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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팔공기맥 4차(살구재~자주고개) : 멋진 산그림에서 발견한 보현산과 팔공산

by 재희다 2023. 3. 19.

 

산 행 지 : 팔공기맥 4차(살구재~자주고개)  경북 군위군, 영천시.
산 행 일 : 2022. 12. 10.(토)
산행코스 : 괴산마을 + 살구재 ~ 충성로 임도 ~ 충성문 ~ 화산 ~ 감자골 ~ 722.9봉 ~ 갑령재 ~ 사기점고개 ~ 자주고개 (기맥 19km + 접속 1.7km, 8시간 소요)

산행참석 : 13 백두.

<산행지도>


12월이면 완연한 겨울인데, 아직도 가을처럼 춥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며 팔공기맥 화산 구간이라는 오지 산행임에도 그리 부담스럽지가 않다. 더욱이나 한번에 진행하려던 노귀재~갑령재 구간을 2회로 나누어 진행하며 널널이 산행이 예상됨에 따라 다음번 팔공산 오름길 구간의 부담을 줄이고자 갑령재에서 6km 정도를 더 진행하여 자주고개까지 진행해 놓기로 한다. 

 

지난번 노귀재~살구재 산행 때 살구재에서 좌측 구전리 별곡마을로 탈출하였기에, 금번 어프로치는 비록 등로는 명확치 않으나 거리가 1.7km로 반 밖에 되지 않고 늘 가 본 곳보다 새로운 곳에 대한 궁금증 해소를 즐기는 터라, 반대쪽인 북쪽 괴산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하여 살구재까지 옛길을 더듬어 오르기로 한다.  

 

 

역시 베테랑 기사님이라서 그런지 양재를 출발한 버스가 3시간을 넘게 달리는 동안, 버스 의자에서의 쪽잠에도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도 또한 께지도 않은 채 산행 출발지인 군위군 삼국유사면 괴산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하였고, 멈춰 선 버스 안에서 두어 시간여 동안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일어나 산행 준비를 시작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엇그제가 보름이어서 그런지 하늘에는 밝은 달이 휘영청 사위를 비춰주고 있고, 

 

괴산리 마을회관을 뒤로하고 살구재 방향의 도로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하면, 

 

지난 팔공길에서 보았던 형태의 이정표가 살구재까지의 접근 등로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흐릿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살구재를 향해 농로를 따르면, 

 

따르던 농로가 묘지길로 바뀌는 지점에서 또다른 이정표를 확인하고,  

 

가족묘지로 들어서면 따르던 길은 묘지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이어지는 길 흔적을 찾기가 어렵지만, 

 

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 옛길 흔적을 더듬어 진행하면 이내 뚜렷한 옛길 흔적이 이어지고, 

 

따르던 옛길 흔적에 겹쳐서 이어지는 뚜렷한 바퀴자국을 따라 급경사 사면 오름길을 치고 오르면, 

 

마침내 팔공기맥 괴산리 갈림길과 살구재 사이의 능선에 올라서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우틀하여 살구재 방향으로 진행하면, 

 

지난 산행길에 보았던 나무둥치에 매인 군용 플래시가 눈에 띄고, 

 

이내 노거수가 지키는 살구재에 도착하며 막무가내로 진행된 어프로치를 마감하고,

잠시 배낭을 내리고 다함께 모닝커피를 나누며 널널이 산행에 대한 기대를 키운다. 

 

<살구재(435m)>
경북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둔달골과 군위군 삼국유사면 괴산리 고로실 마을 하태골 사이의 고개다. 예전에 왕래가 많았던 듯 뚜렷한 옛길 흔적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다니지 않아 낙엽에 덮여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고개다.  고갯마루에는 수령이 꽤나 오래된듯한 노거수 한그루가 재를 지키고 있다. 
화남면 구전리(龜田里)의 지형을 보면 타원형의 평지를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거북 형상의 산세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팔공산 오름길 구간 산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오늘 산행은 갑령재에서 7km 정도 더 진행하여 자주고개에서 마치기로 함에 따라, 갑령재까지 널널이 산행을 즐기실 분들과 자주고개까지 백두의 흔적을 이을 분들을 나누어 진행키로 하고,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단체 기념촬영을 남기고 살구재에서 팔공기맥 잇기 산행을 시작한다. 

 

 

갑령재까지 천천히 진행해도 되는 분들과 헤어져 살구재를 뒤로하고 100여 미터 진행하면, 

 

하얀 상고대가 맺히기 시작하는 그저 밋밋한 능선같은 곳의 나무둥치에 447.1봉 산패가 걸려있고, 

 

충성로 임도를 향해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좌측 구전리 별곡마을에서 이어져 온 군 임도인 충성로에 올라서게 된다. 

 

충성로 임도 구전리 별곡마을 방향. 

 

돌아본 살구재 방향. 

 

 

우측의 군 작전도로인 충성로 임도를 50여 미터 진행하면, 

 

좌측 645.9봉 방향 희미한 숲길 들머리가 나오는데, 마음은 팔공기맥의 봉우리인 645.9봉을 오르고 싶지만 갑령재까지만 가는 널널이 산행팀과 하산 시간을 맞추어야 하기에 오늘은 화산 직전까지 몇몇 봉우리들을 그냥 충성로를 따라 우회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우회하는 좌측의 645.9봉은 삼면봉으로 우측 북쪽은 군위군 삼국유사면이 이어지지만, 좌측 남쪽은 영천시 화남면에서 화산면으로 바뀌게 되는 봉우리다. 기맥길에 충실한 산꾼들은 대부분 거친 잡목숲길을 따라 삼각점과 정상 산패가 걸린 봉우리로 오르지만, 최근들어 힐링 산행을 추구하는 산객들은 편한 충성로 임도를 따라 우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주변이 훤히 밝아졌음에도 서쪽 하늘에서 환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는 달을 쫓아 우회 임도를 따르는데, 

 

뒤쪽으로 지난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였던 616.9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건너다 보이고, 

 

육군3사관학교장의 '민간인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있는 임도 차단기를 무심히 넘어 계속 임도를 따르면, 

 

우측 아래로 새벽에 출발했던 괴산리 고로실 마을과 그 뒤의 군위호가 운해에 잠겨있고,   

 

서늘한 아침기운을 만끽하며 편안한 임도를 따르면, 

 

645.9봉을 지나온 팔공기맥이 다시 충성로 임도에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게 된다. 

 

돌아본 645.9봉을 지나온 팔공기맥(우)과 충성로 임도(좌) 전경.

 

 

따르는 충성로 임도에는 경고판과 간이화장실이 연이어 설치되어 있고, 

 

"군인 아자씨들 산길 운전 조심하삼~'을 기원하는 '안전운전' 표지석도 지나서, 

 

원 기맥 봉우리로 보이는 앞쪽 봉우리 직전에서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계속해서 따르면, 

 

충성로 임도는 앞쪽 팔공기맥의 783.1봉을 향해 그림인 듯 이어져 있고, 

 

충성로 좌측 땅과 하늘이 맞닿는 어디쯤에서 말로는 형언키 어려운 찬란한 일출이 시작된다. 

 

 

내일도 뜰 태양이라며, 해야 뜨던 말던 갈길 바쁜  산꾼들은 무심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고, 

 

우주의 미세먼지들이야 걷던 보던, 지구는 돌고돌아 오늘도 찬란한 일출을 만들어 낸다. 

 

 

떠오르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지만 걸어야 할 길이 멀기에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어 임도를 따르다가, 

 

뒤돌아 보니 지나온 임도 저편 멀리로 2년 전에 지나온 보현산과 면봉산이 가늠되고,  

 

일출을 보느라 늦어진 걸음을 보충하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쪽에서 '충성로' 표지석과 경고판 그리고 충성문으로 알려진 '화산유격장 출입문'이 나타나고, 

 

'화산유격훈련장' 출입문을 배경으로. 

 

충성로 표지석을 배경으로. 

 

'충성문'으로 알려진 화산유격장 출입문.

 

<충성문(720m)>
지형도에는 표기되지 않은 지명으로 산행지도에 충성문으로 표기되어 있다. 화산의 고위평탄부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팔공기맥은 충성문을 들어서서 충성로 임도를 두고 좌측 숲으로 들어 785봉을 향하는 지점이다.

 

 

 

보무도 당당하게 충성문을 들어서면,

팔공기맥은 바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계속 충성로 임도를 따른다.

 

좌측 팔공기맥 785봉 방향 들머리 전경.

 

좌측 팔공지맥 능선을 따라 오르면 나오는 785봉도 삼면 경계봉으로, 마루금 우측인 북쪽은 계속 군위군 삼국유사면이 이어지지만, 남쪽인 좌측은 영천시 화산면에서 신녕면으로 바뀌게 되는 삼면봉이다. 이 봉우리도 오르내림 등로가 거칠고 희미하며, 이내 다시 충성로 임도로 내려서게 되므로 갈 길 바쁜 우리는 이 봉우리도 우회하여 지나기로 한다. 

 

 

785봉도 우회하는 충성로 임도를 계속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 임도로 들어서면, 

 

최근에 관리를 하지 않았던지 주변의 잡목들이 웃자란 임도가 이어지며, 

 

진행 방향인 서쪽 하늘에는 아직도 선명한 모양의 달이 걸려있고, 

 

북쪽으로 보이는 뚜렷한 산모양을 당겨보니 의성군 가음면의 선암산과 뱀산이다. 

 

돌아본 동북쪽 방가산 방향. 

 

 

편평한 숲으로 보이는 지능선쯤을 넘으며 평탄하게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데, 

 

멧돼지 목욕탕쯤으로 보이는 물웅덩이가 얼어있고, 

 

좌측 팔공기맥 능선의 778봉 방향 들머리쯤도 그냥 지나쳐, 

 

778봉 들머리 전경. 

 

계속해서 팔공기맥 능선을 좌측에 두고 우회하는 임도를 따라 정면으로 보이는 화산을 향한다. 

 

 

서늘한 아침기운을 폐부로 들이키며 낙엽을 떨군 겨울나무들이 도열한 임도를 따르다가, 

 

따르던 임도가 다시 팔공기맥 능선으로 합류하여 가야 할 팔공기맥 능선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리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도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임도를 따르면, 

 

돌아본 778봉 능선 날머리 방향. 

 

임도가 능선 남쪽 사면으로 이어지며 따스한 기운이 눈으로도 느껴지고, 

 

완만한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뻗은 지능선이 마치 팔공기맥으로 느껴지는 알바주의 지능선을 넘으면, 

 

우측으로는 간이화장실을 늘어서 있고, 

 

좌측에는 화생방 훈련을 하는 가스실쯤으로 보이는 군부대 건물도 지나서, 

 

멀리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좌전방으로 보이는 802봉(연화봉) 방향 들머리를 찾아보지만 찾을 길이 없고, 

 

또다시 나타나는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임도로 들어서는데, 

 

'이곳은 매복전투 사격장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의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잠시 더 임도를 따르면, 

 

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기맥길 들머리로 알려진 '828 강의장' 표시판이 깨어져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다가, 이내 다시 돌아와 '828강의장' 표시판 옆 숲길로 들어서며 화산 정상을 향한다. 

 

 

군 임도 좌측 숲길로 들어서서 '828강의장'을 향해 오르면, 

 

기맥 등로는 828강의장 좌측으로 난 등로를 따라 뒷 봉우리로 오르게 되고, 

 

돌아본 화산의 봉우리들. 

 

'828강의장' 뒤편 봉우리에 오르면 녹슨 철탑이 방치되어 있고, 비교적 뚜렷한 등로가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이곳 능선도 군훈련장으로 사용되는지 주변에는 발자국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흩어져 있는 짧은 오름길을 올라, 

 

'훈' 표시석이 세워져 있는 814봉을 올라서면, 

 

가야 할 화산 좌측 멀리로 팔공산이 가늠되고, 

 

814봉을 내려서서 화산 직전 안부 좌측 양지바른 곳에서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한다. 

 

 

단출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잠시 오르면, 

 

번듯한 정상석은커녕 잡목들만 무성한 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화산(華山, 827.1m)>
경상북도 영천시의 북쪽에 위치하여, 신령면 화남리와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에 걸쳐 있는 상부가 평탄한 산으로, 그 위에 있는 연화봉과 상자치의 경치가 매우 화려하여 화산(華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에  “신령면의 진산(鎭山)이다. 이 산의 이름을 신령면의 옛 이름 화산(華山)에서 따왔다. 화산은 현의 동쪽 30리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유사한 기록이 「여지도서(의흥)」에  "화산(華山)은 관아의 동쪽 30리에 있다. 청송부 보현산에서 뻗어 나와 공산(팔공산)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라고 기재되어 있어 산줄기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의흥)」에는 "화산성(華山城)은 숙종(肅宗) 35년(1709)에 성을 쌓다가 그만두었는데, 둘레가 9,300여 보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화산에 있던 산성의 연혁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지명총람」의 "화산(華山, 華山城) : 영조 때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성을 쌓았는데, 현재 북문(홍예문)과 수구문이 남아 있음. 안에 윤병사비(尹兵使碑)와 약수, 풍혈(風穴)이 있으며, 산이 높아서 사방이 탁 트이고 경치가 훌륭함"이라는 기록을 통해 산 지명과 산성의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있다.

 

화산 정상 전경. 

 

 

화산 정상을 뒤로하면 능선 구분이 어려운 사면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비교적 뚜렷한 직진 방향을 두고 우측으로 휘어져며 풍력발전기 방향으로 내려서면, 

 

널찍한 풍력발전 단지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좌측 지능선 너머로 팔공산이 멋지게 조망되고, 

 

살짝 당겨본 팔공산 정상부. 

 

따르는 포장 임도 좌전방 멀리로 가야 할 화산마을(감자골)과 통신탑이 있는 722봉이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감자골과 722봉 방향. 

 

 

우측의 팔공기맥과 나란히 이어지는 포장임도를 따라 803봉 직전의 풍력발전기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좌측 풍력발전기가 서 있는 지능선 너머로 보이는 팔공산이 히말라야의 고봉인듯 신비하게 느껴지고, 

 

803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에서 절개지 가장자리를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돌아본 화산 방향. 

 

 

803봉으로 이어진 팔공기맥 능선으로 오르면 수레길 수준의 널찍한 등로가 이어지며, 

 

 표지기가 몇 개 걸린 803봉을 지나게 되고, 

 

작은 돌무더기가 눈길을 끄는 완만한 능선을 따르는데, 

 

등로 우측 빼곡한 잡목 사이로 군위호(湖)가 보이고, 

 

육산 능선에서 눈길을 끄는 바위를 지나면 편평하게 이어지던 능선이 급경사 내림길로 바뀌며, 

 

낙엽이 수북한 내림길을 더듬어 내려서면, 

 

잠시 전에 지나왔던 화산 내림길 풍력발전단지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가야 할 705봉 방향. 

 

돌아본 803봉 날머리 임도 전경.

 

 

우측 임도를 따라, 

 

705봉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각시산(옥녀봉)이 눈길을 끌고, 

 

고랭지 채소밭 울타리 펜스로 막힌 'T자' 갈림길에서 밭을 우회하기 위해 우틀하였다가,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펜스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르면, 

 

이내 나오는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측의 도로를 따르면 705봉을 좌회하여 화북4리 감자골로 바로 갈 수 있지만 팔공기맥에 조금이라도 더 충실하려 좌측 산으로 이어진 임도를 따르고, 

 

돌아본 803봉 방향.

 

풍력발전기를 지나며 좌측 숲으로 올라도 되지만, 

 

'캠핑장' 표지판이 걸린 능선 방향 들머리가 희미하여 계속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해피타임 농원'이란 표지판이 세워진 외딴집을 지나 오르게 되는데, 

 

우측으로 옥녀봉(각시산)과 선암산이 짙게 깔린 미세먼지에도 도드라져 보이고, 

 

705봉 바로 아래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돌아본 화산산성이 있는 능선 너머로 보현산도 조망되고,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리 화산 일대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본인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로 4개소의 성문(城門)을 기초로 한 뒤, 먼저 북문(北門)인 홍예문(虹霓門)과 수구(水口)를 만드는 등 축성을 시작하였으나, 흉년이 들고 질병이 만연하여 공사를 중지하였으며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어 미완으로 남은 성곽산성이다. 
전체 성터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북문터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아치문을 이루고 있으며, 성의 내벽을 구축하여 내·외협축의 성벽을 만들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구문터도 조선 중기 이후 유행한 2층의 수구로 축조하려던 모습이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 공사는 국가의 재정적 뒷받침 없이 윤숙 자신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로 시작되었으며, 일체의 민폐도 끼치지 않았음이 특징이다. 현재 북문과 수구문터는 축성을 시작하여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과 공사의 순차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살짝 당겨본 보현산 방향. 

 

도로를 따라 705봉 바로 아래까지 오르면 펜션이라도 지으려는 듯 터를 닦고 있다.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을 지나 도로 끝 절개지 가장자리로 오르면 바로 705봉인데, 작업자들이 이곳은 사유지라 통과할 수 없다고 막아선다. 이러저러한 사유를 들어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라 하는 수 없이 돌아나와 입구 쪽 절개지로 올라 705봉 직전 팔공기맥 능선으로 진입한다. 

 

절개지를 올라 705봉 직전에서 바라본 화산산성과 그 뒤로 보이는 보현산 방향. 

 

북쪽 인터넷 지도에는 각시산이라고 표시된 옥녀봉과 선암산 방향.

 

 

능선에 올라서면 어린 묘목이 줄지어 심겨진 과수원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705봉 정상부로 잡초가 무성하지만 뚜렷한 길흔적이 이어져 있고, 

 

돌아본 805봉과 화산이 이글거리는 태양에 달아오르고 있다.  

 

좌측 팔공산 방향. 

 

 

705봉 잡초밭을 지나 빛바랜 표지기가 한두 개 걸려있는 숲길로 들어서면 희미한 족적이 이어지고, 

 

가시넝쿨과 잡목이 진행을 방해하는 내림길을 어렵게 빠져나오면,

감자골(화북4리 마을) 건너편으로 가야 할 하늘전망대와 통신탑이 자리한 722봉이 건너다 보이고, 

 

지그제그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화산 마을(감자골)로 내려간다. 

 

가야 할 화산마을(감자골)과 하늘전망대 방향. 

 

<화산 마을(감자골)>
화산 마을은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고로면) 화북 4리를 말한다. 해발 828m의 화산 정상부 근처에 마을을 이루어 사는 곳으로, 화산A지구·재건동(再建洞)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1962년 정착민 들로 구성된 A, B, C, D 4개 마을이 산재되어 있었는데, 3사관학교 훈련장이 이전하면서 민간 주민들은 A지구 마을만 그대로 두고 다른 3개 부락은 철거시켰다. 철거민은 주변지역인 감자골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감자골은 영천군 신녕면 화남리와 접한 곳으로, 권오룡(權五龍)이 일제강점기 징용 및 보국대로 주민들이 끌려가자 남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화산(華山) 벌을 개간하여 감자를 많이 심어 감자골이라고도 한다. 초기 정착 시 180 가구가 정착하였는데, 인력으로 산을 개간하여 감자, 콩, 옥수수를 심어 먹고살았다. 이후 고랭지 채소를 심으면서 크게 돈을 벌었다. 
이 마을은 1962년 5.16 군사 쿠데타를 반대하던 사람들을 군에서 강제 이주시킨 곳으로, 산은 각 가구당 6,000평씩 배분하였고, 집은 방 1칸, 부엌 1칸 등 2칸으로 똑같이 지어 살게 하였다. 화산 마을은 2020년 농협에서 주최하고 행정안전부에서 후원한 제3회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경관 부문에서는 1위를 하였다. 최근 인구는 72가구 112명이라 한다. 

 

우측 각시산(옥녀봉)과 선암산 방향. 

 

 

북쪽의 옥녀봉이 보였다가 말았다 하며 지그제그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감자골(화산마을) 가운데의 2층집 좌측 화산분교 터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여 태양광발전단지를 지나 우측의 통신탑이 서 있는 722봉 직전의 하늘전망대로 이어지는 팔공기맥 등로를 가늠해 보고, 

 

여느 농촌 마을과는 달리 밭을 끼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가옥들을 기웃거리며 도로를 따라 마을 중심부의 이러저러한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 삼거리까지 진행하여, 

 

하늘전망대 방향 좌측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도로 우측 밭에는 겨울임에도 녹색을 띠고 있는 보리로 보이는 작물이 눈길을 끌고, 

 

도로 좌측 폐교된 화산분교터 정문 앞에서 우틀하여 능선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폐교된 화산분교 정문 앞에는, 

『 화북4리에 소재하는 화산분교는 건축할 당시 주민의 노동력과 경작하고 있는 토지를 희사하여 건축한 관계로 교육청에서 폐교 처분 시 주민의 매입의사를 문의하지 않고 교육청과 개인 간에 일방적인 거래를 하였으므로 주민 일동은 분교를 주민에게 돌려주기를 바라며 어떠한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도 주민 일동은 무조건 협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북4리 주민일동- 』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아이들이 뛰어놀던 학교터가 원치않은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싫어하는 주민들의 심정이 가늠된다.

 

 

화산분교터 앞 갈림길에서 능선 방향 파란색 지붕 민가 사이로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 오르는데, 

 

좌측 수확을 마친 밭 너머로 팔공산 주능선이 조망되고, 

 

돌아본 705봉과 감자골 방향. 

 

길 양쪽으로 마지막 민가가 자리한 도로를 따라 계속 오르면, 

 

도로는 태양광발전단지 가운데로 이어져 우틀하여 제법 가파른 오름길로 오르게 되고,  

 

돌아본 화산 방향. 

 

남동쪽 신녕면 방향.

 

우측으로는 감자골 건너편 멀리로 보현산이 선명하고, 

 

이내 음료를 파는 카페도 있는 하늘전망대에 도착한다.  

 

<군위 화산마을 하늘전망대>
군위 화산마을 하늘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군위호 등 주변 경관과 일출, 일몰, 운무는 대구경북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관이다. 마을이 화산(828m) 자락 해발 700m에 자리해 천혜의 절경으로도 유명하지만, 마을의 역사도 방문객들에게는 전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다. 대부분 농촌 마을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과 달리 화산마을은 60년 전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 1962년 재건동 혹은 개간촌 운동으로 임야를 개간해 밭을 만들고 그 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초창기 정착민들은 정부로부터 임야를 무상으로 지급받아 180여 가구가 4개의 자연 부락을 구성해 거주했다. 이후 군부대가 주둔하게 되면서 다른 마을은 인근 영천시의 감자골 등으로 옮겨졌고 현재까지 화산마을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有朋自遠方來(유붕자원방래)라, 

멀리서 찾은 김 전무님을 반가이 맞아 전망대로 안내하는 진돌이!

 

전망데크 옆에는 임진왜란시 재상이었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이 가을철에 화산을 찾아와 맑은 옥정의 샘물을 마시며 이곳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바위에 새겨 놓았다.

 

- 옥정영원(玉井靈源) - 

 

誰向華山欲問田(수향화산욕문전)  누가 이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仙源從此有因緣(선원종차유인연)  신선의 근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는데
諸君借我雲梯路(제군차아운제로)  여보시게 내게 구름다리를 빌려주구려
玉井秋風採碧蓮(옥정추풍재벽연)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을 캐리로다.

옥정영원(玉井靈源)은 화산산성 안에 있는 샘물의 이름이며 글자 그대로 옥같이 맑고 좋은 우물이란 뜻이다.

 

친구인 듯 맞아주는 진돌이와 함께 하늘전망대를 오른 김 전무. 

 

하늘전망대 카페는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찾는 이가 없음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다. 

 

 

하늘 전망대에서 본 360도 파노라마. 

 

동쪽 풍차전망대와 보현산 방향. 

 

2년 전에 지나온 보현산 방향. 

 

보현산에서 화산으로 이어온 팔공기맥 방향.  

 

동남쪽 영천시 신녕면과 팔공산 방향. 

 

 

아직은 텅 빈 하늘전망대를 홀로 지키며 카페 문을 열고 있는 쥔장께 뒤이어 오는 분들의 영접을 부탁드리고는, 

 

멋진 조망을 선사받은 하늘전망대를 뒤로하고 포장도로를 따라 통신탑이 있는 722.9봉을 향하면, 

 

우측 풍차전망대와 화산산성 방향 저~어 멀리로 보현산과 면봉산이 딴 세상의 산인 듯 보이고, 

 

삼거리 갈림길에서 능선 숲길로 들어 통신탑이 있는 722.9봉으로 올라야 하나, 뚜렷한 등로도 없는 잡목과 잡초로 뒤덮인 능선이라 진행이 어렵다고 하여 좌측 '억새바람길' 방향 등로로 들어서면, 

 

야자 메트까지 깔린 등로를 따라 722.9봉을 좌회하여 지나게 되고, 

 

돌아본 하늘전망대 방향. 

 

이내 722.9봉을 지나서 내려서는 팔공기맥 능선에 합류하는 지점의 Y자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팔공기맥은 조림산이 앞쪽으로 조망되는 좌측 내림길로 들어서야 하고, 

 

따르던 비달길 등로가 잡목이 우거진 페임도로 바뀌며 잠시 더 거친 폐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좌측 숲으로 들어야 하는데, 숲길 들머리에 별다른 표식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알바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얄 듯하다. 

 

 

폐임도에서 좌측 숲길로 들어서면 아래쪽으로 한두개의 표지기가 보이며 주변에는 버려진 냉장고와 쓰레기가 흩어져 있고, 

 

뚜렷한 등로는 보이지 않지만 희미한 족적을 따라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는데, 

 

앞쪽 가야 할 능선 너머로 보이는 팔공산이 위압적으로 다가오고, 

 

간간이 나부끼는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팔공기맥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거친 사면을 내려서서, 

 

별다른 표식이 없어 무심결에 지나칠 수 있는 옛 갑령쯤의 안부를 지난다.

 

<갑령(甲嶺, 372m)>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목골과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골안골 사이의 고개이다. 갑티·갑치·갑현·갑령재·갑티고개·갑령고개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고개가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장군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실제로 이 고개는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다.

 

 

엣고개의 흔적조차 희미한 갑령쯤을 지나면 다시금 오름길로 바뀌고,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팔러지는 희미한 족적을 따라 좌측 사면 방향으로 휘어져, 정면의 급경사 능선을 좌측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이어져, 

 

'T자' 갈림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에서 팔공기맥은 좌측으로 잠시 능선을 따르다가 능선분기봉에서 직우틀하여 갑령재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돌아본 722.9봉과 화산 방향. 

 

 ​T자 갈림 능선인 이곳부터, 지금까지 우측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 좌측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를 가르며 이어오던 기맥길은 온전히 신녕면으로 들어 좌측 동남방향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이내 능선 분기봉에서 직우틀하여 남서쪽 갑령재로 이어간다. 

 

 

T자 갈림 능선에서 과일을 나누며 잠시 쉼을 하다가 다음 구간에 가게 될 팔공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좌측 능선을 잠시 따르면, 

 

지능선 분기봉에서 직진의 476.9봉 방향 능선길을 두고, 직우틀하여 3시 방향으로 꺾어서 내려가야 한다. 

 

우측 신령재 방향 들머리에 표지기가 한두 개 보이지만 무심코 지나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는 지점이다. 

 

 

잡목들의 훼방을 뿌리치며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내려서면, 

 

다음 구간에 오르게 될 팔공산 주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고, 

 

남동쪽 영천시와 신령면 방향. 

 

남서쪽 팔공산 방향. 

 

서북쪽 군위군 산성면 봉림리 방향. 

 

낙엽이 수북한 능선으로 이어진 희미한 족적을 따라 내려서면, 

 

갑령재 도로 절개지 상단 배수로에 서게 되고,  

 

절개지 상단에서 본 팔공산과 갑령재 조망. 

 

우측 배수로를 따라 내려서면, 

 

화서육교와 화서교차로 조망. 

 

우리의 애마가 뒤따르는 유람팀을 기다리고 있는 갑령재에 도착한다.  

 

<갑령재(甲嶺재, 250m>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갑터골과 신녕면 화서리 청서골 사이의 고개로, 28번 국도가 지나고 908번 지방도가 분기되는 화서교차로 지점이다. 갑티재, 갑티, 갑치, 갑령재, 갑티고개, 갑령고개, 갑현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고개가 있는 산의 형태가 마치 장군이 갑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이 고개는 과거에 교통로 또는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하였는데, 실제로 갑령은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의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중앙선 철도와 의성~포항 간 국도 28호선이 지나고, 고개 밑에는 갑현(甲峴)이라는 취락과 갑현제(甲峴堤)라는 못이 있으며 중앙선 역인 갑현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의 갑령은 지나 온 산 너머에 있는데, 새로이 도로를 내면서 이곳으로 이름을 가져 온 듯하다. 

 

 

28번 국도를 건너는 화서육교로 진행하여,  

 

돌아본 갑령재 날머리. 

 

28번 국도 북쪽 방향. 

 

화서교차로에서 좌측 신녕 방향으로 좌틀하면, 

 

성운대학교 표시판 아래 수준점과 낙석방지 철망이 시작되는 지점 사이의 갑령재 들머리가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인 자주고개까지 6km를 더 가야 하는 우리는, 이곳 갑령재에서 산행을 마치는 유람팀과 산행 종료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잠시의 여유도 없이 바로 갑령재 들머리로 들어서서 제법 가파른 작은 봉우리 오름길을 잠시 올라,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는데, 

 

좌측에 거름공장이 있는지 역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이내 302봉에 올라 다시 좌틀하여 완만한 능선길을 이어가면, 

 

부근 아래로 청량리~경주를 잇는 중앙선철도 오림터널이 지나는 장고개를 지난다.

 

<장고개(245m)>
좌측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갑터골과 우측 화서리 치덕골을 잇는 고개로, 고개의 유래는 찾을 길이 없으나 주변 지형으로 미루어보아 고개가 길어서 장고개라 부르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장고개에서 제법 가파르게 올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 

 

좌측 지나온 화산 방향.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298.8봉 산패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는데, 

 

좌전방 나뭇가지 위로 팔공산의 투구봉과 최고봉인 서봉이 우뚝한 주능선이 조망된다. 

 

 

마음 급한 산꾼들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배낭을 열어 얼마 남지 않은 간식을 챙겨 먹고, 

 

잠시 더 진행하다가, 

 

표지기가 한두 개 나부끼는 305봉을 지나면, 

 

좌측으로 신녕면 부산리와  '사기점마을'이 펼쳐져 있고, 건너편으로 팔공산 주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목묘가 있는 능선 좌측으로 뚜렷한 지능선이 분기하여 잠시 혼란을 겪다가, 

 

안부를 지나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무명봉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봉분이 뭉툭해진 가족묘지를 지나서,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기점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사기점고개> 
경북 영천시 신녕면 부산 2리와 신녕면 화서리 분통골 사이의 고개로, 고개 좌측 아래 신녕천 가까이에 '사기점' 마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이름에서 고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통상 사기점(沙器店)은 조선시대 사기그릇을 만들던 곳에 붙이는 이름이다.
부산리(富山里)는 임진왜란 때 이종택(경주이씨)이라는 선비가 마을에 피난하여 개척하였다고 하여 피골(목동)이라 칭하였다가, 1914년 이태윤이라는 선비가 마을 입구에 부흥산이 있어 부산이라고 개칭하여 불렀다고 하며, 달리 산이 많은 지역이므로 '부산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화서리(華西里)는 화산(華山)의 서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사기점고개 우측 화서리 분통골 방향. 

 

사기점고개 날머리에서 좌측 부산리 방향으로 조금 이동하다가 우측 낙석방지펜스가 시작되는 지점의 우측 산길이 들머리다. 

 

 

사기점고개 들머리인 묘지길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하면, 

 

나오는 가족묘지에서 묘지 상단으로 올라 산길로 들어서서 오르면,  

 

우측 분통골에서 오르는 능선길에 접속하여 좌측 오름길 능선을 따르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둥그런 봉우리를 지나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직진의 지능선으로 진행하던 분들을 불러세워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등로를 따르고,  

 

둥그런 안부를 지나 높지 않은 T자 능선에 올라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좌.우로 길흔적이 뚜렷하고 서낭당 흔적이 있는 서낭당고개를 지나게 되고,  

 

<서낭당고개(235m)>
경북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 서낭당골과 신념면 화서리 길곡골 사이의 고개다.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다시 T자 능선에 올라 좌측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별다른 특징이 없이 산패만 걸려있는 335.9봉을  지나게 된다. 

 

 

완만한 오름길 능선을 올라, 

 

표지기가 몇 개 나부끼는 380봉쯤에서 좌틀하면, 

 

앞쪽으로 가야 할 388.2봉이 부담스럽게 높아 보이고, 

 

작은 무명봉 넘어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다가, 

 

우측 묘지로 이어진 등로를 두고 계속 능선길을 고수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오르면 388.2봉 산패가 걸린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기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삼각점은 우측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388.2봉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다가, 

 

길주의 지점에서 기맥 능선으로 보이는 뚜렷한 내림길 능선을 두고 우측 사면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측 사면길이 급경사 사면 내림길로 보이며 능선으로는 보이지 않아 잠시 혼란을 겪다가, 한두개 걸려있는 표지기에 힘을 얻어 희미한 족적이 이어진 우측 급경사 사면으로 내려서면, 

 

다시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완만한 안부를 지나 짧은 오름길을 올라, 

 

발자국이 이리저리 얽혀있는 작은 봉우리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제법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앞쪽에서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앞쪽으로 자주고개와 상주영천고속도로, 팔공산 투구봉이 조망되는 용연 김치량과 만은 김흔의 묘지가 나오고, 

 

묘지 가운데 돌계단을 내려서면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시 신녕면을 잇는 919번 지방도가 지나는 자주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자주고개(215m)>
경북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 갓골과 영천시 신녕면 지산리 동지목골 사이의 고개로, 919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지근거리에 상주영천간고속도로의 군위영천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지도에는 '자주고개'로 표기하고 있으나,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를 '잦이재(잦이고개)'라 하는데, 아마도 '잦이고개'가 변음되어 '자주고개'로 표시된 듯 짐작된다. 
치산리(雉山里)는 마을 주위의 지형이 마치 꿩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주고개 우측 군위군 방향.

 

자주고개 팔공산 방향 들머리 전경. 

 

 

갑령재에서 산행을 마감한 분들을 테우고 자주고개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신녕면 소재지의 목욕탕에서 뜨듯한 물로 몸을 데우고, 

 

인근의 모두들 만족스럽다고 평한 '남경오리'라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푸짐한 뒤풀이 시간을 가지고는, 

 

뒤풀이가 언제 끝나나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쉼 없이 달려, 

 

서울 강남역에 도착하여 팔공지맥 네번째 산행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다. 

 

고단한 급경사 오르내림 산길을 뒤로하고 비단길 충성로 임도에서 본 일출은 실로 대단했고, 

군위호와 멀리 보현산까지 보여준 화산마을 하늘전망대는 참으로 뜻밖의 소득이었다.

또한 화산마을을 통과하면서 슬쩍슬쩍 모습을 드러낸 팔공산은 

다음 산행에 대한 기대를 한층 배가하며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딛고 오르리라 다짐케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대하지 않던 작은 행운에 더욱 기뻐하며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