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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호미기맥 01차(삼강봉~당산재) : 붉게 물들어 오는 동녘을 향해 출발 !

by 재희다 2024. 5. 28.


산행장소 : 호미기맥 01차(삼강봉~당산재) 경남 울주군. 

산행일시 : 2024. 01. 13.(토) 
산행코스 : 소호분교 ~ 낙동정맥 접속 + 백운산 분기봉/삼강봉(845m) ~ 398.7봉 ~ 탑곡고개/가매달 ~ 482봉 ~ 565봉 ~ 천마산(613.3m) ~ 557봉 ~ 257.6봉 ~ 상동재 ~ 404.7봉 ~ 복안고개 ~ 353봉 ~ 삼봉 ~ 미호고개(35번국도, 경부고속도로) ~ 225.2봉 ~ 임도 ~ 206.2봉 ~ 중리고개 ~ 임도 ~ 당산고개 (2.2km+18.3km = 20.5km, 9시간 소요) 

산행참석 : 19 백두. 

 

▶ 즐산팀은 울주군 두서면 내와 마을에서 출발하여 탑곡고개로 접속하여 16km 산행.

 

<산행지도>

 

올 해는 9기맥 종주 산행을 마감하고 어려운 마루금 산행 대신 둘레길 트레킹으로 정기산행을 진행하기로 공언하였기에, 9기맥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호미기맥 종주를 새해 첫 산행으로 시작한다. 호미기맥은 낙동정맥의 울주군 백운산 직전 삼강봉에서 분기하여 형산강과 태화강을 가르며 동북쪽으로 이어가 대한민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인 포항의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 형남기맥이라 부르기도 하며 그 길이가 98.8km로 100km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호미지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우리는 실거리가 100km를 넘고 9정맥에 이어 9지맥으로 짝을 맞추기도 좋아서 '호미기맥'으로 부르기로 한다. 

 

 

겨울임에도 눈대신 비가 내리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심설산행에 대한 기대는커녕 겨울에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산행을 이틀 앞둔 목요일에는 강원 산간지역에는 많은 눈이, 다른 지역은 많은 비가 내렸지만 산행일에는 맑은 날씨가 예보되며 별다른 걱정은 않은 체 혹여 산에는 비가 아닌 눈이 왔을 수도 있기에 아이젠을 챙겨 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는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낙동정맥의 호미기맥 분기점인 삼강봉에 오르는 등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의 기맥꾼들이 이용하는 낙동정맥 서쪽 기슭의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상북초교 소호분교에서 지능선을 따라 오르는 코스가 있고, 동쪽 기슭인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버스로 접근이 쉬운 서쪽 소호리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하였는데, 우리를 내려준 버스가 산행 종점으로 가기 위해서는 낙동정맥을 넘는 먼 거리를 우회하여야 하는 단점도 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산행 출발지점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에 있는 상북초교 소호분교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1시간쯤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새벽 4시 반쯤에 눈을 뜨고는 내와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즐산팀의 단잠을 깨우지 않으려 배낭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산행 채비를 하고, 

 

14명의 백두 즐산팀원들이 새벽 단잠을 이루고 있는 버스를 뒤로한 채, 역사적 사명을 띤 5명의 백두들이 상북초등학교 소호분교 정문 앞에서 우측 소호마을회관 방향의 마을길을 따라 호미기맥 산행을 시작하는데, 

 

소호분교 정문 우측의 소호리 마을회관 앞에는 '상북면 당리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소호리(蘇湖里) 마을>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동북쪽에 위치한 법정리(里)로, 상북면의 13개 법정 리(里) 중 가장 오지에 분지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소호(蘇湖)의 옛 이름인 소야(所也)는 ‘수리’에서 비롯된 말로, 수리는 ‘높이 솟은 산’ 또는 ‘정수리’라는 의미로 ‘소(所)·소(蘇)·술(述)·술(戌)·취(鷲)’ 등으로 차자(借字) 된 ‘수리골’의 뜻을 담고 있다. 당리· 대곡· 대리· 와리· 태종 등 5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당리마을은 소호리 중심에 자리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복판에 당수(堂樹)가 있어서 붙여졌고 《당수말》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느티나무숲이 우거져 마을의 당제(堂祭)를 모셨고, 지금도 소호분교 운동장에는 느티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있어 매년 정월대보름 저녁에 당제를 지낸다. 당리마을 남서쪽 대리마을은 조선시대까지는 소호에서 가장 큰 마을이어서 대리(大理)라 했는데, 1800년대 말 대형 산불로 마을이 소실되어 임야로 방치되어 오다가, 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옛길을 복원하여 ‘참새미길 숲’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소호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며 마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우측 도로를 따르다가 인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틀하여, 

 

오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의 오름길로 진행하면, 

 

지능선을 차지한 넓은 밭이 나타나며 'ㅏ'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틀하여 이어지는 시멘트포장 농도를 따르다가, 

 

좌측의 커다란 정자나무를 지나서,

 

바로 나타나는 첫 번째 좌측 수레길로 들어서서 진행하면, 

 

외딴 가옥 뒤편에서 능선으로 들어서는 숲길 들머리가 나오는데, 

 

숲길 초입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어서 한밤중에도 쉬이 찾을 수 있을 듯하고,

이곳부터 호미기맥 분기점이 있는 낙동정맥 능선까지는 약 400고지 이상의 거친 오름길을 올라야 한다. 

 

 

숲길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면 야생동물 방제용 그물이 처진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조림작업으로 길흔적이 사방으로 흩어져 등로 구분이 어려운 사면을 지나 임도에 올라서는 우측으로 진행하다가, 

임도에서 돌아본 낙동정맥이 지나는 외항재 방향

 

꾀나 높고 가파른 좌측 절개지로 이어진 희미한 길흔적을 따라 오르면, 

 

최근 임도를 확장하기 전에 다녔던 비교적 선명한 능선 등로에 접속하여 우측 오름길을 따라 오르게 된다. 

 

 

제법 뚜렷하게 이어지던 등로를 따르다가 표지기가 걸린 우측 편백 조림지로 들어서서, 

 

아직 어린 편백나무가 식재된 사면 희미한 등로를 따라 오르면,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보았던 이정표가 있는 임도에 올라서 직진의 '능선까지 630m'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이제 이정표까지 있어서 능선까지 뚜렷한 등로가 이어져 있을 것으로 짐작하여 한결 마음을 놓으며 잠시 배낭을 내리고서,

이후 예상치 못했던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조차 못한 채 잠시의 쉼을 한다. 

 

 

임도에서 이정표의 능선 방향 등로로 들어서자 비교적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다가, 벌목지대로 들어서자 따르던 등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가시덤불이 들어찬 벌목용 수레길이 나타나는데, 능선 좌측 사면으로 오르는 수레길을 따르다가 다시 능선으로 들어서야 했는데 성급하게 우측의 벌목 폐목재가 쌓인 능선으로 들어서서 가시와 잡목까지 빼곡한 능선을 통과하느라 20여분의 개고생을 한 후에, 

 

마침내 벌목지대를 벗어나 희미한 등로가 이어진 능선길과 길흔적이 희미한 너덜지대를 지나 오르다가, 

돌아본 고헌산(좌)과 외항재 방향

 

작은 암릉을 지나 잠시 더 오르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눈이 살짝 덮인 신작로 같은 등로가 나타나기에 폰 지도를 꺼내보니 어느새 표지기들이 많이 걸린 낙동정맥 능선에 올라 있다. 

 

이곳 낙동정맥 능선에 접속하는 갈림길 삼거리에서, 어둠에 싸여 있을 우측 500m 지점의 백운산을 두고 좌틀하여 바로 호미기맥 갈림봉인 '삼강봉'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울주군 상북면 소로리를 지나와서 이 능선에서 울주군 두서면을 만나는데, 낙동정맥은 상북면과 두서면을 가르며 남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행 출발지점인 소호분교에서 이곳 낙동정맥 능선까지의 오름길에는 야생동물 방지 그물망 펜스 통과지점의 등로가 불분명하고, 이정표가 있는 두번째 임도 지나 오름길의 벌목지대에 폐목재가 쌓여있어서 동로가 보이지 않고 가시나무와 잡목이 덮고 있어서 통과가 무척 고생스럽다. 나중에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벌목지대에서 잡목이 들어찬 수레길을 따라 좌측으로 우회하다가 다시 우측 능선으로 진행하는 게 좋아 보인다. 

 

<백운산(白雲山, 893m)>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에 있으며 고헌산으로 남하하는 영남 알프스의 최북단 출발점이자 또한 호미곶으로 동진하는 호미기맥의 시작점인 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경주 단석산과 고헌산 사이에 솟아있는 낙동정맥의 한 봉우리기도 하다. 이곳  백운산 옆에는 김유신 굴이  있는데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기도를 통해 신검(神劍)을 받은 후 삼국통일의 대업에 나섰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낙동정맥 능선 접속 삼거리 갈림길 지점. 

북북동쪽 경주시 방향

 

 

산 아래에서는 눈을 볼 수 없었지만 800 고지가 넘는 능선에 오르니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고 야간에 아무도 다닌 흔적이 없는 등로에는 어떤 위험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으므로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미쳐 아이젠을 챙겨오지 못한 분들이 있어서 한 짝씩 나누어 착용하고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측 북쪽 방향의 낙동정맥 등로로 들어서면 야생동물의 발자국조차 없는 등로가 이어지다가,    

 

이내  2009년 7월에  '부산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세운 '호미기맥 분기점' 이정표가 나타나고, 

 

분기점 이정표를 지나 20여 미터 지점에는 호미기맥 분기봉임을 알리는 '삼강봉(845m)' 정상석이 자리하고 있다. 

 

<백운산 삼강봉(三江峰, 845m)>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에 있는 봉우리로 신라시대 때는 열박산(咽薄山)이라고도 하였다. 삼강봉(三江峰)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3등분되어 남동쪽 탑곡으로 흐르면 미호천·대곡천을 거쳐 태화강으로 흐르고, 동북쪽 큰골로 흐르면 경주 시내를 지나 포항 형산강으로 흐르며, 서쪽으로 흐르면 밀양강의 원류인 소호리 동창천을 거쳐 밀양강으로 흐른다. 

 

백두산우회 호미기맥 출발 인증.

 

삼강봉 정상에서 북북동쪽 경주 방향

남쪽 백운산 방향
남동쪽 울산 방향

 

 

삼강봉을 뒤로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표지기들의 열렬한 환영인사를 받으며 호미기맥 등로로 들어서면, 

 

급경사에 발목이 넘는 눈이 쌓여 미끄러움 내림길이 혹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 위험해 보이는데, 삼강봉 이정표가 있는 지점으로 되돌아가 우회길로 내려가면 좀 더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다지만 이미 들어선 길이라 조심조심 내려서다가,  

 

동쪽 사면으로 내려서자 세찬 북서풍이 사라져 아늑한 느낌이 들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커피를 나누고는, 

아침해를 잉태하여 붉게 물든 동해 방향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다가 희미한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계곡 방향으로 추정되는 등로를 두고 좌측 등로를 따르고,  

 

급경사의 내림길을 따라 고도가 낮아지니 등로를 덮고 있던 눈도 사라져서 차고 있던 아이젠을 벗어 배낭에 갈무리하는데, 잉태된 아침해가 연출하는 동쪽 하늘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다음 구간에 오를 묵장산과 치술령 방향

 

 

삼강봉에서 워낙 급경사라 잔뜩 긴장한 채로 200고지 정도를 내려서다가 잘록이 안부를 지나 조금 오르면, 

 

작은 바윗돌이 듬성듬성 보이는 655.2봉을 지나게 되는데, 

 

동쪽 방향을 촘촘히 가리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조차 불길에 휩싸인듯 보여 차가운 한기가 내려앉은 새벽길을 걷는 산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듯하고,  

 

655.2봉을 지나자 등로도 유순해지며 등로를 덮은 낙엽조차 이제는 푹신하게 느껴지며 걷는 즐거움을 실감케 한다. 

돌아본 백운산 방향

 

 

655.2봉 이후로는 완만한 능선에 등로도 제법 뚜렷하여 어둠속을 헤매던 긴장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우전방으로 보이는 천마산 방향
좌측 단석산 방향

 

좌측에 멋들어진 소나무가 있는 지능선 분기점에서 길흔적이 뚜렷한 우측 아래로 들어서면,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낙엽이 푹신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앞쪽 등로 바닥의 긁힌 자국이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면 삼각점과 묘지 2기가 자리하고 있는 399.9봉을 지나게 된다.

 

 

400미터에 십 센티가 모자라는 봉우리 인증을 가지고 묘지 앞으로 이어진 기맥길로 들어서서, 

즐산팀의 출발지인 좌측 내와마을 방향

 

쭉쭉 뻗은 소나무숲 오솔길을 따르면, 

 

안동권공 묘 아래의 좌.우로 길흔적이 희미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게 되고,  

 

봉분이 거의 사라진 묘가 자리한 369봉'을 지나, 

 

노란 소나무 갈비가 푹신한 숲길을 내려서면, 

 

좌측 내와마을에서 탑곡고개를 지나 삼강봉 동남쪽 아래의 탑골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로 나서게 되고, 

 

좌측 도로를 따라 50여 미터 진행하면 'T'자 갈림길이 있는 탑곡/탑골고개가 나오는데, 좌측은 내와마을 방향이고, 우측은 내와리 갈밤미기골로 이어진다. 갈림길에는 '영남알프스 둘레길 5-12' 이정표와 '가매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탑곡/탑골고개>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에 있는 고개로, 내와 마을에서 백운산과 삼강봉 능선의 동쪽 골짜기인 탑골과 갈밤미기골로 이어지는 도로가 지나는 고개다. 이곳 사람들은 내와리고개라고 부른다. 

내와리는 두서면이 경주의 남면이었을 때에도 내와라 불렸다가, 울산군 두북면으로 이속되고 나서 1911년에는 내와동이라 하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는 내남면 고사리(內南面 古舍里) 일부를 합하여 내와리로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고, 내와와 외와의 두 행정 마을이 있다. '내와'라는 마을 이름을 갖게 된 유래에 대하여는, 옛날 기와를 굽던 곳으로 안에 있는 마을은 '아네', 밖에 있는 마을은 '바데'라고 불려진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자료는 없다. 또한 일설에는 '내와 마을 뒷산이 골처럼 생겼다'하여 안은 '내와' 밖은 '바데'라 했다고도 한다. 
내와 마을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 통일의 영기를 얻은 영산(靈山) 백운산을 서쪽으로 등지고 있는 해발 400m의 고지대 산촌으로 비교적 오지에 속한다. 이 마을에는 경주 최씨와 오씨가 약 300여 년 전부터 거주하였다고 전해오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없다. 한편 안동 권씨는 약 300여 년 전에 입향한 이래 현재까지 토박이로서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성씨가 들어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특산물로는, 과거에는 식정·농기·기타 철물과 목탄(숯) 등이 있었고 현재는 인삼·한약재·납석·자연석(수석) 등이 유명한데, 특히 내와 혹돌은 전국적으로 내와에서만 발견되는 명품으로, 많은 수석애호가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탑곡이라는 자연 마을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 천주교에 대한 숱한 박해가 가해질 때 수많은 순교자들이 은거하며 촌락을 형성했던 곳이라 한다. 한 때는 27여 가구가 이곳에 살았으며, 천주교 탑곡공소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백운산 탑골공원 최상류 550m 지점 절터밑 탑골샘에서 발원한 물이 미호천, 대곡천을 거쳐 태화강을 이루는데 총연장 47.54km의 태화강 최장거리의 발원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강의 길이는 ‘상징적 태화강’ 발원지로 알려진 가지산 쌀바위에서 시작된 물길의 길이(45.43km)보다 약 2km가 더 길다고 한다. 울산시는 2006년도 하반기 울산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이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탑골샘을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로 공표하였다고 한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가매달' 설명판

 

<숲, 물, 옛길이 있는 무릉도원 가매달 계곡 안내판>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복안 저수지 끝나는 곳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 계곡은 태화강 백 리 길이 숨겨둔 보물이다. 저수지 끝에서 50여 미터쯤 올라가다 보면 물가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작은 바위가 있는데, '가마바위'라 불린다. 색시가 탄 가마가 계곡물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색시가 빠져 죽었는데, 가마 속에 둔 요강을 닮은 소(沼)가 만들어졌다는 '요강소'를 비롯하여, 선녀가 목욕을 했던 선녀탕, 구렁이가 약이 올라 빠져 죽었다는 구이소, 계곡을 건너던 소금장수가 미끄러져 계곡물이 짠물로 변했다는 소금쟁이소를 비롯하여 열 개의 소(沼)와  여섯 개의  징검다리가 있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 백 리 길이 만나는 개미허리골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 백 리 길이 만나는 곳이다. 개미허리골 아래 내와(內瓦) 마을은 기와를 굽고 쇠를 녹이던 불매골이었다. 쇠를 녹이던 재동비알 쇠점터, 점터걸, 서말찌 조선솥을 굽던 중점이 있다. 

-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
  백운산 아래 둘레길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이다. 세월을 묻어둔 오지 마을, 피톤치드 내뿜는 낙락장송,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 마당 메기, 세 곳의 미니 공소로 이어진 순례길, 짐을 진 말이 고꾸라질 만큼 가파른 말구부리길이 있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울산 울주군을 포함한 경남 양산·밀양, 경북 청도·경주의 3개 시·도, 5개 시·군의 행정구역에 이어지는 총 240㎞의 탐방로로,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총 9개의 해발 1,000m 고도의 산군들이 연결된 영남 알프스에 조성되어 있다.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고헌산 아래로 연결된 울산 구간은 총 5개 구간으로, 전체 영남알프스 둘레길 240km 중 77.3km에 달한다. 울산 구간 둘레길은 삼남면 방기리 오케이 목장 식당에서부터 시작하여 두서면 외와 마을까지 이어지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 · 쑥부쟁이 한들거리는 들길 · 호젓한 계곡길 · 고즈넉한 산골 마을 토담 길 · 수풀 우거진 묵은 길 등의 별칭을 붙여 이어 가서 자연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마을마다 내려오는 전설과 잊힌 역사가 둘레꾼의 발목을 붙잡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사람의 손길을 자제했으며, 위험한 구간에는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재정비하였다. 그중 5코스는 하선필마을 삼거리 - 중선필마을 - 상선필마을 - 탑골샘 삼거리 - 내와마을 - 외와마을 - 박달재 구간의 9.3km 둘레길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새벽에 즐산팀들이 저 길을 따라 올라왔을 좌측 내화마을 방향.

 

 

탑곡고개에서 우측 유촌마을 방향으로 몇 발자국 나가다가 좌측 철문 울타리 옆 기맥 들머리로 들어서면, 

 

무척 가파른 오름길이 제법 길게 이어지다가, 

우측 아미산 방향
돌아본 백운산 방향

 

지능선 분기점쯤에 올라서는 좌측 완만한 오름길 능선을 따르게 되고, 

 

얕은 봉우리를 지나 잠시 더 오름길을 올라서면, 

 

'준·희' 님의 격려문과 482.1봉 산패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가야 할 565봉 방향

 

 

얕은 안부를 지나 다시한번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 아무런 표식이 없는 미호봉(565m)을 지나서, 

돌아본 백운산과 삼강봉 방향

 

가야 할 천마산울 바라보며 평탄한 능선길을 따르다가, 

우측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복안저수지

 

천마산이 정면으로 건너다 보이고 좌측에 야간비행유도 철탑쯤이 있는 지점에서 기맥 능선으로 천마산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좌측으로 휘어져 'C'자 형으로 이어지고, 

야간비행유도 철탑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완만한 등로를 내려서서 겨울바람이 잦아든 널찍하고 편평한 안부에서 오름길이라고 또 겨울바람이 차다고 미뤄온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찬바람을 피해 천마산 직전 안부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찬바람은 피했지만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는 피할 도리가 없어서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신우대 자생지를 좌회하여 천마산 오름길로 들어서서, 

 

식후에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완만하고 호젓한 오름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아담한 화강석 정상석이 자리한 둥그런 천마산 정상에 도착한다. 

 

<천마산(天馬山, 613m)>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이 백운산 굴에서 기도를 하여 신검을 받은 후에 백운산에서 천마를 타고 이곳으로 뛰어내렸다 하여 천마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마산 정상 인증. 

우전방 다음에 오를 치술령과 묵장산 방향 아래로 복안저수지도 내려다 보인다.

 

 

천마산을 뒤로하고 평탄한 능선길을 따르는데,  

 

좌측(북쪽) 단석산 방향으로 내남면 박달리의 고랭지 채소밭과 그 우측의 복안산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봉우리를 우회하는 등로 옆 나무에  '준.희'님의 557봉 산패가 보이기에 좌측 바위 봉우리로 올라보니, 

 

557봉이 암봉이라서 북동쪽 경주 방향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살짝 당겨본 단석산 방향
살짝 당겨본 경주시 방향
당겨본 경주 남산과 토함산(우 후방) 방향
나뭇가지에 가린 남쪽 복안저수지와 아미산(603.6m) 방향

 

 

557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어렵잖은 바위 사이를 지나기도 하며, 

 

소나무들이 서성이고 있는 지능선 분기봉인 542봉에서 좌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잡목들이 들어찬 또다른 지능선 분기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면, 

 

낙엽과 쇠석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급경사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다가, 

 

별달리 욕심이 나지도 않는데 땅을 사놓는 사람들이 발생하기도 하는 사이에, 

 

가야 할 삼봉이 봉우리 하나를 앞세운 채 불쑥 모습을 드러내더니, 

 

안부(283m)를 지나 다소간 완만하게 올라, 

 

305봉쯤에 올라서는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고,  

 

이내 또다른 304봉 직전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며 능선을 우회하여 진행하다가, 

 

이내 다시 주능선에 접속하여 우측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선다. 

 

 

앞쪽으로 뒷복안고개 건너의 가야 할 403봉이 위압적으로 다가서며, 

 

거칠어진 급경사의 내림길을 내려서서, 

우측 아미산 방향
울주군 두동면 연화산 방향

 

좌.우로 옛길 흔적이 있는 안부(235m)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올라, 

우측 복안저수지 방향
돌아본 백운산 방향

 

높지 않은 봉우리(250m)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서고, 

 

이내 절개지 수로를 만나 좌측 수로를 따라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뒷/신복안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상동재/뒷복안고개>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 상동마을에 있는 고개다. 미호리와 복안리를 잇는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미호리 쪽에는 축산업을 많이 하는지 목장과 목축지가 많이 보인다. 이 고개 아래에 있는 미호리 상동마을의 서편 위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상동재이다. 
약 400여 년 전 조선조 광해군 때 지금의 저수지 근처에 김해 김씨가 자리를 잡았는데,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가 자주 내려와 사람을 해치므로 공포에 질려 지금의 상동 마을로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 나주 임씨가 들어와 다래나무 덤불을 헤치고 마을을 개척하면서 정착하였고 뒤이어 각 성씨(姓氏)가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미산과 천마산 사이의 가메들 계곡은 백운산 탑곡에서 시류하는 태화강 최상류 발원지로 자연경관이 빼어난 데다, 그 긴 계곡 중간중간에 거울 같은 석반을 끼고 호박소·구이소·가마소 등 아름다운 소가 많아 지금도 이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 도로는 남쪽 두서면 미호리(嵋湖里) 상동마을에서 북쪽 복안리(伏安里) 음지마을을 잇는 도로로, 이곳 고개에서 약 1.2km 더 진행하면 나오는 옛 고개의 이름인 '복안고개'에서 그 이름을 따와, 뒤에 새 도로가 나면서 생긴 새 고개라 하여 산꾼들이 '신복안고개' 또는 '뒷복안고개'로 부르고 있다.   

 

우측 두서면 미호리 상동마을 방향. 

 

 

차량 통행이 뜸한 도로를 횡단하여 '뒷복안고개' 코팅지가 걸린 들머리로 들어서서, 

 

수로를 따라 오르다가 절개지 상단에서 좌측 능선 숲길로 들어서서 오르면,  

 

'준.희'님의 호미지맥 종주자에게 보내는 '힘힘힘!' 응원 메시지가 걸려있고, 

 

더욱 가팔라진 오름길이 제법 길게 이어지다가, 

돌아본 백운산 방향

 

앙상한 나무들만이 서성이고 있는 403봉에 도착하여 잠시 배낭을 내리고 가빠진 숨을 가라앉힌다. 

403봉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403봉에서 뒤돌아서는 듯이 직우틀하여 잠시 완만하게 내려서다가, 

 

제법 긴 급경사의 내림길을 내려서서, 

 

안부에 가까워질 즈음에 가족묘지를 지나,  

 

뚜렷한 수레길이 지나는 복안고개/아랫복안고개를 지나게 된다. 

 

<복안(伏安)고개/아랫복안고개>
우측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에서 복안리 새터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 전체가 숲으로 채워져 옛날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고개의 역할을 잊은 지가 오래된 곳이다. 

 

좌측 복안리 음지마을 방향
우측 미호리 상동마을 방향
복안고개 들머리 전경

 

 

복안고개 들머리로 들어서서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 

 

능선에 자리한 묘지를 지나자 완만한 능선 오름길이 이어지며 가빠오는 산꾼의 숨을 가라앉게 하고, 

 

350봉쯤에서 직좌틀하여 완만한 오름길을 잠시 더 따르면, 

 

높다란 산불감시초소와 묘지가 자리한 삼봉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삼봉(361m)>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와 활천리, 복안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다. 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4등 삼각점이 있고, 묘지가 자리한 정상의 넓은 묘터에는 잡풀이 웃자라 있고 주변은 나뭇가지가 둘러싸고 있지만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면 주변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다음 구간 오를 동쪽 치술령과 묵장산 방향.

 

북쪽 준주봉과 경주 남산 방향.

 

돌아본 서쪽 백운산 방향. 

삼봉 정상 인증

 

 

삼봉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우틀하여 거칠지만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파묘 터를 지나 내려서다가, 

 

11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 잠시 더 완만한 능선길을 따르면, 

 

꾀나 규모가 큰 보루성터 흔적을 지나게 되고, 

 

잘 단장된 월성이공 묘지를 지나면, 

 

이내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직진의 등로는 미호중동 마을 앞 경부고속도로 미호천교 아래로 안전하게 우회하는 등로이고, 

좌측 기맥길은 제법 가파르게 내려서서 4차선의 35번 국도를 무단횡단하여 국도를 따라 고속도로를 건너는 위험한 등로다.

 

아침에 삼강봉을 생략하고 내와마을에서 탑곡고개로 접속한 분들은 안전한 우회로로 진행하였지만, 우리는 앞서 간 분들을 따라잡아야 하기에 4차선 국도를 횡단해야 하는 좌측 기맥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잡목이 그득한 소나무숲 사면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족적을 따라 내려서다가, 

 

우측 사면으로 휘어지며 내려가면, 

 

가파른 비탈에 자리한 2기의 묘지가 나오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경부고속도로와 35번 국도를 향해 묘지길을 따라 진행하여, 

 

4차선의 35번 국도가 지나는 미호고개에 도착하는데, 4차선 국도의 중앙분리대가 끊어진 지점으로 무단횡단하여야 한다.

 

<미호고개>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미호리와 활천리를 잇는 고개다. 예전에는 봇짐장수들이나 넘나드는 고개였겠지만, 지금은 경부고속도로와 4차선의 35번 국도 그리고 35번 신도로에 역할을 넘긴 구)도로를 합쳐 모두 3개의 도로와 지하로 경부고속철도(KTX)까지 지나가는 그야말로 교통의 요지가 돼버린 고개이다.

 

차량 통행이 뜸한 틈을 타서 무단횡단
35번 국도 미호육교를 따라 경부고속도로를 건넘
우측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경부고속도로와 구) 35번 국도를 넘는 미호육교를 건너 우측 절개지 관리용 철사다리로 올라,

 

절개지 상단에서 능선 숲길로 들어서서 오르면, 

 

잡목이 빼곡한 봉우리를 지나며 바로 묘지가 나타나는데, 

 

묘지에서 제법 뚜렷한 좌측 등로를 두고 우측 희미한 등로로 내려서면, 

 

잘 단장된 월성최공 묘지에서 이어진 임도를 따르게 되는데, 

 

이제 이곳부터 산행 종료지점인 당산고개까지는 편안한 임도를 따라 진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캄캄한 신새벽부터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었던 기억들을 씻어내고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바뀐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는다. 

 

 

앞서간 즐산팀들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아보려 전화를 걸었더니 이제 미호천교를 통과하여 미호고개로 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우회길로 가는 즐산팀을 앞서 있는 상태로, 잠시 후면 즐산팀들이 도착할 것으로 짐작되어 능선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 아래 즐산팀들이 오고 있는 삼영폴리테크에서 이어오는 임도 방향 갈림길을 지나 잠시 더 능선 임도를 따르면, 

 

미호고개 남쪽 구) 35번 국도에서 이어온 임도에 접속하여 미호고개를 우회하여 오는 즐산팀을 기다리는데, 

 

선두들이 모습을 나타내더니 연이어 즐산팀 백두들이 도착하며, 

 

복안고개에서 우측 미호중동 마을로 진행했던 분들도 뒤늦게 도착하여, 

 

양재에서 출발한 백두들 모두가 모여 재회 기념촬영을 남긴다. 

 

 

이제 오늘 산행 종점인 당산고개까지 6km는 대부분 임도로 진행할 수 있기에 느긋해진 마음으로 호젓한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치술령과 묵장산 방향

 

그냥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지름길인 좌측 숲으로 들어, 

 

226.1봉 산패와 삼각점을 확인하고는, 

 

이내 다시 임도에 접속하여 좌측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데, 

 

좌.우측의 기맥능선 숲으로 들어서도 이내 다시 임도로 내려서야 하기에 그냥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등로 우측으로 경주최씨 납골묘를 지나게 되고, 

 

오래 걸어도 지치지 않을 듯이 보이는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능선 마루쯤에서 우측 임도를 따라도 중리고개로 갈 수 있지만,

좌측 기맥능선으로 이어지는 수레길로 들어서서 진행하다가, 

 

송전탑이 나타나며 우측으로 수종을 알 수 없는 묘목이 식재된 밭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고,  

다음 구간에 오를 치술령과 그 우측으로 조망되는 국수봉 방향

 

우측 농장을 돌보는 쥔장의 쉼터쯤을 지나며 따르던 수레길을 두고 좌측 숲으로 들어선다. 

 

 

대부분의 기맥꾼들이 임도로 진행 해서 그런지 잡목이 빼곡한 숲속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진행하는데, 

 

능선 구분이 분명치 않은 평지로 이어지던 희미한 등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이어지다가, 

 

작은 언덕 수준의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가면, 

 

2차선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중리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중리(中里)고개>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우)와 월평리(좌) 사이에 있는 고개로, '중리'라는 마을 이름은 울산/언양/경주 방면의 중간교차 지점이라 붙여진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고개 우측에는 골프 연습장과 위락시설이 있는 두동일신랜드가 있다. 

 

<두동면 구미리(九味里)>
이곳 구미리는 본래 경주(월성)군 외남면의 지역으로서, 밀구미(密仇味)가 변하여 구미리라 하였다. 구미리를 조선 초에는 구시(仇沙)라 하였고 경주 외남면 때에는 밀구미동(密仇味洞)이라 불리었으며, 밀구미란 대밀과 구미가 합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구시라 함은 목조(木槽)를 뜻하면, 목조(木槽)란 명사로 구유(소먹이통)를 지칭한다. 구시는 지역이 굽은 데서 나온 말이다. 그 후 구시가 구미로 변하였지만 뜻의 의미에는 변함이 없다.
1906년 울산(울주)군에 이속되었고, 1911년 두북면 구미동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중리/주원/당산을 병합하여 구미리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측 중리마을 방향
중리고개 우측에 자리한 숯불고기식당

 

 

임도를 따라 진행한 분들이 도중에 쉼을 하였는지 오히려 조금 기다려서야 모습을 나타내고, 

 

중리고개 좌측으로 이동하여 우측 변전소 진입도로로 들어서서 잠시 도로를 따르다가, 

 

기맥 능선을 차지한 변전소를 우회하기 위해 진입도로를 두고 우측 농로로 들어서서, 

 

'Y'자 갈림길에서 좌측 비포장의 농로를 따르면, 

 

좌측으로 잘 지어진 전원주택을 지나게 되고, 

 

겨울임에도 코를 심하게 자극하는 냄새를 참으며 '한사랑 농장'을 지나면,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행 종착지인 당산재로 바로 이어지는 우측 임도로 들어서는 즐산팀과 헤어져, 

 

좌측 농로를 잠시 더 따르다가, 

 

마지막 축사를 지나서 좌측 숲으로 들어서서 오르면, 

 

1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이내 변전소 울타리가 앞을 가로막는 기맥능선에 접속하여 우측 선답자들의 희미한 족적을 더듬어 진행한다.

 

 

울타리 좌측 사면으로 이어진 희미한 족적을 따르다가, 

 

변전소 울타리를 막고 있는 원형 철조망과 벌목된 폐목재 더미를 우회하여 골짜기 건너편 사면으로 진행하여, 

 

어린 소나무가 식재되어 등로가 보이지 않는 사면을 오르면 다시 변전소 울타리가 나타나고, 

 

희미한 길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망설이는데 특이한 문구의 표지기가 진퇴양난의 산꾼을 계속 진행하게 하고, 

 

접근로가 묘연한 잘 가꿔진 묘지 뒤로 오르면, 

 

희미한 길흔적이 이어지며 3번 송전탑 아래를 지나게 되고, 

 

송전탑에서 이어진 뚜렷한 수레길을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소로로 들어서면, 

 

능선 구분이 불가한 편평한 숲으로 제법 뚜렷하게 이어진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낯익은 표지기가 이 길이 기맥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일거에 해소하며, 

 

아주 오래 전의 길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안부를 지나고, 

 

최근에 조성된 듯 보이는 장로와 권사 부부의 묘지도 지나, 

 

능선인지도 불분명한 소나무숲 희미한 족적을 잠시 더 따르면, 

 

표지기가 한두 개 걸려있어서 지도를 보니 급우틀하여 내려서야 하는 봉우리쯤으로 보여 인증을 남기고는, 

 

되돌아 내려서듯 우측으로 꺾어서 내려서면 용궁전공 부부 묘지를 지나, 

 

바닥을 보니 이용자가 많이 찾는 시설로 보이지만 한적한 외딴 숲속에 조금은 생경한 체육시설을 지나게 되고, 

 

좌측 숲으로 희미한 맥길이 이어지지만 별다른 봉우리도 없고 거칠 듯하여 그냥 임도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한층 뚜렷해진 임도를 따라 차량 회차 시설쯤도 지나 시멘트포장으로 바뀐 임도를 따르면, 

 

4형제 국가유공자 추모정을 지나게 되고, 

 

<일가 4형제 국가유공자 위령비(一家 4兄弟國家有功者慰靈碑)>
장남 이민건(육군 하사), 차남 이태건(육군 상병), 삼남 이영건(육군 상병), 막내 이승건(해병 중사)의 유공자 묘역으로, 장남·차남·삼남은 6·25 전쟁에서, 막내는 베트남전쟁(월남전)에서 각각 전사하였다. 1971년 정부는 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 류분기에게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여하였고,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은 2009년 4형제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자 충효정을 건립하였고, 충효정 앞 도로의 명칭은 ‘호국영웅 4형제로’로 지정했다.

 

 

충효정을 뒤로하고 잠시 더 농로를 따라 진행하면 이내 우측 밭 건너편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마가 보이고,  

 

'일가 4형제 국가유공자 묘역 안내문'이 자리한 당산고개를 지나는 도로에 도착하여 좌측 고갯마루를 카메라에 담고는,  

 

<당산(堂山)고개>
울주군 두동면 월평리와 구미리를 잇는 28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다. 고개 아래에 있는 대밀 북쪽에 당산마을이 있어서 그 위의 고개를 당산고개라 부른다. 옛날에 당이 있어 당상이라 하다가 변하여 당산이 되었다고 한다. 당산나무(神木)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는 나무로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목(神木)을 당산나무라 하는데, 옛날의 당이 있던 곳은 당수등(당산의 입구)이라 추정된다. 

 

 

우측 폐공장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로 이동하여 호미기맥 첫번째 산행을 마감한다. 

차단 줄이 설치된 폐공장 전경

 

 

간단히 먼지를 털어내고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남산원천탕에서 몸을 녹이고는, 

예전에 올랐던 남산 모습

 

경주에 올 때면 몇 차례 들렀던 곳인데 조만간 업종을 바꾼다는 풍년참가자미에서,  

 

신년 첫 산행이자 9 기맥 산행의 마지막인 호미기맥 첫번째 산행을 자축하는 뒤풀이 시간을 가진다. 

 

 

이제 동해바다에서 뛰어놀던 참가자미의 맛을 더이상 볼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앞으로도 더욱 번창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는,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귀경길에 오른다. 

 

 

거의 매년 첫 산행은 일출이 멋지거나 잘 알려진 명소로 특별 산행을 했었다.

올해도 멋진 장소를 골라 일출 산행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9 기맥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호미기맥이 분기하는 백운산을 오르는 것으로 

새해 첫 산행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호미기맥 첫 산행으로 금년도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등로도 험하다는 이유로 늘 미뤄두곤 했던 호미기맥이었는데, 

마침내 2024년도 첫 산행으로 호미기맥 종주를 시작하였다. 

늘 그렇듯이 시작을 하지 않고 걱정만 하다가 막상 시작을 하면 또 그럭저럭 해 내는 게 세상일이다.

이제 호미기맥을 출발하였으니 올 상반기 중으로 9 기맥 종주도 마감할 것이고, 

그러면 또다른 재미난 뭔가를 찾아야 할텐데,

늘 그래왔듯이 또 새로운 걱정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