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산행>
산행장소 : 서울 송파나루공원(석촌호수), 올림픽공원.
산행일시 : 2022. 12. 24.(토)
집합장소 :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09:30
산행코스 : 잠실역 ~ 석촌호수 한바퀴(3km) ~ 1.5km 도로 이동 ~ 올림픽공원 세바퀴(9km) ~ 올림픽공원역 버스정류장 (약 13.5km, 4시간 소요)
산행참석 : 28 백두.
<송년회>
일 시 : 2022. 12. 24.(토) 14:00 ~ 16:00
장 소 : 해담 (02-403-4763)
(서울 송파구 양재대로 932 가락몰 판매동 3층 17호)
<송년산행 지도>
2018년 연말 남산둘레길 송년산행 이후 실로 4년 만에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이 맞이하는 신년의 설계를 하는 송년산행과 송년회 행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어 감회가 크다. 코로나로 인해 인생에서 빠진 듯이 느껴지는 3년이라는 갇혀 지낸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아쉽고 분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딱히 원망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받을 반대급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빠진 부분을 채우려 부지런히 노력할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 3년을 건너뛴 2022년도 송년산행을 계기로 잃어버린 세월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더욱 알찬 계획과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해 본다.
백두산우회의 송년산행 기록은 2009년부터 보이니 2018년까지 딱 열 번의 송년산행을 했다는 것인데, 서울 시내에서 3~4시간의 멋진 겨울철 걷기 코스를 찾는 게 이제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또한 송년회 장소와의 이동 시간도 고려하여야 하니 조건은 훨씬 까다로워진다. 먼저 모처럼만에 가지는 송년회라 육고기와 해산물이 모두 풍성한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의 가락몰이 송년회 장소로 정해졌고, 주변의 이곳저곳을 검토하다가 송파나루공원 석촌호수와 인근의 올림픽공원을 연계하여 걸으며 지난 몇 해 동안 폭등한 아파트 가격과 재건축 과정에서의 분쟁으로 인해 거의 전 국민의 관심거리로 부상한 둔촌주공아파트 건설현장도 목도하며 세상 돌아가는 예기도 나누어 보기로 한다.
12월 들어서도 지속되던 따뜻한 날씨가 송년산행을 앞둔 며칠 전부터 갑자기 추위가 몰아치며 엊그제는 눈까지 내렸다. 송년 산행일에 혹여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게 된다면 어려운 트레킹이 될 것이기에 기온이 낮더라도 겨울바람은 잠들어 있기를 바라며 산행일을 맞이했다. 다행히 낮은 기운에도 바람이 거의 없어 트레킹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트레킹 출발지점인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로 향한다.
매섭게 차가운 날씨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복장으로 잠실역 3번 출구에 모여,
송파대로를 따라 석촌호수를 향해 2022년도 백두산우회 송년 트레킹을 시작하면,
송파대로 옆 송파나루공원 석촌호수로 들어서는 입구에 굴욕의 역사를 증거하는 삼전도비가 자리하고 있고,
<삼전도비(三田渡碑)>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太宗)의 요구로 1639년(인조 17) 12월에 세운 비석으로,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석촌호수 수변에 있다.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지만 1963년 문화재 지정 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지었다. 한강의 물길이 닿는 나루터였던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나룻배가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 한강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비석의 원래 자리는 현재의 석촌호수 서호 내부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석은 대리석 계통의 돌로 만들어졌다. 귀부(龜趺:거북이 모양을 조각한 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을 세우고 위에는 이수(螭首:용 모양을 새긴 머릿돌)를 장식했다. 비석 옆에는 몸돌과 이수가 없는 작은 귀부가 하나 더 남아있는데, 이는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청나라 측의 요구에 의해 당초 만들어진 귀부가 필요 없어지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된다. 비문은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 때문에 당대의 문장가들이 비문 짓기를 꺼렸으나, 부제학 이경석(李景奭)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알고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도총관 오준(吳竣)이 썼다. 비석 앞면 왼쪽에는 몽골글자가, 오른쪽에는 만주글자가, 뒷면은 한자가 각각 새겨져 있어 17세기 세 나라의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비문의 굴욕적인 내용 때문에 1895년(고종 32) 고종은 삼전도비를 땅 속에 묻게 했으나 일제는 1913년 다시 삼전도비를 세웠고, 1956년에는 당시 문교부의 주도하에 땅 속에 다시 묻는 등 비석의 수난은 이어졌다. 1963년 홍수로 비석의 모습이 드러난 후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1983년 석촌동 아름어린이공원 내에 세워졌다가 2010년 원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현재의 자리인 이곳 석촌호수 주변에 옮겨졌다.
<삼전도비(三田渡碑) 수난사>
● 1639년(인조 17)에 병자호란에서 패한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올린 수항단에 세워짐.
● 1895년(고종 32) 청일전쟁 후 삼전도비각을 무너뜨리고, 비석은 귀부에서 뽑아서 엎어버림.
● 1916년(일제강점기) 일제가 비석을 찾아서 다시 고쳐 세움.
● 해방 후인 1958년 문교부의 주도하에 부근 지하 7척 땅에 묻어버림.
● 그 뒤 발생한 대홍수로 비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1963년 다시 일으켜 세워 사적으로 지정.
● 1983년 송파구 석촌동 289-3 아름어린이공원에 세웠다가,
● 2010년 석촌호수 서호언덕(송파구 잠실동 47번지)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름.
<삼전도(三田渡)>
송파구 삼전동에 있었던 나루로 삼밭나루라고도 불렸다. 한강 상류의 남안에 위치하여 서울과 부리도(浮里島, 또는 잠실도(蠶室島)인 현재의 잠실지역)를 연결하는 나루터로서 교통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삼전도는 1439년(세종 21) 신설되었는데 이는 한강에 설치된 최초의 나루터 중 하나였다.
삼전도는 서울에서 경기도광주의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이르는 길목에 있었고, 영남로(嶺南路)를 지나는 사람 중에서 특히 상인들이 주로 이용하였던 교통의 요지였다. 주로 사람과 말이 건너던 곳이었고 우마(牛馬)의 집결지였으며, 판교(板橋)와 연결되는 상업도로로서의 기능도 수행하였다. 이 지역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함락으로 인조가 청군(淸軍)에게 항복을 한 곳으로, 청나라의 전승비(戰勝碑)인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있다. 이곳은 강물이 많아서 1950년대 말경까지는 나룻배가 다녔으나 지금은 주거지와 시가지로 되었다.
삼전도비를 보면서 '적이 공격하지 않기를 믿지 말고, 적이 공격할 수 없는 까닭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믿어라'라는 언젠가 보았던 손자병법의 글귀가 생각난다. 그리고 고난과 치욕의 역사일지언정 그대로 보듬고 새겨서 다시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반성하고 교훈을 삼는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진입로를 따라 석촌호수 수변길로 들어서서 먼저 석촌호수 서호(西湖)를 시계방향으로 걷기로 한다.
<송파나루공원 석촌호수>
송파나루공원은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과 신천동에 걸쳐 있는 근린공원으로, 석촌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부대시설을 갖춘 면적 총 285,757㎡의 호수공원이다. 정식 명칭은 송파나루근린공원으로, 옛날 이 자리에 송파진(松坡津)이 있었다는 데에서 이름을 붙였다. 공원 이름보다는 석촌호수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서 송파나루공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석촌호수나 석촌호수공원이라고 많이 부른다.
석촌호수는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47(서호), 신천동 32(동호)에 소재하는 호수로, 면적은 217,850㎡이며 담수량은 636만t, 평균수심은 4.5m이다. 옛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을 매립하여 부리도(浮里島)와 잠실도(蠶室島)를 육속화할 때, 매립하지 않고 남겨 조성된 호수이다. 1978년 6월 28일에 완공되며 비로소 석촌호수로 명명되었다. 호수 조성 후 송파대로가 호수를 가로질러 가게 되면서부터 동호(東湖, 105,785㎡)와 서호(西湖, 112,065㎡)로 구분됐다. 동호와 서호를 합친 호수 둘레는 2.5km에 달한다.
석촌호수가 있는 곳은 본래 송파나루터가 있었던 한강의 본류였다. 송파나루터는 고려와 조선 왕조에 이르는 동안 한성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는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고 한다. 현재 석촌호수 동호에는 송파나루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본래 한강은 두 갈래의 물 흐름이 있었는데, 본류는 지금의 석촌호수를 지나던 송파강(松坡江)이었고, 지류는 지금의 한강 본류가 된 신천강(新川江)이었다. 이 두 강 사이에 있던 하중도가 잠실도(蠶室島)이다. 지류였던 신천강은 대체로 물이 말라 있거나, 물이 흘러도 시냇물 수준으로 졸졸 흘러서 걸어서도 건널 수 있었고, 잠실도는 거의 강북에 붙어 있던 섬이었다. 실제로 잠실 일대는 1963년까지도 지금의 송파구 다른 지역들과는 행정구역이 계속 달랐는데, 조선시대에 잠실은 양주군, 송파구 나머지 지역은 광주군에 속했고,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에도 잠실만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잠실은 1949년에 서울특별시로 먼저 편입되고, 나머지 지역은 1963년에 가서야 서울로 편입되었다. 이렇듯 잠실은 나중에 가서 송파구와 한 몸이 된 신세지만, 오히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고, 송파구청은 잠실이 가져갔다.
반면에 본류였던 송파강은 지금의 삼전동을 지나서 석촌호수를 거쳐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을 지나가는 큰 물길이었다. 때문에 당시의 강남과 강북의 구분은 지금의 한강이 아닌, 석촌호수 일대에서 구분 지어졌다. 석촌호수는 그 당시 송파강의 흔적으로, 1971년에 잠실도를 육속화하는 공사에서 송파강의 중간 부분만 남겨 둔 것이 오늘날의 석촌호수가 된 것이다. 또한 당시의 매립공사로 생겨난 땅이 현재의 잠실동과 신천동이다.
1970년대에는 볼품없던 호수였으나 1981년 호수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고 산책로와 쉼터 등을 설치하여 공원(송파나루공원)으로 만들면서부터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었다. 한동안 수질악화와 악취로 외면받기도 했으나 2001년부터 송파구가 석촌호수를 명소화 사업대상지로 선정하여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벌인 후부터 수질이 많이 개선되었다. 2.5km의 호안 중 1.88km의 콘크리트 호안시설을 철거하고 대신 수생식물을 심어 생태호안으로 바꾸었고, 한강물 순환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생태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석촌호수 둘레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석촌호수 서호(西湖) 가운데에 자리한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가 추운 겨울이라 한산하기만 하고,
<매직아일랜드>
석촌호수 서호에 1990년 3월 24일 개장한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야외놀이공원이다. 아틀란티스, 자이로드롭, 자이로스윙 등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대표하는 스릴 놀이시설이 몰려있으며, 수준급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다크라이드 놀이기구인 판타지 드림과 혜성특급이 이곳 지하에 위치해 있다.
매직아일랜드 연결 다리를 지나서 수변 둘레길을 따르다가,
석촌호수 서호 남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공연장에 도착화여 롯데타워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아본다.
석촌호수 남측 호반 조망.
호수의 남측 수변길로 들어서면, 고층빌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그런지 그제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상태이고,
눈과 얼음으로 덮인 바닥으로 인해 미끄러워 넘어지는 분들도 발생하고,
호수도 갑자기 밀어닥친 추위로 가장자리부터 얼기 시작해서 겨울왕국에라도 온 기분이 들며,
서호 가운데에 떠 있는 매직아일랜드가 '안나'와 '엘사'가 사는 겨울왕국인 듯 보인다.
석촌호수를 남북으로 잇는 송파대로 잠실호수교 아래로 들어서면,
서호와 동호를 잇는 작은 수로에서 놀고 있는 백조들이 금방이라도 얼어버릴 듯한 날씨에도 제철을 만난 듯 수영을 즐기고 있고,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동호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롯데타워가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북쪽 롯데월드타워 방향.
차가운 날씨로 배낭에 넣어온 커피를 꺼낼 생각조차 못한 채 수변길을 따라,
석촌호수 동호 동쪽 끝지점에서 본 롯데월드 방향.
그림인 듯 보이는 석촌호수 남측 풍경.
석촌호수 동쪽 끝지점을 찍고 북측으로 들어서게 되고,
수변 둘레길에 '은하수빛터널'을 만들어 놓았는데 언제 밤에 한번 걸어보면 좋을 듯하고,
동호 서북쪽 끝지점에서 석촌호수 둘레길 한바퀴를 마감하고 다시 송파대로로 돌아나간다.
송파대로를 따라 잠실역 사거리에서 우틀하여 올림픽공원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롯데백화점 앞에는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명품족들이 줄을 서서 개점시간을 기다리고 있고,
올림픽공원 교차로에서 도로를 건너 올림픽공원으로 들어서면,
올림픽공원 입구의 세계평화의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올림픽공원>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한 공원으로 월드컵공원(마포구), 서울숲(성동구), 북서울꿈의숲(강북구)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공원이다. 면적은 총 1,447,122㎡에 이르며, 서울특별시가 1,823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1984년 4월에 착공해 1986년 4월에 완공하였다. 운영은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한국체육산업개발(주)이 맡고 있다. 원래는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체육·문화예술·역사·교육·휴식 등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래 옛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의 일부인 몽촌토성이 있는 곳으로, 아직도 그 유적이 남아 있다. 토성 안에 몽촌(夢村)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어 몽촌토성으로 명명되었다. 몽촌은 본래 고대 삼한시대부터 검마을 또는 곰말이라 했는데, 곰의 음이 꿈으로 변하였고, 이것이 '꿈 몽(夢)'으로 훈차되었다. 신령과 영검을 뜻하는 우리말의 ‘검’은 군왕의 호칭인 임검(금)으로 뿐만 아니라 신성한 곳을 의미하는 지명으로 쓰였다. 즉 검이 곰으로 변해지고 곰이 다시 꿈으로 발음된 것이다. 또 곰말의 곰은 고대 한국어로 큰 것을 뜻하므로 큰 마을이란 뜻이 되고, 큰 마을이란 으뜸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또 삼한 때의 옛 성이 있어 한자로는 고원성(古垣城)이라 하고 아울러 한강 연안에 있어 고원강촌(古垣江村)이라고도 하였다. 고원이란 옛 울타리란 뜻으로, 백제 때의 위례성 역시 울타리를 두른 성으로 지명이 해석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즉, 고원(古垣)이라는 말 자체는 옛 서울이란 뜻으로도 풀이되며, 몽촌・큰말・고원 등의 이름을 옛 위례, 곧 옛 서울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따라서 몽촌의 전 이름인 고원성・고원강촌의 고원 또한 옛날의 흙으로 쌓은 담장이나 성루의 의미를 넘어서 곰말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中垈面) 이리(二里)라는 행정구역이 되었는데, 일동네, 잣나무골, 큰말 외에 신촌, 웃말, 가운데말, 아랫말 등의 마을이 있어 한때 일리(一里)와 이리(二里)로 나누었다가 다시 두 개의 마을을 병합하여 이리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1963년 서울 편입 이후에는 성동구 이동(二洞)이 되었다가, 1975년에는 성동구에서 한강 남쪽 부분은 강남구로 신설 분리되며 그에 속했고, 1979년에는 탄천 동쪽 부분이 강동구로 분구되며 그에 속했다.
1970년대 잠실도를 매립할 때는 몽촌토성을 헐어 준설토로 사용하려고 했다. 이 당시의 몽촌토성은 백제의 위례성이라는 게 밝혀지지 않아서 그냥 동네 주민들한테는 능선(陵線)이라고 불리는 언덕이었는데, 여기가 백제의 위례성일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나오면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풍납토성의 경우 발견 전에 이미 주택가들이 들어서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 1981년 9월 30일에 19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됨에 따라 강동구 이동 전체가 올림픽공원 부지에 포함되었다. 올림픽공원은 올림픽 경기에 사용할 경기장 건설을 골자로 지어지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이동 주민들은 모두 이주하게 되었으며, 인구가 0명이 됨에 따라 1985년 9월 1일 부로 방이동에 통폐합되었다. 현재 올림픽공원 경내에는 당시 몽촌에 살던 사람들이 몽촌헌성비(夢村獻城碑)를 세워 옛 몽촌의 흔적을 남겨 두었다. 공사는 1984년 4월 24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사업비는 총 1,823억 원이 들었다. 공사 도중 현장에서 백제 때 초기의 토성인 몽촌토성이 발굴되면서 한때 공사가 중단되어 늦춰졌다가 몽촌토성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토성과 공원을 한 자리에 존치하기로 결정됨에 따라 공사가 재개되어 1986년 5월 28일에 준공되었다.
올림픽공원은 3개 테마공원으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산책·조깅 코스, 건강지압로, 인라인스케이팅, 레포츠 킥보딩, 엑스게임경기장으로 이루어진 건강올림픽공원이고, 둘째는 몽촌역사관, 몽촌토성, 평화의 성지, 조각작품공원, 올림픽미술관으로 이루어진 볼거리 올림픽공원, 셋째는 호돌이 관광열차, 음악분수, 웨딩사진 찍기, 이벤트 광장 등으로 구성된 재미있는 올림픽공원이 그것이다.
돌아본 세계평화의문.
<올림픽공원 세계평화의문>
제24회 서울 올림픽대회의 대표적 상징 조형물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다. 우리나라 고래(古來)의 대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올림픽공원 정면 어귀에 세워져 있다. 한민족의 우수성과 그 속에 담겨있는 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 처마형태의 지붕, 단청의 개념이 도입된 처마, 사신도와 백.청.적색의 색깔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바로 옆 편의점 앞에서 따스한 커피를 나누며 오랜만에 뵙는 분들의 안부를 확인한다.
오늘은 올림픽공원의 여러 기념물과 유적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모처럼 뵙는 산벗들과 함께 산책길을 걸으며 그간의 안부를 확인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래서 따로 볼거리를 찾아다니지 않고 몽촌토성 주변 둘레길과 토성길을 따라 유유자적 걷기로 한다.
국기광장에서 몽촌호 수변무대를 지나서,
몽촌토성 아래 몽촌호 수변길을 따르다가 지나온 국기광장을 배경으로 강건함을 과시하는 포즈도 잡아보며,
낮은 기온에도 매서운 북풍이 출현하지 않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둘레길을 따르다가,
수변 둘레길을 반바퀴쯤 지난 피크닉장에서 우측 몽촌토성 안으로 이어진 산책로로 들어서면,
몽촌토성 성곽길에 접속하게 되는데, 좌틀하여 몽촌토성 성곽길을 시계방향으로 걷기로 한다.
몽촌토성 성곽길로 들어서면,
우측 가족놀이동산 방향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롯데월드타워가 보이고,
점점 따스해지는 햇살을 쬐며 몽촌토성 성곽길을 따른다.
좌측 88호수 방향 갈림길을 지나는데,
우측에 백제집자리전시관이 자리하고 있고,
작은 구릉지 능선으로 보이는 몽촌토성 성곽길을 이어가면,
군데군데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잠시 걸음을 멈추어도 좋을 듯하고,
좌측으로 사이클경기장이 내려다 보이더니,
몽촌토성 성곽길은 야생화학습장을 지나게 된다.
뭐! 겨울철이라 야생화는 보이지 않고 눈(雪)으로 덮여 있기는 하지만..ㅉㅉ
흰 눈으로 덮인 언덕으로 이어진 황톳길이 향하는 듯 보이는 현대적인 빌딩숲을 향하면,
훗날 여유가 생기면 찾아봐도 좋을 올림픽공원 9경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올림픽공원 9경>
도심 속 쉼터인 올림픽공원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9개의 장소'와 '구경하다'의 의미를 내포하는 구경(九景)은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추천한 사진촬영 명소이다.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찬찬히 둘러봐도 좋을 일이다.
제1경 평화를 기원하는 한민족의 얼이 담긴, 세계평화의 문.
제2경 '미완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엄지손가락.
제3경 아름다운 선율이 자아내는 1만 4천 개의 황홀경, 몽촌해자 음악분수.
제4경 '너와 나'를 넘어 '우리'가 되는 유일한 길, 대화(조각)
제5경 새들도 날개를 접고 거니는 꿈결 같은 길, 몽촌토성 산책로.
제6경 푸른 하늘, 넓은 들, 내 마음의 쉼표, 나홀로 나무.
제7경 자연과 사람, 문화가 어우러진 낭만지대, 88호수와 팔각정(오륜정)
제8경 철따라 꽃잔치가 열리는 도심 속 정원, 들꽃마루.
제9경 서울에서 가장 프러포즈하기 좋은 곳, 장미광장.
제5경인 몽촌토성 산책길은 소나무가 멋들어진 언덕으로 이어지며,
좌측으로는 몽촌호와 세계평화의문이 조망되고,
흰 눈으로 덮인 언덕을 장식한 푸른 소나무가 멋들어진 성곽길을 따르다가,
소나무숲 충헌공 김구 묘역 양지바른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자며,
즉석에서 백두산우회 2022년도 결산회의 시간을 갖는다.
※ 2022년 송년회 결의 사항.
1. 산행 회비를 기금 조성회원 4만원, 일반회원 5반에서 일괄 5만원으로 조정하며,
향후, 물가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할 경우 등 산우회의 재정상황 악화 시 인상 재검토.
2. 산행 버스는 버스기사 배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경우 현재의 제로쿨버스 계속 이용하며,
향후, 산행 참석인원이 감소할 경우 자체 교통편 등의 대안 마련.
3. 네가지쯤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혹시 기억나시면 댓글이나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즉석에서 이루어진 백두산우회 2022년도 결산회의를 마치고,
다시금 몽촌토성 산책길에 들어서서,
잠시 산책길을 따르다가 몽촌토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망월봉을 오르면,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 여러 개의 밴치가 설치되어 있고,
동남쪽으로는 전 국민의 관심거리인 말썽 많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도 조망된다.
백두들은 모두 서울사람이고 한시라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분들인 데다가, 당연히 올림픽공원도 여러 번 왔던 곳이라 그런지 잠시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용납지 못하고 바로 몽촌토성 둘레길 걷기를 이어가면,
탁 트인 너른 개활지에 '내 마음의 쉼표'인 제6경 '나홀로 나무'가 나타나고,
'나홀로 나무'를 배경으로.
이내 가족놀이동산 앞 갈림길에 도착하여 몽촌토성 성곽길 한바퀴를 마감하고 다시 몽촌토성 둘레길로 복귀한다.
몽촌토성 바깥 둘레길을 따라,
좌측으로 '88잔디마당'이라는 너른 설원을 지나고,
지구촌공원쯤도 지나는데,
맨발로 눈밭을 걷는 강아지를 보며 마치 본인들이 강아지가 된 듯 고통에 공감하며 몸서리를 치기도 하며,
빙판길에 엉덩방아를 찧는 분들을 보고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지 큰 웃음으로 화답하는 사이에,
국기광장에 도착하여 올림픽공원 둘레길 두 바퀴 걷기를 마감하는데,
아직도 송년회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올림픽공원 수변 들레길 한바퀴를 더 돌기로 한다.
국기광장 아래 몽촌호 수변길로 내려서서,
수변무대를 가로질러 음악분수가 있는 몽촌호 수변길을 이어가면,
올림픽공원 북쪽 끝지점의 팔각정1을 지나서 성내천을 건너게 되고,
성내천 자전거길과 나란히 이어진 걷기길을 따라 상류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지도상 북1문에서 우측 무지개다리를 건너 다시 올림픽공원으로 진입한다.
성내천 하류 방향 겨울 풍경.
이제 얼추 송년회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이동을 위해 성내천변길을 따라 올림픽역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그늘이 드리워진 곳은 눈이 얼어서 무척이나 미끄러워 주의해얄 듯하고,
올림픽수영장을 지나다가,
우측 88잔디광장 설원에서 롯데월드타워와 몽촌토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올림픽핸드볼경기장 옆을 지나,
장미광장으로 이어진 육교를 건너고,
올림픽홀 옆 뮤즈 라이브를 지나는데,
대형 핑크퐁이 커다란 눈을 땡그랗게 뜨고서 응석을 부리고 있고,
이내 올림픽공원의 남쪽 끝지점인 장미원 문을 나서며 올림픽공원 트레킹도 마감하고,
버스로 송년회 장소인 가락시장몰로 향한다.
송년회 장소인 가락시장몰 3층 '해담'에서 모처럼 모든 백두들의 건재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다음의 상황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지를 않고 그 순간의 시공간과 함께 과거 속에 묻혔다.
보이지도 않아 존재조차 불확실한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온통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실로 모처럼 뵙는 백두들 모두가 건강하고 활기찬 듯하여 무척이나 흐뭇하고 감사하는 날이었다.
앞으로도 늘 행복한 모습 오래도록 뵙기를 기원드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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