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년

한강기맥 01차(두로봉~비로봉) : 원시의 신선골 계곡 탐방

by 재희다 2016. 8. 28.

산 행 지 : 한강기맥 0차(두로봉~비로봉) 강원도 평창군, 홍천군.

산 행 일 : 2016. 08. 27.(토)

산행코스 : 상원사 + 오대산 비로봉 ~ 상왕봉 ~ 두로령 ~ 두로봉 ~ 신선목이 + 오대산로

(거리 5.7km + 9.7km)

산행참가 : 21명.

 

<산행코스>

 

금년 여름 더위는 1994년의 '잠 못 들던 여름밤' 이후, 과연 20여 년 만의 무더위다. 지난번 한북정맥 청계산 구간은 그리 어렵지 않은 코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더위로 인해 맥 한번 추어 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던 관계로 모두들 피서산행을 한번 해야 한다는 성화가 빗발쳤다. 본디 9정맥을 모두 마치고 기맥들은 설렁설렁 다녀볼 요량이었으나, 피서 산행지를 찾다가 보니 오대산 계곡만 한 곳이 없는 듯하여 한강기맥 구간을 살짝 맛보며 오대산 깊은 골짜기에서 무더위를 식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산행코스를 오대산 한강기맥 피서산행으로 공지해 놓고 산행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데, 절대 물러나지 않을 듯하던 무더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시고 예상 기온이 20도 남짓으로 예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랬듯이 예정대로 산행을 진행하기로 하고, 버스에 올라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선잠을 잠깐 더 자다가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한강기맥>
백두대간 상에 있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분기하여 양수리까리 이어진 산줄기를 말한다. 두로봉에서 서남진 하여 오대산 비로봉, 계방산, 덕고산, 운무산, 수리봉, 대학산, 덕구산, 응곡산, 만대산, 오음산, 금물산, 시루봉, 갈기산, 폭산(문례봉), 용문산, 유명산, 소구니산, 옥산, 양평의 청계산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6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나서니 오대산의 밤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져,

모두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상원사 입구에서 오대산 비로봉을 향한 들머리로 들어서서 잠시 오르니 상원사 경내로 진입하게 된다.

 

<상원사(上院寺)>
강원 평창군 진부면(珍富面) 동산리(東山里)의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고 건물은 8·15 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36)이 있다.

오대산 비로봉 동남 기슭에 자리 잡은 상원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보천, 효명 두 신라 왕자가 중대 지로봉에서 1만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하며,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성덕왕)가 재위 4년 만인 705년 지금의 상원사터에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함과 동시에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고, 이어 725년 동종을 주조하였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만나 불치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세조는 친히 권선문을 작성하고 진여원을 확장하였으며, 이름을 ‘상원사’(上院寺)로 바꾸고 원찰(願刹)로 정하여 문수동자상을 봉안했다. 이후 몇 차례 중창되다가 1907년 수월화상이 방장으로 있을 때 크게 선풍을 떨쳤으며, 1951년 입적한 방한암 스님이 3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방한암 스님이 한국전쟁 때 병화로부터 상원사를 지켜낸 일화 또한 매우 유명하다. 방한암의 제자인 탄허 스님도 강원도 일대에 이름난 분이다.(펌)


곤한 잠을 자고있는 상원사를 깨우지 않으려 문수전 앞마당에서 좌측으로 조용히 빠져나가,

 

중대사자암으로 향하는 계단길로 접어든다.

 


앞쪽에 불빛이 보이더니 사자암에 도착한다.

 

<중대 사자암(中臺 獅子庵)>
적멸보궁의 관리와 예불을 위한 노전(爐殿 : 대웅전과 그 밖의 법당을 맡아보는 임원의 숙소)의 역할을 하는 곳으로, 보궁의 노전승이 거처하는 곳이다. 조선 태종때인 1400년 중창된 중대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다. 1466년(세조 12년) 10월 5일, 상원사 중수 낙성 때 세조가 보궁에 올라 예배하고 공양과 보시를 했다는 기록이 세조실록에 남아 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으로 보호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치 5단 폭포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구조의 전각으로 최근 새로 생긴 건축물이다.


비탈면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사자암 경내를 지나, 적멸보궁을 향한 계단길로 들어선다.

 

돌로 바닥을 포장해 놓은 적멸보궁 오름길에 '용안수'라는 샘터를 지나,

 

 

비로봉 오름길에서 좌측 능선 위에 자리한 적멸보궁을 둘러보기 위해 좌측 계단길로 올라가면,

 

적멸보궁에는 꼭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불을 드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五臺山 中臺 寂滅寶宮)>
적멸보궁은 오대산의 중심인 비로봉과 주변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분지 가운데에 남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대산사적」에는 중대 진여원, 동대 관음암, 남대 지장암, 북대 나한암, 서대 미타암이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중대 사자암 및 상원사, 동대 관음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서대 염불암이 위치해 있다. 적멸보궁의 뒤편 봉긋한 부분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석비가 세워져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법당안에는 별도의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만 있는데, 적멸은 번뇌의 불꽃이 꺼져 고요한 상태 즉 열반의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다. 석가모니불이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불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이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는 곳임을 상징한다. 따라서 진신인 사리를 모시고 있는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불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신 적멸보궁의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불사리를 모신 곳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으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①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②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③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④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⑤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등이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암사의 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다. 5대 적멸보궁 중 오대산의 것 외에는 사리를 안치한 위치가 분명하지만, 오대산의 보궁은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신비성을 더하고 있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의 순례지로서, 또 기도처로서 가장 신봉되고 있는 성지이다. 이밖에 비슬산 용연사(龍淵寺)에도 사명대사가 통도사의 사리를 분장(分藏)한 적멸보궁이 있다.

 

불전 앞에 놓인 신발로 미루어 짐작컨데 많은 분들이 새벽예불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데,

혹시나 방해될까 저어하여 서둘러 적멸보궁을 뒤로한다.

 

 

적멸보궁에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자, 비로봉을 향한 급경사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제 어둠은 가시고 그 자리에 한기가 들어찬다.

모두들 오름길에 체온이 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배당에 넣어 온 옷을 꺼내 입는다.

 

 

비로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예상보다 어렵지 않게 올랐다.

아마도 도중에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이 있어서 그리 느낀 듯하다.

 

<오대산(五臺山, 1,563m)>
강원도 강릉시·홍천군·평창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3m), 호령봉(1,561m) 등의 봉우리가 주변에 늘어서 있다. 원래 오대산은 중국 산시성(山西省) 청량산의 다른 이름으로,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할 때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에 있는 산의 형세를 보고 중국 오대산과 흡사하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오대산 일대는 현재 오대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역 안에는 상원사와 월정사가 소재하며, 이들 사찰에는 많은 부속암자가 딸려 있다.


드디어 후미들도 속속 비로봉 정상에 도착하고,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백두들이 모두함께 오대산 비로봉 정상 증명을 남긴다.

 

 

아침 안개로 주면 조망을 감상하지 못함을 아쉬워 하며, 비로봉을 뒤로하고 상왕봉으로 향한다.

 

 

1,520봉 헬기장에서 바라본 북서 방향.

방태산이 저쪽 어디쯤에 있을 터인데, 아직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주변 조망이 시원치 않으니, 기다릴 것도 없이 추위를 피해 서둘러 길을 떠난다.

 

 

잠시 후 헬기장 봉우리를 하나 더 지나니,

 

거대한 주목들이 반가이 맞아 주고,

 

우전방으로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도 구름에 덮여 있다.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 오대산 능선은 싱그러운 원시림 그 자체를 보여 주며,

 

바람이 약할 듯한 안부에는 어김없이 거대한 나무들이 향기를 뿜고 있고,

 

생명을 다한 거대한 노거수와 고사목들 조차도 주변 원시림과 함께 한다.

 

 

주변 원시림이 내뿜는 향기에 상왕봉을 향한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고,

 

오늘의 산행 목적인 '피서(避暑)'는 벌써 이룬 듯하다.

 

 

상왕봉(1,491m) 정상석은 널찍한 공터 한켠에 있는 돌무더기 옆에 있고,

 

남은 몇몇 백두들이 상왕봉 인증을 남긴다.

 

 

상왕봉을 뒤로하고 돌계단을 따라 잠시 내려서니, 앞서가던 백두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한여름임에도 추운? 날씨 탓에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두로봉을 향하는데,

상왕봉과 북대삼거리 사이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고,

 

북대사 갈림길 삼거리도 지나서,

 

1423봉 헬기장도 지나니,

 

 

두로령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두로령(頭老嶺, 1,310m)>
강원도 홍천군 내면 명개리와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오대산 안에 위치한 고개이며, 이 고개에서 1.2km 떨어진 두로봉(1,422m)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난다. 오대산으로 등반하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 지방도 제446호선이 이 곳을 통과하게 지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고 오대산 일대가 국립공원인 까닭에 노선지정이 해제되었다.


앞서간 백두들이 두로령 이정석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백두대간에 있지 않는 두도령의 대형 이정석 앞에서 모두 함께 인증을 한다.

 

두로령의 여인들!

 

 

좌측의 임도는 명개리로 이어지고, 가야 할 두로봉을 우측 산길 방향이다.

 


노거수들이 주변의 숲과 조화를 이룬 편안한 숲길을 지나,

 

완만한 두로봉 오름길을 편안히 이어가는데,

 

평소 산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서여사님도 오늘은 함께 두로봉을 향하고 있다.

 

다른 곳의 주목들과는 달리, 이곳의 주목들은 덩치가 훨씬 크다.

 


두로봉 정상 직전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인원들이 카케라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다.

 

가야 할 신선목이는 동대산 방향이지만,

 


한강기맥의 시작점인 두로봉 정상에서 인증을 남겨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기에,

동대산 반대방향의 울타리를 넘어 두로봉 정상에 오른다.

 

두로봉 정상에 도착하는 백두들.

 

두로봉 정상에는 널찍한 헬기장이 있다.

 

<두로봉(頭老峰, 1,422m)>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珍富面)과 홍천군 내면(內面) 및 강릉시 연곡면(連谷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 상의 봉우리로 한강기맥이 분기되는 봉우리다. 북서쪽의 비로봉(毘盧峰)·상왕봉(象王峰), 서쪽의 호령봉(虎嶺峰), 남동쪽의 동대산(東臺山) 등과 함께 오대산(五臺山)의 고봉이다. 산은 동사면을 흐르는 연곡천(連谷川)과 서사면을 흐르는 홍천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상원사(上院寺)와 미륵암은 계곡과 더불어 명승지를 이루는데,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백두산우회 한강기맥 출발을 신고한다.

 

 

두로봉 정상은 출입금지 구역에 포함된 곳이라 다시 두로봉 아래 갈림길 삼거리로 돌아 나와,

신선목이를 향해 동대산 방향 백두대간 능선길로 들어선다.

 

 

1383봉 헬기장을 지난면, 이제 신선목이(1,100m)까지는 내림길이다.

 

좌측 주문진 방향 조망.

 

구름이 걷히니 동해안 방향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한참의 내림길이 이어지더니,

 

 

널찍한 안부인 신선목이에 도착하여 한참의 쉼을 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직진의 동대산 방향을 두고, 청색의 화살표 방향으로 직우틀하여 신선골로 향한다.

 

<신선목이>
삼국유사의 ‘대산오만진신•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에 의하면, 자장 이후 그 신앙사상을 계승하여 오대산 신성굴(神聖窟)과 울진국(경북 울진군) 장천굴(掌天窟=聖留窟)에서 수도하여 성도한 신라 정신대왕(신문왕)의 태자 보천은 신성으로 일컬어질 만큼 신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로 보인다.
신성굴은 송광연(1638∼1695), 김창흡(金昌翕•1653∼1722), 강재항(姜再恒•1689∼1756)의 <오대산기>에 의하면, 현 두로봉 남쪽 골짜기인 신선골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곡가 왼쪽 산기슭에 있었던 굴로 추정된다. 김창흡은 “(상원사 방면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다른 시내가 흘러와 모이는데, 그것을 살펴보니 제법 맑고 그윽하였다. 그 골짜기를 뚫고 가면 양양의 부연동계곡에 이른다고 한다. 그 곁에 신성굴이 있는데, 옛날 명승이 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터가 폐지되었다”고 했다.
신성굴이 있는 계곡은 곧 오늘날의 신선골로서, 이 계곡으로 들어가 백두대간 주능선 상의 신선목을 넘어 양양(현재는 강릉시 연곡면)의 부연동계곡으로 넘어가는 등산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선골은 곧 신성골이 전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선골 입구에는 현재도 보천태자의 수행정신을 계승하고자 신성암(神聖庵)이란 건물을 지어놓고 수도처로 삼고 있다. 신선목이는 이 신선골에서 따온 지명으로 보인다.


대충의 방향을 가늠하고, 길이 없는 신선골 골짜기 방향으로 내려서는 백두들.

 

 

계곡 최상류 골짜기를 따라 신선골로 들어서면,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 곳에서, 야영을 한 흔적을 지나고,

 

첫번째 폭포를 만나 어렵사리 내려선다.

 

 

고도를 낮추자 겨울 같던 날씨가 다시 여름으로 바뀌며 껴입었던 옷을 다시 배낭에 갈무리하고,

 

언제부터 사람의 발길이 끊겼는지 모를 원시계곡을 더듬어 나아가면,

 

옛날 옛적 이곳에서 야영을 했던 흔적들을 가끔씩 지나게 된다.

 

 

마땅히 쉴만한 장소를 찾던 차에, 수풀에 덮힌 널찍한 공터를 발견하고 잠시 쉼을 한다.

 

 

신선목이를 출발한 지 30여분 남짓에,두로령 쪽에서 내려오는 주계곡과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한다.

 

청색 화살표가 두로령에서 내려오는 주계곡이고, 녹색이 우리가 내려온 신선목이에서 내려오는 지계곡이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신선골 하계 피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랫동안 산객들의 발길이 제한된 탓에 계곡은 원시 그 자체다.

 

불과 수년 전 까지만 해도 등로가 있었다는데 계곡의 좌.우 어디에서도 등로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

 

그냥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물 넘고 바위를 넘으며 내려간다.

 

아마도 가을철에 왔더라면 선명한 빛깔의 단풍으로 채워져 있었을 텐데,

 

빨강 노랑의 예쁜 단풍과 조화된 계곡을 연상해 본다.

 


계곡의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서 위험한 구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방금 지나온 계곡인데, 어디로 지나왔었는지 어떠한 흔적도 보이지 않고,

 

바위에서 바위로 물을 넘으며 길없는 길을 왔다.

 

 

물길 위로 걸으니 족적이 지워지기 마련일 듯.

 

날렵하게 신선골 계곡을 넘는 김영규님 부부.

 

 

한참만에 족적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쉼을 해 본다.

 


좌측 편을 올려다보니, 백두대간 능선에서 내려온 지류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고 있다.

 

 

신선골은 차츰 넓어지며, 곳곳에 아담한 소를 만들어 놓고 있다.

 

 

신선골 계곡은,

 

끝간데 없이 숲속으로 사라져 버릴 듯하지만,

 

그렇게 다가서 보면 또 물길의 흔적을 더듬어 내려갈 길을 찾을 수 있고,

 


그렇게 계곡은 또 바위틈 사이로 이어져 내려가다가,

 

한여름 무더위를 한번에 날려줄 전용 수영장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벗고 들어가면 올해의 무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소!

 

 

신선목이에서 한 시간을 넘게 내려와서, 션~한 계곡 한켠에서 쉼을 한다.

 

 

이제 계곡의 넓이도 넓어져,

 

한걸음에 건너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계곡 우측편 널찍한 평지에는 최근의 야영 흔적이 남아있다.

 

 

계곡물은 널찍한 반석지대를 만나 유유히 쉼을 하며 흐르기도 한다.

 

반석 위를 흐르는 물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제는 넓어진 계곡 옆 사면에서 등로의 흔적을 따르기도 한다.

 

 

돌담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나기도 하고,

 

 

계곡을 벗어나니 길 찾기가 쉽지 않아 흩어졌던 백두들이 다시금 한자리에 모여,

희미한 족적을 쫓아 신설골 입구로 향한다.

 

 

신선골 입구가 다가옴에 따라,

 

션한 계곡물로 금번 여름의 더위를 모두 날려 본다.

 

 

신선골 초입에 있는 신선암이 불쑥 나타나고,

 

신선암 진입도로를 따르면,

 

신선골 입구에 도착한다.

 

 

신선골 입구 다리 위에서 오래도록 남을 추억의 신선골을 돌아보는 백두들.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선재길을 따라 잠시 걸어 내려오니 출렁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를 건너 버스를 기다리는 백두들.

 

피서 계곡 트레킹에서 엄동설한과 원시림에 둘러진 원시계곡을 경험한 백두들은,

 

상원사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애마에 올라,

 

 

월정사 집단시설지구 아래쪽에 있는 경남식당에서,

 

 

2016년 피서 계곡트레킹을 추억 너머로 갈무리한다.

 

뭘 먹긴 한 듯한데...ㅋ~

 

 

지긋지긋했던 2016년의 무더위도 이것으로 끝이 나는가 보다.

 


정규 등산로가 없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 계곡트레킹은 또 다른 산행의 묘미 이기는 하다.

하지만 원치 않은 일들이 발생할 개연성도 있어서 선뜻 나서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더욱이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하기는 더더욱 그렇다.

 

내년부터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계곡을 찾아,

푸짐함과 함께하는 피서 산행이 되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