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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백두 18주년 1일차 : 고군산군도 트레킹

by 재희다 2023. 2. 16.

 

장    소 :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기    간 : 2022. 11. 12.(토)

코      스 : 장자도 공영주차장 ~ 대장도 ~ 대장봉 ~ 장자도 ~ 선유도 ~ 선유봉 ~ 망주봉 ~ 선유도해수욕장 ~ 선유대교 ~ 무녀도 ~ 고군산대교 ~ 신시도 ~ 새만금휴게소 (21km, 7시간 소요)

산행참석 : 20 백두.
 

< 2박2일 일정 >

◈ 11일(금)
- 23:00 영등포 출발. 
- 23:30 서초구민회관 출발.

◈ 12일(토) 고군산군도 트레킹
- 04:20 군산시내 해장국집에서 아침식사
- 05:40 고군산군도 장자도 도착하여 트레킹. 
- 16:00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여 트레킹 종료. 버스로 숙소 이동(1시간)
- 16:20 숙소 모항해나루가족호텔 도착. 8주년 기념 만찬.

◈ 13일(일) 청암산 군산호수 둘레길 트레킹
- 08:00 숙소 출발.
- 09:00 청암산 공영주차장 도착. 군산호수 둘레길 트레킹 (9km, 2시간 반 소요)
- 12:00 트레킹 종료. 청암산 공영주차장 출발.
- 18:00 서울 도착. 
 

< 1일차 트레킹 코스 >

 
재작년 2020년에 16주년 기념 원산도 섬산행을 한 이후 코로나로 17주년은 건너뛰었고, 지난여름부터 산행이 재개되어 이번에  18주년 섬산행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산행지 또한  지난 16주년에 머물렀던 안면도의 숙소로 한다고 하여 따로 장소를 알아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산행에서 갑자기 안면도가 아닌 딴 곳으로 가자고 하는 바람에 여러 제약조건을 고려하여 부랴부랴 급하게 장소를 알아보다가 멀지 않고 접근이 쉬운 고군산군도로 장소를 선정하였다. 그런데 고군산군도의 수많은 펜션들 모두가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숙소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다행히 만식 형의 지인분 도움으로 변산반도에 있는 숙소를 예약하여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될 듯이 보였다. 
본디 고군산군도 트레킹의 백미는 대장봉에서 보는 일출이 최고여서 트레킹 일정을 조정하였는데, 당일 많은 양의 비가 예보되어 다른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다가 그나마 고군산군도의 예상 강우량이 적게 예보된 상태라 그냥 예정된 일정으로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
고군산군도는 군산시의 서남쪽 약 50km 해상에 위치하며, 옥도면에 소속되어 있는 군도(群島)이다. 선유도를 비롯하여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관리도, 장자도, 대장도, 횡경도, 소횡경도, 방축도, 명도, 말도 등의  63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16개가 유인도(무인도 47개)이다. 군산에서 고군산도의 중심인 선유도까지는 약 50km이고 가장 동쪽 섬인 야미도에서 가장 가까운 군산시 옥서면 화산까지는 12km이다. 고군산군도는 예로부터 "선유 8경"이라 하여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하며, 새만금사업과 함께 국제해양관광단지 조성으로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들이 육지와 이어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고군산군도라는 명칭은 오늘날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인 선유도(仙遊島)에서 유래했다. 군산도라 불리었던 선유도에 조선 태조가 금강과 만경강을 따라 내륙에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고자 수군부대인 만호영을 설치하였다. 그러다가 세종 때 와서 수군부대가 옥구군 부면 진포(鎭浦, 현 군산)로 옮겨가게 되면서 진포가 군산진이 되고, 기존의 군산도는 옛 군산이라는 뜻으로 고군산이라 불리게 된 데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편암과 편마암으로 구성된 해발 190m 이하의 낮은 구릉성 섬들이 원형으로 자리한다. 사면에는 지질시대의 오랜 풍화작용을 받아 적황색 및 갈색 토양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선유도와 무녀도 및 신시도 해안에는 간석지가 펼쳐져 있다. ​
기후는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의 영향이 강하며, 여름에는 따뜻하고 습기가 많다. 연강수량이 1,100mm로 내륙지방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나,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린다. 나무는 온대 낙엽수림과 상록활엽수림의 혼합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수산물은 조기, 갈치, 민어, 삼치 등이며, 신시도에는 고군산 염전, 무녀도에는 무녀 염전이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 보리, 고구마, 콩, 마늘 등이다.
관광지로는 군도의 중앙에 있는 선유도의 명사십리 해변과 해수욕장, 기암절벽과 낙조가 유명하다. 또한 선유도에는 조선시대 수군절제사가 주둔한 곳의 유적이 남아 있는 등 해상관광지로서 개발의 여지가 많다. 군도일대는 근해 연안어업의 중심지를 이루며 말도에는 등대가 있다.

 

 

오늘 고군산군도의 일출 예상 시각이 7시 남짓이다. 고군산군도 트레킹의 백미인 '대장봉 정상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군산 오식도동에 소재한 해장국집에 아침식사를 예약해 놓았다. 막힘없이 달린 버스가 일찌감치 도착하여 1시간여 동안 쪽잠을 더 청하다가, 제주도에서 오신 종협 형님 내외분이 도착하여 함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콩나물해장국을 비롯한 선지해장국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한 그릇을 후딱 비우고는,   

 

후식까지 챙겨 먹는 여유를 부리며 약간의 비가 예보된 고군산군도의 날씨가 맑기를 기대해 본다. 

 

 

6시쯤에 장자도 공영주차장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 장자도에서 대장도까지도 다리로 연결되어 있지만 대형차는 이곳 장자도까지만 진입이 가능하고 주차장도 소형차만 들어갈 수 있어서 우리는 장자회전교차로에서 정차하고 트레킹 준비를 시작한다. 

 

트레킹 도중 약간의 비도 예보된 상태라 간단한 우장도 챙기고서 버스를 나서니,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있으나 장자도항 건너편으로 선유도의 남악산과 망주봉이 선명하게 보여서 우중 트레킹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아닐 것으로 짐작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장자도(壯子島)>
군산 남서쪽 35㎞ 지점에 위치하며,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한 섬으로, 면적 0.13㎢에 인구 106명(2001)인 작은 섬이다. 힘이 센 장사가 나왔다 하여 장자섬이라 한다는데, 원래는 장재미와 가자미를 합하여 장자도라 불렀다고도 한다. 
바다에서 조업을 하다가 폭풍을 만났을 때 이 섬으로 피신하면 안전하다 하여 대피항으로 유명하다. 선유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은 장자도가 선유도에 비해서 작은 규모의 섬이 되었지만 60년 전까지만 해도 장자도의 항구가 천연적인 대피항으로 많은 고깃배들이 있어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다고 한다. 
섬의 동쪽 해안과 남쪽 해안은 해식애가 발달하여 선유도 해안과 함께 장관을 이룬다. 섬 전체가 암석 구릉으로 뒤덮여 경지가 드물어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주변 해역은 이웃한 비안도·위도 해역과 같은 어장으로 조기를 비롯한 각종 어족의 회유가 많아 어로활동이 활발하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장자대교 뒤편으로 선유봉이 우뚝하다. 

 

 

장자회전교차로에서 트레킹 준비를 마치고 대장도를 향하다가, 

 

돌아본 장자대교와 선유봉이 환상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고,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포토 포인트 이정표를 따라 데크목 계단을 오르면,  

"장자도 천년나무"가 자리하고 있고 사방으로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북동쪽 선유도 해수욕장과 망주봉 방향. 

 

작은 교량으로 연결된 대장도와 대장봉 방향. 

 

<대장도(大長島)>
대장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딸린 바위산으로 된 섬으로, 면적 0.337㎢, 해안선 길이 2.7km, 최고봉은 대장봉(142m)이다. 인구는 13가구, 29명이며, 군산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2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대장도는 장자도와 짧은 교량으로 이어져 있다.
옛날에 어떤 도사가 나타나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이 섬은 훗날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후 사라져 버리자,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대장도라 불렀으며, 현재는 199m의 현수교가 있다. 선유도와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는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에 장구도가 있다. 

 

장자도항에서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서쪽 관리도 방향.  

 

 

장자도와 대장도를 잇는 짧은 다리를 건너 대장도로 들어서서

펜션들만이 즐비한 마을 우측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르면,  

 

이내 좌측 대장봉으로 오르는 들머리 이정표가 있는 데크목 계단길이 나타나고, 

 

정자 쉼터를 지나 이정표의 어화대·할매바위 방향으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우측에 당집 건물이 나타나는데,

대장도 주민들의 풍어와 안녕을 비는 제당인  어화대(漁火臺)를 복원한 건물이라 한다. 

 

장자 할매바위 아래의 낡은 신당(어화대)을 허물고 새로이 지은 신당으로 '군산 도서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할매바위로 가는 길에 보이는 이 낡은 건물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신 신당으로 어화대(漁火臺)라는 당집이다. '어화대'라는 명칭은 선유도의 선유팔경(仙遊八景) 중에서 이른바 '장자어화(長子漁火)'에서 연유했다. 과거 어화대의 규모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써 당집 내부는 구들방, 부엌, 대청마루, 신당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칠성님, 용왕님, 호랑이 타고 칼찬 장군님, 애기씨 등 다섯 개의 무신도가 있었다고 한다. 대장도의 당산제는 약 40년 전 어화대를 지은 권장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대장도 당산제는 장자할매바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권장운 할머니는 3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되면서 어화대라는 장자할머니당을 짓고 그곳에서 마을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며 살았다. 권씨 할머니는 본래 무녀 출신은 아니지만 청상과부가 되면서 접신된 해신 무당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의 기이한 행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장자할매바위를 맨발로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면서 바위 허리에 광목 베를 칭칭 감아두었다고 한다. 권씨 할머니 생존시에는 매달 어화대에서 어선들이 들어와 풍어제를 지냈다. 경칩 사리에는 맨 처음 잡은 고기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을 바치기도 했다. 특히 이 근해에서 고기를 잡는 외지인들의 배도 꼭 이곳에 들러서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정월 보름, 이월 영등,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등 매월 절기마다 치성을 드렸다. 간단한 삼실과 밥, 떡, 생선 등으로 상을 차린다. 제물은 모두 어화대에서 권씨 할머니가 직접 만들었다. 대개는 풍어제를 앞두고 권씨 할머니가 마을로 내려와서 준비할 품목을 정해주었다고 한다. 권씨 할머니를 보필하는 주민들의 정성은 극진했다. 사흘 간격으로 물을 길어다 주었으며 쌀이 떨어지면 갖다 바치고 생선도 떨어지지 않게 공급했다. 지금은 할머니가 고인이 되어 대장도의 모든 제의는 멈추었지만 장자할매바위에는 아직도 흰 배가 감겨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소원을 빌고 있다.

 

 

어화대 뒤편의 전망바위로 오르면, 

 

선유도 해수욕장 뒤편으로 신지도의 대각산과 월영봉도 뚜렷이 가늠되고, 

 

이내 '장자 할매바위' 안내판을 지나게 된다. 

 

<장자 할매바위 전설과 어화대>
장자 할매바위는 대장봉 남동쪽 절벽에 있는 8m 높이의 바위로 마치 여자가 애기를 업고 밥상을 차려 들고 나오는 형상이다. 장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슬픈 전설이 깃든 바위로, 할매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루어지고 배반하면 돌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장도에서 2km 떨어진 무인도인 진대섬에 갓을 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바위가 있는데 그것이 할아버지 바위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운으로는 과거에 급제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지만, 할머니는 백일기도와 천일기도를 하면서 오로지 남편의 급제만을 위해서 빌고 또 빌며 살았다. 그러나 계속 과거에 떨어진 할아버지는 한양에서 오갈데가 없어서 사대부집 외동딸의 글 선생으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집 딸과 눈이 맞아 데릴사위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할머니의 정성에서일까, 할아버지는 15년 뒤 과거에 급제하여 소실 부인과 함께 본가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장자할머니가 술상을 차려 마중을 나갔는데, 소실과 함께 오는 모습을 보고 서운한 마음에 돌아앉아 술상을 든 채로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애절하고 슬픈 전설로 '진주 난봉가'의 노랫말과 내용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매바위는 그 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바위로 승화되었는데, 이 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사랑을 배반하면 돌이 된다고 한다. 

 

살짝 당겨본 장자 할매바위 모습. 

 

 

장자할매바위를 지나면 가파른 데크목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혹여나 일출시간에 늦을세라 뒤에서 발길을 부여잡는 고군산군도의 신비스러운 조망을 떨치고 오르면, 

 

전망데크가 설치된 대장봉 정상에 도착한다. 

 

<대장봉(大長峰, 142.8m)>
대장봉은 해발 142m 높이의 봉우리인데,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고군산군도와 서해바다의 전경은 대한민국 최고의 섬 풍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환상적이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드러난다. 선유도와 장자도를 시작으로 인근의 관리도, 방축도, 명도 등과 같은 고군산군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정상에서 섬을 보면 섬의 형태가 '8'자를 닮았다고 한다.

 

서쪽으로 보이는 관리도 조망. 

 

남쪽 장자도항 방향. 

 

동쪽 장자도와 선유도 방향. 

 

동북쪽 망주봉과 신시도 방향. 

 

장자도와 장자대교 방향.

 

대장봉 아래 전망바위에서 본 관리도 방향. 

 

 

아직도 일출까지는 10여분 남짓 남았는데 동쪽 하늘의 높은 구름이 원망스럽기만 하지만, 

 

아직 일출시각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먼저 대한민국 최고의 일출 전망대인 장자봉 인증을 남긴다. 

 

 

전망대에서 주변 조망을 즐기며 어여쁜 아침해가 구름을 뚫고 나타나기를 기다리는데, 

 

눈이 좋은 누군가의 "해 뜬다!"라는 외침에 동쪽 선유도 방향을 자세히 보니,  

 

낮게 드리운 구름을 뚫고 아침해가 나타나는데, 

 

당겨본 태양 우측의 산은 전주의 모악산쯤일까?

 

 

고군산군도 대장봉 정상에서 본 일출.

 

잊혀지는 게 아쉬운 달(月)을 등지고 뜨는 해만 바라보는 백두들!

 

 

전망대에 퍼질러 앉아 하염없이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고 싶지만,

오늘 일정이 빡빡한지라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올라왔던 등로 반대편의 등로로 들어서서 가이드 로프까지 메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대장도 서쪽의 관리도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고, 

 

남쪽 장자도항 방향. 

 

이내 푸른 잎사귀를 달고 있는 상록수 숲길로 들어서자 등로는 완만한 내림길로 바뀌더니,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배도 보이지 않는  장자도항이 건너다 보이고, 

 

소나무숲 사면길을 잠시 더 따르면, 

 

대장도와 장자도를 잇는 다리와 장자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며, 

 

관리도 방향. 

 

펜션 뒷마당으로 연결된 대장봉 등산로 날머리에 도착하게 된다. 

 

돌아본 대장봉 등산로 날머리 전경. 

 

대장봉 등산로 삼거리 갈림길. 

 

돌아본 대장봉 방향. 

 

 

해가 뜨는 선유도를 향해 멋진 일출 조망을 선사받은 대장도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장자도로 들어서서 장자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도는 트레일을 따르면, 

 

돌아본 대장도 방향. 

 

우측 장자도항 앞의 바위섬으로 이어진 부교는 진입을 막아놓았고, 

 

이른 시간이라 한산한 해안도로를 따라 장자도항으로 진행하여, 

 

관리도와 방축도로 갈 수 있는 배편이 있는 관리도항에서 좌틀하여 해안 능선길로 진행한다. 

 

 

장자도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관리도와 방축도 트레킹은 훗날을 기약하고 능선 위로 이어진 트레일을 따르면,  

 

우측 관리도 방향. 

 

돌아본 장자도항과 대장도 방향.  

 

트레일은 해안 바위절벽 위로 이어지며 아침해를 맞이하는 고군산군도 바다가 선경인듯 조망되고, 

 

산길인듯 호젓한 트레일을 잠시 더 이어가면, 

 

바다 조망이 기막힌 벤치를 지나게 되고, 

 

이내 장자도 낙조대인 팔각정자 쉼터가 나온다. 

 

선유봉 방향. 

 

장자교와 남악산, 대봉, 망주봉 방향. 

 

 

오늘 걸어야 할 길이 멀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저 걷기에 좋아서 그런지, 쉼터와 전망대를 본체만체 그냥 지나치는 백두들 쫓아 트레일을 따르면, 

 

오늘 신새벽에 트레킹을 시작했던 장사회전교차로에 도착하게 되고, 

 

1시간 반에 걸친 대장도와 장자도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장자교를 건너 선유도로 향한다.  

 

<장자교(莊子橋)>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로 시민들의 생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1986년 12월에 완공된 인도교인데, 최근에 2017년 고군산군도 연결도로가 새로이 개통되며 4차선의 차도와 인도가 설치된 새로운 교량이 준공되었다.

 

장자교 우측 남쪽 방향. 

 

 

장자교를 건너 선유도로 들어서며 우측 절개지를 따라 선유봉으로 오르게 되는데, 

 

<선유도(仙遊島)>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라 불렸으나 선유봉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리게 되었다. 2.13k㎡의 면적에 500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며 군도의 중심 섬이다. 
선유도는 원래 분리된 3개의 섬이었는데, 현재 선유3구와 가운데 섬인 선유2구가 육계사주(陸繫砂洲)로, 선유2구와 선유1구가 해안사구(海岸砂丘)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으로 되었다. 육계사주와 해안사구는 가는 모래(細砂)로 구성되며 현재는 모두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1구 남쪽 해안에는 옥돌해변이 있는데, 여느 몽돌해변과 달리 자갈이 호떡처럼 납작하다. 돌 생김새가 독특해서인지 바닷물이 자갈을 훑는 소리가 유난히 청량하다고 한다. 
선유도는 서해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환상적인 '선유낙조'가 유명하고, 망주봉과 선유봉을 비롯한 등산코스와 하이킹 코스, 명사십리, 삼도귀범 등의 명소와 방축도 출렁다리, 선유스카이선라인 등의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 차 있는 섬이다.

 

 

정규 등산로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정표도 없고 등로도 무척이나 거칠고 가팔라 조심스럽게 올라야 하고, 

 

잠시 가파르고 거친 등로를 오르면 좌전방 선유해수욕장 방향으로 망주봉과 남악산이 멋지게 조망되고,  

 

잠시 전에 지나온 장자교 건너편으로 장자도와 대장봉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정규 등로는 아니지만 가느다란 가이드 로프까지 메인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뒤쪽 대장도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전망바위에 오르게 되고, 

 

장자도, 대장도, 관리도 방향. 

 

남악사과 대봉, 망주봉 방향. 

 

완만해진 능선길을 잠시 더 진행하다가, 

 

소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난 암릉 위로 올라서면, 

 

다시한번 대장봉 방향으로 멋진 조망이 펼쳐지고, 

 

북쪽 선유해수욕장 방향 우측 멀리로 오늘 가야 할 신시도의 대각산도 조망되더니, 

 

이내 소나무 둥치에 '선유봉' 표지판이 걸려있고 조망이 빼어난 선유봉 정상에 도착한다. 

 

<선유봉> 

신선이 노니는 봉우리란 뜻의 선유봉은 남악산(155.6m), 망주봉(109.5m)과 더불어 선유도의 대표 봉우리다. 선유봉 정상부에는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는데, 북쪽 남악산에서 보면 선유봉에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봉우리들의 생김새가 마치 선녀가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선녀봉'이라고도 불린다.

 

선유봉 정상부 전경.

 

동북쪽 신시도의 대각산과 월영산 방향.

 

동쪽 무녀도의 큰무녀봉 방향. 

 

남쪽 방향. 

 

서쪽 관리도 방향. 

 

 

선유봉 정상에서 무녀봉을 배경으로.

 

 

선유봉을 뒤로하고 북쪽 선유도해수욕장 방향의 하산길로 접어들면, 

 

앞쪽 암봉 위에 자라난 소나무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더욱 신비롭게 보이고, 

 

북쪽 남악산과 망주봉 방향. 

 

절벽 옆으로 선유8경의 하나인 삼도귀범(三島歸帆)을 이루는 섬들이 살짝 보인다.

 

 

사방으로 멋지게 펼쳐지는 장관을 조망하며 바위 암릉을 내려서면, 

 

저 멀리 미지의 세계로 이어질 듯 보이는 고군산군도 6개 섬을 잇는 도로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돌아본 대장봉 방향. 

 

돌아본 선유봉 방향. 

 

선유팔경의 하나인 삼도귀범(三島歸帆)의 세 섬 방향 조망. 

 

가야 할 선유해수욕장과 망주봉 방향. 

 

선유팔경의 하나인 삼도귀범과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승전장계를 올린 곳이 바로 이곳 선유도라는 유래가 적힌 안내판. 

 

<삼도귀범(三島歸帆)>
삼도귀범은 선유팔경 가운데 하나이다.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 바다의 남쪽에 자리한 3개의 무인도인 장구도, 주삼섬, 앞삼섬이 돌아오는 돛배 세 척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섬주민들에게 항상 만선의 꿈과 기대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세 섬이 줄지어 있어 모습마저 아름답다. 세 섬은 무인도로 무녀도에 속해 있으나 선유도 앞마을을 돌아서는 어귀에 서 있고 갈매기와 물오리 등 바닷새의 천국이다. 

 

삼도귀범(三島歸帆)을 이루는 섬들(장구도, 주삼섬, 앞삼섬) 방향. 

 

북서쪽 방축도 방향. 

 

 

우측 옥돌해수욕장 방향 갈림길에서 직진의 능선으로 가야 되는데, 앞서간 분들이 우측 옥돌해수욕장 방향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앞서간 분들과 통화하여 선유해수욕장 방향으로 오라고 전하고는 직진의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북쪽 남악산, 대봉, 망주봉 방향. 

 

 

직진의 선유해수욕장 방향 능선길로 들어서자 산객들이 발길이 뜸했던지 거친 작은 오솔길로 바뀌고, 

 

겨울임에도 상록수들이 파란 잎사귀를 달고 있는 오솔길을 여유롭게 내려서면, 

 

데크목 둘레길과 전망대를 갖춘 선유도 해안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좌측 선유도 무료주차장 방향. 

 

대장도와 남악산이 그림인 듯 조망되는 전망데크.

 

잔잔한 찻잔에 떠 있는 대장도 방향. 

 

북쪽 남악산 방향. 

 

 

데크목 둘레길을 따라 선유해수욕장 방향으로 진행하면, 

 

솔섬까지 바다를 횡단하는 집라인 타워가 자리한 선유해수욕장이 나오는데, 

 

<선유스카이썬라인(집라인)>

2015년 7월 개장한 선유도와 선유해수욕장 앞바다의 솔섬을 연결해 바다를 횡단하는 공중하강체험시설로, 요금은 어른 기준 20,000원이며 타워에서 솔섬까지 약 700m의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시설이다.

 

<선유해수욕장/명사십리 해수욕장>
선유해수욕장/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천연 해안사구로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고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다. 망주봉을 배경으로 펼쳐진 길이 1.2㎞, 폭 50m의 백사장은 수심이 깊지 않고 파도도 높지 않아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명사십리(明沙十里)'라는 이름을 가진 해수욕장이 여럿 있지만, 간만의 차가 심해서 좀처럼 깨끗한 물을 보기가 쉽지 않은 서해안의 해수욕장답지않게 워낙 깨끗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물이 차는 만조 때를 제외하고는 50여 미터에 이르는 너른 폭의 모래벌판이 펼쳐져 마치 거대한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데, 유리알 같은 흰모래와 더불어 경치가 일품인 데다 백여 미터를 나아가도 물이 허리까지밖에 차지 않아 여름철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오붓하게 해수욕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더구나 맑다 못해 차라리 코발트빛인 앞바다를 붉은 낙조가 물들이며 떨어지는 저녁하늘은 명사십리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 한다.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라게 된다는데, 물이 빠졌을 때(썰물)를 이용하여 팽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래톱 끝까지 걸어갈 수도 있다. 둑방 건너편의 해수욕장 못지않은 긴 자갈밭이 펼쳐져 있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남악산을 배경으로.

 

대장도 방향. 

 

마침 썰물이라 데크길을 두고 훤히 드러난 모래사장으로 들어서는데, 

이곳의 모래도 고와서 그런지 백령도의 사곶해변처럼 바닥이 단단하여 걷기에 편하다. 

 

선유 집라인 타워가 갑자기 기울어진 이유는?

 

선경(仙景)에 취해 동심에 빠진 백두들. 

 

손주 녀석들에게 줄 보물.

 

선유해수욕장 파노라마. 

 

 

동심에 젖게한 짧은 선유해수욕장 트레킹을 마치고, 

 

도로를 건너 망주봉 등산을 예정하였으나, 바위 절벽을 올라야 하는 망주봉은 출입이 통제된 상태라 그냥 우측 해안도로를 따라 망주봉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선유도 망주봉(仙遊島 望主峰)>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있는「군산 선유도 망주봉 일원(群山 仙遊島 望主峰 一圓)」은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 등이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3호로 2018년 6월 4일 지정되었다. 바위로만 이뤄진 봉우리인 망주봉은 큰 비가 내리면 암벽을 타고 물줄기가 예닐곱 가닥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평소에는 숨기고 있던 선유팔경의 하나인 망주폭포를 보여준다.


「군산 선유도 망주봉 일원」은 군산 앞바다의 총 63개의 크고 작은 섬(유인도 16개, 무인도 47개)을 고군산군도라 하는데 그중 가장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 하여 부르게 된 선유도(舊 군산도)에 자리한다. 망주봉은 옛날 억울하게 유배된 한 충신이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유래가 유명하며, 하늘과 바다가 모두 붉은 색조로 변하는 ‘선유낙조’를 볼 수 있는 탁월한 장소이기도 하다. 망주봉에서 바라본 선유낙조는 서해의 낙조기관(落照奇觀) 중 으뜸이며, 360도 사방의 조망지점을 갖고 있어 여타의 명소와는 차별되는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2001년 문화재청의「명승자원조사보고서 전라북도편」에 따르면 선유도에는 선유팔경이 있으며 망주봉에서 6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망주봉과 마주하는 솔섬에서는 많은 비가 내리면 망주봉 정상에서 암벽을 타고 흐르는 폭포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어 경관적 보존가치가 높은 곳이다. 또한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편찬한「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따르면 망주봉에는 바다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오룡묘(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9호)가 있고, 송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숭산행궁(객관)[군산 선유도 고려유적(전라북도 기념물 제135호, 지정 2017.4.7.)]과 군산정(정자), 자복사(사찰)의 터가 남아 있어 역사적 보존가치 또한 높다.

 

우측 선유도항과 무녀도항 방향. 

 

 

망주봉을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해안 도로로 접어들면, 

 

좌측 큰망주봉과 우측 작은망주봉 모습.

 

망주봉으로 오르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망주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는 '등산금지'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조망이 끝내줄듯 보이는 망주봉은 후일을 기약하고 해안도로를 따르면, 

 

작은망주봉 등산로 입구도 지나게 되고, 

 

우측 선유대교와 선유2구 마을 방향. 

 

풍어와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든 여느 당집과는 달리 먼 외국으로의 뱃길 안전과 무역에서의 성공을 기원하는 곳인 오룡묘 입구를 지나게 되고, 

 

<오룡묘(五龍廟)>
고려 인종 11년(1123) 송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기록되어 있는 오룡묘는 두 채의 작은 당집이 지붕을 맞대고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섬 주민들은 앞의 당집을 오룡묘 혹은 아랫당이라고 부르고 뒤쪽의 당집은 윗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근 섬의 당집들이 고기잡이의 풍어와 뱃사람들의 안전만을 기원하는 곳이었다면, 이곳 오룡묘는 풍어보다는 먼 외국으로의 뱃길 안전과 무역에서의 성공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선유도가 백제와 후백제 고려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에서 출발한 외교 및 무역선들이 꼭 거쳐가는 항구였으며, 조선시대에는 호남 경남지역의 세금인 쌀을 싣고 나르는 조운선의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좌측 마을 안쪽으로 휘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앞쪽으로 작은망주봉과 대봉쯤이 조망되는 선유도 북쪽 해안으로 들어서게 되고, 

 

작은망주봉 모습.

 

이내 선유3구 마을을 지나면, 

 

선유3구 마을 항구에 도착하게 된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불로문이, 

 

이곳 선유도에도 있다!

 

잠시 후 가게 될 신시도 대각산 방향. 

 

선유3구 어항 마을에서 망주봉을 배경으로. 

 

 

선유3구 어항 마을을 뒤로하고 남악산 등산로 입구 방향으로 진행하면,  

 

횟집들이 즐비한 마을길을 지나게 되고, 

 

앞쪽으로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는 대봉전망대가 있는 대봉이 나타나는데, 

 

오늘은 시간적 제약으로 대봉과 남악산 산행은 후일을 기약하고 선유해수욕장을 향해 마을길을 따르면, 

 

다시 선유도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나서게 되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망주봉.

 

솔섬과 대장봉 방향. 

 

다음을 기약한 대봉 방향. 

 

백사장을 쉬엄쉬엄 걸어서 집라인 하부승강장이 있는 솔섬으로 연걸된 다리에 도착하여 솔섬을 다녀오기로 한다. 

 

 

솔섬으로 이어진 데크목 다리에는 멋들어진 전망쉼터도 설치되어 있고,  

 

또다른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있는 망주봉 조망.

 

썰물인 상태라 다리 아래 백사장을 걸어서 솔섬으로 향하는 분들도 있지만, 

 

데크목 다리를 건너며 시시각각 바뀌는 주변 조망을 즐기는 재미도 맛보며, 

 

오늘은 또래들과 소풍 나온 날이니 함께 동심의 세계에 흠뻑 젖어본다. 

 

 

솔섬에서 대장도와 방축도 방향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갯바위에 앉아서 하염없이 여유를 즐기려 했는데, 

 

북쪽 남악산과 대봉 방향. 

 

집라인 하부승강장이 설치된 솔섬은 진입이 막혀있어서 발길을 돌리는데, 

 

우측 바다에서 웬 비명소리가 들리기에 자세히 보니 집라인에 매달려 날아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금 선유도해수욕장으로 돌아나와, 

 

선유도해수욕장 정자 쉼터에서 배낭털이를 하며 잠시 다리쉼을 한다. 

 

 

철 지나 한갓진 해수욕장에서 잠시의 편안한 다리쉼을 뒤로하고 다음 섬인 무녀도로 향하면, 

 

선유1구 마을 앞을 지나게 되는데, 

 

좌측으로 옛날 유배 온 선비가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한 데에서 유래된 망주봉이 멋지게 조망되고, 

 

좌전방으로는 가야 할 신시도의 대각산과 월영봉이 한층 뚜렷이 보이며, 

 

앞쪽 선유도항 뒤로는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선유교가 조망된다. 

 

 

이곳은 유명한 군산 구불길 8코스 구간이라 날씨가 따듯했으면 많은 트레커들로 붐볐을 터이지만, 지금은 을씨년스런 날씨에 이른 시각이라 한산하기만 한 둘레길을 유유히 걷노라면, 

 

좌측으로 선유도항에 정박한 고깃배들과 선유교가 다가서고, 

 

좌측 강처럼 보이는 바다 건너편으로는 무녀도항도 지척으로 보이더니, 

 

고군산군도의 6개 섬을 잇는 4번 국도 아래로 통과하는 굴다리가 나타나고, 

 

굴다리를 지나서 선유대교 옆의 도보다리로 이용되는 옛 교량으로 들어서며 무녀도로 향한다. 

 

우측 선유팔경의 하나인 삼도귀범(三島歸帆)을 이루는 장구도, 주삼섬, 앞삼섬 방향. 

 

<선유팔경(仙遊八景)>
첫 번째는 “선유 낙조”이다. 신선이 노닐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이라는 뜻이다. 쟁반에 쇳물을 부어놓은 듯 이글거리던 태양이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올망졸망 모여 있는 섬 사이 수평선 너머로 얼굴을 감추는 모습이 선유 팔경의 첫번째 명소다. 같은 자리에서 보는 일출 또한 유명한 볼거리다.
두 번째는 “명사십리”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길게 뻗어 있다는 의미다. 선착장에서 갯벌을 지나면 명사십리로 불리는 해수욕장이다. 예전에는 부근에 해당화가 만발했으나 현재는 볼 수 없다. 고운 모래사장이 4㎞가량 이어져 아름답다. 달빛에 반사되는 밤의 정취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세 번째는 “망주 폭포”이다. 여름철에 망주봉(152m) 암벽을 타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일곱여덟 개의 물줄기를 일컫는다. 암벽 봉우리 두 개가 정다운 부부처럼 마주 보고 있는데, 선유도로 유배 온 충신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네 번째는 “평사낙안”이다. 모래사장에 날아와 앉는 한 마리 기러기의 형상을 의미한다. 망주봉과 진말 사이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가 기러기 형상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가 말라버렸다.
다섯 번째는 “삼도귀범”이다. 세 척의 돛배가 귀향한다는 뜻이다. 선유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 중간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무인도가 만선을 알리는 기를 꽂고 들어오는 세 척의 돛배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어업 활동을 하는 섬 주민들의 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문구다.
여섯 번째는 “장자 어화”이다. 장자도에서 어업 작업을 하는 배들의 불빛이라는 뜻이다. 선유도와 이웃한 장자도 해역이 황금 어장임을 에둘러 표현했다. 장자도 해역에 조기 어장이 형성되면 수백 척의 배들이 몰려와 야간작업을 할 때 불야성을 이루어 대단한 볼거리였다고 한다.
일곱 번째는 “월영 단풍”이다. 신시도 월영봉(199m)의 가을 절경을 일컫는다. 시월 하순이 지나면 월영봉의 단풍이 붉게 물드는데, 화려한 그림을 수놓은 병풍을 보는 듯하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이곳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여덟 번째는 “무산 십이봉”이다. 선유도를 연꽃처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방축도, 말도, 명도 등 열두 개의 산봉우리 형상이 늘어선 병사들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열두 봉우리가 파도 위에서 마치 춤을 추듯 나타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며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무녀봉과 세 무인도인 삼도귀범 방향.

 

 

선유교 옆 도보다리로 들어서서 무녀도로 향하면, 

 

잠시 전에 올랐던 선유봉이 저 멀리로 보이고, 

 

우측으로는 선유팔경의 하나인 '삼도귀범'을 이루는 세 섬이 멋들어지게 보이더니, 

 

이내 도보다리를 건너 무녀가 춤추는 자태를 품은 아름다운 섬 ‘무녀도’로 들어선다. 

 

<무녀도(巫女島)>
무녀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고군산군도에 딸린 섬으로,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인 선유도 동남쪽에 인접한 섬이다. 면적은 1.75㎢, 해안선 길이는 11.6km이다. 인구는 211가구 499명이다. 무녀도는 김양식과 염전이 활발하다. 
무녀도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호기심을 발동한다. 혹시 김동리 소설 무녀도와의 연관성이 있지 않나 궁금하다. 이 소설은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한국적 방식으로 그려낸 감동적인 단편소설인데, 이곳의 무녀도는 종교적인 느낌보다는 단지 섬이 장구 모양이라는 것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붙어 있어서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을 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무녀도라고 한다.
원래 무녀도의 옛 이름은 '서들이'였다고 하는데, 그 뜻이 기가 막히다. 가난한 섬사람들이 바쁜 일손을 놀려서 서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부지런히 서둘러야 살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무녀도 주민들은 갯벌과 바다에 나가 부지런히 서두르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축복받은 땅이라고 한다. 고군산군도의 다른 섬들과는 달리 3만 평의 논과 18만 평의 염전이 있고 섬 주위에는 어족자원도 풍부하다. 무녀도는 조그만 섬이지만 육지가 부럽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2015년에 새만금으로 육지가 된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가 완공되어 천지개벽이 이루어졌다. 
무녀도는 2개 마을이 있는데 무녀1구를 '서들이', 무녀2구를 '모개미'라 부른다. 고려 말경 이씨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촌락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무녀1구의 남쪽에 있는 산구릉에 패총이 형성되어 있으며, 혼토(混土) 패각층과 순수 패각층이 층을 이루며 2m 내외 두께로 퇴적되어 있다.

 

무녀도 유래 안내판. 

 

돌아본 선유도 방향. 

 

 

고군산군도를 연결하는 4번 국도 굴다리를 좌측으로 통과하여 무녀1구 방향 도로를 따르면, 

 

좌측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의 해협 건너편으로 선유도항과 망주봉이 조망되며, 

 

잠시 전에 건너온 선유대교도 돌아다 보이더니, 

 

잠시 후에 가게 될 고군산대교와 신시도가 드러난 갯벌 건너편으로 조망되고, 

 

'무녀도 엄바위' 안내판이 세워져 있지만 오늘은 시간적 제약으로 엄바위 탐방도 후일을 기약한다. 

 

<엄바위 해식와(海蝕窪)>
갯벌체험장과 무녀도 엄바위 표지판에서 300미터쯤 우측 길 끝에 위치함 엄바위는 전형적인 해식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으로, 수천년간 해풍과 파도에 깎인 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해식와는 기반암이 노출된 해안에서 파랑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오목지형을 말한다. 
엄바위의 암질은 유문암이라 비교적 단단하다. 그러나 전형적인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물이 암석 틈 사이로 쉽게 스며들어가 화학적 풍화를 일으켜 그 부분이 헐거워져 쉽게 무너져 내리고 절벽 상부 쪽은 부분적으로 수평에 가까운 절리가 발달해 있어 절벽상부를 마치 지붕처럼 돌출된 형태를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엄바위는 해식와가 엄마품처럼 생겨 시원하고 편안하여 엄바위라 전한다. 사진작가들이 일출을 찍기 위해 찾는 숨겨진 명소다. 

 

 

무녀1구 마을길을 따라 우측의 무녀봉 탐방도 후일을 기약하고 그냥 지나치면, 

 

무녀도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고, 

 

이내 우측으로 무녀도 오토캠핑장이 나오는데, 

 

<무녀도 오토캠핑장>
무녀도 오토캠핑장은 무녀초등학교 앞에 위치한다. 오토캠핑장 주차장 안에 ‘서들이 농수산물 판매장’이 있다. 무녀도에서 생산되는 바지락을 비롯 굴, 꽃게, 활어 등 제철 수산물과 건어물을 싸게 살 수 있다.
이곳 캠핑장은 오붓하게 연인 가족과 보내는 방식과, 낚시, 갯벌체험, 고군산 연결도로를 통해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 등으로 도보여행을 함께 즐기는 방식이 있다. 도보로 이동할 경우 선유도까지는 10분, 장자도까지는 20분 소요된다. 유람선을 타고 고군산군도를 감상할 수도 있는데 정기유람선은 비응도와 선유도에서 운행한다. 인근의 소규모 섬을 둘러볼 경우는 민박집과 낚시어선을 이용하며 문의하면 된다.

 

오토캠핑장 주차장에는 먹거리 장터가 개설되어 지나는 트레커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그 또한 그냥 지나칠 밖에는..ㅉㅉ

 

 

제주에서 모처럼 참석하신 종협 형님이 오후 2시까지는 산행을 마쳐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무녀봉도 스킵하며 고군산119 앞에서 4번 국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무녀굴전망대 버스정류장에서 우측 마을길로 들어서면, 

 

폐 어구들이 어지러이 버려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마을길을 지나게 되고,   

 

우측 똥섬 방향으로 이어진 데크길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무녀2구 마을을 향해 해안도로를 따르면, 

 

이런저런 일들로 일정이 빠듯한 우리와는 달리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갈매기들이 부럽기만 하고, 

 

흙길에 익숙한 발로 딱딱한 시멘트길을 걷느라 무척이나 힘드는 시멘트포장 해안길을 따르면,  

 

우측으로 비안도가 어슴프레 가늠되고, 

 

작은 바위섬으로 보이는 수많은 '여'들이 잔잔한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파오는 발바닥 통증을 억누르며 쉼터를 찾아 해안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면, 

 

무녀2구항이 나타나며 앞쪽으로 쥐똥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혹여나 편의점이나 쉼터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무녀2구 마을을 지나는데, 

 

그 어디에도 쉴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여 4번 국도변의 제1전망대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쉼을 한다. 

 

 

주차장 화장실의 냄새가 싫은 백두들이 멀찍이 떨어져 쉼을 하다가, 

 

다시금 배낭을 메고 신시도를 향해 4번 국도를 따르는데, 

 

우측으로 무녀2구의 쥐똥섬이 온전히 시야에 들어오고,  

 

<쥐똥섬>
무녀2구의 쥐똥섬은 무녀도의 섬 형태를 요약한 지질구조를 보이는 무인도인데, 물때에 따라 바닷길이 열려 썰물 때 섬으로 갈 수 있다. 무녀도는 약 9000만 년 전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쥐똥섬 바위들에서 휘어진 줄무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바위가 만들어진 후 바람과 파도에 깎인 흔적들이다.
쥐똥섬의 유래는 돌을 '독' 또는 '똥'으로 표현하면서 똥섬이 되었다는 설, 죽도리에 있는 쥐도를 닮은 작은 섬이라는 뜻에서 뱃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쥐똥섬으로 불렀다는 설, 섬쥐똥나무가 서식하는 섬이라는 설, 쥐 모양의 돌섬이라는 설 등 다양하게 전해진다. 배고프던 그 시절에 섬사람들은 똥을 마을에 복을 가져다주는 의미로 해석해 갯바위를 똥바위라고 지칭하는 경향이 많았다. 쥐똥섬은 일출 포인트이고 이 섬에서 고군산대교와 신시도를 조망할 수 있다.

 

 

좌측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여객선이 한 척 육지에 끌어올려져 있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하여 무녀도와 신시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로 들어선다. 

 

<고군산대교(古群山大橋)>

고군산대교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에 있는 길이 400m의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외팔 현수교이다. 무녀도의 동쪽 부속섬인 남끝섬(무녀도리 산3 번지)과 신시도의 서쪽 부속섬인 단등도(신시도리 산55 번지)를 연결하고 있다. 이곳은 섬과 섬 사이의 간격이 좁고 섬들의 면적이 넓지 않아 보통의 현수교와 같이 주탑을 2개 세우기에는 육지의 경우에는 경관 훼손이 심하고, 바다의 경우에는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공사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환경과 경제적 비용을 모두 고려하여 주탑이 1개인 외팔 현수교를 건설하였다. 남끝섬에 위치한 주탑은 높이가 105 m에 이르고 돛을 형상화한 D자형으로 만들어져 그 자체로 근사한 볼거리가 되고 있다. 
고군산대교는 5개의 연도교(連島橋)와 1개의 해안교로 연결된 고군산로에서 가장 중요한 다리인데, 6개의 다리 명칭은 국가지명위원회가 2016년 10월 20일에 일괄 확정하였다. 정식 명칭 지정 전에는 '단등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2,790여 억원을 투입하여 새만금 방조제와 연결된 신시도에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 6개 섬을 8.77km(폭 15.5m)의 도로로 연결하게 된다. 이른바 '직도'라는 무인도를 공군의 사격장으로 넘겨준 대신에 '직도 보상 사업'으로 추진된 것이다. 고군산군도의 13개 섬 지역 어민들의 관광 소득 기반 조성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지난 2007년 시작된 이 사업은 국비 지원이 지연되면서 2016년 7월 일부가 개통되었고 2017년 말 완전개통하였다. 

 

 

좌측 선유도의 망주봉 방향. 

 

살짝 당겨본 대장봉과 망주봉 조망. 

 

좌전방 신시도마을 항구 방향. 

 

 

한참을 걸어도 끝나지 않는 고군산대교를 건너는데, 

 

좌전방으로 오늘 오르려고 예정하였던 대각산이 꾀나 높아 보이며, 

 

돌아본 무녀도 방향으로 오늘 둘러보았던 섬과 봉우리들이 어느새 저만치로 멀어져 있고, 

 

고군산대교를 건너니 좌측으로 신시도마을과 신시도초등학교 건물이 평화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시도(新侍島)>
신시도는 선유도의 동쪽에 있는 섬으로 고군산군도의 24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이자 고군산군도를 아우르는 주섬(主島)이다. 면적 4.25㎢, 해안선의 길이 16.5km, 산높이 198m이다. 인구는 2014년을 기준으로 141가구, 359명이다. 신시도 지역의 지대가 깊어 “짚은금”, “지풍금” 또는 “심리(深里)” 또는 “신치(新峙)”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신시도로 개칭하였다. 신라 초기에 섬 주변의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 김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문창현 심리, 또는 신치로 불려오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신시도로 개칭했다. 신치산(新峙山)에는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단을 쌓고 글을 읽어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있다. 최치원뿐만 아니라 근세의 대유학자인 간재 전우 선생이 거주한 곳으로 유명하다. 
신시도는 지난 2005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 덕분에 비응도, 야미도와 함께 육지가 되었다. 신시도는 남북으로 양분하는 두 봉우리가 있는데 고군산군도의 주봉이면서 신시도의 주봉인 남동쪽의 월영봉(198m), 북서쪽의 대각산(187m)이 그것이다. 관광명소로는 전망대가 있으며,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기 좋다. 또한 새만금의 배수갑문이 위치해 있어 바다를 보면서 등반할 수 있는 멋진 등산코스로 유명하다.

 

 

4번 국도를 따라 신시삼거리를 지나고, 

 

나란히 이어지는 좌측 마을길로 들어서서, 

 

배탈이 나서 뒤처진 분들을 기다리며 잠시 다리쉼을 하며, 남은 신시도 트레킹에서 대각산과 월영산을 오를 것인지를 놓고 이미 결론이 난 상태에서 난상토론의 시간을 가진다. 

 

<신시도와 최치원>
우리나라 최고의 유학자인 최치원이 군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고려시대에는 그의 시호를 따서 문창현이 생겨났다. 신시도와 최치원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섬이다. 신시도는 새로운 것(新)을 받든다(侍)는 의미가 있다. 구한말 한일합방 시기 나라를 잃고 울분을 토하던 대학자 간재 전우 선생은 이곳에 머무르면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고 홍학계(弘學系)를 조직했다. 또한 신라 말 대학자이자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린 고운 최치원 선생은 옥구군(군산)에서 한동안 서원을 차렸었다.
여기서 신시도의 모습에 반해서 풍선(風船)을 타고 이곳에 와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은 월영봉에 올라가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쌓아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고 시와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있다. 1200백 년 전, 지극 정성으로 열정을 가지고 책 읽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비응도에 가기 전, 육지와 지척에 있었던 내초도라는 작은 섬에도 최치원이 모래톱에 글을 쓰며 공부했다는 전설이 있다.
신시도와 무녀도, 선유도 등의 섬들로 묶어진 고군산군도와 옥구(군산) 연안 일대에는 최치원에 관한 신비한 설화와 전설이 널리 분포했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와 여러 문헌에서 최치원 선생은 20세기 초반까지 고군산군도 일대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크게 발휘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최치원은 중국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2014년 6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당시에 시진핑은 최치원 선생이 지은 '범해(泛海)'라는 한시를 한 수 인용했다. 중국 난징(南京)의 뤼슈이현에 당나라 시대의 초대형 7층탑 원형을 복원하여 '최치원 방'을 만들고 그의 시문과 초상, 동상, 계원필경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중국 양주(揚州)에 최치원 기념관이 있는데 지난 2007년 중국 외교부의 허락을 받고 당나라성 유적지 안에 건립한 것이다. 이것은 외국인을 위한 기념관으로는 첫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최치원은 880년부터 884년까지 당나라의 회남절도사의 종사관(비서격)으로 일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강한 중국이 외국인을 위해 기념관까지 지어주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인 동양의 대문호 최치원의 빼어난 문장에 대한 경외심일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최치원은 한중문화교류사에 있어서 최적의 인물로 꼽힌다. 우리의 서해안은 중국의 동해안 쪽과 비교적 인접해 있는데, 중국의 동해 쪽에 중국 인구와 경제력이 70%가 집중돼 있다고 한다. 이제 중국을 상대로 새만금과 연계하여 최치원 선생이 문화 콘텐츠의 대명사로 인식돼 새롭게 태어났으면 한다. 

 

 

대각산을 향해 마을길을 잠시 따르면, 

 

<대각산(188.3m)>
대각산에는 정상 표지석과 2004년에 군산시에서 세운 3층으로 된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서 보면 신선들이 놀았다는 선유도와 무녀가 춤추는 형상을 한 무녀도의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지척에서 펼쳐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고군산군도의 모든 섬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대각산 바로 밑에 자리 잡은 대풍금 마을은 신시도의 유일한 단일 마을로 한적하게 보인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각산 바로 밑에 몇 채의 집이 있었으나 지금은 해안 쪽으로 이주하여 소나 염소의 가축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좌측 신시도자연휴양림 방향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며 오늘 예정했던 대각산 산행 들머리도 좌측으로 보이지만, 2시까지 새만금휴게소에 도착하여야 하기에 대각산도 건너뛰고 직진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신시도자연휴양림>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은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힐링하는 휴양림으로, "해, 달 그리고 별"이라는 컨셉에 맞춰 지어진 휴양시설과 해안탐방로(약 4 km), 태양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쾌적하고 안전한 산림휴양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배기가스 배출을 최소화한 친환경 휴양림이다. 
개장 당시부터 하늘의 별 따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방 잡기가 어려웠고, 지난해 4월 가장 인기였던 ‘견우직녀달’ 객실의 예약 경쟁률은 무려 239 대 1을 기록했다. 해변 언덕에 자리한 56개 객실 모두 호화 리조트가 부럽지 않은 '오션 뷰'를 자랑한다.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산책로도 근사하다. 숲 속에 콕 박힌 여느 휴양림과 달리 탁 트인 풍광이 일품이며, '태양 전망대'에 서면 무녀도, 선유도, 대장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산림청이 운영하는 국립 휴양림 중 최대 규모(120만㎡)이고, 객실도 56개로 가장 많다. 군산이 산업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기존 휴양림 조성비의 2배 이상인 230억원을 썼다. 그런데도 하룻밤 이용료가 3만9000원(비수기 평일 4인실)이니 단연 인기일 수밖에..

 

좌측으로 후일을 기약한 대각산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고, 

 

도로는 4번 국도 아래로 통과하는 굴다리를 통과하게 되고, 

 

굴다리를 지나면 안골저수지와 월영산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앞쪽의 월영산도 후일을 기약하고 월영재를 넘어 바로 새만금휴게소로 진행하기로 한다.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안골저수지 제방으로 들어서면, 

 

꾀나 조망이 좋지만 등로가 험하다는 앞산이 앞쪽으로 보이고,  

 

새만금휴게소를 뒤에 숨겨놓은 월영산이 어서오라 속삭이는 듯하다.  

 

<월영산(198m)>
월영산은 해발 198m로 부안 쪽 월영산 자락을 잘라서 거대한 신시 배수갑문을 만들었다. 새만금휴게소 주차장 뒤편에서 배수갑문 왼쪽으로 돌아 가파른 철책계단을 지나서 능선을 타고 40분 정도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신시도 최고봉인 월영산(199m) 정상에 올라갔다가 월영재로 내려간 다음에 다시 월영봉으로 오를 수 있다. 월영봉은 선유8경 중의 하나로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장관이다. 신시도의 월영산은 그야말로 야생화의 천국이다. 산부추, 쑥부쟁이, 잔대 등 등산로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정겹고 따스한 모습으로 산객들을 반겨준다. 
월영봉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대각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뒤 좌측 너머로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조망된다. 막힘없는 서해 그리고 파란 하늘과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새만금의 방파제가 섬과 바다와 육지가 한데 어우러져서 근사하게 보인다. 유서 깊은 월영산을 지나서 능선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의미를 가진 대각산에 이른다.

 

안골저수지 전경. 

 

돌아본 대각산 방향. 

 

 

안골저수지 제방 끝지점에서 좌틀하여 월영산 방향 농로를 따르면, 

 

해안 간척지 뚝방길로 접어드는 지점 우측에 앞산 등산로 날머리가 보이고, 

 

월영재를 향해 해안 뚝방길을 따르는데, 

 

우측 비안도 방향으로 갯벌이 넓게 드러나 보이며, 

 

갯벌 좌측으로 해적선?으로 보이는 난파선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좌측에 외딴 농가가 있는 지점에서 숲길로 들어서면,

 

우측 해안 방향의 구불길 7코스 갈림길에서 우리는 직진하여 월령재를 넘어야 하는데, 앞서간 분들이 구불길 표시를 따라 우틀하여 해안 사면길 방향으로 진행한 듯 우측에서 '백두~'라는 외침이 들려오기에 돌아오라 불러도 대답은 없다.

분명 잠시전 신시도 마을길에서 쉬면서 대각산과 월령산은 오르지 않고 월령재를 넘어서 바로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으로 진행키로 하였는데, 발 빠른 분들이 별 생각없이 구불길 표시만 보고 진행한 듯하고, 혹여 전혀 엉뚱한 곳에서 헤메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일행들은 월령재로 향하게 하고는 홀로 알바 가신 분들을 쫓아 우틀하여 사면길로 들어선다. 

 

월령재로 향하는 백두들. 

 

 

구불길 7코스 199봉 바닷길로 들어서면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지며 알바 간 분들을 따라잡으려 빠르게 걷는데도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하고,  

 

우측 해안가 방향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구불길을 따르면, 

 

좌측 199봉 정상 방향 갈림길에서 앞서간 두 분이 지도를 꺼내어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고 있다. 혹여 두 분만 이쪽으로 왔냐고 물었더니 이분들도 앞사람을 따라 이쪽으로 왔는데, 앞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등로가 맞는지 확인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앞서간 분들을 찾으려 계속 가야 한다는 예기다! 

 

 

두 분과 함께 또다른 분들을 따라잡으려 사면 오솔길을 따르는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199봉 바다길로 새만금방조제 배수갑문 옹벽 방향이라는 이정표를 지나고, 

 

빼곡한 동백나무 군락지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르다가, 

 

등로가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사면으로 들어서니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새만금방조제와 개화도가 조망된다. 

 

<새만금방조제>
전라북도 군산시부터 김제시를 거쳐 부안군까지의 섬들을 연결하는 방조제로, 길이가 33.9k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는 2위인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의 32.5km보다 1.4km 더 긴 것이다.
크게 5개의 구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안군과 가력도를 잇는 4.7km의 1호 방조제, 가력도와 신시도를 잇는 9.9km의 2호 방조제, 신시도와 야미도를 잇는 2.7km의 3호 방조제, 야미도와 군산시 비응항을 잇는 11.4km의 4호 방조제, 비응항부터 군산시 내초동을 잇는 새만금북로 5.2km의 구간으로 되어있다. 1호 방조제는 부안군, 2호 방조제는 김제시, 3-4호 방조제와 새만금북로는 군산시 영역에 속해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김제시 김제평야의 다른 이름인 만금평야(만경평야의 '萬'과 김제평야의 '金'의 합친 이름)의 '만금'에 '새'(new)를 붙여 명명됐다. 1991년 11월 16일에 착공한 후 약 19년 후인 2010년 4월 27일에 준공하였다. 새만금 간척 사업의 주된 공사가 바로 이 방조제의 건설이었다.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는 사면 등로를 따르는데 앞쪽 지능선쯤에 앞서가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고, 

 

살짝 당겨본 고군산대교 방향.

 

앞서가던 분들이 보이던 지능선에 올라도 그분들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춰버려 걸음을 서두르니,   

 

앞쪽으로 새만금방조제 신시도 배수갑문과 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하고, 

 

지능선을 넘어 사면을 따라 내려서자, 

 

배수갑문 옹벽으로 이어진 수레길이 나타나며,  

 

배수갑문 옹벽 방향 구불길은 좌틀하여 산등성이 위로 올라가라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산행 막바지라 지친 상태에서 좌측 정규 등로는 199봉 방향 오름길로 이어지기에 포기하고,

사면 옹벽 방향으로 이어진 수레길을 따르면,   

 

수레길은 배수갑문 옹벽 절개지 가운데로 이어지며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며,  

 

우측 아래로 까마득한 절벽이 아찔하게 느껴지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배수갑문을 개방하니 주변에 있는 배들은 빨리 피난하라는 경고방송이 나온다. 

 

<새만금의 역사적 현장, 신시도 배수갑문과 전망대>
새만금방조제는 전라북도 군산시부터 김제시를 거쳐 부안군까지의 섬들을 연결하는 방조제로 길이가 33.9km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 군산에서 자동차를 타고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20분 정도 달리면 배수갑문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는데, 신시도의 새로운 풍경이 그려지는 곳으로 여기에는 널따란 신시도 광장과 신시도 배수갑문, 신시도 전망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신시도 배수갑문은 '세계 최고 토목기술의 집대성'이라고 불리며 '바다 위 만리장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최고의 토목기술을 가지고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만든 까닭이다. 기대와 함께 거대한 땅을 얻고도 생명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세계의 간척역사를 뒤흔든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20년 가까운 시간 속에서 대역사를 끝낸 새만금 방조제는 총연장 33.9km에 이른다. 이것은 기네스월드레코드가 공인한 세계 최장 길이다. 네덜란드 주다치 압슬루트 방조제(32.5km)보다 약 1.4km 더 길다.

 

 

배수갑문과 전망대가 가까워지니 우리를 향해 위험하니 빨리 벗어나라는 경고 방송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오고, 

 

경고방송에 위축되어 걸음을 서두르니 오늘 트레킹의 종점인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이 나오고, 

 

울타리를 넘어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고군산군도 트레킹을 마감한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버스 옆에는 월령재 직전에 흩어졌던 분들이 모두 도착해 있다. 

 

한 시간여의 짧은 뒤풀이 시간을 가지며 오랜만에 제회한 종협 형님 내외분과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후일의 재회를 기약하고는, 

 

버스에 올라 18주년 기념연이 개최될 부안의 모항해나루가족호텔로 향한다. 

 

 

모항해나루가족호텔에 도착하여, 

 

속소에 여장을 풀고 베란다로 나오니 찌뿌듯한 흐린 날씨에도 조망이 시원스럽기 그지없고, 

 

산책로도 잘 꾸며져 있어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멋진 창립기념 연회에 대한 기대를 한껏 키운다. 

 

고창의 선운산 방향.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산행을 재개하여 다시금 갖게 된 창립기념 연회가 벌써 18번째를 맞이했고, 모든 분들이 일심으로 노력하여 새출발을 하게 된 산행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모처럼 가진 주년 기념연회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캄캄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우리들의만남에 대한 의지는 한층 견고해졌음을 확인하며 즐거운 추억은 밤이 늦도록 이어지다가, 

 

본격전인 생일 파티는 장소를 옮겨서까지 이어졌다. 

 

매년 개최되는 주년산행에 이은 기념연회의 마무리에 대한 기억은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물론 금번 18주년 기념연회의 겅우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아무런 문제 없이 내일 또 일정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늘 앞장서 애써주시는 여성회원님들과  교화, 승천 형님 덕분임을 다시한번 특별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