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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팔공기맥 3차(노귀재~살구재) : 뵈는 게 산(山) 뿐이라 고민도 산(山) 뿐!

by 재희다 2023. 3. 10.

산 행 지 : 팔공기맥 3차(노귀재~살구재) 경북 청송군, 군위군, 영천시.

산 행 일 : 2022. 11. 26.(토)

산행코스 : 노귀재 ~ 석심산(보현지맥 분기점) ~ 수기령 ~ 봉림산 분기봉(747m) ~ 돌탑봉(742m) ~ 방가산(755.8m) ~ 장곡자연휴양림 갈림길 ~ 경림산(690m) ~  괴산마을 갈림길 ~ 살구재 + 구전리 별곡마을 (기맥 14km + 탈출 임도 3.1km, 8시간 40분 소요)

산행참석 : 14 백두.

 

<산행지도>

 

 

2020년 12월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하였던 팔공기맥 세번째 구간을 드디어 마침내 기필코 2년 만에 다시금 잇기로 했다. 지난여름 이탈리아 돌로미티 트레킹 이후 워밍업 기간이라는 핑계로 어렵지 않은 산행을 이어오다가 18주년 섬산행을 끝으로 워밍업 산행을 마치고 중단되었던 팔공기맥을 이어서 걷기로 한다. 

 

2년 전에는 팔공기맥 세번째 구간으로 노귀재에서  갑령재까지 26km를 한번에 진행하는 것으로 계획했었으나, 그간 빡센 능선산행을 않은 세월이 길었고 아직은 회원들의 컨디션이 옛날의 상태인지가 의문이어서 살구재를 지난 지점인 충성로에서 기맥산행을 마감하고 좌측 별곡마을 방향으로 탈출하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산행 코스를 살피던 중에 다음구간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살구재 우측 괴산리에서 접속하는 것이 좌측 구전리 별곡마을에서 접속하는 것보다 거리를 단축할 수 있고 접속로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여, 금번 산행에서는 살구재에서 기맥산행을 마감하고 좌측 별곡마을로 탈출하기로 한다. 

 

 

원격지 산행의 경우 버스 기사님들의 졸음으로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수도 있기에 그동안 비교적 근거리의 산행지를 선택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최근들어 책임감이 강하고 발군의 실력을 갖춘 기사님이 배정되며 다시금 원래의 계획대로 기맥산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한밤의 어둠을 가르며 고속도로를 순조롭게 달리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의 속도가 느려지고 소로로 접어든 듯하여 눈을 떠 보니 창밖 어둠 속에서 가끔씩 드러나는 풍경이 무척이나 낯익은 풍경이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버스는 학창시절의 한때를 보냈던 서의성IC 부근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아마도 상주JC에서 상주영천고속도로를 탔다가 당진영덕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닌지 알 길은 없지만, 어찌 되었던 서의성IC에서 다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나도 다시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니 버스는 노귀재로 오르는 꼬불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노귀재 남측 너른 공터에 도착한 버스에서 1시간 반 이상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하고,  

 

버스를 나서니 노귀재 북측으로 청송군 현서면 도로 표시판과 노귀재휴게소가 보인다. 

 

<노귀재(奴歸재, 502m)>
청북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에서 청송군 현서면 사촌리로 이어지는 2차선의 35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노귀재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다. 
노귀재란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왔던 왜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쳐들어오면서 영천군 화북면 상송리에 이르러 보니 소나무 숲이 울창한 높은 고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 고개를 넘어 청송 쪽으로 향하던 중 사람을 만나 "이곳을 넘으면 어디냐?"고 물어보니, "청송이라고 한다"라고 대답하자 왜구들이 돌아갔다고 한다. 이유는 청송의 '송(松)' 자가 당시 우리나라에 원군(援軍)으로 온 중국 명나라의 이여송(李如松)의 '송(松)' 자와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어 피해 돌아간 것이라고 전한다. 그 후로 '왜구가 돌아갔다' 하여 노귀재(奴歸)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노귀(老歸)재'라 하여 청송 출신들이 타지로 나갈 때 이 고개를 넘어가지만 언젠가 늙으면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대구와 영천, 청송을 잇는 35번 국도의 중심축인 노귀재에는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지난 2002년부터 고개 중턱에 터널을 뚫는 공사를 시작하여 2011년 준공하였다. 노귀재 터널이 완공되면서 대구~청송 간 운행 시간이 20여분 단축되어 청송군이 추진하는 관광사업이나 농산물 유통 등에 유리하며 주민생활의 향상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휴게소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노귀재 유래 표시판>

 『노귀(奴歸)재의 유래/ 
이 재는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천군의 경계로서, 임진왜란 때 침노한 왜구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진을 피하여 내륙으로 진입하면서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병사를 거느린 우두머리가 이 재를 넘으려니까 재가 높고 험준하여 무서워하면서 넘어가는데 길손을 만나 “이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니, 그 길손은 “여기는 청송 땅이오”라고 대답하자, 왜구의 무리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그 왜구들은 1592년(선조 25) 조선을 침략했을 때 명나라 이여송(李如松) 장군에게 크게 패한 일 때문에 이 장군을 매우 무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름 중에 ‘송(松)’ 자가 청송의 ‘송(松)’ 자와 같으므로 이여송 장군을 만날까 두려워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멸시하는 뜻에서의 ‘종 노(奴)’ 자와 ‘돌아갈 귀(歸)’ 자를 써서 노귀재라 불렸으며, 그로부터 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재가 재앙을 면하는 재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또 다른 전해지는 전설을 보면,
『노귀재는 약탈을 일삼던 왜구를 멸시하는 뜻에서의 ‘종 노(奴)’자와 ‘돌아갈 귀(歸)’자를 썼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적장은 출정 직전 무속인이었던 모친에게서 “조선에 가면 소나무 아래에는 절대 가지 마라”는 당부의 말을 듣는다. 파죽지세로 진군을 거듭한 왜군은 영천을 정복하고, 청송으로 향하다 현재 영천시 화북면 하송리(下松里)를 지나면서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 아래라는 마을 이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진군을 계속해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上松里)에 도착한 왜구들은 마을 이름이 상송이라는 말을 듣고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당부한 말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영천시 화북면 상송리 아차마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진군을 계속한 왜군은 노귀재를 넘어 청송으로 들어와 보니 청송은 그야말로 소나무 천지였다. 어머니의 당부가 현실로 나타나자 적장은 화를 입을 것이 두려워 더 이상 진군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왜군이 돌아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왜귀(倭歸)들'인데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에 지금도 있고, 노귀재 역시 왜군이 노비처럼 도망갔다 해서 노귀재로 불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원래 이곳 노귀재의 들머리는 휴게소 좌측 뒤편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마루금에 장뇌삼을 심어놓은 식당 주인이 출입을 막는 바람에 노귀재 남측 영천 방향 바로 아래에 있는 국기게양대 뒤편의 쉼터 뒤로 들어서는 등로가 일반적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팔공기맥 산꾼들의 산행 들머리로 알려진 국기게양대 우측 등나무 쉼터로 들어서면, 

 

낙엽이 수북한 뚜렷한 등로가 계곡을 따라 이어지다가 이내 계곡 우측 기파른 사면으로 이어지며 희미해지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급경사 사면을 덮은 낙엽으로 미끄럽기 짝이없는 난해한 등로를 더듬어 오르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희미하게 이어지던 족적조차도 보이지 않아 우측 능선을 향해 바로 쳐 오르면, 

 

서 있기조차 어렵던 급경사가 다소간 완만해지더니, 

 

마침내 기맥길인 능선길에 합류하여 청송군과 영천시를 경계하며 석심산까지 이어지는 좌측 능선길로 접어들어,  

 

어둠을 뚫고 길도 없는 사면을 더듬어 팔공기맥 능선에 무사히 올랐다는 안도감에 취해 쉬엄쉬엄 걸음을 옮기면,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잠시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이내 석심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석심산(石心山, 760m)>
영천시 화북면, 청송군 현서면, 군위군 삼국유사면(옛 고로면)을 가르는 삼군봉(삼면봉)으로, 좌측은 그대로 영천시이지만 우측이 청송군에서 군위군으로 바뀌어 팔공산 정상까지 군위군과 영천시를 경계하며 이어지게 된다. 주위에는 병풍암과 학소대가 유명하고, 바위골, 용암(龍岩)과 학암리(鶴岩里), 가람리(加岩里), 백암(白岩) 등 바위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인근 석산리(石山里)에는 석정(石井)도 있고 하여 석심산으로 불리게 되지 않았나 짐작할 뿐이다.

 

혼란스러운 산길에서 늘 밝게 다가오는 '준.희'님의 산패. 

 

 

석심산 정상에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떨쳐내고 다시금 환한 얼굴을 되찾은 백두들이, 

 

2년 만에 다시금 팔공기맥을 찾게 되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석심산에서 80m 정도 내려서면 팔공기맥과 보현지맥이 갈리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현지맥은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고 팔공기맥은 직진의 능선 내림길을 따라 진행해야 하는 지점이다. 

 

갈림길 나무둥치에는 '준.희'님의  '팔공지맥분기점' 산패가 걸려있는데, '팔공기맥'을 9기맥의 하나로 인식하는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이곳은 '보현지맥 분기점'이 된다. 저 '보현지맥'은 후일에 해결해야 할 또하나의 숙제로 남겨두고 팔공기맥 길로 진행한다.   

 

 

낙엽에 덮여 있어서 등로의 구분이 난해한 팔공기맥 등로를 더듬어 내려서다가, 

 

좌측 보현산 방향. 

 

안부를 지나 암릉봉(692.4m봉) 아래까지 능선길을 따르다가 암릉을 좌회하여 오르고, 

 

692.4봉에서 잠시 진행하다가 봉분이 거의 사리진 묵묘를 지나며 다시 급하지 않은 능선 내림길로 들어서는데, 

 

좌측 보현산 우측에서 시작된 뜨거운 일출이 서늘한 새벽기운을 몰아내 주고,  

 

삭막한 겨울숲을 따뜻하게 비춰오는 태양의 기운을 받으며 낙엽이 푹신한 팔공기맥 능선을 따르면, 

 

옛날 헬기장으로 쓰였던듯 봉우리가 편형한 능선 분기봉인 578봉에 올라, 팔공기맥은 좌틀하여 수기령으로 이어지지만, 따스하게 비춰오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돌아본 석심산 방향. 

 

어둠 속에서 길도 없는 가파른 석심산을 넘어와 안도의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578봉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3시 방향의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서며 수기령을 향하면, 

 

우전방으로 아미산쯤이 건너다 보이는 둥그런 안부를 지나 작은 봉우리를 오르게 되고, 

 

살짝 당겨본 아미산 방향. 

 

532봉을 지나서 잠시 평평한 능선을 이어가다가, 

 

내리막으로 들어서며 서 있기조차 어려운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면, 

 

'삼국유사로'란 도로명 표지판이 걸린 수기령(420m)에 내려서게 된다.

 

<수기령(水基嶺, 420m)>
경북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와 군위군 삼국유사면(옛 고로면) 학암리를 잇는 2차선의 90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고개 우측 고로면 학암리와 낙전리가 팔공기맥의 우측 물길인 위천의 발원지로, 두 마을 위쪽에 있는 고개 수기령은 물의 기원이 되는 고개로 알려져 있다. 고갯마루에는 군위군에서 설치한 ‘군위군 고로면’ 표지석이 있고, 국기게양대와 영천 로터리클럽에서 설치한 ‘식수사업기념탑’이 위치하고 있다.

수기령 들머리는 '군위군 삼국유사면' 표지석 뒤편으로 이어진 수레길로 이어진다. 

 

<군위군 삼국유사면(옛 고로면)>
옛 이름은 고로실(현재의 괴산리)이라는 옛 지명에서 이름을 딴 고로면(古老面)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일제 당국이 일방적인 식민지 지배의 편의를 위하여 붙여진 지명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군위군에서도 지명 변경을 추진했다. 2021년 1월 1일을 기해 고로면이 삼국유사면으로 바뀌었는데, 삼국유사면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의 승려인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입적한 인각사(麟角寺) 유적이 위치한 데서 유래되었다. 
신라시대 467년에 고로부곡(古老部曲)이라 칭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062년 귀산현과 부림현을 병합하여 의흥군으로 유치되었다가 현종 9년에 안동군에 귀속되었으며, 조선시대인 1408년에는 의흥군 소수면(義興郡 小首面)과 의성군 소야면(義城郡 巢野面)으로 분리되었으며, 이어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령에 의하여 행정구역 개편 시 의흥군 소수면(義興郡 小首面)과 의성군 소야면(義城郡 巢野面)을 합쳐 당시 신응균(申應均)씨가 거주하던 '고르실' 이름을 따서 고로(古老)라 불려졌다.
군위군 동편에 위치하여 군소재지로부터 약 33Km의 거리에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며 산간벽지로 지형은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길고, 동쪽은 영천군 화북면, 서쪽은 의흥면·산성면, 남쪽은 영천군 신녕면, 북쪽은 의성군 춘산면, 청송군 현서면에 인접하여 산악은 대체로 기복하고 지세는 험악하며 성벽을 형성하고 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내는 위천의 근원이며, 임야 면적은 많으나 경지 면적은 극소하고 지질은 대체로 사질이 많은 편이다. 경지율 8.4% 중 논밭 비율은 35:65로 밭농사가 성하며 소채류·과실류의 생산이 많으며 특히 파·가지의 생산은 군위군 내에서 1위이다. 
관광명소로는 화산의 약수탕·인각의 물탕 및 인각사가 있으며 경내에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 조각하여 만든 보각국사비(보물 제 428호)가 있고 화산의 화산산성과 압곡사 등이 유명하다. (펌)

 

남쪽 영천시 방향. 

 

수기령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군위군 삼국유사면' 표석 우측 도로를 따라 앞쪽의 외딴집을 향해 오르면, 

 

따르던 도로른 외딴집 마당으로 이어져 있고, 기맥길은 앞쪽으로 보이는 잡목지대를 통과하여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능선으로 이어지는데, 

 

잡목지대는 겨울철임에도 통과가 어려울 정도라서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진행하여, 

 

돌아본 수기령 방향. 

 

나무가 자라난 숲으로 들어서면 거칠지만 그나마 희미한 족적이 능선으로 이어지고,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초겨울에 피어난 철없는 한송이 진달래가 눈길을 끌고, 

 

돌아본 수기령 방향으로는 석심산에서 걸어온 팔공기맥 능선이 시원스레 가늠된다. 

 

우측 삼국유사면 학암리와 석산리 방향.

 

돌아본 동북쪽 석심산 방향. 

 

동쪽 보현산 방향. 

 

 

잠시 더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낙엽이 등로를 덥고 있는 581.4봉을 지나는데, 

 

좌측 나무가지에는 군용 따불백이 걸려있고,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지난 구간의 보현산과 면봉산이 조망된다. 

 

 

581.4봉을 지나자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길 나무둥치에 걸린 592.8봉(개념도 상 612m) 산패를 지나, 

 

완만하던 능선길이 다시금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암릉을 만나 좌회하여 오르고, 

 

가끔씩 바위들이 보이는 능선 오름길을 따라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면, 

 

남쪽 영천시 화북면의 봉림산 방향 능선 분기봉인 747.8봉에 도착한다. 

 

봉림산 방향 능선분기봉인 747.8봉에서 팔공기맥은 좌측의 동남쪽 1.4km 지점 봉림산 방향 능선을 두고 직우틀하여 서쪽으로 이어지는데, 지금까지 군위군 삼국유사면(옛 고로면)과 영천시 화북면 경계선을 이어오던 기맥길은 이 봉우리부터 좌측의 행정구역이 영천시 화북면에서 화남면으로 바뀌게 된다. 

 

747.8봉에는 서래야 박건석님의 '질매봉(747.0m)' 코팅지와 '준.희'님의 '추억에 산길을 걷노라면/ 봉림산 가는 길' 표지판이 걸려있다. 이 봉우리 아래에 길마재 또는 질매재라는 명칭이 붙은 자연 마을이 있는데, 방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이기재와 이 산의 허리가 마치 말의 길마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동남쪽 봉림산(우)과 방가산(좌) 방향. 

 

서쪽 팔공기맥 방가산 방향. 

 

747.8봉(질매봉) 인증. 

 

747.8봉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쉼을 하는 백두들. 

 

 

잠시의 쉼을 뒤로하고 제법 가파른 747.8봉 내림길을 내려서면, 

 

이내 다시 완만한 능선길로 바뀌더니, 

 

좌.우로 갈림길 흔적이 역력한 옛고개를 지나게 되고, 

 

잠시 동안 편평한 능선길이 더 이어지다가, 

 

완만한 오름길로 바뀌며 쓰러진 소나무가 등로를 막고 있는 암릉을 우회하여 오르면, 

 

돌아본 747.8봉 방향. 

 

밋밋한 능선 나무둥치에 700.9봉을 알리는 산패가 걸려있다. 

 

 

어디가 능선인지 조차 구분이 어려운 숲길을 따르면, 

 

나뭇잎 이불을 덮은 채 다소곳이 자리한 작은 쌍분묘를 지나게 되고, 

 

그다지 우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지나면,  

 

좌측 화남면 용계리 방향. 

 

다시 나무들이 빼곡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작은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700.9봉쯤을 지나게 되고, 

 

우측 삼국유사면 학암리 방향. 

 

꽈배기가 연상되는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유순한 능선길을 따르면, 

 

좌전방으로 방가산(좌)과 아미산 갈림봉(돌탑봉, 중앙)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더니,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팔공기맥 산님들 힘내세요!'라는 '준.희'님의 응원패가 걸린 683.6봉에 도착하여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쉼을 하기로 한다.  

 

사방 어디를 보아도 나무와 산만 보이는 깊은 산속 봉우리에서 그리 길지않은 코스라 별다른 부담도 없이 그저 산에 있음 자체를 즐기며 여유로운 쉼을 한다.  

 

 

완만한 내림길을 따라 683.6봉을 내려서고, 

 

잔가지들의 위협을 받으며 낙엽 수북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작은 봉우리를 지나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돌탑봉(아미산 갈림봉, 중앙)과 방가산이 건너다 보이고, 

 

어렵잖은 능선길을 잠시 더 따르다가,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비교적 길게 오르면,  

 

팔공기맥 산꾼들에게 돌탑봉이라 불리는 우측 아미산 방향 갈림길이 있는 742봉에 올라서게 된다.

 

'현위치 돌탑봉'으로 표시된 이정표.(←아미산 1.7km) 

 

가이드 로프까지 설치된 우측 아미산 방향 등산로 들머리. 

 

<돌탑봉(742m)>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 화남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으로는 아미산 가는 길이고 기맥길은 좌측 방가산으로 이어진다. 정상에 산꾼들이 얼기설기 쌓은 작은 돌탑이 있어서 '돌탑봉'으로 불려지는 듯하고, 우리가 가진 개념도에는 742봉으로 표시가 되어 있지만, 정상의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의 '745.7봉' 산패가 걸려있다. 

 

돌탑봉 정상 전경. 

 

돌탑봉 우측(북쪽)으로 756.1봉과 그 우측 뒤로 아미산(737.3m)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망되는데,

아미산은 이 곳에서 1.7km 정도 벗어나 있다.

 

<아미산(峨嵋山, 737.3m)>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위치한 아미산은 주변 산에 비해 높지는 않지만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옮겨놓은 듯이 아름다운 산이다. 팔공산 줄기는 시루봉을 지나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를 지나며 끊어질 듯 야트막한 야산이 되었다가 조림산과 화산(華山·828m)이 만나는 갑령재에 이르러 다시 치솟는다. 화산을 넘으면서 탄력을 받은 줄기는 방가산(755.8m)을 지나 팔공지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아미산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에서 음을 빌려와 산이 높고 위엄이 있다는 뜻의 아미(峨嵋)로 했다.
아미산은 높이로 말하는 산이 아니다. 산세가 수려하며 산이 작아 보여도 바위 형태가 만물상을 이룬 듯하다. 바위틈 사이에서 자라 짧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분재 같은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크게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모양들이 마치 촛대 같이 생겨 청송 주왕산의 촛대바위를 연상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산의 모양은 다섯 개의 바위봉이 나란히 어깨를 맞댄 형국이고, 많은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마을을 지키는 듯한 모습이어서 예로부터 이곳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돌탑봉 인증. 

 

 

747봉(질매봉)에서  서쪽으로 달려온 팔공기맥은 이곳 돌탑봉에서 ​다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가산으로 이어지는데, 

 

지금까지의 육산 능선에서 보지못했던 암릉을 지나게 되고, 

 

다시 유순해진 능선길을 잠시 더 따르다가 짧은 오름길을 오르면, 

 

작은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는 방가산(方可山) 정상에 도착한다. 

 

<방가산(方可山, 755.8m)>
방가산(方可山)은 영천시 화남면과 군위군 삼국유사면(옛 고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서쪽은 화산, 북쪽은 마이산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화북댐에 의한 화북호가 있다. 명칭은 산의 모양이 상제가 밖에 나갈 때 쓰던 방갓(方笠)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청정함을 느낄 수 있는 오지의 산이다. 특히 동서로 깊게 파인 계곡이 많아 한국전쟁 이후에는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한 슬픈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서북으로 위천, 동북과 남서로 고현천이 경계를 이루며, 방가산 정상에서 영천지역의 보현산천문대 조망이 가능하며 인근에 군위 장곡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방가산 등산로와 연계하여 삼국유사면 양지리의 아미산 등산과 연계가 가능하다. 
방가산 일대의 지질은 백악기의 중성 화산암류가 대부분인데, 그 위로 반암류도 부분적으로 분포해 있다. 서북으로는 위천, 동북과 남서로 고현천이 경계를 이루는데, 위천으로 배수되는 지역에는 기암의 토어(tor, 차별된 풍화 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독립성이 강한 암괴 미지형)들과 소규모 선상지(扇狀地, 산지에서 흐르던 하천이 갑자기 완만한 평지를 만났을 때 곡구를 중심으로 유속이 느려지며 형성된 충적 지형)들이 나타난다. 방가산의 남사면은 주로 굴참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도 450m 전후에는 전석지(轉石地)가 형성되어 있다.

 

방가산 정상 전경. 

 

북쪽 아미산 방향. 

 

방가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방가산 정상 인증. 

 

 

방가산을 뒤로하고 내려서면 오석의 묘비가 있는 묵묘가 자리하고 있고, 

 

본격적인 방가산 내림길로 들어서자 앞쪽으로 다음 구간에 걷게 될 화산쯤이 희뿌였게 보이며, 

 

급경사 내림길에 침목 계단을 설치해 놓았으나 낙엽에 덮여 있어서 오히려 발을 겹지를 위험이 있고, 

 

그렇게 급경사를 잠시 내려서자 다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긴급구조표시목 바로 좌측 아래에 있는 경주김공 묘지 우측 등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긴급구조표시목에는 특이하게도 군위군청과 의성소방서 연락처가 나란히 쓰여 있는데 이곳이 어린시절을 보낸 의성군의 소방서에서 관할하고 있다니 사뭇 반가운 마음이 들고, 

 

이내 널찍한 봉우리에 벤치와 이정목이 설치된 장곡휴양림 갈림봉(588m)을 지나게 된다.

 

<장곡자연휴양림>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장곡리에 소재한 휴양림이다. 1997년에 개장했으며, 구역면적은 261만㎡, 1일 최대 수용인원은 500명, 최적 인원은 200명이다. 군위군청에서 관리한다. 깊은 산속에 군위군에서 참나무천연림에 조성했으며, 산등성이에는 소나무와 활엽수가 많다. 가을철에는 도토리와 산송이가 많다. 계곡을 따라 난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면 옛날 골짜기에서 농민들이 농업용수로 쓰던 저수지인 용암지가 있다. 
휴양림에는 야영장, 산책로, 삼림욕장, 전망대, 숲속의 집 등 편의시설과 체력단련실, 민속놀이터, 어린이놀이터 등과 야외교실, 임간수련장, 자연관찰원, 전시관 등의 교육시설을 비롯해 여러 휴양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주변에 인각사, 제2석굴암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이며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보물 428)가 있다. 제2석굴암은 1709년(숙종 35) 윤숙(尹淑)이 승려들의 시주와 사재를 털어 병영을 건설하기 위해 세운 성곽인 화산산성 안에 있으며 거대한 자연 암벽인 삼존석굴(국보 109) 안에 불상이 있다. 

 

우측 로프 울타리로 막힌 능선 방향이 장곡휴양림으로 가는 길이고, 팔공기맥은 좌측 '장곡휴양림 주차장 4.18km' 방향이다. 

 

네이버 지도에는 정규 등로 표시가 되어있는 우측 능선 방향에는 "이 곳에서 장곡자연휴양림으로 진입시 입장료를 징수하니 아미산과 방가산 등산객들은 안내 등산로를 따라 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 하산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좌측 '자연휴양림 주차장' 방향 팔공기맥 능선으로 들어서서,  

 

가이드 로프까지 설치된 급경사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이내 등로는 다시금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작은 오름길을 오르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작은 봉우리인 541.4봉(개념도 상 544봉)을 지나게 되고, 

 

능선을 따라 줄지어 있는 진주강씨 묘지들을 따라 내려서면,

 

우측 사면으로 장곡자연휴양림 주차장 방향 임도가 이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하여, 좌측의 직진 방향 능선길로 오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장곡자연휴양림 입구까지 임도로 ​이어져 있어서 잠시 후에 이곳에 도착한 후미분들 중에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분이 있어서 이곳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 탈출하게 된다. 산행 종료지점인 구전리에서 기다리던 버스 기사님께 요청하여 탈출하신 분들을 픽업하게 하였는데, 직선거리는 4k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차량으로는 수기령이나 갑령재로 돌아가야 해서 편도만으로도 1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이기에 쉬이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협조해 주신 기사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좌측의 능선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오름길에 작은 쇄석들이 쌓여 있어서 밟으면 미끄러져 내려서 무척이나 힘들게 올라야 하고,  

 

암릉이 아님에도 로프까지 메인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돌아본 방가산 방향.

 

급경사 능선길이 다소간 완만해 지더니, 

 

봉우리 직전에 이정표(←주차장 2.89㎞, →방가산 2.19㎞)가 있는 603봉을 지나게 되고, 

 

빼곡한 나뭇가지 사이로 건너다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능선길을 따르면, 

 

653봉 직전의 우측 휴양림 관리소 방향 능선 갈림길 이정표에서 좌측 괴산마을 방향의 653봉을 넘어 진행하게 되고,  

 

완만한 능선 안부에 ‘낙동정맥트레일 등산로 이용 안내판’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석축으로 빙 둘러진 널찍한 정상부에서 앞서간 백두들이 배낭털이를 하며 쉬고 있는 경림산 정상에 도착한다. 

 

<경림산(瓊林山, 688.8m)>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 화남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팔공기맥 산꾼들의 산패만이 걸린 봉우리다. 경림산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옥같이 아름다운 숲'이라는 뜻의 옥수경림(玉樹瓊林)이란 말에서 유추해 보면 아름다운 숲이 있는 산이라는 예긴데, 참으로 잘 지은 산 이름일 수도 있겠다. 

 

반바지님의 산패.

 

준.희 님의 산패.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힘든 산행이어서 모두들 예상보다 힘들다며 한참을 쉬어가잔다.  

 

경림산으로 오르는 후미들.

 

 

한참 동안의 쉼을 마치고 경림산을 내려서서,

괴산마을이 4.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작은 봉우리를 넘어,  

 

완만한 능선길을 잠시 더 따르다가, 

 

직진의 능선을 두고 우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야 하는 675봉쯤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 사면에 벤치 3개가 설치된 쉼터도 그냥 지나쳐,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진행하라는 이정표(←괴산마을 3.3km, →방가산입구 1.6km)를 지나면, 

 

이곳으로 낙동정맥 트레일이 지나는지 별반 소용이 없어 보이는 '낙동정맥트레일 등산로 이용안내판'을 또 지나게 된다.

 

 

기맥길이 완만한 안부로 접어들며 주변이 편형하여 어디가 능선인지조차 분명치 않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616.9봉(개념도 상 613m)을 지나면, 

 

따르던 능선길이 암릉에 막혀 좌틀하는 지능선 분기점에서 뚜렷한 등로를 따라 좌틀하여 사면으로 들어서면, 

 

좌측 아래로 이정표와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오는데,

팔공기맥은 이정표의 괴산마을 방향인 사면 아래로 이어진다. 

 

 

낙엽이 쌓여 등로의 구분이 희미한 능선 내림길을 내려서면, 

 

이내 등로는 다시금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우측 괴산마을 방향.

 

좌측 구전리 방향. 

 

우측 괴산마을 방향 갈림길 이정표(↓방가산입구 2.7km, →괴산마을 3.3km)와 벤치가 있는 갈림길을 지나면, 

 

이내 노거수가 널찍한 안부를 지키고 있는 살구재에 도착한다. 

 

<살구재>
경북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와 군위군 삼국유사면 괴산리 고로실 마을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 왕래가 많았던 듯 뚜렷한 옛길 흔적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아 낙엽에 덮여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개다.  고갯마루에는 수령이 꽤나 오래된듯한 노거수 한그루가 재를 지키고 있다.

 

본디 계획은 이곳에서 화산 방향으로 잠시 더 진행하면 나오는 충성로 임도에 접속하여 팔공기맥 산행을 마감하고 좌측 구전리 방향으로 탈출하려 하였다. 하지만 다음 구간 팔공기맥 접속 거리가 좌측 구전리 별곡마을보다 우측 괴산리 고로실 마을에서의 접근이 거리도 훨씬 짧고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아, 오늘 탈출은 좌측 화남면 구전리로 하고 다음구간 접속은 우측 괴산리 고로실 마을에서 하기로 한다. 호기심 땜시! 

 

먼저 도착한 분들이 좌측 구전리 방향으로의 탈출을 위해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살구재에서 희미한 길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낙엽이 수북이 덮힌 좌측 구전리 방향으로 들어서면, 

 

예상대로 낙엽이 덮고 있기는 하지만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별다른 혼란없이 진행할 수가 있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옛길을 따르다가 지능선에서 우측 능선 숲길로 접어들면, 

 

지능선으로도 뚜렷한 옛길 흔적이 이어져 있어서 진행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고, 

 

우측 아래로 잘 다듬어진 묘지가 나타나더니, 

 

가족묘지로 이어진 도로에 접속하여 도로를 따라 구전리 별곡마을로 향하게 된다.

 

묘지 아래 도로로 접속하며 돌아본 살구재 방향. 

 

 

살구재 아래 골짜기의 밭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별곡마을로 향하면, 

 

걷기 좋은 흙길이 시멘트포장 도로로 바뀌며, 

 

우측 아래 넓은 과수원에는 홀로 일하는 농부도 보이고, 

 

우측 화산으로 이어진 충성로 임도 갈림길도 지나는데, 

 

좌측 잎사귀를 떨군 참나무숲에 커다란 등검은말벌집이 눈길을 끌고, 

 

골짜기의 넓은 과수원 쥔장의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으리으리한 외딴집도 지나,  

 

길게 이어진 포장도로를 따르면, 

 

시멘트포장 도로는 널찍한 2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바뀌더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구전리 별곡마을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충성로 임도가 아닌 살구재에서 이곳 별곡마을까지 탈출 거리가 3.1km쯤이다.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화북면 소재지의 '화북식당'으로 이동하여,  

 

식당 바로 앞에 있는 2,500원 하는 목욕도 제처 두고, 

 

바로 식당으로 입장하여, 

 

맛있는 수육으로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즐기고는,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2년 전에는 1회 산행으로 진행하려던 노귀재~갑령재 구간을 

이번에 2회로 나누어 노귀재~살구재 구간을 걸었은데 예상보다 훨씬 힘든 산행이었다.

 

그간 어려운 맥산행을 하지않고 쉬운 산행만 해서 그러했던 것인지,

아니면 너무 쉽게 생각했다가 어렵다고 느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늘 준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만이 우리의 행로를 쉽게 열여 줄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