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10차(대관령~삽당령)
산 행 일 : 2012. 09. 21. ~ 22.(토)
산행코스 : 대관령~능경봉(1,123)~고루포기산(1,238m)~왕산쉼터 2,1~닭목재~화란봉(1,069)~석두봉(982)~삽당령
(거리 26km, 11시간 소요)
산행참가 : 16명. 12
<산행지도>
대관령에서 삽당령까지 도상거리 26km, 아무리 날고기는 백두산우회라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거리다. 사실 지도를 들고 수없이 고민을 했었다. 지난 진부령~대관령 구간을 동해전망대에서 끊고, 동해전망대~닭목령까지를 한구간으로 만들까.., 아니면 그냥 대관령에서 닭목령까지만 짧게 산행하고, 동해바다에서 늦은 해수욕이나 할까!고민 끝에 지난 북진때의 산행시간을 점검해 보았더니, 우중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0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에 용기 백백하여 대관령에서 삽당령까지 한번 달려 보기로 하고 대관령을 향한다.
02:39 대관령에 도착하니 안개가 너무 심해 자동차 전조등도 별무 도움이 되지않을 정도다.
이런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대관령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 기사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관령 고갯마루로 향한다.
대관령 고갯마루에 서 있는 커다란 표석 앞에서, 대간남진 출발을 고한다.
<대관령(大關嶺, 832m)>
아흔아홉 험준한 고개를 오르내리며 대굴대굴 굴러서 '대굴령'이라 하였으나,
음절 되어 '대관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예기와, 영서~영동을 넘나드는 큰 관문이라 하여 '
대관령'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예기가 있는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지명이 사서(史書)에 기록된 곳으로, 오래전부터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역로이자 교통로로서 관문역할을 맡아왔다.
삼국유사에는 대령(大嶺)이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굴령(堀嶺), 조선 중기 이후부터 대관령(大關嶺)이라 칭했다고 한다. 총길이가 13km나 되는 고개로, 원읍현(員泣峴:원울이재), 반정(半程:반쟁이) 등 많은 유래가 전해지며, 강릉출신인 신사임당과 허균 등에 의해 여러 시문(詩文)이 지어진 고개이기도 하다.
대관령을 넘는 대관령옛길을 예전부터 아흔아홉구비라 부르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서 출출할 때 먹을 심산으로 곶감 100개를 바랑에 지고 길을 나섰는데, 그 옛날 고을원이 강릉부사로 발령을 받고 길을 나선 후, 쉬면서 울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원울이재(員泣峴)"에서부터,대관령 옛길을 따라 한 구비를 돌 때마다 곶감을 하나씩 먹었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곶감이 한 개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있는 광장 남쪽 들머리로 들어서서, 새버댕이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길로 접어든다.
<새버댕이>
영동고속도로 준공비가 있는 광장에서 출발하여, 잠시 후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임도길을 따르면, 용천수를 지나 초소가 나오면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새버댕이'라는 곳이다. 이 임도는 동쪽의 제왕산 아래에 만들어진 도암수조 작업장으로 가는 길로, 이 길은 백두대간 서쪽의 도암천 물을 고루포기산, 능경봉, 제왕산 아래로 15.6km의 터널을 뚫어, 640m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강동수력발전소(1991년 준공) 건설 때 만든 것으로, 횡계에서 제왕산(840m) 정상 동쪽 헬기장 아래 도암 수조 작업장까지 이어진다.
산행 출발 30여분 만에 능경봉 정상에 도착한다.
한밤중에 안개까지 짖게 끼어 있어서 주변 조망은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오로지 걷는데만 정신이 팔려 올라왔다.
<능경봉(陵京峰, 1,123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성산면 오봉리,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다. 백두대간이 동해를 끼고 설악산(1,708m)과 오대산(1,563m), 황병산(1,407m)을 일으키고, 선자령을 지나 대관령에서 몸을 낮췄다가 다시 솟구친 첫번째 산으로, 대관령 남쪽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며, 제왕산의 모산이기도 하다. 산정(山頂)에 영천(靈泉)이 있어 기우제를 지냈었고, '
맑은 날엔 이 봉에서 울릉도가 조망된다'라고 하며, 대관령이나 강릉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큰 왕릉이나 활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능정봉(陵頂峰) 또는 소궁음산(所弓音山)이라고도 한다. 능경봉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을 능정출일(陵政出日)이라 하여, 그 아름다운 광경을 횡계팔경의 하나로 일컬었다고도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 강릉부 산천조'에는 소우음산(所牛音山)부의 서쪽 팔십리에있는데, 산중에 샘이 있어 가물면 비를 빌어 영험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능정(凌頂)이 능경(凌頃)으로 변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능경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강릉시 야경이 일품이라는데,
짙게 드리운 안개를 탓하며 5분여 동안 쉼을 하고는 정상 인증을 남긴다.
능경봉에서 200m 정도를 내려서면 커다란 돌탑과 나무데크 전망대가 나오는데,
어둠 속에서 '행운의 돌탑'이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행운의 돌탑>
“험한 산길을 지나던 우리 선조들이, 길에 흩어진 돌들을 줍고 쌓아 길도 닦고 자연스레 돌탑을 만들어 여행길의 안녕과 복을 빌며 마음으로 위안을 받던 풍습을 되살리고자 백두대간 상에 만든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왕산골 방향 갈림길이 있는 샘터에 도착한다.
샘터의 물맛이 좋다는데, 아직 배낭의 물 무개가 넉넉하여 그냥 지나친다.
<횡계치(橫溪峙)>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왕산골과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큰골을 잇는 고개다. 횡계리 쪽은 용평스키장과 대관령 목장, 그리고 겨울에는 마을마다 즐비한 황태덕장이, 그리고 여름에는 고랭지 채소 덕분에 잘 사는 동네가 된 횡계리가 있고, 반대편 강릉시 왕산면 쪽은 희미한 옛 고개이지만 아직 흔적이 남아있다. 이곳 농가들은 버섯재배로 유명한 곳이며, 지금 이곳 횡계치 아래로는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터널이 지나간다.
고루포기산 전망대 직전에 있는 연리지 나무 옆을 지난다.
<연리지(蓮理枝)>
부부간의 사랑을 비유하는 말에 '비익연리(比翼連理)'라는 말이 있는데,
비익조(比翼鳥)라는 새와 연리지(連理枝)라는 나무를 합친 말이다.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했으나 안록산의 난으로 양귀비를 잃게 되자,
시인 백낙천에게 양귀비를 위한 시를 부탁한다.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시(詩)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 땅에서는 연리지"라고 노래한다.
비익조(比翼鳥)는 날개와 눈이 하나뿐인 전설 속의 새를 말하는데,
금슬 좋은 부부처럼 암수가 붙어야 좌우 양쪽을 다 보며 날 수 있다고 한다.
고루포기산 전망대에 도착하니 야영을 하는 텐트가 쳐져있다.
고도가 어느 정도 높아지니 자욱하던 안개가 보이지 않는다.
<고루포기산 대관령 전망대>
전망대에 도착하니 야영객의 텐트가 전망대를 점령하고 있다. 대관령에서부터 조금 천천히 걸었으면 이곳에서 멋진 일출과 함께, 지나온 설악산과 오대산, 황병산, 선자령의 멋진 선경을 맘껏 누리련만, 아직 30분쯤을 더 기다려야 일출이 시작될 듯하다. 전망대에서 선자령 쪽으로 운해를 뚫고 반짝이는 풍력 발전기 불빛만 겨우 보여 아쉬움만 더하고, 후일을 기약하며 고루포기산을 향한다.
혹여 텐트족들의 숙면을 방해할까 저어되어, 목소리를 낮춘 채 잠시 쉼을 하고는 고루포기산을 향한다.
오목골 갈림길을 지난다.
<오목골>
평창군 대관령명 횡계리에 있는 마을로, 고루포기산 등산로 출발점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지르메 갈림길을 지난다.
<지르메>
대관령면 횡계5리 마을로, 오목골과 같은 지역이다. 지역 내에 지르메산이 있는데, 산 또는 마을의 형상이 지르메와 비숫하게 생긴 데서 유래했다 한다. 여기서 '지르메'란 길마(현지용어:지르메, 질매)를 말하는데, 길마는 말굽쇠 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안쪽 양편에 두 개의 막대기를 대어 고정시켜, 소의 등에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길마 위에 짐을 싣기도 하고 수레를 연결하는 데 사용되는데, 일종의 안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고루포기산 정상 도착.
<고루포기산(1,238m)>
산 정상에 정상석은 없고 안내판만 세워져 있는데,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고루포기(안반데기)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수하리의 삼각 경계지로, 왕산면 대기리 주민들이 이 산을 넘어 횡계리로 출입하였다. 다복솔이 많아 고루포기산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고로쇠나무도 많다'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다복솔이 많아서~~'라는 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이곳저곳을 뒤져보니, 다복솔은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소나무를 말하는데, 다복솔이 배추처럼 포기를 지어 많이 난다고 해서 그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고루포기산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할 말들이 무척 많은 듯하다.
시인 '이향지'라는 분은 조강원(72), 박태원(72) 두 할아버지로부터, ’고루포기’란 고루포기산 아래 남쪽 기슭에 있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않는 고루포기 마을 이름에서 비롯됐음을 확인 했다고 한다. ’고루포기 마을’이란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 고루포기란 결국 ’골짜기’의 사투리인 ’골패기’ 혹은 ’골팍’에서 그 어원이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골짜기’라는 말에서 ’골패기 마을’로, ’골패기산’이 ’고루포기산’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61년 4월 22일 평창군에서는, 이 산 넘어 명주군 왕산면에 고루포기라는 마을이 있어 산 이름을 고루포기산이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강릉시에는 예전에 '골폭'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뒤에 위치한 산이라 '골폭산'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국립지리원의 영문 지명에는 같은 경도와 위도에 똑같이 고루포기산과 골폭산이 기재되어 있어 국립지리원의 잘못이 분명 한데, 유래를 보면 산 이름은 마을 이름에서 따왔고 그 마을은 강릉시 왕산면에 있다. 뭔가 맞지를 않아 보인다.
또 다른 설은, 고로쇠나무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고로쇠나무와 고루포기는 같은 의미라고 한다. 또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에서 ‘소은백이산(所隱栢伊山)’이라 하여, 강릉 서쪽 65리에 있는 옛말에 전하기를 신선이 살던 곳이다 라고 적고 있다. "옛날 사냥꾼이 짐승을 쫒다가 높은 봉우리에 올라 조망을 하니, 골짜기 마을에는 노거수(老巨樹)와 초가집과 오솔길이 있고, 시냇가에는 포목과 옷가지, 빨래가 걸려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겨, 하산하여 그곳을 찾아 갔으나, 마침 구름과 안개가 계곡을 덮어 길을 잃고 끝내 그 곳을 찾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다. ’소은백이산’ 즉 ’고루포기산’은 신선이나 살던 심심산골 마을의 산이었음이 확연하다. 단국대 동양학 연구소 김윤우님의 말에 의하면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에서 유래된 듯 보이는데, 소(所)의 훈은 '곳'으로 보고, 곳은백이산에서 고른포기산 -> 골포기산 -> 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기슭에는 아직도 만인의 피란지지(避亂之地)라는 오덕(五德)의 지명이 남아 있다. 괴비데기(고비고사리가 많은 언덕), 안반데기(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처럼 넓고 평평한 지형), 장두데기(길고 긴 언덕), 황정데기(황장 소나무가 서식하는 언덕), 황철데기(황철나무가 많이 서식하는 곳)가 그곳이니, 전란을 피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땅이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1:5만 지형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약 5,000개의 산 이름이 한자로 기재되어 있고, 일본어(가타카나)로 그 음을 나란히 기재했다. 여기서 음은 한자 발음이 아니고 그 산을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단 3개의 산 이름은 한자 표기 없이 일본어로만 표기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고루포기산인데, 마을 이름을 딴 산 이름이 분명하고, 마을이 속한 강릉시는 현지 조사를 통해서 골폭산으로 이름을 정하고 마을과 관련이 없는 평창군은 현지조사도 하지 않고 지도에 표기된 일본 글자의 발음대로 고루포기산으로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의 지도 대부분에 고루포기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고루포기산 인증을 남기고 닭목재로 향한다.
고루포기산 내림길 좌측 나무 사이로 능경봉이 보이고,
고루포기산과 능경봉 사이의 안부인 횡계치를 넘어 흐르는 운해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동쪽 왕산리 방향 운해.
닭목령을 향하는 고루포기산 정상 주변은 산길과 임도가 이리저리 교차하고 있고,
임도를 따라 전신주도 세워져 있는데, 어디로 이어지는 전신주 인지를 모르겠다.
고루포기산 내림길의 송전탑에서 바라본 노추산(좌후방) 방향 조망.
닭목령 방향의 운해.
<닭목령 방향의 운해>
고루포기산을 뒤로하고 왕산골 방향 내림길에 송전탑이 나오면서 시야가 트이자, 아래쪽 닭목령 방향으로 멋진 운해가 펼쳐진다.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저 구름바다 위로 뛰어들어 노를 저어 가고픈 충동마저 느껴진다.
넋을 놓고 운해를 조망하는 백두들.
원시림을 뚫고 아침 햇살이 비춰온다.
따스하게 전해지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싱그러운 숲길 걷기 체험을 한다.
왕산2쉼터를 지나 왕산제1쉼터도 지난다.
왕산제1쉼터 이정표.
반대 방향으로 고루포기산을 오르는 중이었다면,
왕산 1, 2쉼터에서 쉬었을 테지만, 지금은 내림길이라 여유가 넘친다.
이곳부터는 적송(赤松) 지대로, 건강한 소나무가 많이 보이고, 우측으로 안반데기도 살짝 보인다.
<안반데기>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마을 이름으로, 고루포기산과 옥녀봉 사이에 있는 피득령 동쪽 마을이다. 고랭지 채소밭이 유명하다.
등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군데군데 벤치도 갖춰져 있다.
나처럼 잘 생긴 소나무들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언제까지나 저런 소나무가 우리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데, 기온 상승으로 한반도에서 소나무의 운명도 풍전등화라니...ㅉㅉ
우측 곰자리골 방향.
날씨, 숲, 길,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대간길을 이어간다.
당겨본 안반데기 배추밭.
<안반데기>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와 왕산면 대기리의 경계로, 안반데기는 안반덕(더기)의 강원도 사투리다. 험준한 백두대간 줄기에, 떡메로 떡을 칠 때 안반처럼 움푹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안반데기(해발1,100m)는 국내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지역으로, 피득령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고루포기산을 좌,우측에 두고, 198만㎡의 농경지가 독수리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하여 화전민에게 임대해 오다가, 1986년 경작자에게 매각하였으며, 현재 20여 농가가 거주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다.
돌아본 고루포기산 방향.
잘~생긴 소나무를 만나면 계속 셔터를 누르게 된다.
북동쪽 강릉시 왕산면 방향 조망.
동쪽 화란봉 방향 조망.
왕산면 대기리 방향.
가끔씩 눈에 띄는 표지기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화란봉이 마치 운해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데,
이제 저 구름바다를 건너 화란봉으로 올라야 한다.
운해에 떠 있는 화란봉을 배경으로.
돌아본 고루포기산 방향으로 지나온 대간길이 가늠되고,
우측의 봉우리가 서득봉(1,052m) 쯤인 듯하다.
415번 지방도를 따라 닭목령을 지나 강릉으로 흐르는 운해!
경치 좋은 곳에다가 아침식사를 위한 식당을 마련하고,
화란봉을 감싸고 있는 솜사탕도 뜯어먹으며,
모처럼 편안하고 느긋한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닭목재를 향해 대간남진 길을 이어간다.
돌아본 고루포기산 방향.
등로 주위에서는 작은 들꽃이 반겨준다.
속리산 정이품소나무의 젊은 시절 모습이 이와 같았을까?
맹덕 목장 뒤로 고루포기산이 보인다.
몇 해 전까지 목장이었다는데, 이제는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으로 바뀐 듯하다.
맹데기 마을 입구를 지난다.(주소는 '왕산면 왕산리')
이곳 주민들은 '가파른 언덕의 고원'이란 뜻으로 "맹데기"라 부른다는 마을의 입구를 지난다.
쭈~욱 뻗은 적송이 너무나 잘~알 생겼다.
잠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다가, 대간길은 다시 좌측 숲으로 이어진다.
조림된 낙엽송들도 쑥쑥 잘 자라고 있다.
숲의 기운을 받으며 안개 자욱한 숲으로 들었다가,
커다란 무우가 자라는 밭 가장자리로 나온다.
이곳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고랭지 채소밭은, 태백 매봉산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 삼
척 숙암리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와 함께 ‘백두대간 3대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에 속한다. 그러나 고랭지 채소밭은 하천 수질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비가 오면 고랭지 채소밭에서 농약과 퇴비, 토사가 섞인 흙탕물이 흘러내려가 쌓이고, 이로 인해 물고기 알이 호흡을 제대로 못해 썩는다고 한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대간길은 가다 보면,
어느새 등로는 농로로 바뀌어 있고,
채소밭 사이로 이어진 농로를 따르면,
농로는 조림지 사이로도 이어지고,
농로 주변에는 가끔씩 표지기도 눈에 띈다.
닭목재 직전 널찍한 농로에서 후미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닭목재를 향한다.
닭목재에 도착한다.
익살스런 장승이 기다리는 닭목령에 도착하니,
몇 해 전 대간북진 때, 이곳에서 비를 맞으며 아침식사를 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닭목령(鷄項嶺, 706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닭목(계향동, 鷄項洞)에서 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강릉과 정선군 임계를 잇는 415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난다. 고갯마루 북쪽의 왕산리에는 닭목골, 남쪽의 대기리엔 ‘닭목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풍수가들은 이곳의 지세를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는데, 이 부근이 닭의 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닭목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이다. 고갯마루에는 산신각이 세워져 있다. 한자 표기로는 계항령(鷄項嶺)이다.
풍수지리상으로 천상에 산다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로, 이곳 고갯마루가 천하명당의 길지라고 하는 닭의 목덜미에 해당한다고 하여 '닭목재'라 이름 지었다고 하지만, 아마도 산골짜기의 목(길목)이란 뜻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백두대간 닭목령 표석 앞에서 인증을 하고,
닭목령을 지나는 도로를 가로질러,
이정표의 삽당령 방향으로 들어서며 대간길을 이어간다.
이정표에 남쪽 방향으로 '노추산 입구 8.5km'라 적혀 있는데, 남서쪽으로 이 길을 따라 가면 노추계곡을 거쳐 아우라지 정선까지 이어진다.
길 건너편 화란봉 방향 들머리 쪽에는,
빛이 바랜 옛날 닭목령 표석이 수풀에 가려있다.
잠시 후 화란봉 서쪽편 고든골의 경작지로 이어지는 농로를 건너고,
추석이 임박해서인지 벌초가 깔끔하게 되어 있는 묘지 옆을 지나면,
본격적인 화란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닭목재(706m)에서 화란봉(1,069m)까지는 2km 거리에 고도를 363m나 높여야 해서, 초반의 완만한 오름길을 지나면, 코가 닿을 정도의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등로 우측 멋진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대전의 정다운산악회에서 온 두 분이 쉼을 하다가 방을 내어 준다.
소나무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본 닭목재 방향 조망.
운해 건너 안반데기 뒤로 발왕산쯤이 조망된다.
당겨본 안반데기와 발왕산.
노추산 방향.
<노추산(魯鄒山, 1,322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북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중국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 맹자의 기상이 서려 있다 하여 노추산(魯鄒山)이라 불린다.신라 때의 설총과 조선조 때의 율곡 이이 선생이 학문을 쌓아 대성하였고, 산 중턱에는 그 설총과 율곡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이성대(二聖臺)가 있다.
노추산과 발왕산 고루포기산 방향 파노라마.
(골포기산은 우측 소나무 끝에 살짝 가려있다)
당겨본 피덕령 방향.
당겨본 맹덕목장 방향.
맹덕목장 좌측 능선 위에서 아침식사를 했었다.
운해가 연출하는 장관을 넋놓고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이 땅 최고의 소나무 정원수 군락을 카메라에 담고,
혹시 잊혀질까 한번 더 산과 운해가 어우러진 장관을 뇌리에 새기고는 화란봉을 향한다.
화란봉 정상에는 올라가서 쉬겠다며 먼저 오른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근데 이를 어쩌나.., 화란봉 정상은 숲으로 둘러져 있어서 조망이 없는 것을..ㅉㅉ
<화란봉(花蘭峰, 1,069.1m)>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왕산리, 도마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난초처럼 예쁜 봉우리여서 “화란봉(花蘭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평범한 봉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작은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무명봉쯤으로 지나쳤을 것 같은 느낌이다.
화란봉은 이름 그대로 꽃 모양을 하고 있는 산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진 화관이 화란봉을 중심으로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 마치 꽃잎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이곳은 옛날에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다가 힘이 부쳐 떨어진 곳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그때 자국이 용수골 너럭바위에 남아 있다고 한다.
정상 한켠 나뭇가지에는 몇 해 전의 빛바랜 이정표가 아직도 걸려 있고,
강릉시에서 걸어둔 '화란봉 울트라 바우길'이란 이정표도 걸려 있다.
화란봉의 진짜 정상은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에 배낭을 두고 잠시 다녀올까 하다가, 별다른 특징도 조망도 없는 곳이라 굳이 많은 분들의 쉼을 방해하며 가지 않아도 그 의미가 작아지지 않을 듯하여 잠자코 편한 쉼에 동참한다.
흔한 정상석 조차 없어서 더욱 정겨운 화란봉 정상에서, 모두 함께 인증을 남기고 석두봉을 향한다.
화란봉에서 석두봉 가는 길에는 1,006봉, 989봉, 960봉을 차례로 넘어야 하는데, 정상은 작은 쉼터 흔적만 있을 뿐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된다.
화란봉과 1006봉 사이의 안부를 지나는데, 우측으로 조그만 골짜기에 물이 흐른다.
아마도 고원 평탄면에 생긴 습지인 듯하다.
1006봉 내림길은 조릿대밭 사이로 이어진다.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와 완만한 내림길이 백두들의 얼굴에 웃음기를 피어나게 한다.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조그만 지류가 이어지며 물이 흐르고 있다.
989봉 오름길쯤인 듯하다.
습한 숲이라 그런지, 귀한 노루궁뎅이 버섯이 자주 눈에 띈다.
10:39 송백봉(990m)이라 표시된 곳에서,
숲 속 휴식의 편안함을 누리고,
한 곳에서 10분 이상 쉰 적이 없었는데 거의 20여분을 쉬고는, 다시 석두봉을 향한다.
강릉시에서 마련한 듯한 쉼터가 특이하다.
네팔 트레킹에서 보았던 쉼터의 기능과 유사하게, 배낭을 벗지 않고도 내려놓은 듯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별도의 배낭 받침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식탁 용도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식탁이라면 마주 앉게 만들었을 것이므로 배낭 받침 용도로 만들어 놓은 듯 짐작한다.
숲으로 둘러 싸인 헬기장을 지나고,
제법 가팔라진 오름길을 오르면,
서쪽 석두봉 정상에 도착한다.
석두봉은 동.서로 두 개의 봉우리가 80m 거리를 두고 이어져 있는데, 이곳은 그 서쪽 봉우리다.
봉우리 한켠에는 낯설지 않은 표지판이 놓여 있다.
석두봉과 화란봉 사이의 골짜기가 용수골이니, 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보다.
석두봉 서봉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왕산면 대기리 방향.
좌중앙 둔덕처럼 보이는 산이 대화실산(1,010m)이다.
<대화실산(大花實山,·1,010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위치한 대화실산은, 백두대간이 석두봉(982m)을 지나는 구간에 남서쪽으로 살짝 비켜 앉은 전형적인 육산이다. 전체적으로 산의 형세가 큰 꽃의 열매 즉 화심형(花心形)처럼 생겼다 하여 ‘대화실’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 전체의 토질이 푸석한 마사토로 되어 있어서, 오랜 세월 동안 빗물에 의해 많은 양의 토사가 유실되어 현재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와 잘 맞지 않는 지형이 나타날 수도 있단다. 임도가 잠깐 나타났다 없어진 후 또 여기저기서 나타났다가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곤 한다. 또한 방화선도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 꼭 팔진도법에 홀린 듯한 난해한 구릉의 산이기도 하다.
돌아본 안반데기 채소밭 뒤로 발왕산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고루포기산도 가늠된다.
남서쪽 노추산 방향 조망.
전망바위에서 시원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을 인증 삼아 담아 두고,
석두봉(동봉) 가기 직전 오르막 우측의 멋진 전망바위에 오르니, 저 멀리 고랭지 채소단지인 안반데기와 피득령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의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피득령과 안반데기 방향 조망.
서봉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석두봉 정상석이 있는 동봉으로 향한다.
석두봉 정상 부근 오름길은 너덜길인데, 등로 정비를 잘해 놓아서 비단길로 바뀌어 있다.
11:40 백두들이 석두봉 정상(동봉)에 도착했다.
<석두봉(石頭峰, 982m)>
강릉시 왕산면 대기 2리와 큰용수골 안라리젱이에 있는 봉우리로, '마치 머리에 바위를 올려놓고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두봉 정상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되어 있고, 쌍봉을 이루고 있다. 동쪽 봉우리보다 조금 낮은 서쪽 봉우리는 얼룩무늬 바위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石頭峰이라..!' 에둘러 좋게 말하면 '돌머리봉'이고 쉽게 말하면 '돌대가리봉'이다. 마루금을 축으로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남과 서쪽은 해발 800미터의 평평한 분지로 작은터, 가르쟁이, 솜솥밭, 대용수동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씨감자와 당근을 해갈이 하고 있단다.
북동 강릉시(뒤쪽 산 너머에 있다.) 방향 조망.
제왕산 방향.
안반데기와 피득령 방향.
석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방향 파노라마.
당겨본 고루포기산(중앙 앞쪽)과 황병산(좌 후방) 방향으로 지나온 백두대간이 가늠된다.
선두팀은 삽당령 주막집의 막걸리를 맛보러 먼저 떠나고,
홀로 남아 석두봉 정상석과 구름의 어울림을 감상하다 보니,
후미팀도 석두봉 정상에 도착했다.
석두봉 내림길은 등로에 나무계단 설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등로는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어서, 산행이 여유롭게 진행된다.
폐헬기장 인듯한 공터를 지나니,
독바위봉(978.8m)이라 쓰인 표찰이 나무에 걸려 있다.
<독바위봉/연규봉(978.8m)>
우리나라에 독바위봉은 여러 곳에 있는데, 이곳 독바위봉의 유래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등로 한켠에 커다란 바위가 독바위라는 이름을 갖게 되어 붙여진 지명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독바위봉을 지나니, 이내 방화선 지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대화실산 직전까지 이어진 방화선.
대간능선 우측으로 왕산면 대기리에서 이어져 올라오는 임도가 보인다.
산행 당시에는 공사 중이라 명칭이 없는 쉼터였는데, 공사를 마친 후 '제3쉼터'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지도상 이곳 어디쯤이 들미재쯤 되는 듯한데, 재의 흔적은 찾지를 못했다.
<들미재(810m)>
동쪽 아래에 위치한 ‘들미골’ 마을에서 유래된 들미재의 '들미'는 ‘들(野 )의 꼬리(尾)’, 즉 ‘개활지에서 산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 외진 곳’이라는 의미다. 들미골과 용수골(대용수동)을 넘나들던 재로, 농기구나 그릇 또는 가구의 무늬목으로 쓰이는 들미나무가 많아 들미재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자연산 통나무 의자에 편안히 기대어 쉼을 한다.
'아하~ 이런 용도로 쓰이누먼~~'
그냥 시원한 그늘에서 한숨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뿌리치고,
내가 걸어야 오늘의 대간길이 끝나지,
남이 걸어주지 않는다며...
잡초를 제거하지 않았으면 무척 힘든 길이 되었을 방화선으로 조성된 대간길이, 자치단체의 정비사업으로 인해 너무나 편안한 길이 되었다.
등로 정비로 신작로처럼 훤히 뚫린 대간길!
초가을임에도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 다닌다.
잣나무 채종원인 듯하다.
용수골 방향으로 아침에 지나온 대간능선 건너편의 안반데기 채소밭과 고루포기산이 보인다.
아직은 햇살이 따가워,
군데군데 서 있는 소나무 그늘이 반갑다.
'ㅜ'자 갈림길이다. 우측은 대화실산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옛날 북진 때, 이곳에서 무심코 직진하여 알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모퉁이를 좌측으로 돌며, 이제는 완연하게 동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돌아본 모퉁이 모습.
주변에 특이한 지형지물이 없고 숲이 우거져 있어서,
희미한 등로가 없으면 대간길 찾기가 어려울 듯한 숲길이 이어진다.
숲에서 엔진톱 소리가 들리더니, 등로 정비공사 현장이 나온다.
별로 필요 없을 듯한데, 나무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다시 쉼터(제2쉼터)에 도착하니,
눈에 익은 표지판이 정겹다.
잠시 숲길을 따르니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는 닭목령 동쪽 아래에서 삽당령까지 대간의 동쪽 사면에 개설된 임도다.
등로 정비에 사용되는 자재가 임도 날머리 입구에 쌓여 있다.
임도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임도를 따르면,
좌측의 무선통신 기지국을 지나며 좌측 숲길로 들어서고,
그냥 임도를 따라가도 삽당령에 도착된다.
뒤따르던 산인님이 스택을 접는 것으로 보아 삽당령에 금방 도착할 듯하더니,
삽당령에 도착한다.
삽당령 고갯마루에는 대전 청솔산악회 버스가 서 있다.
아까 화란봉 오름길 너럭바위 전망대에서 마주쳤던 분들이 타고 갈 버스인가 보다.
후미로 내려오신 분들이 삽당령 인증을 남기고,
<삽당령(揷唐嶺, 680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묵계리와 평창군 임계면 송현리를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삽당령 북쪽 산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이, 서쪽으로는 고단(高丹) 가는 길이 갈라지는데,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혹자는 산과 산 사이를 '샅'이라 하고, 고갯마루에 당집이 있어, 당집이 있는 고개란 뜻의 샅당령이 변해서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곳의 옛 이름은 삽운령(揷雲嶺)인 것을 미루어 보면, '구름이 운해를 이루며 꽂혀 있는 고개'라 하여 그리 불렸던 게 아닌가 추정된단다. 현지 주민들은 삽당령이라 부르지 않고 '삽달령'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또 다른 유래는 고개에 사당이 있어서 사당령이라 부르던 것이, 변음 되어 삽답령으로 부른다는 설도 있다.
이 고개는 강희 54년(숙종 41년)인 1715년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부(府) 서쪽 60리 정선으로 가는 길’이라 기록되어 있다. 삽당령은 강릉을 적시고 동해로 흘러드는 강릉 남대천, 그리고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으로 몸을 섞는 송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길 건너에 있는 간이 주막에서 션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기다리던 애마에 올라,
늦은 점심이 예정된 강릉으로 향한다.
강릉시내 목욕탕에서 땀을 닦고,
근처 '오솔길식당'이라는 조그만 식당에서,
긴 산행의 피로를 풀며,
'생태지리'로 맛난 점심을 먹는다.
긴 산행을 즐겁게 끝낸 뿌듯함과 맛난 술과 음식으로 최고가 된 백두들은,
다시 삶의 현장이 있는 서울로 향한다.
아주 옛날에는 대간길이 고난의 길이었는데,
이제는 행복의 길이 되었다.
그래 모든 게 心이 가리키는 데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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