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1년

대전 보만식계 1차(보문산~먹티재) : 무더위에 가면 안 되는 보만식계

by 재희다 2021. 6. 28.

산 행 지 : 대전 보만식계 1차(보문산공원~먹티재)

산 행 일 : 2021. 06. 12.(토)

산행코스 : 보문산공원 주차장 ~ 보문석천약수터 ~ 보문산성 ~ 보문산 시루봉 ~ 절고개 ~ 오도산 ~ 석태산 분기점 ~ 금동고개 ~ 돌탑봉(472봉) ~ 떡갈봉 ~ 안산 ~ 먹티고개 (거리 20km, 9시간 소요)

산행참석 : 5백두.

 

<산행코스>

 

서울의 산꾼들이 불수사도북 종주를 선망하듯 대전의 웬만한 산꾼들이라면 한번쯤은 보만식계 종주에 도전을 하지 않는 산꾼들이 없을 정도로 힘들지만 꼭 걸어 보고 싶어 한다. 지난번 다듬재까지의 금남기맥 산행을 마치고 20km가 넘는 기맥 산행이 여름철이라 힘에 부친다며 좀 쉬운 산행으로 대전의 보만식계 종주를 세 번에 나누어 진행하자는 창병 전무의 제안으로, 이번에 그 첫 번째인 보문산~만인산 구간을 걷기로 했다. 사실 금남기맥 다듬재 이후의 구간은 미륵산만 넘으면 들판길이라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한데, 한여름에 괜히 어려운 곳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김 전무님이 지인분에게 부탁하여 차량으로 픽업까지 부탁을 해 놓은터라 보만식계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승용차 정원을 꽉 채워서 06:30에 과천역에서 출발하여 산행 날머리로 예정한 만인산 휴게소에 도착하니 벌써 08:30을 넘어 있었고, 김 전무님 지인분의 차에 탑승하여 산행 들머리인 보문산 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를 넘은 상태다. 휴일에도 어려운 걸음을 하여준 지인분께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는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보문산공원 주차장에서 서 여사님이 나눠준 아침 도시락을 배낭에 챙기고는 보만식계 첫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대전 보만식계(寶萬食鷄) 종주>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분기하는 금남호남정맥은 주줄산(주화산)에서 호남정맥을 보내고 대둔산을 지나 계룡산으로 금남정맥을 이어가면서 인대산에서 가지 줄기를 내려 대전의 동부권 산줄기를 형성시키니 식장지맥이라 하고, 계룡산에서 가지를 내린 산줄기는 서부권 산줄기를 수놓으니 이름하여 관암지맥이라 부른다. 관암지맥은 갑천과 금강이 합수되는 오봉산 아래 불무산에서 금강과 만나고, 식장지맥은 금강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계족산에서 달려온 산줄기가 불무산을 바라보는 반대쪽에서 그 맥을 다한다. 그 원형의 산줄기 속에 우리나라 제2의 행정도시이자 150만의 시민의 안식처인 대전광역시가 있다.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로 시작된 대전(大田)의 순수 우리말은 "한밭"이었다. "크다"를 뜻하는 "한"은 대(大)로, 밭은 전(田)으로 이두문자화 되어 지금의 대전 (大田)이 되었는데, '클 태(太)' 자를 써서 태전(太田)이라 하는 것은 한일합방 전.후로 7년여 동안에 나타나는 지명이며, 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대전 (大田)"이란 지명으로 표기해야 할 것이다. (순수 우리말인 '한밭'으로 표기함이 더 좋을 것이지만 현행법상 지명 변경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한성과 삼남을 이어주는 교통 요지로서 구한말에 와서야 철도의 개설에 때 맞추어 현대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대전은 1993년 개최된 대전 엑스포를 신호탄으로 제2의 행정도시로 또는 첨단과학 도시로 150만 시민을 거느린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대전의 시화는 "목련"이고, 시목은 "소나무", 시조는 "까치"를 상징으로 하고 있다.

대전의 산줄기는 대둔산을 조산으로 하여 54개의 산이 있으며, 대둔산에서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산태극을 만들고,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수태극을 만들어 놓으니 사방이 명당이요 기름진 땅이라 살기 좋은 고장이다. 동쪽에는 식장 지맥에서 뿌리내린 식장산(597.5m), 고봉산(300m), 응봉산 (320m), 성재산 (398.7m), 계족산(423m) 등이 이어져 대청호에 닿는다. 서쪽에는 관암지맥에서 뿌리내린 산장산(302m), 빈계산(415m), 도덕봉(532m), 갑하산(469m), 우산봉(573.8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있다. 남쪽에는 구봉산(264m), 보문산(457.3m)이 연결되어 있으며, 북쪽에는 수양산(315m), 금병산(345m), 보덕봉(263.6m), 오봉산(240m)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낮은 산줄기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동남쪽 산자락에서 발원한 대전천과 유동천은 대둔산에서 발원하여 구봉산을 따라 내려오는 물줄기인 갑천과 도룡동 엑스포 과학공원 근처에서 합류되어 관암지맥의 끝자락인 불무산에서 금강에 합수된다.

보만식계라 일컬어지는 산행코스는 대전의 동부권으로 흐르는 대전천, 유등천과 함께 나란히 달리는 산줄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보문산,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 등 네 개의 산을 이어가는 산행 코스다. 이 코스는 보문 오거리에서 출발하여 보문산,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을 거쳐 신탄진 역까지 연결되는 58km 구간으로, 강산에님과 보만식계님에 의해 최초로 개발되어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장거리 산행을 즐기는 전국의 등산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코스가 되었다. 산행은 계족산 정상의 봉황정에서 회덕 육교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여 단축된 산행을 하는데, 식장산에서 신탄진 역까지 이어지는 나머지 구간은 도시화에 따른 산지 훼손으로 인하여 산줄기가 주택 단지를 통과하기 매문에 산행은 계족산에서 수자원공사 쪽이나 회덕육교 방향으로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보문산 둘레숲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니,

 

 

 

보문산 숲속공연장이 나오고,

 

데크목 계단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보문석천약수터에 도착하여 서여사님과 약수물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그냥 물맛이다!

 

 

이어지는 계단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는데, 옆에서 걷는 서여사님은 계단을 두 칸씩 성큼성큼 오르며 백두의 준족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사이에 보문산성(좌)과 시루봉(우) 사이의 안부 갈림길에 도착한다. 앞서 간 분들이 어디로 진행했는지를 모르는 터라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곳을 또 언제 와 보겠는가!"라는 논리로 좌측 보문산성을 다녀오기로 한다.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잠시 진행하니 지봉(支峰) 정상의 보문산성의 누각에 도착한다.

 

<보문산성(寶文山城)>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보문산 정상인 시루봉(표고 457.3m)에서 동북쪽으로 800m 정도 떨어져 있는 표고 406m인 지봉(支峰)에 축조된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테뫼식으로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이 정상 부분이 아닌 지봉에 축조하게 된 것은 이 지봉이 보다 동북쪽으로 돌출되어 있어 동쪽으로는 대전천(大田川)이, 서쪽으로는 유등천(柳等川)이 내려다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형성된 대전 관내에 펼쳐져 있는 충적 평야에 대한 관측이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누각으로 오르며 돌아본 보문산 정상 시루봉 방향.

 

대전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옅은 안개로 시야가 흐리다.

 

누각에 올라서 대전 시가지를 배경으로.

 

북서쪽 대전시청 방향.

 

북동쪽 계족산 방향.

 

보문산성 안내판 앞에서 인증을 남기고 시루봉을 향한다.

 

 

다시 보문산성과 시루봉 사이의 안부로 돌아와 직진의 시루봉을 향하면,

 

우측 송학사 방향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시루봉 우회 갈림길을 지나 가파른 데크목 계단을 오르면, 보문정이라는 팔각정이 있는 시루봉 정상에 도착한다.

 

<보문산(寶文山, 457.6m)>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산으로 1965년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봉은 시루봉이다. 시 중심부 남쪽에 솟은 산으로, 보문산이란 이름은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혹은 재물이 끝없이 나온다는 그릇인 화수분이 묻혀있어)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개칭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수분 바가지 전설에는 화수분 바가지 안에 흙이 들어가자 끝없이 흙이 쏟아져 지금의 보문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 나무꾼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살려줘서 얻은 '은혜를 갚는 보물주머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보문산 녹음(綠陰)은 대전팔경의 하나로 꼽히며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녹음 공원이자 도시자연공원으로, 여러 문화재와 함께 보문랜드, 푸푸랜드, 청년광장, 보문산공원(사정공원), 야외음악당, 전망대, 유희시설, 케이블카 등 휴식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어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또 골짜기마다 20여 곳의 약수터가 있고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보문산 정상 시루봉에서 돌아본 보문산성 방향.

 

보문산 시루봉 인증.

 

보문산 정상에서 서여사님이 나눠준 간식을 먹자던 분들이 시루봉 정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여 시루봉 내림길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잠시 더 진행해 보았지만 보이지를 않는다. 여름철 산행이라 물통을 많이 넣은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는 상황이라 시루봉 내림길 쉼터에서 자리를 잡고 배당에 든 간식을 배로 이동시키고는 다시금 산행에 나선다.

 

 

묵직한 간식을 겨우 배에 쓸어 담고는 중간중간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능선길을 따르니 이사동 전망대가 나온다.

 

 

동쪽 식장산 방향.

 

남쪽 가야 할 오도산 방향.

 

 

이사동 전망대에서 이정표의 오도산 방향 능선길을 따르니 우측으로 대전시 중구 구완동이 내려다 보이고,

 

'보문산 둘레숲길'에 내려서서 건너편 능선길로 진행하게 된다.

 

 

좌측 이사동과 우측 구완동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가드 로프가 매여진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좌.우로 갈림길이 있는 구완고개쯤을 지나게 되고,

 

잠시 후 다시 좌측 상사리와 우측 구완동버스종점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내려서면,

 

절고개쯤으로 짐작되는 안부를 지나게 되는데, 고개 아래로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구완터널이 지나고 있는 지점이다.

 

 

절고개쯤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오도산 정상 직전의 케른과 이정표가 있는 오도산 봉화대터에 도착하게 되는데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봉화대터로,

 

앞서간 분들이 오도산 정상부 봉화대터에서 쉼을 하고 있다.

 

<오도산(吾導山, 336.8m)>
대전 중구 구완동에 소재한 산으로 산봉우리 모양이 칼날처럼 뾰족하여 능선으로만 올라갈 수 있으며, 일부는 돌로 성을 쌓았다. 일제 강점기 전북 익산 출신 오하, 이규홍 의병장이 1909년 이사동 송창재, 송덕재를 찾아가 일본군의 눈을 피해 수년간 은신하다가 일본 관헌에게 발각되어 오도산으로 올라가 저항했던 격전지 이기도 하다. 오도산이란 이름은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할 도리는 한결같다는 뜻에서 오도산이라는 지명이 나왔다고 한다.

 

오도산 정상에서의 달콤한 쉼을 하는 백두들.

 

 

오도산 정상 돌탑을 뒤로하고 날등 능선을 따르는데 우측으로는 가야 할 떡갈봉 방향 능선이 조망되고,

 

좌전방으로는 다음 구간 가게 될 식장산이 조망되며,

 

좌측으로는 지나온 보문산이 듬직하게 보인다.

 

 

오도산 날등에서 보이는 식장산 방향.

 

좌측 아래로는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가 분기하는 산내 JC가 내려다 보인다. 

 

북쪽 보문산 방향.

 

동쪽 식장산 방향.

 

동남쪽 서대산 방향.

 

살짝 당겨본 서대산 방향.

 

다음 구간에 가게 될 식장산 조망.

 

 

햇볕에 노출된 날등을 잠시 따르니 멋진 팔각정 정자가 있는데,

 

사한정(沙寒亭)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사한정 정자에서 본 식장산 방향 조망.

 

 

 

반질반질한 능선길을 따라 소화동천 갈림길을 지나고,

 

다시 좌측으로 비파산성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얕은 안부 옛고개를 지나게 되고,

 

더운 날씨 탓인지 산객들이 보이지 않는 능선길을 허위적 허위적 진행하니,

 

우측으로 무수동임도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쉼터를 지나게 되고,

 

좌측의 능선길을 두고 우측 아래로 이어진 통나무 계단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니,

 

 

석태산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심코 직진의 석태산 방향 능선길로 들어서서 뜻하지 않은 알바를 하게 된다.

 

<석태산(411m)>
대전 중구 금동에 소재한 산으로 대전둘레산길 1구간 변곡점 371봉에서 약 1km 정도 벗어난 지점에 소재한 산이다. 복달동으로 연결된 능선상 산으로 조망은 없다.

 

석대산 방향 알바 능선길에 본 우측 대전시 중구 산성동 방향 조망.

 

우측 조망이 이상하다 싶어서 지도를 보니, 석태산 방향 알바 길임을 알아차리고는 빽!

 

 

다시 석대산 갈림길로 돌아나와 금동고개 방향 내림길로 들어서니,

 

가파른 계단길이 한참이나 이어지더니,

 

 

대전 동구 장척동과 금동을 넘나드는 2차선의 산서로가 지나가는 금동고개에 도착한다.

 

<금동고개>
대전 동구 장척동과 금동 마을을 넘나드는 포장 2차선의 산서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총 12구간으로 구성된 대전둘레산길 중에서 보문산에서 시작한 1구간이 끝나고 만인산을 지나 태실까지 이어지는 2구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금동고개 복숭아밭 원두막에서 잠시 쉼을 하다가, 서여사님은 혼자서 힘겹게 복숭아나무에 약을 뿌리는 농부를 도와 줄을 당겨 주기도 하여 농부에게 복숭아가 익는 8월에 한번 들리라는 인사도 듣고는, 다시금 들머리로 들어서며 보만식계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 금동고개가 대전둘레산길 2구간 시작점이라는 안내판.

 

 

뮛자리가 있는 풀밭 능선을 잠시 따르면,

 

우측으로 금동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다시 숲으로 들며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우측이 밭으로 일궈진 능선을 지나,

 

떡갈봉을 향한 본격적인 오름길로 들어서게 된다.

 

 

제법 가파른 데크목 계단길을 올라,

 

잠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468.9봉을 좌회하는 지름길이 반갑기 그지없고,

 

 

475봉 신정말 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하니 앞서간 분들이 쉼을 하고 있다.

 

대전둘레길을 걷는 분들은 이곳 475봉에 작은 돌탑이 있다고 돌탑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안부를 지나 오르면,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떡갈봉에 도착한다.

 

<떡갈봉(499.2m)>
동구 삼괴동 부락에서 맨 끝에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떡갈봉이라 부르는데, 떡이 열리는 참나무가 있었다고 하여 떡갈봉이라 불린다고 한다.

 

떡갈봉의 전설 해설판.

 

<떡갈봉의 전설>

옛날에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그 나무를 팔아서 근근이 생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식구래야 자기와 홀어머니 하나뿐인데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서 어머니에게 드리는 효자였다. 산아래 집을 짓고 사는 그들에겐 가난이 몸에 배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잘 둔 덕분에 잘 먹고사는 편이었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서 아들이 서른이 넘었지만 장가를 못 보내서 어머니는 혼자서 부지런히 일하는 그의 아들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장터에 나가면 으레 뒷마당에 있는 고목나무 아래에 찬물을 떠놓고 산신령님께 아들이 장가를 들어 며느리가 하나만 들어오게 해달라고 빌곤 했다. 아들은 항시 부지런해서 그날도 지게에 어머니가 먹고 싶다는 조기를 두어 마리 매달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데 뒤에 고운 처녀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색시를 만나서 데리고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게를 받쳐 놓고 아들도 색시를 보고 어리벙벙하는데 뒤따라 들어온 색시는 노상 뒤를 돌아보더니, 「마님, 저 좀 숨겨주세요. 저를 잡으러 포졸들이 오고 있어요.」 하고 애원하므로 어머니는 그 색시를 뒤뜰 짚 더미 속에 감추어 주었다. 색시를 감추고 앞마당으로 나오는데 포졸들이 몰려와선 여기서 색시를 못 봤느냐고 다그쳐 묻자 아들은 눈만 끔벅거리는데 어머니가 말하기를 저쪽 산너머로 도망갔다고 하니까 포졸들은 그쪽으로 바삐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쫓기어 이 집에 들어온 색시는 사화에 몰려 삼족을 멸하는 어는 대감집 딸로서 도망 다니다가 이 집에서 숨겨주자 이 집 며느리가 되었다. 어머니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색시는 고운 옷을 버리고 촌부의 옷으로 갈아입고선 부지런히 일을 했다. 아들도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불이 나게 다녀와선 자기의 아내와 집안일을 하고 해서 집안이 옛날보다 훨씬 깨끗해졌으며 아들이 글공부를 하여 집안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뒹굴어서 다리를 다쳐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야 그날그날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리를 다친 아들 대신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게 되었다. 며느리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면 겨우 집에서의 땔감밖에 안되었다. 며느리는 열심히 일을 했다. 고왔던 손이 터지고 얼굴 색깔이 검게 타고 너무 지저분한 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어딘지 모르게 깨끗한 아낙이었다. 밤에는 남편을 앞에 앉히고 가르쳤다.
천자문부터 시작하여 논어까지 슬슬 뜻을 새겨나갈 때 어머니가 덥석 병석에 눕게 되었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 찹쌀떡이 먹고 싶다 하자 아들과 며느리는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며느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일찍 나무를 해서 금산장에 나가 팔아서 찹쌀떡을 사 오기 위해서였다. 어둠을 뚫고 산에 올라온 며느리는 열심히 나무를 했다. 나무를 해서 한 다발 꼭꼭 묶고 빨리 금산장에 다녀와야겠다고 머리에 이고 나오는데 그때서야 해가 뜨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걸음을 재촉해서 봉우리 한가운데로 나오는데 언뜻 앞을 바라보니 큰 참나무에 무엇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신기해서 가까이 가보니 참나무에 매달린 것은 모두 찹쌀떡이었다. 며느리는 덥석 나무를 내려놓고 그 떡을 따기 시작했다. 그래서 찹쌀떡을 가지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드렸다.
그 이튿날 산봉우리 그 참나무를 찾았다. 역시 찹쌀떡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며느리는 또 떡을 따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집 앞에 꽃가마가 놓여 있었다. 사화에서 풀려 그를 데리러 온 한양의 꽃가마였다. 며느리와 아들, 어머니는 그대로 모두 한양으로 떠나는데 며느리가 시녀를 시켜 떡이 열려있는 산봉우리에 다녀 가자고 하여 꽃가마를 타고 산봉우리에 갔었다. 허나 그 참나무는 있는데 이상하게도 떡은 간 데가 없었다. 며느리는 한양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 봉우리를「떡갈봉」이라 불렀다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떡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 하여「떡갈봉」이라 부르며 이 집 아들은 한양에서 아내 덕분에 큰 벼슬을 하였다 한다.

 

떡갈봉 정상 인증.

 

 

떡갈봉을 뒤로하고 잠시 진행하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삼각점이 있는 얼갱이산을 지나게 된다.

 

<얼갱이산(490m)>
무인산불감시시설과 삼각점(금산 418)이 자리 잡은 산으로, 얼갱이가 체를 뜻하는데 여기랑 뭔 상관인지 알 길이 없다.

 

얼갱이산 정상 인증을 하려는데 무덥고 습한 날씨 탓에 힘든 산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슬땀이 솟아난다.

 

 

등로는 멋진 소나무숲 능선으로 이어지더니,

 

좌측 상소동의 동구청소년수련원 방향 갈림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서니 앞서간 두 분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봉우리에서 급한 내림길을 내려서자 안부가 나오며 우측 어남동 방향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다시 급경사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서니 평상과 이정표가 있는 437봉쯤이 나오는데,

 

평상에서 20여 분간의 오침을 취한 뒤 어남동 방향 갈림길이 있다는 이정표를 담고는 안산을 향한다.

 

 

소나무숲 능선 내림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430봉쯤을 지나고,

 

또다른 430봉쯤을 헉헉거리며 지나니,

 

거대한 나무가 눈길을 끌고,

 

대전시와 금산군의 경계인 420봉쯤에서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먹티고개에서의 탈출을 고민한다.

 

앞서간 총무님으로부터 먹티고개에서 만인산 정상까지 1.5km를 오르는데 한시간 20분이나 걸렸다며 웬만하면 탈출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고, 먹튀 고개에서의 중간탈출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만약 먹티고개에서 중간탈출을 하게 된다면 다음 산행인 보만식계 두번째 산행에서 식장산을 넘는 게 무리일수 있어서 부득이 산행을 가을철로 미루거나, 구간을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여간 고민스럽지가 않다. 그리고 먹티고개에서 탈출을 하게 된다면 차량 회수를 위해 만인산휴게소까지의 이동은 어떻게 할지도 걱정거리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걷는 사이에 안산(424m) 정상에 도착한다.

 

안산 정상 인증.

 

북쪽 지나온 떡갈봉 방향.

 

남동쪽 정기봉(좌중앙)과 만인산(우중앙) 방향.

 

 

안산을 뒤로하고 어디에서 탈출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급경사의 내림길을 내려서니 먹티고개에 도착한다.

 

<먹티고개>
먹티고개는 대전시 동구 하소동과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를 잇는 고개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난다. 먹티고개는 석탄이 많이 묻혀있어서 주위가 온통 시커멓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실제로 먹티고개에 가까워지면 주변에 석탄 처럼 시커먼 흙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먹티고개 금산 방향 고개 너머에 인가가 있어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라 먹티고개에서 만인산을 오르게 되면 시간이 너무 늦어질 듯하여 먹티고개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 차량 회수를 위해 만인산 휴게소까지 어찌 이동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택시를 불러도 도무지 반응이 없어서 도로를 따라 3km를 걸어가기로 한다.

 

돌아본 먹티고개 날머리.

 

다음 구간 가게 될 만인산 방향 먹티고개 들머리 전경.

 

 

도로를 따라 가목정 마을로 내려서서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계속 걸어서 가자며 우틀하여 도로를 따라 오르면,

 

만인산 자연휴양림에 자리한 만인산휴게소에 도착한다.

 

<만인산 자연휴양림>
'만 길이나 산이 높거나 깊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 만인산은 산세가 매우 수려하고, 대전천의 발원지인 봉수레미골 등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만인산은 사계절 언제 찾아보아도 아름다운 산이지만, 특히 진달래가 곱고 산 벚꽃이 흐드러진 봄에 찾으면 그 아름다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만인산휴게소의 명물 호떡!

 

예정보다 산행 종료 시간이 많이 지체된 상황이라, 추부면 마전리에서 추부면의 명물 '추어탕'으로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하고는 과천으로 귀가하였다. 도중에 대부분의 일행들은 저마다의 볼일을 보러 떠나고, 순회 형만 남아 가계 쥔장이 방역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할 때까지 오늘 산행이 날씨로 인해 얼마나 힘들게 느껴졌는지를 예기했다. 순회 형 감사해요~! 근데 다음부터는 기다리시는 형수님 품으로 일찍일찍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