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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소백산자락길 5, 6자락(기촌리~영춘면사무소) : 보발재에서 온달산성 가는 길

by 재희다 2024. 12. 26.


산 행 지 : 소백산자락길 5, 6자락(기촌리~영춘면사무소) 충북 단양군.

산 행 일 : 2024. 09. 28.(토)
산행코스 :  기촌리 ~ 매남치 ~ 대대리(대곡초) ~ 구만동 ~ 보발분교 ~ 보발재(고드너머재) ~ 방터 ~ 온달산성 ~ 온달관광지 ~ 영춘면사무소 (5자락 15.2㎞ + 6자락 13.8km = 29km, 9시간 소요)
산행참석 : 17 백두.

▶ 즐산팀은 5구간 후반부의 가곡초교 보발분교에서 출발하여 15km 트레킹.

 

 

<5자락 황금구만량길 : 기촌리~보발재 (15.2㎞, 3시간 55분)>
5자락은 구만동의 황금설화를 간직한 오감만족 여행길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농촌체험마을, 한드미마을을 돌아오는 황금구만량길은 구만돌이 황금설화가 남아있는 길로써 소백산의 당당한 위엄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옛길이다. 이 마을에서는 연중 다양한 산촌문화체험과 생태체험을 할 수 있으며, 동굴을 통해 소백산을 가로질러 순흥장을 봤다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힘든 얘기도 들을 수 있다.

 

<6자락 온달평강로맨스길 : 보발재~영춘면사무소 (13.8㎞, 3시간 25분)>
6자락은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길이다. 산책로 아래 굽이치는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치가 탐방객을 따라다닌다. 산길을 걸으며 화전민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강가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운치를 보태는 6자락은 임산물 채취체험을 겸할 수 있으며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면서 붙여진 온달산성의 역사탐방과 온달관광지를 관람할 수 있다. 

 

 

<산행지도> 

 

 

올여름 더위는 정말 유난하여 추석이 지났음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쉬이 잠들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년의 9월 하순이면 설악산 단풍산행을 시작하는 시기이기에 무더위가 누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금번 산행을 소백산자락길을 이어가기로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산행일에 구름이 드리워지고 약간의 비도 예보되어 더위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산행일을 기다린다. 일주일 전쯤의 예보에는 약간의 비도 예보되었다가, 산행을 이틀 앞두고는 정오쯤에 예보되었던 비가 오후 늦은 시각으로 바뀌어 약간은 설레움을 가지고 산행일을 기다린다. 

 

동일한 현상으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한 설레임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처음 가는 산행길은 두려움일까 호기심으로 인한 설렘일까! 매월 두 번씩 가지는 우리의 산행은 분명 설렘이다. 무더위에 대한 걱정도 한시름 덜은 상태에서 비도 내리지 않는다니 내일의 소백산자락길 5, 6자락 트레킹은 분명 설렘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양재에서 산행버스에 오른다. 

 


 소백산자락길 4자락의 종착지인 단양군 단양읍 기촌리의 '팝스월드 단양' 주차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두어 시간의 쪽잠을 더 청하다가 일어나, 가곡초교 보발분교에서 출발하는 즐산팀의 단잠을 깨우지 않으려 서둘러 배낭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산행 준비를 하는데, 

 
지난 소백산자락길 두 번째 산행 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여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한 느낌이 들고, 

 
폐교된 금곡초교 자리에 신기술 체험과 더불어 다양한 포토존으로 구성된 체험형 멀티콤플렉스 공간으로 꾸민 '팝스월드 단양' 앞에서 소백산자락길 5, 6자락 트레킹을 시작한다. 

 
 

기촌리 '팝스월드 단양'을 지나 우틀하여 마을 안길로 들어서서, 

 
이내 나타나는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오름길 포장도로로 진행하여, 

 
휘영청 밝은 달을 쫓아 이내 다시 나오는 'Y'자 갈림길에서 자락길인 우측 오름길을 두고 좌측 개울 옆 도로를 따르다가, 

 
따르는 길이 개울을 따라 매남기골로 이어지기에 알바 길로 들어섰음을 인지하고 발길을 돌려, 

 
잠시 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Y자' 갈림길로 돌아나와 진행 방향 우측 도로로 들어서며 자락길을 이어간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밝아오는 하늘 배경의 능선을 향해 비포장으로 바뀐 도로를 따라, 

 
최소한 오늘은 아무도 밟지 않은 신선한 길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긴다는 설렘을 느끼며, 

 

아침밥 짓는 연기가 피어나지 않아 의아해 했는데, 자세히 보니 번듯하게 지어진 농막을 지나서, 

 

똬리를 틀고 햇살을 기다리는 뱀의 형상을 한 임도를 올라서다 지나 온 방향을 돌아다보고, 

 

'누리장나무' 설명판이 있는 숲속 임도를 '역 C자' 형태로 휘돌아 올라, 

 

차단 시설에 '산림경영 목적을 위한 임도로 통행을 제한한다'는 경고문이 걸린 임도를 두고 좌측 임도를 따르면,  

 

이내 쉼터 벤치와 평상, 구봉팔문 설명판과 5자락길 안내판이 있는 매남기재(梅南峙)에 올라서게 된다. 

 

<매남기재>
단양읍 금곡리에서 가곡면 대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매나이재 또는 매남이티 등으로로 불린다. 과거 매화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매남기재의 구봉팔문 안내판

 

<구봉팔문(九峰八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서 가곡면까지 2개 면, 5개 리에 걸쳐 소백산의 지맥이 아홉 개의 봉우리를 이루면서 그들 사이사이의 골짜기가 여덟 개의 문처럼 절경을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불제자(佛弟子)가 이곳을 법문(法門)으로 오인하여 그곳에 오르려고 애를 쓴 곳이라 하여 "법월팔문(法月八門)"이라고도 한다. 구봉팔문 중의 4봉에서 우뚝 솟은 영주봉(수리봉)의 정상에는 구인사 초대 종정, 상월원각대조사의 묘소인 적멸궁이 있는데, '적멸'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세계를 의미하며, 풍수지리학상으로 세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 한다. 
영춘면 남천리와 백자리 사이에서 시작하는 "법원팔문" 자연의 신비함과 불교의 법문과 일치하는 매우 기이한 형상으로서 9개 봉우리에 8개 골짜기를 문에 비유하여 문마다 이름을 붙였다. 매우 기이하고 인생을 살아 가는데 많은 교훈을 주는 자연 형상이다. 
구봉은 제1봉을 아곡문봉, 제2봉을 밤실문봉, 제3봉을 여의생문봉, 제4봉을 뒤시랭이문봉, 제5봉을 덕가락문봉, 제6봉을 곰절문봉, 제7봉을 배골문봉, 제8봉을 귀기문봉, 마지막 제9봉을 새밭문봉이라 하며, 국망봉 계곡에서 끝이 난다. 
팔문은 제1문을 아골문안골, 제2문을 밤실문안골, 제3문을 여의생문안골, 제4문을 덕가락문안골, 제5문을 곰절문안골, 제6문을 배골문안골, 제7문을 귀기문안골, 제8문을 새밭문안골이라 한다. 
"9봉"과 "8문"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자연의 형상을 구봉팔문이라고 한다. 구봉팔분이 합하여 표대봉(1,066m)에 끝이 모여 신선봉으로 올라 마치 접는 부채꼴 모양을 이룬다. 9봉 중의 곰절(熊寺, 웅사)문봉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한자의 팔자(八) 모양을 이루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과 기이함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안내판)

 

소백산자락길 제5코스 황금구만냥길 설명판

 

<소백산자락길 제5코스 황금구만냥길> 
단양읍 금곡리에서 매남기재를 넘어 가곡면 대대리 마을에 이르고, 다시 구만동을 거쳐 보발재를 넘어 보발리에 이르는 구간으로 구만동에는 가난한 농부가 신선의 말대로 늙은 소나무 밑을 파서 황금 구만냥을 발견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보발재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소백산의 장엄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어요. (설명판)

 

매남기재에서 좌측 봉우등 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 전경
가야할 대대리 방향
나그네를 유혹하는 쉼터
잣나무와 흑송을 같은 나무라고 잘못 표기한 표지판

 

<잣나무와 흑송은 다른 나무>

흑송(黑松)은 소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로 키가 30m쯤 되고, 모양이 적송과 비슷하나 껍질의 빛이 검고 잎은 두 개가 묶여 나는 데, 거세게 생겼으며 새싹은 흰빛을 띠고, 바닷가에서 자란다. 
반면 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홍송(紅松)이라고도 한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에서 자란다. 높이 20~30m, 지름 1m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이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고 얇은 조각이 떨어지며 잎은 짧은 가지 끝에 5개씩 달린다.

 

 

 

구름모자를 쓴 용산봉을 바라보며 대대리 매남기골 좌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지능선과 골짜기를 휘돌아 내려가다가, 

 

임도가 다소 완만해지며 비포장 임도로 접어들더니,  

 

매남기골로 완전히 내려서서 좌측의 익어가는 콩밭과 고추밭을 연이어 지나면, 

 

단양군 가곡면 대대리 매남기 마을로 들어서게 되고, 

 

매남기마을 앞 4거리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다가, 

 

다시 'ㅜ'자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농로를 따르는데,

앞쪽으로 몇 해 전, 소백산 신선봉과 민봉 산행길에 들렀던 구름에 휩싸인 구봉팔문쯤이 가늠되며, 

살짝 당겨본 구봉팔문 방향

 

농로 좌측에 '구봉팔문 보이는 곳'이란 작은 안내판이 걸려있다. 

구름에 휘감긴 구봉팔문을 배경으로

 

 

 

자락길 이정표의 안내를 받으며 시멘트포장 농로를 따르다가, 

 

대대리를 관통하는 하일천을 건너는데, 

 

<하일천(河日川)>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의 국망봉 부근에서 발원하여 새밭과 한곡동(한드미)를 지나 대대리를 거쳐 사평리의 아평(애평) 마을에서 남한강 합류점에 이르는 총연장 14.1㎞의 지방2급 하천이다. 한강수계에 속하며, 유로연장은 15㎞, 유역면적은 44.67㎢이다. 국망봉에 오르는 새밭계곡은 경관이 좋고 물이 맑아 여름철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하일천 바닥은 신의 솜씨로 조각된 암반에다가 자연이 뿜어낸 맑은 물이 쉼없이 흐르고 있다. 

 

 

 

하일천을 건너 2차선 포장도로인 '새밭로'에 접속하여 우틀하면, 

 

우측은 소백산 새밭계곡으로, 좌측은 가곡초교 대곡분교장으로 이어진다는 도로 표지판이 있고, 

 

대대2리 버스정류장 맞은편에는 제법 너른 주차장 한켠에 대형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기수' 작가의 '한드미 권역 테마 조형물'이란 표지를 달고 있다. 

 

< 한드미 권역 테마 조형물>
본 작품은 한드미 권역을 포함한 단양 팔경, 도담삼봉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바람, 산, 구름, 솟대 등으로 형상화한 테마 조형물로, 이를 통하여 자연과의 조화와 더불어 지역 발전을 염원하며 지역민의 쉼터 역할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 설명판)

 

'한드미 권역 테마 조형물' 뒤편에 있는 '한드미 권역 농촌마을 개발사업 현황판'
대대 2리 버스정류장 뒤편 '전통 한옥 휴양마을 펜션' 전경

 

 

 

'대대2리' 표지석과 '대대2리 행복마을'이란 글자판이 자리한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소백산자락길을 따르면, 

 

우측에 쉼터 정자와 '대대2리 행복쉼터'와 '자연밥상 매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을 지나, 

 

직전에 '화합.단결' 표석이 있는 '하일교'를 건너게 되는데,

다리 양쪽에는 단양의 마스코트인 '온달'과 '평강'이 수문장 역할을 도맡고 있고, 

 

다리를 건너 우틀하여 개울 옆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르는데, 

 

'대대2리 경로당'과 '새마을 떡방앗간'이란 간판이 눈에  띄며, 

 

담장 없는 농가의 작은 화단을 보며 지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훈할머니 묵집'과 '한복녀 한과' 가게를 그냥 지나치게 되어 아쉽기만 하고, 

 

이내 나타나는 'ㅓ'자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구만동길'로 들어서는데, 

모퉁이 이정표에는 '보발분교'까지 7.1km 남았다고 표시되어 있다. 

 

 

 

'구만동길'로 들어서서 오르막길로 바뀐 마을 안길을 따르다가, 

 

우측에는 옛날 교회당이, 좌측에는 새로 지은 붉은 벽돌집 교회당이 자리한 대곡교회를 지나고, 

 

최근에 포장한 듯 깔끔한 농로를 따라, 

 

'止觀'이라는 표석이 있는 외딴 가옥을 지나서, 

 

<止觀(지관)>
‘천태종(天台宗)’을 달리 이르는 말로, 천태종(天台宗)에서 지(止)는 모든 번뇌(煩惱)의 끝냄이요, 관(觀)은 자기(自己)의 천진심(天眞心)을 관찰(觀察)하는 것이므로 어지럽게 흐트러진 망령(妄靈)된 생각을 그치고 고요하고 맑은 지혜(智慧ㆍ知慧)로 만법(萬法)을 비추어 보는 일이라고 한다.

 

 

제법 가팔라진 자락길도 어렵잖게 오르는데, 

 

대낮에 자락길을 걷는 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커다란 나무 맞은편에는, 

 

도시인에게는 낯선 꾸지뽕나무가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를 매달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느껴지는 채소밭

 

 

 

다소간 완만해진 농로를 따라 잠시 더 올라, 

 

'황금구만냥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구만동 마을로 들어서는 고갯마루에서 좌측으로 휘돌아 나가면, 

 

옴폭한 분지에 몇 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작은 마을인 구만동 마을로 내려서게 되는데, 

 

보발 분교까지 5.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 구만동 마을을 가로질러, 

 

<구만동의 황금 전설>
단양군 가곡면 구만동에는 마을 이름에 얽힌 한 농부의 효심과 과욕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주 옛날, 가난한 농부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처자식과 함께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밭일을 하다가 피곤하여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네 집 동쪽 늙은 소나무 밑을 파면 무엇인가 나올 것이다. 효성이 극진하여 가르쳐 주는 것이니 소나무를 다치게 하지만 말라"라고 하였다. 잠에서 깬 농부는 꿈속에서 시킨 대로 소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홧김에 소나무를 괭이로 후려쳤다. 그때 허공에서 “구덩이 속을 잘 보아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덩이 속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정신을 차려 금덩이를 들고 출구를 찾았지만 잘 찾을 수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출구를 찾아 집으로 달려왔지만 식구들은 이미 굶어 죽고 난 뒤였다. 잠깐이라 생각했지만 9일 동안을 구덩이 속에 갇혔던 것이다. 농부는 대성통곡하며 식구들을 구덩이 속에 묻으며 황금도 같이 묻었다고 한다. 농부가 얻었던 금이 구만 량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 동네를 구만골이라고 하였다.

 

 

꾀나 가파른 도로를 따라 오르면, 

잠시 전에 지난 고갯마루 방향

 

구만동 마을 뒤 능선 고개에 올라서게 되는데,

보발분교가 5.2km 남았다는 이정표의 지시대로 좌틀하여 오름길의 자락길을 이어간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과 재배지역이 북쪽으로 올라옴에 따라 최근에 심어진듯 보이는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는 과수원 옆 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보발리 방향 표시판이 있는 'ㅏ'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비포장 임도를 따르다가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 일원 임도 시설'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배낭을 내리고 단출한 아침식사 시간을 가진다. 

 

 

 

다시금 배낭을 메고 차량 통행의 흔적이 많은 비포장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지점의 '황금구만냥길' 안내판과 작은 돌탑, 밴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 

 

<황금구만냥길>

단양읍 금곡리에서 매남기재를 넘어 가곡면 대대리 마을에 이르고 다시 구만동을 거쳐 보발재를 넘어 보발리에 이르는 구간입니다. 금곡리는 소백산 비로봉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솔티천에 남녀 간의 아름다운 사연이 담긴 용알 바위 전설을 지니고 있으며, 구만동에는 가난한 농부가 신선의 말대로 늙은 소나무 밑을 파서 황금 구만 냥을 발견하였으나 돌아와 보니 가족이 모두 굶주려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보발재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소백산의 장엄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고 보발리 용소마을에는 아기장수가 태어났는데 역적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아기의 등 위에 콩가마니를 엎어놓아 죽게 하였다는 슬픈 전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설명판)

 

 

고도 차이가 거의 없이 지능선과 골짜기를 번갈아 넘나들며 꼬불꼬불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는데, 

 

무심코 돌아본 남서쪽 단양 방향의 멀리 능선 위에 자리한 하얀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단양에서 꾀나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카페 '산(SANN)'이다. 

 

<단양 카페산/포토산>
충북 단양군 가곡면 해발 600m의 봉우등(695.7m)이란 산의 능선 위 활공장 옆에 있어서 멋진 뷰를 감상하기에 좋은 '산(SANN)'이라는 이름의 대형 카페다. 이름에 걸맞게 모든 날씨, 매시간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이야말로 숨막히는 아름다움의 진면목이라고 한다.

 

살짝 당겨본 카페 '산' 방향
측백나무 설명판

 

 

 

호젓한 임도길에 주차된 트럭이 궁금증을 유발하더니,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자락길을 정비하고 있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 인사를 건네고, 

 

우측으로 잠시 전에 보았던 봉우등(695.7m)과 카페 산(SANN)이 다시한번 시원스레 조망되더니, 

살짝 당겨본 봉우등(695.7m)과 카페 산(SANN) 방향

 

일제 때 유화철 광산이 번성하던 곳으로 명당이 있다고 하는 '윗명당골' 위의 쉼터를 지나며 자락길은 좌측으로 완전히 꺾어서 북동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우.전방으로 가야 할 보발리로 내려서기 시작하는 고갯마루가 건너다 보이며, 

 

그 우측으로는 백두대간 소백산 주능선을 보면서 진행하게 된다. 

 

 

 

암석을 깎아 만들어진 임도를 따르는데, 

 

좌측으로 최근에 조성한 듯 흉하게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임도가 건너다 보이고,  

팔봉암이 자리한 가곡면 대대리 골짜기 방향

 

산불지화임도 시설공사(가곡면 대대리 산9 외 5) 현황판이 계시된 고갯마루 갈림길에서,

임도 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우측 임도를 두고 좌측으로 휘어져 보발리로 내려가게 된다. 

산불진화임도 시설공사(가곡면 대대대 산9 외 5) 안내판
임도 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우측 임도 전경

 

 

 

보발리로 내려서는 임도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ㅏ'자 갈림길에서 좌측 내림길로 들어서면, 

 

좌측 보발리 방향으로 잠시 후에 걷게 될 6자락길이 휘감하 도는 겸암산쯤이 조망되고, 

 

이내 나타나는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 골짜기로 이어지는 임도를 두고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자락길이고,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 전경

 

완만한 시멘트포장 내림길 임도를 따라, 

 

잠시 전에 헤어졌던 골짜기 방향 임도와 다시 만나서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으로 이렇게 저렇게 최선을 다해 꾸며놓은 '혜림사'를 지나게 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는 개울 건너편의 철문이 잠겨진 동굴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좌측에 물탱크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우측 개울 건너편으로 '관음사'의 무량수전이 보이더니, 

 

관음사 입구를 지나고, 

 

길에 떨어진 알밤 몇 알에 뛸듯이 기뻐하기도 하며, 

 

보발1리 경로당을 지나니, 

 

'가곡초등학교 보발분교' 직전의 본동 쉼터 가게를 지나게 되는데, 

시원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쳐서, 

 

예쁜 화단을 가꿔놓은 아담한 시골집이 쥔장의 바지런하고 깔끔한 취향을 짐작케 하고,  

 

이내 개울 우측 건너편에 자리한 '가곡초교 보발분교장' 정문을 지나서, 

 

<가곡초등학교 보발분교>
1945년 개교한 가곡초등학교 보발 분교는 현재 재학생 3명인 충북 단양의 시골 학교로, 2018년, 2019년에는 입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졸업하는 학생은 있어도 입학하는 학생은 없는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한때 400여 명에 달했던 학생 수가 급감한 것이다.
단양교육지원청은 더는 정상적인 운용이 어렵다고 판단, 가곡초 본교와 통합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민들은 보발 분교가 문을 닫으면 가뜩이나 빈집만 남은 시골이 더 황폐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학교가 문화적 구심점이자 농촌 살리기의 핵심 공간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폐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곡초교 보발분교장 전경

 

잠시 내려서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직전의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보발천을 건너 지름길로 진행하면,  

보발천 전경

 

좌측 보발1리 버스정류장이 옛 소백산자락길 5구간과 6구간의 분기점이었음을 알리는 표시판과 

 

 

'보발분교' 후문이 있는 595번 지방도인 구인사로에 접속하여 우측 595번 지방도를 따라 보발재로 진행한다. 

보발분교장 뒤편 전경

 

< 소백산자락길 5구간과 6구간의 분기점에 대한 혼선>

소백산자락길 5구간과 6구간의 분기점을 카카오 지도는 보발분교로, 네이버 지도는 보발재로 하고 있는데, 영주시에서 운영하는 소백산자락길 홈피에는 지도에는 보발분교로 코스 내역에는 보발재로 표기하고 있어서 저마다 해석이 분분한데, 처음에는 이곳 보발분교를 분기점으로 하다가 어떤 연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발재로 바꾼 듯한데, 바꾸려면 제대로 된 마무리까지 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차량 통행이 빈번할 듯 보이는 도로를 따라 3km 거리의 보발재로 향하는데, 

 

우측 콩밭 너머로 구봉팔문 중에서 곰절문봉과 덕평문봉, 뒤시랭이문봉쯤이 올려다 보이고,  

 

맞은편에서 백두대간 62개 고개를 넘는 종주라이딩을 하는 분들이 힘차게 내려오고 있어서, 지난주에 성삼재에서 출발한 전소장이 오늘 아침 보발재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우천으로 일정이 늦어져서 불발된 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잠시 뒤 '보발 2리' 입구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계속 도로를 따라 오르면, 

 

도로 우측으로 붉은 수수밭이 눈길을 끌고, 

 

우측으로 '곰절.배골' 방향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을 지나서 잠시 더 오르면, 

 

도로 좌측에 의병장 김규철을 자랑하는 '보발 마을 자랑비'와 '효자 단양장씨' 비각이 세워져 있고, 

'보발 2리' 입구에서 느티나무 노거수들이 너른 그늘을 만들고 있는 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한다. 

의병장 김규철을 자랑하는 '보발 마을 자랑비'와 '효자 단양장씨' 비각

 

<보발 마을 자랑비>
우리 마을은 소백산 정기를 이어 받아 옛부터 소문난 충절의 고장이다. 

이곳 출신 김규철(號 飛將)은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죽령지역에서 왜군 2천명을 격파하고 철원 싸움에서도 크게 승리를 하였다.  1908년 주세붕에게 원병을 요구하는 고종의 친서를 가지고 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는등 크고 작은 항거운동의 공을 기려 정부에서는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으니, 유리고장의 자랑이요, 값진 자산이다! 
충절의 기백을 길이 후손에게 유산으로 넘겨주고자 주민의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다. 

1992년 월 일. 보발2리 주민일동

 

효자 단양장씨 명금
수령 2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보호수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보발 2리(용수동) 전경

 

<가곡면 보발2리 용소동마을>
양지바른 산 자락에 자리한 용소동 마을이 평화로이 살기 좋아 보인다. 깨끗하게 새로 지은 집들도 보이는데,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이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용소동 마을은 현지인 15가구, 외지인 20가구 정도로 이제는 서울 등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더 많은 경치가 좋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쉼터 한켠에 있는 통합기준점(표고361.3m)

 

 

 

10여분 남짓의 쉼을 뒤로하고 용수동 입구의 보발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보발재로 향하는데, 

 

좌측 나뭇가지와 가드레일 사이에는 넓게 쳐진 거미줄이 여럿 걸려있고, 

 

따르던 595번 지방도를 두고 지름길인 좌측 농로로 들어서서, 

 

보발천을 건너 골짜기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르면, 

 

다시 595번 지방도인 구인사로에 접속하여 좌측 도로를 따라 보발재로 진행하게 되고, 

 

우측 골짜기 '덕평 마을' 방향 갈림길을 지나서 좌측으로 휘어져 오르면, 

 

우측 길가에 임시화장실이 자리한 자그마한 주차장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소백산자락길 5구간의 종점이자 6구간이 시작되는 분기점인 보발재/고드너미재 지점으로, 

 

소백산자락길 6구간은 100여 미터 전방의 보발재 고갯마루로 오르지 않고, 

소백산자락길 6구간 안내도가 있는 좌측 임도로 들어서야 한다.  

소백산자락길 5구간의 종점이자 6구간이 시작되는 분기점
소백산자락길 단양구간과 6구간 '온달평강 로맨스길' 안내판

 

<소백산자락길 단양 4개 코스 안내도> 
「단양 소백산자락길」은 대강면 당동리에서 시작해 고드너머재, 온달산성, 배틀재를 넘어 영월군의 김삿갓 묘까지 이어지는, 60여㎞ 구간에 걸쳐 4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전체 소백산 자락길 143km의 42%에 해당하는 거리이며, 제4자락길 「가리점 마을 옛길」로 시작해 제5자락길 「황금 구만 냥 길」, 제6자락길 「온달평강 로맨스길」, 제7자락길 「십승지 의풍 옛길」로 이어진다.

 

<온달평강 로맨스길>
보발재/고드너머재에서 시작하여 방터 마을을 지나 온달산성을 거쳐 온달관광지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온달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계명산 자락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길은 유창하게 흘러가는 남한강과 태화산의 지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계명산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형인 유운룡의 호를 따서 겸암산이라고도 하는데, 산 중턱에는 옛날 화전민들의 애환이 담긴 화전민촌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온달 산성은 온달장군의 충혼이 서려있는 고구려의 향기가 그윽한 곳입니다. 구인사는 한국불교 3대 종단으로 소백산 계곡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안내판) 

 

임도의 일부 구간이 소백산자락길 6구간인 임도 안내판

 

 

 

보발재 너머에 자리한 전망대를 다녀오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보발재(寶發峙)'/고드너머재(540m)>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와 영춘면 백자리를 잇는 고갯길로 '고드너머재', 고든고개, 직티 등으로도 불린다. 고드너머재는 보발재의 옛 이름으로, 고드너머재가 원래는 고드미재였다. 이곳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 분쟁이 심했던 곳으로 애당초 고드미재는 ‘곧오미재’에서 나온 말로, 신라군이 곧 온다는 뜻이하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고드너머재'로 불렸는데, '너머'는 넘어가다를 뜻하며 '고드'라는 지명과 합쳐져 '고드너머재'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다며 신비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보발재에서 원기를 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보발재의 정확한 유래에 대한 근거 있는 자료는 찾기가 어렵다. 

보발재는 단풍이 절정인 가을철에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데, 약 3km 도로변을 따라 아름답게 펼쳐진 단풍은 소백산과의 조화로 찾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또한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보발재의 경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많은 사진작가들도 찾게 한다.

 

절개지 정비 공사가 이루어지는 고갯마루를 넘으면, 

 

막바지 보수공사가 한창인 보발재전망대에 도착하여 전망대 위로는 오르지 못하고, 

공사중인 분들의 양해를 구해 1층에서 구인사 방향 골짜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보발재전망대>
충북 단양군 가곡면 보발리와 영춘면 백자리를 잇는 고갯길 보발재에서 구인사로 이어지는 험준한 꼬부랑길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단풍철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구인사 입구에서 보발재로 오르는 도로에는 단풍나무가 가로수로 식재되어 있어서 가을철이면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아직 푸른색이 짙은 주변 산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장관이 펼쳐진다. 천태종 본산 구인사로 향하는 험준한 고갯마루였던 보발재는 마치 뱀이 똬리를 뜬 모습을 연상케 하는 구불구불한 3㎞의 도로를 따라 수려한 풍경이 펼쳐져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발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구인사 방향 구절양장 도로 조망

 

 

 

소백산자락길 6자락(13.5km) 걷기를 시작하러 보발재 전망대를 뒤로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아직도 막바지 조성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보발재 주차장으로 내려서서, 

 

보발재 주차장 입구의 임도로 들어서며 소백산자락길 6자락 트레킹을 시작하여, 

 

차량 차단봉을 돌아서 임도로 들어서서 약간 내리막 임도로 내려서다가 완만한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이내 평지 수준의 완만한 임도길이 호젓하게 이어지다가, 

 

느긋하게 걷는 트레커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벤치도 설치되어 있고, 

 

사면을 따라 지능선과 골짜기를 넘나들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숲내음이 싱그러운 임도를 따르다가, 

 

좌측 보발2리 방향 갈림길을 이정표에서 직진의 방터 방향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Y자' 갈림길에서 차단 문이 설치된 우측 능선 위로 오르는 임도를 두고,

좌측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의 우측 절개지 위에 쓰이지 않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멋진 산그림이 아스라이 펼쳐지며, 

 

그 좌측으로 제2연화봉에 자리한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가 뚜렷이 조망되더니,  

살짝 당겨본 제2연화봉에 자리한 소백산강우레이더관측소 방향

 

잠시 더 진행하자 좌.후방으로 소백산 주능선 전체가 시원스레 시야에 들어오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임도를 잠시 더 따르다가, 

 

잘 만들어진 화장실 옆에 벤치가 있는 쉼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제법 긴 다리쉼을 뒤로하고 임도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으로 다시 시야가 트이며 가곡면 보발리의 외딴 농가들이 내려다 보이고, 

 

대부분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서 여름에 걸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임도를 편안히 따르는데,  

 

다시한번 좌.후방으로 소백산 주능선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소백산자락길 6자락 중 가장 높은 지점인 지능선 고갯마루를 지나게 되는데, 

널찍한 평상이 설치되어 있어서 여럿이 앉아서 간식을 나누며 쉬어가기 좋을 듯하다. 

 

 

 

지능선 고갯마루를 지나자 내림길로 바뀐 임도를 편안하게 이어가다가, 

 

좌측 아래 가곡면 보발리 '성금마을' 방향 갈림길을 지나면, 

 

우측 겸암산(865.2m) 방향 데크계단길과 좌측 향산리 가재골 방향 등산로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향산리는 남한강변 갈대와 아침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편안한 임도길은 멋들어진 낙엽송 숲으로 이어지며, 

 

좌측 아래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두막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봉우리 대신 이런저런 화제를 오르내리며 편안히 임도를 따르는데,  

 

맞은편에서 다가온 MTB 라이더가 살짝 부럽기도 하고, 

 

걷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은 과거 군 행군 때의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며, 

 

가파른 사면에 임도를 개설하면서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는 지점을 지나면, 

서쪽 가곡면 향산리 방향
남서쪽 보발리 방향 산그림

 

개방된 철망 문과 임도 차단봉을 통과하여 나가면 좌측 평강지구 방향 갈림길 이정표와 화장실이 있는 쉼터를 지나게 된다. 

 

<온달평강 로맨스길>
보발재[고드너머재]에서 시작하여 방터마을을 지나 온달 산성을 거쳐 온달관광지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온달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계명산 자락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길은 유창하게 흘러가는 남한강과 태화산의 지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계명산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형인 유운룡의 호를 따서 겸암산이라고도 하는데, 산 중턱에는 옛날 화전민들의 애환이 담긴 화전민촌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온달 산성은 온달장군의 충혼이 서려있는 고구려의 향기가 그윽한 곳입니다. 구인사는 한국불교 3대 종단으로 소백산 계곡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안내판)

 

좌측 평강지구 방향 갈림길 이정표에서 자락길은 온달지구 방향
소백산자락길 제6코스 온달평강 로멘스길 안내판

 

<소백산자락길 제6코스 온달평강 로맨스길>
보발재에서 방터마을을 지나 온달장군의 충혼이 서려 있는 고구려의 향기가 그윽한 곳 온달산성을 거쳐 세트장, 온달동굴, 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는 온달관광지로 내려가는 길로서 유창하게 흘러가는 남한강과 계명산 중턱의 옛날 화전인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엿볼 수 있는 구간으로 한국불교 3대 종단인 천태종 구인사가 소백산 계곡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어요. (안내판)

 

 

 

 

'방터' 방향 완만한 내림길 임도를 따라, 

 

짧지만 황톳길 구간도 지나,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들어서면, 

 

임도 우측 소나무숲에 평상과 통나무 벤치가 마련된 숲 명상 쉼터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은 화전 산림복원 테마 숲 조성 사업지로 훼손하지 말라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구불구불 휘어지며 다소 가파르게 내려가는 임도를 따라, 

 

우측 위로 이어지는 '온달 지구' 방향 임도를 두고,  

좌측 '대형 주차장' 방향 직진의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좌측으로 가드레일까지 설치된 포장임도가 이어지다가, 

 

차량 차단봉이 설치되어 있는 좌후방 소백산자연휴양림 방향 '人'자 갈림길로 내려서는데, 

 

과거의 소백산자락길은 이곳 갈림길에서 좌.후방 도로를 따라 '방터'로 이어졌으나,

언제부터인가 우측 직진의 임도를 따라 '소백산자연휴양림 전망대' 방향으로 바로 이어지게 바뀌었다. 

방터 갈림길 이정표

 

<방터>

방터는 옛날 고구려 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화전민이 살았다고 한다. 과거의 소백산 자락길은 이곳 갈림길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 방터를 지나서 이어갔으나, 언제부턴가 우측 직진의 도로를 따라 전망대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길 안내가 되고 있다. 

 

 

 

방터에서 온달산성 아래로 바로 이어지는 좌측 아래 임도(옛 자락길)가 아닌,  

소백산자연휴양림으로 드나드는 넓은 도로를 잠시 따르면, 

 

정면으로 능선에 우뚝 솟은 소백산자연휴양림 전망대가 시야에 들어오며, 

산나물이 많이 나는 곳을 표시하고 있는 '대단위 산림 복합경영 단지 종합안내도'

 

길 맞은편 데크 계단길로 들어서서 전망대로 향하는데, 

 

맞은편 능선으로는 계명산(향로봉)으로 연결되는 등산로 들머리가 보이고, 

 

흔들림이 있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이용을 자제하여 달라는 안내문이 있는 전망대로 올라, 

 

전망대 꼭대기에서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며 한참의 쉼을 한다. 

 

전망대에서 본 주변 조망. 

2007년 올랐다가 많은 사연을 남겼던 북쪽 태화산 방향
동쪽 마대산과 형제봉 방향
동남쪽 형제봉과 민봉 방향
구봉팔문 조망 안내도
남쪽 소백산 주능선의 민봉과 신선봉 방향
남서쪽 겸암산 방향

 

소백산자연휴양림 전망대에서 본 파노라마(동영상 01'24")

 

 

딸들과 함께 때맞춰 올라온 분이 전문 사진작가 였나봐요!

 

 

 

전망대의 멋진 조망을 뒤로하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전망대를 내려서서, 

 

동쪽 온달산성으로 이어지는 능선 좌측 아래의 널찍한 수레길을 따라도 되지만, 

전망대에서 바로 능선으로 이어진 등로를 따르는데,  

 

정규 소백산자락길은 능선 좌측 아래로 이어지지만 우리가 진행하는 능선길에도 '자락길 표지기'가 걸려있고,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팔각정이 60m 거리에 있다는 직진의 능선 방향 등로를 두고, 

온달산성(1km) 방향이라는 우측 아래로 이어진 등로로 들어서서,   

 

 다소 거친 숲길 등로를 잠시 내려서면, 

 

잠시 전에 들렀던 전망대 우측 아래로 이어온 수레길에 접속하게 되는데,

좌측 수레길로 들어서면서,  

 

이내 다시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직진의 능선길을 두고 좌측 아래로 이어지는 내림길로 들어서면, 

 

수레길은 소나무들이 멋지게 자라고 있는 제법 가파른 사면으로 이어지더니, 

 

묘지를 지나 좌측 능선 아래의 임도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안부로 내려서게 되는데, 만약 방터 갈림길에서 정규 자락길인 임도를 따라왔더라면 온달산성으로 진행하기 위해 따르던 임도를 두고 저 등로를 따라 이곳으로 올라오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안부에서 직진의 능선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로로 접어들어 잠시 오르다 보면,

그리 가파르지는 않음에도 가이드로프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별반 위험해 보이지도 또 그리 가팔라 보이지도 않는데 가이드로프에 지그제그로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고, 

 

예산낭비네 어쩌네 생각할 겨을도 없이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  

 

등로가 완만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온달산성의 높다란 석벽 중에서 허물어진 부분으로 올라서면, 

 

온달산성의 가장 높은 정상부에 올라서게 되는데, 

 

<온달산성>
온달산성은 보은의 삼년산성, 상주의 견훤산성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산성으로 꼽힌다. 그중 온달산성은 주변 풍광이 멋질 뿐 아니라 산성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 
튼튼하고 균형 있게 잘 만들어진 산성은 비록 군사용일지라도 미적 감성을 자극한다. 온달산성은 고대에 지어졌음에도 서쪽 구간 약 100m가 무너졌을 뿐 대체로 잘 보존돼 있다. 워낙 견고하게 잘 지어졌기 때문이다. 두께 5∼15㎝ 정도의 비교적 얇고, 잘 다듬어진 돌로 쌓은 성벽은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축조물이다. 성돌의 크기는 가로 70㎝, 세로 40㎝ 정도다. 온달산성은 해발고도 427m의 산 정상에 축조된 테뫼식 석성이다. 둘레는 683m로 크지 않다. 테뫼 산성은 산 정상을 둘러싼 성을 말한다. 동·남·북쪽의 문 3개 중 동문 쪽 성벽은 지형을 따라 곡선으로 돌출돼 있는데 우리나라 고대 성곽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양식이다. 북문에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내밀어 쌓은 치(稚)가 있다. 치는 성벽에 바짝 붙어 공격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만들었다.

 

좌측 아래로는 보수 공사가 완료된 산성이 이어지며 그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과 건너편으로 태화산이 조망된다.  

 

 

 

'추락 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접근을 금한다'는 경고석이 있는 정상부를 뒤로하고, 

산성 정상의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쉼터 전경

 

이정표의 '정자가는길'로 표시된 우측 성곽을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 구봉팔문과 민봉 방향

 

좌측 언덕 너머로 보이는 정자(누각)로 오르면, 

 

북쪽 태화산 방향으로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온달산성과 남한강 건너편으로 소백산자락길 6자락의 종점인 영춘면 소재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정자에서 본 남한강과 태화산 방향 조망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설화 중에도 단연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삼국사기」 열전의 온달전(溫達傳)을 통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고구려 25대 왕인 평강왕[일명 평강상호왕(平岡上好王)·평원왕(平原王)·평국왕(平國王), 재위 559∼590]에게는 울보인 평강공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울기를 잘하여 왕은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놀려댔다. 이 말이 씨가 되어, 평강공주가 16세가 되어 고씨 집안에 시집을 보내려고 하니, 공주는 왕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면서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섰다. 왕이 허락지 않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 개를 팔꿈치에 걸고[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보검(寶劒) 수십 자루’를 팔뚝에 걸고 나왔다'라고 썼다] 궁궐을 나와 온달을 찾아 나섰다. 온달의 눈이 먼 노모를 찾아가서 사유를 말하자 천한 자신의 아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서 거절을 하였고, 산으로 나무껍질을 채취하러 간 온달을 만나서도 여우나 귀신이 자신을 속인다면서 호통을 치며 피해 가버렸다. 다음날 가까스로 설득을 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고, 금팔찌를 팔아서 전지(田地)· 주택· 노비· 우마 등 세간을 갖추었다. 특히 공주는 온달에게 병들고 수척한 말을 사 오게 하여, 정성 들여 보살피고 살찌워 훌륭한 말로 길들였고, 온달 또한 훌륭한 장수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글을 익히고 말을 타고 활쏘기 연습을 하게 하여 마침내 바보 온달에서 훌륭한 장수로 변신하게 되었다.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 낙랑 언덕에서 왕이 참석한 가운데 사냥 대회를 열고 그날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울러 기예가 출중한 무사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였는데, 온달도 참석하여 놀라운 사냥 실력을 뽐내어 왕의 눈에 들었고,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온달의 이름이 역사서에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두 번의 싸움에서이다. 

평강왕 19년(578년)에 북주의 무제(武帝)가 북제(北齊)를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고구려의 요동을 공격해 와, 평강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拜山) 들에서 맞아 싸웠다. 온달은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온달이 활약한 첫 싸움이었다.

공적을 논의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영접하고 벼슬을 주어 대형으로 삼았다. 이로써 왕은 공주를 용서하고 온달에 대한 총애가 깊어졌으며, 온달은 위풍과 권세가 날로 성하여졌다. 

한편, 고구려가 귀족 간의 내분으로 혼란하던 551년(양원왕 7년) 고구려의 오랜 동맹국이자 북방 유목 세계의 패자였던 유연을 꺾고 새롭게 등장한 돌궐이 고구려의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해 온 사건이 일어났다. 돌궐이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던 말갈과 거란까지 자신들의 세력 안에 넣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고흘 장군이 출전하여 돌궐을 격파했지만, 강적 돌궐의 위협은 상당 기간 계속되어 고구려는 국력을 기울여서 맞서야 했다. 이때를 틈타 552년 신라와 백제 연합군이 고구려 남부의 한강 유역을 공격해 와, 돌궐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던 고구려는 신라 진흥왕과 협정을 체결했다.
「신라가 한강 유역과 마운령과 황초령 이남의 동해 연안을 차지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 조건으로 신라는 백제의 침입을 막고 더 이상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는다.」
이 협정 하에 신라는 백제를 역습하여 백제 성왕을 죽이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이때에 넓은 한강 유역을 빼앗겼지만, 북쪽의 돌궐을 막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남쪽을 포기했다.

이러한 대사건이 평강왕의 부친인 양원왕 시기에 이루어졌다. 평강왕에게는 돌궐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는 것이 제일의 과제였고, 한강 유역을 회복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590년 평강왕이 죽고 처남인 영양왕이 즉위하였다. 온달은 왕에게 자신의 평소 생각을 아뢰었다. 역사서에 적힌 그의 두 번째 활약상이 여기서 펼쳐지는데, 하지만 그의 최후를 알리는 슬픈 사건이기도 하였다. 신라가 고구려 땅인 한강 북쪽 지역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군사를 준다면 반드시 땅을 도로 찾아오겠다고 다짐했다. 당시의 주변 정세는 북방에서 돌궐의 기세가 약화되고, 중원에서는 590년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국가를 이루고 고구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므로, 수나라가 침략하기 전에 후방을 튼튼히 할 필요가 있어서 왕은 기꺼이 수락했다. 출전 전 그는 계립현과 죽령 서쪽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전쟁터에 나가,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아단성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온달은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을 공격하다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평강공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온달은 편히 눈을 감지 못하였고, 영구(靈柩)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 그때에야 영구가 움직여 평양으로 옮겨져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고, 영양왕과 백성들도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온달이 싸우다 전사하였다는 아단성(阿旦城)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여, 서울과 구리 사이의 아차산성(阿且山城)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아단(阿旦)'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가는 곳은 오로지 단양 영춘밖에 없다. 즉 차(且)와 단(旦)을 혼동하여 일어나게 된 착오다. 옛 지명이 '을아단(乙阿旦)'인 이곳에 성산이 있다. 그 정상부에 온달이 쌓았고, 이곳을 되찾기 위해 싸우다가 신라군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는 전설에 따라 예부터 온달성이라 부르는 산성이다. 온달성 근처에는 온달의 묘라고 전해오는 고구려식 큰 적석총이 있으며, 활고개, 진거리, 쉬는돌, 비마루, 대진목 등 온달과 평강공주의 설화가 담긴 지명이 많다.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온달산성이 치열한 전장이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백두들
별반 미덥지 못한 분이지만 하는 수 없이 맡겼더니..ㅉㅉ

 

 

 

그 옛날 치열한 전장터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정자를 뒤로하고, 

 

따르던 성곽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온달산성을 품은 주변 풍광이 더욱 장쾌하게 펼쳐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무척 가파른 내림길을 조심조심 내려서면, 

 

성벽 좌측 아래에 '석환' 안내판과 함께 머리 크기의 둥근돌을 모아놓았고, 

 

<석환(石丸, 돌 폭탄)>
단양 온달 산성(사적 264호) 종합 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진행된 학술발굴조사 과정에서 성벽 안쪽을 따라 무더기 출토되었다. 지름이 10~20cm와 30~50cm 정도 크기의 둥근 강돌로 성 밖에서 옮겨 온 것으로 보이며, 성을 방어하기 위해 투석전(돌을 던지며 다투는 싸움)을 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곽 동문 직전의 좌측 사다리로 내려서서, 

온달산성 동문 전경

 

싱그러운 초지를 밟는 포근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북문으로 진행하여,  

돌아본 정자 방향

 

온달산성 북문으로 나오니, 

 

유려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온달산성의 위풍당당함이 멋지고, 

 

쉼터 벤치가 놓인 소나무숲 임도를 따라 내려서다가,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지점에서 우측 온달테마공원으로 이어지는 소로로 내려가면,  

 

온달산성 동문 방향에서 이어오는 능선 등로에 접속하여 좌측 데크계단길을 따라 내려가게 된다. 

돌아본 지능선 등로 접속 지점

 

 

 

데크 계단 내림길이 길게 이어지다가, 

 

온달장군의 혼을 달레는 진혼곡이 걸린 사모정(思慕亭)에 올라 보지만 잡목에 가려 조망은 시원치 않고, 

 

<사모정(思慕亭)>
온달장군이 신라와의 싸움 중 화살에 맞고 전사하여 시신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관이 꼼짝하지 않아 평강공주가 울면서 달래어 떠나보낸 자리라고 한다.

 

사모정(思慕亭)
시 조남익, 글씨 삼석 김갑오, 도심정사 온일제 스님이 제작한 '온달장군을 위한 진혼곡' 현판

 

<온달장군을 위한 진혼곡>  - 조남익 - 
이제는 돌이로다  /  아니 풀이로다  /  장군은 맹세하고 출정했었네  /
죽령 이북 실지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  결단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
삼국풍운의 전초기지에서  /  투구 쓰고 갑옷 입은 위용  /  남한강 배수진 치고 싸웠네  /
산천초목도 떨었던 용맹  /  멀리 요동 벌판에서는  /  날으는 마상의 위엄이 진동했었네  /
가슴에서는 누구보다도 /  뜨거웠던 사랑  /  평강공주의 섬섬옥수가 있었네  /
그러나 어찌 뜻하였으랴  /  한줄기 유사시에 떨어진 큰 별  /  군사도 울고 백로도 울었네  /
아직 이루지 못한 맹세  /  너무나 분통해 관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네  /
평강공주 관 붙들고 오열하며  /  생사 이미 정해졌으니 돌아가사이다  /
하니 비로소  /  이승을 뜬 장군의 관  /  이제는 돌이로다  /  아니 풀이로다 /
나라 사랑 충혼  /  죽어서도 일편단심의 푸른 기상  /  인구에 회자되어 오기 천사백년  /
애틋한 장군의 뜻  /  하늘에 그리는 상형문자로  /  그 몸부림치던 혼이여  /
오랜 세월 그 몇 번이나  /  정숙하고 착하게 정화되어  /  겨레의 하늘나라에 올라  /
성령의 큰 사랑으로 빛나네  /  땅에는 이제  /  돌이로다  /  풀이로다

 

이어지는 데크 계단길을 잠시 더 내려서니, 

 

데크 쉼터가 나타나고, 

 

이내 다시 벤치가 설치된 쉼터에서 우틀하여 데크 계단길을 내려서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좌틀하여 내려서면, 

 

온달관광지 오픈세트장 건물이 나타나며 직진으로 내려서는 방향에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우틀하여 진행해야 하는데, 

 

아마도 온달관광지가 유료 관람지역이라 이곳에서 내려서는 길을 막아 놓은 듯하다. 

 

 

 

온달관광지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이어진 소로를 따라 나가다가, 

온달 오픈세트장 전경

 

<온달 오픈세트장>
오픈세트장 동편 벽면에는 '고구려 삼족오' 안내문과 바람의 나라, 태왕사신기 등 이곳에서 촬영된 각종 드라마가 선전되고 있다.
이곳은 TV드라마 <대왕의 꿈>, <신의>, <광개토대왕>, <근초고왕>, <천추태후>, <일지매>,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등을 촬영한 곳으로, 중국 수ㆍ당 시대의 궁전과 귀족들의 저택을 재현해 놓은 세트장이다. 총 55동의 건물과 부속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좌측 데크 계단길로 내려가면, 

 

온달관광지로 내려서게 되는데, 

 

직진의 매표소 가는 길을 두고 우틀하여 관광지 입구의 집단시설지구 방향으로 진행하니, 

 

<고구려 삼족오(三足烏)>
고구려 대하드라마에 고구려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삼족오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무덤인 평양 동명왕릉 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 무늬 금구'에 새겨져 있다. 이 금구 중앙에는 해의 흑점 주기를 뜻하는 12개의 구슬이 연속되어 있는 두 개의 둥근 테두리 안에 삼족오가 있다. 삼족오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신으로 널리 숭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고구려 벽화에는 태양 안에 반드시 삼족오가 있는데,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보면 B.C. 1987년 '삼족오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날개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설명판)

 

집단시설지구 공터에는 온달장군 기마상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온달관광지 입구 주차장에서 배낭을 내리고 인생고를 해결하며 잠시 쉼을 한다. 

온달관광지 안내도와 설명판

 

 

 

이곳 온달 관광지에서 6자락의 종점인 영춘면사무소까지는 약 2km 정도로 차량 통행이 많은 포장도로를 걸어야 한다. 우리는 6자락 종착지인 영춘면사무소 인근의 '온달문화복지센터'로 진행하여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배낭을 두고 바로 복지센터 목욕탕에서 땀을 닦기로 한다.

 

온달관광지를 뒤로하고 '온달로'를 따라 온달산성 형상의 대형 아치 조형물 아래를 지나, 

 

소백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남천을 넘는 남천교를 건너고, 

좌측 남한강 방향

 

영춘면 남천리 교차로를 지나 영춘면 소재지 방향으로 진행하여, 

좌측 남한강과 영춘교 전경

 

파~란 하늘을 향해 남한강을 거슬러 강변길을 따르다가, 

잠시 전에 지나온 온달산성과 남한강 하류 방향

 

영춘교 입구 교차로를 지나, 

 

영춘과 영월 갈림길에서 영춘면 사무소 방향의 자락길은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온달문화복지센터'를 향해 남한강 뚝방길을 계속 따르다가, 

돌아본 영춘교 방향

 

우측 영춘면보건소로 내려서는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서, 

 

온달평강로에 접속하여 좌측 방향으로 잠시 더 진행하면, 

 

이내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온달문화복지회관에 도착하여, 

 

소백산자락길 세번째(5, 6자락)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온달문화복지회관 목욕탕에서 몸에 묻은 고단함을 씻어내고, 

 

남한강 조망이 좋다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즐거운 뒤풀이 시간을 가지고는, 

 

남한강 북벽을 배경으로 오늘 처음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남긴다. 

 

 

 

살아가다 보면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이 모두 좋을 수는 없듯이, 

둘레길을 걷다보니 힘들고 지치게 하는 곳과 또 와보고 싶은 곳이 있다. 

오늘 걸은 보발재에서 온달산성을 거쳐 온달관광지로 내려서는 구간이 또 와보고 싶은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