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 남원시 인월면, 함양군 마천면.
산 행 일 : 2024. 07. 26. ~ 27.(토)
산행코스 : 구인월교 ~ 중군마을(2.1km) ~ 수성대(2.9km) ~ 배너미재(0.8km) ~ 장항마을(1.1km) ~ 서진암(2.5km) ~ 상황마을(3.5km) ~ 등구재(1km) ~ 창원마을(3.1km) ~ 금계마을(3.5km) (19.3km(선화사경유 20.5km), 8시간 소요)
산행참석 : 22 백두.
▶ 지리산둘레길 3코스 개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를 잇는 20.5km의 지리산둘레길 3코스(인월-금계)는 지리산둘레길 시범구간 개통지인 지리산북부지역 남원시 산내면 상황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을 있는 옛 고갯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6개의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 등이 전 구간에 골고루 섞여있고, 또한 제방, 마을, 산과 계곡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산행지도>
지난 소백산자락길 1,2자락에 이어 이번에는 3,4자락을 예정하고 있었으나, 유난히 더운 올여름의 이글거리는 땡볕을 피할 수 있는 숲길 구간 둘레길이 어디에 없을까 찾아보다가, 지리산둘레길 3코스가 숲길과 농로, 마을길이 적당히 혼재하며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계곡과 쉼터도 많아서 여름철 트레킹 코스로도 나쁘지 않을 듯하고, 근자에 들어 종주팀과 즐산팀으로 나누어 진행을 하다보니 분위기가 다소간 서먹해진다는 이야기도 들려와 이번 트레킹에서는 팀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함께 진행하기로 한다.
트레킹 일정을 공지에 올려놓고 당일의 일기예보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장마철이라 그런지 일기예보가 자주 바뀌어 도대체 종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산행 장소를 변경하는 것도 별반 무의미해 보여 그저 하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데, 산행일 오전에 약간의 비가 예보되며 여름철 산행에서 더위를 식혀주기에 나쁘지 않을 듯하여 예정대로 트레킹을 진행하기로 한다.
이따금씩 흩뿌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지리산둘레길 3코스 출발점이 있는 인월면 월평마을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두어 시간의 단잠을 더 청하다가 총무님의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트레킹 준비를 시작하는데, 새벽이면 비가 그칠 것이라던 예보와는 달리 아직도 작은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어서 우장을 갖추고서 버스에서 내려,
<월평리>
마을앞에 넓은 평지인 관당들이 있어 인월에서 제일 넓은 들이라 하여 월평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이곳은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78년 농촌주택개량사업으로 새로 집을 지어 인근 마을에서 이주해와 현재와 같은 마을이 형성되어 행정리로 승격되었다.
지리산둘레길 3코스 출발지가 있는 인월교를 향해 인월면 소재지 방향으로 100여 미터 이동하니,
인월교 직전 '달오름마을'과 '영월정' 표지석이 비에 흠뻑 젖어 있고,
길 건너편 지리산둘레길 3구간 출발점으로 들어서는데,
"꽃길만 걸어요"라는 글귀가 "꽃길이 아닌 길은 걷기 말라는 예기인가?"라는 농을 건네며 빗길을 마다않고 3구간 트레킹에 나선다.
안개비를 맞으며 람천 우측 제방길을 따라 두런두런 못다한 예기를 나누며 걷는데,
좌측으로 인월산업단지의 공장 불빛이 불야성을 이루고,
원두막 쉼터와 둘레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월평리를 지나온 도로에 합류하여,
람천을 따라 이어진 도로변 데크길을 잠시 따르니,
이내 중군마을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마을 입구에는 성곽과 '중군정(中軍亭)'이란 현판을 단 누대가 위용을 뽐내고 있고,
그 앞에는 '중군마을 안내판'과 마을 내력을 세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중군마을 유래>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는 삼한시대에부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지역에 위치하여 군사상의 요충지였으며, 마한 54개국 중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고 고려 시대에는 운봉현에 속하였다. 고려 군대의 기본 편성은 중. 전. 후. 좌. 우군의 오군이었는데, 중군은 그 가운데서 중앙에 위치한 부대이며 고려 오군 중 중군이 주둔한 곳이므로 마을 이름을 중군리라 하였다 전해진다. 고려 말 1380년 삼도 순찰사였던 이성계의 황산대첩 이후 1385년경(고려 우왕 10)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590년 경 배씨족이 쇠퇴하면서 전주 최씨, 김해 김씨, 안동 권씨, 남원 양씨 등 4개 씨족이 정착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군마을>
람천과 풍천이 만나 흐르는 인월면은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일찍이 상가가 발달하였고 조선시대 때부터 전라도와 경상도 주민들이 이용해 온 인월 재래시장은 3, 8일에 열린다. 구인월교에서 람천을 따라 걷다 보면 재미난 벽화가 그려진 중군마을을 만난다. 지리산 북부로 가는 관문이자 길목인 중군마을은 삼한시대부터 군사 요충지로서 고려시대 전투군단이었던 중군(中軍)이 주둔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에는 하지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동네 부인들이 머리에 키를 쓰고 마을 앞 냇가에서 통곡을 하며 무제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중군마을 담벼락을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우측 마을길로 들어서서 오르는데,
좌측 아래로 '주랑 흙집'이라는 펜션이 눈길을 끌고,
좌측 삼신암으로 이어지는 둘레길과 우측 선화사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양쪽 길 모두가 지리산둘레길로 어느 길을 따라도 수성대 직전에서 다시 합류하게 되지만, 우리는 좌측 삼신감을 거쳐가는 평탄한 길을 두고 산길이 이어지는 우측의 선화사 방향으로 들어서서 오르다가,
길 가의 널찍한 공터에서 우장을 여미며 잠시 따스한 커피브레이크를 가진다.
우장을 여미고서 비겐 신새벽의 기운을 들이키며 다시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좌측 숲길을 따라 선화사를 우회하라는 이정표의 안내를 무시하고 직진의 도로를 따르면,
이내 덕두봉 기슭에 자리한 선화사에 도착한다.
<선화사>
전북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 261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선화사에서 소장 중인 불교경전 '묘법연화경'은 조선 초기 불교판본 및 서지학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에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선화사가 자리하는 덕두봉(德頭峯)은 일명 흥덕산(興德山) 혹은 용산(龍山)으로 불렸고, 운봉읍 화수리와 인월면 중군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전설에 따르면 덕두봉은 산기슭의 ‘용마름산’이 옛적에 자꾸 움직이자 어느 도사가 칼로 산을 갈라서 석축을 쌓고 산을 못 움직이도록 하였다고 한다.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을 갈라놓아서 용이 멈추어 형성된 산을 용산이라 이름하였고, 현재도 ‘용산리‘라는 지명이 실재하고 있다.
조용히 새벽공양을 준비하는 선화사를 돌아나와 야자메트가 깔린 산길로 들어서면,
비에 젖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지는 산길이 이어지다가,
능선마루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따라 내려서는데,
'백련사 명상의 길' 이정표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내 삼선암을 거쳐온 둘레길과 다시 만나는 수성대 약수쉼터로 내려서서,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도 쥔장이 출근하지 않은 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한다.
<수성대>
선화사를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반가운 계곡이 나오는데 수성대 계곡이다. 인근의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으로 쓰일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수성대는 과거 전란 때 외성을 수비하는 수성군이 잠복한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지명이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두른 이곳의 지형이 적이 드나드는 모습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부터 지리적 요새였던 이 근방에는 자연마을로 중군, 돌재, 백련암, 수성대마을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군마을 외에는 모두 폐촌이 되었다.
수성대 쉼터를 뒤로하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우측 백련사 방향 갈림길을 지나,
따르던 포장도로를 두고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라는 이정표를 따라 데크길로 내려가면,
좌측 아래로 계곡을 건너는 데크목 다리가 보이며 계곡 가에 쉼터가 보이는데,
'수성대'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계곡쉼터로 과거 KBS 2TV 예능프로인 '1박 2일'을 촬영했던 장소였다고 하고,
지금은 문을 닫은 쉼터 가게의 흔적을 지나 데크목 다리를 건너서,
다시 덕두산 울창한 산사면으로 이어진 호젓한 산길을 따르게 된다.
새벽비가 그친 싱그러운 오솔길을 따르는데,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푹신하게 깔린 깔비의 포근함을 느끼는 사이에,
묘지 둘레로 펜스가 쳐져 있는 지능선 마루인 '배넘이재'를 지나게 되는데,
<배너미재>
수성대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능선 마루는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배너미재이다.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연결되는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다. 행정마을은 고리봉에 배를 매어두었을 때 가장 밑바닥인 지점이라 하고, 노치마을은 그 배를 내려다보던 갈대밭 자리라고 한다. 아주 먼 옛날에 큰물이 져서 온 세상이 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는 대홍수 설화에서 유래한 마을의 이름들은 그만큼 오래된 그 지역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배넘이재는 장항 사람들이 인근 마을로 가거나 풍개(자두)를 사 먹으러 다녔던 추억의 고갯길이라 한다.
배넘이재에서 제법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러서다가,
콧노래가 절로나는 호젓한 오솔길을 만나 싱그러운 아침기운을 폐부에 가득 불어넣고,
다시 가파르지 않은 나무계단길을 쉬엄쉬엄 내려서니,
좌전방으로 람천 건너편의 지리산 주능선 조망맛집인 서룡산이 운해에 싸여 신비스런 자태를 드러내고,
무단채취 금지 안내판도 있는 고사리 밭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르면,
전방으로 가야 할 매동마을이 내려다 보이며,
시멘트포장임도에 접속하여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람천 건너편의 가야 할 매동마을이 시야에 들어오고,
우전방으로는 장항마을과 건너편의 일성지리산콘도가 선명하게 내려다 보이더니,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가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노루목 당산 소나무' 쉼터에 도착하여, 쉬고 있던 트레커의 양보를 구해 배낭을 내리고 아침식사를 하기로 한다.
<노루목 당산 소나무>
남원시 산내면 장항리 윗당산에 해당하는 장항마을은 백두대간 지리산의 한 능선인 덕두산(德頭山)에서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한 자락이 부챗살처럼 흘러내려 남쪽에는 살강골과 바람골을, 가운데로는 뒷골을, 그리고 북쪽으로는 높고 듬직한 옛골을 만들어 마을을 아늑하고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풍요로운 마을이다.
이 당산이 있는 자락은 옛골로서 마치 노루가 목을 길게 내민 형국이기 때문에 옛 이름은 ‘노루목’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노루 장(獐), 목 항(項) 자를 써서 장항리로 부른다. 노루목에는 세 개의 당산이 있는데, 이곳에 당산을 모신 사연은 북쪽이 텅 비어 북풍이 고스란히 마을로 넘어오기 때문에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 당산을 세워 그 허함을 막고 문(門)을 달아 복(福)을 가두어 마을의 지리적 허(虛)함을 극복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해마다 정월 보름에 세 곳의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이곳 윗 당산에서만 매년 정월 초사흗날에 제를 지낸다.
당산나무의 수고는 10여 m이고 수관폭이 15m에 달하며 사방으로 가지가 고르게 자라 매우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소나무는 마을이 형성될 무렵인 1600년대부터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전해온다. 소나무 주변에 쌓아 올린 석단(石壇)은 당산제를 마치고 제물을 묻어 당산 신을 비롯해 산신령과 산짐승, 그리고 온갖 미물들에게도 정성을 들이는 헌식(獻食)의 장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지리산의 자연환경과 오랜 역사, 그리고 옛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자라온 소나무를 마을 수호신처럼 여기고 있으며, 소나무의 보호와 더불어 유서 깊은 고유의 당산제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장항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밤 12시에 산제당 소나무 아래에서 ‘바람골 계곡’ 물을 떠서 산신제를 지낸 다음, 다음날 새벽 2시에 중당산에서 본제를 올리고, 마을 앞 아랫당산(할머니당산)에서 마무리 제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제사 후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을 새워 논다고 한다.
지리산을 조망하며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뷰 맛집에서의 아침식사도 평소와 같은 30분만에 후딱 마치고서,
당산나무 아래로 내려서니 위에서 보던 우아한 자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다가 커다란 정자나무가 자리한 장항마을 쉼터 앞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지리산 신선둘레길과 갈리는 도로에 내려서게 되는데,
<지리산 신선둘레길>
남원시에서 2012년 조성한 둘레길이다. 백두대간 끝자락에서 거대한 산으로 훨훨 일어나 능선의 길이가 무려 40km가 넘고 20여 개의 봉우리들이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 있으며, 무수히 많은 비경들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애환이 서려있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 같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자락인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삼정산에는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먹고, 자고, 수려한 비경을 즐기며 바둑을 두면서 놀다 감탄하며 돌아갔다는 그 길을 복원하여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라도 신선같이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는『지리산 신선둘레길』을 조성하였다.
1코스 : 장항리~원천마을~팔랑~팔랑치~바래봉
2코스 : 장항리~원천마을~내펑~반선(뱀사골)~학천~덕동~달궁
우측은 지리산 신선둘레길이고 지리산 둘레길은 좌측으로 진행하게 된다.
장항마을에서 람천 건너편의 매동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매동마을>
고려 말과 조선 초.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일군 씨족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마을은, 각 성씨의 오래된 가문과 가력을 말해주듯 네 개의 재각과 각 문중 소유의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 후기 공조참판을 지낸 매천(梅川) 박치기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지은 ‘퇴수정’(退修亭)과 그 후손이 지은 재실인 ‘관선재’(觀善齋)가 있는데, 우거진 소나무들을 뒤로 두르고 앞으로는 만수천이 흐르며 발밑에는 흰 너럭바위들이 어우러져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박치기 생존 당시에는 백여 명에 달하는 시인묵객들이 이 정자 밑 너럭바위, 세진대(洗塵臺)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매동마을 앞을 흐르는 만수천은 여러 골짜기의 물들이 모여들어 붙여진 이름인데, 노고단에서 시작되어 달궁계곡, 뱀사골과 여러 지리산 골짜기의 계곡들이 합류하여 굽이굽이 흐르다 산내면 실상사 부근에서 람천에 합류하여 엄천으로 흐른다.
람천을 건너는 장항교를 지나,
장항마을 입구 표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지리산둘레길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를 지나며,
바로 도로 좌측 뱀사골 '감식초 공장'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접어든다.
제법 가파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시멘트포장로로 들어서서,
햇빛이 내리쬐는 날이 아니란 게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사과가 탐스럽게 열린 과수원과 밭 사이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연이어 나타나는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둘레길 표지목이 세워져 있고,
'T'자 갈림길을 만나서는 우측 평탄하게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게 되고,
다시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 '매동', '금계'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직진의 '매동' 방향 도로를 두고 직우틀하여 진행하라는 이정표를 따라 오름길로 들어서면,
길가에는 '서진암'으로 이어진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작은 이슬이 맺혀서 그 정체가 드러난 거미줄에 시선을 빼앗기며,
서진암 방향 도로를 따라 오르는데,
빗물이 흙길 위에 만들어 놓은 신기한 그림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서진암 갈림길인 통나무 벤치가 있는 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하기로 하는데,
지리산둘레길은 직진의 서진암 방향 등로를 두고 직우틀하여 사면 방향으로 이어가게 된다.
'홍수 발생 시 출입통제' 차단기가 설치된 수레길로 들어서서,
빼곡하게 들어찬 소나무숲을 지나고,
어린 나무에게 생명의 밑거름이 되고자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고사목의 처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숲길을 이어가다가,
우측으로 가면 지리산 사진작가의 갤러리인 '길섶'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 돌계단길로 올라,
지리산둘레길 이정표가 있는 지능선을 넘으면,
옛날 축대를 쌓아 만든 경작지가 이제 소나무가 자라는 '묵답'으로 변하였다는 설명판이 세워져 있고,
<사람 손이 떠난 논밭, 묵답>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 수 있다.
'우천시 지리산둘레길 우회노선 안내판'이 세워진 밋밋한 계곡을 건너게 된다.
우천 시 위험하다는 계곡을 지나 잠시 숲길을 따르다가,
시멘트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우틀하여 약간 내려서면,
다음번 삼거리까지 가서 좌틀하여야 하지만 이내 다시 만나게 되므로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진행하여,
하황마을 '해오름펜션'과 '다래랑머루랑팬션' 사이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내려서게 되는데,
금번 3코스의 중간쯤에 위치한 해오름 펜션 앞에 걸린 막걸리와 냉콩국수, 아이스크림 등이 있다는 간판이 '이제 절반을 걸었으니 다 걸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트레커를 유혹하고 있지만,
등구재 남쪽에 자리한 백운산의 '어서오라'는 손짓에 이끌려 막걸리의 유혹을 외면하며 지나쳐,
'머루랑다래랑' 펜션 앞 사거리에서 좌틀하여 동쪽 삼봉산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동쪽 투구봉과 삼봉산 방향의 도로를 따르는데,
그 옆으로는 잠시 후에 넘게 될 등구재와 백운산이 흰구름에 휘감겨 있고,
비그친 날에 먼발치로 보이는 멋진 지리산의 풍경을 감상하며 둘레길을 이어가다가,
지리산 북부능선인 삼정능선을 배경으로 몇 해 전에 걸었던 '칠암자 순레길'의 감동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둘레길 안내판의 붉은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길을 잘못 들 염려는 없고,
갈림길마다 늘어선 쉼터나 민박 간판 사이에서 둘레길 이정표를 찾아서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면,
'지리산상순이 쉼터' 간판을 내걸고 있는 농가주택 옆을 지나,
'사계절여행'이라는 펜션이 건너로 보이는 배정교를 지난다.
우측 천지사 방향 갈림길에서 좌측 오름길로 들어섰다가 이내 직진의 용두암 방향 도로를 두고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우측 내림길로 들어서면,
'비 오면 계곡'인 작은 계곡을 건너 '지리산 LP음악 펜션' 좌측 나무계단이 있는 숲길로 진행하게 되고,
계단길이 이어지는 숲길을 잠시 오르면,
경작지 돌축대 옆으로 이어진 길을 지나,
돌축대 위의 경작지로 오르면 지리산 삼정산과 바래봉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밭두렁으로 이어진 둘레길을 따르는데,
한때는 둘레길 트레커들로 붐볐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논들길 쉼터'를 지나면,
데크길이 조성된 상황소류지 옆에 지리산이 시원스레 조망되는 전망데크에 도착하게 되는데,
<상황소류지 쉼터>
저마다의 풍경을 가진 마을길과 고사리, 사과 등 밭작물이 철따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임도, 온갖 나무와 야생화가 반기는 숲길, 다랑논과 전망대, 오르막과 내리막의 고갯길, 이정표처럼 우뚝 솟은 고사목과 숲속에 숨어 있는 묵답까지 지리산둘레길의 다양한 표정을 한 구간에서 다 볼 수 있다. 매동마을을 지나 중황마을 닿기 전 숲속에서 묵답 ‘떼보네논’을 만난다. 한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묵답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온갖 나무와 풀들이 자라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황마을을 지나고 상황소류지 벚나무 아래에서 땀방울을 한번 훔치고 걷다 보면 상황마을 너른 들판에 다랭이논들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하황, 중황, 상황마을은 마을 뒤 백운산에 황강사란 절이 있어 붙여진 이름들이다. 산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상황마을은 전라의 끝자락이다. 재를 넘어가면 만나는 마을은 경상 땅이다. 500년 넘는 세월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한 느티나무가 지켜주는 상황마을을 지나 등구재로 향하게 된다.
소류지 우측 전망데크에서는 지리 주능선과 중황·하황마을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조망을 곁눈질하며 빗물이 고인 농로를 따라,
이제는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변한 '상황마을 쉼터'를 지나고,
연이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이정표의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지리산 한누네'란 야릇한 이름의 펜션이 눈길을 끌고,
계속되는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오름길로 바뀐 둘레길을 오르다가 뒤따라 나타난 트럭에게 길을 내어주기도 하며,
등구재 오름길 마지막 쉼터인 '등구령쉼터'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쉼을 하기로 하는데,
쉼터에는 파전을 비롯한 다양한 메뉴가 가능하지만,
음식이 조리될 동안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우리는 막걸리에 김치 안주로 간단히 목만 축인다.
둘레길의 진토베기 막걸리를 한잔씩 나누고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서,
지리산 조망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주택의 정원을 가꾸는 분에게 덕담을 건네며,
등구재를 향해 들꽃이 피어난 농로를 따라 오르다가,
등구재 너머 금계마을의 민박집 안내판을 지나며 더욱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오르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등구재에 올라서게 되는데,
등구재 좌측은 삼봉산(1,187m)으로, 우측은 백운산(903m)을 거쳐 지리능선 조망맛집인 금대암으로 이어진다.
<등구재(登九峙, 650m)>
북쪽 삼봉산(1,186.7m)과 남쪽 백운산(902.7m) 사이에 있는 안부(鞍部) 고개로, 행정구역 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의 경계 지점이다. 아홉 구비를 오르는 고개라는 의미로 등구치(登九峙)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한편으로 거북 등을 닮아 한자 거북 구(龜)를 써 등구재라 했다고도 한다.
과거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사람들이 전북 인월장에 가거나 남원의 산내 운봉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다. 고개 양옆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은 남천(람천)으로 흘러들어 간다. 여름철 늦은 시각 동쪽 법화산 마루에 둥근달이 떠오르면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져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높은 습기 탓에 이마에 맺힌 물기가 가시기를 기다려,
경상도 땅으로 들어서는 기념인증을 남기고,
호젓한 숲길로 변한 둘레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나무계단도 내려서면,
소나기가 내린 탓인지 황톳물이 고인 작은 연못 둑길을 지나,
다시 수레길 수준으로 넓어진 숲길을 따라 내려서면,
사유지 민원발생으로 좌측 도로로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설치된 시멘트포장도로에 접속하게 되는데, 예전에는 우측 도로를 따라 창원마을로 바로 이어갔으나 이제는 좌측 도로를 따라 1.5km 남짓을 우회하게 되는데,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니 우횟길에서 구름에 싸인 지리산과 다랑논을 더 잘 볼 수 있다며 추억도 남기고,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르다가 원두막 쉼터에서 달콤한 쉼을 하는 분들과 합세하여 알사탕 같은 쉼을 한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가 피어있는 도로를 따르다가,
우측 창원마을로 들어서서,
<창원(昌元) 마을>
경남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은 조선시대에 마천면 내의 각종 세금을 거둔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이웃의 원정마을과 합쳐져서 지금의 창원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창원마을은 일찍부터 전통한지를 생산해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 마을 이상옥씨가 3대째 한지를 생산해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이곳에서 자란 닥나무를 채취해 만드는 이씨의 한지는 여러 겹으로 치밀하고 광택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또한 색감이 변하지 않으면서 통기성과 보온성이 뛰어나 오래도록 보존이 가능하다. 닥 섬유가 친환경 천연섬유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농한기에 약 6,000여 장의 한지를 생산해 농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함양군에서는 전통산업 보존을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과 한지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한때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쉼을 제공했을 원두막이 있는 감나무밭을 지나면,
'지리산 천왕봉이 제일 잘 보이는 운골농원' 원두막 쉼터도 지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 창원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서서,
삼봉산 지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을 건너서 좌측 비포장 수레길을 따르면,
두 그루의 거대한 창원마을(윗당산) 당산나무 사이를 지나,
<창원마을>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고 멧돼지 목욕탕도 보이는 재를 오르고 내리다 보면 어느덧 창원마을에 다다른다. 조선시대 마천면에서 각종 세로 거둔 차나 약초,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말’(창고마을)이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창원마을이 되었다. 마을에 보관된 물품들을 오도재를 넘어 지게로 날랐다고 한다. 곳간마을이었던 이력 때문일까. 지리산 깊숙이 자리해 있지만 현재도 자립도가 높은 마을이다. 다랑논과 장작담, 집집마다 호두나무와 감나무가 줄지어 있는 마을풍경이 소박하나 풍요로워 보인다. 창원마을에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우수한 품질의 닥종이를 생산하는 농가가 아직도 있다. 마을 어귀 당산(아랫당산)에는 300여 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참나무 네댓 그루가 둥그렇고 널찍한 당산 터를 이루어 재를 넘어가는 길손들의 안녕을 빌고 쉼터를 제공한다. 지친 나그네를 두 팔 벌려 맞아주는 듯한 창원 당산나무들 앞에 서면 누구나 아이처럼 아름드리 당산을 껴안아 보게 된다.
신우대숲 터널을 지나 내려서면,
민원으로 우회하지 전의 둘레길과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 내려서게 된다.
우측의 '창원산촌생태마을'이라는 체험형 숙박시설을 지나,
'펜션' 간판을 내건 예쁜 집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마을길을 따르는데,
'하늘길 쉼터'에서 둘레길을 마다하고 신새벽에 삼봉산 산행에 나섰던 분들이 쉼을 하고 있고,
'하늘길'이란 이름이 붙여진 창원마을에서 금계마을로 가는 산길을 오르면,
지리산둘레꾼들이 저마다 추억을 남기는 '하늘길 포토 포인트'인 고개 지점을 넘게 되는데,
길이 마치 하늘로 이어지는 듯이 보여서 그리 이름 붙여졌는지는 모를 일이나 우리도 추억을 남겨 본다.
고개를 넘어서면 좌측 멀리로 칠선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의중마을이 내려다보이지만,
그 뒤편 천왕봉과 지리 주능선은 구름에 싸여 그 우람한 모습은 조금만 드러내 보여주고,
다랑논과 밭 사이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르다가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숲길로 들어서면,
호젓한 사면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데크목 계단길을 길게 내려서고,
잠시 잘 자란 소나무숲길을 내려서다가는,
다시 또 데크 계단길을 내려가면,
집체만한 멧돼지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끌고,
널찍한 등로 주변으로 민박과 식당 등의 광고판이 3구간 종점인 금계마을이 가까웠음을 짐작케 하고,
남천 건너편 칠선계곡 입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개활지로 나서니,
좌측으로 석재를 채취하기 위해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부숴 버린 마천의 석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측의 '지리산 옛술도가' 간판이 있는 건물을 지나며 포장도로에 접속하게 되고,
유난히도 민박과 펜션이 많은 금계마을 안길을 따라 내려가니,
앞쪽으로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의평마을이 지척으로 내려다 보이고,
금계마을 앞 정자를 지나면,
<금계마을,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
함양의 오도재로 가는 길목마을인 창원마을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숲길. 아기자기한 오솔길과 계곡을 끼고 있는 숲길이지만 호락호락하진 않은 고개를 한번 더 넘어야 한다. 고개를 넘으면 칠선계곡과 천왕봉이 한껏 다가오고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가 있는 금계마을에 다다른다. 인월-금계구간과 금계-동강구간의 시종점이다.
금계(金鷄) 마을의 원래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추성, 의중, 의탄, 의평)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촌사람들의 정을 징검징검 날랐을 노디가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이내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에 도착하여 지리산둘레길 3코스 트레킹을 마감하는데,
폐교된 마천초등학교 의탄분교장 건물을 활용한 지리산둘레길 함양군안내센터는 휴게소와 샤워장 등을 갖추고 있다.
실내정돈을 조건으로 할인을 받아 샤워를 마치고,
인월로 이동하여 '지리산 토종 흑염소'집에서 흑염소 요리로 무더위를 이길 원기를 보충하고,
인월전통시장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귀경길에 올랐지만,
아직도 해가 지려면 한참이나 남았다며 맥주집에서 날이 저물기만 기다린다.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니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나 보죠!
한때 좀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도나도 제주올레길과 지리산둘레길을 갔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걸은 지리산둘레길의 백미 구간에도 거의 대부분의 쉼터와 휴게소가 문을 닫았다.
관광지뿐만 아니라 등산코스나 걷기길조차도 사람들이 북쩍이며 찾는 곳을 가야 하는 이유다.
세간의 이목에서 벗어날 즈음에 가면 황성옛터를 다시 찾은 느낌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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