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장소 : 부산 가덕도 환종주 (부산시 강서구)
산행일시 : 2023. 01. 14.(토)
산행코스 : 가덕도 동선새바지 ~ 동선방조제 ~ 눌차도 내눌·외눌마을 ~ 선창마을 ~ 갈마봉(155m) ~구곡산(235m) ~ 삼박등(310.9m) ~ 시고지 고개 ~ 웅주봉(339m) ~ 가덕고개/국군묘지 ~ 천성치 ~ 어음포고개 ~ 연대봉(459.4m) ~ 어음포고개 ~ 매봉(357m) ~ 누릉령 ~ 응봉산(313.4m) ~ 강금봉(198m) ~ 동선새바지 (약 15km, 7시간 반 소요)
산행참석 : 18 백두.
<산행지도>
코로나 통제가 없는 새해부터는 3년 동안이나 미루어 두었던 영산기맥 산행을 재개하려 하였으나, 신년 해맞이 산행을 원하는 분들이 많아 부산의 가덕도 환종주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사실 지지난해에 자기들의 권력 유지에만 눈이 멀은 정치인들이 김해공항을 동남권 거점공항으로 만들려던 당초의 계획을 뒤집고 가덕도에 신공항을 만들기로 함에 따라 가덕도가 망가지기 전에 섬산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듯도 하여 빡센 기맥산행보다는 여유로운 특별산행으로 새해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덕도 해맞이 산행지가 결정되고 산행일이 다가오며 전국적으로 비가 예보되었다. 엄동설한 한겨울임에도 일부 강원지역만 눈이 내리고 전국적으로 제법 많은 양의 비가 예보되어 한겨울에 눈이 아닌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한다는 게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혹여 비가 오지 않을 장소를 찾아 거의 전국을 다 뒤지다가, 그나마 강우량이 가장 적게 예보된 곳이 부산지역이라, 하는 수 없이 신년 해맞이 산행을 공지한 대로 진행하기로 한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우산을 챙겨서 산행 버스에 오르니 의외로 모두들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 어디에도 우중 산행에 대한 염려는 찾기가 어렵고 새해 첫산행에 대한 기대만이 그득하다. 베테랑 기사님이 모는 버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오락가락하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산행지인 가덕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산행에 대한 걱정일랑 내던져지고 꿈속으로 빠져든다. 달리는 버스에서 간간이 눈을 뜨면 차창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게 보이기도 했지만, 가덕도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기대를 가지고 다시금 꿈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비 내리는 캄캄한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가 가덕도에 진입하자 눈을 뜨고 밖을 살피는데, 비는 그친 듯하고 산행 출발지인 동선새바지 방파제로 이어진 마을길이 좁아서 버스 기사님이 직접 내려서 확인까지 해 가며 진행한 끝에 겨우 파도 소리가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동선새바지 방파제 입구에 도착한다.
가덕도 동선새바지 방파제 입구에 주차한 버스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 문을 나서니,
잠시 전까지도 비가 내렸던 듯 바닥에 물기가 흥건하고,
<가덕도(加德島)>
가덕도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남부 해안에 있는 섬으로, 명칭은 예로부터 섬에서 더덕이 많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덕도의 행정동명은 천가동이며, 1544년(중종 39)에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을 설치하였고, 가덕진관에는 수군절제사가 주둔하였다. 가덕도가 천성면과 가덕면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1908년(순종 2)에 두 면을 합칠 때 천(天)과 가(加)가 합쳐져서 천가동(天加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부산시의 섬들 중 가장 커서 면적은 21.36 km²로 부산 영도의 1.5배이고, 해안선 길이는 36km이다. 섬의 동쪽과 남쪽은 단조로운 해안선을 이루며 북부일대는 부산신항이 들어선 후 일부가 육지와 연결되었다.
가덕도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촌 섬마을이었으며, 눌차교가 2009년 개통되면서 육지로 이어졌다. 이후 부산 신항만 남측부두가 들어서고 거가대교(거제도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면서 육상교통이 활발해졌다. 또한 동남권 신공항 예정지로 지목되면서 각종 개발계획과 한일해저터널 등 떡밥들이 있어 앞으로 전망이 매우 좋을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 갈매기를 볼 수 있는 길인 부산 갈맷길의 5-2코스가 가덕도를 둘러보기에 제격인 걷기 길이다. 또한 가덕도는 바람이 매우 강한 지역이며 숭어 대구 청어등이 많이 잡히며, 미역 홍합 바지락조개 등이 많이 채취되는 곳이기도 하다.
동선항 방파제에는 지난 고기잡이의 피곤을 씻으려는 듯 작은 어선들이 나란히 누워 잠자고 있다.
본디 가덕도 환종주는 선창리 마을에서 시작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하거나, 이곳 동선새바지에서 강금봉 방향으로 올라 시계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늦지 않게 귀경을 해야 하므로 산행 출발을 해뜨기 한참 전인 밤에 해야만 하는데, 동쪽 능선에 암릉과 가파른 경사지가 있어서 야간산행에 적합하지 않고, 멋진 조망이 있는 암릉 구간을 야간에 진행하면 섬산행의 묘미가 퇴색되므로 이곳 동선새바지에서 시계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은 잃는 게 많아진다. 반면에 선창마을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은 야간산행 거리가 길어지므로 이러한 단점을 줄이고자 동선새바지에서 출발하여 1시간여 동안 눌차도를 먼저 걷고 난 다음에 선창마을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면 겨울철이라 늦은 일출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하여 일반적이지 않은 산행코스를 계획했다.
부슬비가 흩날리는 상황이라 일출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글렀지만, 가급적 야간산행 시간을 줄이려 이곳 동선새바지에서 출발하여 동선방조제와 눌차도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동선새바지 방파제에서 200여 미터 진행하면 나오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직진의 동선방조제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우측에는 동선새바지 가덕대구 안내판과 가덕도 갈맷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동선(東仙)새바지 가덕대구>
지난날 창원군 천가면지역의 동쪽 선창이 되므로 '동선'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그리고 이곳은 동선리 본동마을 동쪽으로 옛날 향교가 있었던 생교마을 동쪽 끝에 샛바람을 많이 받는 곳으로 새바지 갯마을로 불리다가 '동선새바지'로 불리고 있다.(가덕도 동편 해안길이 끝나는 '대항새바지'와는 마을 이름으로 구분한다.)
매년 1~2월 동해에서 자란 대구가 산란하러 이곳까지 와서 잡힌 것이 '가덕대구'로 맛이 좋아 임금님 진상품 물목에 올랐다. 대구 개체보존과 어민 소득증대를 위해 2월에 대구 난(알) 방류사업을 이곳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난을 방류한 자연산 대구는 용동수협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좌측으로 펼쳐지는 제방은 눌차도와 가덕도를 잇는 제방으로 태풍 내습 시 제방이 터진다 하여 터질목이라고 하고 제방 앞바다가 거칠어 운행하던 배가 잘 터진다 하여 터질목이라고도 한다.
좌측 호수같은 눌차만 바다에 떠 있는 죽도 뒤편으로 선창마을과 부산신항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많은 양이 예보되었던 비가 일찍 그쳐서 다행이라며 동선방조제를 따라 눌차도로 향하는데,
좌측 눌차만 건너편 거제도로 이어지는 도로의 눌차대교 뒤로 불야성을 이룬 부산신항이 무척이나 활기차 보이고,
방조제를 지나 눌차도로 들어서며 국수당으로 이어지는 우측의 눌차도 종주 능선 들머리 방향을 두고, 좌측 내눌 마을로 이어진 해안도로로 들어선다.
<눌차도(訥次島)>
부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지금은 육지가 된 섬이라면 가덕도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가덕도는 하나의 섬으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눌차도’와 ‘가덕도’로 이루어져 있다. 폭 2m 정도의 눌차교가 연결되어 있어 별도의 섬처럼 여겨지지 않지만 분명 눌차도 역시 하나의 섬이다. 물론 지금은 다리뿐만 아니라 새바지(동선방조제)도 연결되어 완전한 하나의 섬으로 바뀌었다 해도 분명 다른 섬이다.
‘눌차도’는 가덕도의 위쪽에 있는 섬이다. 녹산에서 눌차도로 다리가 연결되어 있지만 눌차도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가덕대교와 연결되어 성북 IC를 통해 내려와서 다시 선창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기능을 상실한 두 개의 항구, 눌차항과 선창항은 인도교와 다리(눌차교)를 사이에 두고 바로 이웃해 있는 섬이다.
눌차교를 지나면 ‘눌차마을’이다. 눌차도는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눌차마을(외 · 내눌마을)과 항월마을 그리고 정거마을이 그것이며 포구는 외눌, 항월, 정거포구 등 3개다. 그리고 항만시설로 방파제는 없지만 세 마을 각각 별도의 선착장을 갖고 있다. 물론 이곳 선착장을 이용하는 정기노선은 지금 한 편도 없다.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로, 가운데에 1997년에 세워진 외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그리고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폐교된 눌차초등학교 안내판에는 520m라 표시되어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잘 포장된 도로로 가면 섬의 북쪽으로 항월마을과 정거마을로 이어진다. 이 도로는 가덕대교를 만들면서 조성되었다.
‘외눌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외눌마을 입구에 이른다. 앞의 바다는 매립하여 나중에 신도시가 들어설 예정이다. 동선새바지를 향해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을 돌아 들어가다 보면 몇십 채의 집들이 아담한 어촌을 구성하고 있다. 몇 번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외눌마을 끝자락인데 바로 항월마을로 가는 길과 내눌마을로 이어지는 갈림길로 옛길이다. 예전에는 이 길이 유일했지만 지금은 새로 생긴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항월마을 방향으로 이어진 언덕배기를 넘으면 바로 아래에 눌차초등학교가 있는데 섬마을 학교치고는 제법 크다. 3층 높이 교사에 넓은 운동장을 가진 이 초등학교에는 부설 유치원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폐교가 되어 승마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눌차마을은 굴 등 패류양식을 주업으로 한다. 특히 보리새우인 일명 오도리를 많이 잡는다고 한다. 그리고 굴 채묘가 성한 곳인데 이곳에서 종묘를 해서 국내 최대 굴 생산지인 통영으로 갖고 가서 양식한다고 한다. 국내 양식 굴 생산의 40% 이상을 점하고 있는 통영에서는 연간 12만 4천 톤의 굴 껍데기가 발생해 이 가운데 5만여 톤이 굴 채묘(씨붙임)용으로 다시 활용되고 있다. 이 재활용센터 중 하나가 바로 이곳 가덕도 눌차마을이다. 눌차만 앞바다는 온통 굴 채묘를 위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진풍경을 연출한다.
주변이 온통 패각들로 가득한 바닷가 풍경이다. 해변은 패각류로 매립된 셈이다. 굴 껍데기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땅인데 세월이 흘러서인지 제법 단단하다. 다른 바닷가 마을은 해변가가 자갈밭이거나 모래밭 등이지만 이곳은 단단한 패각류다. 그래서 해변가 지형이 톱니바퀴처럼 되어 있다. 그리고 호안 역할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눌차만 바다도 매립의 운명을 맞아야 한다. 눌차만 매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때부터 추진된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세 차례나 매립에 실패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니 지켜볼 일이다. 그 흔적이 선창과 연결된 지금의 다리(천가교)라고 한다. FRP선이나 가능할까, 웬만한 높이의 배는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낮은 다리다.
외눌(外訥)마을과 내눌(內訥)마을의 유래를 알아보면 섬의 형태가 본섬과는 달리 완만하고 낮아 꼭 누워 있는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눌차교에서 왼쪽으로 잘 포장된 도로를 타고 가면 ‘항월(項越)마을’이 있다. 강서구 녹산에서 가덕도를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 바로 항월마을이다.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부산 사람들도 아는 사람들만 알 정도다.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은 드문 포구, 산행객들도 이곳은 모른다.
정거마을이 있는 정거말은 섬의 최북동단에 위치해 있다. 도로 이름은 ‘정거길’이었다. 정거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도로명이다. ‘정거(釘巨)마을’은 파고가 심하여 잔잔할 때까지 닻을 매 놓고 기다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앞에 보이는 낮은 섬이 ‘진우도’라는 모래섬이다. 높은 지대는 없이 전부 낮은 지대로 온통 숲이다. 제법 길게 보이는 섬의 바닷가 쪽은 모래밭이다. 진우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가덕도와 다대포 사이의 낙동강 줄기에는 진우도 외에도 장자도 신자도 등 무인도가 제법 있다. 정거마을은 벽화마을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눌차만 건너편으로 보이는 동선동 야경.
조개껍질이 산을 이룬 해안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괴목이 마을의 수호신인양 버티고 있는데,
그 앞에는 내눌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고,
<외눌(外訥)·내눌(內訥) 마을>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에 있는 자연 마을로, 외눌(外訥) 마을과 내눌(內訥) 마을의 유래를 알아보면 눌차도의 형태가 본섬인 가덕도와는 달리 유난히 완만하고 낮아 꼭 누워 있는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외눌 마을은 가덕도에서 천가교를 건너서 우측 해안길을 따르면 나오는 마을로 천가교와 내눌마을 사이에 있다.
내눌 마을은 세바지 둑으로 가덕도 본섬과 연결되어 짤록한 부분의 목(項) 안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안목이라 하였는데, 소리 나는 대로 안모라고도 부른다. 한자 지명은 본섬인 가덕도(加德島)를 중심으로 해서 안쪽에 있는 마을, 곧 눌차도(訥次島)의 안쪽에 있다고 하여 내눌이라 하였다.
내눌마을을 지나며 바라본 눌차대교와 부산신항 방향.
해안길을 따라 옅은 안갯속에서 가로등 불빛만이 깨어있는 외눌마을도 지나면,
앞쪽으로 부산신항이 가까워지며 좌측으로 가덕도와 눌차도를 잇는 천가교가 나온다.
기존의 천가교는 확장보수작업으로 통행이 제한되어 우측의 임시 철교로 들어서서 가덕도로 향하면,
우측 눌차대교 아래로 불야성을 이룬 부산신항이 요란한 크레인 소리와 함께 쉼없이 수출입화물을 처리하고 있고,
천가교를 건너면 요란한 크레인의 사이렌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밤안개에 잠들어 있는 선창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가덕도 선창(先艙) 마을>
지금은 선창(先艙) 마을이라 부르지만, 원래의 한자지명은 배를 고치고 건조하는 곳이라 하여 선창(船倉)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가덕진(加德鎭)에 병기고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선창마을의 서쪽과 동쪽, 북쪽은 모두 바다와 인접한다. 마을 서쪽 갈마봉을 지나면 바로 바다이다. 남쪽은 구곡산과 불미골 소류지가 있다.
선창 마을은 행정동인 가덕도동 3통 지역으로 가덕도 최북단에 자리 잡은 자연마을이다. 가덕도동의 관문 구실을 하는데, 옛날에는 가덕도와 진해의 용원을 잇는 도선의 기점이었다. 선창 서북쪽 갈마봉에는 임진왜란 때 왜장 구귀의륭(九鬼義薩)이 중심이 되어 축조한 성북왜성 지성 터가 있다. 또 천가초등학교 내에 가덕도 척화비(加德島斥和碑,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가 있다. 1960년 10월경만 해도 경산전씨(慶山全氏) 24여 가구가 동성 마을을 형성하여 살았다. 입향조는 19대조인 전녹흥(全錄興)이며, 매년 1월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제를 지낸다.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살고 있다.
2010년 부산과 거제 간 거가대교가 준공되어 외지와의 접근성이 매우 용이해졌다. 마을 북쪽 바다에 부산신항 남컨테이너 터미널이 들어서 있다. 마을 주민의 생업은 어업이지만 부산신항 개발로 어장의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가덕도 유자작목반이 운영하는 이곳 특산물인 유자청을 생산하는 집하장 및 선별장이 있다.
옛 산행기에 따르면 이곳 선창마을에서 갈마봉 방향 산행 들머리는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선창마을 가운데에서 남쪽 사면을 따라 갈마봉산성으로 오르는 길이고, 또다른 들머리는 선창마을에서 북쪽 해안도로를 따르다가 북쪽 사면으로 오르는 들머리다. 하지만 몇 해 전에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로가 새로이 개설되면서 선창마을에서 오르는 등로는 거의 폐쇄된 것으로 보이며, 요즘은 대부분 능선 북쪽 사면으로 오르는 등로를 이용한다.
북쪽 해안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불을 훤히 밝히고 영업을 하고 있는 우측의 분식집을 지나면,
'갈마봉 산성지' 안내판과 가덕도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가덕도 환종주 산행 들머리가 나온다.
경방기간이라 입산을 통제한다는 플렝카드가 막아선 들머리를 비 온 뒤라 괜찮다는 논리로 거리낌 없이 들어서서,
젖은 낙엽이 덮고 있는 제법 가파른 사면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자,
우틀하여 능선 등로를 따르면 국군묘지로 이어진다는 이정표가 나오고,
이내 나타나는 묘지에서 한겨울임에도 비가 내리는 따뜻한 기온에 겉옷을 벗어 배낭에 챙긴다.
잠시 능선 등로를 따르는데 앞쪽이 갈마봉 산성터인지 등로가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게 되어있고,
잠시 좌측 사면 등로를 따르다가 다시 우틀하라는 이정표를 따라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갈마봉 산성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갈마봉 산성>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산196번지에 위치하는 성이다. 가덕도의 최북단 갈마봉(155m)을 중심으로 축조된 산정식산성(山頂式山城)으로 총연장 350m, 폭 4m, 높이 3~6m인 평면타원형의 석축성이다. 동쪽과 서쪽에 문지(門址)가 있는데, 봉화대로 추정되고 있는 서쪽의 문지 옆에는 적대(敵臺)의 흔적이 보이고, 성내 정상부와 동쪽 하단부에는 건물지가, 성의 동북쪽에는 건호(乾濠)를 두른 흔적도 보인다. 성벽의 축조수법은 40~50×20~30×20cm 크기의 장방형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수직되게 쌓았으며, 상부 폭 4m, 기저부 폭 5.7m, 잔존높이는 1.5m 내외이다. 『고려사(高麗史)』 권 32, 충렬왕 5년(1279) 기사에 "합포(마산), 가덕, 동래 등 요충지에 군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된 소나무숲을 못본 체 지나서 올라,
석축 제방의 형태가 뚜렷한 갈마봉 정상에 도착한다.
<갈마봉(155m)>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의 갈마봉은 봉우리의 모양이 갈미(갈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갈마봉 정상 산패.
갈마봉성 표지기가 걸려있는데, 이곳의 갈마봉성이 임란 당시 눌차도의 '가덕도 왜성'의 '지성'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덕도 왜성 지성(加德島 倭城 支城)>
가덕도의 동북단에 위치하는 성으로 해발 155m의 갈마봉을 중심으로 하여 임진왜란 당시 축성하였다고 한다. 가덕도 왜성의 본성(눌차도에 있음)으로 잘못 인식되어 왔으나 규모나 축조 상태로 볼 때 지성으로 보인다. 갈마봉으로 오르는 동쪽 능선과 북서쪽 해발 130m 지점의 비교적 평탄한 지점에서 토루와 성곽 일부가 확인된다. 석축과 토루는 지형에 따라 굴곡을 주어 측면공격 및 방어에 유리하게 하고 있다. 이곳의 내부는 비교적 평탄한데 동북쪽은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갈마봉 산성 서벽에 연결된다. 성내 정상부와 동쪽 하단부에는 건물지가 확인되며, 성외 동북쪽에는 건호(乾濠)를 두른 흔적도 보인다. 성벽의 축조 수법은 40~50㎝×20~30㎝×20㎝ 크기의 장방형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쌓았으니 상부폭 4m, 기저부 폭 5.7m, 잔존 높이는 1.5m 내외이다. 지금은 성으로 오르는 동쪽 길목에 간이 체육시설이 조성된 곳을 제외하면 현재 성 내외에는 잡목이 무성하여 서쪽 석축 일부를 제외하고는 성의 구조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아직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고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별다른 조망이 없으며 쉼터도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한겨울임에도 부슬비가 오락가락하는 푸근한 기온으로 안개까지 드리워진 능선길을 따라 작은 능선봉우리를 넘자,
완만하던 능선길이 제법 가파른 오름길로 바뀌며,
커다란 바위가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있는 능선 봉우리를 넘게 되고,
금방이라도 굴러내릴듯이 보이는 정육면체 바위를 지나면,
구곡산 산패가 걸닌 소나무가 지키는 구곡산 정상에 도착하여 잠시 배낭을 내리고 쉼을 한다.
<구곡산(九曲山, 235.9m)>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의 구곡산은 지역 주민들이 산을 오를 때 아홉 구비를 굽이굽이 돌아 올랐다 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맑은 날이면 북쪽으로 예전에 걸었던 신낙남정맥의 불모산과 굴암산 방향 조망이 좋다는 구곡산 정상 산패.
조금 올랐다고 안개가 더욱 짙어져서 요란한 소리만 들려오는 북쪽의 부산신항 방향이 온통 희뿌옇게 보인다.
구곡산 정상 인증은 자연스럽게!
가드 로프가 메인 제법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면,
안부에 편백나무가 빼곡히 식재된 산림욕장을 지나게 되고,
편백나무숲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면,
가드 로프가 메인 가파른 암릉을 오르게 되는데,
좌측으로 동선마을과 새벽에 산행을 시작했던 동선새바지가 희미하게 드러나 보이고,
암릉을 올라서자 다시 평지수준의 완만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우측 100여 미터 지점의 삼박등 방향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박등 방향 등로가 잡목으로 험하다며 다른 분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여 홀로 삼박등을 다녀오기로 한다.
여름철이었으면 무성한 잡목과 덤불로 뒤덮였을 평지수준의 등로를 따라 삼박등 정상으로 향하면,
이내 잡목이 그득한 평지의 작은 나뭇가지에 삼박등 산패가 걸린 삼박등 정상에 도착하여,
<삼박등(310.5m)>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 동선동 경계의 삼박등은 유래를 찾기 어렵지만, 불교 용어인 삼박(三縛)은 중생을 얽매어 해탈을 방해하는 세 가지 근본 번뇌를 일컫는데, 탐욕박(貪欲縛) · 진에박(瞋恚縛) · 우치박(愚癡縛)이라고 하고 있으며, 번역하여 탐욕의 얽맴[貪欲縛] · 성냄의 얽맴[瞋恚縛] · 어리석음의 얾맴[愚癡縛]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해탈을 방해하는 삼박(三縛)에서 비롯된 지명이 아닐까 추정된다.(펌)
가덕도 삼박등 정상 인증을 남기고,
왔던 길을 돌아나와,
삼박등 갈림길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진행 방향으로 내려서면,
기다리던 분들이 널찍한 가족묘지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아침식사가 끝나도록 안개가 걷히지 않은 등로를 따라,
우측 능선 방향으로는 '등로없음'으로 표시된 이정표가 있는 능선봉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진행하면,
완만한 능선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삼박등과 웅주봉 남서쪽 사면으로 이어진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좌측 임도를 따라 국군묘지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시고지 고개에서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임도를 두고 좌측 숲길로 들어서며 웅주봉을 향한다.
<고개(250)>
부산시 강서구 성북동의 성북마을과 강서구 천성동 사이의 고개로 시고지 남쪽 안부 사거리 지점이다.
고개에서 웅주봉 방향 숲길로 들어서는 백두들.
수레길 수준의 완만하고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편평하고 넓은 개활지 안부를 지나게 되고,
안개 낀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또 다른 산행의 재미를 느끼며 오르면,
산불감시 초소와 카메라탑이 있는 웅주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웅주봉(337m)>
부산시 강서구 동선동과 천성동 경계의 웅주봉은 가덕도에서 연대봉(烟台峰, 45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매달재라 부르기도 한다. 매 사냥을 할 때 매를 날리던 산이라 하며 붙은 이름이다.
웅주봉 정상에서의 연대봉과 거가대교 방향 조망이 좋다는데 안개로 인해 아쉬움만 남긴다.
웅주봉 산불감시인이 조망을 즐기는 좌대에서.
안개가 멋진 전망을 가려버린 웅주봉을 뒤로하고 가드로프가 메인 좁은 등로를 잠시 내려서면,
이내 옅은 안개로 신비한 느낌마저 드는 멋진 내림길 등로가 길게 이어지다가,
입산만 금지되고 출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지가 없는 가덕고개에 내려서게 되는데,
<가덕고개(185m)>
부산시 강서구 천성동 두문마을과 강서구 동선동 밤나무골 사이의 고개다. 고개 아래로는 부산과 거제를 잇는 가거대로 가덕터널이 지나며, 6.25 동란시 전사한 가덕도 출신 국군장병이 묻힌 국군묘지가 있다. 또한 고개 일대는 주민들이 조성한 근린공원인 누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산불감시인들이 근무를 잘하고 있는지 점검을 하고 가덕고개로 내려서는 회장님.
가덕고개 누리공원 전경.
6.25 전쟁 당시 가덕도 출신 전사자 영령을 위로하기 위한 국군용사 충혼비.
<국군묘지>
가덕도 국군묘지는 6.25 전쟁 때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순국용사를 추모하기 위하여 1957년 6월 6일 가덕도 천성산 해발 200미터 기슭에 묘역이 조성되었고, 1981년 의창군에서 순국선열의 거룩한 넋을 기리는 묘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1991년 국군묘지 주변 정비사업을 퍼 묘역을 가꾸고 강서구청에서 1992년 6월 5일 높이 5.3미터 크기의 충혼비를 세웠으며, 2007년 5월 묘비석 및 충혼비를 정비하였다. 충혼비는 용감한 국군의 기상을 상징하며, 호국영령들의 조국애를 기리는 추모시가 새겨져 있다.
이곳은 꽃다운 청춘을 조국과 겨레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소중한 현충시설로서 후손들에게는 역사적 산 교육장으로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이다.
가덕도 국군묘지 안내도.
가덕고개의 국군묘지 참배를 마친 백두들.
가덕고개에서 매봉 직전 안부인 천성치로 가기 위해서는 능선 좌측 임도로 우회하여 진행하게 되는데,
길 없는 능선을 고집하던 분들도 다시 임도로 내려서서,
잘 정비된 임도길을 편안하게 따르면,
좌측 동선동 방향으로 눌차대교와 아침에 지나온 천가교가 조망되고,
지나온 갈마봉 너머로 굴암산도 안개가 옅어지며 희미하게 드러나 보인다,
지나온 갈마봉과 구곡산 방향.
이 길이 정규 걷기길인 부산 갈맷길이라서 그런지 벤치도 놓여 있고,
천성치의 매봉 방향 들머리에 산불감시인이 지킬까봐 몇몇 백두들은 임도 좌측 샛길로 들어서서 매봉으로 향하지만,
매봉은 연대봉을 갔다가 동선새바지로 가는 길에 오를 봉우리인지라 그냥 임도를 따라 천성치로 향하면,
좌측으로 눌차만과 굴암산이 조망되는 전망포인트를 지나게 되고,
잠시 더 촉촉한 임도를 따르면,
좌측 매봉 방향 능선길 들머리가 있는 천성치를 지나게 된다.
산불감시인의 교통수단이 세워져 있는 천성치 전경.
<천성치>
부산시 강서구 천성동 두문마을과 강서구 동선동 밤나무골 사이의 고개다.
천성치를 넘어 계속 임도를 따라 어음포고개로 향하면,
우측에 거가대교 방향 조망이 좋다는 데크목 전망대를 지나게 되고,
아직은 옅은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거가대교 방향.
가시덤불을 헤치고 왠수님께서 일부러 떨어뜨린 지팡이를 주으러 가는 총무님.
걷기 좋은 임도를 잠시 더 따르면,
연대봉 방향 들머리가 있는 어음포고개에 도착하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연대봉을 올랐다가 다시 돌아나와 매봉산 방향으로 가덕도 종주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어음포고개(225m)>
부산시 강서구 천성동 동중마들과 어음포골 사이의 고개지점이다. 어음포는 "물고기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로 물고기가 많은 포구"라 하여 어음포(漁音浦)로 불려지고 있다.
부산 갈맷길을 걷는 분께 파이팅을 외치는 안내판.
어음포고개에서 연대봉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서,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다가,
지나온 웅주봉(좌)과 가야 할 매봉(우) 방향을 돌아보고,
간밤에 먼 길을 달려오느라 지쳐있어서 그런지 연대봉 오름길이 만만치가 않은데,
나무둥치에 걸린 경고장이 무서워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뎌서,
가파른 깔딱고개를 치고 오르면,
좌후방 낙동강 하구 방향 조망이 멋진 데크목 전망대에 도착한다.
낙동강 하구 방향 조망 안내도.
매봉과 낙동강 하구 방향 파노라마.
지나온 웅주봉과 구곡산 능선 뒤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신낙남정맥 능선 조망.
가야 할 매봉과 웅봉산 방향.
낙동강 하구 건너편으로 보이는 낙남정맥의 마지막 구간 조망.
전망데크를 뒤로하고 연대봉을 향하면,
좌측으로 낙동강하구 방향이 조망되는 전망바위를 지나게 되는데,
그 옆에는 부산 갈맷길의 가덕도 구간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부산 갈맷길>
부산 갈맷길은 총 9개 코스로 나뉘어 있고 264km에 달한다는데, 모든 구간이 단절된 곳 없이 도는 순환코스다. 부산 전역의 외곽을 도는 갈맷길은 인기가 있는 데다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갈맷길이란 이름은 '갈매기가 노는 길'이란 뜻과 짙은 초록색을 칭하는 '갈매빛'의 중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제주 올레길이 생기더니 이어서 지리산 둘레길이 생겼고 부산에는 갈맷길이 생기는 등 전국적으로 둘레길 조성 열풍이 불었다. 제2의 도시인 부산에 산과 바다와 하늘을 함께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갈맷길이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언젠가 갈맷길 9개 코스를 두루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을 터인데...ㅉ
이내 봉화대와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 연대봉 정상에 도착한다.
<연대봉(煙臺峰, 459.4m)>
연대봉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의 중앙부에 있는 최고봉이다. 연대봉(煙臺峰)은 봉수대와 관련된 이름으로 봉홧불과 그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시설(대라고 불리는)이 있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북동쪽에는 응봉산(313m)이 있고, 북서쪽에는 웅주봉(339m)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국수봉(269m)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산지의 중심이다. 연대봉의 북쪽 해안은 매립지가 조성되어 있다. 연대봉 북서쪽은 안골포 해전(임진왜란 때인 1592년에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안골포에서 왜 수군의 주력대를 격멸한 해전)이 벌어진 장소로, 안골포를 비롯해 토도와 입도 등 무인도가 있다. 동쪽의 낙동강 하구 쪽으로는 삼각주의 형성 과정에서 만들어진 대죽도·중죽도·저도가 있고, 동북쪽으로는 다대포 해안과 마주하며 그 사이에 낙동강의 유수와 연안류가 퇴적한 연안 사주인 진우도·새등(신자도)·장자도·대마등·도요등과 낙동강의 하중도인 을숙도가 나타난다.
동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 해안은 암석 해안으로 이루어져 해식애와 기암괴석 등 다양한 파식 지형이 발달해 있다. 서쪽 사면은 동쪽 사면에 비하여 완경사를 이루며, 해안가 쪽의 구릉성 사면을 따라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서쪽 해안에는 천성만이 있어 해안을 따라 취락이 발달해 있다. 연대봉 정상부에서 보면 남동쪽으로는 일본의 대마도가 육안으로 확인되며, 서쪽으로는 거제도가, 북서쪽으로는 진해만의 여러 섬들과 마산 방향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연대봉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 전경.
봉화대 앞 전망대 전경.
연대봉 정상 360도 파노라마.
대항과 가덕도의 남쪽 끝자락 국수봉 방향.
<대항(大項)>
대항리에는 본 동의 음달 양달 마음과 새바지마을, 외양포마을이 있다. 천성리에서 천성고개를 넘어 동쪽에 연대봉 기슭과 남쪽의 국수봉기슭이 잘록하게 이어지는 목 서안에 대항리 본 마을이 나온다. 그래서 대항을 큰목 또는 한목이라고 부른다.
천성만과 거가대교 방향.
<천성만>
부산광역시의 강서구 천성동에 소재한 만으로 가덕도 서쪽 해안에 있다. 항만이 발달하기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군사상 요충지였다. 지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가덕진 소속의 천성만호진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도 성곽(시 기념물 제34호)이 남아 있다. 이곳에 성곽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성이 완성된 것은 1544년(중종 39) 수군 주진인 가덕진관이 성북동에 설치될 때 그 휘하의 천성만호진이 천성동에 설치되면서 성이 중수되거나 재축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천성만호진은 가덕진관과 함께 임진왜란 이후 안골포로 이전해 갔다가 1656년(효종 4) 다시 복귀하였다가 갑오경장 이후 군제 개편으로 폐지되었다. 만의 남쪽 두각지인 천성만에는 매년 2~5월 숭어잡이 때 배에 신호를 보내는 지휘대가 있다.
또한 천성항(天成港)은 해양수산부장관이 지정, 개발하는 국가 어항이다. 국가 어항은 1971년에 최초로 62개 항을 지정하여 개발에 착수한 이후, 110개 항을 지정하여 개발 중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저터널인 침매터널 입구와 우측 오션블루 가덕휴게소 모습.
<거가대교와 해저터널인 침매터널>
연대봉 정상에서는 바닷속으로 연결되는 도로인 침매터널과 거가대교가 멋지게 조망된다. 거제도와 가덕도를 잇는 공사는 김영삼정부 때 민자사업으로 선정, 노무현정부인 2003년 12월 첫삽을 뜨고 2010년 12월 13일에 개통되었다. 총사업비 2조6천억이 투입된 대공사로 총길이가 8.2km에 달하며 그중 3.7㎞는 해저터널(침매터널)로 건설되고 4.5㎞는 사장교(斜張橋)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해저터널(침매터널)을 통해 바다 밑으로 갔다가 가운데 보이는 <사장교(斜張橋)>와 연결되는데, 사장교는 양쪽에 높이 세운 버팀 기둥에서 비스듬히 드리운 쇠줄로 다리 위의 도리를 지탱하는 다리를 일컫는데, 대게 물의 흐름이 빠르고 수심이 깊은 곳에 설치한다고 한다. 또한 해저침매터널(海底 沈埋 tunnel)은 바닷물 밑에 터널을 만드는 공법으로, 육상에서 먼저 철근 콘크리트와 강철을 써서 통관을 만들어 가벽(假壁)을 막고 바닷물 밑에 파놓은 기초에다 차례로 올려놓아서 연결한 다음에 바닷물을 퍼내어서 완공하는 터널공법이라고 한다.
연대봉 봉수대.
<연대봉 봉수대>
연대봉(煙臺峰)은 봉수대와 관련된 이름으로 봉홧불과 그 연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시설(대라고 불리는)이 있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연대봉(煙臺峰)은 실제로 왜구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부산 산악인들은 연대산 연대봉이 정확한 이름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최초로 발견한 곳이 이곳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왜선이 대략 보이는 것만도 90여 척이 추이도를(부산 사하구)를 향하는 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를 상세히 헤아려 볼 수 없었으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첫 장에 가덕도 연대산이 있었다. 그러한 연대봉 정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진 돌판이 있다.
"임진장초(국보 76호)의 기록에 의하면 연대봉 봉수 감고 서건과 응봉봉수 감고 이등이 <왜선이 몇십 척인지 대략 보이는 것만도 90여 척이 대마도를 나와서 경상좌도의 추이도(사하구)를 향하는 바, 까마득하여 그 척수는 상세히 헤아려 볼 수는 없었으나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라고 보고했다는 공문을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은 경상우수영의 해상방어 최전방 진지였으며 응봉과 연대봉에는 각 진 관측소와 봉수대가 있었다."
당시 가덕진과 천성(만호)진은 경상우수영의 해상방어 최전방 진지였으며, 응봉과 연대봉에는 각진 관측소와 봉수대가 있었다.
서북쪽 연도와 진해 방향.
부산신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모습.
북동쪽 낙동각 하구의 진우도, 장자도, 도요등 방향.
낙타등바위, 연대봉, 알바위 등으로 불리는 연대봉 남쪽의 암봉 모습.
백두산우회 신년 해맞이 가덕도 연대봉 기념.
연대봉을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 나오다가,
낙동강 하구가 조망되는 전망대에서 각종 과일 행상을 모시고 과일 품평회 시간을 갖는다.
배낭에서 꺼낸 것보다 더 많고 다양한 과일들을 맛보고는 다시금 어음포고개로 향하면,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양쪽으로 갈림길이 있는 어음포고개에 도착하게 되고,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산불감시인의 안내까지 받으면 직진 방향의 매봉 들머리로 들어서면,
그리 급하지 않은 오름길이 잠시 이어지다가,
호미곶 '상생의손' 모양의 나무를 지나면,
제법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산불감시초소와 벤치가 있는 매봉산 정상에 도착한다.
<매봉산(357m)>
넓은 공터가 조성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커다란 사각의 자연석에 "매봉"이라 쓰인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부산신항과 눌차만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매봉산 정상석.
매봉산 정상 파노라마.
남쪽 연대봉 방향.
남서쪽 천성항 방향.
북쪽 눌차만 방향.
북동쪽 응봉산 방향.
성실하고 융통성까지 갖춘 산불감시인의 배려로 남긴 매봉 인증.
매봉산 정상에서 우틀하여 응봉산 방향 급경사 내림길을 잠시 내려서면,
이내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다시 급경사 내림길로 바뀌며 미끄러운 암릉을 내려서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응봉산 정상이 건너다 보이고,
호젓한 내림길 오솔길이 잠시 이어지더니,
팔각정자와 산불감시인이 지키는 누릉령을 지나게 된다.
<누릉령>
누릉령은 서쪽 동선동에서 누릉능 계곡으로 넘나드는 고개로, 동쪽 사면에 있는 누릉능은 해안가 "바다의 여(礖)가 누른색을 띤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등산로 이정표.
갈맷길 이정표.
누렁령에서 응봉산 오름길은 초반부터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다가,
정상부 암릉길로 들어서자,
뒤쪽으로 지나온 매봉산이 건너다 보이고,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차지한 암릉을 우회하여 오르면,
응봉산 정상 암봉 아래의 이정표가 세워진 응봉산 정상부에 도착하여 마지막 배낭털이를 하며 잠시 쉼을 한다.
<응봉산(鷹峰山, 313.4m)>
우측 통천문이라고도 하고 해산굴이라고도 부르는 바위 굴을 지나 정상 암봉 위로 오르면, 오늘 걸었던 모든 능선과 봉우리가 조망되고 동쪽 부산 방향 아슬아슬한 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응봉산 정상 암봉 모습.
낙동강 하구와 다대포 방향.
매봉산 암봉 정상은 좁아서 여러 사람이 오르기 어려울 듯하여 이곳에서 매봉산 정상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해산굴, 산부인과바위, 통천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좁은 바위굴을 통과하여 오르면,
아침에 지나온 구곡산에서 웅주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건너다 보이고,
우측 응봉산 정상 암봉 아래 나뭇가지에 산패가 걸려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오르기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가야 할 강금봉 방향.
가드 로프에 의지하며 가파른 응봉산 내림길을 내려서는데,
앞쪽으로 가야 할 강금봉 방향 능선은 물론 눌차만과 눌차도 그리고 낙동강 하구까지 뚜렷이 조망되고,
우측으로는 낭떠러지가 이어지는 암릉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니,
목적지인 동선새바지까지 1.3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게 되고,
둥그런 능선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다가,
지나온 응봉산을 배경으로 금방 흐려질 추억도 남겨보고,
커다란 바위가 나뒹구는 암릉길을 잠시 더 따르면,
우측으로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들이 가까이 내려다 보이고,
계속해서 암릉길을 잠시 더 이어가면,
커다란 바위암괴가 불쑥불쑥 솟아있는 강금봉 정상을 지나게 된다.
<강금봉(201m)>
투박한 바위암괴들이 옹기종기 둘러있는 봉우리로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나무로 둘러져 있어서 조망이 없다.
강금봉 정상 전경.
강금봉 정상부에서 갑자기 찾아온 쥐 한 마리를 부리나케 잡아버리고,
우전방으로 보이는 낙동강 하구의 모래섬들을 신기한 듯 곁눈질하며 잠시 더 능선 내림길을 따르면,
정확한 용도는 알 길이 없으나 옛날의 보루진지로 추정되는 돌 울타리를 지나게 되고,
이내 '육군사용지(陸軍使用地)'라는 글자가 음각된 돌말뚝을 지나게 된다.
<陸軍使用地(육군사용지) 표석>
가덕도는 예로부터 군사요충지였다. 1904년 제국주의 일본군이 조선침략을 위해 최초 상륙한 지점이 외양포로, 외양포의 주민을 강제로 쫓아낸 뒤 포대진지를 구축하고 1905년에는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창설하여 전쟁 준비를 하였다. 이후 태평양전쟁을 유발한 일본군은 1945년 항복할 때까지 대항동 일대에 주둔하며 주인 행세를 했다. 그때 설치한 화약고, 사단막사, 포대자리 등 시설물들이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항마을 중심으로 동.서.남 해안 능선에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모두 철거하였다. 국수봉 일대는 보루진지, 관측소등이 현재에도 남아있다. 육군사용지 표석은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초에 일본군 주둔지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육군사용지 표석은 강금봉 부근 제414호, 성포(토)부근 제133호, 삼박등 부근 파손, 구곡산 부근 제305호, 어음포 부근 제13호 및 제9호, 누릉능 부근 제14호, 제6호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일부 표석이 파손되어 방치되고 있어 하루빨리 역사적인 연구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후세들을 위한 교육현장이 되고, 침략의 증거자료로 보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펌)
앞쪽으로 새벽에 걸었던 동선방조제와 눌차도가 조망되며,
제법 가파른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등로가 좌측 사면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동행한 분들을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 새로 난 등로를 따르게 하고, 홀로 옛날 등로를 확인하러 직진의 펜션단지 방향 등로를 따라 내려가면,
펜션단지 공사장이 나타나며 옛날 등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 펜션단지 울타리를 넘어 단지 안으로 들어선다.
통과한 펜션단지 울타리 모습.
펜션단지 울타리를 통과하여 도로를 따라 내려서다가,
도로를 막아서는 철망 문을 간신히 넘어서 통과하여 내려서면,
동선새바지 도로에 접속하고 우틀하여 동선새바지로 향한다.
도로를 따라 100여 미터 진행하면,
새벽에 지났던 동선방조제 갈림길이 나오고,
우틀하여 동선방파제 입구의 동선항으로 이동하면,
각종 어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동선항에 도착하여,
기다리던 버스에 오르면서, 해(日) 없는 신년 해맞이 가덕도 환종주 산행을 종료한다.
진해 안골동의 녹산온천에서 습기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진해 청안동의 송원횟집에서 성대한 신년 첫 뒤풀이를 가진다.
해가 바뀌었으니 뒤풀이 시간도 줄여야 하고 갈 길도 멀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일찍 뒤풀이를 마감하고 서울로 향하며 날씨로 우려했던 신년 첫 산행 일정을 모두 마감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많은 겨울비가 예보되었음에도 백두들은 평소처럼 어려운 삼산행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백두들의 미지를 향한 굳센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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