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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백령도 트레킹 1일차(1/4) : 안개에 침잠한 백령도 관광을 대신한 쑥 채취

by 재희다 2020. 4. 30.

여 행 지 : 백령도. (인천시 옹진군)

여행일자 : 2020년 4월 30일(목) ~ 5월 3일(일) / 3박4일

(5/2(토)까지 백령도와 대청도 2박3일 예정이었으나 짙은 안개로 1일 연장됨)

여행상품 : 숲길따라 감성여행사 백령도&대청도 원샷여행 참가.

참가인원 : 15백두.

 

<4월 30일(목) 첫째날 일정>

- 인천항에서 쾌속선인 뉴코리아호로 백령도에 도착.

- 안개 자욱한 백령도에서 마술사 버스 타고 패키지 관광.

- 용기포 등대해변, 사곶해변, 담수호공원, 용트림바위, 중화동교회, 천안함 위령탑 등.

 

<백령도 지도>

 

 

 

<백령도(白翎島)>

백령도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의 장산곶 남쪽 휴전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km 떨어져 있고 북한 장산곶에서는 15km로 지근거리에 있다. 면적 46.3㎢, 해안선 길이 52.4km, 주민은 3,177가구 5,657명, 초등학생 219명, 중학생 85명, 고등학생 102명이 있다. 섬의 최고봉은 해발 184m의 업죽산이며, 동쪽에 145m의 남산이 있고, 서쪽에는 해발 162m의 망골산이 있다. 섬의 남부에는 동쪽에 해발 130m의 이랑구미산, 중앙에 해발 114m의 매막골산, 서쪽에 해발 176m의 삼각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근래에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아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난 결과 8번째 크기의 섬이 되었다 한다.

백령도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백령도의 고구려 때 이름은 '따오기 곡(鵠)'자를 쓴 곡도(鵠島)였다가, 고려시대부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白翎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은 옛날 서해도 어느 고을의 한 선비가 사또의 딸을 사모하여 둘이 장래를 약속했는데, 이를 안 사또가 딸을 외딴섬으로 보내버리자 선비는 사또의 딸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어느 날 하얀 학이 흰 종이를 물어다주고 가는 꿈을 꾸어 놀라 깨어보니, 정말 종이에 주소가 적혀 있었다. 선비는 주소대로 장산곶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사또의 딸을 찾아 회포를 풀며 단란하게 살았다는 전설인데, 그 섬을 백학(白鶴)이 알려주었다 하여 백학도라 했다가 오늘날 백령도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한다.

진촌리 조개무지(말등패총)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 백령도를 곡도(鵠島)라고 하였으며 신라 진성여왕 때 당나라로 가던 사신이 풍랑을 만나 곡도에서 10여 일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후삼국시대에는 당나라로 통하는 중요한 해상교통의 요지였기에 백령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때는 명장이었던 유금필 장군이 무고를 당해 곡도로 유배를 당하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곡도를 백령(白翎)으로 개명하고 진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051년 백령진에 화재가 발생하여 백령진장 최성도와 부장 최숭망을 처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백령도에 진을 설치하고 진장과 부장을 두어 군사적 요충지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백령진을 설치하였다가 1894년(고종 31년)에 폐지되었다. 역사적으로 백령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백령도에는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있으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 특산물로는 까나리액젓·참다래(키위)·흑염소엑기스·전복·해삼·멸치·약쑥·가리비·농어·우럭·놀래미 등이 있다. 볼거리로는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세계에서 두 곳뿐인 사곶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섬 북서쪽의 두무진은 고려시대의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서해안 최북단의 섬인 백령도에서 2010년도 3월에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고,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지만 지금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섬사람들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도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통 상황이다. 백령도 주민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여객선이다. 육지는 비행기, 승용차, 고속버스, 기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지만, 섬은 오직 한 가지 바닷길밖에 없다. 그래서 안개나 풍랑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바람이 거센 동절기에는 유배지가 되어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 백령도는 그만큼 드나들기가 어려운 섬이었지만 지금은 쾌속선이 하루에 세 번이나 다닐 정도로 뱃길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동절기에는 잦은 풍랑주의보로 배가 다니지 못하는 날이 많고, 간혹 북한의 함정들이 근접하여 출동하고 북한의 공군기가 도발하게 되면 서해 5도 해상은 긴장이 고조되면서 여객선은 며칠이고 발이 묶이고 만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풍랑이나 짙은 안개는 자연현상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 이곳 주민들은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예전에는 인천에서 193km 거리를 12시간이나 배를 타고서 여행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쾌속선으로 4시간이면 백령도에 닿는다. 하지만 북한 땅 장산곶에서는 배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섬이다. 50~60년대에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면 여객선과 어선들이 바닷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북으로 향하다가 기겁하고 돌아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요즘도 안개가 끼는 날이면 여지없이 뱃길이 끊어진다.

백령도에는 3대의 버스와 택시가 주민들의 발이 되어준다. 마을버스가 들어오기 전에는 대민 지원 차원에서 해병대가 무임 운행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20km가 넘는 거리를 경운기를 타거나 걸어서 다녔다고 한다. 백령도를 비롯하여 먼 섬에 사는 사람들의 고충은 비싼 여객선 운임에도 있다. 지구의 온난화,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 등 어족자원의 고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굴뚝 없는 관광산업만이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섬 여행은 멀고, 날씨에 민감하며, 운임이 비싸서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인천~백령도 뱃삯이 편도 66,500원으로 제주도행 저가항공 요금보다 더 비싸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어업은 한계점에 이르고 관광객이 외면하여 백령도를 비롯 서해 5도 등 섬에 사는 사람들을 육지로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의 창궐로 정기산행이 중단된 이후 근교에서 벙개산행으로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을 추슬려 왔는데, 최근 들어 국내의 상황은 많이 호전되며 그동안 선뜻 시도하기 힘들었던 백령도 섬 트레킹을 다녀오기로 했다. 백령도가 본디 워낙 멀기도 하려니와 날씨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뱃길이 자주 끊어지는 바람에 선뜻 마음을 내기가 어려웠던 곳이다. 5월 초 긴 연휴에 징검다리 휴일까지 겹쳐 있어서 혹여 뱃길이 끊어지더라도 걱정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여겨서 몇 분께 의사의 타진하던 중, 4월 넷째 주 수리산 번개에서 여러분들께 공지되어 회원 여러분이 함께 참여하는 산우회 차원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전철과 버스를 수차레 갈아타고 나서야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주변 도로와 주차장이 온통 차들로 꽉 들어차 있다. 차를 가져왔더라면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텐데, 대중교통으로 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안여객터미널 내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꾀나 좋아할 환경인데 내가 모르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구나 싶다.

괜히 우리만 한적한 외딴 산에서 하는 등산도 못하고 집에서만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가 보다.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백령도행 표를 받아,

 

 

쾌청한 날씨에 백령도행 쾌속여객선인 코리아킹호에 탑승한다.

백령도행 배에 오르면서 부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드는 수준이고 하늘도 파란색이라 뱃길이 끊어질 것이라고는 꿈엔들 생각지 못한다.

 

붐비는 선실 내에서는 내가 아닌 타인들을 위해 마스크는 필수!

 

 

8시 반에 인천항을 출항한 배는 외해의 큰 물결에 제법 요동을 치다가는 소청항에 도착한다.

소청도와 대청도에서 일부 승객들이 하선을 하고는 이내 백령도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목적지인 백령도에 도착하니, 안개가 자욱하여 내심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하지만 육지에서도 그랬듯이 이내 다시금 맑은 하늘이 드러나리라 기대를 한다.

 

용기포항 뒷산이 안개에 가려서 보이지를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ㅉㅉ

 

 

 

같은 여행사에 예약한 분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여행사 전용 숙소인 파라다이스 모텔에 도착하여,

 

모텔에 딸린 식당에 한 끼당 7천원짜리 단출한 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기다리던 관광버스에 올라,

용기포 등대해변 탐방로 입구로 이동하여 탐방에 나선다.

 

<용기포(龍起浦) 등대해변>
층층의 기암절벽과 괴석이 바다를 배경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언덕을 넘어 비탈을 내려가면 약 200m에 불과한 해변에 규암의 풍화와 침식으로 인해 생긴 해식동굴과 시-아치, 시-스택 그리고 규암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 덩어리가 몽돌로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의 규암은 여러 개의 지층이 첩첩이 쌓여있고 수직으로 끊어진 곳이 많이 있는데, 바닷가에서 파도의 침식으로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상층부가 무너져 해식동굴이 발달하였다.

 

등대해변 안내판.

 

 

정자 뒤편으로 이어진 숲길을 잠시 따르면,

 

 

용기포 해변으로 내려가는 데크목 계단이 나온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용기포 등대해변(원산해변)에 도착한다.

 

규암 해식절벽을 배경으로!

 

등대해변 전경.

 

밀물 때라 해식동굴에 바닷물이 들어차 있다.

 

등대해변 코끼리 바위를 배경으로.

 

등대해변 해식절벽 모습.

 

시-스택(Sea-Stack).

 

 

오늘 서울은 한여름 날씨라는데, 이곳은 완전 겨울이다!

 

 

짙은 안개로 산 위에 있다는 등대는 보지도 못하고 다시 구용기포항으로 돌아 나와,

 

버스를 타고 두번째 탐방지인 사곶사빈으로 향한다.

 

 

 

지구에 단 두 곳뿐이라는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한 사곶해변(사곶사빈) 입구에 도착한다.

 

<사곶사빈(천연비행장)>
사빈이란 모래가 평평하고 넓게 퇴적되어 만들어진 곳을 말한다. 백령도 사곶의 사빈은 백령도 용기포 부두의 남서쪽과 남동쪽의 해안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언뜻 보면 모래로 이루어진 듯 보이나, 사실은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 해안으로, 썰물 때면 길이 2㎞, 폭 200m의 활주로가 나타난다. 사빈을 이루고 있는 모래는 크기가 매우 작고 모래 사이의 틈이 작아 매우 단단한 모래층을 형성하고 있다. 사빈은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여 자동차의 통로는 물론, 한국전쟁 당시에는 UN군의 천연비행장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백령도 사곶의 사빈은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는 것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단 두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지형 및 지질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 형성 과정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사곶사빈 안내판.

 

사곶해변 전경.

 

 

안개 자욱한 사빈에서!

 

 

 

 

사곶사빈 방문 기념!

 

 

 

 

사곶해변이 짙은 안개로 뵈는 게 없으니 그냥 돌아나와 전소장이 가져온 밀주를 나눠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사곶사빈 안쪽 벌판에 조성된 화동 유채꽃단지에는 유채꽃은 보이지 않고 새로이 튤립을 심어 놓았다.

 

백령도까지 와서 튤립을 봐야 할 이유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넓은 벌판의 일부분에 튤립을 심어 놓고는 튤립단지라며 방문객을 끌고 간다.

 

 

평소 꽃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 남자들만이 무심하게 둘러보는 척 관심을 표하고,

 

정작 여성 회원들은 쑥 채취에 여념이 없다.

 

 

 

 

또 버스를 타고 금세 도착한 '서해최북단비'가 있는 담수호 소공원에서,

 

버스 기사인 김반장님이 인증사진을 남겨야 한다고..ㅉㅉ

 

안개가 자욱하여 그리 크지 않은 담수호가 바다와 같은 느낌이고,

지척의 백령종합체육관이 아련히 멀게 보인다.

 

앉기만 하면 술을 마시던 분들이, 버스에서 나오기만 하면 쑥과 달래 채취에 여념이 없다.

 

 

그 규모로 우리를 놀라게 한 백령대교 방향.

 

사곶해변 동쪽 용기포 방향.

 

 

다시 버스를 타고 바다를 막아 담수로로 만들기 전에는 염전이었던 곳을 지나고,

 

 

현빈이 근무했다는 해병대 부대 앞을 지나 용트림바위 전망대 앞에 도착한다.

 

<용트림 바위>
용트림 바위는 여러 개의 암석층이 겹쳐진 것이 파도와 바람에 의해 많은 곳이 떨어져 나가고 일부분이 남아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양이라 하여 용트림 바위로 불리고 있으며, 바위가 스스로 하늘을 향해 나선처럼 꼬며 오르는 형상이 매우 인상적인 바위다. 이곳에 갈매기들이 서식한다. 깎인 절벽 곳곳에 둥지를 튼 갈매기떼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용트림바위 오른쪽 절벽에는 10억년 전에 퇴적된 지층이 그 후(약 2억5천만년 전) 강한 지각 변동에 의해 지층이 휘어지고 끊어지면서 특이한 지질 구조가 형성되었는데 이런 것을 습곡구조(褶曲構造)라고 한다. 이곳은 한반도 지각 발달사 규명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장학습과 자연체험 및 관광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천연기념물 5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본 용트림바위.

 

 

전망대에서 용트림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백두들.

 

누가 만들어 놓은 조형물처럼 생겼다.

 

 

 

습곡 바위 절벽 위로 데크목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서 돌아본 용트림바위 전망대 모습.

 

 

용트림바위를 배경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나라 기독교 최초 전래지라는 중화동 교회에 도착한다.

 

<중화동교회>

백령도 중화동교회는 황해도 송천 소래교회 다음으로 1898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두번째, 남한으로는 제일 오래 된 교회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선교지였던 백령도는 한국 초기 교회사가 숨쉬는 기독교 성지다. 교회 옆에는 2001년에 건립된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어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돌아 볼 수 있다. 지금의 교회 건물은 나중에 새로 지은 것이고 처음에는 12평 초가였다고 한다.

중화동교회는 당상관 허득의 주도로 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자생 교회로 백령도의 모교회다. 1898년 복음의 씨앗을 받은 참사 허득이 이 곳에 유배되어온 김성진, 황학성, 장지영 등과 함께 한학 서당에 중화동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백령도에는 중화동교회를 비롯, 화동교회, 가을교회, 한사랑교회, 백령중앙교회, 두무진교회, 연지교회, 사곶교회, 장촌교회, 진촌교회, 대청 내동교회, 대청 선진교회, 대청 실로암교회, 대청 옥주포교회, 소청교회 등 15개의 교회가 있다. 특히 중화동교회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521호인 연화리 무궁화가 있었는데, 2012년 태풍 볼라벤과 2018년 태풍 솔릭의 피해로 수세가 약화하여 지난해 고사하였다고 한다.

 

중화동교회 안내판.

 

 

돌계단길을 따라 오르다가,

 

고사된 무궁화나무를 지나면,

 

중화동교회가 나온다.

 

 

중화동교회 내부 모습.

 

중화동교회의 이모저모를 둘러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입구에 도착한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천안함 위령탑은 2010년 3월 26일 21:22 백령도 서남쪽 2.5km 해상에서,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천안함 피격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천안함 승조원 46용사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현장이 보이는 곳에 세워진 위령탑이다. 주탑 하부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하여 365일 서해 바다를 밝히도록 함으로써, 우리 서해를 사수 하겠다는 천안함 46용사의 수호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해설사님 말로는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하는데, 그런 분들은 6.25도 미국이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일께다! 사실 우리나라의 어느 누구도 보지를 못했으니..ㅉ

 

 

여기 사진으로 남은 젊은이가 우리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 올라가면 위령탑이 나온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천안함이 피격된 바다는 그때의 아픔을 감추려는 듯 안개가 자욱하다.

 

 

위령탑 좌측 절벽과 해안 전경.

 

 

 

 

 

한송이 국화꽃을 놓고서 그 가슴 저미는 아픔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위령탑 참배를 마치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나와,

 

 

전시물들을 둘러보며 오늘의 버스투어를 마감한다.

 

 

 

 

여행사에서 제공하지 않는 저녁식사를 위해 두무진에 도착하여,

 

 

식당이 있는 두무진 포구로 들어간다.

 

 

 

두무진 포구 전경.

 

 

 

 

여행사에서 제공을 않는다는 예기는 비용을 각자가 부담하라는 예기이고,

여행사에서 추천한 식당에서 인당 35,000원 하는 회로 저녁식사를 한다.

 

기대와는 달리 먹거리가 귀한 곳이다!

 

 

맛이 있거나 없거나,

양이 많거나 적거나,

백두들은 늘 잘 먹어서 행복하다!

 

 

저녁식사를 마감하고 횟집을 나선다.

 

늘어선 횟집들이 그 집이 그 집이며 특별히 나은 집이 없는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다가 백령도에서 제일 큰 마트에 들러서 저녁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마트 쥔장에게 백령도에서 쑥떡을 제일 잘 만드는 떡집을 물어서,

관광조차 뒷전으로 하고 땀 흘려 채취한 쑥으로 쑥떡을 만들기로 한다.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바로 음주에 돌입!

 

 

 

문화모텔 옥상에서 본 주변 야경.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여 내일의 일정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짙은 안개로 백령도에 왔다는 실감을 못한 채 백령도 일정의 반을 보냈다.

내일은 안개가 걷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늦도록 마신 술기운에 한량없는 잠의 안개에 휩싸인다.

 

(백령도 트레킹 2일차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