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07차(항이리갈림길~구룡령)
산 행 일 : 2012. 07. 14.(토)
산행코스 : 쇠나드리~구조침령 +항이리갈림길~1061봉~연가리골샘터~왕승골삼거리~갈전곡봉~구룡령
(거리 17km + a, 9시간 20분 소요)
산행참가 : 19명.
<산행지도>
이번 구간은 대간꾼들에게 비교적 쉬운 구간으로 통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5년쯤 전의 구룡령~조침령 구간 대간북진길은 더운 여름날 넘어도 넘어도 봉우리가 이어지는 힘든 구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지난 대간 북진길 때는 여름날 무더운 햇볕 속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같은 여름임에도 장맛비 속을 걸어야 한다. 옛날에는 몰랐지만 산을 다니다 보니, 해가 쨍하면 쨍한 데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데로, 각기 다른 산행의 묘미를 갖고 있어서 세상살이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듯, 우중 산행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묘미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듯하다.우장을 갖춘 채비를 뚫고 산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내키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의 애마는 빗속을 달려 내린천변 쉼터에 도착하고, 한 시간여 동안 새우잠을 더 청하다가, 산행 들머리가 있는 진동리에 도착했고, 이어서 우리는 우장을 갖추고 산행을 시작하려 아늑했던 버스를 나선다.
쇠나드리에 도착한 버스에서 우장을 갖추고 아늑했던 버스를 나선다.
서울에서의 가녀렸던 장맛비가 장대비로 바뀌어 있다.
이때까지도 아무리 비가 내려도 들머리인 쇠나드리 입구를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쇠나드리 들머리는 이곳에서 아래쪽 500m 지점에서 계곡 건너 외딴집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지만, 지금은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을 건너는 게 불가능하다. 쇠나드리교를 건너서 마을 앞에서 방태천을 따라 내려가며 진동리 붉은 벽돌 인가 뒤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기로 했는데, 붉은 벽돌집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게 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산행 들머리인 쇠나드리 들머리를 찾지 못하고 막다른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이곳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들어서니 붉은 벽돌집이 나온다.
붉은 벽돌집을 지나 다음 주택 뒤쪽으로 돌아가니, 산으로 오르는 희미한 등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정집 뒤뜰에 들머리가 있다!
쇠나드리 고갯길을 따라 대간 능선을 향해 급하지 않은 사면길을 오르면,
오래지 않아 대간 능선에 도착한다. 이제부터는 우측으로 대간 능선을 따르면 된다.
거리표 시도 없는 멍텅구리 이정표가 이리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들머리 찾지 못하고 헤매는 위험에서 이제는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는지...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들이 우리가 현재 대간길에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대간길에 접어들어 첫번째 봉우리 공터에서 인원과 우장을 점검하고, 본격적인 대간 산행을 시작한다.
어느새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주위는 조금씩 밝아 오기 시작한다.
지난 산행의 탈출 지점인 항이리 갈림길에 도착한다.
지난번 대간 산행에서 단목령~연가리골갈림길 산행을 예정했었으나, 단목령 어프로치 길에서 2시간여 동안 알바 산행을하느라 예정된 연가리골 갈림길까지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양양군 서면 서림리 항 이리 마을로 탈출했었다.
이제 이곳부터 지난 산행에 이은 본격적으로 대간길 잇기를 시작한다.
한여름임에도 비 내리는 숲에서 느끼지는 새벽 공기는 무척 서늘한 느낌이다.
그래서 몸이 한기를 느끼지 않도록 쉬지 않고 걷는데,
이 구간에서만 볼 수 있는 멍텅구리 이정표가 갈전곡봉 방향을 알려 주고 있다.
산간오지임에도 숲길 군데군데에는 나무밴치가 설치되어 있다.
나무밴치를 식탁 삼아 아침식사를 때운다.
쏟아지던 비가 잠시 뜸한 틈을 타 아침식사를 해치우고는, 서둘러 갈전곡봉을 향한다.
역시 베테랑들이라 그런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비 내리는 진흙길을 산행한 분들의 복장이 깔끔하다.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 도착.
연가리골 샘터 갈림길에 도착한다. 연가리골은 기서(奇書)인 정감록에 나오는 삼둔사가리로 유명하지만, 대간꾼들에겐 마루금에서 가장 가까운 식수터를 제공해 주는 장소로 더욱 친근한 곳이다.
<연가리골> - 삼둔사가리 중의 한 곳.
정감록(鄭鑑錄) 이본(異本:정감록은 正本이라고 부르는 책 이외에 여러 種이 있다)에는 난리 때 피난하여 살 만한 땅으로 ‘삼둔사가리’가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살만한 땅이 숨어 있는 곳이 오늘 지나가는 대간길, 쇠나드리~구룡령 구간의 우측 골짜기(홍천 내면, 인제 기린면)인 것이다.
깊은 산골에 숨어 삼재(三災)를 잊고 농사지어 복되게 살 수 있는 곳,
그 숨겨진 땅이 이 곳 산 사이 계곡 곁에 있는 것이다.
‘둔’(屯)이란 비교적 높은 곳의 평평한 땅을 말하는 것이고,
‘가리’(耕:갈이)란 계곡 가 평평한 땅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삼둔(살둔(생둔), 달둔, 월둔)이 있고, 사가리(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또는 곁가리))가 숨어 있다. 점봉산, 구룡덕봉, 방태산 등 크고 작은 산들의 안과 밖으로 사방에 있는 곳을 말하며, 3둔 4가리의 핵심은 조경동과 진동계곡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나오는 조경동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아침가리(朝耕洞)이고, 현재의 위치 오른쪽이 연가리다.
이제는 숲과 계곡이 깊어 최고의 Well-being여행지(산행지)가 되었으나,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화전을 일구던 산골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연가리골 갈림길 이정표.
이제 빗줄기는 가늘어져 오락가락하는 정도가 되었고, 어느 정도 싱그러운 숲의 상쾌함을 맛볼 수도 있게 되었다.
968봉 정상 삼각점을 지난다.
경위도를 표시해 놓으면 이곳이 어디인지 아는 분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물론 정밀지도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ㅉㅉ
아침가리골(조경동)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왕승골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아침가리골(조경동)인 안부 갈림길이다.
<왕승골>
왕승골의 유래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찾기는 어려우나, 이곳 마을 사람들이 '왕새이'로 부르는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큰령(큰고개/사이골)의 뜻으로 짐작이 된다.
이제 갈전곡봉을 향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1016봉 정상 도착.
정상 삼각점 위에 앉아서 쉼을 하고 계신 총무님 내외분을 뒤로하고,
잠시 더 진행하여 밴치가 있는 무명봉에서 잠시 쉼을 하며 과일을 나눈다.
아파트 베란다에 걸어 놓은 화분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봉우리를 넘고 넘어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힘겹게 올라서면,
마침내 오늘의 최고봉인 갈전곡봉에 도착한다.
갈전곡봉(1,204m) 정상 이정표.
이제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칠봉 방향으로 알바할 염려는 없을 듯하다.
갈전곡봉에서 대간길은 왼쪽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지만, 오른쪽(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짧지만 힘찬 산줄기를 빚어낸다. 가칠봉~구룡덕봉~방태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다. 모두 1,200m가 넘는 고봉들이다. 그래서 한때는 이곳에서 대간꾼들이 가칠봉 방향으로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알바를 자주 했던 곳이라 한다.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 듯한 표정의 김창병님.
갈전곡봉 안내판.
(잘 읽어 보면, 너무나 성의 없이 만든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구룡령~갈전곡봉 연결 능선과 이 산줄기 사이에는 삼봉약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산줄기와 갈전곡봉에서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사이에는 방동약수가, 그리고 구룡령~갈전곡봉 연결능선과 갈전곡봉~조침령 사이에는 갈천약수가 자리잡고 있다. 즉 갈전곡봉은 이른바 삼파약수(三派藥水)의 중심 구실을 한다. 갈천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동해바다로 들어가지만, 삼봉약수와 방동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내린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홍천․인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물(氵)을 같이(同) 사용하는 한동네(洞) 이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행정단위의 동(洞) 또한 여기서 유래했을 터이다. (마을 동(洞) 자는 물을 같이 먹고사는 마을이란 의미다)
토끼팀의 갈전곡봉 증명.
거북팀의 갈전곡봉 증명.
갈전곡봉을 뒤로하고 내려서니,
'구룡령옛길 정상'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치밭골령이라 부르는 곳이다.
<치밭골령>
치밭골령이란 말의 유래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면, ‘치밭’은 이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리산 대원사길에도 ‘치밭목’이 있다.
갈전곡봉(葛:칡, 田:밭, 谷:골, 峰:뫼)을 풀어보면, ‘칡밭골뫼’가 된다.
‘칡밭골’은 발음하기 힘드니, 세월이 가면서 ‘치밭골’이 되었을 것이다.
이 봉우리 아래 마을도 갈천리(葛川里:칡내골)이며, 약수 이름도 갈천약수다.
산과 고개와 마을과 약수는 모두 칡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지리산 ‘치밭목’을 지나면서 사람들은 취가 많아 ‘취밭목’이던 것이 ‘치밭목’이 되었다. 하는데 아마 그곳도 ‘칡밭목’일 가능성이 크다.
1121봉 직전 능선 분기점.
이곳에서 직진의 능선은 내면 명개리 방향 지능선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꺾여 내려간다.
잘 만들어진 쉼터 벤치에서,
구룡령옛길 갈림길 이정표.
이곳이 옛 구룡령 인듯 하다.
옛구룡령 정상 이정표.
구룡령 옛길 안내판.
<구룡령 옛길의 유래>
구룡령은 홍천군 명개리와 양양군 갈전리를 잇는 해발 1,089m 높이의 고개로, 아홉마리 용의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구룡령의 유래는 아홉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구불구불하다고 하여 구룡령이라고 이름하였다. 이 곳은 백두대간의 허리쯤이 되는 곳으로, 영서 산지와 영동 해안을 우마로 연결하는 교역로 역할을 하였던 길이다.
"비 온 뒤끝이라 길이 많이 미끄럽다.
급기야 최회장께서 잠시 엉덩방아를 찧는다.
어둠 속에서 무심코 젖은 나무 뿌리를 밟은 것이다.
‘젖은 나무뿌리 나쁜 놈! ’ 이렇게 복창 한번씩 하고 가야 되겠다."
1121봉 정상 삼각점.
정상의 안내문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
이정표에 진고개가 등장한다.
구룡령 에코브리지를 건너는 진고개 방향의 대간길은 수풀이 우거져 있고,
구룡령 도로로 내려서는 등로는 우측 아래로 꺾여져 내려간다.
대간 능선을 두고 구룡령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림길을 따르면,
구룡령 날머리에 도착한다.
돌아본 구룡령 날머리로 모습.
56번 국도가 지나는 구룡령 고갯마루 전경.
시종일관 쉼 없이 비를 맞으며 진흙길을 걸은 흔적을 씻고,
구룡령 정상석 앞 포장마차에서 뜨듯한 어묵 국물과 막걸리 한 사발로 우중 산행을 마무리한다.
<구룡령(九龍嶺)>
용이 구불구불 휘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간다고 하여 구룡령이라고 부른다. 또 고개를 넘던 아홉 마리 용이 갈천리 마을의 갈천약수와 명지약수에서 물을 마시며 쉬어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룡령 등산 안내도.
옛적 대간 북진길에서는 휴게소 건물이었은데,
산림청에서 인수하여 산림전시관으로 증개축하였으나아직 개관하지 않아 문이 닫혀 있다.
구룡령 정상석 앞에 선 백두의 어르신들!
쥔장은 어디 가시고 객들이 주막을 운영하고 있다.
두규형님 막걸리 잘 먹었습니다.^^
진부 방향으로 20여분 내려와, 따뜻한 물로 우중산행의 피로를 씻어내고,
내면 창촌리의 계방산숯불갈비 집에서,
우중 대간산행의 노고를 달랜다.
푸짐한 뒤풀이 한상!
쥔 아줌씨의 정성이 배어 있는 맛난 음식과 친절함에 감사드리고...
소맥의 기운이 행복감을 더해주고,
이 집의 채소는 텃밭에서 직접 키운 것이라는 쥔장의 자랑도 흘려듣는다.
친절한 금자?씨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향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산행 들머리를 못 찾아서 헤매는산행대장을 보고도,
믿어주시고 기다리며 격려해 주신 모든 백두회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욱더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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