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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백두 8주년 가야산(충남) 2일차 : 멋진 가을이 내려앉은 덕숭산 수덕사

by 재희다 2012. 11. 11.

산 행 지 : 가야산, 덕숭산 수덕사. 충남 예산군.
산 행 일 : 2012. 11. 10.(토) ~ 11.(일) (1박2일)
숙      소 : 황토펜션(041-662-0129)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2구 178번지

행사참석 : 28명. 12

 

<행사일정>

11/10(토) 11:20 가야산 산행 (A팀 5시간, B팀 3시간 예상)

11/11(일) 10:30 수덕사 탐방(산책)

 

<산행지도>

 

오늘 일정은 아침에 덕산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덕숭산 자락에 있는 1500년의 고찰 '수덕사'를 둘러보고는 서울로 귀경하는 일정이다.

 

덕산온천(德山溫泉)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온천으로,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율곡 선생의 저서인 『충보』에 의하면, 학 한 마리가 논 한가운데서 날아갈 줄 모르고 서 있기에 동네 주민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날개와 다리에 상처를 입고서 논의 물을 열심히 상처에 찍어 바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기를 3일간 계속한 후 그 학은 상처가 나아 날아갔는데, 이를 이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학이 앉았던 자리를 살펴보니 따뜻하고 매끄러운 물이 솟아나고 있어 그 후로 이곳을 약수터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 물이 피부병, 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어 그 뒤로 이 마을을 온천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덕산온천의 유래라 전하고 있다. 이후 1917년 일본인 안정(安井)에 의하여 처음으로 탕을 이용한 온천으로 그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는 온천공의 수가 42공이며, 1일 채수량이 9,370㎥에 이른다. 온천의 수온은 최고 47.7℃이고, 수질은 약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Na·HCO3)이며 게르마늄 함량이 0.017㎎/ℓ으로 근육통·관절염·신경통·혈관순환촉진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수덕사는 백제 시대에 창건돼 지금까지 법맥을 이어오고 있는 1500년 된 고찰로, 예산 지역 정신문화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창건됐음이 확실하며, 중국 당나라 도선이 편찬한 '속고승전'에도 수덕사 명칭이 나온다. 수덕사 대웅전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목조건축물 가운데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교과서에도 소개되며 그 위상 또한 국보 제49호로 매우 중요한 문화재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사용한 건물의 부재가 크며, 고려시대의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또 다른 유물로는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수덕사 삼층석탑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보물과 문화재가 있어 매우 가치 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밤 끝없이 이어진 8주년 축하연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나 기록은 없다. 하지만 아침에 부산한 움직임에 눈을 뜨니, 모두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부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다른 분들은 주변정리를 하고 있다. 다른 분들도 뭔 일이 있었는지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는 듯이 보여, 나도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부산한 움직임에 동참한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는 바깥 풍경을 보며,

부지런하신 분들이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고,

 

지난밤의 흔적을 애써 지워보려 해도 별반 소용없음을 깨달으며,

되가져갈 짐만 대충 꾸리며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기다려도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는 수 없이 우산을 나눠 받으며 숙소를 나서니,

 

지난밤 노래방으로 사용되었던 우리의 애마가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다.

 

 

덕산온천지구에 있는 리솜스파캐슬에 도착하여,

 

<덕산온천(德山溫泉)>
충남 예산군 덕산면(德山面)에 있는 온천으로, 예산에서 서쪽으로 15km, 홍성읍에서 북쪽으로 9km 지점에 있으며, 온양·도고로 이어지는 충청남도 온천지대의 서쪽 끝에 해당된다. 수온 47.7℃의 약알칼리성 중탄산나트륨천으로 온천지대의 총면적은 309만 1000㎡이다. 부존량은 84만 3000㎥, 가채 수량은 하루 9,370㎥, 적정 양수량은 하루 4,700㎥이고 게르마늄이 0.017㎎/ℓ함유되어 있다. 효능은 만성 류머티즘을 비롯하여 피부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찍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덕산현조(德山顯條)'에 "온천재현남오리(溫泉在縣南五里)"라고 적혀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충청도(忠淸道) 덕산현조(德山顯條)'에도 "온천재현 남삼리(溫泉在縣南三里) 윤일문"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율곡은 이곳 온천수를 효능이 탁월한 약수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저서인 《충보》에서 온천의 유래에 얽힌 전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순조 때의 기록에도 이곳에 많은 탕치객(湯治客)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온천장으로서의 상업시설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1918년 일본인이 처음으로 덕산온천이라는 건물을 짓고 온천을 개장한 때부터이다. 그 후 같은 자리에 이한경이 새로 건물을 짓고 온천을 굴착하니 지하 300m 깊이에서 섭씨 43∼52℃의 온천수가 용출되었는데, 지구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온천수가 어머니의 젖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고 해서 그 터를 지구유(地球乳:충남문화재자료 190)라고 부른다.
이 일대는 예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온천이용업소 9개소 외에 호텔 등 많은 숙박시설이 있어 연중 250만 명이 찾고 있다. 가까운 곳에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 수덕사(修德寺) 등 덕산도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뜨거운 온천욕으로 스산한 가을비에 움츠러든 몸을 녹인다.

 

 

 

온천욕으로 간밤의 희미한 기억조차 말끔히 씻어내고는,

10여분 거리의 수덕사 집단시설지구에 도착한다.

 

수덕사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수덕사 매표소 쪽으로 들어서면 수많은 식당이 있는데,

이곳은 산채비빔밥과 더덕정식이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곳이다.

 

 

원래 계획은 수덕사 탐방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수덕사도 식후경'이라며 먼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물론 해장술은 기본이고..ㅉㅉ

 

 

 

점심식사를 마치고 수덕사 탐방에 나선다.

 

<수덕사(修德寺)>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사찰로,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시대 기록에 남아있는 12 사찰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사찰이다. 백제 제30대 무왕(武王) 때 혜현(惠顯)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설하여 이름이 높았으며,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때 나옹(懶翁:혜근)이 중수하였다. 일설에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지명(智命)이 창건하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제26대 왕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15))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국보 18)에 이어 오래된 건축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양 옆에는 승려들의 수도장인 백련당(白蓮堂)과 청련당(靑蓮堂)이 있고, 앞에는 조인정사(祖印精舍)와 3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그리고 1,020계단을 따라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만공탑·금선대(金仙臺)·진영각(眞影閣) 등이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定慧寺)가 있다. 부속 암자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見性庵)과 비구니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했던 환희대(歡喜臺)가 있으며, 선수암(善修庵)·극락암 등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특히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선 정진하는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설립되어 있다. 그밖에 주요 문화재로는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보물 1263),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381), 수덕사칠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181), 수덕사유물(거문고, 충남문화재자료 192), 수덕사 소장 소조불상좌상(충남문화재자료 384) 등이 있다.

수덕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종합수행 도량인 덕숭총림이다. 만공스님이 아산 봉곡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덕숭산에 있는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에서 3년 정도 수행한 뒤, 1905년 수덕사로 돌아와 스님들을 가르치면서 중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견성암은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며, 비구니 스님으로 유명한 김일엽이 기거했던 환희대도 있다.

 

<총림(叢林>]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 세 개의 교육기관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며, 공식 지정된 총림은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범어사, 동화사, 쌍계사 등 모두 8개가 있다.

 

 

수덕사 일주문 앞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여 본격적인 수덕사 탐방에 나선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인데, 금세 또 뭔가가 먹고싶어 진다.

쫌 줘유~~

 

 

수덕사 일주문을 들어서서도 대웅전이 있는 경내까지는 한참을 더 걸어야 하는데,

 

 

수덕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 완연한 가을빛으로 장식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10여 분을 들어서니 수덕사 선미술관 앞에 수덕사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덕숭산과 수덕사의 전설>

충남 에산군 덕산면 사천리 홍주 마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고 있었다. 수덕 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아름다운 낭자를 보고는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수덕 도령은 집으로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고,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 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을 당하였다. 수덕 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 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 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수덕 도령은 다시 목욕재계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덕숭낭자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마침내 절을 완성하였다. 그 후 덕숭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덕숭남자의 한쪽 버선만이 수덕도령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 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는데, 이 꽃을 버선 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덕숭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당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철이 전해온단다.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길 좌측에는 수덕사 선미술관이 있다.

 

<수덕사 선(禪)미술관>
고암 이응로 화백 작품과 원담 스님 외 선사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좌측의 해탈교 건너편으로 보이는 '수덕사 선 미술관'은 수덕사 입장료만 내면 무료로 전시된 서화와 조각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선미술관 옆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의 고택으로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라혜석씨가 삼년간 머문 적도 있으며, 이응로 화백이 1988년 작고 하실 때까지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고암 이응로 화백은 1944년 선미술관 옆에 있던 수덕여관을 사들인 후에 6·25 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하며 이곳에서 수덕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그 이전에 우리나라 최초 서양화가 나혜석을 이곳에서 만나 그림을 배우며 유럽을 동경하게 되었고, 후에 그의 제자 박경림과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수덕여관에서 머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수덕사 선미술관을 휘~이 둘러보고 대웅전으로 향하면,

 

 

금강문을 들어서게 되고,

 

 

좌측 환희대 앞마당의 풍경이 한적하니 멋스럽다.

 

환희대 원통보전 주변이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고,

 

환희대와 원통보전 앞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보다 멋지다.

 

 

 

 

대웅전을 향해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면,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동방(東方)의 지국천왕이 검(劍)을, 서방(西方)의 광목천왕이 탑(塔)을, 북방(北方)의 다문천왕이 비파(琵琶)를, 남방(南方)의 증장천왕이 용(龍)을 쥐고 무서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천왕상이 도열한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덕숭총림 황하정루 수덕사(崇叢林 黃河精樓 修德寺)'라 적힌 대웅전을 보호하는 전위 누각이 나타나고,

 

 

 

황하정루 아래 문을 통과하여 지나면 대웅전 앞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고,

 

 

 

가을 풍경이 호위하는 돌계단을 올라서면 수덕사 대웅전 앞에 서게 된다.

 

수덕사 금강보탑과 대웅전을 배경으로.

 

 

 

 

수덕사 대웅전 앞에서.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수덕사의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墨書)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충렬왕 34년)에 건립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自然石)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 합문이 있고, 측면에는 맨 앞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架構)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난 점으로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수덕사 대웅전까지만 주마간산으로 둘러보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간다.

 

 

 

 

 

 

수덕사를 뒤로하고 곶감이 주렁주렁 열린 특산물 매장을 못 본 듯이 지나며,

 

멋진 가을 풍경을 선사받은 덕숭산 수덕사들 다시 한번 돌아보고,

 

 

기다리던 애매에 올라 귀갓길에 오른다.

 

 

 

 

아마도 양재에 있는 식당이었던 듯!

 

 

참으로 먼 옛날의 추억임에도,

흥선대원군의 부친 임연군의 묘터에 서서 명당임을 실감했고,

덕숭산 수덕사의 가을 풍경은 지금까지도 잊히지를 않는다.

 

올(2020년) 가을에는 짬을 내어

덕숭산 수덕사엘 다시한번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