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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금남기맥 2차(말골재~소룡고개) : 더운 날씨에 걸은 빨래판 능선

by 재희다 2021. 5. 3.

산 행 지 : 금남기맥 2차(말골재~소룡고개) 전북 완주군, 충남 논산시.
산 행 일 : 2021. 04. 24.(토)
산행코스 : 말골재(210m)~장재봉갈림길(장재봉 왕복)~수재~빼재~남당산(375.4m)~삼면봉(448.4m)~밤아니재~작봉산(419.6m)~되재~까치울재~까치봉(456.1m)~말목재~삼각점봉(456m)~옥녀봉(411.7m)~범허리재(#63 송전탑)~정토분맥갈림봉(363m)~함박봉(403.1m)~소룡고개 (도상거리 약 18km, 9시간 소요)
산행참가 : 4백두.

<산행지도>

 

매스컴에서는 연일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대한 위협적인 언급이 줄을 잊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대충 심드렁한 분위기에, 코로나는 남의 일이고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일이라 내 할 일이나 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실적으로 코로나19는 한두 달에 끝이 날 문제가 아니므로 확진자가 10명이던, 500명이던 살피고 조심하여 감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가며 내 삶을 역어가야만 하는 것이기에 오늘도 배낭을 메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헤매기로 한다.

 

지난번 금남기맥 첫 번째 산행에서 물이 부족하여 고생을 했던 터라, 작은 물병 하나들 더 넣어서 배낭을 꾸리고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이른 새벽시간이라 부지런한 골퍼들과 먼길 가는 나드리 차량들만으로 붐비지 않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신갈정류장에서 총무님 일행을 태우고는, 쉬지 않고 달리고 달려서 7시쯤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소룡고개에 도착하니, 역시나 창병씨의 성실하신 지인분께서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소룡고개 고갯마루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서 고개 북쪽 아리스타 CC 근처에 주차를 하고, 지인의 차로 산행 들머리인 말골재에 도착하니 7시 반쯤이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는 터라 바로 차에서 내려 산행에 나선다. 

 

금번 구간 출발지인 말골재는 좌.우 모두 온전히 완주군에 속하다가, 급경사 오르막을 올라선 장재봉 갈림봉(430m)에서 충청남도 도계를 만나 좌 전라북도 완주군, 우 충청남도 논산시의 경계를 따라 산행 종료지점이 소룡고개까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도계를 따르게 된다. 첫 번째 구간인 금만봉~말골재에 이어 이번 구간도 대체로 업다운이 심한 빨래판 구간이며 특히 오르막과 내리막의 경사가 아주 심한 구간이다. 다만 산행 막바지인 말목재~소룡고개 구간은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소룡고개에서 기맥 남쪽 화산면과 경천면을 경유하여 말골재까지 데려다준 지인분께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말골재 완주경찰서 광고판 옆 수레길로 들어서며 금남기맥 두 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말골재(馬骨峙, 190.9m)>
말골재는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와 구제리를 잇는 고개다. 말골재는 ‘말구리’와 ‘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말구리는 ‘큰 골짜기’의 뜻이고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 ‘지형이 말의 허리처럼 생긴 골짜기’, ‘지형이 말의 아가리와 같은 골짜기’ 등과 같은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기도 하나, 이는 말골이나 말구리의 '말'을 ‘말 마(馬)’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를 지나는 17번 국도는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 도립공원에서 시작하여 용인시 양지 IC에 이르는 도로로, 호남정맥을 비롯해 금남정맥, 금북정맥, 한남정맥 등 4정맥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도로이면서, 이곳 금남기맥(대동금남정맥)도 이 말골재를 통과하여 지나간다.
우리나라에는 '아기장수와 용마' 전설이 비슷한 버전으로 수없이 많이 전해 오는데, 이곳 말골재도 아기장수와 용마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옛날 천등산 부근 마을에서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예로부터 집안에 장수가 태어나면 역적 노릇을 하여 집안이 망한다고 하여 부부는 겁을 먹고 귀한 자식이지만 죽이기로 했다. 아기를 밧줄로 묶어 네 발 달린 떡판으로 누르고 그 위에 큰 맷돌을 올려놓으니, 꼭 일주일 만에 목숨이 끊겼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3일이 지난 뒤 갑자기 용마(龍馬)가 나타나더니 울부짖으며 아기장수를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이 고개에 떨어져 죽었다 하여 마골치(馬骨峙, 말골재)라고 불리어 전해지는 고개라 한다.

 

장재봉 갈림봉을 향한 기맥길은 수레길로 들어서서 이내 우측 숲길로 진행하게 된다.

 

말골재에서 장재봉 갈림봉까지는 500m 남짓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고도차가 250m에 이르러 금남기맥에서는 가장 가파른 급경사 구간이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오름이 시작되지만 조금 오르다 보면 급경사로 바뀌며 바로 머리 위에 넓게 절벽이 길을 막고, 곧 굴러 떨어질 듯 보이는 아슬아슬한 된비알을 올라야 한다. 더구나 돌과 흙이 뒤섞인 사면은 쉽게 미끄러져 자칫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로 바로 굴러 떨어질 듯하여 무척이나 힘들고 위험한 구간이다.

 

 

잠시 잡목이 빼곡한 거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가파른 사면 등로가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고,

 

등로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미끄러져 내려서 더욱 힘들게 하는 급경사 오름길이 이어진다.

 

 

정면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절벽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데,

희미한 선답자들의 족적을 따르면 무난히 바위 절벽을 오를 수 있다.

 

바위 절벽을 오르다가 돌아본 지난 구간의 능바위산 방향.

 

봉우리에 가까워질수록 네 발로 기어서 오르게 되는데, 낙엽이 많고 흙과 돌이 섞인 사면이라 밑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십상이다. 어떤 곳은 잡을 나무나 바위도 없어서 진퇴양난인 위험한 곳도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우전방으로 건너다 보이는 천등산 방향.

 

 

가슴 조리며 힘겹게 도착한 장재봉 갈림봉에는 앞서간 분들이 벗어놓은 배낭이 기다리고 있다.

금남기맥은 이곳 장재봉 갈림길 봉우리에서 160도 좌틀하여 내림길로 이어지고, 장재봉은 직진 방향 500m에 있다.

 

말골재에서 500m 남짓의 장재봉 갈림봉에 올라서는데 35분이 소요되었다. 최근에 다닌 분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선답자들의 발자국을 따르는데 크게 무리가 없어 보여 우려했던 위험한 상황은 격지 않았다. 우려했던 것보다 쉽게 올라서 그런지 예정에는 없던 장재봉을 다녀오기로 하고, 배낭을 두고 500m 떨어져 있는 장재봉을 향한다. 사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맨 먼저 오른 총무님께서 직진의 장재봉 방향이 금남기맥 능선인 줄 알고 직진하여 진행하는 바람에 모두들 하는 수 없이 장재봉 방향으로 진행하였다고 하며, 뒷사람들이 쫓아가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총무님은 장재봉을 지나 완창리 방향으로 진행했을 거라고 했다. 총무님의 주력이면 완창리를 다녀와도 될을텐데..ㅉㅉ

 

 

커다란 바위들이 나뒹구는 능선을 따라 장재봉을 향하는데, 

 

능선 우측 아래로는 말골재를 지나 운주면 소재지로 향하는 17번 국도가 내려다 보이는 수직의 절벽이 이어진다.

 

돌아본 능바위산과 말골재 방향.

 

 

낙엽이 수북이 쌓인 능선을 지나면, 

 

가드 로프가 메인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되고,

 

 

'장재봉' 표지판과 삼각점이 있는 장재봉 정상에 도착하니,

앞서간 총무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왜 배낭을 가져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헐!

 

<장재봉(長才峰, 487.3m)>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는 찾을 수 없지만 '봉우재'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봉우재라는 명칭은 보통 봉화와 관련 있는 산에 붙는 경우가 많다. 장재봉 정상에는 오래된 삼각점이 있고 나뭇가지에 '장재봉'이라 적힌 표지판이 걸려있지만, 주변이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은 없다.

 

장재봉 정상 인증.

 

 

말리지 않았다면 총무님의 알바가 예정되었던 완창리 방향. 

 

 

장재봉을 뒤로하고 배낭을 두고 온 장재봉 갈림봉으로 돌아나간다.

 

좌측으로 보이는 말골재와 건너편 능바위산 조망.

 

장재봉 갈림봉으로 돌아나와 모닝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찾는다. 

 

 

다시 기맥길 잇기에 나서 수재를 향해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의 임화저수지가 보이며, 

 

성황당 터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는 수재를 지난다.

 

<수재(秀峙)>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는 소나무가 빽빽하게 많았고 골짜기가 깊고 길어서 재를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서 빼재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빼재를 한자로 표기하며 '빼어날 수(秀)' 자를 써서 수재라고 표기한 듯하다. 수재에는 성황당 터로 보이는 돌무덤이 있으며, 좌측은 운주 방면, 우측은 수곡사로 이어지는 등로가 나 있고, 기맥 길은 직진 남당산과 쌍계사 방향이다.

 

수재 이정표.

 

 

369.2봉 오름길에 우측으로 임화저수지 방향이 조망되고, 

 

가드 로프가 메여 있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앞쪽으로 내려서게 될 빼재에서 착안해서 빼재봉이라고도 부르는 369.2봉을 지난다.

 

 

급경사의 369.2봉 내림길을 내려서서, 

 

빼재로 짐작했던 안부를 지나 다시 봉우리로 올라 완만한 능선을 따르면,

편백나무가 식재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좌측으로 운주면 구제리 백석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가야 할 남당산 방향.

 

좌측 구제리 백석마을 전경.

 

좌후방 봉수대산 방향.

 

 

잠시 전에 지난 안부가 빼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완만한 능선 마루 나뭇가지에 빼재(315m)라 적힌 표지기가 걸려있는데, 어디에도 고개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Y자 소나무가 있는 327봉을 지나고, 

 

낙엽이 수북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면, 

 

어린 편백나무가 식재된 벌목지대가 이어지며, 

 

뒤쪽으로 지나온 장재봉과 장재봉 갈림봉이 조망되고, 

 

봉수대산 방향 골짜기로 운주면 구제리 마을이 조망된다.

 

 

말골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렸는데, 

오름길과 내림길 모두에 가이드 로프가 메여 있을 정도로 경사가 가팔라서 지치고 물 소비도 많아진다.

 

다시 남당산 방향 능선으로 진행하는데 가야 할 448봉 동쪽 사면이 온통 벌목이 되어있고, 

산허리를 감도는 임도가 산악자전거 코스로 좋아 보인다.

 

돌아본 장재봉 방향.

 

 

작은 관목들이 들어차 있는 남당산 정상에 도착한다.

 

<남당산(南堂山, 375.4m)>
전라북도 완주군의 화산면과 충남 논산시 양촌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논산시 양촌면 고산리 상고마을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남당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남당산 정상에는 쉬어갈 만한 장소조차 보이지 않고, '남당산' 표지판은 사면 나무둥치에 걸려있다.

 

나무둥치에 걸려있는 남당산(376m) 표지판을 지나 448봉을 향한다.

 

 

걸어온 금남기맥 능선을 가늠해 보고, 

 

벌목된 능선을 따라 448봉을 향한다.

 

448봉 오름길에 돌아본 장재봉 방향.

 

지나온 남당산 너머로 대둔산과 금남정맥의 산들이 아련하다.

 

북쪽 바랑산 방향.

 

북동쪽 월성봉과 대둔산 방향.

 

동쪽 천등산 방향.

 

동남쪽 선녀남봉 방향.

 

벌목지대 오름길을 올라 숲길로 들어서며 413봉쯤을 지나고, 

 

 

잠시 더 오름길을 올라 삼면봉인 448.4봉 정상에 도착하니,

돌축대로 조성한 참호의 흔적이 있고 논산시에서 설치한 '남당산' 이정목이 있다.

 

그런데 10여분 전에 남당산을 지났는데, 이곳 448봉에도 논산시에서 설치한 '남당산(376m)'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높이를 376m로 표시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남당산의 위치를 착오한 듯하다. 이 448.4봉은 삼면봉으로 금남기맥 좌측이 완주군 운주면에서 화산면으로 바뀌고, 우측은 논산시 양촌면이 계속 이어지는 곳인데, 이 봉우리 남동 방향 능선은 화산면과 운주면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448봉 정상에서 '376m 남당산'이라고 지자체에서 착오 설치한 이정목을 배경으로.

 

448봉 정상 전경.

 

 

우측으로 용도 폐기된 차광막이 처져있는 448봉 내림길은 모처럼 완만하게 이어지며,

 

좌측 화산면 방향의 산그림이 정겨웁고,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니 밤아니재를 지나게 된다.

 

<밤아니재>
충남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논산시와 완주군의 행정 경계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고갯길이 하도 좁고 험하고 낮에도 밤과 같이 컴컴하여 혼자서는 넘어 다니지 못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고개의 동쪽 능선은 남당산으로 이어지며, 서쪽은 작봉산과 까치울재로 이어지고 있다. 고개의 북서쪽으로 양촌면 중산리 마을과 쌍계사가 있고, 동쪽에는 임화리가 있다.

 

밤아니재 이정표.

 

 

밤아니재를 지나 급경사 오름길에 우측 사면 방향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사면길은 양촌면 방향 지능선으로 이어지므로 직진의 오름길을 따라야 하고,

 

그렇게 급경사 능선 방향 직진의 오름길을 오르면 석축이 둘러있는 381봉이 나오고,

 

교통호가 얽혀있는 381봉에서 좌틀하여 완만한 능선길로 들어서면,

우측 양촌면 쌍계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완만한 능선길이 호적이 이어진다.

 

 

완만 능선길을 따라 이정표와 벤치가 설치된 360봉에 도착하니,

 

이정표의 좌측 가야곡 삼전리 작봉산 방향이 기맥길이고, 정상 벤치에서 잠시 쉼을 하는데 앞서 갔던 분들이 나타난다.

아마도 직전 381봉 오름길에서 우측 양촌리 방향 갈림길이 우회로인 것으로 착각하여 잠시 알바를 다녀온 모양이다.

 

 

10여 분간의 쉼을 뒤로하고 좌측 작봉산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니 급경사 내림길에 가드 로프가 이어져 있고,

 

묵묘가 자리한 안부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승치리 임도 끝지점 이정표가 나타난다.

 

좌측 임도를 따라 나가면 화산면 승치리 방향으로 내려서고, 우측 아래로 내려서면 쌍계사와 절골로 내려서게 된다는데, 우측으로는 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임도 끝지점 이정표.

 

 

잠시 완만한 오름길을 따르면 우측 골짜기에 자리한 쌍계사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게 되고,

 

<논산 쌍계사(雙溪寺)>
작봉산(옛 이름 불명산) 북쪽 기슭 양촌면 중산리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현재 대웅전을 비롯하여 봉황루,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겸 산신각, 요사인 명월당 등의 건물이 있고, 절 입구에는 쌍계사 중건비와 최봉당혜찬대사지탑을 비롯한 9기의 부도가 있으며, 대웅전 옆에는 새로 조성한 관음보살좌상과 관음보살 조성 비문이 있다.
우리나라에 '쌍계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전국에 많이 있으며, 논산 쌍계사는 고려시대 초기 광종 무렵에 혜명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암(白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한다. 창건 후 쌍계사는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대단히 번성하여 호서와 호남의 대가람을 이루었다 하며, 고려 말에 이르러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였고, 병란으로 불탄 후 중건을 하였으나 또다시 불에 타서 조선 영조 15년 (1739년)에 대웅전을 비롯한 중건불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쌍계사에는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칡넝쿨 기둥"에 관한 내용으로 이 칡넝쿨 기둥을 돌며 자신의 소원을 빌면 무병장수 왕생극락한다 하여 특히 윤달이 드는 해에는 많은 불자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보물 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의 공포는 다포계로 우리나라에서는 출목수가 자장 많다고 하며, 대웅전 창문의 꽃무늬 문살이 아름다운 조선후기 건축물이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방향을 조망하며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벤치와 우측 쌍계사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능선 갈림봉에 올라 좌측 작봉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고,

 

다시 가이드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우측 중산리 방향 지능선 갈림봉에 올라서서 좌측 작봉산 방향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중산리 숲길 안내도'와 삼각점이 있는 '작봉산(419.6m)'에 도착하는데,

널찍한 폐헬기장인 작봉산 정상에는 오늘 처음으로 두 쌍의 부부 산객이 쉼을 하고 있다.

 

<작봉산(鵲峰山, 419.6m)>
충남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예전에 이 봉우리에 까치가 많이 살았다 하여 '까치 작(鵲)' 자를 써서 작봉산이라 부른다고 한다는데, 기맥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까치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또 있다. 작봉산은 장성천과 승치곡천의 발원지가 되며, 동쪽 능선은 남당산에 서쪽 능선은 까치봉에 연결된다.
작봉산의 북쪽 골짜기에는 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을 건조한 혜명(慧明)이 창건한 쌍계사가 위치해 있으며, 쌍계사의 경내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과 중건비(重建碑)와 9기(基)의 부도(浮屠) 등이 있다. 쌍계사(雙溪寺)의 중건비에 따르면 “절 남쪽의 작봉산과 남당산은 동서로 이어져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데, 작봉산 자락의 북쪽에 전망이 트인 넓은 대지가 형성되었고 그곳에 쌍계사가 위치한다. 따라서 쌍계사는 작봉산의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선 문헌에는 “쌍계사가 불명산에 있다(雙溪寺 在佛明山)”고 기록되어 있어 작봉산의 옛 지명이 '불명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봉산의 북쪽 골짜기에는 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을 건조한 혜명(慧明)이 창건한 쌍계사가 위치해 있으며, 쌍계사의 경내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과 중건비(重建碑)와 9기(基)의 부도(浮屠) 등이 있다.

 

중산리 숲길 안내도.

 

부부 산객의 쉼을 방해할까 저어해서 그런지 총무님과 창병 대장이 서둘러 자리를 뜨는 바람에 홀로 작봉산 인증을 남기고, 이정표의 '가야곡 삼전리' 방향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서서 작봉산의 한글 표기와 같은 이름을 가진 까치봉을 향한다.

 

 

급경사를 내려서서 다소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는데,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완주군의 산그림이 멋지고,

 

다시 안부를 지나 급경사를 오르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봉우리는 좌측으로 좌회하여 지나게 된다.

 

 

작은 봉우리를 지나 소나무가 자리한 400봉쯤에 올라 목을 축이며 긴 쉼을 하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까치봉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400봉을 뒤로하고 잠시 완만한 능선을 따르다가 능선갈림길에서 직우틀하여,

 

급경사에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가이드 로프를 잡고서 조심조심 내려서면,

 

 

잘록한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건너편 나무둥치에 '되재' 표지기가 걸려있다.

 

<되재/승치(升峙, 280m)>

좌측으로는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가, 우측으로는 임도가 산허리까지 올라오는데 그 아래에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의 쇠목마을이 위치한다. 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인 '되'가 고개 이름으로 붙여졌는데 자세한 연유를 찾을 길이 없다.

 

되재 표지기.

 

 

깃대봉(393m)을 향한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양촌면 중산리의 세목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한참 동안의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깃대봉(393m) 표지기가 걸린 봉우리에 도착하여,

 

깃대봉 정상 인증도 홀로 남긴다.

 

깃대봉에서 본 까치봉 방향.

 

서남쪽 천호산 방향.

 

 

모처럼 완만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지고,

 

교통호의 흔적이 있는 379봉쯤을 지나니,

 

앞서간 분들이 까치울재로 내려서기 직전 능선에서 다리 쉼을 하고 있다.

여름 산행의 느낌이 드는 날씨에 급경사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느라 무척이나 힘이 들어 한참의 쉼을 한다.

 

 

10여 분간의 쉼으로 기운을 차리고는 다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니,

좌.우로 옛고개의 흔적이 뚜렷한 까치울재를 지나게 된다.

 

<까치울재(308m)>
까치울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우항(쇠목) 마을과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 작동 마을 사이에 있는 고개다. 좌측 아래에 춘산리 작동(鵲洞)마을이 있어서 이곳을 '까치울재'로 부르는 듯한데, 국가정보원 지도에는 까치봉 직전 능선봉에 까치울재라 표기하고 있어서 정확한 위치가 애매하다.

옛날 억울한 죄를 짓고 여기에 피신했던 어느 노학자가 자기 아들을 염탐 차 고을에 보낸 후 그 아들이 돌아올 때쯤 까치봉에서 까치가 떼를 지어 울어대면 반가워 고개까지 나가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이를 따서 산봉우리를 까치봉이라 하고, 고개를 까치울재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개의 서쪽은 까치봉(456.1m)과 함박재에 이르며, 까치봉의 북쪽으로 통박산(303.8m)에 이르고 있다. 동쪽 능선으로는 작봉산(419.7m)과 남당산(375.4m)에 이르고 있다. 까치봉~작봉산에 이르는 능선에 해당하는 고개인데, 이 능선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논산시와 완주군의 행정 경계를 이루고 있다. 까치울재는 1983년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가야곡면 삼전리에 속해 있었으나, 개편 후에 양촌면 중산리에 속하게 되었다. 까치울재를 지나는 도로는 없으나, 서쪽의 말목재를 통해 지방도 64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 각 지역을 이어 주고 있다.

 

까치울재 이정표.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330봉쯤을 우회하여 지난다.

 

까치울재를 지나면서부터는 다시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연이어 오르내리며 차츰 고도를 높여 까치봉으로 오르게 되는데, 지금까지 빨래판 코스를 지나오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라 무척이나 힘이 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동차를 소룡고개가 아닌 말목재에다가 새워둘 걸'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해 보지만 이미 정해진 상황을 어찌할 수 없으니 이를 악물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이 다시 급경사 오름길로 바뀌고,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오르다 보니,

 

거친 능선에 철쭉들이 반기고,

 

 

그렇게 힘겹게 까치봉에 도착하니 앞서간 총무님과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까치봉(456.1m)>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가야곡면 삼전리,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다. 까치봉의 동쪽에는 까치울재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억울한 죄를 짓고 여기에 피신했던 어느 노학자가 자기 아들을 염탐 차 고을에 보낸 뒤, 그 아들이 돌아올 때쯤 까치봉에서 까치가 떼를 지어 울어대면 반가워 고개까지 나가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이를 따 산봉우리를 까치봉이라 하고, 고개를 까치울재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 주변에 축대가 둘러진 까지봉 정상에는 수많은 기맥꾼들의 흔적과 까지봉 표지판이 나무에 걸려있고,

산행 초반 장재봉 내림길 이후 처음 만나는 총무님과 함께 과일을 나누며 긴 휴식을 가지고는 까치봉을 뒤로한다.

 

 

급경사의 까지봉 내림길을 내려섰다가 402봉쯤을 지나고,

 

돌들이 나뒹구는 능선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면,

 

401.2봉쯤인데, 논산시에서 설치한 까치봉(456m)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다.

오전에 지나온 남당산 표지목도 엉뚱한 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까치봉 표지목도 위치가 잘못되어 있다. 논산시에서 예산을 들여 설치한 이정목인데 산객들을 헛갈리지 않게 좀 더 정성을 들였으면 좋았으련만, 그냥 예산만 쓴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401.2봉을 뒤로하자 급경사 내림길이 이어지고,

 

오래된 묵묘를 지나자 능선길이 다소 완만해지더니,

 

말목재 건너편으로 가야 할 옥녀봉 능선이 보이며 기맥길은 밤나무밭으로 접어들고,

 

밤나무밭 우측 편으로 외딴집이 보이며,

 

 

643번 지방도가 지나는 말목재에 도착한다.

 

<말목재>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곡리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를 잇는 643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이 고개의 형상이 말의 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말목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전라북도를 향하는 끝길의 막다른 골목이라 하여 말목재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말목재 표지기.

 

말목재 들머리는 좌측 완주군 화산면 방향 고갯마루의 석전마을 버스정류소 우측으로 이어진다.

 

말목재 들머리로 들어서며 돌아본 말목재 전경.

 

말목재 정상의 석전마을 버스정류장 뒤로는 대규모 축사가 자리하고 있고,

 

축사 옆 가옥 젊은 쥔장의 허락을 구하여 앞마당에 있는 수돗물로 비어가는 수통을 채우고는,

 

석천교회 우측 능선으로 오르며 옥녀봉을 향한 오름길로 들어선다.

 

 

능선길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자 잡목들이 빼곡한 벌목지대가 나타나며 우측 가야곡면 방향 조망이 멋지게 펼쳐지고,

 

돌아본 말목재 건너편으로 지나온 까지봉도 가늠된다.

 

계룡산 방향.

 

 

빼곡한 벌목지대 잡목을 헤치며 올라 뚜렷한 능선길이 나 있는 숲으로 들어 오르는데,

 

뒤쪽으로 좌측 운장산에서 우측 천등산으로 이어진 금남정맥 능선과 금만봉에서 이어온 기맥 능선이 가늠되고,

 

지나온 까치봉 능선 너머로 대둔산도 가늠된다.

 

천등산과 선녀남봉 방향.

 

가야 할 460봉 모습.

 

 

460봉 정상부에 올라서니 좌전방으로 다음 구간 가야 할 천호산이 조망되고,

 

폐헬기장으로 보이는 편평한 460봉 정상에 도착한다.

 

말골재에서 460봉까지는 무척 가파를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다소 완만해서 더운 날씨와 빨래판 구간에 지친 상태에서 우려보다 쉽게 올랐다. 정상에 널찍한 공터의 흔적이 남아있는 460봉은 충남도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일부 산행기에는 '옥녀봉'이라 표시하기도 했으나, 국가정보원 지도나 개념도에는 앞으로 진행하게 될 411.7m 봉을 '옥녀봉'으로 표기하고 있다. 50여 미터나 높은 이 봉우리는 이름이 없고, 지근거리의 더 낮은 봉우리를 '옥녀봉'으로 표시한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460봉 정상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 쉼을 한다.

 

가야 할 함박봉 방향.

 

460봉 정상의 이정표.

 

 

460봉을 내려서는데 앞쪽 미륵산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남쪽 완주군 화산면 방향.

 

남서쪽 익산의 미륵산 방향.

 

서쪽 소룡고개 방향.

 

북서쪽 함박봉과 연무읍 방향.

 

살짝 당겨본 연무읍.

 

<연무읍(鍊武邑)>
연무읍은 6·25사변 수복 후 육군 제2훈련소가 구자곡면 지역에 창설되어 훈련을 받는 곳이라는 뜻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연무읍은 옛날 은진군 구자곡면에 속해 있던 곳으로 1914년에 죽본면 독각, 동산, 구방, 서재, 용게, 신방과 도곡면 상동리, 전북 익산군 피제면 신리, 북삼면, 교항, 포변, 반리와 합선면 죽평을 병합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으로 편입시켰다. 1962년 연무읍으로 승격되면서 가야곡면 야촌, 왕암, 삼전은 가야곡으로 편입시키고 익산군 황화면 전부, 고내, 마전, 봉동, 신화, 안심, 황화정은 연무읍에 병합시켰다.

 

북쪽 가야곡면 삼전리 방향.

 

 

완만한 안부를 지나는데 또 다른 삼전리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며,

바닥에 떨어진 이정표에는 지나온 460봉을 '옥녀봉 정상 0.16km→'로 표시하고 있다.

 

좌측으로 화산면 운산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삼각점이 있는 옥녀봉을 지난다.

 

<옥녀봉(411.7m)>
논산시 가야곡면과 완주군 화산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봉우리가 예쁜 여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옥녀봉이라 부른다고 한다는데, 옥녀봉 정상에서는 봉우리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옥녀봉 인증.

 

옥녀봉 정상 내림길에 연안이씨 묘지가 있다.

 

옥녀봉 내림길에 좌측 운산리 방향으로 천호산이 가늠되고,

 

좌측 화산면 운산리 방향 능선 갈림길을 지나면,

 

우측에 멋진 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고,

 

육산 능선에 가끔씩 누가 일부러 만들어 놓는 듯한 넙적한 돌이 세워져 있는데 생성 원리가 무척이나 궁금하고,

 

 

송전탑이 있는 범허리재를 지난다.

 

<범허리재>
좌측 화산면 운산리 동박골과 우측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송전탑이 자리하고 있다. 고개의 모양이 범의 허리처럼 생겼다고 하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범허리재 표지기.

 

 

별 특징 없이 밋밋한 삼면봉(363m)을 지나며 좌향 하는데 '정토분맥' 갈림봉이다.

 

지금까지 좌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우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을 가르며 이어 온 기맥길은 이 삼면봉에서 우측이 연무읍으로 바뀌어 이어가게 된다. 이곳 삼면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는 정토분맥은 정토산(371.7m)을 지나 충남 논산시 은진면 화산리 방축천과 논산천 두물머리에서 맥을 다하는 분맥을 말한다.

 

삼면봉에서 잠시 진행하면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처져있는데 '박격포 피탄지' 표지판이 군데군데 걸려있고,

 

'고폭탄 사격장으로 불발탄이 있는 지역이므로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라 적힌 쓰러진 경고판이 나타나며,

사격 중이라는 신호용 깃발 게양 목적으로 보이는 게양대도 지난다.

 

그렇게 우거진 숲으로 덮인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다가 보면 함박봉 정상에 도착한다.

 

<함박봉(403m)>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논산훈련소 뒤편에 있으며 산봉우리가 작약꽃 처럼 이쁘다고 해서 함박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원래는 성태봉이라 불렀는데 1961년 4월 22일에 충남도 중앙지명위원회에서 함박봉으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2000년에 전북도 중앙지명위원회가 성태봉이란 이름을 심의 통과시켜 두 개의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성태봉이란 지명은 소룡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371.3봉을 성태봉이라 하므로 기맥꾼들에게는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함박봉 정상 표지기.

 

 

함박봉 한켠에 자리한 낡은 벤치에서 간식을 먹으며 마지막 쉼을 한다.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함박봉 정상을 뒤로하고,

 

낙엽이 푹신한 완만한 능선길을 잠시 내려서면 좌측 사면으로 희미한 수레길 흔적이 있는 함박재를 지나게 되고,

 

군데군데 얄은 판석이 솟아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별다른 표식이 없는 360봉쯤을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 가족묘지가 나오며 운산리 상호마을에서 '소룡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상호 마을은 범 머리를 위치에 따라 상하로 구분한 명칭이다. 마을에서 보면 뒷산이 범 형국처럼 보여 마을 이름을 '범머리'라 하고, 한자 표기로 호두(虎頭), 상호(上虎)라고 불러 전해온다고 한다. 돔박골은 범 머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말끔하게 정리된 소나무 숲을 지나고,

 

소룡고개 절개지 직전에서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며,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소룡고개에 도착한다.

 

<소룡고개(巢龍峙, 300m)>
소룡(巢龍) 고개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와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를 있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난다. 소룡리의 남쪽 끝에 있는 고개라 하여 그리 이름 붙여졌는데, 소룡리(巢龍里)는 옛날 이무기가 집을 짓고 반 용이 되어서 천운을 기다렸다가 승천한다는 용굴이 있다 하여 소룡골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리(陽地里) 일부를 병합하여 소룡리라 하고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연무읍이 승격됨에 따라 논산군 연무읍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기촌, 대촌, 지내기, 차돌배기 등이 있다.

 

돌아본 소룡고개 날머리.

 

다음 구난의 출발지점인 소룡고개 들머리 전경.

 

소룡고개 좌측 전북 완주군 화산면 방향 전경.

 

소룡고개 우측 충남 논산시 연무읍 방향.

 

 

고개 우측 아래에 주차한 차량을 회수하여 서울로 향한다.

 

아리스타 CC 앞 펜션단지와 연무읍 방향 조망.

 

 

탑정호 인근의 닭볶음탕을 먹을지 아니면 바로 서울로 올라갈까를 놓고 한참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산행으로 피곤한데 식사까지 하면 차를 운전하는데 졸릴 수 있다는 의견으로 긴장한 몸 상태를 유지하며 바로 귀갓길에 오르기로 한다. 예상보다 도로가 원활하여 7시 반경에 과천에 도착하여 삼겹에 김치찌개로 뿌듯한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금남기맥을 시작하여 두 번의 산행 끝에 산들만 보이는 능선을 벗어나 금강과 만경강이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지대가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산꼭대기에 떨어진 빗물이 첩첩산중의 골짜기를 흘러 흘러 넓은 들판을 가르는 강물을 이루듯 우리가 걷는 금남기맥 산줄기도 이제 산과 들판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다가 너른 들판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지인들과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 삶에 많은 제약이 가해진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들 하다가 들은 말이 기억에 남아서 옮겨 보고자 한다.

"배는 항구에 있을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