸리재'하면 '큰 싸리재'가 아닌 '작은 싸리재'를 지칭한다. 작은 싸리재와 큰 싸리재 사이에 금만봉이 있는데, 이는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임을 착안해 작명한 것이다.

주천면 대불리 중리 ~ 무릉 임도 안내판 옆에 금만봉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파릇파릇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나무들이 싱그러운 금만봉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하면,

 

이제 막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 나무들이 빼곡한 급경사 오름길이 이어지고,


옛날 금남정맥 길에서 올랐던 성제봉(태평봉수대)이 뒤에서 어여 가라 손짓하고 있고,


키높이의 산죽지대를 통과하여 오르면,


금남정맥에서 금남기맥이 분기하는 분기점이 나온다.

 

좌측 등로는 큰싸리재로 내려서는 금남정맥 길이고, 우측 능선길이 오늘 시작하게 되는 금남기맥(대동금남정맥) 등로다. 스테인리스 이정표 기둥에는 '금만봉(750m) 유래,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란 글씨가 남아있다.


"금만봉(750m)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라는 금남기맥 분기점 이정표에서 금남기맥 출발 인증을 남긴다.


돌아본 피암목재 방향으로 우측 멀리의 봉우리가 금남정맥의 운장산이다.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30m쯤 더 오르면 실제의 '금만봉(755m)이다.

 

<금만봉(755m)>
전북 진안군 주천면과 완주군 운주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금남정맥에서 금남기맥(대동금남정맥)이 분기되는 봉우리다. 금만봉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이라 그리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싸리재 위에 있는 봉우리라 하여 싸리봉이라고도 부른다.


거인산악회에서 걸어놓은 금만봉 표지기에는 고도를 755m로 표시해 놓았다.

 

금만봉 정상에서 아침 간식과 모닝커피를 나누고는,

 

 

아직도 앙상한 나목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잡목숲으로 들며 본격적인 금남기맥 산행길에 나선다.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있는 완만한 능선을 따르다가,

 

 

좌측으로 조망이 트인 754봉쯤에 오르면,

 

남서쪽 완주 방향 조망이 트이며 완주군의 산그림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좌측은 급경사 비탈이지만 우측 사면은 완만한 구릉지인 완만한 능선을 따라,

 

 

육산 봉우리에 바위들이 널려있는 697봉쯤을 지나고,

 

 

완만한 구릉지 안부를 지나 오르면,

 

 

지도상 널바위쯤에서 금남기맥 능선은 우측으로 휘어지며 왕사봉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죽 터널을 지나면,

 

 

좌측으로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가 나오며 가야 할 왕사봉(우)과 금남기맥 능선 너머로 대둔산도 조망된다.

 

가야할 금남기맥 능선과 대둔산 조망.

 

가야 할 왕사봉 조망.

 

 

완만한 왕사봉 오름길 우측으로 잠시 전에 지나온 금만봉도 조망되고,

 

우측으로 성제봉과 금만봉이 나란히 보인다.

 

 

왕사봉 직전에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남쪽 방향으로 금남정맥의 운장산과 연석산이 멋지게 조망된다.

 

 

왕사봉(王思峰, 718.9m) 정상 정상 도착.

 

<왕사봉(王思峰, 718.9m)>

전북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동상면 대아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 나뭇가지에는 박건석님과 새마포산악회의 표지판만 걸려있고 삼각점이 있을 뿐, 왕사봉이란 이름에 걸맞은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임금의 스승을 뜻하는 국사봉이란 산 이름은 많으나, 왕사봉이란 이름은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닌 듯하다. 또한 한자 표기도 왕의 스승이란 뜻의 왕사봉(王師峰)이 아니라, 왕을 사모한다는 왕사봉(王思峰)인데, 그 정확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왕사봉을 뒤로하고 제법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서면,

 

녹색으로 칠해진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630.8봉쯤을 지나서,

 

 

능선 내림길을 막아서는 커다란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가야 할 선녀남봉과 대둔산 방향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살짝 당겨본 대둔산과 선아봉 방향으로 아침에 차로 올라온 고당리 계곡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10여년 전 심설을 헤치며 힘들게 걸었던 금남정맥 능선이 우람하고,

 

산행 출발지인 작은싸리재 옆에 있었던 성제봉(태평봉대, 우측 끝)도 가늠된다.

 

 

멋진 전망바위를 좌회 하여 가파르게 내려서면,

 

 

날등 암릉구간이 나타나며 우측 벼랑 아래로 봄꽃이 화사하게 수놓은 고당리 계곡이 내려다 보이며,

 

계곡 건너편으로는 10여년 전 걸었던 금북기맥 능선이 용의 등줄기처럼 이어져 있고,

 

뒤쪽으로는 태평봉수대가 있는 성제봉이 뾰족하다.

 

 

금만봉~왕사봉 구간과는 다르게 왕사봉을 지나자 작은 봉우리들을 연이어 나타나며 빨래판 능선이 이어지며,

 

연초록 새싹이 움트는 나뭇가지 위로 대둔산이 멀리 보이더니,

 

봄꽃을 피워낸 꽃나무들이 흩뿌려진 듯 보이는 고당골 풍경이 꿈결인 듯 내려다 보이고,

 

우측 사면이 바위절벽인 가야 할 641.7암봉은 좌측으로 돌아서 오르게 된다.

 

 

641.7암봉을 오르며 돌아본 왕사봉 방향.

 

좌측 동상면 대아리 은천계곡 방향.

 

 

641.7봉 정상에 도착하니 앞서간 두 분이 편한 쉼을 준비하고 있다.

 

암봉 위에 서면, 사방이 막힘없이 트이며 북쪽 대둔산 방향으로 고당골이 길게 이어져 있고,

 

남동쪽 성제봉(태평봉수대) 방향으로는 걸어온 금남기맥 능선이 가늠되며,

 

남서쪽 동상면 대아리 은천계곡 방향으로는 완주군의 산들이 끝없이 펼쳐저 있다.

 

살짝 당겨본 대둔산 방향.

 

북동쪽 금남정맥의 신선봉 방향.

 

남동쪽 금남정맥의 성제봉 방향.

 

지나온 왕사봉 방향.

 

남서쪽 동상면 대아리 은천계곡 방향.

 

서쪽 봉수대산 방향.

 

내려다본 운주계곡에는 봄꽃들이 수를 다투어 피어났다.

 

봄꽃이 수놓은 고당골 조망.

 

 

떡이랑 과자 등등의 간식을 먹으며 조망을 즐기고는,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641.7을 뒤로하고 칠백이고지를 향한다.

 

 

645봉.

 

630.2봉.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돌아본 금만봉 방향.

 

위 사진의 우측 완주군 동상면과 경천면의 산그림.

 

652.9봉.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봉우리를 또 지나고,

 

나무들이 빼곡한 안부를 지나,

 

대아리 운암산 방향 지능선이 분기하는 삼면봉인 671봉을 우회하여 지난다.

이곳 671봉의 우측은 완주군 운주면이고, 좌측은 동상면에서 고산면으로 바뀌게 되는 봉우리다.

 

잠시 완만한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산불 감시카메라탑이 있는 칠백이고지(700.8m) 정상에 도착한다.

 

<칠백이고지(七百二高地, 699.6m)>
칠백이고지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면과 운주면 경계에 있는 산이다. 왕사봉, 운암산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으며 고산천과 장선천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지명은 산의 고도에서 유래되었다. 국가정보원 지도상 고도는 699.6m인데,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와 폭격으로 인해 고도가 낮아졌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칠백이고지'라고 부른다. 산의 북쪽인 충남 지역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육백고지 전승탑(六百高地戰勝塔)이 있다.

 

이곳은 6.25 사변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현장이며 수많은 국군과 애국지사들이 산화한 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이다. 1950년 9월 28일,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서울 수복과 아군의 진격에 쫓겨 북으로 도망치던 괴뢰군 패잔병과 공산분자들이 이곳 칠백이고지와 동쪽으로 육백고지, 팔백고지, 느티골, 대활골, 피목리, 고당리, 싸리재, 왕사봉 등에 진을 친 본거지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기와 탄약까지 만들어 금산군 전 지역과 논산, 완주, 무주군 등의 지역까지 출몰하여 양민 학살, 식량과 가축 약탈, 민가 방화, 경찰관서 습격 등 천인공로할 만행을 일삼았다. 이곳을 요새로 준동하던 공비들은 소위 남조선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휘하 45사단 총참모장 길병래가 지휘하던 백두산부대, 압록강부대, 청천강부대, 한듬산부대, 외팔이부대, 나팔부대, 호량병단인민학교, 인민병원, 남로당 완주.금산.논산군당 등 각 부대 괴뢰군 대위 전광순 외 거물급이 통솔하는 2만명이 집결하여 인접 대둔산과 운장산 지역은 물론 멀리는 덕유, 지리산을 거점 삼아 출몰하던 공비들까지 합동작전을 지휘하던 막강한 세력으로 국내 치안을 교란했다. 이에 경찰, 군민, 향토 청장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9.28 수복과 동시에 약 5년 반 동안 공비 토벌작전을 감행, 수백 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였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찰대, 향토방위대, 국군 8사단 화랑부대, 김화산부대 등이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적 사살 2,287명 생포 1,025명과 중화기, 탄약 등 다수의 전리품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칠백이고지 정상의 이정표.

 

북쪽 대둔산 방향.

 

북동쪽 금남정맥 백암산 방향.

 

동남쪽 왕사봉 방향.

 

남쪽 연석산 방향.

 

남서쪽 모악산 방향.

 

 

칠백이고지에서 직우틀하여 기맥길로 들어서면 낙엽이 쌓여 무척이나 미끄러운 급내림길이 이어지며,

 

새 머리를 닮은 바위를 좌회하여 지나게 되고,

 

637.3봉을 넘고,

 

 

우측 금당리의 우뚝한 봉우리로 이어지는 지능선 분기봉에서 좌틀하여 내려서고,

 

 

좌측 고산면 소향리의 봉수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분기하는 또 다른 삼면봉(606m)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는데, 지금까지 좌 완주군 고산면, 우 운주면을 가르며 진행해 온 금남기맥은 이 삼면봉에서 좌측이 경천면으로 바뀌어 북서향으로 이어진다.

 

삼면봉인 606봉 정상부에는 성터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잘록이 안부를 지나 소 잔등 같은 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올라서면,

 

 

우측으로 봉수대산쯤을 배경으로 멋진 소나무가 암릉과 어우러진 능선을 오르게 되고,

 

 

536.1봉에서 우향하여 내려서는데, 좌측 직진 방향 능선 아래에 신흥산 구룡암이 위치하고 있다.

 

 

낙엽이 수북한 능선은 발목을 삐끗할 위험도 있어서 속도를 내기가 어렵고,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제비꽃이 어여쁘다.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능선을 따르다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604봉쯤을 지나면,

 

좌전방으로 써레봉과 가야 할 선녀남봉이 조망되는 암릉을 지나게 된다.

 

가야할 선녀남봉 방향.

 

좌측 경천면 신흥계곡 방향.

 

동남쪽 금남정맥 방향.

 

 

바람한점 없고 기온은 올라가는데, 연이어 나타나는 봉우리를 넘다가 지쳐서 604봉쯤에서 긴 쉼을 가진다.

 

 

선녀남봉과 선녀봉 사이의 안부 너머로 천등산이 보인다.

 

당겨본 천등산 모습.

 

 

바위 암봉을 힘겹게 오르면,

 

돌아본 운장산이 멀리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고,

 

꾀나 까다로는 암릉 안부를 지나게 된다.

 

당겨본 써레봉 모습.

 

암릉 안부 좌측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암릉과 바위들이 나뒹구는 등로를 따라 옹긋봉긋한 봉우리를 지나 오르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완주군의 산그림이 '산골짝'이라는 단어를 쉬이 떠오르게 하고,

 

좌측 경천면 방향으로도 산이 아닌 곳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써레봉(좌)과 가야 할 선녀남봉(우) 모습.

 

 

선녀남봉 직전의 암봉을 우회하여 지나면,

 

 

좌측 써레봉 방향 지능선 갈림봉인 선녀남봉(仙女南峰, 677.2m) 정상에 도착한다.

 

<선녀남봉(仙女南峰, 677.2m)>

선녀남봉은 선녀봉의 남서쪽에 마주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금남기맥에서 좌측 써레봉 방향 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선녀남봉 정상석.

 

선녀남봉 돌탑 아래에는 써레봉 방향 조망이 트인 전망대가 있어서 조망을 즐기며 쉬어 가기에 더없이 좋다.

 

서쪽 써레봉 방향.

 

<써레봉(660m)>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산으로, 암석 봉우리가 뾰족뾰족하게 솟아오른 모양새가 옛날에 갈아놓은 논바닥을 고르는데 쓰던 농기구인 써레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써레봉은 선녀봉의 서쪽 능선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왕사봉에서 칠백이고지, 선녀봉, 불명산으로 연결된 능선을 타고 가다가 선녀봉에서 서쪽으로 빠지는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 멀리 고당리로 오르는 선야봉이 있다. 남쪽으로 신흥계곡을 넘으면 봉수대산이 자리하고 있다. 봉우리에서 북쪽 사면에 내린 물은 시우동으로 들어가 흐르다가 고산천이 되며, 남쪽 사면에 흐르는 물은 이름난 신흥계곡으로 들어가서 고산천으로 유입한다. 북동쪽 선녀봉 너머로는 장선천에 유입되어 금강으로 흐른다. 정상 부근에 민머리의 바위 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다.
써레봉은 정상에 오르는 길에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없어 산행길을 찾기가 쉽지 않고, 정산 부근에서는 암벽들이 늘어서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은 산이다. 서쪽 능선 아래에는 청소년수련원이 있으며 계곡을 넘어 화암사가 있다. 북쪽으로는 용계재가 있으나 현재는 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부실하다. 써레봉의 북쪽 사면으로 오르고자 하면 국도 제17호선에서 화암사 방향으로 가다가 싱그랭이마을 보호수 앞에서 우측으로 ‘시우동’ 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산의 서쪽 가천리 구재마을에서부터 신흥계곡을 따라가면 남쪽 사면의 산행길로 이동할 수 있다.

 

남쪽 운장산 방향.

 

동남쪽 명덕봉 방향.

 

남쪽 운장산 방향.

 

남서쪽 봉수대산 방향.

 

서쪽 써레봉 방향.

 

서북쪽 화산면 방향.

 

금남기맥의 출발지점인 금만봉 방향.

 

 

선녀남봉 전망대에서 하염없이 조망을 즐기고 싶지만 앞서간 분들을 따르려 선녀남봉을 뒤로하면,

 

 

옛날 격전의 흔적으로 보이는 석축을 쌓아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는 선녀봉 갈림봉(670m)에 올라서는데,

 

금남기맥은 직진 방향이고, 직우틀 500m 지점에 있는 선녀봉(665.9m) 방향 등로가 더 선명하다.

 

<선녀봉(仙女峰, 665.9m)>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와 운주면 금당리, 고당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선녀봉’이라는 지명은 주변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고 가는 곳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또는 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처녀가 잉태한 모습과 닮았다 하여 그렇게 불린다고도 한다. 선녀봉의 북서쪽으로는 용계재를 넘어 불명산(佛明山)과 연결되어 있고 북쪽 장선천을 건너 천등산과 대둔산을 조망하고 있다. 남서쪽 능선을 따라 칠백이고지와 왕사봉, 장군봉이 펼쳐져 있으며 남쪽으로 써레봉, 봉수대산이 마주하고 있다.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산으로, 산의 서쪽 골짜기는 고산천으로 흘러가는 만경강 수계이고, 북쪽 골짜기는 장선천[충청남도 논산천]으로 유입하여 금강 수계를 이룬다.
선녀봉의 동쪽과 동북쪽을 둘러 흐르는 장선천 계곡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오염되지 않은 전라북도의 두메산골로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주무대로 알려져 있으며, 여름철 피서객과 가을철 단풍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정상에서 동북쪽 사면 아래에 있는 운주면 고당리 삼거리마을은 일명 ‘선녀와 나무꾼’ 마을로 지정되어 매년 관련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선녀봉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운주면 고당리에 있는 선녀봉은 고당리 삼거리마을과 가까운 봉우리이고, 금당리에 있는 서쪽 선녀봉은 금남기맥에 위치한 이 산의 주봉이다.

 

선녀봉 방향 들머리 모습.

 

 

선녀봉 갈림길 봉우리에서 직진의 금남기맥 용계재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면,

 

이내 가야 할 시루봉 방향의 금남기맥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며,

 

우측으로는 천등산과 대둔산이 멋지게 조망된다.

 

<천등산(天燈山, 707m)>
완주군 운주면에서 산북리와 배티재를 넘어 금산으로 빠지는 17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이 대둔산, 남쪽이 천등산(707m)이다. 행정구역상 전북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 산북리에 위치하고 있다. '천등(天燈)'이란 지명은 후백제의 견훤(甄萱, 867~936)이 돌을 쌓아 전주성을 치려는데 연못 속에서 용이 닭 우는소리를 내니 산신이 환한 빛을 내서 앞길을 밝혀주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등산은 대둔산 못지않은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한편, 짙은 숲이 어우러진 돔형의 암릉으로 구성된 산이다. 예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 온 대둔산의 명성과 그늘에 가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에는 천등산이 산행의 최적지로 등산객들에게 알려지면서, 경향 각지의 산악인들이 찾고 있는 산이다. 산은 온통 큰 덩치의 골산으로 이루어지고 계곡과 계곡에는 절벽과 폭포 그리고 바위 사이를 뚫고 나오는 소나무들로 하나의 거대한 산수화 작품이다. 특히 가을엔 암봉과 암벽 사이의 단풍으로, 겨울엔 흰 눈에 덮인 거대한 은빛 바위와 계곡에 활짝 핀 설화 등으로 길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북동쪽 운주면 방향.

 

 

좌측으로 경천면 가천리 방향과,

 

써레봉 능선이 조망된다.

 

 

선녀봉 갈림봉에서 120m 정도를 줄기차게 내려서서 암봉(550m)에서 사방을 조망해 본다.

 

우측 천등산 방향.

 

돌아본 선녀봉 갈림봉 방향.

 

좌측으로 보이는 써레봉 능선.

 

 

바위가 널려있는 내림길을 내려서고,

 

낙엽이 푹신한 능선길도 지나면,

 

 

바위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암릉(414m)을 지나는데,

 

우측 아래로 용계재 우측 편에 있는 운주면 금당리 용계원 마을이 조망된다.

 

 

산벚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능선을 따르는데,

 

우측으로 우람한 천등산과 용계원 마을이 조망되고,

 

앞쪽으로는 용계재를 지나 올라야 할 불명산이 성큼 다가선다.

 

 

수많은 암봉을 넘느라 지친 다리를 위로하듯 편안한 능선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용계재 직전 봉우리인 288.3m 봉을 지나서,

 

급경사의 비탈길을 내려서면,

 

 

사각정자 쉼터가 있는 용계재에 도착한다.

 

<용계재(龍鷄峙)>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와 경천면 가천리를 잇는 고개로, 조선시대에는 고개 아래 용계원 마을에는 용계원 있었다고 한다. 이곳 지명에는 용과 닭이 관련된 지명이 많은데, 대둔산과 천등산의 경계로 17번 국도와 나란히 흐르는 옥계천(玉鷄川), 원장선에서 장선리까지의 지명 중에 용계천((龍鷄川), 용계성((龍鷄城), 용계재, 용계원((龍鷄園) 등 모두가 천등산의 유래에서 용이 닭울음소리를 내었다는 전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견훤이 등불과 닭울음소리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설이 있고, 고산지와 대동여지도에는 조선조에 용계원이 있어서 그리 부른 모양이다.

 

좌측 경천면 가천리 방향.

 

우측 운주면 금당리 방향.

 

용계재 정자에서 좀처럼 하지 않던 등산화 벗고 쉼을 하는데, 모두가 시원한 얼음물이 먹고 싶지만 따뜻한 커피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빵과 떡, 과자 등을 나누며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가 없음에 아쉬움을 남기고,

 

용계재를 뒤로하고 불명산을 향해 남은 기맥 산행에 나선다.

 

 

잡목과 가시나무가 빼곡한 등로를 오르다가 돌아본 운주면 금당리 용계원 마을 조망.

 

<용계원(龍鷄院, 龍溪院)>
용계원(龍鷄院, 龍溪院)은 예전에 역원(驛院)이 있던 곳으로 진훤(견훤)이 전주에 입성을 할 때 마지막 밤을 여기서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닭소리'에 놀라 일어나 서둘러 80리 길을 재촉하여 전주에 도착, 뜻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용계원 주위 물과 절벽 위에 쌓은 '용계성(龍鷄城, 龍溪城)'이 있는데, 신라가 백제를 칠 때 5만 군사가 지나간 길목이었다. 일제시대에 지소(紙所)로 유명했는데, 미룡지라는 얇은 종이를 떠서 일제에 군납을 하였다. 6.25 전쟁 중 온 마을이 불에 탔다. 마을 북쪽에 높이 솟은 천등산(707.0m) 샘물은 영험이 있어 하룻밤 사이에 피부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한다는 전설이 있다.

 

용계재를 출발하여 불명산 방향 능선길로 올라서면 작은 가시나무와 잡목이 등로를 뒤덮을 기세다.

 

돌아본 선녀남봉 방향의 금남기맥 능선.

 

 

잡목이 빼곡한 오름길을 지나고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

 

403m 봉을 지나는데 이곳부터는 가시가 없는 넓은 등로가 이어진다.

 

 

다시 한번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서면,

 

입석 바위가 횡으로 줄지어 선 암릉봉이 나타나는데, 불명산 정상부다.

 

 

작은 오석 정상석과 돌탑이 있는 '불명산(477.2m)' 도착.

 

<불명산(佛明山, 477.2m)>
불명산은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천면과 운주면에 걸쳐 있으며 두 지역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산은 분지에 있으며 정상은 시루봉인데, 떡시루 모양을 닮았기에 붙여진 지명이다. 장선리재와 용계재 사이에 위치하며 반달 형태로 4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서쪽의 세 번째 봉우리에는 봉화터가 있다. 지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밝혀주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산의 남쪽에는 화암사(花巖寺)가 있다. 화암사는 신라 시대의 사찰로서 극락전(보물 제663호)과 우화루(보물 제662호)가 있다. 『여지도서』(고산)에는 불명산이 "왕사봉에서 뻗어 나온다.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명산 정상석.

 

불명산 정상에서 지나온 선녀남봉을 돌아보며 전 여사님이 준비해준 맛난 파인애플을 나누고,

 

불명산 정상 인증도 남기고는,

 

불명산을 뒤로하고 우측 능선을 따라 장선리재를 향한다.

 

 

불명산 내림길에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바위 암릉을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고,

 

낙엽이 수복한 바위 우회길을 지나면,

 

 

넘어야 할 456봉 우측으로 천등산이 보이고,

 

진행 방향 456봉(묘지봉)과 그 뒤 시루봉(428.4m) 좌측으로 능바위산과 다음 구간에 오를 장재봉도 조망된다.

 

좌측 천등산과 금당리 방향.

 

우측 운주면 금당리 운주계곡 조망.

 

 

파묘의 흔적이 있는 456m 봉을 넘고,

 

이내 442봉을 지나며 좌향 하여 내려서면,

 

가파른 내림길에 가드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빼곡한 산죽 지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경천면 가천리 소재 화암사 방향 갈림길 안부(360m)를 지나게 된다.

 

화암사 갈림길 이정표.

 

<화암사(花巖寺)>
완주 화암사(完州 花巖寺)는 신라 효소왕 3년(694년)에 일교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설총도 한때 이곳에서 공부하였다고 전한다. 극락전은 1425년 성달생의 시주로 건립됐으며, 중국 남조시대에 유행했던 하앙식 건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으로, 국보 제316호로 지정되었다. 우화루 또한 고대 건축 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건물로 보물 제6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해군 때 만들어진 동종(지방유형문화재 제40호)은 호영이 주조한 것으로 절이나 나라에 불행한 일이 일을 때에는 스스로 소리를 내어 위급함을 알려주었다고 하여 자명종이라고 부른다. 화암사는 불명산의 원시림이 병풍처럼 둘려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문화유산 답사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운치 있는 곳이다.

 

돌아본 화암사 갈림길.

 

 

완만한 능선 오름길 암릉을 우회하여 지나면,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천등산이 가늠되는 372.7봉을 지나게 되고,

 

 

많은 표지기들이 걸려있는 시루봉(427.6m) 정상에 도착한다.

 

<시루봉(428.4m)>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와 경천면 가천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시루봉은 떡시루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시루봉을 중심으로 장선리재와 용계재 사이에 반달형태로 여러 개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고, 남쪽 산기슭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천년고찰 화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시루봉 정상 옆에서 쉬고 있는 분들을 불러 인증을 남기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면 330봉 우회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안부에서 기맥길은 직진의 앞쪽 봉우리로 올랐다가 우틀하여 내려서야 하지만, 몇개의 표지기들이 우측 사면길로 길 안내를 하고 있다. 만약 직진하여 오른다면 바로 앞 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정면 봉우리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등로가 나 있고 그쪽으로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서 기맥 능선으로 느껴져 알바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수많은 봉우리를 넘으며 지친 상태라 가차 없이 우측 사면길로 접어들어 장선리재로 향하면,

 

이내 봉우리를 넘어온 금남기맥 능선에 복귀한다.

 

올 들어 처음 보는기맥 능선의 부지런한 청개구리가 눈길을 끌고,

 

최근에 설치한 듯 보이는 산악기상관측소를 지나면,

 

 

이내 임도가 지나는 장선리재에 도착한다.

 

<장선리재>

장선리재는 북쪽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에서 남쪽 경천면 가천리 면 소재지를 연결하는 고개로, 장선리재는 북쪽 장선천(長仙川)이 지나는 운주면 장선리(長仙里)에서 이름을 따 왔다.

 

돌아본 장선리재 전경.

 

 

장선리재에서 능바위산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면 잠시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이내 급경사 오름길로 바뀌며 10여분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잠시 완만한 소나무숲 능선이 이어지고,

 

뒤쪽 나뭇가지 사이로 오후의 햇살을 받고 있는 천등산이 듬직하니 조망된다.

 

 

잠시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거대한 암릉이 앞을 막아서는데,

중앙 우측 편 가운데로 암반 모서리를 잡고 오를 수 있는 등로가 열려있다.

 

길은 보이지 않으나 크게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으나,

동절기 눈이 쌓여있으면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구간이다.

 

 

길없는 암릉을 조심조심 올라 각진 바위들이 나뒹구는 392봉쯤에 올라서면,

기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좌전방으로 가야 할 능바위산 전위봉인 464봉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대둔산(좌)과 천등산(중앙)이 또 다른 모습으로 조망된다.

 

 

392봉을 내려서니 앞서간 분들이 안부에서 쉼을 하고 있는데,

배낭에 빵과 과자 등을 두고도 물이 거의 소진되어 감히 꺼내볼 생각도 못한다.

 

 

464봉을 향해 고만 고만한 암릉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차츰 고도를 높여 가는데,

 

지나온 불명산과 선녀남봉이 좌측으로 보이며 오늘 걸어온 금남기맥 능선이 아련히 가늠된다.

 

지나온 시루봉 방향.

 

 

지친 다리를 끌고 암반 봉우리를 올라서니,

 

천등산이 멋진 자세로 앉아 있고,

 

선녀남봉과 써레봉 능선을 배경으로 불명산의 숨겨진 모습이 뚜렷이 조망되며,

 

우측으로는 오늘 산행의 종점인 말골재와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장재봉이 지척이다.

 

 

사선으로 줄지어 날카로운 모서리를 꼽추 세우고 있는 바위 지대를 지나는데,

 

좌측(남동쪽)으로 보이는 완주군 경천면 방향 산그림이 황홀하게 다가온다.

 

 

능바위산 동봉이라고도 불리는 464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로 다음 구간에 가게 될 장재봉 산줄기가 건너다 보이며,

 

뒤쪽으로는 금남정맥의 바랑산과 월성봉이 조망된다.

 

 

'능바위산 동봉'으로도 불리는 464봉 정상에 도착하니 앞쪽으로 거의 비슷한 높이의 능바위산(476.1m)이 건너다 보이는데, 이 봉에서 약간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게 될 '능바위산'은 '능바위산 서봉'으로 구분하여 부른다고 한다.

 

돌아본 불명산 방향.

 

가야 할 능바위산(미륵산) 정상 모습.

 

가야 할 능바위산(476.1m) 좌측 아래로 운주군 경천면 가천리 동향동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능바위산 동봉과 서봉 사이의 안부를 지나고,

 

능바위산 오름길에 돌아본 464봉의 동쪽 절벽 옆으로 걸어온 금남기맥 능선이 켜켜이 가늠되며,

 

멀리로 운장산쯤도 희미하게 가늠된다.

 

돌아본 불명산과 선녀남봉 방향.

 

 

천신만고 끝에 힘겹게 오른 능바위산/미륵산(476.1m) 정상에는 정상석은 고사하고 표지기조차 보이지 않고,

지쳐서 말을 건네기도 힘겨운 동료들이 쉼을 하고 있다.

 

<능바위산/미륵산(476.1m)>
능바위산은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과 운주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76m이다.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서쪽과 남쪽은 천길 낭떠러지이며 바위들을 켜켜이 쌓은 것 처럼 보인다. 능바위산은 전면의 바위 층 사이에 나무가 자라고 있어 바위와 나무가 구분되지 않는다. 아주 무성한 것은 아니지만 봉우리를 나무가 덮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암봉 같지 않아 보인다. 두 암봉 가운데 서쪽 봉우리가 주봉이며 사방 어느 쪽에서 올라도 매우 험하고 가파르다. 또한 서봉과 동봉 사이는 깊은 잘록이를 이루고 있어 두 봉우리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든다.

화암사 인근에는 경천이나 운주의 주민들이 '능바위' 또는'능암산'이라 부르는 경관이 아주 빼어난 산이 있다. 본래 '능(陵)'이란 왕의 묘를 의미하기 때문에 '능바위'란 지명은 적당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농바위'가 더 어울린다. '농(籠)'은 '버들이나 싸리, 대나무 등을 엮어 만들고 겉과 속에 종이를 바른 자그마한 가구로써 그릇 또는 옷 따위를 넣어 두는 데 사용되었다. 이곳 우뚝 솟은 바위들은 옛날 농의 채처럼 켜켜이 포개져 절벽의 층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는 '농바위'란 지명은 흔하게 널려 있다. 이 산도 '농바위'로 생각되지만,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능바위산'으로 굳어졌다.

 

남서쪽 완주군 경천면 방향.

 

살짝 당겨본 경천저수지 조망.

 

능바위산/미륵산 정상에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면서도 갈증을 해소할 물이 없음을 한탄한다.

 

능바위산에서 무심코 직진 능선 길을 따르면 '무인 산불 카메라' 시설물이 나오는데 알바 길이고, 말골재 방향 기맥길은 정상에서 직우틀하여 사면 아래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야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우 운주면, 좌 경천면을 가르며 이어 온 기맥 길은 온전히 운주면 안으로 들어서서 북서진하게 된다.

 

 

정상부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 기맥길로 들어서서 말골재 방향 등로로 들어서면,

 

급경사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장농 궤짝' 모양의 입석 바위를 좌회하여 지난다.

 

 

서있기 조차 힘든 급경사 내림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미끄럽기 그지없고,

 

그렇게 고도를 낮추다 보면 앞쪽으로 다음 구간 가야 할 장재봉 갈림봉과 우측의 장재봉이 우뚝 솟아 보이고,

 

다시 한번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차량의 소음이 노랫소리 마냥 반갑게 들려오며 17번 국도가 나타나며 말골재에 도착한다.

 

<말골재(馬骨峙, 190.9m)>

말골재는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와 구제리를 잇는 고개다. 말골재는 ‘말구리’와 ‘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말구리는 ‘큰 골짜기’의 뜻이고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 ‘지형이 말의 허리처럼 생긴 골짜기’, ‘지형이 말의 아가리와 같은 골짜기’ 등과 같은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말골이나 말구리의 말을 ‘말 말(馬)’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를 지나는 17번 국도는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 도립공원에서 시작하여 용인시 양지 IC에 이르는 도로로, 백두대간을 비롯해 호남정맥, 금남정맥, 금북정맥, 한남정맥 등 1대간 4정맥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도로이면서, 이곳 금남기맥(대동금남정맥)도 이 말골재를 통과하여 지나간다.

우리나라에는 '아기장수와 용마' 전설이 비슷한 버전으로 수없이 많이 전해 오는데, 이곳 말골재도 아기장수와 용마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날 천등산 부근 마을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예로부터 집안에 장수가 태어나면 역적 노릇을 하여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부부는 겁을 먹고 귀한 자식이지만 죽이기로 했다. 아기를 밧줄로 묶어 네 발 달린 떡판으로 누르고 그 위에 큰 맷돌을 올려놓으니, 꼭 일주일 만에 목숨이 끊겼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3일이 지난 뒤 갑자기 용마(龍馬)가 나타나더니 울부짖으며 아기장수를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이 고개에 떨어져 죽었다 하여 마골치(馬骨峙, 말골재)라고 불리어 전해지는 고개라 한다.

 

말골재 도로를 건너 '완주 경찰서' 입간판 앞 임도가 다음 구간 들머리다.

 

말골재에서 바라본 다음 구간 가게 될 장재봉 갈림봉과 장재봉(우) 방향.

 

 

말골재 북쪽 아래에 주차해 놓은 차량을 회수하여,

 

탑정호 호반에 있는 평매매운탕에서 늦은 요기를 하고,

 

탑정호의 석양을 뒤로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금남기맥 첫번째 산행을 계획하면서 상당한 난이도를 예상했지만,

업다운이 심한 빨래판 구간에 기온까지 예상보다 높아서 상당히 힘들게 산행을 마쳤다.

 

코로나19에 따른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5개월째 이어짐에 따라

부득이하게 산행이 가능한 몇 사람만이 함께 금남기맥 산행을 시작하였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진정되어 산우회원 모두가 함께 산행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