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 지 : 백령도. (인천시 옹진군)
여행일자 : 2020년 4월 30일(목) ~ 5월 3일(일) / 3박4일
(5/2(토)까지 백령도와 대청도 2박3일 예정이었으나 짙은 안개로 1일 연장됨)
여행상품 : 숲길따라 감성여행사 백령도&대청도 원샷여행 참가.
참가인원 : 15백두.
<5월 1일(금) 둘째날 일정>
- 안개 자욱한 백령도에서 마술사 버스 타고 패키지 관광 계속.
- 심청각, 고봉포 사자바위, 몽운사, 두무진, 유람선관광, 콩돌해변, 끝섬전망대 등.
<백령도 지도>
원래 예정된 오늘 일정은 오전에 백령도 투어를 하고, 점심식사 후 배편으로 대청도로 이동하여 트레킹 후 저녁식사를 하고 대청도에서 묵을 예정이었으나, 여행사에서 대청도의 숙소를 잡지 못하여 백령도에서 하루 더 묵은 다음, 내일 아침에나 대청도로 가기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아침에 안개 자욱한 창밖 풍경에도 그저 '오늘의 백령도 투어도 망쳤구나'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지, 설마 배가 뜨지 못하여 백령도에서 계속 발이 묵여 있을 것이라고는 우려하지 않는다.
지난밤 늦도록 마신 술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급할 게 없는 섬여행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위해 숙소인 문화모텔을 나서 파라다이스 모텔 식당까지 걸어서 이동하여 아침식사를 한다.
아침식사를 하러 가면서 본 백령면 소재지 전경.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버스에 올라 면소재지 인근의 심청각에 도착한다.
심청각에서는 북한의 장산곶이 빤히 바라보이는 곳이지만 짙은 안개가 옆사람의 얼굴조차 구분키 힘들 정도다.
<심청각>
백령도에는 심청전과 관련된 지명이 섬 내에 산재해 있다. 심청이 자랐다는 곳으로 심청전 원전에 있는 '중화동'이 지금도 연화1리에 있고, 뺑덕어멈이 살았다는 '장촌'도 이웃동네에 있다. 또 심청이 공양미 300석을 구하기 위해 중국 상인들에게 팔려가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는 바로 백령도 두무진 앞바다이다. 연화리라는 지명은 심청이 부활한 연꽃이 바다에서 이곳으로 밀려와 번식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지금도 그 지역에는 연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등 백령도가 심청전의 무대였던 사실을 기리기 위해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동시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여, 전통문화를 발굴, 계승함과 아울러 '효'사상을 함양하고,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에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달래주며,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 고서 등과 심청전의 내용을 극화한 모형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짙은 안개가 인당수 바다를 가리고 있어서, 그저 심청 동상 앞에서 '왔다 갔다'는 증거만 남긴다.
코로나로 심청각은 휴관인 상태라 내부 전시물조차 둘러보지 못하고,
이 심청이가 그 심청이인지 궁금증만 키운다.
짙은 안개로 보이는 게 없으니 심청각 탐방에 1시간이란 시간이 주어졌지만 실제로는 5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가 버스로 돌아온다.
뵈는 게 없는 심청각을 뒤로하고 다음 탐방지인 사자바위가 있는 고봉포구에 도착하니,
어제 두무진포구에 있던 갈매기가 어느새 고봉포구에 와 있다. 신기한 놈!
고봉포구 방파재 끝과 연결된 사자바위 모습.
<고봉포 사자바위>
고봉포 포구 끝 방파제 옆에 사자를 닮았다는 사자바위가 있다. 사자가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듯하다고 하여 그리 이름 지었다고 하는데, 사자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김반장의 예기대로 이구아나 한 마리가 섬을 향해 오르는 모습으로 보인다. 고봉포 앞바다의 사자바위는 만조 시각에 보는 것이 가장 좋으며, 사자바위 뒤편으로는 북한의 장산곶이 보인다는데 안개로 확인 불가!
확실히 이구아나 바위가 맞다!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사자바위보다 해안가 절벽이 오히려 볼거리다.
사자바위를 둘러보고 고봉포 포구를 나오는데, 철책 밖 해안가에 수많은 괭이갈매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 백령도에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들은 번식을 마치고 북한 해안에서 먹이 활동을 하며 압록강 너머 중국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안개가 짙어서 한 곳을 관람하는 시간이 너무 짧게 소요되면서, 원래 예정에 없던 몽운사라는 사찰 탐방에 나선다.
<몽운사>
백령도에는 1개의 사찰과 15개의 교회가 있는데, 주민들의 80%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백령도에는 200여년 동안 사찰이 없었는데, 드디어 2002년 11월 부명 스님이 원력을 세워 몽운사를 건립하고, 북녘땅 장산곶 너머 평양을 바라보는 몽운사 관음대에 높이 9m, 무게 25톤 규모의 해수관세음보살상을 세워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발원하였다고 한다. 몽운사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눈에 띄는 게 거대한 발우라고 했는데, 지금은 새로이 대웅전을 신축하려는지 널따란 터가 조성되어 있고, 거대한 발우와 북 그리고 목어 등의 용품들은 따로 보관되어 있다.
몽운사 대웅전 역할을 하는 '효행의 집' 앞을 둘러보는 백두들.
해웅전으로 쓰이고 있는 효행의 집 내부 모습.
행사에 사용했음직한 물품들이 따로이 보관되어 있는데, 거대한 발우가 특이해 보인다.
'행복을 만드는 발우'라는 거대한 발우 안에는 작은 법당 모형이 만들어져 있다.
장산곶 너머 평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해수관음상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두부진 포구에 도착, 두무비경길 탐방에 나선다.
<백령도 두무진(白翎島 頭武津)>
두무진은 백령도 북서쪽 약 4㎞에 걸친 해안선을 따라 오랜 세월 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높이 50m 내외의 규암절벽과 암괴를 일컫는 이름이다. 두무진이라는 명칭은 ‘뾰족한 바위들이 많아 생김새가 머리털 같이 생겼다’하여 두모진(頭毛鎭)이라 칭하였다가, 뒤에 ‘장군 머리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하여 두무진(頭武鎭)이라 개칭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두무진에 솟아 있는 바위들은 그 모양에 따라 코끼리바위·장군바위·신선대·선대암·팔각정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 온 이대기가 《백령도지》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이, 해안에는 땅채송화와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 바위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 석양에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두무진을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와 조물주의 솜씨에 정신을 잃고 무아지경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두무진 관람로 안내판.
두무진 포구에서 두무비경길 탐방로를 따라 두무진으로 향한다.
우리의 백령도 트레킹은 이런 모습을 원했는데, 지금까지는 버스만 타고 다녔다.
두무진 포구 바다 전경.
두무진이라는 지명은 백령진지(1802)에 두모(頭毛)라 기록되어 있다. 모(毛)의 의미는 '털'이라는 뜻과 '풀(草)'의 뜻이 있는데, 길게 늘어선 바위들이 마치 무성하게 자란 풀처럼 보여 '바위들이 풀같이 솟아있다'란 의미로 두모진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후에 장군의 머리 같은 형상이라 하여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본디 이곳은 산림이 울창한 곳이라 하여 두모진이라고 하였으나, 러일전쟁 때 일본의 병참기지가 생긴 후로 두무진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예전부터 이곳에는 해적의 출입이 잦았다고 전해지며, 18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인 카슬라프 목사와 1865년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가 두문진을 통해 상륙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때 두문진이라고 불린 것은 백령도 북서쪽 꼭대기(頭)에 있는 문호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안 산책로에서 숲길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통일로 가는 길'이란 표석도 설치되어 있다.
백령도에 와서 처음으로 밟아보는 비포장 산길!
우측 아래로는 두무진 포구 앞바다가 호수인 듯 내려다 보인다.
전망대 갈림길.
이곳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먼저 보아도 되지만,
위령비~전망대를 먼저 보고 다시 이곳 갈림길로 돌아 나와 좌측의 두무진 관람로로 가는 게 좋다.
좌측 형제바위 방향 두무진 관람로 전경.
두무진 안내판
통일기원비
두무진 포구와 장산곶이 내려다 보이는 해안 언덕에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적힌 작은 비석으로 해병 흑룡부대 장병들이 통일염원의 혼을 담아 1992년에 건립한 기념비다.
통일기원비에서 본 두무진 포구 방향.
통일기원비에서 본 선대암(仙垈岩) 방향.
선대암은 신선이 놀던 곳이라는 뜻으로 백령도 북서단 500m 정도의 기암절벽이 발달한 해안지대를 말한다.
두무진 전망대에는 벌써 백두들이 올라 있다.
선대암 장군바위를 배경으로!
좌측 형제바위 방향의 절벽 조망.
살짝 당겨본 꼭대기 모습이 마치 레고를 쌓아 놓은 듯이 보인다.
제1전망대에서 본 장군바위 방향 조망.
장군바위 모습.
좌측 형제바위 방향 조망.
살짝 당겨본 형제바위.
선대암 조망.
형제바위로 향하다가 돌아본 제1전망대 방향.
갈림길에서 형제바위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우측 해안가로 내려가는 계단길로 들어선다.
해안가에 내려서니 해안절벽 옆으로 장군바위가 살짝 보인다.
백령도 서북쪽 해안을 따라 4㎞가량 50~100m 높이의 규암 절벽이 늘어선 개별 암주가 위풍당당하게 해안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규암은 약 10억 년 전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사암이 변성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단층이나 습곡을 받지 않고 그것도 기울어짐 없이 수평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런 두무진 선대암은 주로 사암과 규암으로 되어 있으며, 층리가 잘 발달하여 곳에 따라 사층리의 물결자국이 관찰된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듯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 온 이대기가 《백령도지》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이, 해안에는 땅채송화와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 바위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
장군바위 방향 조망
좌측 형제바위 방향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차 있어서 갈 수가 없다.
이제 장군바위가 온전히 보인다.
탐방객들이 거의 내려오지 않는데, 마침 내려온 젊은 커플에게 부탁하여!
다시 형제바위 방향 탐방로로 돌아나와 돌아본 모습.
절벽 사이로 이어진 짧은 계단을 올라서자, 앞쪽으로 형제바위가 나타난다.
인공지물인 전망대 조차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전망대에서 본 형제바위.
전망대 아래 해변에 내려서서 본 형제바위.
형제바위 옆에 두개의 바위가 더 보인다. 아마도 두 형제의 자매들인가 보다.
돌아본 형제바위 전망대.
형제바위 전망대를 돌아 나오며.
두무진 비경길 탐방을 마치고 두무진 포구로 향한다.
두무진비경길 탐방을 마치고 두무진 포구 주차장으로 향한다.
두무진 탐방을 마치고도 아직 점심에는 이른 시간이라 백령도의 명물이라는 약쑥 체험장에 들린다.
실내에서 한참 동안 설명을 듣고는 시음을 한 다음에 구매를 희망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주문을 받는다.
백령도 토종 약쑥인 '싸주아리'는 국화잎과 비슷하게 생겼고, 잎과 줄기가 옅은 흰색을 띠어 일반 육지의 쑥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5월~8월경에 채취해 바닷바람에 말린 다음,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3년 이상 숙성시켜서 액기스나 차, 뜸 등으로 가공하여 판매하는데, 특히 위장의 염증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백령대교를 건너 백령도의 나름 유명한 먹거리인 냉면을 먹으러 간다.
제법 유명한 사곶냉면집이 코로나로 관광객이 줄어들어 휴업 중이란다.
대신에 꿩대신닭, 사곶일번지칼국수라는 식당에서 황해도 냉면을 맛보기로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냉면이라면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을 꼽는데, 백령도에는 대표 냉면에서 제외되었다고 서러운 황해도 냉면이 있다. 백령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기 이전에는 황해도에 속해 있던 터라 당연히 황해도 냉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함흥냉면은 원래 감자전분으로 만든 농막국수였다가 해방 후 함경도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에 의해 평양냉면처럼 함흥냉면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1953년 오장동함흥냉면이 문을 열며 본격적인 함흥냉면 시대를 열었다. 그래서 원래 냉면의 계보에는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평양냉면과 해물육수로 만드는 진주냉면은 있지만 함흥냉면은 없었다. 하지만 해주와 사리원을 중심으로 하는 황해도 냉면은 옛부터 제법 계보가 있는 냉면으로, 같은 물냉면이기는 해도 평양냉면보다 면발이 굵고 육수도 돼지고기 육수가 기본이다. 황해도 냉면에는 양평 옥천의 황해식당, 안성의 우정집 등이 유명한데 황해도 냉면 계열에 백령도냉면도 있다.
6.25 때 황해도 분들이 대거 백령도로 피난을 오면서 백령도식 황해도 냉면이 시작됐고, 또 백령도 분들이 인천으로 나와 백령도식 냉면을 팔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백령도 냉면집이 사곶냉면인데, 최근의 코로나 사태로 휴업 중이라 부득이 사곶칼국수집에서 황해도냉면을 맛보기로 한다.
별생각 없이 먹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카메라에 담는데 벌써 그릇이 비어 있다.
그다지 맛있다는 느낌도 안 드는데, 쥔장의 불친절은 가히 최상위권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용기포로 이동하여,
백령도 흰나래길 사곶해변길을 답사하려는 여행사 사장을 내려놓고,
다시금 거대한 백령대교를 건너,
두무진 포구에 도착하여 유람선 관광에 나선다.
어제부터 짙은 안개로 유람선 운항을 못하다가 오늘 낮부터 운항을 하게 되었단다.
두무진 포구를 뒤로하고 두무진 유람선 관광에 나선다.
두무진 유람선 관광은 백령도 서북쪽 해안을 따라 4㎞가량 50~100m 높이의 규암 절벽이 늘어선 개별 암주가 위풍당당하게 해안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두무진을 유람선을 타고 둘러보게 된다. 규암은 약 10억 년 전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사암이 변성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처럼 긴 세월 동안 단층이나 습곡을 받지 않고 그것도 기울어짐 없이 수평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오랫동안 파도에 의해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린다.
홍도나 거제도의 해금강의 기암괴석과는 달리 층상암벽에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이 조각된 바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홍도와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한 절경이다. 특히 선대바위는 1612년(광해군 5) 백령도로 귀양 온 이대기가 《백령도지》에서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높이 30~40m 되는 일부 암벽에는 해국이, 해안에는 땅채송화, 갯질경이, 갯방풍, 벌노랑이 같은 염생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큰 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라고 있다.
두무진 포구 주변의 해식동굴이 발달한 해식절벽 모습.
좌측으로 오전에 트레킹을 했던 두무진이 모습을 드러내고,
트레킹에서 볼 수 없었던 두무진의 속살이 차츰 드러나 보인다.
유람선이 포구를 벗어나자 오전 트레킹 때 보았던 두무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유람선에서 절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각양각색의 기암절벽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바다의 거센 파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지질은 약 12억 년 전 원생대에 형성된 매우 단단한 규암이 주된 성분인데 사이사이에 규암보다는 약한 지질의 이질암, 실트암 등이 있어 풍화작용에 차별침식되면서 바위에 여러 무늬를 새겨 놓았고, 규암이 풍화작용에 의해 붉은색을 띠게 되어 기암절벽의 무늬와 함께 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두무진 해안 조망.
유람선의 진행에 따라 암주들이 붙었다가는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두무진(頭武津)의 원래 이름은 두모진(頭毛津)이었다. 두모(頭毛)의 모(毛)는 풀(草)의 의미도 가지고 있는데, 길게 늘어선 바위 기둥들이 마치 무성하게 자란 풀처럼 보여 '바위들이 풀같이 솟아있다'는 의미로 두모진이라 했다는 말이 실감나게 하는 풍경이다.
두무진이란 이름이 장군의 머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바위들이 마치 용맹한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오전에 올랐던 전망대도 자그마하게 보인다.
두무진 절경 중에서 1997년 문화재 명승지로 지정된 선대암(仙垈岩)은 신선이 놀던 백령도 북서단 500여 미터 해안을 말하는데, 기암절이 특히 발달되어 있는 곳을 말한다.
두무진 해안절벽 조망.
드디어 코끼리가 물가에서 코를 박고 물을 먹는 모습으로 보이는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멀리서 보니 바위 절벽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바다로 나서는 듯 보인다.
좌측의 물에 잠길듯 말듯한 바위가 잠수함바위라는데, 정확히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 분명치 않다.
선장의 말로는 잠수함이 용궁에 있던 심청이를 태워 연봉바위로 데려가고 있다고 한다.
돌아본 잠수함 바위와 두무진 해안절벽.
이어지는 해안절벽이 해식작용으로 절경을 빚어 놓았다.
이제 코끼리 바위가 뒤쪽으로 보인다.
절벽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바위가 눈에 띈다.
저 바위가 부처바위일까!
당겨본 부쳐바위.
별생각 없이 두무진 해안절벽의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전원이 꺼졌다. 충전을 해 놓았어야 하는데 깜빡하여 이후의 유람선 관광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두무진 해안을 배경으로.
두무진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다시 포구로 들어서며..
두무진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콩돌해변 탐방에 나선다.
<콩돌해변>
백령도 남포리의 콩돌해변은 남포리의 오금포 남쪽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의 길이는 800m, 폭은 30m이다. 콩돌해안의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 지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암이 부서져 해안 파도에 의하여 닳기를 거듭해 콩과 같이 작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잔자갈들로 콩돌이라고 한다. 콩돌의 색깔은 흰색·회색·갈색·적갈색·청회색 등등 형형색색을 이루어 해안 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백령도 남포리의 콩돌해변은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 곳으로 지질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백령도의 서북단인 두무진은 안개가 어느 정도 걷혔는데, 남쪽인 콩돌해안은 아직도 안개에 싸여있다.
안개로 희미한 콩돌해변 전경.
수많은 어린 콩돌들 사이에 제법 어른스러운 몽돌 크기의 자갈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색깔도 제각각인 콩돌들이 해수욕장의 모래만큼이나 많이 쌓여 있다. 이 콩돌해변은 신발을 벗고 그 위를 멘발로 걸어야만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너무나 작고 예뻐서 밟기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콩돌해변의 백두들!
다시 버스를 타고 백령도의 동쪽 끝에 있는 용기원산(136m) 정상부의 끝섬전망대로 간다.
전망대까지 버스가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턱에서 차를 세우고 쉬엄쉬엄 걸어서 오르며 쑥 채취를 한다.
안개가 자욱하여 주변 조망이 전혀 없는 끝섬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짙은 안개로 전망대만 보고 전망은 보지를 못한 체 발길을 돌리는데,
전망대 홍보요원이 백령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준다.
전망없는 전망대를 뒤로하고 길가에 지천으로 돋아난 쑥만 한아름씩 채취를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백령도 특산물 판매장에 들러서,
백령도 특산물인 까나리와 다시마, 미역 등을 구매한다.
안개가 자욱하여 시간 개념 조차 흐릿한 채 숙도로 돌아와,
저녁식사는 자유식이라 족발을 배달시켜 저녁밥 대신에 바로 술판을 벌인다.
백령도의 특산물이 족발이라는 소문도 있다나 없다나!
오늘 저녁은 대청도에서 먹었어야 하는데,
짙은 안개로 배가 뜨지를 못하여 백령도에서 계속 머물게 되었다.
아직은 여행 일정에 포함된 날이라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내일이 여행 마지막 날이기에 안개가 걷혀서 배가 뜬다면,
아침 일찍 대청도로 건너가 멋진 모래사구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진 채
푸짐한 안주에 술술 넘어가는 소맥에 어떠한 시름이나 걱정도 씻겨 버린다.
여행기를 쓰는 도중에
다음에서 블로그 편집 프로그램을 교체하였다.
기존에 사용하던 편집기에 비해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고,
속도 또한 엄청나게 느려져 편집에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
이런 상태면 우리 카페와 블로그를 네이버로 옮기는 것을 고려해 봐야겠다.
(백령도 여행 3일차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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